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감사 예화 50편 모음

하나님아들 2023. 12. 23. 18:53
감사 예화 50편 모음           


1. 말끝마다 감사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땡큐'(Thank)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다보니, 과보호 속에서 유아독존, 자기중심, 이기심으로 살아온 아이들이 도무지 '감사'라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감사 할 줄 모르는가 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면 '유 땡큐' 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감사를 할 줄 모르니까 외국인들이 '너 대신 감사'하고 감사를 대신 해준다는 것이지요. 흐미 부끄럽고 챙피해라...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원래 기독교인들은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누구 탓하기 전에 기독교인들부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하는 말을 입에 답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용우




2.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유쾌해집니다.
감사하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흘러 들어옵니다.
감사하면 적절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감사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감사하면 돈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랑과 능력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건강해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무조건 좋습니다. 좋아요. ⓒ최용우




3.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피고 새 울어야 될 3월에 한파가 몰아치고 흰 눈이 펑펑 오는 날 오돌 오돌 떨면서 학교에 갔다 온 밝은이가 저녁식탁에서 대표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밝은이의 기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이 꼭 들어갑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추우면 추워서 좋고, 더우면 더워서 좋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짧은 삶을 살면서 이왕이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돈 타령은 그만 하십시오. 행복하게 사는데 돈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돈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밝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밝은 빛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고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행복한 삶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요. ⓒ최용우




4. 감사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편히 잘 수 있는 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물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질이 없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사가 없는 부부들을 생각합니다.
지진 없는 나라에 살아서 감사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나라를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깨진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믿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감사는 언제나 생각과 짝하여 함께 서 있을 때 마치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습니다. ⓒ최용우




5 .감사합니다.


공자님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
둘째: 윗사람을 헐뜯는 자 앞에서는 맞장구치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자
인데 그중에서 가장 싫은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 하고 했습니다.
`감사'는 기계와 같아서 자주 하면 할수록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에 기름을 치듯 오늘부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20번 이상 해 보십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될 것 입니다.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에서.. 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최용우




6.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다. 귀가 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7. 밀턴경의 감사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수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김영진, 뛰는 자가 아름답다. P.278




8.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9. 헬렌켈러의 감사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책을 보면 헬렌켈러의 이러한 글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10. 어떤 부자(父子)의 이야기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 속의 길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참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이 말에 아버지는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참 감사할 일이구나. 그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우리는 이 부자의 대화를 통해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이 시대를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시대이다.


십대 성 매매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용돈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그런 짓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좋은 옷, 좋은 상품 사고 싶어서란다. 그 아이들의 입에는 도무지 감사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기야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부터 회복하면 어떨까 싶다. 소아 암 병동에 심방 갔다가 돌아오면서 요즘은 학군 정도가 아니라 학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다 빠져버린 핼쑥한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오늘도 두 다리 멀쩡하게 딛고 씩씩하게 돌아오는 우리아이를 바라보면서 감사하지 않는가?
다녀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간 남편이 매일 수십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이 감사하지 않는가?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을 찐데, 행복하자고 사는 것인데 꼭 그렇게까지 악을 쓰며 살아야만 하는가 싶다.
작은 것에 감사, 있는 것에 감사. 이것이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




