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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녀 부부가 말했다 “우리가 왜 아이를 안 낳냐면요”

하나님아들 2024. 6. 14. 09:46

무자녀 부부가 말했다 “우리가 왜 아이를 안 낳냐면요”

김다은 기자2024. 6. 14.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 부부 4쌍 중 한 쌍은 자녀가 없다.
SNS에서는 ‘쿨’한 삶의 양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공동체를 위협하는 저출산의 주범으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공존한다.
변정정희씨(왼쪽)와 이익형씨는 결혼 11년 차를 맞은 무자녀 부부다. ⓒ시사IN 조남진

며칠 전 경남 진주를 여행하고 왔다며 변정정희씨(42)와 이익형씨(44)가 꿀빵을 접시에 담았다. 식탁 위로 저녁 햇발이 내려앉아 커튼을 쳤더니 나무 그림자가 보기 좋게 흔들거렸다. 두 사람의 집은 편리하기보다 운치 있는 곳에 있다. ‘서촌’이라 불리는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10여 분 걸어가면 인왕산 아래 구옥이 나타난다. 아이가 없어서 선택할 수 있는 집이었다. 내부는 두 사람의 취향에 맞춰 깔끔하게 꾸몄다. 3년 전 자리 잡은 두 사람의 보금자리다.

여행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5월 초에도 일주일간 티베트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기념일마다 드레스와 정장을 챙겨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책이 가득 꽂힌 책장 사이에는 11년 차 부부의 여행 사진이 한 장씩 재생되는 ‘디지털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

 

2013년 결혼한 두 사람은 이른바 ‘가족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고 신혼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출산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변정정희씨의 친구가 난임 시술을 시도한 끝에 착상에 성공했다. 변씨는 조심스럽게 “네가 아이를 원하는 줄 몰랐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아이 갖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뜻대로 안 되니까 그냥 그렇게 말했던 거지.” 부부는 그날 ‘정식으로’ 가족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삶’에 대한 합의는 어렵지 않았다.

이익형씨가 당시를 설명했다. “제가 먼저 ‘우리 둘만 바라보고 살자’고 말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할 것 같았거든요. 아이가 있다면 제 나름 최선을 다해 키우겠지만, 지금처럼 아내와 제 삶을 위해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부모보다 부부로서 온전히 사랑을 하며 살고 싶거든요.”

변정정희·이익형씨 부부 같은 ‘자녀 없는 1세대 가구’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4월30일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지난 10년간 무자녀 부부의 특성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청년층 부부 네 쌍 중 한 쌍이 ‘무자녀 부부’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노동패널 1~25차 공개용 자료를 활용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무자녀·유자녀 기혼 부부(25~39세)의 가구 특성과 인적 특성 등을 비교했다. 청년층 기혼 가구에서 무자녀 부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27.1%로, 22.2%였던 2013년과 비교해 4.9%포인트 늘어났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 ‘딩크’ ‘딩콰드’를 주제로 한 바이럴 영상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틱톡 갈무리

그 기간에 보고서 밖, 속칭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라 불리는 무자녀 부부를 둘러싼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다. 먼저 이들의 삶의 양식에 대한 담론이 조금씩 늘어났다. 자발적으로 자녀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언젠가는 아이를 낳을’ 잠재적 유자녀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가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 단계였다. 관련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2009년 미국 작가 로라 스콧이 쓴 〈둘이면 충분해〉(빅북)가 2013년 국내에 번역됐다. 이후 애럴린 휴즈의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처음북스, 2015), 엘런 L. 워커의 〈아이 없는 완전한 삶〉(푸른숲, 2016), 매건 다움의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현암사, 2016) 같은 해외 서적이 연이어 국내에 소개됐다.

 

국내 무자녀 부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던 차에, 2020년 최지은 작가가 무자녀 기혼 여성 18명을 인터뷰한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한겨레출판)를 냈다. 책들은 대개 ‘자발적 무자녀 부부’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부(특히 여성)가 겪은 경험 등에 초점을 맞췄다.

