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 교의신학!! 변증학!!

총신에서의 '조직신학' 논의 회고와 전망II(1)

하나님아들 2024. 5. 7. 13:50
총신에서의 '조직신학' 논의 회고와 전망II(1)
 
글/ 김광열(총신대학교, 조직신학)의 ?신학지남? 2014년 봄호에 기고논문 요약
 
 
 
 

이 글은 총신의 조직신학에 대한 회고와 전망에 대한 논문으로 김광열 박사가 ?신학지남? 2014년 봄호에 기고한 것을 요약 소개한다. 

지난 2013년『신학지남』겨울호에서는 “총신의 조직신학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 두 사람의 외국인 조직신학자들과 한국이 낳은 한 분의 조직신학자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기간이었으나, 그 비중으로 볼 때, -시간적으로나 분량적으로 - 후자인 박형룡박사의 신학에 의해서 어제와 오늘의 총신의 방향과 틀이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총신의 신학적 전통은 개혁신학의 성경관 위에서 그 기초가 놓여졌으며, 알미니안주의나 제2축복의 교리가 거부되는 개혁주의 구원관이 일관되게 가르쳐져왔음을 확인해보았다.

지난 호에서도 지적한 바와같이, 이제 우리가 21세기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에게 전수된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계승해야하는 과제와 아울러, 동시에 그것이 발전적 계승이 되도록 해야할 과제가 후학들에게 남겨져있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지난 호의 논의들을 기초로 하여 이제까지 확립되어온 총신의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고귀한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방향성과 제언들을 “박형룡 신학의 발전과 계승”이라는 주제 아래 논의해보려 한다.  

III. 21세기를 향한 총신의 조직신학의 방향: “박형룡 신학의 계승과 발전”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총신의 조직신학의 어제와 오늘은 두 사람의 외국인 조직신학자, 이율서과 구례인, 그리고 한국이 낳은 한 분의 조직신학자 박형룡박사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21세기 미래의 한국교회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에게 전수된 박형룡박사의 신학을 계승하되, 그것은 발전적 계승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박형룡박사의 신학에 있어서 제시되는 “청교도적 개혁신학”의 성경적 틀은 보존, 계승되어야 한다할찌라도, 우리는 그 기본적인 개혁신학의 틀 안에서 우리의 논의가 발전적으로 계속되도록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고는 박형룡신학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들 즉, 신학방법론적인 측면과 신학의 내용의 측면으로 나누어 발전적 논의를 시도하려 한다.

A. 신학방법론적 논의

1. 반틸의 개혁주의 변증학적 방법론: 전제주의

총신에서의 변증학적 방법에 대한 이해는,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강조점을 지닌 방법론들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구프린스톤의 전통적인 변증학의 방법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웨스트민스터의 반틸박사에 의해서 제시된 전제주의적 변증학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양자의 방법론적 차이점에 대한 일반적이 오해를 넘어서서, 그 두 가지 방법론들 사이의 연속성이 있음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이 문제가 양자택일의 문제라기 보다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서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개혁주의 안에서의 다양성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방법은 핫지, 워필드 등에 의해서 대표되고, 메이첸에 의해서도 강력하게 추진되어왔던 방법으로서, “성경적 합리주의” 혹은 “증거주의”(Evident-ialism) 라고 불리울 수 있다. 이 전통적이 변증학의 방법이란,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논증은 너무나도 확실하고 설득력이 있는 사안이므로 불신자들은 그 논증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거부할 수 없게된다는 입장 아래서, 다양한 증거와 논증들을 제시하려는 접근방식이다. 따라서, 그러한 변증학의 방법은 기독교의 신학의 내용을 제시하기 전에, 불신자와의 중립적인 공동지반 위에서 변증학을 설정하게 된다.

반면에 후자의 방법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변증학자인 반틸에 의해서 제시된 전제주의적(presuppositional) 변증방법으로서, 전자의 전통적인 변증학의 방법은 비기독교적 전제들에게 도전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전제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게된다고 보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반틸은 알미니안의 방법이나 카톨릭의 변증학적 접근방식들은 모두 불신자의 세계관 속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므로, 결국 그들의 해석원리와 전제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따라서 자연인의 자율적 이성능력을 부분적으로라도 인정하는, 즉 불신자 자신이 모든 사물과 진리척도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에 서게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반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와 같은 관점에서 기존의 구 프린스톤의 변증학적 입장을 따른 이들도 부분적으로라도 불신자의 전제와 연속선상에 서있는 것이므로 일관성이 결여된 입장이 된다고 지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혁신학계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변증학적 방법들 중에서, 총신이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의 접근방식이였다. 평양신학교에서 변중학을 가르쳤고, 평양 숭실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Floyd E. Hamilton교수는 구프린스톤 출신의 선교사였다. 그는 Hodge, Warfield, Machen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경의 권위 및 무오사상을 프린스톤의 변증학의 전통 아래서 맹렬하게 변호하였다.
 