11. 강도의 감사


방정환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그가 밤이 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이 열리더니 복면을 한 강도가 불쑥 들어와 시퍼런 칼을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꼼짝 말고 손들어!”
그러자 방 선생이 말했습니다.
“아니, 꼼짝 않고 어떻게 손을 든단 말이요?”
강도가 주춤하며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럼, 손들고 꼼짝 말어. 그리고 더 이상 잔소리 말고 돈이나 내놔.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방 선생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고 390원을 내놓았습니다. 옛날 돈 390원이면 큰돈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이것이 전부이니 가지고 가시오.”
주인이 태연하게 돈을 주자 도둑이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얼른 도망가려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방 선생이 소리를 쳤습니다.
“여보시오. 돈을 주었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것 아니오?”
깜짝 놀란 이 강도가 가슴을 쓰다듬으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 ○○야!”
얼마 후 날이 밝았습니다.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니까 강도와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간밤에 많이 놀라셨지요? 이 사람이 선생님 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하기에 확인을 하러 왔습니다. 맞지요?”
이 때 방 선생이 차분히 말했습니다.
“아, 이 사람 말이오? 어젯밤에 우리 집에 왔었죠. 그런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기에 사정이 딱해 보여서 내가 390원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갔는데요.”
순경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분명히 선생님 댁에서 돈을 훔쳤다고 자백을 했는데요?”하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래도 방 선생은 태연히 말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 그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내가 돈을 주니까 인사까지 하지 않았소? 돈을 훔쳐 가는 도둑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순경은 할 수 없이 강도를 풀어 주었습니다. 순경이 돌아가자 강도는 방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세상에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방 선생은 강도의 등을 두드리면서 “일어나시오. 사람이 어렵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시오”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방 선생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평생 선생님을 섬기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 후 강도는 죽을 때까지 방정환 선생 곁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12. 선비의 감사


김동인의 사초집을 보면 고려 말년인 1430년 경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관이란 사람은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던지 우의정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 집 하나도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제때 지붕을 덮지 못하여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뚫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다. 5,6월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 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빗방울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 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 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유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오.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불행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끝내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S. 존슨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높은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하였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하여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영국의 역사가이며 평론가인 칼라일은, "나는 암흑을 사랑하고 암흑 속에서 살았으며 죄인들의 괴수로 빛을 미워하고 경건한 생활을 비웃었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고 하였던 것이다.




13. 감사기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의회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친 후 공화국을 세웠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으며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청교도였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14. 감사


일본에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우찌무라 겐죠가 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기까지 그 장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 갈 때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다.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 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15. 산소의 값은


미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톤의 경우에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아주 많다. 가령 산소통을 설치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도 꽤 많은데 물론 보험이 그 경비를 처리하지만 산소통의 산소 값이 꽤 비싸다.


8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데 산소 값이 960달러나 된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우리들은 매일 960달러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매고 있는 셈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무사고자인 우리들은 매일 960불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들이 일생 동안들이 마시는 산소 값만 해도 실로 엄청난 값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 값을 한번 따져 본 일이 있는가? 우리 교회의 전기 값은 1년에 약4만 불 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 요금 전도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햇빛고지서]를 보내신다면 1년에 얼마나 내야할까? 그 반대로 우리나라 한국전력 공사에서 1년분의 전기 값을 면제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은 빛(Light)으로 뿐만 아니라 햇볕으로서 열(온도,Heat)까지 적당히 주고 자외선까지 주어서 우리 인간들 동. 식물의 성장 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16. 더욱 많은 것으로 감사하면


소경 웰리암 문은 자기와 같은 소경들을 위하여 점자를 발명하고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소경이 되어 갖게 된 재능에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재능을 투자하게 하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소유물의 높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17. 감사의 명언


1)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 - 발레리 앤더스 -
2)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 - 키케로 -
3)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 죤밀러 -
4)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은 감사할 이유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 빌립 E.하워드 -
5)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 - 스피로스 J.히아테스 -6)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 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 토마스 아 켐피스 -
7) 베품에는 세 종류가 있다. 아까와 하며 베푸는 것, 의무적으로 베푸는 것, 감사함으로 베푸 는 것이다. - 로버트 N. 로덴 메이어 -
8) 우리는 눈물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물은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비젼을 위해 준비시키기 때문이다.- 윌리암 A.워드 -




18. 두 벌의 안경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테오도르 루우즈벧트가 암살자의 총알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았는가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은 항상 두 벌의 안경, 즉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한 것과 멀리 보는데 사용하는 것을 지니고 다녔다. 그러데 그가 마지막 큰 정치 선전을 위해 밀워키 시에서 연설을 하고 있을 때 '쉬렌크'라는 남자가 대통령를 향해 쏘았다. 루우즈벧트는 다친 몸을 가누고 끝까지 연설을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의사가 그의 몸을 검사했을 때 그는 대통령의 조끼 안에 있던 강철 안경집이 들어온 총알을 튕겨내어 빗나가게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애기를 들은 대통령은 "그것 정말 놀라운 일이야?"하며 조심스럽게 구부러진 안경집을 조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두 벌의 안경집, 그것도 쇠로 된 케이스에 담은 무거운 안경은 귀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그것을 사용하셨다."




