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섬김 관련 예화

하나님아들 2023. 12. 23. 18:55

섬김 관련 예화          

거룩한 사역

그 어떤 기도보다도 보편적이고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문에서 하는 ‘손님 대접’이라는 이름의 기도이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기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영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대문을 그저 없어서는 안 되는 보호 수단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대문을 거룩한 장소요 신성한 성소로 생각했다.

요즘 자기 집의 문간을 성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무슨 거룩한 일이니 기도니 하고 생각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친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자기가 다른 사람 집에 초대를 받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거룩한 일로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 전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히브리서 기자도 초대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였던 손님 대접에 관한 권면을 잊지 않았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손님 대접의 성례는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부터 회복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매일의 만남과 출입과 식사와 활동 속에서 서로를 존경과 진실과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예수님

작년에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헨리 누엔 박사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박약자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하는 데이 브레이크 복지원 직원으로 들어가 신학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신학자 중 하나이며.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학자입니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박약자 시설에 가서 정박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행동 교정 지도를 하는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 고생은 물론이지만.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낮은 보수에 만족했습니다. 모두들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몇 개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최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써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누엔 박사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 추구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신동이라 추앙되고 하버드 교수에까지 올라왔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 사람의 인기를 얻었다. 나는 지금까지 오직 성공을 향해. 즉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추구 해왔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박약아 아담군을 만났을 때. 이런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 예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안보였지만. 내리막길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누엔 박사처럼 사람은 성공했을 때 남을 섬기는 자리로 낮아질 수 있을 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겨라

시내에 있는 큰 수도원에 빨래를 널 때면 항상 찬송을 부르는 수녀가 있었다.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까지 덩달아 즐거워질 정도였다. 한 어린 수련 수녀가, 수도원에서 몇 주를 지낸 후 이 늙은 수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어떻게 그녀가 항상 즐거워하는지를 물었다. 수련 수녀의 질문에 늙은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께서 오래 전에 이곳을 섬기도록 부르셨단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빨래를 너는 것이 특권 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어린 수녀는 그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지만, 그 모든 이유를 알고 나서 더욱 큰 은혜를 받았다. 이 늙은 수녀는 그곳 수도원의 수녀장을 역임했었는데 나이가 너무 들어서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었다. 조금 작은 수도원에서 그 일을 계속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녀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현재 머물고 있는 그곳에 부르셨다고 믿었다. 그 당시 남아있는 자리라고는 세탁하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기꺼이 그 일을 떠맡았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전을 받았다. 그 수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아서, 그 부르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섬기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은 그녀가 계속해서 섬길 수 있는 천한 일을 선택했을 때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수녀는 자신의 참된 영성이 과거에 그녀가 가졌던 어떤 직함에 있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려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먼지 털기

지금까지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법에 의하여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생겨진 이야기입니다. 흑인 교회인 성 시온 교회에서 수난일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이 예배 때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자기가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는 예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예배에 백인 판사님이 나타난 것입니다. 존경을 받는 판사로서 대법원장에 내정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올리버 판사입니다. 시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세족 예식의 광고를 듣고 그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의 흑인 여종 마르다 포트윈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내 아들 딸들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내정되었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된 것은 물론 판사직도 박탈되었습니다. 시온 교회 목사가 올리버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베푸는 삶

오래 전 나는 외국 사람들의 생활 풍습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외국 선교사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국에서 그 선교사를 크게 대접한 일이 있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식탁에 가서 앉아 보니 닭다리 하나로 된 요리가 고작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의 대접과 외국 사람의 대접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인만큼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자질을 갖춘 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복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크게 부강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데 존재 근본을 두신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주 안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주면서 살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인정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베토벤 시대에 살았던 한 젊은 작곡가가 이렇게 불평을 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세상 사람들은 내 작품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 책들은 팔리지 않았고 베토벤 외에는 누구 한 사람도 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거나 격려의 말을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필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실망한 작곡가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진가를 인정해 준 사람은 베토벤 이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토벤이 인정해 준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베토벤만이 인정해 준 사실은 아 자라나는 젊은 음악가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준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이 그 젊은 작곡가의 음악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 섬김의 행위도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할까,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할까, 얼마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함의 기준에 의해서 평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하듯 우리가 맡은 일을 합시다.

