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의 신비

창세기와 지구의 나이

하나님아들 2023. 9. 22. 17:53

창세기와 지구의 나이           

 

성경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요?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 창세기는 사람의 창조와 그 사람의 타락 그리고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시고 천국의 일꾼으로 양육하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소개하고 설명하는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과학과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이 인생들을 영생으로 초대하는 지극히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면, 당연히 성경이 언급하는 과학과 역사의 기록들은 정확해야 합니다. 비록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이 성경의 핵심주제는 아닐지라도, 성경의 오류여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는 오랫동안 그 뜻을 알기 힘들어서, 많은 주석가들이 다양한 학설과 주장들을 펴며 나름대로 그 뜻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과학의 도움으로 명쾌하게 그 의미가 밝혀진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지난 일,이백년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많은 성경학도들이 따르고 지지하였던 학설들이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허상이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知性)이 믿음과 조화를 이루면 좋은데, 지성이 오해와 독선으로 오염되어 있는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즉 과학의 도움으로 이제는 더 이상 학설로서의 가치가 없는 각종 추측과 설(設)들을 아직도 신봉하면서, 오히려 상식(常識)으로 되어있는 지구와 태양계와 우주와 관련된 많은 사실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동설과 천동설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 이전에는 지동설이나 천동설이란 개념이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찰하다가 목성을 도는 위성들을 발견하였고 이어서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지동설과 천동설이 대립하였고, 요란한 뉴스들이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제 지동설과 천동설이란 말은 역사이야기를 할 때나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즉 진실이 밝혀짐으로 학설들 혹은 가설들은 모두 사라지고 진실만 남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천동설을 굳게 믿고 있던 교회의 지도자들이 갈릴레오를 탄압하면서, 왜 성경에 어긋나는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고, 성경을 ‘글자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는 빌미를, 무신론자들과 진화론자들에게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갈릴레오가 이리 와서 자기와 함께 망원경 좀 보자고 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학교에서는 과학과 역사 시간에 무지몽매하고 말이 안 통하는 교회지도자들과 명석하고 합리적인 과학자들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교회는, 성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이 없으며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말도 없다고 합니다.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주교의 계산



갈릴레오보다 조금 먼저 태어나고 조금 먼저 하늘나라로 간 성공회의 대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는 탁월한 사제였고, 역사학자였으며, 고대 셈족 언어(Semitic languages)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만년에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BC 176년까지의 모든 주요한 사건들을 담은 책, 연대기(chronology, 1650년)를 라틴어로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짜를 BC 4004년 10월 23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을 이후 오랫동안 교회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참으로 교회의 큰 실수이며 수치(羞恥)입니다. 큰 신앙인이 반드시 훌륭한 신학자는 아닐 것이며, 교회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라 하여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닌데, 어셔 주교의 모든 것을 좋게만 보고, 묻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분명히 경솔한 일이었습니다.



어셔 주교가 현대에 와서 다시 연대기를 쓴다면, 철저하게 통찰하고 연구하는 그의 성품을 고려해 볼 때, 아마 신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젊은 지구론



하나님께서 지구를 만드신지 몇 년이 지났는가 하는 문제 즉 지구의 나이를 따지는 일은 신앙과 신학의 과제가 아니고 과학의 몫입니다. 신학과 과학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이 과학에게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과학의 발전이 불편하고 과학의 성과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임을 믿는 사람들은, 과학과 역사연구의 발전은 성경의 진실성과 진리성을 더욱 확고하게 증명해주는 계기가 될 뿐이라고 믿습니다.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어떤 이들은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나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7)같은 위대한 과학자들도 젊은 지구론을 지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뉴턴이나 케플러 같은 천재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에 망원경을 장착하여 100억년 이상 떨어진 별에서 날아 온 빛을 연구하고, 적외선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리고 현재 30개나 되는 탐사선이 태양계 곳곳을 다니며 정보를 수집하여 지구로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현대과학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면, 당연히 지구의 나이를 그렇게 짧게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부터 성인으로 만드신 것처럼 태양계와 지구도 짧은 시간에 만드셨지만 처음부터 세월이 충분히 흘러서 완성된 것처럼 만드셨을 것이라고 얼버무리기도 합니다. 이 주장은 학설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이에 대해 답변을 한다면,