19.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


남아메리카 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찬물과 더운 물울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왜요?""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그건 무엇입니까?""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 불평입니다."




20.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같은 11.01초의 기록이건만 한 선수는 금메달을, 다른 한 선수는 은메달을 받게 되었다. 지난 오사카 세계육상경기대회 여자 100미터 결승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길이 없어서 사진 판독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내려진 결과다. 기록은 불과 0.003초 차이! 눈을 깜빡하는 시간이 대략 0.02초라는데 이보다 6배나 짧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1000분의 3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갈랐으니 선수들이 느낀 행운 또는 억울함을 어디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단 이번 경기의 결과뿐이겠는가. 우리가 치르는 입학시험의 합격여부나 입사시험의 당락처럼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우연 같은 시간차나 점수 차로 삶과 죽음, 합격과 낙방, 금메달과 은메달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행운 또는 불행, 운수의 좋고 나쁨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의 손길로 믿고 좋은 일이든 혹은 나쁜 일이든 오직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여운학 (이슬비성경암송학교 교장)




21. 감사할 줄 아는 삶


불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불평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감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맑은 물이 나오는 것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
내 사랑하는 가족, 풍요로운 음식들...
이런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이란 얼마나 황량한가요.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어도 배고픈 사람아 너무 서러워 할 것은 없다.
저 추석 달만은 그대들 머리 위에서도 창창히 빛나고 있지 않는가> (이어령/차 한잔의 사색 中)




22. 감사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 꺼리만 생기고 불평만을 일삼는 투덜이에게는 불평거리만 생깁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유가리스티아>라고 하는데 명사적 의미로는 <좋은 은혜, 행복한 은혜>라고 하며, 동사로는 <숙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행복스러운 은혜를 잘 숙고하여 그 깊이를 깨닫는 일> 이 감사라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감사하는 마음은 곧 시들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수시로 변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에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감사할 이유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3. 감사의 결핍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간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얘야”아이의 어머니가 무섭게 불렀습니다.“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타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몇 번이나 깨워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부모님께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챙겨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타인이 자신을 위해 베푸는 친절에 대해서 '그까짓 것 가지고' 이렇게 말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매일 같이 베풀어주시는 작은 일에 대해서도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들에겐 꼭 필요 합니다.




24. 주님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수술 받기 전 날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간호사는 상냥하게 나의 손을 잡고서 나에게 자기 손을 꽉 잡아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의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은 새롭게 연결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 다음 당신은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의식은 깨어납니다. 의식이 깨어난 후에도 여섯 시간 동안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는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이 손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을 일일히 점검하고 기록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완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담당 간호사가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그때 나는 내 손을 붙들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安堵感)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아울러 삶에 대한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내 손을 붙들고 내 모든 문제 하나하나 처치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고 포근한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원문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남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렵고 힘든 역경(逆境)중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삶의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고 살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 하며 사는 것이다.




25. 작은 일과 큰 일


우리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비록 고난과 시련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섭리의 흐름을 따르는 지혜로운 처사이다.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징계도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이며 시험도 더 좋은 상급 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하여 삶의 영역은 비옥해지며 큰 문제도 작게 되고 작은 봉사도 크게 흠향된다. 모든 문제는 신앙 안 에서 해답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 문제의 정답이다. 무슨 문제든지 해답을 모르면 크게 보이고 해답을 알면 작게 보인다. 신앙은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한 어린이가 집안에서 물그릇을 나르다가 마루에서 넘어졌다. 온 마루는 물로 흥건하였다. 남편 된 사람은 버럭 화를 내면서 큰일을 저질렀다고 소리 쳤다. 그때 믿는 아내가 “오늘 마침 마루를 닦으려고 하였는데`...`하나님께서 며칠 동안 닦지 않은 마루를 지금 닦으라는 것이에요”하였다.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구척 장군 골리앗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났다. 백성들은 겁을 먹고 “때려눕히기에는 너무 크다”고 하자 다윗은“ 내 물맷돌이 빗나가기는 너무 크다”했다. 같은 문제를 보고도 크게 보는 시각과 작게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홍해 강변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는 잠잠히 우리가 여호와의 큰 구원을 보리라 하였다(출 14:13).