가장 큰 영광과, 모든 것 중에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서로 존경하라

한 훌륭한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범한 피아니스트였는데. 다른 동료 연주자들이 훌륭하게 연주하도록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특별히 그들과 함께할 때면 그러합니다.

음악가의 자세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보다 남을 존경하는 마음 때문에 그는 칭찬을 받습니다. 항상 그의 연주 소리가 성악가의 목소리와 경쟁하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그의 음악은 다른 사람의 음악적 가치를 떨어뜨리기 보는 오히려 더 높여줍니다. 청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는 성악가를 도와주고 실수를 덮어줍니다.

자기와 함께 동반한 성악가가 일을 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에 그는 항상 기뻐하고 만족스러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신자들이 잘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고. 존경을 받고. 성공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은 활발히 기능을 발휘하고 성숙하며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른 사람의 존경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감동적인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저녁 만찬 때에.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와 같이“서로 존경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오레곤의 포틀랜드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맡은 대학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그는 명석했고 항상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머리카락은 늘 헝클어져 있었으며 한 번도 그가 신발을 신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진눈깨비가 내리건 빌은 언제나 맨발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때 그 대학 건너편에 위치한 잘 치장된 중산층 교회에서는 대학생 사역을 좀 더 개발하고자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대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빌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기로 했다. 그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물론 맨발로 교회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약간 언짢아하는 기색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빌은 자리를 찾아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그 날 교회에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아 그가 앞자리까지 갔으나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양탄자 바닥에 그냥 웅크리고 앉았다. 이것이 대학생 모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지만 교회의 회중에게는 아마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예배당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이가 지긋한 한 남자가 통로를 지나 그 학생에게 걸어갔다. 회중은 모두 조용해졌고 숨을 죽이면서 그를 주시했다. 그는 빌에게 다가가 약간 힘들게 몸을 구부리더니 빌 옆 양탄자에 앉았다. 그 날 그 남자와 빌은 함께 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회중 가운데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신사야말로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빌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따뜻이 맞아 준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주일날 신사가 취한 태도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몰랐던 사람은 바로 빌 뿐이었다. 그러나 은혜는 늘 그런 식으로, 받는 사람은 그 선물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한 채 주어진다.

 

섬기는 공동체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많이 들었고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공동체를 위한 삶의 태도는 전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교회 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봉사하는 부서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학교 유년부, 중등부 등이 있는데 대개 어느 부서가 편한가 한번 생각한 다음 봉사할 부서를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봉사가 정말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지 주님을 위한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봉사는 잘못된 신앙의 기준입니다.

여전도회 총회에서 돕고 있는 피지의 평신도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부인되는 유정옥 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분을 통해서 제자 훈련원에 오는 사람이 많아 어떻게 해서 그런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그분은 휴가 때나 공휴일에 일직은 다 맡아서 하고 퇴근하고 나면 나머지 구질구질한 일은 그분이 다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성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야말로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직장 동료를 잘 섬겨서 여러분의 삶을 보고 예수를 알게 되어 교회에 나온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정말 주님의 제자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처럼 변하면 자연히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성공도 진급도 다 좋지만, 우리가 섬기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신앙은 가룟 유다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기쁨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영적 기쁨이 넘치고 있는 자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를 깊이 관찰해 보면 우리는 그가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그런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비밀은 남을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행복의 길이 자기의 가치관과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여인은 우수한 대학교의 국문과를 졸업한 분이었는데. 죄 없이 버려진 정신박약아들을 위하여 투신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인 남편을 만나 그늘 속에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함께 몸 바치기로 결심하고서 그 불행한 아이들을 모아들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애초부터 자기들의 아기는 갖지 말자고 합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세상에 버려진 남의 자식들을 그것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자식들을 그러기에 나중에 효도도 기대할 수 없는 자식들을 10여 명이나 자기들 호적에 올렸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고아가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뒤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우스꽝스러워도 우리에겐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몇 사람들을 보아서라도 이 땅에다 천국을 세우실 계획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런 일은 분명히 몸을 피곤케 만들고 때로는 지치게도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깊은 내적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자만이 진정 자기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알고 보면 서로 사랑하면서 섬기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섬김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다. 그러므로 위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성경 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다. 종이 되는 길이 으뜸이 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섬김의 결과

윈스턴 처칠이 어렸을 때 하루는 템즈 강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때마침 그 곁을 지나가고 있던 가난한 소년 플레밍이 위험을 무릅쓰고 강물 속에 뛰어들어 처칠을 구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큰 봉사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처칠의 할아버지는 귀염둥이 손자 처칠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 플레밍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게 되었습니다. 플레밍은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영국에서는 의학을 공부하는데 학비가 엄청나게 들므로 보통 서민가정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명문 귀족인 처칠의 할아버지는 플레밍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학비와 기숙사 비를 다 지급하여 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봉사입니까.

