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sa Balasuriya의 위성 신학 연구
지 도 변 선 환 교수
감 리 교 신 학 대 학 신 학 대 학 원
조 직 신 학 전 공
조 병 철
목 차
Ⅰ. 서 론 - - - - - - - - - - - - - - - - - - - - - - - 1
1. 문제 제기 : 위성 신학(衛星 神學)이란 무엇인가? - - - 1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 - - - - - - - 2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 - - - - - - - - - - - - 3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 - - - - - - - - - - - - - 5
(3) A.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 - - - - - - - - - - - 7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 - - - - - - - - - - - - - - - 9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 - - - - - - - - - - - - - 13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 - - - - - - 14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 - - - - - - - - - - - 14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 - - - - - - - - - - - 20
(3) 아시아 교회의 희망 - 해방과 정의 - - - - - - - - 26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 - - - - 31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 - - - - - - - - - - - - 32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 - - - - - - - - - - - - - 36
(3) 세계 체계과 인간해방 - - - - - - - - - - - - - 38
3.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향한 추구 - - - - - - 42
(1) 신세계 질서의 가치와 목표 - - - - - - - - - - - - 43
(2) 세계 변형을 향한 투쟁과 전략 - - - - - - - - - - - 48
(3) 신세계 질서와 인간 해방 - - - - - - - - - - - - 51
Ⅲ.위성 신학: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 - - - - - - - - - - - 54
1. 전통 신학의 재고(再考) - - - - - - - - - - - - - - 54
2. 창조와 해방의 하느님 - - - - - - - - - - - - - - - 58
(1) 하느님과 창조 - - - - - - - - - - - - - - - - - 58
(2) 하느님과 해방 - - - - - - - - - - - - - - - - - 60
3. 우주적 그리스도와 보편적 성취 - - - - - - - - - - - - 62
(1) 예수와 하느님 나라 - - - - - - - - - - - - - - - 62
(2) 예수와 인간 해방(人間 解放) - - - - - - - - - - - 65
(3)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적 실천 - - - - - - - - 68
4. 변화하는 시대의 교회론 - - - - - - - - - - - - - - - 71
(1) 교회의 근본적 전환과 선교 - - - - - - - - - - - - 71
(2) 성찬(聖餐)과 인간 해방 - - - - - - - - - - - - - - 73
(3) 교리 교육의 재검토 - - - - - - - - - - - - - - - - 76
(4) 예배의 갱신과 아시아 종교 - - - - - - - - - - - - 79
5. 정의의 영성 - - - - - - - - - - - - - - - - - - - - 82
(1) 정의의 필요성 - - - - - - - - - - - - - - - - - - 82
(2) 신학적 덕목과 사회정의의 덕목 - - - - - - - - - - 85
(3) 사회 정의(社會 正義)의 영성 - - - - - - - - - - 87
Ⅳ. 결 론 - - - - - - - - - - - - - - - - - - - - - - - - 91
1. 요약 - - - - - - - - - - - - - - - - - - - - - - - 91
2. 세계 종교 해방의 신학을 향하여 - - - - - - - - - - - 93
참고 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96
Abstract
Ⅰ. 서 론
1.문제 제기 :위성 신학이란 무엇인가 ?
위성 신학의 출발점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 곧 정치-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세계의 종교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에 주어진 상황적 신학인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세계 역할은 미미하면서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가지고 시작한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는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자만심에 빠져있는 현실을 볼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할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것이다.
더우기 종교-문화적 다원 상황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배타적 그리스도교의 모습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신학을 우리는 타파하고 새롭게 정향된 신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세계 체계는 몇 세기전 서구 열강들에 의해 불합리하고, 불의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편 일엽적인 지엽적 변화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계의 변형을 위한 그 전략을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발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제 하나의 전체로서의 위성(衛星)인 지구는 신학하기 위한 하나의 장(a context)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1) 세계의 모든 질서는 서로 연관되고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기적 공동의 장으로서 하나의 위성으로서의 지구에 관심하는 신학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위성 신학은 21세기를 위한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다.
W.스미스에 의하면 새로운 세계 공동체는 서로 빈틈없이 협력하고 살아가는 다문화(多文化) 적인 가치들과 종교적인 다원성(多元性)의 모습을 띤 세계'라고 말한 것과 같이 오늘의 신학은 이러한 세계적 지평을 가져야 할 것이다.2)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현대 신학의 중요한 동기는 전통적 신학과 같이 지엽적인 것이 되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의 현실이 하나의 지구촌으로서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선진 공업국은 후진 자원국과의 관계에서 발전되었으며 서구는 제 3 세계에 막대한 빚 -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은 평화, 인권, 정의, 국제적 갈등의 해결, 나아가서 식량과 고용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찬란한 위성적 상호 의존의 세계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전세계에 일어나는 빈번한 전쟁, 테러, 분쟁, 지역 감정 등은 종교적, 문화적 현실의 다원적 추구를 배타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원적 종교 신학에 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무역 역조, 빈곤, 기아 등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지역 엘리트의 비인간적인 이기주의는 끝없이 정치-경제적 해방을 추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특히 아시아에서의 지역 갈등은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과로 빚어졌으며, 이 지역의 민중을 끝없는 해방 투쟁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변화 되었고 공산주의는 패배하였다. 이를 기회로 미국은 제국주의적 근성을 드러내어 신패권주의(新覇權主義)로 부상하기 시작하였으며,3) 독일과 일본과 같은 양차대전 패전국들은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4) 특히 아시아에서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는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위성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의한 현실 앞에 놓인 신식민주의(新植民主義)에 대응하는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위성 신학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위성 신학과 연계해서 위성 신학의 가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세 신학자의 신학 - 스미스의 세계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 그리고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을 간단히 다루고 위성 신학의 연구 가치를 제시할 것 이다.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W. 스미스는 국제적인 상호 관련성 가운데 있는 세계 공동체를 지향하는 다문화적(多文化的) 차원을 긍정하면서 냉소적인 그리고 비(非)건설적이며 파괴적인 상대주의를 넘어서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는 우리가 신앙의 다양성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신을 섬긴다는 원초적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스미스가 제시하는 비교종교학적 세계이해이다.5)
스미스에게서 우리가 수용해야할 새로운 개념은 바로 협동적-비판적 자의식(Corporate critical self- consciousness)이다.6) 이는 하나의 주체 대 주체의 관계성을 유일한 상태로 인식함으로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초월하려는 의도적 방법이다. 휴즈(E. Hughes)는 이를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에서 참된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 방식은 신학에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타자를 하나의 주체로써 받아들임으로서 배타적이고 편파적인 비인격적 의식을 탈피하고 세계적이고 인격적인 의식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7)
타문화, 타종교에 관한 풍부한 지식이 서구에 알려지고 서구 신학은 타종교의 통찰을 자신들의 사고 속으로 통전 시키도록 도전 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신만이 참 실재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소유한다는 독선주의적 신학을 포기하고 더 큰 진리에 대한 다원주의적 비젼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은 신학에 있어서 지식적인 의무일 뿐만 아니라 목회적인 필연(Pastoral Necessity)이 되었다.8)
바로 세계 신학은 종교 참여자들이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종교적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은 특정 종교의 통전적 사상을 필연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로 스미스는 이러한 대화의 방식을 통해 종교학적 만남을 제시한다.
