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이데올로기 문제
과 목 : 사회정치신학
지도교수 : 서창원 님
제 출 자 : 신대원 2/4
홍 성 호
Ⅰ. 들어가는 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뒤따르는 문제들에 대한 각 개인들이 내리는데, 이 대응을 처세술(處世術) 또는 삶의 기술(The Technique of Lives)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대응(경험 후의 행동)을 체계화시키고 비판 및 수용의 과정에 일정한 범주(範疇 category), 규범(規範 norm)을 만들고, 이에 준해 인간은 삶을 왜 영위하는가? 또는 왜 영위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등을 물은 후 답을 내린다.
이러한 문답의 과정은 점점 더 넓은 체계를 형성시키고 이 거대한 체계가 인간과 이 인간이 속한 세계에 대한 궁극적 질문(ultimate question)을 요청함으로써 세계관(世界觀 The world-viewpoint)1)을 자신의 존재기반으로 위치시킨다. 세계관은 개인 또는 집단의 존재기반으로서 작용할 때 의미가 있는데, 이와 대립되는 요소를 가진 타인 또는 특정집단을 평가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길은 나는 무엇이 아니다!(A는 not A를 통해 재차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부정이다. 이리하여 나는 무엇이다! 라는 선언이 강조되는 것이다.
자신을 과시할 때 사용되는 단어 중 흔히 권위(權威 authority)와 권력(權力 power) 그리고 이 두 요소를 기반으로 하는 정통성(正統性 orthodoxy)이란 것들이 있다. 종교적 조직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 조직의 창시자 또는 지도자에 대한 카리스마적 힘(charismatic power)이 부여되고 이 조직(또는 共同體)을 좌지우지 하는 원천이 된다. 조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폭력이 용인되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령 신의 뜻이라던가 하는 표현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의 문제는 정당화의 동기(motive) 및 수단(means)이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특히 그리스도교가 개인 또는 집단의 관행을 정당화하는 거짓된 보장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스도교 역사상에서 볼 때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거짓이라는 판단은 종교적 용어로 이단 등의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자신의 존재기반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써 외적인 보호물이 만들어진
다. 본인은 이 외적인 보호물을 이데올로기(ideologies)2)라고 부르고 싶다. 이데올로기를 복수로 사용하는 의미는 신앙을 조명하는 가능한 한 상호보완(相互補完) 및 상호배제(相互排除)의 특성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상대적 주관성에 속하기 때문이며 목적획득을 위한 모든 수단들의 체계이며 인간행동양식에 대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는 인식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3)
Ⅱ. 본 말
Ⅱ-Ⅰ.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이해
1> 마르크스주의의 배경
본인은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구별하고자 한다. 한반도에서 흔히 거론되는 사회주의의 바른 이름은 과학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르크스 자신은 이렇게 불리워지길 원했으므로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주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유럽사회주의의 발생근거는 생산구조의 급변화를 동반한 産業革命과 중세봉건주의를 반대하고 발흥하는 시민계급의 주장 즉, 혈연.지연이 아닌 개인의 노력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프랑스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4) 산업혁명을 통해 상품생산(商品生産).노동력(勞動力)의 상품화(商品化).잉여가치(剩餘價値)의 생산(生産)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형성하며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서서히 양분되기 시작했으며, 자유.평등.형제우애라는 원칙 아래 또 다시 생겨난 새로운 질서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질서를 확고히 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사회주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하거나 최소한 이의 폐해를 경감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통일되지는 않았으나 사회의 영향력 있는 움직임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때로는 정당과 같은 형태로 또는 소그룹의 테러집단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자 와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자 과 공산주의 라는 말은 라틴어 Socialis , communis 에서 왔으며 19C 초부터 통용되었다. 이 용어를 사용하던 이들을 초기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은 정확한 것이 아니며 다만 경향성이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자들에 비하여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향하면서도 혁명에는 동의하거나 동참하지 않았다.5) 사회주의자는 생시몽(Chande Henri Sanint Simon,1760-1825)과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7)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고, 공산주의는 바뵈프(Francois Emile Babeuf, 1760-1797)6)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다.