열심히 의학을 공부한 플레밍은 크게 성공하여 페니실린을 발명해내어 노벨상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손자 윈스턴 처칠은 커서 군인이 되어 아프리카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1.2..차 세계대전이었으므로 교통과 통신이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날 만에 들려온 소식으로는 윈스턴 처칠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폐결핵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플레밍은 자기가 발명한 페니실린을 들고 비행기로 아프리카에 달려가 사경을 헤매는 처질을 구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목숨을 되찾은 처칠은 수십 년 후 제..1.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독재자 히틀러의 손에서 영국을 구해내고. 전 세계 약소민족에게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서로 섬겨주는 봉사라는 것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며. 또 좋은 사회를 건설해내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섬김의 기쁨

헬렌 플린트는 성경대학 교사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기 생활을 학생들을 섬기는 데 헌신했다. 그 부부의 집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녀는 자기 집을 찾아오는 모든 학생들을 ‘섬길’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한번 오게 되면 십여 명씩 몰려드는 적이 많았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면 와플(버터 케익의 일종)로 아침 식사를 하러 오곤 했다. 그 집을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개가 헬렌의 부엌을 이용했고 썼던 그릇들을 제자리에 두는 학생은 거의 드물었다. 헬렌은 언제나 기꺼이 그 남은 그릇들을 치웠다. 그녀는 매월 생일 파티를 열고 학생들을 초대했는데 그 학교에서 이 초대를 받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거의 매일 누군가는 그 집 부엌을 빌렸고, 그녀의 귀 기울여 주는 사랑에 기댔으며, 그녀의 열린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헬렌은 그들의 좌절과 고통뿐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나누었다. 그녀는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그리고 경건한 교훈들로 상담해 주곤 했다. 종종 피곤함을 느꼈을 것이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떠올릴 때 언제나 환한 미소를 기억할 것이다.

헬렌이 해왔던 섬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그녀가 느끼는 만족과 기쁨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그런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섬김의 자세

밀턴이 그의 청년기 시절 6년가량을 중서부의 한 작은 도시에서 보냈었는데, 거기서 그는 정신 지체를 갖고 있는 마이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시기는 마이런에게 있어 무척이나도 우울해 보이는 시기였고 집 이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거기서 자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도시 근교에서 할 수 있는 특이한 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식물을 키우는 재능이 유달리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일하는 곳은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잔디 깎기, 우거진 관목, 그리고 울타리를 치는 것과 꽃을 키우는 일 등은 세심한 주의와 기술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것들이다. 마이런은 그런 일들을 자원해서 했다.

그는 과부나 스스로 일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잔디를 깎고 잎사귀를 긁어내며, 꽃들을 심곤 했는데 그가 아니었더라면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러한 곳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기름 통"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항상 그의 뒷주머니에 불을 피울 수 있는 조그마한 기름통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삐걱거리는 문이나 돌쩌귀, 그리고 대문 같은 곳이 있으면 마이런의 기름통을 "공짜"로 발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일에는 반드시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기 때문에 그는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꼬마 아이들은 그를 놀려대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주 낙천적이며 유머기질이 뛰어났고 아주 침착했기 때문에 아무도 마이런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마이런은 밀턴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곳을 떠난 지 몇 년 후에 죽고 말았다.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밀턴은 그의 장례식을 보러 갔다. 그는 자기가 보았던 것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은 누구나 장례식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므로 그 장례식에는 다른 사람의 배나 되는 인원이 참석했다. 왜냐하면 밀턴처럼 아주 먼 거리에서 그 곳에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마이런은 그 작은 도시에서 정말로 중요한 생활을 해 왔던 것이다. 아니, 그는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존경을 받지도 않았다. 로빈 리치는 그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였고 낙관론주의자였으며.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이었고" 예수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였다.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섬김의 정신덕분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되었다.