그러나 기독론에 있어서 스미스의 비판은 그리스도교 절대주의에서의 중심적 지주로서 기능한다고 보면서 신중심적인 정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로고스(Logos)의 인간적 현실화(actualization)로서 이해되어진 나사렛 예수와 보편적 계시와 구원행위 속에서 하느님으로 이해되어진 로고스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9)
또한 선교에 있어서 개종보다는 각 전통의 신학자들이 세계의식 안에서 자신들의 진리나 초월 이해를 설명하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발생하기를 스미스는 희망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스미스의 세계 신학은 축소주의적 계시 이해, 기독론의 불명확성, 구원 혹은 해방에 관한 의견이나 실천적 방향이 결여되고 단순히 비교종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문화적 대화에 치중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은 다원주의적 종교 상황을 긍정하면서 그가 속한 힌두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토착화신학이다.10) 카 릭 어머니와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그는 두종교 사이의 종교적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파니카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힌두교의 교리가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진리는 흔히 완고하지는 않지만 특수하고 제한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실제에 있어서 그것들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가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제한된 공식화 라고 보면서 이는 대화를 통해 하나의 종교적 진리가 두 전통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서술되는 것이라고 보았다.11)
그리하여 파니카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변증법적 대화(Dialectical Dialogue)를 거부하고 대화적 대화(Dialogical Dialo- gue)를 사용한다.12) 대대적 대화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절대화 하기를 거부한다. 이 대화는 제 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히 실재적 요소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결국 대화적 대화는 제 종교들은 그 보편성과 특수성 모두가 동시에 긍정되면서 상호 만남과 성장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13)
파니카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유일한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전체로서 신비의 한 양상일 뿐(Christ is but one aspect of the Mystery as a whole)이다.'14) 또한 그리스도는 인간, 신성, 그리고 물질을 성장케하는 실재의 중심(centre of reality)이며 결정체점(cyristallization-point)이다.15) 그리스도는 라마, 크리슈나 이쉬바라와 같은 또 다른 이름이며, 인간, 신성 그리고 우주와 같은 실재의 전체성에 대한 생생한 상징(a living symbol for the totality of reality: human,divine and cosmos)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영, 진리, 사랑, 정의와 같은 중성적인 상징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재인 것이다.
파니카는 기능론적으로 그리스도는 타종교의 구세주와 일치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 자체이며 예수는 그 구체적 표현이지만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파니카는 역사적 이름이나 형태는그리스도의 완전한 혹은 최종적 표현이 되어질 수 없다고 진술한다.16)
바로 대화적 대화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의 연결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고 봄으로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그는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확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카워드에 의하면 파니카는 현대의 그리스도는 역동적으로 현존하며,성령으로서 우리를 이끈다고 본다. 성령으로서의 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배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를 뛰어넘게 하여, 신비에 대한 범세계적인 경험을 인정하고 참여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파니카는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참된 경험은 인간과 우주적 코이노니아(Koininia) 에 있다고 보았다.17)
(3) 피어리스의 해방신학
오늘날 제 3 세계란 피어리스에 의하면 인종과 계급과 성(性)의 차원에서 사회-경제적 의존이 정치적이고 문화적 예속을 발생시킨다면, 그 곳이 어디든지 또 그 때가 언제든지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 를 말한다.18) 이러한 제 3세계에서는 해방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재 비그리스도교 종교와 문화의 고유어들을 이용해서 자기네 궁극의 염원을 파악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상징화 하고 있다. 이러한 해방의 투쟁에 그리스도교적 종교 신학은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의 해방하는 물결 속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현재의 전통적 경계선을 확장 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피어리스는 주장한다.19)
피어리스에 의하면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은 구원 사상이며 모든 종교의 관심사가 해방 혹은 열반(nirvana)이며, 가정적인 어떤 해방자에 대한 사변이 아니라고 보았다.20) 그는 현재의 종교 신학들이 한결같이 자신이 소속된 종교의 경전의 언어적 해석이나 개인의 자기정화라는 소승적(小乘的)인 사회-문화적 혁명에만 관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종교의 대승적(大乘的) 차원 곧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구조적 혁명이라는 대의(大義)에 관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제 3세계의 종교 신학이라면 마땅히 종교와 혁명을 단일하게 파악하는 신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한다.21)
또한 해방 신학은 교회의 관심을 ① 삶의 전례 (the Liturgy of Life)와 ②십자가의 신학, 그리고 ③ 역사적 예수와 그의 인간성에 두고 있으며,22) 이는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세차원인 성사적 차원, 관상적 차원, 행동적 차원을 통해 세계 변혁을 위해 투신하는 그리스도교적 투신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전례와 영성과 세속 활동들이 상호 포괄되고 그것이 교회의 참된 쇄신을 가져오는 것이 실천적 해방신학이라고 보았다.23)
아시아의 해방 신학은 아시아의 실재인 종교심과 가난의 상호 작용에 관심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 그들을 가난하게 붙들어 묶는 심리-정신적 자유, 사회-정치적 자유라는 것이 아시아 신학의 본질적인 관심사가 된다.24) 이 한 해방의 과정은 예수 생애의 두 중심인 요르단과 갈보리에 집중된다.
해방의 과정으로서의 예수 생애는 요르단 강의 수세를 통해 전통에서의 해방을 위한 결단을 보여준다. 요르단은 세계 - 포기(出世間)'의 영성이며 이는 자발적 가난과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의 합류점이다. 이는 곧 아시아의 수행(修行) 종교의 초우주적인 영성과 소박한 농민들의 우주적 종교심이 만나는 장인 것이다.25) 오직의 교회 역시 이러한 아시아의 요르단에서 예수와 같이 수세를 받아야 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예수의 갈보리에서의 죽음의 세례는 그의 예언자적 사명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는 해방의 역할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26) 십자가야말로 성사(聖事)라고 일컫는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하게 참된 세례이며, 십자가야말로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심과 경건한 아시아인들의 가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아시아의 물길에 교회가 뛰어들어야 모든 것을 나누는 이상적인 공동체, 종교적 사회주의'가 이루어진다.27)
그러나 이러한 피어리스의 소승불교의 금욕적 차원에서 나타난 그의 해방 신학은 종교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대해 애매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비체험과 아시아의 고난받는 백성의 해방이라는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변선환 교수는 비판한다.28)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이와같은 세계적인 관점의, 종교신학적 사유를 가진, 민중의 참된 해방에 동참할 수 있는 신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소유한 것이 바로 티사 발라수리야의 위성신학(Planetory Theology)이다.
발라수리야의 위성 신학은 신학의 관점을 지구라는 위성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며, 아시아의 종교심과 자본주의의 세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압박받는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는 신학인 것이다.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위성 신학은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의 체계(World system)에 관심한다. 그리고 이 세계 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가운데서 해방을 촉구한다.