딩콰드·딩키·싱크…‘딩크’의 분화

최근에는 틱톡·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쿨한’ 삶의 양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5월1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딩크’라는 표식을 받아들인 커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빚이 없고’ ‘시간과 자금에 여유가 있어서 부모를 돌볼 수 있는’ 딩크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소개했다. 자녀 없는 삶을 ‘딩크’라는 단어 안에 뭉뚱그려 표현하는 데에도 변화가 생겼다. 다양한 삶의 가치를 담은 신조어가 나왔다. 강아지를 키우는 딩크족을 뜻하는 딩콰드(DINKWAD·Double Income No Kids With a Dog), 홑벌이 무자녀 부부인 싱크(SINK·Single Income No Kids), 맞벌이에 아직 자녀가 없는 부부를 뜻하는 딩키(DINKY·Double Income No Kids Yet) 등이다.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커플들이 반려견과 함께 여행·쇼핑 등을 즐기는 바이럴 콘텐츠 역시 ‘#딩크’ ‘#딩콰드’ 같은 해시태그로 게시되어 수백만 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사회 안에서 ‘아이 없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무자녀 부부’를 자발적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저출산의 주범으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특히 무자녀 부부를 저출산 대책의 직접적 대상으로 상정하는 정부 정책을 통해 강화된다.

최근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출산율 0.7명대라는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2013년 합계출산율이 1.19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0.72명으로 떨어졌다. 세금을 낼 부양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인식되는 국민연금은 노후 대비의 최후 방어선이다. 세금을 낼 ‘신규 국민’이 없어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피할 수 없는 공포가 됐다. 무자녀 부부에 대한 기사에 ‘우리 애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낸 세금으로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자녀 부부를 향해 ‘아이가 주는 행복을 모른다’는 인간적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사회적 책무를 방기한다’는 집단적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무자녀 부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놓고 있다. 정관 복원 시술비 지원부터 산후조리용 한약 할인까지 각종 ‘창의적인’ 지원책을 내놓는가 하면(〈시사IN〉 제851호 ‘지자체의 작은 곳간, 출산 대책이 버겁다’ 기사 참조), 주택청약제도를 개편해 신생아 특별·우선 공급 물량을 풀었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에게 기존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더해 선택지를 늘려 당첨 확률을 높여준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유자녀 가구에 쓰는 만큼 무자녀 부부에게는 일종의 ‘채찍’인 셈이다.

결혼 7년 차 무자녀인 이혜인씨.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그는 강아지 토리와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한다. 이씨는 유아차를 끌고 산책하는 여성이 많은 신도시에서 종종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시사IN 이명익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7년 차 무자녀 기혼 여성 이혜인씨(32)는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을 ‘엉뚱한 프로모션’에 비유했다. 마케터인 그는 잠재적 고객들에게 물건을 팔고자 할 때 기업에서 쓰는 가장 쉬운 전략을 정부가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업체에서 구매한 이력이 없는 잠재 소비자들에게 5000원 할인쿠폰 같은 것을 보내거든요. 정부의 일회성 현금 지원책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100만원 줄 테니까 한번 낳아봐.’ 그런데 아이는 반품도 환불도 안 되는데 그런 홍보가 효과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그 브랜드가 비교우위의 가치가 있어야 계속 사고 싶어지잖아요. 이 전략은 결국 브랜드가 매력이 있어야 통하는 거죠.”

이씨는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아이를 낳기에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편하고 ‘1000억원이 생긴다면 아이를 낳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러면 제가 아이를 낳을 것 같더라고요. 이민 갈 수 있는 돈이잖아요. 저한테 한국은 성실하게 노력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남들 가진 만큼 갖고, 남들 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압박감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 같아요. 이런 삶이 저한테도 버거웠는데 아이는 다르게 살게 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서울에 거주하는 결혼 10년 차 무자녀인 정윤영씨(44) 역시 같은 이유를 들었다. 정씨의 경우, 남편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뜻을 먼저 밝혔지만 본인 역시 동의했다. “입시학원에서 논술 강사를 오래 하면서 다양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지켜봤어요. 한국에서는 부모가 해줘야 하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아이를 1등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완성된 인생을 살게 해줘야 하고요. 그런 삶은 제가 지향하는 게 아닌데도 결국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 것 같더라고요. 남편하고 ‘애가 없으니까 우리가 같이 산다’는 농담도 해요. 양육 과정에서 수많은 결정과 고민이 있었을 텐데 끊임없이 이견이 생겼다면 지금처럼 우리답게 살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이들에게 한국은 ‘한번 살아보니 남에게도 권하고 싶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닌 셈이다.

