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한국 조직신학의 역사적 생성과 미래적 과제 이정배 교수

하나님아들 2022. 11. 8. 16:16

 

         한국 조직신학의 역사적 생성과 미래적 과제

 

                               이정배 교수(감리교 신학대학,조직신학)

 

 

1. 들어가는 말

 

본 논고는 기독교 신학 내의 한 분과인 조직신학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통하

여 한국 기독교 상내에 태동되었는 지를 살펴보고 미래적 과제를 제시할 목적으로 쓰

여졌다. 이를 위해 주도된 초창기의 조직신학적 작업에 주목하며 이들의 작업이 조직

신학이라는 말의 학문특성과 본질에 부합되는 것임을 논증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본고

는 이러한 역사적.학문적(객관적) 논의를 토대로 21세기라는 세계 상황과 그 속에 자

리하게 될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를 향한 조직신학의 과제를 논의해 보려고 한다.

 

 

2. 한국적 조직신학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한국 기독교 일백년 역사 속에서 한국신학 형성의 토대가 되었던 것은 복음 및 기독교

서구문명과 조우하였던 구한말 민족 지성들의 고유한 태도, 곧 '동도서법(東道西法)'

의 입장과 선교의 주제가 [개화]로 부터 [독립]으로 바뀐 일제강점하 [서양지천 즉

동양지천(西洋之天 卽 東洋之天)] 이라는 언명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던

최병헌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서유견문록]을 썼던 유길준 같은 이는 위정

척사파들의 수구적 태도는 물론 동양의 도(道)를 서구의 기(器)로 바꾸려고 하는 김

옥균 등의 갑신정변파(東道西法)를 비판하면서  문화(器)라고 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

에 따라 다르게 전개 되는 것이지만 인륜 및 종교-도(道)라고 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

하고 불변적 속성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동도서법(東道西法)을 통한 배타

성과 폐쇄주의의 극복, 그리고 동양 전통자체의 폐기를 원치 않았던 유길준의 이러한

주체적 태도는 일제하에서 신학잡지 활동을 통해 전개했던 정동교회 초대목사 최병헌

에게도 계승되어 그 내용을 얻을 수 있었다. 최병헌의 논문 [죄도리(1901)]는 바로 한

국인에 의해 쓰여진 최초의 논문이며[셩산 유랑긔(1907)]는 비교종교학적 논문이고 그

리고 1922년에 쓰여진 [만종일연]은 유불선동양종교에 대한 기독교 변증론적 작품이었

다. 이러한 지적들은 향후 한국조직신학의 맥을 형성하게 될 다음 두가지의 근본 내용

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모든 종교를 한덩어리의 고기맛(하나의 신체험)으로 비유하면서 [서양지천 즉

동양지천]을 말했던 최병헌은 복음이란 유교의 내재적 원리와 기독교와의 끊임없는 대

화와 상호이해의 과정을 통해서만 한국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신학함에 있어서 주체

성의 문제를 환기시켜 주었다.

 

다음으로 이러한 최병헌의 신학활동은 정교분리를 준칙으로 삼았던 보수주의 자들이나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탈교회적인 기독교민족운동(신민회)과도 구별되는 것으로

서 종교를 떠나서는 어떠한 자유와 독립이 존재할 수 없다는 종교의 대사회적 역할물

음(종교해방신학)과 자연스럽게 접맥되었다는 사실이다. 무론 이러한 입장들은 시대적

제약으로 인해 기독교적 성취론과 유교적 엘리트주의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1918년 이

후 [신학지남]이란 잡지를 통해 명시된 장로교 신학자들의 타종교관과 비교해 볼때 그

신학적 가치는 분명해진다. 즉 한국 종교에 대한 신학적 접근을 포기하고 그것을 종교

현상학적인 경험과학의 대상으로만 인정했던 동경제대 출신 채필근이나 일반적인 종교

진화론은 부정하면서 오직 기독교만이 그 근원으로부터 발전해온 유일한 종교임을 강

조하는 박형룡의 조직신학에 있어서, 민족의 주체성 물음은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