26. 올챙이의 교훈


3학년이 된 둘째가 자연 시간에 올챙이 알을 구해서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관찰해야 한다고 해서 교사인 친구가 봄나들이를 갔다가 알을 구해 보내주었다. 실내에 두고 4-7일 사이에 투명한 막 속의 점에 불과 하던 알이 꼼지락거리더니 작은 꼬리가 나고 둘러싸인 막을 먹이로 해서 힘을 얻어 헤엄을 치는 아기 올챙이가 되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관찰 일기를 써야 하는 둘째뿐 아니라 온 가족이 시간 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어린 날, 시골에서는 흔히 보았던 올챙이를 보석을 보듯이 신기해하며 자연의 향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점점 커가면서 먹이를 뭘 주어야 할지 잘 몰라 밥알을 조금 주었더니 더워오는 날씨 탓에 금새 물이 썩어 올챙이가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몇 마리는 살아남았기에 온도를 적당히 맞춘 맑은 물을 준비해두고 옮겨주려 하자 나의 의도를 모르는 올챙이가 얼마나 도망을 다니는지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환경이 나를 좀먹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죽음에 이를 것을 아시고 물갈 이를 하여 나를 살리시려는, 시련 뒤에 숨겨진 그 큰 은혜를 볼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숨고, 반항하고,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라고 내 뜻대로의 기도를 드리며 주께서 펴신 도움의 손길을 더디게 하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미물인 올챙이를 위해서 쏟는 관심이나 정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그 인자하심을 가슴 가득히 담아 충만함 중에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7. 시한부 인생으로


안양 어떤 교회에 용모가 아름다운 한 처녀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녀 는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길에 쓰러지게 되자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다가 그만 그 자신도 얼굴에 핏기 가 가시면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내렸는데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의 고동이 점점 약화되어서 죽게 되는 보기 드문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스칸디나비아의 의사 팀은 그 학생의 병을 보고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조절기능 장치를 심장에 부착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위험한 수술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의사들은 책을 펴 놓고 연구하면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들은 너는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3년마다 수술을 하고 기계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기를 33살인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그 가정의 재산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순간에 고동장치가 멎어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주님이 살아계시니 그저 기쁘고 감사한 것뿐이라고 한 눈물어린 고백을 읽게 될 때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장 난 심장에 전기장치를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교회학교에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분의 마음에 참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28. 미즈노의 하나님


일본에 미즈노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즈노씨는 세상에서 참 혹한 불구자인 것입니다. 전신이 해삼처럼 퍼져서 수족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며 물론 글도 쓸 수 없습니다. 그가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눈을 반짝이는 것뿐입니다. 그가 작품으로 발표한 시는 그의 형수의 헌신적인 협조에서 이뤄 진 것입니다.


그가 시를 쓸 때에는 그의 형수가 일본어 50자표를 걸어 두고 막대기로 한 자씩 짚어 내려가다가 미즈노 씨가 원하는 글자가 짚히면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수는 그 글자를 백지에 써 두고, 또 짚어 내려가다가 다음 글자를 쓰는 식으로 미즈노 씨의 마음에 있는 시가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 한 수를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두 사람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그 시가 바로 일본 문단의 걸작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며, NHK가 특집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미즈노씨의 시집에‘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즈노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터인데 말입니다.


파스칼은“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조건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조건에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미즈노 씨가 체 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세상의 어떤 환경 속에서 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9. 마음의 민감성(감사)


만약 나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먼저 눈으로 찾다가 다시 서투른 손으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을 찾아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한다. 서투른 손으로 찾는 것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자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30. 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 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 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31. 인생에 대해 감사하는 것(인생)


죽음에 진지하게 직면하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수년간 매우 비만했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는 심한 심장마비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후 그는 생활양식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먹는 습관도 바꾸었다. 그래서 과도한 체중을 줄였다. 그는 새 사람처럼 보였고 그렇게 행동했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 이 죽음의 심각성과 그 결말을 깨닫는다면 매일 당신이 마지막 살듯이 살아갈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길 원한다면 우선 죽음에 대해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32. 감옥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랍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대개 불평만이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나간답니다.
사랑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입니다.




