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아들 2024. 11. 23. 20:48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히4:12-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증언합니다.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사실입니다. 신학자 본회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좋은 말씀도 아니고, 옳은 말씀도 아니며, 아름다운 말씀도 아니고, 재미있는 말씀도 아니다. 이는 오직 살아 있는 말씀(living words)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임하면 위대한 변화가 옵니다. 삶의 변화도 오직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도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할 때 바르게 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성장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라고 성경이 지적합니다.(히5:12) 왜 말씀이 유익이 되지 않습니까?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4:2) 그러므로 말씀을 잘 받아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살전1:6)

● 하나님의 말씀은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말씀은 성육되신 말씀(incarnated word),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을 입은 말씀이요, 예수님의 인격이며, 예수님 자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주님은 그 자신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이실 뿐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었습니다. 치유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주님은 은혜와 진리의 말씀 자체이시며 죄를 사하시는 권세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존재자체와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은혜와 진리로 가르치신 모든 말씀과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의 중심이며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참으로 인격적으로 만날 때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록된 말씀(written word)인 성경입니다. 계시로 우리 손에 들리어진 성경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책으로도, 핸드폰으로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열어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연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오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사랑하고 읽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더불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지혜가 이 말씀에 있습니다.

셋째, 선포되는 말씀(preached word), 설교말씀입니다. 이는 “사도의 가르침”(행2:42) 즉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가리키며. 오늘도 신실한 주의 사역자들을 통해 전파되는 말씀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케리그마(Kerygma)입니다. 케리그마는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이시고 친히 행하신 것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이 친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었던 것을 전하는 말씀입니다. 몸소 체험한 말씀이므로 증거인 것입니다. 그 체험한 바를 마침내 순교하기까지 신실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포된 말씀, 케리그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케리그마의 설교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참된 생명의 말씀이 없이는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만나고, 그 말씀을 향하여 살고 그 말씀의 은혜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 “말씀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처럼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수술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생생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경은 글 자체가 살아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처럼 성경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검’과 같이 수술을 하는 의사의 메스같이 심령 깊은 곳에 있는 불의와 기만, 죄와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고 수술한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을 보십시오. 그는 ‘고백록’과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을 쓴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복음을 떠나 마니교 철학에 심취해서 철학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의식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이들의 노랫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펴보라'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의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 말씀을 읽고 마음에 찔려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거스틴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그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입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죄의 고민으로 인하여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하면서 계단을 무릎으로 올가가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의 빛이 비춰올 때 그는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을 확신하게 되고 이 진리에 입각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역사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도 그렇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세상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불순종할 때는 그 말씀이 심판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심령 깊은 곳에 내재하는 탐욕과 불의, 악의, 시기, 악독(롬1:29) 등의 온갖 죄악을 예리하게 심판하고 영혼육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깨끗한 영혼으 사람 다윗은 자신을 억울하게 핍박하는 원수인 사울왕의 옷자락만 베고도 마음에 찔렸습니다.(삼상24:5) 다락방에 모였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한 사건은 말씀이 역사하는 참으로 귀한 사례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반면에 스데반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악하게 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7:54) 여기 ‘찔러’ ‘디이이크누메노스’라는 말은 ‘꿰뚫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 잠재된 의식까지 들춰내는 것입니다. ‘감찰하나니’의 헬라어 ‘크리티코스’는 ‘판단하다’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찰하여 그 깊은 것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를 심판하고 수술하며, 회복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펄전은, 불신앙에 맞서는 길은 오직 성경을 유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거스르는 모든 반대에 대한 대답은 성경이다. 성경은 사자와 같아서 그것을 설명하고, 방어하고, 혹은 왜 그것을 믿어야 하는지 증명하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 고 했습니다. 말씀을 너무 변명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오늘 성경은 이제 우리에게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구원을 내 힘으로 쟁취하려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사랑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이 일은 저의 부족한 이성적 판단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비판을 누르고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기에 지금 이 사건이 여기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간 하박국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비록 납득이 가지 않아도 주님의 뜻을 전적으로 수락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시며 우리의 삶을 고칩니다. 죄사함과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 있는 무한한 능력은 자동적으로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참으로 믿을 때, 그 믿음의 채널을 통하여 말씀이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라야 그 능력이 내게로 와서 능력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이요 살리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읽고 듣는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지혜를 주십니다. 능력과 용기를 주시며 결정적으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피 속에는 끊임없이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로운 병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나서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이 백혈구가 이기지 못하고 지면, 병에 걸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말씀으로 죄와 싸우고 불신앙과 싸우고 낙심과 절망과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내 영혼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여기 모든 승리와 지혜와 생명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먼저 ‘말씀의 사람’이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고, 이 가을에 제1차 성경세미나, 출애굽기를 중심으로 구속사 성경세미나를 열 것입니다. 말씀은 자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2:9)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그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 가을, 우리 모두 말씀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의 사람, 승리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