2부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다종교(多宗敎)와 고난(苦難)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 문화적 상황은 다원주의적이며, 이전의 배타적인 종교심으로서는 아시아에서 타종교로부터 배타적인 태도를 당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인 종교심을 넘어서 다원주의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세계 체계 속에 있는 아시아의 한계를 서구 문화에의 대립을 넘어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는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위성인 지구 공동체 안에서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서 모든 질서와 환경이 발생한다는 것을 재고 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는 고난 받는 지구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등 종교의 집단적 다원 구조를 가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에 서구 식민지로서의 정치.경제의 침략지로서 초토화되었던 땅의 백성들'의 거주지이며, 이제는 새롭게 아시아 교회의 희망을 요구하는 변혁의 땅이다. 한국의 6.10 운동과 필리핀 민중의 2월 혁명을 통해 정치적 승리로 변화하는 정치적 민중 승리의 터전이다. 곧 아시아 민중의 희망과 교회의 희망은 정의이며, 새 하늘과 새땅이다.
위성 신학은 세계 체계를 살펴봄으로서 그 문제점을 파악한다. 즉 인간의 집단적 그리고 개인적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종교적, 정치-계급적, 인종적 그리고 성적(性的) 구분에 따른 불평등에 대하여 위성 신학은 해방의 영성으로 도전한다.
바로 이 해방의 영성은 정의의 영성(Spirituality of Justics)이며, 해방의 정치 윤리이다. 이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종교적 변형을 추구한다. 또한 생명의 해방과 만유(萬有)의 회복을 향해 세계는 혁신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3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개념을 다룬다. 위성 신학은 곧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이다. 이제 까지의 교회중심적이고 남성 위주의,시대-우월적인, 그리고 전기-자본주의적이며, 반공적이고, 반혁명적인 신학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제 동서의 대립은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상호 배타적인 대결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없다. 이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만이 존재한다. 여기에 신학은 해방적이며 상황적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창조와 제 2의 창조로서의 해방의 하나님으로, 인류와 더불어 새로운 해방을 추구하도록 권면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지평을 우리에게 희망을 통해 보여주신다.
우주적 그리스도(Universal Christ)는 전세계와 인간 역사의 혁명 안에서 더 나은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은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며, 다른 종교 전통과 사상에 진정한 대화를 하도록 개방시킨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 인간 연대의 원리를 발견한다. 예수는 인간 해방의 원리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교회는 말씀과 예전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함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시대의 현실에 응답하여야 한다. 교회는 위성 시대(衛星 時代)에 있어서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조직적인 구조와 다른 잔존하는 것들이 현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고 통전적 회심을 통해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지구적 상호교통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진정한 사랑이 교회의 결합 원리이며, 교회 내에서의 여성해방에 관심한다.
신앙은 정의의 영성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데 성서는 진정한 종교의 기초를 이웃에 대해 정의로운 것, 즉 사회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통전적 해방을 선포했다. 그는 최후 심판 비유에서 인간의 고난을 경감시키고 압박 받는 자의 해방을 위한 노력을 계수하신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삶은 압박받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삶으로서 그들의 통전적 해방을 위해 그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계의 모든 물질을 정의롭게 사용해야 하며,인간 존재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희망은 잃었던 신학적 덕목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사랑은 바로 정의의 성장이며, 정의는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며, 혁명적 변화에 참여함으로서 상황적이며 급진적이어야 한다.
결론에서는 이제까지의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이해와 세계종교해방에로의 길인 위성 신학을 요약하고 세계 종교-해방 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서 본 논문을 마칠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세계 신학과 종교 신학 그리고 해방신학의 관점을 통합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적 신학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토착화 작업의 하나가 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성 신학은 현대 후기의 신학(Post-modern Theology)으로서 통전적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는 한국에서의 종교 신학과 민중신학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종교-해방신학(世界宗敎-解放神學;World religio- liberation theology)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2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세계체계에 대한 파악이며, 그 체계의 현실에 대한 재고(rethink)만이 참된 해방의 길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는 제 3 세계의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약 13%를 차지하고 있다.29)
티사의 위성 신학은 아시아에 우선적으로 관심한다.30) 물론 그의 위성 신학에서는 세계 체계(World System)에 대해 먼저 다루고 있지만,31) 아시아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시아의 현실은 다종교(多宗敎)와 고난의 차원에서 이해되는데 이는 아시아가 세계 열강의 식민지적 착취에 이용당해 왔으며, 여기에서 해방하려는 추구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32)
나아가서 세계의 체계와 신세계 질서의 관련성을 다루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제 3세계와 관련해서 검토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에 대한 요청을 인식하도록 할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교회와 세계 체계와의 관련성을 파악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의 필요성을 밝힐 것이다. 바로 위성 신학이 관심하는 근거로서의 세계는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구로서의 위성(衛星)이란 상호 연관성 아래 놓였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티사는 아시아의 문화들과 종교들에 대한 이해는 세계 체계와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아시아의 세계에 대한 연관성은 식민지적 접촉과 무역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민중들에게 서구의 과학과 문화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33)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결합한 서구 과학은 인간의 신성함이나 사회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에 대해 파괴적인 역할을 하였고 서구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구 과학에 영감을 주기에 실패하였다.34)
그러나 아시아 문화와 종교는 서구 자본주의의 것과는 아주 다른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티사에 의하면 아시아는 아직도 농촌중심적-땅중심적이고, 전통적인 가족관계 즉 대가족(大家族) 제도나 공동체 의식 그리고 경로 사상(敬老 思想)을 가지며, 삶에 있어서의 가치의 비중을 물질에 두기 보다는 인간에게 두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적(大乘的)인 태도는 자연과 모든 생명 형태를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실천들을 포함한 타인의 관점에 대해 중용(中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전통에서와 불교에서 관용의 중도(the Middle path of tolerance)'라는 사상에서 잘 발견된다.35)
아시아에는 다종교(多宗敎)의 상황 가운데 대부분의 아시아 민중들은 아시아의 종교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신앙은 아시아 종교의 지적 총합에 앞서 아시아 민중의 내면에는 정령 신앙(animism)과 제례(祭禮)가 중요시 되고 있으며,36) 이것이 바로 아시아 사회의 토대이다. 아시아의 종교성은 단지 철학적 훈련이나 명상적 금욕주의가 아니라, 전통들과 신조들, 관습과 삶에의 외경,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아시아 민중의 이야기 속에서 짜여져 있다.37)
종교는 인간 존재들에게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을 자극하는 세계-침투 세력이다. 종교들은 그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응답을 추구한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응답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좀 더 나은 방식에로 인간적 삶을 추구하고 인식시키는 것에 모두를 참여시키는 것이다.38) 각 종교 전통은 그것이 뿌리박고 생활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관계성을 가지며 사회 세력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평화로운 실존과 외적 성장이 계속되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그룹에 의해 조직된다.