33. 감사의 태도


멕시코의 일부 지역에서는 온천과 냉천이 나란히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현상 때문에 그 지역의 아낙네들은 빨래를 냇가로 가지고 와서 온천에다 옷을 삶은 다음 냉천에다 헹구곤 한다. 이 광경을 자세히 지켜보던 어느 관광객이 멕시코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인 자연은 매우 관대해서 냉천과 온천을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로 많은 물을 공급해주고 있군요"
멕시코 친구가 대답했다.
“그렇지도 않다네. 비누가 없다고 사람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34. 감사하는 마음


어느 여름날의 한 낮이었다. 두 사람의 행인이 나무 한 그루 없어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금방이라도 더위에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데 마침 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아래는 과연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 나무 그늘로 달려 들어갔다. 숨이 막힐 것 같던 가슴이 열리고 이마의 땀방울이 식어가자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보게 나무란 원래 대부분 어디엔가 쓸모가 있는 법인데 여기 이 오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정말이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진 게 이 나무라더군."
그러자 한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절말 그렇군, 정말 쓸모없는 나무야 "
이 두 행인은 그 오리나무 때문에 금새 쓰러질 듯한 무더위를 시원하게 피했건만 그 은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35. 감사가 있는 사람


무말랭처럼 말라 비뚤어진 육체는 지니고 언제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루 게리그병(근육 무력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다. 겨우 20세가 되던 해에 위로부터 이 병에 걸렸다는 통고와 함께 앞으로 1,2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학적인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랄까. 죽음이 선고가 있은지 무려 4반세기 이상을 살고 있긴 하지만 1985년에는 또 다시 폐렴에 걸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말하는 기능가지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자. 그 불행과 고통을 도데체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야 할까?


당사자인 호킹(Howking,1942 - )박사의 "시간과 역사"라는 책을 대하면 유달리 농도 짙은 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우리가 통상 머리말이라고 하는 부분을 그는 "감사의 말"이라는 제목 하에 기술하고 있다. 그의 글이 또한 전개되어 가면서 그는 계속하여 자기의 행복을 고백하고 타인에 못지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단히 감격하고 있다.


호킹은 만인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불행의 요건을 남달리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며 ㅂ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삶의 자세로 간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정신적인 자세가 아니라면 그가 어찌 그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리나라까지 와서 강연을 하겠다는 엄두인들 내겠는가?


호킹은 남달리 값지고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원인은 곧 감사로 충만한 정신자세 때문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해 본다. 흔히 그는 현대의 살아 숨 쉬는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사공의 마술사""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이론 물리학자"라는 평가도 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는 나이 겨우 32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학문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왕립협회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Lucasian)수학교수로서 뉴턴의 영예를 계승하고 있다.


건강, 지위, 재산, 가문, 학벌, 건전한 가족운 등 남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들을 한 몸에 독차지하고서도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찌들고 비뚤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은 천당에 옮겨다 놓아도 거기에서도 불평거리를 찾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천구 에서도 지옥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이 보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워 보이는 삶의 여건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호킹박사와 같이 본인의 기본적인 자세만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감사가 충만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인간임을 우리는 새삼스럽게 재음미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50:14-15)라고 말씀하고 아울러 범사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고 당부하고 있다.




36. 핍박 중에도 감사


공산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어떤 목사님이 끌려갔다. 공산당원들이 고문을 하면 할수록 이 목사님은 감사합니다만 연발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두목은 무엇이 감사하냐고 묻자 "예수 이름으로 매를 맞고 핍박을 받으면 하늘에 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대답을 하자, 감옥에 가두도록 했다.


목사님은 더욱 기뻐했다. 조용한 골방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니 더 감사할 뿐이라 했다. 두목은 죽이라고 명령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예수를 믿다가 순교한 것은 더욱 큰 영광이요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니 더욱 감사하다고 했다. 이 때 그들은 때리지도, 옥에 가두지도, 죽이지도 못하고 결국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는 감사하는 생활이 중요하다.