다. 민족의 주체성 입장에서 기독교 복음과의 창조적 대화를 시도하였던 최병헌의 신

학적 입장은 이후 감리교 신학의 맥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신학 교육의 선구자 양주삼

(1879-1950)과 미국 게렛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 사조와 기독교 사회복음운동 등

을 배우고 돌아온 정경옥(1903-1945)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특히 정경옥은

1930년에 발표된 감리교 교리적 선언의 해설서[기독교 원리]를 집필하였고, 또한 한국

의 최고의 조직신학자로써 [기독교 신학개론(1938)]을 펴내기도 하였는데, 이를 위해

그는 종교 일반의본질 연구를 신학함의 기초작업으로전제하였다. 모든 종교를 역사속

에 나타난 일반 계시적 특성으로 이해하였고 이를 근거로 보편적 원조론과 같은 비극

적 인간이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정경옥의 자유주의적 입장은 비록 자유주의의

신학의 틀 속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본질은 그리스도 십자가 밖에 놓여진 인

간은 아무도 없다는 웨슬리의 성경적 은총론과 종교를 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득

적 능력을 하나라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향샹시킴에 그 목적이 있다는 감리교 신학

의 원칙과 관계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의 [조직신학개론]에 교회론이 생략되어 있

는 이유는 그가 교회현상을 간과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 원리] - 6조항에는 교회

론이 명시되어 있다. - 기독교를 사회적 종교로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 표명이라고 할

수있다. 바로 이제 후일 박형룡의 보수 장로교로부터 한국의 역사에 촛점을 둔 김재준

의 진보주의적 기독교가 태동 될 무렵 정경옥이 김재준의 손을 높이들려준 이유가 된

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1950년대 교리적 문재로 인한 한국 장로교의 분열은 한국

조직신학의 흐름을 삼파전으로 만들어 놓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즉 보수신학 으로 대변되는 박형룡과 진보적인 조선신학교의 설립자 김재준의 다음과

같은 신학적 입장들은 정경옥의 자유주의(문화주의)적 감리교와 평행선상에 놓여진

한국신학의 주요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 진보 및 토착형의

이러한 세신앙 유형들은 일제 말기를 거쳐 1960- 197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기독교내

의 신(神)의 초월성, 인간의 영적 순수성, 인간의 근본적 죄성, 문자주의적 성서이해

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 근본주의, 성서연구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현실 변혁적인 복

음의 대사회정치적 역할에 관심하는 사회정치적 진보주의, 그리고 신의 말씀은 성서

안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으며 그의 활동은 인류의 모든 문화나 역사를 통해서도 폭

넓게 작용한다는 문화적 자유주의 등을 뿌리내리게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장로교의 보수 정통신학(칼빈주의)은 개혁주의라는 신학 노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데 이들의 근본 입장 역시 인간이 회심이나 칭의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강조, 그의 주권에 종속된 세계 이해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

해 조직 신학은 그들에게 있어 최상의 권위를 지닌 학문으로 이해하게 되어지게 되었

다. 일부 장로교 계통의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이 신학 내의 다른 분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문적으로 최고의 보수성을 디고 있는 것은 이러한 변화될 수 없는 신학

적 틀 때문일 것이다. 한편 정경옥의 문화적 자유주의 노선은 1960년이후 감리교 조직

신학자 윤성범에 의해서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계시와 성(誠)의 현실성을 동일

시하게 보려는 윤성범의 입장은 근원적으로 유교의 내재적 원리에 있어서 기독교를 구

체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최병헌이나 하느님의 활동을 모든 문화 속으로 넓혀 놓은 정