윤리, 정의, 질서, 법률들은 위로부터 계시된 것이 아니라 ... 우리에게 고유(固有)하고 본질적(本質的)인 것이다.... 종교와 사회는 동의어(同義語)이다. 인간 자신은 마치 하느님이기나 하듯이 신성(神性)하다. 가톨리시즘과 사회주의는 그 내용에서 동일하며 형태에서만 다르다.... 그리스도교는 예언(豫言)이었으며 사회주의는 실현(實現)이다. ... 7)
1843년 말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그 당시 풍미하던 사회주의 사상과 구별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과학적 사회주의(科學的 社會主義)라 하였고, 그 시대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조잡하고 피상적인 사회주의 또는 무차별적이고 금욕적인 공산주의, 환상적.유토피아적 공산주의 또는 공상주의(空想主義)라고 하였다.8) 마르크스 이후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으며 각국의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도 마르크스의 이론에 수정된 형태의 이론은 계속 이어졌다.
독일의 사회민주당(SDR)은 이론적으로는 혁명적이었으나 실제면에서는 기존의 의회정치(議會政治)에 응하였으며, 지도격의 인물인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1938)는 기독교의 創始者(예수)를 반(伴)신비주의적인 원시적 공산주의자(a quasi-mythical primative communist)로 묘사하기도 하였다.9)
러시아 혁명의 주역인 레닌(Vladmir Ilych Lenin 1870-1924)의 표현대로라면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적 유물론과 경제학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세 원천으로 하고 있다. 이 세 원천의 밑바탕에는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의 정치경제학과 프랑스의 사회주의가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인 마르크스주의는
레닌, 스탈린을 지나며 공산주의 이론으로 발전했으며, 마르크스의 예견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해도 레닌과 스탈린(Joseph V. Stalin 1879-1953)은 마르크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실재이론은 마르크스에게서라기 보다 레닌에게서 발전된 형태를 본다. 마르크스가 이론의 비판가라면 레닌은 이론의 적용가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 경제학이기 때문이며, 사회주의 경제학은 국유적(全人民的) 소유형태 및 협동조합적(集團的) 소유형태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인류사의 발전에 있어서 최대의 역사적 전환이다10).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제 1단계이며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겨우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생겨난 사회이며 따라서 경제적.도덕적.정신적으로 그것이 생겨난 모태인 구사회의 모반을 지니고 있는 그러한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보다 발전된 그후의 단계를 의미한다. 고 했고,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한 조각의 빵에 대한 걱정이나 이 세상의 강자에 대한 아첨의 필요성이 소멸됨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진실로 자유롭게 되는 사회 라고 하였다.11)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은 < 노동은 능력에 따라, 분배는 노동에 따라 ! > 이루어지는 사회주의 사회를 < 노동에 능력에 따라, 분배는 욕망에 따라! > 이루어지는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의 단계인 제국주의(帝國主義)12)와 끊임없이 투쟁할 것을 주장해 왔다. 레닌은 제국주의의 기본적 표지로서 생산과 자본집적의 고도의 발전에 기초를 둔 독점의 형성,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그리고 이 금융자본을 토대로 하는 금융과두제의 성립,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의 증대, 국제적 자본가의 독점단체에 의한 세계의 분할, 최대의 자본주의 열강에 의한 세계의 영토적 분할의 완료 등 5가지를 들고 있다.
2> 이데올로기의 개념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서는 마르크스 저작 중엔 어떤 체계적인 설명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견해는 산재된 언급으로부터 수집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수년 후에 엥겔스는 1893년 7월 14일자 메링(Mehring)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정의하려고 시도했다.13) 이 편지 속에서 나타난 것은 마르크스가 허위의식(虛僞意識)이라
불렀던 것과 유사한 즉 사회를 상.하부 구조로 양분하여 상부구조(上部構造)에 속하는 정신적 양상을 이데올로기라고 지칭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적 양상을 순순한 관념적 영역의 운동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처한 사회역사적 상황과의 관련성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변증법(辨證法) 사상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변증법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의 꾸준한 긴장을 통하여 즉자적이며 대상몰입적 의식과 대자적이며 반성적 의식을 개진시켜 나감으로써 자기확인 및 확보를 구축하는 독특한 적응방식을 창조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역사적 형성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상적 측면과 역사에 의해 제약당하는 특성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측면이 대립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14)
마르크스가 언급한 허위의식에 대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히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크게 두 가지로 양분시킨다. 하나는 사회적 생산수단(社會的 生産手段)의 소유자(所有者)이며 임금노동자(賃金勞動者)의 고용주(雇用主)인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채 살기위해서 자신의 노동력(勞動力)을 팔아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이다.15)
우리는 여기서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고 마르크스가 불렀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16)이 아니라 상부구조의 정신현상만을 지칭하는 것이어서 보편성을 갖지 못하는, 일정한 가치관에 입각해 있는 의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의식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해 가는 부르주아의 지배논리(支配論理)라는 말이다. 이 용어는 계급의식(階級意識)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는 자기집단의 사고체계 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의 사고체계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전체적·보편적 이데올로기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 절대성을 부여했던 것이다.다음음은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모든 나라 민주적 정당들의 통일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는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 밖에는 없으며 얻을 것은 온세상이다. 17)
남는 문제가 있다. 아직까지도 논쟁의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 즉, 흔히 존재결정론(存在決定論)이라는 것이다. 엥겔스가 철학의 양대진영이라고 했던 존재(存在)와 의식(意識)의 문제는 해결된 것 같지가 않다. 물론 마르크스가 전혀 의식의 역동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마르크스가 염두하고 있는 의식의 역동성은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대중적인 이론이다.