37.진정한 감사


진정한 감사는 댓가를 기대하며 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가 참 감사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무우를 심었더니 어찌나 잘되었는지 거의 사람 몸만 한 무우를 뽑게 되었다. 농부는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고 있는 원님의 선정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우를 원님께 가져다 바쳤다


원님은 이 농부의 고마워하는 생각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고 하속을 불러 물어보니 최근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원님은 이 황소를 농부에게 주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지자 이를 배 아파하는 악한 농부가 무우를 바치고 황소를 얻었으니 황소를 바치면 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원님께 황소를 바쳤다. 원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 귀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주라 했는데 이는 지난번에 들어 온 무우였다.




38. 손양원 목사의 감사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욥 1:21)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나서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형제가 공산당원에게 학살을 당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그때 손목사님은 장례식에 나와서 여덟 가지로 감사를 했다.
한 집안에 순교자 하나만 나도 감사한 일인데 둘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구약에 보면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하 나님께 온전히 드렸고 어린 것들의 피가 앞으로 교회의 종자가 되게 되었으니..등으로 감사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이다




39. 범사에 감사함(감사)


장사를 한 여자 성도가 목사를 찾아와 가계가 안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것보다도 더 힘든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장사가 안 되도록 하는가 하며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여성도는 십일조나 헌금 등을 빠짐없이 했고 주일성수도 착실히 한다고 했다. 목사는 그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장사가 안 되고 사람들이 비웃으니 감사합니다." 여성도는 의아한 듯 목사를 보더니 혹시 기도를 잘못한 것 아닌가로 물었다. 그러자 목사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돌아가서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몇일 후에 얼음판에서 미끄러졌다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그때도 목사는 "주님, 팔이 부러졌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그녀는 목사에게 이제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저주의 기도라서 팔 부러진 것을 감사하면 다음번에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얼마 있다가 지난번 보다 훨씬 나빠진 얼굴로 와서는 가게를 팔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목사는 감사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때 가게를 치우고 업종을 바꿔 다른 장사를 시작했던 그녀가 하루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목사를 찾아왔는데 그녀의 얘기인 즉 장사가 더 잘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전에 자신이 하던 그 점포자리가 도시계획에 걸려 헐리게 되었다고 했다.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지만 점포 값에 비하면 형편없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일찍 점포를 팔았기에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예기를 하고 그제사 그녀는 감사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노라고 했다.




40. 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징계에 대한 감사, 성숙)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몸의 크기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어른의 행세를 할 때 사람들은 곧잘 "저게 언제나 철이 들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성숙한 인격 -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옛날, 홀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열심히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언제나 종아리를 걷어 회초리로 때리며 가르치고 키웠습니다. 장성하여 과거를 치루고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은 아버지가 되었는데도, 어머니는 자식이 잘못하면 종아리를 걷게 하고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종아리를 맞고 있던 아들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민망해진어머니가 "매가 아파서 우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울고 있던 아들이 "그전처럼 매가 아프지를 않습니다. 어머니 기력이 쇠해지셨는데 앞으로 제가 잘못할 때 어머니 안계시면 누가 이렇게 가르쳐 주겠습니까? 그게 서러워 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어린이가 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인격, 특히 징계를 받으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어른이지요. "내 아들아 여호와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1 - 12)




41. 잊지 말아야 할 감사


인류 조상인 처음 사람 아담은 빵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먼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그것이 잘 자라게 가꾸어서 거두어들인 후 갈아서 가루로 빻은 후 반죽을 해서 다시 굽는 등 보통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빵집에 가서 돈만 내면 먹고 싶은 여러 종류의 빵을 사 먹을 수 있다. 이렇게 15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인간은 자기가 걸칠 옷을 만들기 위하여 대단히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양을 키워 붙잡아서 털을 깎고, 짜서 꿰매는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양복점에 가서 돈만 내면 마음에 드는 양복을 살 수 있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을 힘들여 많은 사람이 대신 하므로 옷을 입을 수 있음을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42. 빵 속에서 나온 은화