티사는 종교적 전통과 조직화에서 두가지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그 혁신적 메세지의 핵심이며, 둘째는 그 사회-문화적 상황(狀況)이다. 전자는 기본적 삶의 의도와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종교의 조직화와 외적 양상을 평가를 위한 하나의 비판이 되어져야 한다. 후자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그 신앙의 내용이나 질(質)보다는 사실상의 인간 집단화에 더 관계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은 핵심 메세지에 대한 응답이며, 한 종교 전통의 전(全)사회-문화적 상황을 수용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39)
그러나 이러한 종교-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종교주의'의 등장은 인종 차별주의나 계급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와 같이 극단의 한 형태로써 배격해야할 것으로 티사는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주의는 우월한 문화, 사상 혹은 인종적 집단에 묶여있는 종교라면 더욱 강하다. 즉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우월성 또한 종교적 영역에로 전이(轉移)되기도 한다.40) 이러한 종교주의는 다종교(多宗敎) 가운데서 관용과 대화 그리고 일치운동(ecumenism)의 현대 정신에 확실히 위배되는 것이다. 종교주의는 또다른 종교 신자에 대한 존경심과 하느님에 대한 외경을 저버리는 것이다.41)
종교가 종교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화가 필요하며, 타자에 대한 겸손과 봉사의 덕을 수행하며, 존경과 대화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그 자신의 독점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42)
아시아의 종교는 아시아의 방식대로 전파되었다. 즉 인도의 종교로서의 힌두교와 불교는 동쪽과 남향으로 전파되었으나 그리스도교와 같이 폭력적이거나 상업적인 것이 배제된, 문화적이며, 비폭력적이고, 공존적인 방식으로 확산되었다.43) 아 아는 고대로부터 인생의 의미와 세계 이해와 신적인 교제를 추구했다. 티사는 그러한 종교를 힌두교와 불교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교, 자연에 대한 무제약적 경험에 대한 일본인의 표상인 신도(神道), 명상 수련을 통해 정신 반성과 실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선불교(ZEN),그리고 코란에 의해 사회-정치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슬람을 포함 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아시아인의 기억 속에 서구 세력이나 상업적인 동맹 세력의 압제하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아시아 민중은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며 먼저 그리스도인은 진실로 존경하는 태도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곧 관계성의 개방(Openness of Relationships)을 요구한다.44) 우 는 우리 자신을 타자에게 개방하고 진정한 인간성을 배워야 한다. 이는 모든 인격과 민중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그리스도교의 독점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그들의 영적 성장과 성취를 위한 수단 없이(without the means) 아시아의 민중을 버려두지 않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45) 그러면 우리는 구원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이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질문되어져야 한다. 왜 아시아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그들의 종교에서 영감을 계속 받고 있는가?
그리스도교로서의 응답은 새로운 질문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아시아와 아시아 민중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깊은 변화를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복음의 핵심에 대한 재전환(reconversion)을 의미한다. 아시아 종교와의 충실한 대화는 그리스도교 계시가 하느님의 유일하고, 특권적이며, 궁극적 계시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46)
티사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신학에 대한 재고를 심각하게 질문한다.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신약성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관시킬것인가? 힌두교에서 예배하는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하느님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상호 의존적인 지구 공동체의 일치와 다종교(多宗敎)안에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관점에서 모든 종교의 일치를 향하여( an ecumenism of all religions) 하나의 공동적 영성의 핵심을 만들어 나아갈 수 없을까? 그리스도교는 그의 메세지가 이러한 영적핵심을 유지하면서 정화되어질 수 있는가? 47)
동시에 그는 위의 종교 신학적 질문외에 해방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아시아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통전적 해방(the integral liberation of Asian people)에 대한 공헌을 요구한다. 즉 그는 아시아의 종교들이 그의 한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해방을 위한 아시아 공동체의 추구에 동기 부여와 세력의 근거가 되어져 왔다고 평가한다.48) 이는 인도에서는 힌두교, 중동에서는 이슬람교, 그리고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그 자신의 개성과 독립을 위하여 동기부여를 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3.1운동은 다종교(多宗敎)의 연대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며, 필리핀의 2월 혁명은 그리스도교 세력과 사회주의적 민중의 승리라고 볼수 있다.49) 티 는 과연 그리스도교는 가난과 죽음에 대항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요청과 다른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해방투쟁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갱신될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한다.
특히 여성해방의 심각한 문제는 아시아 여성이 이제까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티사는 아시아의 전통적 양상에 여성들과 모성에 대한 확실한 존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성을 불공평하게 취급해왔다고 비판한다.50) 그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성에 의존되어 왔으며, 노동, 임금에 대해서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왔다. 또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생활에 적잖은 제한이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도시지역과 교육받은 여성 가운데서 변화되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차별대우의 원인은 심리적으로 깊게 자리잡은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의 의존성 때문이다.51) 그러나 아시아 종교들은 여성의 권리들을 일반적으로 강조해 왔다.52) 아시아 사회에 널리퍼진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는 종교적 가르침과, 관습들 그리고 성성(聖性:sanction)들에 의해 보호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완전한 여성 해방은 아시아 여성들이 스스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용납되어지고, 용납할 때까지는 아직도 먼길이며 많은 투쟁들이 남아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인종 차별과 소수 민족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계급제도는 모든 아시아 나라에서 - 특히 서아시아에서의 아랍과 이슬라엘의 갈등과 대만에서의 인종 차별에서도 볼수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아시아 전체에서 인종에 대한 정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식민 통치에 의해 소수 민족의 권리는 짓밟혔고, 모든 민중은 가장자리로 쫏겨나고, 제 2 계급의 시민으로 전락되었다.53)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경은 식민 통치자에 의해 선을 그어 제멋대로 나누어 졌다. 또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낮은 카스트에 속한 민중들은 대부분 땅없는 노동자로 구조적 규정,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의 채택, 가난 근절에 대한 정당의 서약에도 불구하고 계속 착취되어 왔다.