 

섬김의 향기

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그녀의 인격에 순결한 감동을 받습니다. 특별히 그녀가 질투 없이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마침 테레사는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분이 그녀 곁에 다가서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때 테레사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섬김의 지혜를 터득한. 섬김의 자부심을 터득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스타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섬기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서는 날 주님은 “네가 몇 사람을 밟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는 얼마나 어깨에 폼을 재면서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물으실 질문을 생각하십시오. “너는 몇 사람을 섬겼느냐.” 당신의 삶은 얼마나 이 섬김의 향기와 섬김의 자질로 가득차 있습니까?

 

성공은 섬김이다

1878년 윌리암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한 남자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입대하기 위해서 건너왔다. 사무엘 브렝글은 구세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훌륭한 목사의 직분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부스 사령관은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부스는 그에게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브렝글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에게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를 닦는 일을 시켰다. 이에 실망한 브렝글은 “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나의 꿈을 좇아왔단 말인가.”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발을 씻으려고 엎드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주님. 그는 속삭였다. .당신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저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사무엘 로간 브렝글이 기꺼이 그리고 사랑스럽게 그들의 더러운 군화를 닦으려고 했을 때 그는 청지기의 사명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경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처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것은 가치 있게 경험한 교훈이었다. 브렝글은 의미 깊은 청지기의 직분을 경험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감독관이 되었다.

 

어떤 인생철학

“여기.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잘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잠들었다.” 이것은 억만장자가 된 세계적인 실업가 카네기 .1.1835.1919 텝묘비명입니다. 집이 가난하여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성장한 카네기는 묘비명처럼 남을 잘 섬김으로 성공한 모범적인 사람입니다. 미국 사람으로. 한 주일 동안 일하고 겨우 2불 40전을 받던 공장 직공으로부터 시작하여 후에 억만장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고생하며 공부하였기 때문에 가난하여 공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길을 많이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짓고 그늘진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며 문화 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에 많은 돈을 희사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잘 벌기도 했지만 그 돈을 선한 사업에 아낌없이 잘 썼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찾아가서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하며 무슨 일이나 나보다 능력이 많은 사람을 후하게 대접하여 열심히 그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카네기는 사람대접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섬기기를 힘쓴 사람입니다. 이 아름다운 덕목이 그의 경영철학이자 인생철학이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

매년 방학이 되면 정신여고 틴 라이프 중창단이 미주 지역을 순회하며 연주 활동을 벌이곤 했습니다. 오래 전 인솔자와 함께 중창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고등학교. 교회. 대학들을 순방하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단원은 모두 15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차를 타야 할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차 있는 데로 뛰어가 서로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다투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날 동행했던 장로님 한 분이 지켜보고 있다가 인솔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 학생들은 차를 탈 때마다 앞을 다투어 뛰어갑니까.” 인솔자의 대답은 자동차의 좌석이 열두 좌석밖에 안 되기 때문에 세 명은 차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서로 먼저 타서 엎드리기 위해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장로님이 직접 차 있는 데로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뛰어간 두 여학생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날 그 장로님은 정신여고의 중창단을 위하여 15인승 봉고차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그것은 엎드리고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자신이 지닌 위치나 소유나 입장을 내세워 엎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고넬료보다 더 위대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고 엎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제자가 되기 어렵다

"동냥그릇"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나온다.

한 젊은이가 전부터 소망하던 대로 스승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청했다.

"아직 일러."

스승이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끈질기게 달라붙었고, 마침내 스승이 말했다.

"그럼 좋아. 가르쳐 주리라. 난 여행을 떠나려 하네. 나와 함께 가겠는가?"

제자는 뛸 듯이 기뻤다.

"우리는 이제 함께 여행하는 거야. 그러므로 한 사람은 리더 해야 하고, 한 사람은 거기에 따라야 할 걸세.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스승이 말했다.

"당연히 제가 따라야죠. 스승님께서 리더 하십시오."

"그대가 따를 줄만 안다면야."

그들은 길을 떠났다. 사막에서 밤을 지내는데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스승이 외투를 벗어 제자에게 덮어 주었다.

"이건 제가 할 일입니다."

제자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식으로 하라는 거야. 가만있어라."

스승이 말했다.

날이 밝자 제자가 말했다.

"날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리더를 할 테니 스승께서 따르십시오."

스승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나뭇가지를 주워와야겠습니다. 불을 피워야죠."

제자가 말했다.

"그건 그대가 할 일이 아니야. 내가 주워오겠다."

