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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나님아들 2013. 1. 15. 21:4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신학박사

1세기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 한가운데서 어떻게 살았을까? 불신자들 한가운데서 노출된 채로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의 일상, 삶의 방식, 그리고 주변 사회와 그 지역사회에 어떻게 반응했던가를 살펴봄으로서 그리스도인과 사회 혹은 교회와 사회에 대한 저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길 가는 나그네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을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인식했다. 그들은 이 땅을 영구한 도성으로 여기지 않고 ‘지나는(passing away) 나그네’ 곧 역려과객(歷旅過客)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자신들을 ‘파로이코이’(παροικοι), 곧 ‘나그네’라고 불렀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나그네와 행인 같은…”에서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방식과 현실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용어였다. 유사한 용어로 파로이키아(παροικια, 벧전1:17), 파레피데모이(παρεπιδημοι, 행인, 2:11) 등이 사용되었다.

고대 헬라세계에서 사용된 파로이코스(παροικος)는 법적인 용어였다. 즉 시민권이 없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peregrinus였다.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하였다. 이 말 속에는 비영속성, 일시성, 잠정성 등의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적인 세계에서 이질성(heterogeneity)을 인식하고 이 세상의 가치와는 구별된 삶을 지향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원사적인(salvation-historical) 중요성을 지니는 구별된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비록 저들의 발은 그 땅에 속해 있었으나 그들의 머리는 천국에 두고 있었다. 바로 이런 현실 인식에서 이 땅의 어떤 것에 탐닉하지 않고 이 세상과 구별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갔던 것이다.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들이 속한 사회의 진정한 평안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서 사회에 소요를 일으키고, 소동케 하는 반사회적 인물로 오해받고 비난받기도 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이들은 그들의 사회에 평안과 평화를 추구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자기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29:7)고 했는데, 그 도시의 복지를 구하라(Seek the Welfare of the City)를 구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삶의 양식으로 이해되었다.

‘공동의 유익’(public good, usui publico)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레미야가 말한 구약의 전통에 따라 그레꼬 로마 사회에서 실행하고자 했던 사회적 삶의 양식을 결정했다. “그 도시의 유익을 구하라”는 기독교 전통의 사회관은 초기 로마-헬라 사회에서 잘 알려진 것이었다. 그래서 2세기 아시아의 총독은 에베소에 있는 제빵업자들이 노동 쟁의를 벌였을 때 그들을 책망하면서 ‘그 도시의 복지’에 무관심하다고 말하기까지 한 일이 있을 정도이다.

캠브릿지대학교 틴데일 하우스의 부르스 윈터(Bruce Winter)박사는 이 문제, 곧 사회에 시혜자로서 그리스도인들(Christians as benefactors) 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회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그 도시의 복지를 위해 살았는가를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했던 한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랑과 자비의 배품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특히 기독교공동체 내의 선의의 봉사활동은 이 시기 교회의 중요한 발전이었다. 그래서 180년<페레기너스의 죽음>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를 비방했던 루시안(Lucian of Samosata, c. 120-?) 마저도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주고 있다.

“그들 본래의 율법수여자는 그들은 서로 형제들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 형제들에게 도움을 줄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도움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그들은 형제에 대한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았다.”(Adolf von Harnack,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Harper & Brothers, 1961), 188.)라고 했다.

터툴리안은 “우리들이 많은 대적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위난자들에 대한 우리의 보살핌(care for the helpless)이며, 우리의 자애의 실천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들은 서로를 미워하지만) ‘그들이(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는지를 보라’고. (자기들은 서로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그들(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라’고.”(Tertullian, Apology, xxxix.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자애에 대한 비슷한 내용이 Caecilius, Minuc. Felix, ix에도 나온다.).

야고보서(1:1-5)에서 강조되었던 ‘자비를 행치 않음(unmercifulness)에 대한 경고는 속사도 교부였던 허마(Herma)의 <목자>(Shepherd)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고, 이 책과 <디다케>(Didache, c. 100)에서는 ‘조건 없는 배품’(unconditional giving)을 강조하고 있다(Didache, I. 5f.).

3세기 이전의 교부들의 문서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공통된 경구는 “‘이것들은 다 내 것이니라’ 라고 말하지 말찌니라”는 경구였다(Harnack, 151. “thou shall not say these things are thine own.”). 말하자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핍절된 이웃에게 구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옥에 갇힌 자들을 보살펴 주는 간호행위는 바로 복음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행해진 사랑과 자비의 사역이었다.

위대한 교회사학자인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보살폈고, 유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장애인을 도와주고 간호(care)하여 주었으며, 옥에 갇힌 자와 탄광촌의 고달픈 이들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죽은 자를 매장해 주었고, 노예들을 보살폈으며, 재난을 당한 이들을 돌보고 여행자들을 선대했다고 지적하고 각각의 경우를 초기 문헌에 근거하여 자세하고 기술했다(Harnack, 153ff.). 말하자면 사랑과 자비, 선행과 봉사는 기독교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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