아시아의 이러한 종교-문화적 상황은 다종교(多宗敎) 안에서의 끝없는 갈등으로 존재하였고, 문화전반에 걸쳐 해방을 향한 희망에로 그 촛점이 맞추어 나가게 되었다. 아시아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하나의 희망을 추구한다. 이는 종교 해방이며, 민중과 모든 존재의 해방이다.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은 또한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정치적 현실은 결국 경제적 현실로 연관된다. 이는 서구 식민 통치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티사는 제 3 세계가 제 1 세계의 기호에 어울리게 세계 체계를 형성하도록 그 번영의 대금을 오랫동안 치뤄왔음을 상기시킨다.54)
제 3 세계 민중들은 개발되거나 선진 제국들을 위해 미가공된 물질과 값싼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알기 시작했다. 지난 400여년간 아시아는 무자비한 서구의 착취적인 체계의 원조하에 있었으나 아시아는 깨어나기 시작했고, 21세기의 아시아는 세계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신흥공업 국가의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점차 무역 개방을 시도하여 아시아의 빈곤에서 벗어 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는 전세계 인구의 6할인 29억 4,1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가 절대적 내지 상대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55)
이제 아시아 민중들은 그들 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 세계 체계를 움직이고자 했다.56)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이러한 해방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서구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서 서구 우월주의에 참여하였고 그들은 세계의 대기업과 자신의 중소기업을 결합시켜 육성하였고, 그 사업에 인간 보호라는 일본의 문화 가치를 결합시켜 노사 관계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은 아시아의 여러나라에 대한 착취를 통해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공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모델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티사는 비판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 대한 아주 무자비한 착취에 의존하고, 독재적인 정부를 옹호하기 때문이다.57)
아시아의 약 40%를 차지하고 아시아 인구의 약 20%를 가지고 있는 구 소련(舊 蘇聯)은 시베리야의 자체 개발이 불가능함에 따라 그의 사회주의 사상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일본 그리고 미국 자본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58) 구소련의 해체에 따라 새로운 민족주의적 국가들이 탄생하였고, 러시아 연방은 자본주의에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 했다. 그들의 경제 불황과 부족한 식량 문제, 외화 부족 그리고 핵과학자들의 외부 유출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의 모택동의 통치하에 문화혁명도 시대적 조류에 함께 흐르게 되었고 천안문 사태에도 불구하고 삼자(三自)정책의 기치아래 그들의 경제 발전을 온건 보수파인 등소평에 의해 계속 추진되고 있다.59) 모든 것은 혁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교육도 혁명 과정의 도구였으며, 문화와 예술도 민중과 혁명에의 봉사를 위한 것이 되었다.60) 중국 역시 사회적 민주화는 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의 참여를 허용한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국제 정의의 추구와는 달리 국수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최근 중국 정치는 대만정부에 대해 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대만정부 역시 그들의 삼불(三不) 정책을 철회하였다.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도 이데올로기 갈등하에 있었으나 최근의 남북합의서 채택과 베트남의 개방정책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동참하고 있다.세계는 세계의 정의 보다 국가적 관심을 더 추구하고, 정당들은 정권에 대한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서남 아시아와 중동의 산유국들은 그들의 기름 가격 조정을 통해 자원의 무기화하고 있어서 부유한 나라나 비산유국인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였으며,그들은 기름의 판매 수익을 경제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61)
중동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으로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 있고,미국의 리비아 제재는 새로운 종교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바로 세계의 문제는 이 지역에서의 화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터전을 위한 투쟁, 종교적-인종적 갈등, 이슬람의 군비 강화, 자유와 참여를 위한 일반적 투쟁들, 외국 군대 주둔, 여성해방, 사막 환경에의 대처 등 모든 주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62) 이러한 모든 것은 다가오는 수십년간의 위성적 경제, 정치, 군사, 문화, 종교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국가들은 개발에 대하여 전기-서구자본주의 노선(pro- Western capitalist lines of developement)을 따르는 정부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 나라의 특징들을 티사는 12가지로 다루고 있다.63) 이 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우선적인 경제 성장 추구, 사회 정의와 부(富)와 수입의 공정한 분배를 이차적으로 다루는 것, 외자의 투자 환영, 무역에의 고무, 노동 환경의 취약, 도시 중심의 발전, 정부나 기업에 의한 방송 매체의 통제, 정부의 권력 강화 등이다.64)
또한 서 아시아는 인도 문명권 하에 있는 나라들로 인도와 스리랑카를 들수 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선거(general election)를 통해 정부를 바꾸는 민주적 정부 조직을 보류하고 있다.65) 이런지역은 외자 도입과 지역 엘리트들의 협동에 의해 자본주의적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또한 서 아시아는 주요 종교 전통의 터전- 힌두교, 이슬람교,불교-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또한 다양한 가치를 가진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종교적으로 정향된 문화와 경제 성장을 위한 가치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66)
아시아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또한 엘리트층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치적 엘리트들은 부(富),사회적 위신, 정치세력, 문화적 추구, 군사 세력과 종교적 특권, 세습적 지위 같은 것들의 다양한 발전을 요구한다.67) 그러나 지적 엘리트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민중에게 사상을 주입함으로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68) 중국 정부 차원의 경제 계획은 일반적으로 엘리트들의 손에 의해 다루어진다. 여기에 사업 엘리트는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서로 공존한다. 이러한 통치 세력으로서의 이기적 엘리트들은 아시아 제국들에 있어서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이와 달리 문화적 엘리트들과 급진주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들은 국가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며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 종교 지도자의 일부는 세계 종교의 평등주의적 사신( the egalitarian message of the world religions)에 더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시아 엘리트의 비극은 그들의 압제자나 매국노가 되는 것 대신에 대중의 해방자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69)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들에게 수많은 희생이 요구된다.그들은 민중의 급격한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있으나 그 변화를 이행할 인간성과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 엘리트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가난한 나라 안에서의 정의와 세계 차원에서 그의 시도를 위해서 극히 중요하다.
다국적 기업(Multi National Corperation)의 문제는 동남 아시아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물건 판매와 값싼 원자재 구입, 그리고 생산고를 위한 토지 구입을 통해 아시아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70) 이러한 기업들은 아시아의 지역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국적 기업으로 네슬레, 코카 콜라, 펩시, 맥스웰, 존슨즈, 코닥, 필립스, 소니, 미쯔비시, 산요, 외국 비행사들, 호텔체인 ,그리고 외국계 은행등 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국제 경제 질서에로 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통합시켰다.71)
티사에 의하면 다국적 기업의 다음의 주장들을 부정하고 있다.72) 즉다국적 기업은 그들이 가난한 나라의 원자재를 사용하고, 자본을 투입하였고, 고용을 창조함으로서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경우 그 지역의 원자재를 이용하여 음료수를 만들지 아니함으로서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자본의 투자금보다 이윤의 반송이 더욱커지고 있으며, 숙련된 기술자를 훈련시키지 않음으로 단순 노동직으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그들의 축적된 기술 이전의 거부로 인해 그 기술은 낙후되었고 자본은 그나라 밖으로 유출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는 대기업의 상품을 팔아줌으로서 그들을 돕고 가난한 나라의 값싼 노동력은 기업주의 착취에 의해 심각해지고, 그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다국적 기업은 개발 도상국의 저임금, 노조의 통제, 사회보장비 면제, 적은 사회 간접자본 투자및 세율 인하의 혜택을 누린다.73)
아시아 민중의 희망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놓여진 역사적 현실이며, 이에 응답할 책임을 우리는 부여 받고 있다. 교회는 아시아 민중의 종교심(宗敎心)과 고난 -정치적 고통 혹은 경제적 가난-에 동참하여 해방과 정의를 창출해야 할것이다.
(3) 아시아 민중의 희망 - 해방과 정의
티사에 의하면 인도와 스리랑카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정의(socio- economic Justice)와 종교-문화적 대화 (Religio-cultural Dialogue)는 해방에 대한 하나의 통전적 접근(a integral approach to liberation)을 위한 추구에서 만나게 된다.74) 이러한 경제 정의와 종교 상호간의 대화는 아시아의 해방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정립에 까지 연관되는 것이다.75)
아시아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된다. 바로 위성 신학(衛星 神學)은 이러한 세계의 현실에서 고통받는 아시아에 관심하는 것이다. 가난은 아시아의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그치지 않는 정치적 현실이다. 이러한 아시아의 현실은 고난이다.
고난받는 민중은 민중 자신과 세계가 해방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어떤 상징이나 이념, 표현들이 그들을 이끌거나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얻어질수 없으며, 억압받는 민중 가운데서 태어나야 한다. 즉 그 해방에는 종교적 자각과 자기 이해의 변혁이 일어나야만 한다.76)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과 정치-경제적 현실은 간단히 다종교(religions)와 고난(suffering)으로 이해되어 진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간의 상호 대화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러한 대화를 통한 접근이 아시아적이기 때문이다.77) 또 아시아 민중의 현실이 고난으로 집중되는 것은 불교적 요소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생활 양식에 오랫동안 삼투되어져 왔기 때문이며 바로 고난의 문제가 인간 운명에 대한 질문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78) Ywangoe는 인간 운명과 관계지어 고난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종교가 고난에 대해 양면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종교가 고난에서 해방되는 길을 보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종교가 민중을 고난에로 영원히 묶어두는 것이다.