아담은 처음부터 성인이었으며, 엄마젖을 물던 시기도, 어린 시절의 추억도 청소년기의 큰 꿈과 열정을 경험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담은 첫 사람으로서 당연히 세상에 나올 때부터 성인이었으며 에덴의 관리책임자로서의 자격과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생성 초기에, 당시에는 크기가 작았던 원시 태양의 주위를 돌며 여러 바위와 소행성들과 부딪치며 덩치를 키워나갔던 시절의 흔적과, 지구 전체가 불덩이처럼 뜨겁던 시절과, 물이나 얼음이 지구 전체를 뒤덮었던 시절과, 초기생명체 박테리아가 산소를 생성하고 이어서 나무가 자라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 시절의 흔적과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전체는 6일 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 6일은 하나님의 시간단위로서의 6일이며 지구의 자전 6일이 아닌 것을, 창세기 1장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은 지구에 남겨진 어린 시절의 흔적들을 통하여, 창조의 6일이 인간의 시간으로는 수십억 년에 해당하며, 그 기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지구에서 일어났던 것을 보여줍니다. 지구에서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았던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살지도 않았던 동물들이 살았던 것처럼 꾸민 가짜 흔적을 하나님께서 지구에 남겨두셨다고 보는 것은, 발상 그 자체가 너무 무지하고 맹신적입니다.



또한 지구나이 6000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Radiocarbon dating)에 의한 연대측정을 전면 인정하지 않는데, 그 탄소측정법의 오차와 보정문제에 관한 지적이라면 몰라도 그 측정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또 우주를 관측할 때 빛의 적색편이(赤色偏移, redshift)를 분석하여 거리를 계산하는데 그 방법도 잘못 되었다고 하며, 거기에서 나온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구 나이를 6000년에 맞추기 위하여 이미 검증이 끝나서 여러 분야에서 긴요하게 이용되고 있는 원리들을 서슴없이 부정해버리니, 어쩌면 천동설보다 더 심한 주장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이러한 행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週期)



창조 제 4일째에 24시간 하루와 4계절과 1년의 기간이 확정되었습니다. 즉 4일째에 이르러 태양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운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조의 첫날이 시작되기 전에, 태양계를 구성할 수많은 분자들이 구름처럼 무질서하게 모여 있었는데(1장 2절), “빛이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1장 3절)에 따라. 분자들이 서로의 중력에 끌려 뭉치고 회전하면서 열과 빛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에 태양계 질량의 99% 이상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원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불타올랐는데, 그것이 원시 태양이 되었고, 나머지 1% 미만의 먼지와 얼음과 바위 덩어리들이 태양에 흡수되지 못하고, 원시 태양의 주위를 돌다가 다시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뭉쳐지면서, 서서히 위성들과 소행성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지구는 그야말로 계속되는 충돌로 점점 더 뜨거워지고 커지면서 큰 불덩이가 된 상태로 자전과 공전을 하였을 것입니다.



