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갈라디아서2장20절 (죽는 길 사는 길)

하나님아들 2024. 4. 18. 22:43

    갈라디아서2장20절 (죽는 길 사는 길) 08.1.27       

 

Ⅰ. 우리가 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렇게 권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더욱 강조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까지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가요?

Ⅱ.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1.이전의 나는 확실히 죽었음 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사람이 삽니다. 이전의 나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면 자꾸 강팍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힘들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도 참 힘들어 하십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잘나가고 팔팔할 때는 자신의 출생을 의지하고 가문을 의지하고 학벌과 학파와 사회적인 신분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한답시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적대하는 행위로 나타났고, 교회를 핍박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가 회심한 이후로는 절대로 자신과 자신에 관한 것을 위지하지 않으려고 굳게 다짐하였던 모양입니다(빌3:1-10). 자신과 자신에게 있는 그 어떤 것을 의지하려고 하면 신앙인은 필경 쓰디쓴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예)우리의 몸에는 하루에도 500-1000개정도의 암세포가 머리 눈 코 팔다리 장기 여러 조직 속에서 분산되어 생깁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암병에 안걸리는 경우는 티 임파구 때문입니다. 우리의 피속에는 적혈구 백혈구가 있는데 적혈구는 신체부위에 영양을 공급하고 백혈구는 병균을 맞아 싸우는 군대와도 같습니다. 그 백혈구 중에는 5분 대기조 같은 티 임파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병균이 침입했을 때 제일 먼저 출동하여 초기에 진압하는 특공대와도 흡사하지요. 언제나 즐겁게 생활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여기 티 임파구는 엄청나게 강해집니다. 그래서 암의 분자가 침입해도 초전 박살 내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몸의 사람이 늙거나 약하여 면역력이 떨어지면 암세포들은 자신들의 성을 견고하게 쌓아갑니다. 이게 딱딱한 세포 암덩어리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옛사람의 방식대로만 살려고 하면 이런 것이 생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실패는 오래전에 빠져나온 애굽을 못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의 추억 사고방식, 버릇들을 홍해바다에 수장시키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된 하나님의 자유인임을 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대로는 광야를 가든 가나안을 가든 어딜가도 애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들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는 너희가 오늘날 그이 음성을 듣거든 이스라엘에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희 마음을 강팍케하지 말찌니 그러십니다.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로 결심하였다’거나 ‘내가 주를 따르기로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지않습니다. 그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주님의 사망을 자기의 죽음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끝장을 보았다는 것입니다.그는 다시는 옛사람을 따라 살지 않으려고 신앙의지를 굳혔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옛사람의 방식에 확실한 사망진단을 내리고,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한 고백을 우리 모두의 고백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게 하기 위하여

 

  2.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처럼 새 주인을 모시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더니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자신과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새 주인으로 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가셔서 여러분 마음과 생각과 계획을 다스리시고 나의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내가 나의 실패와 잘못과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적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받으셔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분은 새 주인이 되셔서 새롭게 여러분의 인생을 주도하시고 운영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안의 죄를 말갛게 씻고 구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 여러분과 나의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의 가치관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 안에 주거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이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지 못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타협함으로 우리자신이 내 마음을 불법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인생이 자주 부도나고 파산하고 패업하고 실패하고, 영적인 신불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지나온 자취를 살펴보면, 걸음마다 자욱마다 되려다만 험악한 모습들, 인생의 잡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을 믿고도 너무 오랜세월을 자꾸만 내 뜻대로 일을 결정하고 저질러버렸기 때문에 부끄러운 말도 안 돼는 잡품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내가 주인 노릇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기를 원합니다. 가장 큰 짐은 나 자신, 自我라는 짐입니다. 이 나라는 짐은 얼마나 포기하기 어려운지 아십니까?

  예)필리핀에서는 원숭이를 재미있는 방법으로 잡는다고 합니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서 야자열매=코코낫을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만큼만 구멍을 뚫어 놓고 그 안에다 쌀을 넣어서 원숭이가 있는 높은 나무 밑에 코코낫을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내려와서 그 안에다 손을 집어넣고 쌀을 움켜쥘 수 있는 만큼 꽉 움켜쥐고는 손을 빼려고 한답니다.

하지만 원숭이를 잡기위해 뚫었던 구멍이 움켜쥔 쌀 때문에 손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코코낫을 쥐고 나무에 깨지라고 땅땅 소리가 나게 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원주민이 천천히 걸어오면 원숭이가 급해 더 빨리 칩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숭이는 나무를 치고 있다가 결국에는 잡히고 맙니다.

  이 원숭이 예화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포부, 열망, 소원을 꼭 쥐고 포기하지 못하여 밤 세며 고민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이게 우리의 죽어지지 못한 自我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내주하시는 기적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를 경영하마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게 하기 위하여, 첫째, 내가 죽어야 하고 ,둘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실감있게 다가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줍니다. 사랑하면 나를 다 바칠 수 있습니다. 아들 희생한 그 사랑에 나를 맡겨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깨닫는 것만큼 나의 사랑을, 내 삶을 그분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적게 느끼면 적게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없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부르짖는 외침도 외면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예수께서 대신 지시고 누명을 쓰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대신 해서 누군가 죽어야 했습니다. 내가 죄의 길에서 해방하고 값을 치루어야 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부르짖음도 철저히 외면하시고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누구에게 오해를 받으면 이를 갈고 화를 내고, 싸움합니다. 그런데 나의 죽을 죄를 그분이 대신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는 대속의 은총을 맛을 제대로 보고나면 사람은 확실히 깨어지게 됩니다. 찬송 깨져야 하리, 부숴져야 하리,,.

   그 사랑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그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을 희생하신 그 사랑에 우리가 깨어있을 때는 내 뜻을 주장하지 않고 날 사랑하시는 그분에게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이것은 희생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희생하지 않으면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를 알 수 있는 체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성도여러분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십자가의 사랑의 희생만큼은 꼭 체험하실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때문에 치룬 하나님의 희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내 뜻을, 내 삶을, 내 인생을 내가 경영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줄줄이 흐르는 보혈의 공로로, 그분의 지극하신 사랑과 역사하심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덮어버렸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가운데 살아있는 한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Ⅲ.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다 주셨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은 부활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는 분입니다. 내 신뢰의 대상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을 쓰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불가능이 있습니까? 그분에게 신실하지 못한 것이나 불리한 것이 있을까요? 그분에게 지혜가 부족할까요? 그분이 거짓말을 하실까요? 여러분이 주님을 의지하는데 그가 피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재산을, 가정을, 인생을, 문제를 그분께 맡길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것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나의 의지가 되시고 반석이 되시며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삶의 경영자가 되시고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인생의 소원을 맡기고 내가 주인이 아니고, 그분이 주인인 것을 고백하십시오. 모든 성도님들에게 그리스도의 크신 능력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