이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의 마지막에서 주장한 구절 즉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을 지칭하는 것이다. 세계를 변혁할 만한 의식은 참다운 이론이며 바로 혁명이론인 것이다. 바로 부르주아 혁명은 과거의 혁명이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미래의 사회혁명이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정치권력을 생산자들을 착취하는 또 다른 소수의 계급의 수중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착취 받는 다수를 대표하는 계급의 수중에 넣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Ⅱ-Ⅱ. 해방신학자들의 이데올로기 이해
- JUAN LUIS SEGUNDO를 중심으로 -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가 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힘들다. 냉전시대(冷戰時代)의 논리구조에서는 대화의 창은 더이상 없을 수 밖에 없다.18)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대화는 인류 미래에 대한 공동추구(共同追求)라는 구호 아래 가능했다. 그러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이다.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한 출발점은 구미 선진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억압이 대내외적으로 팽배한 남미의 현실에서 그러한 억압구조(抑壓構造)를 벗어나려는 해방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가 될 수 없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통찰력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였다.19)
해방신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인 세군도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信仰告白)20)이 현실적 장벽에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택한 이데올로기는 바
로 마르크스주의였다.21) 이들의 제 1세계를 향한 자본주의(資本主義)에 대한 투쟁(鬪爭)은 일종의 신앙행위(信仰行爲)이다. 이들에게서는 적색공포(Red Menace22))를 찾아보기 힘들다.
세군도23)는 해방신학의 대전제 신학적 사고는 신앙실천에 뒤따른다!24) 는 논리에 충실하며 세군도 자신은 해방신학자들의 다양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해방신학은 세가지의 기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25). 세가지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 세상에서의 개인구원에 대한 오래된 강조는 예수 메시지의 왜곡을 의미한다. 예수는 역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과정으로서 역사 안에서 이미 시작된 인간의 충만(充滿)하고 완전(完全)한 해방(解放)<full and integral liberation>에 관심한다.
둘째, 교회는 구원에 관한 한 어떤 종류의 마술적 효능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교회는 신앙과 예전에 있어서 해방적 요소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승리는 양적, 혹은 수적인 면보다는 기능적 측면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셋째, 역사 밖의 초자연적 질서와 역사내의 자연적 질서라는 이원적 분리를 인정할 수 없다. 단지 하나의 동일(同一)한 은총(恩寵)<one and the same grace>이 하나의 동일(同一)한 역사과정(歷史過程)<one and the same historical process> 내에서 참된 운명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수단들을 제공하면서 인간을 초자연적 경지에 까지 고양시킨다.
세군도의 신학은 결코 당파성(黨派性 Partiality)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음과26) 그의 신학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적 순환(解釋學的 循環 hermeneutic circle)27)은 현실에 대한 참여와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군도는 인간의 부류는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성 속에서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자신들의 삶이 신앙에 근거해 있다고 믿는 사람들, 둘째는 자신들의 삶이 이데올로기 주변에서 결정되는 사람들, 셋째는 이 둘 중의 어느 것에도 지지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개념정의에 따라 그 내용상 차이가 생겨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는 현상학적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신앙이나 이데올로기를 인류학적 차원의 용어로 사용한다.
