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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하나님아들 2023. 11. 10. 16:10

정경             

 
1. 정경


정경(,‘카논’, ‘규범’)이란 말은 두 가지 면에서 성경에 적용된다.
첫째, 교회의 믿음과 실천의 표준으로서의 성경에 대해서이고,
둘째, 영감으로 기록된 책들의 정확한 모음집이자 목록으로서의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이다.


구약 정경에 대한 의심의 원인


기독교의 구약 성경은 예수님과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에게서 물려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상응했다. 그러나 교회의 이방인 선교에서는 70인역(헬라어를 구사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약성경 번역본)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구약성경의 라틴어 첫 번역본은 70인역에서 나왔다.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고 유대인 전통에 별로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성경과 헬라어나 라틴어로 유포되고 있던 다른 인기있는 종교적 읽을거리를 구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런 요인들은 성경의 저작에 대한 의심들로 이어졌고 ‘정경’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오늘날의 구약과 똑같은 책들이 담겨 있는가


앞에서의 분석은 교회가 1세기에 물려받은 히브리어 성경이 오늘날과 똑같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점에 대한 의심은 그 이후에 비로소 생겨났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성경의 각 부분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정경화된 자의적인 범주인가?
최근까지는 히브리어 성경의 세 부분(율법, 선지서, 성문서)은 서로 다른 세 시대, 즉 첫 번째 부분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주전 5세기)에, 마지막 부분은 야브네 또는 얌니아 회의 때(늦어도 주후 90년), 가운데 부분은 그 중간의 어느 시기(아마도 주전 3세기)에 정경으로 인정된 책들의 자의적인 분류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비평적 관점이었다. 이런 연대 추정 근거는


(1)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으므로 모세 오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사마리아의 분리가 발생했을 때 유대교 경전 전체를 구성했음이 분명하다.
(2) 얌니아 회의에서 전도서, 아가와 그 밖에 일부 랍비들이 문제를 제기한 다른 세 권의 책(에스겔, 잠언, 에스더)의 정경성을 논의했으므로 이 책들은 그 당시에 아직 정경에 속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3) 히브리어 성경의 성문서 부분에서 발견되는 역대기와 다니엘서는 성문서에 속해있는 것보다는 열왕기와 예언적인 선지서에 속해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선지서 부분은 이런 책들을 포함하기에는 너무 빨리 완결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는 이런 가설을 뒤집어엎었다.


※ 탈무드에 따른 구약 정경의 전통적인 순서




정경의 모양은 결코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최종 형태에 있어서는 이 세 부분이 (외경에 있는) 집회서의 헬라어 서언에 처음으로 언급된 때인 주전 130년경 이전에 살았던 어느 한 사람의 사상가에게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이 세 부분의 승인에 부여된 연대 추정 또한 잘못되었다.


첫째, 사마리아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보다 오랜 뒤에도 유대인의 관습을 계속 따랐으며 분열도 유대인들이 주전 110년경에 그리심 산 위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성전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완료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선지서와 성문서가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이 책들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얌니아 회의’ 따위는 없었고 단지 학회에서 전도서와 아가의 정경성을 확증하는 토론(이 토론이 논쟁을 종결지은 것은 아님)만 있었을 뿐이다. 에스더서는 특히 주후 90년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 비평적 관점이 제시하는 바와는 반대로 역대기와 다니엘서를 선지서에 배치할 강력한 동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들은 둘 다 구약 역사의 마지막 시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다루어졌으며, 따라서 성문서에 속했기 때문이다.


별개의 알렉산드리아 정경이 존재했는가?
또 다른 잘못된 논증은 최소한 몇 권의 외경을 포함한 별개의 알렉산드리아 정경이 있었다는 가설이다.


쿰란 분파는 더 폭넓은 구약 정경을 소유했는가?
쿰란에서의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은 비평학자들의 관심을 위경(특히, 에녹1서, 레위의 유언집, 희년서, 성전 두루마리)으로 전환시켰다. 쿰란이 사람들(아마도 에세네파)은 이 책들을 포함한 더 폭 넓은 정경을 소유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오늘날 자주 등장한다.
(1) 이 저작들에서 사용한 가명들은 성경 시대에 속한 것이며 이는 선지자적 영감이 당시에 이미 중단되었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
(2) 쿰란 공동체에서 주장된 영감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영감이지 성경에 덧붙일 수 있는 영감은 아니다.
(3) 쿰란 문헌에 나오는 권위있는 저작에서 따온 인용구는 거의 전적으로 구약의 책들에서 나온 것이며 성경을 인용하는데 사용된 관용 어구는 다른 곳에서의 몇몇 인용구와 함께 사용되지 않는다.
(4) 에세네파는 구약 정경의 표준적인 세 부분에 자신들이 선호하는 위경이 담긴 해석적인 부록을 당시에 명백히 한정된(즉, 완성된 것으로 간주된) 표준적인 세 부분 속에 삽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구약 정경에 대한 진실