자신의 스승이였던 Warfield에게 헌정하고 있는 The Basis of Christian Faith (1927)와 같은 그의 저서들은 구 프린스톤의 변증학적 방법을 따라 논의한 책들이었다. 그는 당시의 자유주의자들의 문제란 기독교 혹은 성경에 대하여 역사적인 방법들을 정직하게 활용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메이첸의 입장을 따라 역사적 기독교와 성경의 권위를 변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증학적 접근방식은 초기 총신의 변증학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것은 이눌서교수의 뒤를 이었던 구례인교수도 프린스톤의 변증학의 방법을 따랐었다는 사실 외에도, Hamilton선교사는 바로 박형룡박사가 숭실대학에서 교육받을 당시에 그에게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강하게 끼쳤던 분이였으며, 따라서 Hamilton선교사에게 신학적으로 상당히 영향을 입은 박형룡박사도 그의 변증학 저서들 속에서 구프린스톤의 변증학적 방법들을 수용하여 사용한 사실에서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박형룡박사의 변증학적 접근방식을 평가함에 있어서, 물론, 그가 인본주의적 합리주의에 서있지 않았음을 지적해야할 뿐만 아니라, 구프린스톤의 변증학적 방법도 그대로 답습하지만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워필드의 변증학에 대한 설명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면서도, 워필드가 ‘증거와 변증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으며 따라서 변증학을 모든 신학과목이 제시되기 전에 제시되도록 설명했던 것은, 단지 “이성의 고위를 단언한”것일 뿐이며, 결코 이성의 “수위를 단언한”것은 아님을 애써서 지적했다.
 
워필드가 기독교의 진리성을 위한 증거는 객관적으로 견실하며, 따라서 신앙은 증거에 기초한 합리적 확신이라고 함으로서 이성의 수위를 단언한 것 같으나, 그는 동시에 “아무리 증거가 견실할지라도 죄로 죽은 영혼은 그것에 응합하지 못한다는 것을”말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했음을 지적했다.

박형룡박사는 “이성의 종속성”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특별은사이나, 이성이란 자연적인 인간의 작용이므로, 이성의 작용이 아무리 고위에 있더라도, 신앙에 대해서는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더욱이 이성은 윤리적으로도 타락의 영향 아래있으므로, 제대로 그 기능을 감당해낼 수 없음을 분명히 하여, 이성에 끼쳐진 죄의 영향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박형룡박사의 언급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구프린스톤의 변증학 방법인 성경적 합리주의 혹은 증거주의를 따랐다는 사실 때문에, 동시에 그가 기독교의 진리나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역사적, 합리적 논증과 증거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해석 혹은 영적 수용이나 영적 태도변화까지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평가는 메이첸에 대한 Standford Reid의 평가와도 맥을 같이한다. 박형룡박사가 프린스톤에서 수학할 당시, 그의 스승으로서 그에게 구프린스톤의 신학전통을 심어주었던 메이첸교수도 역시 구프린스톤의 변증학의 입장에 서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적 증거주의가 반틸의 전제주의적 입장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거부하도록 한 것은 아니였다. 그가 반틸처럼 전제론의 문제들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반틸의 전제주의를 허용하는 입장에서 활동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메이첸이 역사가적 측면에서 자유주의적 현대주의 사상을 대항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려 하였다면, 그가 볼 때, 반틸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같은 작업을 수행하려한 것임을 깨달았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첸은 믿음의 역사적 기초를 위한 과학적 증거들의 확보에 능숙하여, 기독교 신앙이란 역사적 지식에 확고히 기초한 신앙임을 명확히 제시하려는 시도를 한 개혁주의자였다면, 반틸은 역사적 지식이란 철학적 전제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즉, 우리의 논의에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철학적 전제를 배제하고, 단지 역사적 사실들(facts)만을 언급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Greg L. Bahnsen는, 메이첸이 구프린스톤의 전통에 서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전제주의적 통찰력의 중요성과 그 개혁신학적 일치성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Machen, Van Til, and the Apologetical Tradition of the OPC”라는 논문 속에서, 그는 결국 OPC의 전통 안에는 두 개의 상충되는 변증학적 체계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 개의 서로 보완적인 강조점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통일된 개념이 있을 뿐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하나는 메이첸이 추구했던 것으로서, 기독교의 진리란 역사적, 과학적 논의와 연구가 정직하게 수행될 때 이르게되는 확실한 결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틸이 추구했던 것으로서, 기독교의 진리만이 모든 학문 연구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술과 해석을 위한 철학적 전제를 제공해준 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그 두 개의 강조점은 상호보완적인데, 후자의 강조 때문에 전자의 작업은 의미를 지니게되고, 확신있게 수행될 수 있으며, 전자의 작업이 일관성있고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는 후자의 논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사실들에 대한 고려없이 기독교의 진리가 변호될 수는 없는 것이나, 동시에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의미있는 해석이 주어지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전제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이제 21세기를 향한 총신의 변증학적 논의의 방향은, 메이첸이 감지했고 반틸이 수행했던 전제주의적 접근방식에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배타적인 접근방식이 아니요, 개혁신학 안에서 서로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방법들로서, 후자의 접근방법은 구프린스톤의 전통적인 사실(facts) 중심의 증거들과 논의들의 기초를 확고하게 하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뿌리없는 나무”가 되게하는 과정이 아니라, 총신의 변증학적 뿌리를 개혁신학 안에서 더욱 확고하게 내리도록하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속)

김광열 교수 : 총신대학교(B.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A.R.),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Div),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