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인생의 제1원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님아들 2024. 11. 23. 21:01

인생의 제1원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오늘의 말씀 마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인간은 무엇인가를 구하는 존재입니다.

 

최근에 서울 한복판에서 역주행 차량으로 인해 9명이 죽고 4명이 다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있었습니다. 재난을 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도 언제든지 이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1년에 처음 등장한 ‘노면 색깔 유도선’은 경기도 안산분기점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이패스 차로를 통과한 승용차와 다른 차로를 통과한 화물차가 서로 빠져나가려고 짧은 구간에서 서로 다투다가 화물차가 콘크리트 벽체에 충돌하여 사망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에 초보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개선하라는 지시를 받은 도로교통공사의 윤석덕 직원이 퇴근 후 우연히 자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다가 착안하여 지금의 분홍색과 초록색의 ‘노면 색깔 유도선’을 설치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운전자들이 쉽게 길을 찾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교차로의 교통 사고가 평균 27%가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찾으면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그 문이 열린다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지 알라는 것입니다.

 

● 인간의 기본관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주님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구하는 것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중 두 가지는 목숨을 위한 것이며 한 가지는 몸을 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목숨을 위하여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리고 몸을 위하여서는 ‘무엇을 입을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기본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고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규정하십니다.

 

1943년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욕구의 5단계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는 타고나는 것이며 계층적으로 5단계를 이루고 있는데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욕구는 병렬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처럼 낮은 단계에서부터 높은 단계로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입니다. 이는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로서 가장 기본인 의복, 음식, 주택을 향한 욕구, 그리고 생명을 번식하기 위한 성욕을 말합니다. 둘째는 안전의 욕구(Safety)인데 여러 가지 위험과 위협, 박탈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애정·소속 욕구(Love/Belonging)인데 가족, 친구, 교회 등 여러 가지 모임 등에 소속되어 친교를 맺기를 원하는 욕구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존중의 욕구(Esteem)인데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존중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계속 발전하게 하고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매슬로는 나중에 여섯 번째로 자기초월의 욕구를 추가했는데 이는 자신의 완성을 넘어서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 예수님의 질문,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주님은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얼마나 강력한 표현입니까? 그리고 주기도문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물으십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그렇습니다. 당연히 물질보다 생명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 땅의 짧은 생명보다 영원한 생명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해법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대신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들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데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시는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얼마나 당연한 질문입니까?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염려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메림나오’인데 ‘분열되다’, ‘나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산란하여 여러 갈래로 분열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미리 염려하지 말라....”(막 13:11) 말씀하십니다. 염려는 무익한 것이며 해로운 것입니다. 네가지 땅 중에 가시떨기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염려는 기운이 막히게 하며 축복이 막히게 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막4:7) 그러므로 염려하지 않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영원한 목적을 추구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오늘 주님의 말씀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인생 지침의 말씀을 주십니다. 참으로 인생의 제일 원리요 인생의 모토가 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주님의 말씀은 ‘너희에게도 이방인들처럼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잘 아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 그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복음을 듣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며,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말합니다. 또한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칭의를 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정신으로 이 땅에서 정직과 진실과 성실함으로 공익을 추구하면서 긍휼을 베푸는 삶을 말합니다. 나그네로 사는 임시적인 우리에게 영원한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큰 비극은 덜 중요한 것을 추구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생의 제일 원리로 삼아야 하며 철저하게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인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4)

 

 

●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주님은 이미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먼저 그의 나라과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영원한 목적을 우선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와 능력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오고 축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규명한 학자가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개신교의 윤리, 즉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어떻게 근대사회의 번영을 가져왔는지를 사회학적으로 전개하는 책을 썼는데 오늘날 사회학 서적 중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그는 개신교의 윤리,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공공선을 구하는 기독교의 정신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번영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번영이 목적이 아니라 부산물이 된다는 것이 “베버 명제”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원한 목적을 추구하는 삶에는 놀라운 생산성이 있습니다. 영원한 목적을 추구할 때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더 겸손하게 하고, 더 성실하게 하며, 더 정직하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지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말하는 “먼저”와 “더하심”의 원리입니다. 여기서 순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언제나 먼저 하나님나라와 의가 먼저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염려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추구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것들도 덤으로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라.(고전10:2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주님의 말씀이 나의 인생의 제일 원리가 될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축복과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