구약 성경의 결집과 승인의 참된 증거는 비교적 단순하다.
첫째, 만일 계시를 보존해야 했다면 이 계시는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점이 고대부터 인식되었다(출 17:14, 신 31:24~26, 시 102:18, 사 30:8).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신 10:5). 이 돌판은 언약궤 속에 보관되었고, 그 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기초였다. 율법서가 므낫세와 아몬이 통치하는 동안 사라졌다가 훗날 힐기야가 율법서를 발견한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둘째, 큰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율법책이 백성들에게 낭독되었다.(출 24:7, 왕하 23:2, 느 8:9, 14~17). 신명기는 율법책을 7년마다 정기적으로 낭독하도록 규정한다(신 31:10~13).
셋째, 이스라엘은 신명기를 성소에 보관해야 했고(신 31:24~26), 바로 성소가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했던 곳이었다. 성경을 성소에 보관하는 관습이 주후 1세기까지 계속 지속되었다는 점은 요세푸스와 최초의 랍비 문헌에서 알 수 있다. 성전에 어떤 책을 보관하는 것은 엄숙하고 신중하게 계획된 국가적 의미를 지닌 행위였음에 틀림없다.
넷째, 쿰란에서 따르던 에녹1서의 달력은 주전 3세기경에 성경에 날짜가 기록된 어떤 행위도 안식일에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주전 180년경에 기록된 집회서 44~49장은 유명한 사람들의 목록을 제시하는데, 이들은 아마도 모두 성경의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요세푸스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가 요나단 마카베오(주전 143년 사망)의 시대에 처음으로 서로 구별된 경쟁하는 학파가 되었다고 진술한다. 이 시기 이후에는 정경을 변경하려면 매우 논란이 많았을 것이고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정경은 주전 143년 이전에는 완결된 책으로 인정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일곱째, 주전 165년에 유다 마카베오가 안티오코스의 박해(마카베오2서 2:14) 이후 흩어진 성경을 모을 때 정경을 최종적으로 손질했을 것이다.
여덟째, 예수님과 그 시대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수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어떤 책들이 정경인지에 대해서는 그들 사이에 어떤 논쟁의 기록이나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어떤 논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 교회가 받아들인 구약 정경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인 정경과 동일했다.
아홉째, 예수님과 신약 저자들은 구약의 말씀을 300회 정도 인용한다. 신약 저자들은 어김없이 ‘기록된 바’, ‘성경에 이르되’, ‘하나님이 이르시되’와 같은 표현과 더불어 신적 권위를 지닌 말씀으로 인용한다. 가끔씩 신약 저자들은 다른 몇몇 저자를 인용하기도 하며 심지어 헬라인 저자도 인용하지만(행 17:28, 딛 1:12~13, 유 8~10절, 14~16절) 이런 다른 출처를 구약 성경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열 번째,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다른 문헌들을 현재 구약 성경으로 알려진 책과 “똑같이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그리고 이는 요세푸스가 생각하는 바로는 유대인 주류의 견해였다).
열한 번째, 신약 시대 이후의 추가적인 유대교 전승 또한 마지막 구약 선지자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의 시대 이후에는 더 이상 어떤 선지서 문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건전한 역사적 연구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1세기 유대교와 공유한 참된 정경이 담겨 있음을 보여 준다. 포함되어야 할 어떤 책도 배제되지 않았고, 배제되어야 할 어떤 책도 포함되지 않았다.