독일에 대기근이 있었을 때 한 부자가 가난한 아이들을 모으고 빵을 나누어 주었다. "이 자루 속에는 너희들이 하나씩 가져갈 빵이 들어 있으니 꼭 한 개씩만 가져가고 내일 또 오면 빵을 주마." 아이들은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자루에 달려들어 서로 큰 빵을 골라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서 있다가 마지막 남은 제일 작은 빵을 집어 들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어제와 같이 아이들은 빵을 집어 들고 집으로 가기 바빴다. 그레첸은 맨 나중에 남은 제일 작은 빵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빵을 쪼개보니 그 속에 50센트 은화가 6개 들어 있었다. 그레첸이 노인에게 빵 속에 들어 있던 은화를 가지고 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 는 것이었다.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




43. 더욱 많은 것으로 감사하면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다.
소경 웰리암 문은 자기와 같은 소경들을 위하여 점자를 발명하고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소경이 되어 갖게 된 재능에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재능을 투자하게 하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소유물의 높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44. 감격스런 감사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 성도 하나가 자기의 독자 아들이 죽은 것을 감사하는데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다 주님 품에 갔으니 감사하고, 내 마음을 아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하고, 이제는 하늘나라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으니 감사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라고 하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감사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45. 하늘의 두 천사


서양에 이런 전설이 있다. 어떤 날 하늘의 두 천사가 각각 바구니를 하나씩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다. 한 천사는 성도들 중에 자기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를 걷우어 바구니에 담고 또 다른 한 천사는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걷우어 바구니에 담기 위한 것이다.


그런 중 소원의 기도를 걷우는 천사의 바구니에는 세상을 다 돌지 못했는데 벌써 차고 넘치는 것이나 찬송과 감사의 기도는 세상을 다 돌아서도 바구니에 차지 못했다고 한다.




46. 도심에 나온 농부의 식사


독실하게 예수를 믿는 농부 한 사람이 어느 날 큰 도시에 나왔다. 점심때가 되어서 어느 큰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건너편에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얼마 후 농부의 식사가 나오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젊은이들은 이 영감을 곯려 주기로 마음먹고 그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불렀다. "이봐요, 시골 양반, 당신네들이 사는 동네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거요?" 이 말을 들은 시골 영감이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아니, 다 그러는 것은 아니야, 돼지들은 그렇지 않네."




47. 휘발유가 없었기에


어떤 부인이 [차에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인은 덧붙였다.
[차에 휘발유가 거의 떨어졌을 때 저는 투덜거렸죠. 왜 이 근방엔 주유소가 없을까하고 말이죠]
의아하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데 어떻게 감사한일이 생겼죠?]라고 물었고 이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젯밤 우리는 차를 도둑맞았었어요. 그런데 휘발유가 바닥나 있었기에 이 도둑은 30M쯤 끌고 가다 차를 그냥 두고 가버렸지요. 만일 휘발유가 많았었나 봐요. 차를 어떻게 찾았었겠어요]
우리에게 건강이나 행복, 평안이나 인간교제가 바닥날 때가 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48. 항상 감사


스펄젼은 40세 이후부터 관절염의 일종인 통풍 때문에 몹시 시달린 사람이다. 지금까지 아스피린이나 혹은 마취제가 발달해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통풍 때문에 기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믿음 좋은 그의 교회 신자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스펄젼이 대답하기를 "예,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자는 조용하지만 그러나 무게 있는 말로 이렇게 스펄젼 목사에게 충고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료원 : 생명의 삶




49. 은총 받은 생활(감사가 없는 자의 생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 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오?"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다. 자료원 : 생명의 삶




50. 최후의 한 마디


어떠한 환경과 악조건 아래서도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감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의 상황이 닥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인생의 한 단락을 아름답게 매듭지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일의 한 중년 기독교인이 대학병원의 수술실에서 혀(舌)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언어는 이것이 최후이기 때문이었다. 간호원, 조수, 견습 의사들을 비롯하여 둘러 선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다.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흘렀다. 저마다 만일 내가 이 환자라면, 만일 나에게 한 마디 언어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했다. 드디어 두 줄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환자의 입이 움직였다.


그는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함으로써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자료원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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