아직도 빈곤, 불의 그리고 착취 가운데 있는 아시아 민중은 아시아 종교의 영성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조장된 생활, 정치 제도, 사회적 인습, 그리고 문화적 관례에 대하여 새로운 인간 실존의 기초를 세우고자 대항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송천성의 말대로 그리스도교 영성과 아시아의 영성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빛으로 실존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게 하며,그것들로부터 창출된 새로운 영성이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기초가 될수 있는가 질문해야 할 것이다.79)
티사의 통전적 해방에로의 접근은 M.M. 토마스의 사상과 만날수 밖에 없다.80) 그 아시아인의 투쟁과 그리스도교인의 행동 에서 미래의 방향에 대한 전망을 다음과 같이 상정하고 있다. 1)아시아인의 투쟁은 아시아적 삶의 모든 영역 - 정치, 국가의 형태, 경제-사회적 구조 문화적 가치와 개인과 단체 사이에 연관된 영성 - 의 전환을 의미한다. 2)분명한 논점은 가나하고, 눌린자 들을 후원하여 보다 나은 근대화와 결단 행위 과정과 권력의 실천에 있어서 현재 권력 구조의 변형을 위한 투쟁이다. 3)아시아 교회는 통전적 인본주의 이념과 에토스를 향해서 일해야 하고 타종교인들과 접촉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4)지역 상황 속에서 정의를 위한 민중의 투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81) 5우리는 국제적 , 정치적, 경제 구조와 그들의 억압자들에 대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가난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된 그리스도교의 행동 전략을 인식해야 한다. 6)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해서 교회와 회중의 정신과 구조가 갱신되어야 한다. 이는 이웃 공동체를 위한 연대성과 책임을 위해서이다. 7)교회는 평신도와 여성 청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교육하여 세속적으로 아시아인의 투쟁에 응답해야 한다.
이제 아시아인은 각성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아시아를 비롯한 제 3세계의 신학은 제 1세계의 교회와 신학이 잘못된 세계체계의 변혁에 동참하라는 호소이며, 신학 전체의 새로운 역사적 계기이다.82)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은 폭팔적인 인구증가, 기아, 삶과 자유에의 요구, 다종교(多宗敎)와 다문화(多文化) 그리고 많은 이데올로기의 다원성, 인종차별,카스트 제도, 계급주의, 신식민주의, 자연 파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것에 혁신적 접근을 재고하도록 도전 받고 있다.83)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해방 더 나아가서 핵으로부터의 해방은 한 국가나 문화, 혹은 한 종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과제이다. 우리는 이 해방과 정의의 투쟁을 향해 문화 상호간, 종교 상호간의 협력과 해방 실천을 위한 이론의 교환이 요청되고 있다.84) 그리하여 니터는 종교간의 대화는 세계적 해방에 필수적 이라고 본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단순히 아시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라는 하나의 위성 안에서 형성되는 지구 일부에서의 사유인 동시에 지구 전체를 위한 관계성에 놓이게 된다. 아시아 민중의 해방과 정의는 세계 민중의 해방이며,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의미한다. 우리는 니터의 다음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종교에서 한 하느님 , 나의 궁극적
인 것 , 공동 본질 또는 신비적 중심 을 추구하는 대신
에, 모든 종교가 이용할 수 있는 종교 체험의 공유된 자
리를 인식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종교 신자들은 억압당하
는 다른 많은 그룹을 위해 또 그들과 함께 해방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할 때 그들의 결심을 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희망을 고취시키고, 불의를 극복하고 일치를 추구하도록
그들의 행동을 지시했던 것을 공동으로, 그러나 서로 다
르게 체험할 수 있다. 85)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우리는 이제 구(舊)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냉전 시대는 종식되었고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기술, 자본, 군사력에 의한 신패권주의 시대에 놓여졌다. 그리하여 신세계질서의 개편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현실앞에서 각 국가는 그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야만 할 때가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세계 체계(World System)는 현대국가의 부상과 일명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명목하에 막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86)
우리는 하나의 제한된, 상호 연관성과 지구의 대양으로 연결된 하나의 기후, 하나의 포괄적인 기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위성 지구(planet earth)에서 살고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태학적 불균형과 자원의 고갈은 자연과 인간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권리와 자연 보호를 위한 관심의 일치하는 발전없이 현대 과학과 기술의 성장은 인류와 자연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겨 주었다.87)
특히 이러한 재해는 지구의 한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이며, 이러한 지구 파괴의 원인이 현대 과학의 무분별한 사용에 근거한다.88) 이 서부 유럽의 영토 확장과 자국내 경제의 현대화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세계체계는 이러한 서구의 우월주의에 힘입어 이미 세력이 강한 자들을 더욱 강하게 하는 구조로 발전되었다. 세계의 관계성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며, 힘있는 국가들은 세계 기구를 세우고 그들의 우월한 지배력으로 경제, 정치, 군사, 문화적인 것들의 작인(作因)을 훈련시켰다.89)
이를 통해 그들의 우월성은 그들의 언어, 기술 문명, 경제 조직, 정치 형태, 군사력, 그리고 종교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것으로 평가 받게 하였다.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체계는 자신을 발전된 나라로, 가난한 나라를 발전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우월 의식을 강하게 반영 시키고 있다.90)
우리는 이러한 세계 체계의 기원과 그 현실을 제 3 세계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현재의 세계체계는 전에 논술한 것과 같이 주로 서구 유럽인들의 지구의 다른 부분에 대한 영토적이며, 경제적 확장의 결과이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지난 오백년은 거대한 확장과 성장의 시기 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여러 형식의 패배와 약탈, 식민지화, 착취, 변두리화(Marginal -ization)의 수백년 이었다.
서구의 확장주의는 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및 아시아의 대부분을 식민지화하거나 침략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의 풍부한 자원과 더불어 그들의 손에 있는 우월한 기술, 군사력, 그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건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91) 또 그들은 그들의 지배에 어울리도록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가치까지 새롭게 심어 놓았다. 이러한 서구의 지배로 말미암아 아시아 민중의 정신적 경제적 삶은 파탄에 이르렀고, 그 정복자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티사는 제 3세계 국가의 저개발은 유럽인의 창작물이었다고 비판하면서, 현 세계 체계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92)
콜럼버스와 더불어 시작된 유럽은 저개발 국가에 가
거나 찾은 것이 아니다. 유럽은 그들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단일 재배 생산 의 구조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
고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그들의 정복지에 옮겨놓고 강요
한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예증은 유럽-아메리카의 세력이 현대 세계 체계를 세우기 위해 사용한 비인간적인 사상을 보게된다. 이것을 다시 회상한다는 참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에 의해 행해진 - 한국인들과 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는 일본인들의 행위 - 세계의 오랜 침략사가 무시된다면 오늘날의 세계 체계에 대한 심원한 이해를 할수 없기 때문이다.