경옥의 근본 신학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윤성범의 토착화론은 해석학

적 신학(김광식) 또는 한국 종교신학(유동식,변선환)에로의 발전을 그 과제로 남겨두

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감리교 소장 학자들은 자신의 논문 속

에서 모두 본 주제를 다루었던 것으로, 향후 한국 조직신학의 흐름을 이끌어갈 것이라

고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산업화의 부작용이 가시화된 70년대 이후 김재준의 진보

적 입장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의 조직신학자 서남동에 의해 민중신학으로 발전하면서

신학의 내용은 물론 그의 틀 자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의 형성

화와 그의 신학적 고찰]이라는 논문 속에서 서남동은 요아킴 피오레에 따라 현재를 성

령의 시대로 보며 또한 성령이란 문화적.사회적 억압에서 비롯된 인간의 한을 치유하

는우주생명적 중심원리 곧 하느님의 활동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이

다.  이로부터 그는 우리가 해석해야 할 텍스트는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며 성서(출애

급 사건과 부활사건 등)는 그것을 위한 콘텍스트로서의 충격 본보기를 줄 수 있을 뿐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구권의 변화와 함께 민중신학내의 자체내 논쟁

을 거쳐 조직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은 어느정도 마르크스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한국

종교의 영성에 내포된 해방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민중신학과 토착화 신학의 합류

를 꾀하는 새로운 입장(김경재)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장로교 내에는 민중

신학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바르트 우파로 머물기를 원하는 신학자 그룹(박봉랑)과 바

르트 좌파의 경향에서 한국의 통일 및 정치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그룹(박순경)이 짝

을 이루고 있는 것도 한국 조직신학의 한 특색이라고 하겠다.

 

 

3. 한국적 조직신학은 [조직신학}의 학문적 특성에 적합했는가?

 

조직신학이란 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활동 곧 기독교적 희망의 현실성을 자신의

근거로 삼으며 이를 다양한 물음을 지닌 현대인들에게 신학적으로 진술하고 그로써 인

간 삶의 질을 증대시킴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말하면 조직신학이란 성서가 증언하는

신앙인들의 희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의 신학 활동은 교회안팍을 막론한

모든 사람과의 보편적이며 열려진 대화 속에서 성실하게 수행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특징과 더불어 조직신학은 또한 신학분과내의 다른 학문활동과는 달리

신학적 물음의 역사성을 자신의 본질로 인정한다. 즉, 모든 신학자는 자신의 시대에

가능한 물음과 대답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를 체게화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사고를 진리

의 무시간적인 체계와 동일화 시킬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오늘날의 타종교인들과의

공론 문제, 자연 파괴에 직면한 생태계의 문제, 탈가부장적 가치체게를 창출하려는 여

 

성신학의 문제 등은 바로 이전까지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물음들인바

과거의 신학적 답변 체제를 가지고서는 대답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신학적

사유들은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활동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저마다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그것들은 더이상 절대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

듯 신학적 사유체계의 우상숭배성과 시대 부적합성을 벗겨버리고 하느님의 구원을 새

로운 언어로 표현하려는 신학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는 일명 조직신학의 생산적 기능이

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신학의 생산적 기능은 그러나 시간적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차이를 통해서도 가능한 것이다. 세계내의 각기 다른 문화적 콘테스트 속에서 복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신학적 정언 명령이며, 복음의 이러한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그렇기에 신학 자체의 본성이라고 명명되어 진다. 예컨데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서 태양(빛)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상징물 일 수도 있었지만, 인도인들에게 있어 그

것은 지독한 더위를 가져오는 인간의 원수로 이해되었기에 신학적 상상력은 문화적

(공간적) 정황을 떠나서는 그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서 히브리 기독교가 희랍적 공간 속에서 어떻게 모형 변이(paradigm chang

e)를 이루었는가를 배워 왔으며, 제슈이트 선교사 릿치의 [천주실의]를 통하여 유교적

토양과 하느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어려웠던 가를 익히 알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감리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조직신학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관에 근거를 둔 기독교