창조의 첫 날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만드셨는데, 이 하루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하루이며, 인간의 시간으로는 수억 년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창조의 둘째 날, 초기의 지구라고 부를 만한 행성이 만들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물과 물 사이에 궁창을 만드시고 일부의 물은 지구(궁창 아래)에 내려 보내시고 나머지 물들은 궁창 위, 즉 태양계 외곽(오르트 성운, Oort cloud)에 두셨습니다. 이때에 전 지구는 물로 뒤덮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제 3일째에 지구에는 육지가 생기고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때의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는 지금보다 짧았습니다. 즉 창조의 3일 째까지는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전체가 오늘날과 같은 구조와 운행주기를 갖기 전이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는 미세하게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과 지구와의 거리도 더 멀어지고,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도 더 멀어지고, 자전과 공전 주기도 점점 더 길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창조 제 4일째에 이르러, 태양과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과 소행성들이 정해진 궤도를 안정되게 돌면서, 태양계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즉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안정되면서 하루와 일 년의 기간이 정해지고 달의 공전이 안정되면서 1년은 열두 달이 되고, 지구의 축도 적당히 기울어져 4계절이 생겼습니다. 식물은 태양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전인 3일째부터 지구에서 번성하였고, 물고기와 새는 태양계가 자리를 잡은 다음 단계인 5일째에 그리고 땅에 사는 동물들은 6일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다 창조된 뒤, 6일째의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창조의 6일’에서의 하루는, 지구의 자전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의 단위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주요 사건들의 구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계와 물질계를 포함한 모든 세상만물을 품고 계시며, 만물을 운영하시며, 3차원 공간과 일방통행의 시간울타리를 만드셨으며, 인간이 거주할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속해 있는 3차원의 공간과 일방통행의 시간울타리 안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하루를 지구의 자전 24시간으로 보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노아시대의 대홍수와 바벨탑사건의 시기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6000년으로 보는 사람들은 노아 시대의 대홍수가 불과 4천 년 전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4천 년 전이 아닌 훨씬 더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로서, 그가 살던 시대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은 지구과학이나 고고학을 전공한 분들에게 맡겨야 하며, 성경학자들의 소관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숫자들은 상징성이 있고, 상당 부분 생략되고 뛰어 넘어간 부분들이 있으므로, 단순히 덧셈이나 해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마태복음 1장 17절 한 절만 관심 있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가 지구 전체를 뒤덮는 큰 홍수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창7: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창7: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창7: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창7: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1규빗=약 45cm)



노아 시대의 홍수에 관한 이야기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 의해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모세 시대에 이르러 기록으로 남겨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방주에 타고 있던 노아가 볼 때에, 어떠한 산도 보이지 않았고 물만 보였던 사실을, 노아와 그의 후손들은 본 그대로 정확하게 후대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방주를 타고 물이 덮지 않은 육지가 혹시 있는지, 전 지구를 돌아다니며 조사할 필요도, 의무도 없었고, 그런 일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아담의 후손들은 그렇게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지 않았고 인구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덴의 동쪽 지역에서 농업과 목축을 하며 성(城)도 쌓고, 이미 철기(鐵器)시대에 돌입한 문명을 누리며 살았습니다(창 4:16~26).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모든 죄인들을 홍수로 멸하실 때에, 전체 지구를 물로 덮을 필요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지구 역사 6000년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불과 4000년 전에 지구에 대홍수가 일어나 지각에 대격변이 있었고, 대륙판들이 질주하듯이 움직여 오늘날과 같은 세계지도가 만들어졌으며, 에베레스트산과 알프스산과 록키산맥도 그때에 생겼고 대서양과 태평양도 그때에 형성되었다는 주장인데, 글쎄요, 이런 주장을 들으면서 왠지 좀 서글퍼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2YG_QByycM 



노아의 후손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홍수 후 다시 번성하여 수가 많아지면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살다가, 비옥한 땅에 이르러 그곳에서 농사지으며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만한 문명의 바벨탑을 쌓다가 실패한 이후의 일입니다. 인류가 전 세계로 흩어져 살기 시작한 연대와 그들의 이동경로를 조사하거나, 그들이 흩어지기 전에 쌓았던 바벨탑에 대해 고증하는 일은, 역시 신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인류학과 언어학과 고고학과 지질학을 비롯한 과학의 영역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대홍수나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와 언약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젊은 지구론을 세상에 알리기에 몰두하시는 분들은, 왜 지구의 나이를 그렇게 줄이려고 애쓰나요? 지구가 몇 년에 걸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는가의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실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만드신 날로부터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시기까지 6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날자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따져서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시간을 계산하는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그 창조의 6일이 얼마나 걸린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제발 과학자들에게 맡겨두시고, 과학자들에게 이러쿵저러쿵 하고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교회와 신학의 바른 자세라고 봅니다.