5월2일 서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주최로 열린 ‘일터가 변해야 출생률도 변한다! 출산·육아 갑질 이제 그만!’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로 돌아가 보자. 보고서에서는 다음의 내용들에 주목한다. 첫째, 무자녀 부부(2022년 기준 34.6%)는 유자녀 부부(2022년 기준 52.0%)보다 자가 비중이 낮다. 둘째,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남편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자녀 부부의 아내는 2022년 기준 71.0%가 직장이 있는 반면(2013년 기준 53.2%), 유자녀 부부의 아내는 40.6%만 직장이 있었다(2013년 기준 36.6%).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에서는 주거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주거 지원 확대와 여성(아내)이 참여하는 노동시장에 따른 맞춤형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소득층도 고소득층도 ‘무자녀가 대세’

하지만 동시에 이 보고서는 아이러니한 결과에도 봉착한다.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저출산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에, 어떤 수준의 주거를 지원한다는 것인지, 어떤 맞춤 노동정책을 펼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경제적 지원이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권익성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가장 흥미롭게 살펴본 결과이기도 했다. 권 연구원의 말이다. “직장이 있는 기혼 여성을 분석했더니, 출산 후에도 고용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전문관리직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었다. 소득수준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여성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비중이 꾸준히 상승했다. 그래서 이젠 모든 소득분위에서 무자녀 부부 비중이 35%에 도달했다(〈그림〉 참조).”

안정적인 경제 여건이 마련되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할 거라는 통념이 빗나간 결과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 신혼부부통계’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발견됐다. 연평균소득 7000만원 이상인 고소득 신혼부부의 무자녀 비율이 그 이하 소득보다 높게 나왔다. 소득이 5000만~7000만원일 경우 유자녀 비율 54.8%, 무자녀 비율 45.2%였지만, 7000만~1억원 구간에서는 유자녀 비율 46.2%, 무자녀 비율 53.8%로 오히려 수치가 역전됐다. 1억원 이상인 경우도 무자녀 비율이 51.6%로, 7000만원 이하 소득인 경우보다 더 높았다. 여성이 학력·경력 등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커짐에 따라 출산에 의한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직업인으로서 내가 만족할 만큼 직무 퍼포먼스를 발휘하고, 실력을 인정받는 게 누구에게나 중요하죠. 그런데 일하며 육아를 하는 여성 동료나 상사를 보면 그게 얼마나 힘든지 보이거든요. ‘커리어를 쌓는 나’와 ‘출산과 육아도 잘 수행하는 나’, 이 둘을 병행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보니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이혜인).”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쓴 최지은 작가는 바로 그런 이유로 보고서에서 제안하는, 일하는 엄마를 위한 ‘맞춤형 노동정책’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 작가는 자신이 만나본 무자녀 기혼 여성들의 경험을 토대로, 모성보호 정책의 일환인 ‘선별적 제도’가 시행되면 오히려 ‘일하는 엄마’가 직장 안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들 일하는데 유자녀 기혼 여성만 오후 5시에 퇴근을 시켜주면 그 사람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1인분의 노동자’가 되지 못한다. 다른 동료들도 자신이 대신 희생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타인의 출산·육아가 자기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되고, 간섭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모두가 5시에 퇴근하는 ‘보편적 정책’을 도입하면 이런 부대낌이 없어진다. 의미 있는 일·가정 양립 정책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자녀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하며 더 나은 삶의 전망을 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인생을 계획한다. 정윤영씨는 “결혼 후 내가 제일 잘한 일은 아이를 갖지 않은 것과 첫째 강아지를 입양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런 제안을 덧붙였다. “만약 출산을 망설이는 무자녀 부부를 설득하고 싶다면, 정부가 저출산 지원책을 제시하거나 노후 빈곤에 대한 두려움만 강조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우선일 거다. 그게 가장 좋은 ‘영업’ 방법 아니겠나.”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5월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17개 시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