복음 , 더우기 19세기말 미국이라는 문화적 공간에서 태동된 보수적 기독교를 수용함

에 있어서 민족의 정체성, 사유의 정체성을 져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개화와 독

립 그리고 민주화 과정을 위해 기독교 복음을 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감리교 선구자

들은 기독교의 조선이 아니라 조선의 기독교를 위하여 당시 도그마화된 서구 기독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적 조직신학은 기독교 선교 이래로 신

학의 역사적 물음에  기초한 교리의 생산적 기능에 충실을 다해 왔다고 평가 된다. 이

후 감리교의 조직신학이 지나치게 포괄적(다원적)이기만 하고 배타적인 면이 없고 현

대주의로 전락한 나머지 전통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

만 이러한 문제제기는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의 본질 물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그

보다 먼저 교회, 곧 가시적 교회현장에 의해서 선취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본다.  이

는 조직신학적으로 정당한 것이 목회적으로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목회적으로 옳은

것이 조직신학적으로 그 정당성을 입증받을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양자의 자기

한계성 및 독자성의 물음과 관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4. 21세기를 앞둔 한국조직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노선에 충실한 독일의 조직신학자 몰트만은 전통적 신학이 직면하고

있는 이중적 위기를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신학은 현대사회 속에서 점차 그

적절성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신학 자체의 정체성이 의문시 된다.

이러한 신학의 이중적 위기란 직접적으로는 소위 후기 산업화라는 21세기를 앞둔 현대

사회의 엄청난 변화의 속도에 전통적인 신학의 틀과 그를 토대로 성장해온 교회현장이

보조를 같이하여 나갈 수 없다는 시대적 인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인간을 신의 자리에 앉게하는 (생명 공학의 발전) 큰 형님(Big Brother)의 조정하에

있는 정보사회의 도래, 전통적 창조 신앙과맞서는 그리고 또한 자원 고갈 생물층의

다양성 손실, 오존층 파괴 등으로 예고되는 생태학적 파멸의 묵시론은 이미 21세기

오염에 경험될 구체적 현실인 바 종래의 개인 구원이나 교회성장을 선교의 핵심개념

으로 하는 복음주의 신학 또는 복음의 이데올로기성을 강조하는 정치신학의 틀로는

생명의 보편적 가치가 문제되는 21세기를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조직신학의 상상력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예수 만이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생명 공간, 곧 지구라는 데에 까지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며, 그 회복을

위해서는 어느 한 교파 및 특정 종교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위성

(종교신학), 발전과 개발과 진보의 신화를 부추켜왔던 종래의 인간중심적 - 가부장적

사고 체계의 거부(여성신학), 물질적인 풍요가 결코 축복이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죄

일 수 있음을 선포하는 생명 중심의 목회 운동(생태신학)을 근간으로 신학적 파라다임

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직신학의 과제와 변화를 교회현장이 쉽

게 인정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교회란 현실적으로 변화가 가장 더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신학은 교회를 자신의 존재터전으로 삼으면서도 현상유지적 평화를 선포하

는 제사장적 역할로서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예견을 통한 예언자적 역할을 이끔

으로서 그에 대한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신

앙의 자기 이해로서의 신학은 점(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며, 역사이기에 신앙의 과정이

있는 곳에서 결말이 주어져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감리교 조

직신학은 웨슬레의 사상을 중심으로 삼기는 하되 그의 신학이 근대 산업사회를 배경하

여 탄생된 것임을 기억하고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그의 성화론을 창조의 신적 신비,

피조물의 거룩함으로 확대해석해 나가야 한다. 이로부터 오늘의 교회는 영성(Spiritu-

ality)에 대한 조직신학적인 새로운 이해에 귀기울일수 있을 것이다.

 

       [영성이란 인간이 우주내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우주는 인간내에서

        우주 그 자체를 발견하는 양식이다.(Thomas Berry)]

 

         1993. 6.10., 감신학보 1면에서

 

 

나단 감리교회에서     조병철 (nathan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