스승이 말했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계세요. 제가 주워오겠습니다. 명령입니다.

제가 리더니까요."

"아니야. 그건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따르는 자가 가만히 앉아 리더의 봉사를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제자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주는 사랑

휘셔 씨는 크리스천 건축사인데 그는 ..1.2..차 대전 시에 자기가 겪은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휘셔 씨는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함께 죽음의 집단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점점 기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던 한 사람이 자기가 먹고 있는 딱딱한 빵조각과 휘셔 씨가 마실 스프와 바꾸어 먹자고 항상 애걸했던 일이 있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작은 빵조각보다는 차가워도 스프가 먹기에도 좋고 배도 부르게 하기 때문에. 휘셔씨도 스프를 원했으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사람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휘셔 씨는 자기의 스프를 그에게 주고 자기는 늘 그의 작은 빵조각을 받아먹었다고 했다.

드디어 미국이 진주해 들어와서 휘셔 씨는 집단 수용소에서 해방되고 미군의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받게 되었다. 진단 중에 휘셔 씨는 자기가 스프와 빵조각을 바꾸어 먹은 이야기를 의사에게 했다. 그러자 의사가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을 했다.

“당신은 그 사랑을 베푼 일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날 이렇게 살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당신이 스프를 먹지 않고 그 빵조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사의 결과 그 스프는 영양분이라고는 거의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빵조각을 먹었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는 영양을 지탱했던 것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섬김의 자세)

카터 대통령은 어렸을 때 성장 과정에 있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후에 자신의 은사를 살펴보니까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일학교 교사를 일찍이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어김없이 자신의 고향 조지아 주에 있는 작은 자기의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 교회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요즘 그 교회가 카터 대통령 때문에 많이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관광객들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광객들은 카터 대통령이 주일학교를 가르치는 관경을 뒤에서 구경한 뒤, 구경이 끝나고 나면 으레 빠지지 않는 행사 중의 하나가 카터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계속 사진을 찍으려면 힘들지 않느냐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그는 “나는 기쁨으로 사진을 찍는다.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쁘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 계속해서 찍히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겠다고 하는 이것이 진정 섬김의 자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은퇴한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바로 카터 대통령입니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분이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나기만 하면 왜 사람들이 카터를 찾습니까? 다른 것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가 믿어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타임지가 대통령을 그만두고 난 뒤에 카터의 활동을 소개한 문구 가운데 아주 인상적인 대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했던 유일한 대통령(the only President who used White House as the stepping stone)

이 말은 어마어마한 말입니다. 백악관이 그의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권력이 목표가 아니고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 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을 위해서 자기의 한평생의 삶을 드려 복음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이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먼 훗날 내가 떠나간 삶의 자리를 지켜보며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 아빠 엄마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시다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참된 섬김

희랍의 한 조각가가 어떤 동상 하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동상은 성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절대로 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세워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조각가가 참으로 큰 수고와 애쓰는 것을 본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자네 무엇 때문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나? 아무도 자네가 만든 동상을 보지 못할 텐데 말이야.” 그러자 조각가가.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신들이 이 동상을 볼테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십시오. 칭찬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보시고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정해진 시각에 어떤 큰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간에 펌프질을 할 사람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 유명한 작곡가가 자신이 그 펌프질을 하겠노라고 자원했습니다. 왜 그런 보잘 것 없고 천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작곡가는,

“나는 음악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를 섬기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 것 없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을 베푸는 삶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이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항상 남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뿌리 깊은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국민의 신망을 받았던 대통령 중의 한 분인 해리 트루만과 함께 백악관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이 백악관을 나서려 할 때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 특유의 미주리 사투리로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갖고 있던 수첩의 종이를 찢어 그에게 내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통령 각하. 내게는 어린 딸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애는 대통령을 아주 좋아하지요. 만약 이 종이에다 사인을 해주신다면 그 애는 평생 동안 고마워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그 종이를 받더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씩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접견실에 남겨두고는. 또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고위 인사들을 무시하고는 서랍을 꺼내보면서 혼잣말로 “특별히 만든 백악관용 카드가 어디 있더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대통령이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마침내 카드를 찾아낸 그는 거기다 이렇게 적어주었다.

“마가렛 필에게. 친구 해리 트루만.” 나는 대통령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하지요.” 그러더니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나에게도 마가렛이라는 딸이 있어요.” 그는 자기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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