이를 위해 그는 인간실존에 있어 기본적인 두개의 인간학적 차원을 설정하며 이 설정의 배경으로 까뮈(Albert Camus)의 희곡 칼리귤라(Caligula)를 소개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데는 다섯 가지 주요측면을 고려하게 되는데, 이중 세 측면은 신앙을 구성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측면은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첫째는, 인간(人間) 자유의지(自由意志)의 구조(構造)-structure of human free will-로서 인간이 어떤 형태의 자유를 선택하면 나머지 다른 형태의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잃어버린다는 것과, 둘째로 인간은 누구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일을 초월적 자료(超越的 資料 transcendentdata28))를 통해 선택한다는 것과, 셋째로 경험(經驗)의 사회적 구조(社會的 構造 social structure of experience)로서 위의 두 과정의 귀결로서 인간은 존재양식을 선택함에 있어 타인에 의해 제공된 자료들을 수용할 때 자료들에 대한 직접 경험없이 다른 사람의 가치평가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여기서 이미 어떤 이들에 대한 믿음 혹은 불신(faith in someone and in others)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가지 과정을 거쳐 신앙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되는데, 신앙은 모든 인간 삶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가치의 영역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것을 지시해 주는 틀(referential witness)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을 인간학적 차원의 신앙(anthropological faith29))이라 부른다.
신앙이라고 표현되는 인간의 가치체계는 그 구체적 실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두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다. 첫째로, 실재(實在)의 객관적 구조(客觀的 構造 objective structure of reality)이다. 이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동일한 현실 속에서도 다른 가치를 선택하는 문제를 극
복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의미(意味 meaning)와 효율(效率 efficacy)의 문제이다.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가치실현의 방법이 가져다 주는 결과에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니기 때문이다. 세군도는 인간이 유년기에서 성인기를 거치며 가치구조나 효율체계를 선택하는 일이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양식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 측면들을 고려할 때 제2의 인간학적 차원(人間學的 次元 a second anthropological dimension)이 있는데, 이것이 곧 이데올로기(Ideologies)이다. 세군도가 사용하는 이데올로기의 특성30)은 다음과 같다.
1> 효율성에 관한 인간의 지식(知識) 모두를 의미한다.
2> 결코 의미구조를 제공하지도 않으며 결정하지도 않는다.
효율체계(效率體系)31)
3> 항상 과학적(科學的)이며 합리적(合理的)이기를 추구해야 한다.32)
종교적 신앙이란 개념이 상정될 수 있는 것은 가치가 선택의 문제인 한 절대적 가치가 상정되고 그 절대적 가치를 신과 연결시킬 때이다. 그러나 이 개념에 대한 두가지 오해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는, 어떤 종교의 신을 호칭하는데 있어서 인간 삶을 구조화시키고 신의 계시가 바로 최고가치의 계시와 동등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행동한다는 개념이라고 한다. 또한 신앙은 각 개인을 위한 전반적 삶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학적 차원이며 그 내용이 관련되는 한 신앙은 가치의 크기 또는 그 크기의 기초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있어 절대적이라는 용어는 사실적 실재를 나타낸다기 보다는 결단을 언급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힌다. 인간이란 조건 지워진 존재는 절대적 실재를 지니는 것이 불가능하며 절대적 실재의 유일한 존재는 하느님이 되어야 하며 그 절대적이란 용어는 신적인 가치를 위해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적 경험은 인간이 사물이나 인간과 같은 불완전하고 사라져 버릴 것에다 절대적 가치를 위치 지운다는 것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둘째는, 절대적인 것과 신을 동등하게 놓는 등식에서 야기되는 최악의 결과로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떤 절대적이라고 하는 가정이다.
그러나 인간학적 신앙이 가치의 문제를 신적 계시에 위임하기 위하여 인간적 증언을 포기할 때 또는 인간 증언의 특별한 것과 어떤 특질을 논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느님에게 돌려버릴 때 그 신앙은 하느님과 관계된다. 그리고 바로 이 때에 종교적 신앙이란 개념이 설정된다. 인간학적
신앙은 그 적당한 성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종교적 신앙이 되기 위하여 움직여간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학적 신앙에 의해 세워진 기본적 가치의 현실화를 위해서 결정적인 특별한 전통과 초월적인 자료의 합성적 습득에 대해 인간들이 신봉한다는 접이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만이 이데올로기들과 참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Ⅱ-Ⅲ. 콘스탄티누스와 로마제국
지금까지 살펴 본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이해와 해방신학자 세군도의 이데올로기의 이해는 신앙(信仰)과 정치(政治)의 관계라고 압축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겪는 신앙과 정치 사이의 갈등을 어디에 기원을 두어야 하는지는 논의된 바는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주후 306-337)의 그리스도교의 공인(Edict of Milan 주후 313년)에 두고 있는 것 같다.33) 이는 제국교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기독교국가(christendom)로의 예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정치의 요소를 안기 시작했다는 말이며 순교자(殉敎者34)(martyr))의 피가 마지막날의 징조(徵兆)가 되기에는 그 필요성이 상실되었다는 말이다.