티사는 세계 체계의 특성을 토지 분배, 세계인구의 배치, 세계 인종차별에서 찾고 있다. 먼저 토지의 분배는 백인종적인 세계 체계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오늘날 백인은 세계인구의 34%이지만 지표면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즉 아시아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토지의 확장 이라는 여지가 없으나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백인 지역은 세계의 1% 인구가 지구 토지의 16%를 차지하는가 하면, 구(舊) 소련의 아시아 통치 지역은 6.6%라는 적은 인구를 가지지만, 세계 토지의 16%를 소유하고 있다.93)
두번째로 인구의 불균형과 인구가 적은 나라에의 이주 정책은 세계 자원의 분배와 인간 발전과 정의에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 인구의 배치에 대한 문제는 이주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호주의 이주 정책은 숙련된 기술자를 제외한 아시아인의 이주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94) 호 와 더불어 미국, 구 소련, 카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국가들은 자신의 인구가 적은 넓은 땅으로 이주하여 개발할 수 있는 아시아인의 유입에 제동을 걸고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토지의 분배는 아시아의 인구 증가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세계가 그것을 위한 급속하고 혁신적인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의 사태나 비하르에서의 재해와 같은 기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티사는 개발 과 저개발 의 문제는 단지 GNP나 공업화의 용어로 주목될 뿐이며, 개발 개념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세계에서 넓은 땅을 소유한 국가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라고 비판한다.95)
또한 티사는 현재의 세계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하는데 그에 의하면, 흑인, 황인종 그리고 갈색인종이 자유롭게 이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백인을 위해 노예나 값싼 노동자가 되어지는 것 이라고 말하면서 셰계 체계(World System)은 일종의 인종차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96) 구소련과 동구 역시 그들의 자원을 민중과 더불어 공유하지 않으며, 지배 계급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으며, 서구 자본주의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함으로서 이데올로기 논쟁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제 더욱 가난한 민중- 세계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은 서구로 부터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진보를 위해 서구 세력과 미국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힘들여 투쟁해 오고 있다.97) 각 단계 마다 주요 세력들에 의해 자유와 해방운동이 방해되어 지고 있다.98)
오늘날 세계는 평화스런 태도로 국제 정의와 자유를 위한 쟁점들을 치유할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세계 체계에서의 주요 정치적 변화의 부재 동안에 세계 경제는 수축되고 그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부유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조정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식 개발 독재를 채용하는가 하면, 반(半) 시장 경제-반(半)계획 경제를 추구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경제 개발과 환경의 조화, 기술의 현대화, 사회 정의 구현, 자유,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정책에의 대중 참여 등은 현재의 세계 체계에서 쉽게 정착되기는 어렵다.99) 바로 우리는 이러한 기존 세계 체계가 점차 위기에 직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지구 경제의 구조는 세계 체계의 현실과 밀접하다. 티사는 지구 경제가 땅과 자연 자원의 분배에 기초한다고 파악하면서 , 자본의 축적,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개발된 기술, 국가들간의 무역관계, 그리고 세계에서의 중요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변화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땅에서 기원하는 근본적인 불평등이 수입, 자본, 기술, 무역, 사업 조직, 그리고 자원 사용에 있어서 불균형의 관계가 더욱 강화된다고 보았다.100) 이는 불평등한 시작이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부유한 개인, 가족, 회사, 나라에게 축적된다. 이는 그들의 뛰어난 사업 전략, 기술 우위,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와 특권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구도는 최대 이익의 기초하에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최대 이익은 정유회사의 경우, 산유국이 원유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더많은 이득을 위해 그들의 기술로 부가 가치를 추가하기 때문에 기름을 사용하는 산유국의 입장에서도 높은 정유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세계적인 경제 기구 -IMF,GATT 등- 를 이용하여 현 체제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이에 대항하여 비동맹 기구(77그룹)혹은 동남아시아 연합(ASEAN),석유 산유국 기구(OPEC) 등으로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하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101)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는 식민지 독립이후 사회주의 국가는 자치의 혁명으로 종속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계획 경제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자본주의 경제 조직을 추구한 선진 제국과의 연대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만 증대시켰을 뿐이다. 그리하여 티사는 식민 조직의 진보는 식민 통치자들에 의해 계속된다 고 보았다. 선진국에서 도입된 신기술은 새로운 물질을 필요로 하게되고, 경제적 독립은 다양한 형태의 보복 조치를 당하게 된다.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는 국가는 서구의 세력에 의해 지지받으며, 그 자본으로 인해 그 나라의 경제 질서는 외국 기업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나아가서 원조(Aid) 에 의해 저개발 국가들은 부유한 나라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재는 값싸게 팔려 나간다. 원조는 오히려 그 나라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되고 유상 원조는 부채가 되어진다는 것이다.102) 결과에는 저개발국에서 강대국으로의 원자재의 이동은 서구에서 주어진 원조 보다 더 능가하는 수준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현대의 세계 경제 조직은 힘의 정당화, 이익 최대화, 생산성은 필요보다는 이윤 추구라는 것에 의해 세워졌고, 윤리적 정식은 경제활동에서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103) 이러한 원칙에 의해 세워진 세계 경제 구조는 가난하고, 연약하며, 한계에 놓인 자들에게 불의와 고통을 준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진화론적인 생존 경쟁의 삼사라(samsara)에서 지구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의 경제 위기는 점차 강하게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 기아, 금융 위기, 에너지 위기, 선진국의 대규모 실직, 부강국과 저개발국가의 빈부, 수입, 기술의 격차의 심화, 환경의 오염, 재생가능한 자원의 감소 등. 지구 자원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강국에서의 자원 남용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소득 분배가 계속 무시된다면 건강하고 연속적인 경제 개발은 불가능해 질 것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자기-유지라는 원리는 나누지 않는 풍부함(Unshared Affluence)으로 인해 파괴될 것이다.104)
티사는 이러한 심각한 현실 앞에 놓인 세계 경제에 대해 질문한다.
이러한 세계 질서가 얼마나 오랫 동안 개인적 지위
의 국가주권의 실행을 통해 군사적으로 그들 민중의 의로
운 요구에 대항하여 주도될 수 있는가? 정치적 조치를 통
한 민중의 해방을 위한 수단은 무엇인가? 대중의 정치 세
력이 경제적, 법적, 그리고 군사적 엘리트 세력과 세계의
초강력 세력을 극복하고 조정할 수 있는가? 105)
(3) 세계 체계와 인간 해방
세계 체계는 부(富)의 조정과 정치, 군사 세력의 사용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의 정서들, 가치 그리고 인간의 관습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침으로서 지속되었다. 이것은 특히 문화적 통치(Cultural dimination)라고 볼 수 있는데 , 그것은 대중 매체(mass media), 교육제도, 정부와 정당의 관제 이데올로기,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관습이나 가치 등을 통하여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다.106)
세계 체계는 바로 이러한 문화 통치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우월 의식을 갖게된 것이다. 서구 세력들은 자신들의 경제활동에 이득이 되도록 법적 질서를 변화시켰고, 식민통치자들은 개인적 주장이나 회사의 토지 소유를 위해 법을 바꾸었다. 티사는 바로 이렇게 땅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박탈함으로서 외국 기업을 영속화시켰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법적 구조로 말미암아 통치세력을 굳건히 하였고 대중 매체는 외국 기업이나 그와 연대한 정치적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민중들로 하여금 사회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107) 교육 제도는 그 지역 엘리트들로 하여금 식민정부와 외국 기업에 봉사하게 하였다.