2. 신약 정경
신약 정경의 기초는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후 2~4세기의 교회의 필요나 관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자신의 신적 권위가 실려 있는,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에 있다. 신적인 말씀-계시가 새롭게 쏟아지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의 고대 역사에서 주요 구속 행위(아담과 하와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집트에서의 구속, 왕정 수립, 바벨론 유수, 회복)마다 수반되고 뒤따른 것처럼 약속된 메시아가 오셨을 때도 신적 계시가 새롭게 넘치도록 쏟아지는 일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구약의 공인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과 나란히 있게 될 전망은 구약 성경에서 예상되었고, 심지어 승인되었으며,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게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속 행위에 대한 약속 안에 심겨 있었다(렘 31:31~33, 히 8:7~13, 10:16~18).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도 예언했다고 가르치셨다(눅 24:44~48).
사 2:2~3, 49:6, 시 2:8 같은 예언적인 본문들은 구속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열방에 선포될 때를 언급했다. 이 선포가 옛 언약의 책들을 보충하는 기록된 성경의 새로운 모음집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결론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패턴으로 보나 예수님의 몇몇 사도들(과 사도들의 동료들)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행한 기록 사역으로 보나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예수님의 사명
옛적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는 자기 아들을 통해 인류에게 말씀하시기로 작정하셨다(히 1:1~2, 4). 이 구원의 메시지를 이스라엘과 열방에 전달하는 일은 육신이 되신 말씀(요 1:14)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사 49:6, 행 26:23). 그리스도는 택하신 사도들을 통해 이 사명을 실행하셨고, 사도들을 자신의 권위있는 대리자로 임명하셨다(“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마 10:40). 사도들에게 맡겨진 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생각나게”하고(요 14:26)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이었다(행 1:8, 마 28:19~20). 시간이 지나 사도들의 복음 전파는 신약의 책들 속에 기록된 형태로 남게 되었고 이 기록은 현재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의 역할을 하고 있다(벧후 3:2).
로마의 클레멘스는 이렇게 증언했다.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를 위한 복음을 받았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복음을 받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셨고 사도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둘 다 질서 정연하게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왔다”(주후 95년경에 기록된 클레멘스1서 42.1~2).


새 언약의 말씀에 대한 승인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딤후 3:16)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스스로를 입증하며 따라서 정경은 스스로를 확증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교리 교육이나 변증이나 예전이나 교화를 목적으로) 성경의 정경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책들을 숙고할 때 교회가 가장 선호한 책들을 주권적으로 ‘결정’ 혹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스스로 오직 하나님 사도들과 사도들의 직접적인 동료들로부터 전해진 책들 속에서 제공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권한만 지닌 존재로 인식했다(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3.1.1~2). 이른바 정경성의 ‘기준’에 대한 논의가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도성’, ‘고대성’, ‘정통성’, ‘예전적 사용’, ‘교회의 합의’ 등과 같은 특성은 어떤 문헌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교회가 자율적으로 판단한 기준이 아니다.


주후 240년대에 이르러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에 거주하던) 오리게네스는 신약 27권 전부를 인정했지만,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와 요한삼서, 유다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세비우스의 두 범주에는 27권만 포함되어 있고 그 이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유세비우스는 많은 교회에 알려져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위서로 판단해야 할 5권의 다른 책들도 열거했다(바울 행전, 헤르마스의 목자, 베드로계시록, 바나바 서신, 디다케).


주후 367년에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아타나시우스는 해마다 보내는 부활절 편지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27권 모두로 구성된 신약 책들의 목록을 제시하면서 다른 몇몇 책들은 교리 교육적 차원에서는 유익하지만, 성경은 아닌 책들로 지칭했다.


아프리카(주후 393년에는 히포 레기우스에서, 397년과 419년에는 카르타고에서)에서 열린 세 번의 교회 회의와 영향력 있는 아프리카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27권의 정경을 추인했다.


사도들이 전했던 말씀은 교회를 탄생시켰고(롬 1:15~17, 10:14~15, 약 1:18, 벧전 1:23~25), 이 말씀의 기록된 형태는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항구적인 기록적 표현으로 남아있다. 신약 27권만이 원래의 근본적인 사도적 증언에 속한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 책들은 대대로 보편적 교회에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했다. 여기에 다양한 우리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양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풀밭이 있다.