흔히 로마제국 하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公認)받았다는 것을 로마제국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勝利)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공인에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권력을 향해 질주하던 이방인의 우두머리 콘스탄티누스의 정치관계(政治關係)가 있기 때문이다.
알리스테어 키(Alistair Kee)는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정치신학의 과제를 첫째, 그리스도교가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들에 동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며 둘째, 순수한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라는 것이 실제로는 도금되어 있거나 바뀌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35) 이데올로기의 승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그는 자료들을 엄밀히 분석하여 콘스탄티누스이 끝까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었으며 그가 유럽을 정복하는데 사용한 표지36)는 그
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 그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정치적 상지인 십자가'였다는 것을 논증했다. 그가 이용한 종교는 제국의 평화(PAX ROMANA)를 유지시키는 수단이었음을 주장하였다.
어용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Pamphilius)는 콘스탄티누스을 마치 교회의 구세주로 비유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규범들을 제국 이데올로기와 마찰시키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의하면 아눌리누스에게 보내는 콘스탄틴의 편지 속에는 교회의 성직자들에게서 정치적 일에 있어서의 국가에 대한 봉사를 면제해준다고 명령한 대목이 있다.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아눌리누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중략 …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하지 못하고 공무에 종사하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오류를 법하거나 탈선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들에게서 이러한 의무를 면제해 주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율법에 헌신하게 하려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최고의 경배를 나타내게 되면 이 나라에 큰 행복이 임할 것입니다.… 37)
Ⅲ. 나오는 말
- 신앙과 이성의 상호수정 -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문제(허위의식), 세군도의 이데올로기 문제(제2의 인간학적 신앙)는 근본적으로 볼 때 콘스탄티누스의 이데올로기 문제(신앙과 정치의 관계성 문제)로 환원된다. 이는 정치신학이 주장하는 신앙과 정치 사이의 문제이고, 해방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인데 헤르비크 뷔헬레(Herwig Buchele)의 책 이름을 따라 『신앙과 (정치)이성』이라 불러도 좋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는 서로 봉사하고 서로 배우고 서로의 오류를 수정해주는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며 신앙과 이성의 중첩성을 밝히고 있다. 신앙은 죄악적인 열악한 상황에서도 무엇이 합리적인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되며 비판적 이성은 신앙을 실천함에 있어 여러 가지 오류와 오해를 제거하고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며 따라서 그것은 신앙의 내적 계기가 된다.38)
그는 신앙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세가지의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첫째,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조직하여 마치 출애굽을 성취시키려 하는 광신적 해방 모형(狂信的 解放 模型)과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편이며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 는 식의 관료적 신정 모형(官僚的 神政 模型)과 셋째, 권력과 폭력 앞에서 사생활의 문제로 퇴화시키는 소시민적 종교(小市民的 宗敎)의 모형이다.
신앙과 정치적 이성의 관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 척도(基本的 尺度)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길(方法論)이며 진리(理論)이며 생명(實踐)인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곧 이어 네가지의 기준을 들고 있다. 이 네가지 기준은 비폭력성(非暴力性)과 적대적 흑백논리의 내적 극복(敵對的 黑白論理의 內的 克服)과 자유로운 공개성(公開性)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선택(選擇)이다.
필자는 네가지의 기준 증 첫째 비폭력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폭력은 인간의 자율적인 결정권을 박탈하고 인간이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행동반경을 파괴하며 의사소통을 단절한다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비폭력이란 관용과 다양성의 인정이다. 뷔헬레는 적극적(積極的)이면서도 비폭력적(非暴力的)인 저항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사회에 대한 교회 자체(敎會 自體)의 폭력(暴力)의 사용(使用)에 대한 문제이다. 교회 내에 남겨진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는 않은 듯 하다. 적어도 여성신학(女性神學)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현재까지 닫혀 있다고 하겠다. 더구나 가톨릭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리라 판단한다.
개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표준을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과 우리 교회가 가진 이데올로기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라고 생각한다. 남겨진 문제는 신앙과 이데올로기(이성) 간의 상호수정을 과정을 교회라는 구조속에서 얼마나 마련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교회는 점점 대형화(大型化)되고 중산층화(中産層化)되었으며 그러나 상대적으로 농촌은 피폐(疲弊)졌으며 지구상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념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문제는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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