한편,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엮어져 있어서, 사람의 공간적 위치와 동작의 내용에 따라, 각 사람의 시간이 각각 다르게 흐른다고 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공간이동을 빨리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공간이동이 없이 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사실은, 현대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비록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수없이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다면, 하나님의 하루와 지구의 자전 24시간의 하루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시청하여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동영상이 있는데, 한 사람의 출생으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동영상입니다. 저는 그 동영상의 도입부와 중간중간의 장면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 결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영상은 80여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동영상의 모든 장면들은 저에게는 현재 시점으로 존재하며, 저는 그 동영상의 어느 장면이든지 특정 장면만 찾아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영상이 우주와 인간의 역사이고, 제가 그 제작자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해보려고 했는데 비유가 적절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재창조론과 간격 이론(gap theory)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만드셨는데, 사단이 반역을 일으켜 첫 세상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잠겼고, 하나님께서 다시 6일 동안 재창조를 하심으로 현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을 비롯하여 신구약상의 여러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설명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지형과 지층 그리고 동식물의 화석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오래 된 지구의 증거들과 현생인류의 역사는 6000년이라고 하는 믿음 사이에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절충점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은 3만 년 전부터라고 하며, 호주에는 7~4만 년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하여 사람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고 하고, 사해(死海) 옆에 있는 여리고에서는 만여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데, 현생인류의 역사를 6000년으로 보는 재창조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호주의 애보리진(Aborigine)들이 아담의 후손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이 이상합니다.



재창조론은 또한 첫날 만드신 ‘빛’에 대하여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재창조론에 따르면, 우리의 태양은 첫 창조에서 이미 만들어졌으므로 첫날 만드신 빛은 태양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단의 반역으로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에 깊이 잠겨 있었고, 태양은 있었지만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 4일째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과 다른 행성들이 제 자리를 찾고 정상적으로 운행하도록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첫날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태양이 지구를 비춘 것이 아니고 다른 빛에 의하여 지구가 밝아졌다는 것인데, 어디서부터인가 단추 구멍을 잘못 끼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양계에 대해 알게 되고, 우리 태양계가 우리 은하계의 변방에 있으며, 우리 은하는 또 다른 여러 은하들과 함께 작은 은하군(銀河群)을 이루고 있고, 여러 작은 은하군(銀河群)이 모여서 더 큰 은하군(銀河群)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주에 관한 수많은 진리가 이미 상식화 된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의 창조의 하루가 지구의 자전 24시간의 하루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는 간격이론(gap theory)은,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창세기 교실에서 사라졌어야 할 허상입니다.



위대한 선배들의 신앙과 업적을 존중하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좋으나 그들의 오류와 결점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지만, 그 진리를 보는 시력이 좋아져서 과거보다 더 잘 보이는데, 과거에 흐릿하게 보일 때의 그림이 더 정확하다고 우기면 곤란한 것이지요.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은, 정통보수 신앙이 아니라 맹신(盲信)입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오류가 없는 책이라는 사실을 진실한 성도들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들이 지혜와 지식이 미치지 못하여 아직 멀리 그리고 깊이 보지 못하여 성경에 감춰진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이며 특별히 지혜가 있거나,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하거나, 성경원문(히브리, 헬라어)를 읽을 수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그리고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지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귀하게 생각되고, 나는 아무 공로도, 의(義)도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썼고, 성령님께서 그 글들을 보관하시고, 모으시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보급하셨습니다. 영(靈)의 세계에 대하여, 조사하고 무언가를 입증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이 지옥과 천국을 촬영하거나 탐사선을 보내서 조사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과학자들과 대립할 필요가 없고, 과학의 발전에 박수를 보내며, 가끔 과학과 역사연구의 도움으로 그동안 애매하게 해석해 오던 성경구절들을 보다 사실대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자들 중에도 맹신적으로 무신론과 진화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교회는 그들에게도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독선과 완고함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보고 과학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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