3. 외경
영어로 번역된 성경 중에 분량이 많은 성경들(틴데일과 거버데일의 큰 성경(539년)부터 시작해서)은 종종 구약과 신약 사이에 추가적인 책들과 책의 중요한 부분들로 구성된 “외경”이라는 제목의 별도의 부분을 포함했다. 히에로니무스가 번역한 불가타 성경(주후 382년에 시작해서 405년에 완성함)에서는 외경이 구약 자체 안에(일부는 별도의 항목으로, 일부는 성경의 에스더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에 덧붙거나 포함된 채로) 위치해 있었다. 두에이 번역본이나 예루살렘 성경 같은 로마 가톨릭의 성경 번역본에서는 이 항목이 여전히 종교개혁 이전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 번역본에서는 외경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거나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 성경이 외경을 포함하게 된 과정
불가타 성경은 히브리어 원어에서 번역되었다. 그러나 불가타 성경 이전의 역본인 구 라틴어역은 헬라어 구약 성경인 70인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이전이나 이후의 어느 단계에서 히브리어 성경에 없었던 추가적인 책들과 책들의 일부분이 헬라어 구약 성경 속에 들어왔고 거기서 다시 구 라틴어 역에 포함되었다. 히에로니무스는 이 부분을 자신의 새로운 번역본인 불가타 성경에 남겨 두었지만, 이 부분은 성경의 참된 일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곳에 서문을 덧붙였고 이 부분을 ‘외경’(, ‘아포크리파’, ‘숨겨져 있었던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헬라어와 라틴어 번역본들이 외경을 포함하게 된 과정
기독교 저술가들이 외경을 사용한 방식은 위의 분석을 확증한다. 신약은 한두 가지의 외경 본문에 대한 지식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외경에 대해서는 결코 정경에 속한 구약의 여러 책들만큼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① 신약은 구약의 여러 부분을 약 300회 인용하지만, 외경에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인용하지 않는다(유 14~16절은 외경의 인용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유대교의 저작인 에녹1서를 인용하고 있다).
② 2세기에 순교자 유스티누스와 안디옥의 테오필로스는 구약은 자주 언급했지만, 외경은 그 어느 것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③ 2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지혜서, 토비트서, 집회서가 때때로 성경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그 밖의 외경들은 어느 것도 성경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④ 외경은 그 이후 서서히 받아들여졌다. 그중에 오래된 목록들에는 극소수의 외경이 포함되어 있고 가장 오래된 목록인 멜리토의 목록(주후 170년경)에는 아무 외경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외경에 대한 수용과 배척
4세기 말에 이르러 히에로니무스는 외경과 영감으로 기록된 구약의 책들의 구별되는 점을 강조하여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고, 소수의 저술가들은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성경에 대한 교리의 중요한 일부로 삼을 때까지 중세 시대 내내 이와 같은 구별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런 구별은 없애고 외경(에스드라1서와 에스드라2서 및 므낫세의 기도는 제외)을 영감으로 기록된 구약의 책들과 똑같은 지위에 올려놓으려 했다. 이는
(1)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전 전승을 높이 떠받드는 교리와
(2)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창조한다는 관점
(3) 외경에 나오는 구절들에서 파생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몇몇 개념들 (특히 연옥, 면죄부, 칭의에 기여하는 것으로서의 행위의 의에 대한 교리들)에 대한 수용의 결과였다.


이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들 때문에 일부 개신교인들은 외경의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어떤 개신교인들(특히 루터파와 성공회)은 이런 구절들과 이런 구절들에 담긴 개념은 피하면서도 외경을 일반적으로 교화에 유익한 종교적 문헌으로 계속해서 읽었다. 외경은 다른 정경 이후의 문헌들(특히 위경, 사해 두루마리, 필론과 요세푸스의 저작, 탈굼역본, 최초의 랍비 문헌들)과 더불어 다른 여러 면에서 유익할 수도 있다. 외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외경은 신약을 읽을 때 유익한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는 관습, 사상, 표현을 소개해 준다.


외경의 내용
외경의 책들은 총 15권이며(그러나 어떤 이들은 몇몇 책들을 하나로 합쳐 14권이나 12권으로 셈하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문헌들(이야기, 잠언, 예언, 예배 문헌)로 이루어져 있다. 외경의 저작 연대는 아마도 주전 3세기부터(토비트서) 주후 1세기까지(에스드라2서와 아마도 므낫세의 기도)일 것이다.


외경에 담긴 종교적 사상의 발전
다음과 같은 신약의 가르침과는 이질적인 교리적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1) 토비트서 12장 15절에서는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성도들의 기도를 바친다고 말한다.
(2) 마카베오2서 15장 13~14절에서는 어떤 죽은 선지자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3) 지혜서 8장 19~20절과 집회서 1장 14절에서는 독자에게 의인이란 태어날 때 선한 영혼을 받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4) 토비트서 12장 9절과 집회서 3장 3절에서는 독자들에게 신자들의 선한 행위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보상한다고 말한다.
(5) 마카베오2서 12장 40~45절에서는 독자에게 죽은 자들의 죄가 용서받도록 기도하라고 말한다.


처음 두 가지 사상은 구약이나 신약에서 아무런 근거를 발견할 수 없으며, 두 번째 사상은 죽은 성도들에 대한 기도라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상에 약간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마지막 세 가지 사상은 신약이 중생, 칭의와 한 사람의 유일한 시험의 기간으로서의 현세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과 명백히 어긋난다.


외경은 결과적으로 분별력있게 읽어야 한다. 외경 안에 있는 많은 내용은 단순히 구약보다 약간 후대의 유대교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며 어떤 부분은 신약의 방향으로의 발전 과정을 반영하지만, 역사적으로 흥미롭기는 하나 기독교의 신학과 실천의 관점에서 피해야 할 잘못된 구절들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