이러한 서구의 통치는 제 3 세계의 기본적 질서 조차 파괴하였다. 인구 조절의 신화는 바로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자원의 낭비를 오히려 유도하면서, 제 3 세계의 인구 증가비를 낮추려고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십여년 간의 후진국의 인구 증가는 백인 자본주의 세계 체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사에 의하면 인구 문제는 토지와 자원에 대한 인구의 잘못된 배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였다.108)
사회적 관점에서 세계 체계(World System)는 인종 차별, 계급주의 성차별에 기초한 유사성과 구별에 의해 관계된 것이다. 그것은 지구전체에 걸쳐 있으며, 지역적이고, 개인적이다. 그러한 차별들과 그것들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이해는 통전적 인간 해방(integral human liberation)의 원인에 대해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109) 우리는 성개방이 아닌 성차별에서의 해방이며, 인종 해방이 아닌 인종 차별에서의 해방을 말해야 한다. 바로 계급없는 사회는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티사는 생물학적, 역사적, 문화적, 기능적 차이를 인식해야만 하고 인간이나 집단을 불평등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고 강조한다. 오히려 연약하고 가난한 가운데 있는 독특한 우월성은 그들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위한 이러한 투쟁에 동참함으로서 타자의 의식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 촉구한다.
성차별주의, 인종차별, 그리고 계급주의의 공통된 특징은 타자를 자유롭고 응답하는 인간이나 인간 공동체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목적이나 자신의 쾌락이나 힘 혹은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할 무엇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110) 이러한 압박은 압제자나 눌린자 모두에게 비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티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방은 통전적인 것 이라고 말한다.111) 인간 권리에 대한 하나 그 이상의 의도로부터 인간 의식의 성장은 완전한 해방을 향해 더 도전하게 하고, 더 광범위해 진다.112) 여성 해방운동은 우리가 고향으로 여기는 이 하나의 지구의 완성을 위한 추구가 포괄적인 위성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파악으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티사에 의하면, 마르크스 사상은 인간관계성, 사회 과정, 국가 역사 그리고 국제 발전에 가치있는 통찰력을 제시하였으나 국제적인 차원에서 인종관계의 설명이나 여성 해방 운동 등에서 몇가지 난제를 지닌다고 비판한다.113)
이러한 세계 체계는 위성 지구에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진정한 인간 해방을 위한 필요성은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으며, 인간 이해에 도움을 주고 각각의 압제당하는 집단의 해방적 역동성에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논제를 다음 장에서 계속 다루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의 세력은 압제와 착취의 구 식민주의적
체제에서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은 이때에, 제 3 세계
국가들은 평등한 국제 질서를 옹호하기 위한 철저한
투쟁을 위해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여
기에서 신국제질서(New International Order)-이념이나
체제의 극복, 민족 자결, 세계 평화, 국가간의 평등을
골자로 하는 연대운동-를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114)
3.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향한 추구
우리는 이제까지 아시아의 현실과 더불어 세계 체계의 문제점을 살펴 보았다. 세계 체계와 아시아의 역할에 대한 재고를 통해 개인적 삶의 의미와 사회적 삶의 조화로운 진보의 필요성과 지구 그 자체의 미래에 더 깊고 확산되는 위기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지구촌으로서의 세계는 대중 매체와 경제적 상호 의존 속에서 통합되어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 문제에 동등한 지구적 접근을 사유할 수 있는 첫 세대가 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인간적 삶과 전 우주에 대한 비젼을 위한 추구가 기대되고 있다. 이것은 정의와 이해 안에서 세계 공동체를 향한 작업을 통해 모든 민중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비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비젼(vision)은 모든 개인, 남성과 여성, 모든 인종, 민족, 문화, 종교, 그리고 삶의 노정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것이다.115)
티사는 유럽인들이 16세기의 무력 침략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는 그들의 식민지 통치, 상업 전략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했으며, 이로인해 현재의 세계 체계가 발생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세계 체계의 결과는 수많은 인간 존재의 최소한의 요구도 충족시키기보다는 혼란 만을 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는 개인과 회사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를 정의로운 사회에로 연결시켜 주지 못하였고, 마르크스 사회주의 역시 국제적 사회정의를 위한 것 보다는 각개 국가의 공동 선만을 추구함으로서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티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116)
자본주의가 비록 종교를 옹호하지만 물질주의적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비록 그것이 사회적 관계에서의 정
의를 옹호하지만, 무신론적이다. 이것은 둘다 세계의 문
명이나 적어도 천여년을 위해서 대다수의 인류에게 영감
을 줄수 있는 위대한 세계 종교와 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현존하는 세계 체계는 가난한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재형성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분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바로 이 지구 사회를 조화롭게 진전시키는 모든 민중의 평화로운 발전을 상상해야 한다. 성서적 그리스도교는 바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이상으로 가득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1) 신 세계 질서의 가치와 목표
티사는 정의로운 세계 질서(A Just World Order)에 대해 세가지의 정의를 내린다. 1) 모든 인격은 삶의 기본적 본체로 보증받으며, 하나의 인격으로써 차별대우 없이 존중되어져야 한다. 2) 각 사회는 그 구성원의 안락한 삶과 그들의 문화적 발전을 위해 일반적인 쾌적함을 제공하여야 한다. 3) 위성 지구는 현재나 미래 인류를 위한 고향으로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취급되어져서는 안되며 보호되어져야 한다.117)
위와 같은 세가지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바로 티사가 사유하는 위성신학의 이상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불가능한 미래가 아닌 우리의 윤리적 실천을 통해 가시화(可視化)하여야 할 무엇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세계 질서의 가치는 잘못된 의식이나 동기의 전환을 의미한다. 티사는 이것을 급진적 전환(혹은 근본적 전환:radical conversion)으로 이해하고 있다.
불의한 세계 체계는 민중의 소리(vox populi)를 듣고 새로운 가치를 향하여 전환되고 정향되어야 한다. 이는 성(性)이나 계급, 신조, 국가, 사회적 기능, 혹은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인격을 존중하자는 것이다.118) 이 한 도전은 지구 자원의 사려 깊은 이용과 그들 수입의 정의로운 분배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환상이나 추상적 미래가 아닌 역사적 필연(historical necessity)으로 보아야한다. 이제까지의 개인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던 사유가 어머니로서의 지구와 인류를 위한 충성으로 전환해야 할 필연성이다. 티사에 의하면, 세계의 위대한 종교는 이러한 비젼을 향하고 있다고 파악한다.119)
티사의 신 세계 질서를 위한 목표를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 차원의 정치적 변화와 세계 체계의 변화라는 3중 목표를 제시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전통적인 교회의 개인 구원에서 사회적 성화에로 라는 기본 도식을 넘어서서 공동체 각 구성원의 각 영역에서의 변혁을 추구하도록 전면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우리는 그의 목표를 세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국내 정치의 변화가 신 세계 질서의 하나의 목표이다. 티사에 의하면 이러한 변화는 모두를 위한 기본적인 필요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20) 즉국내의 정치적 변화를 통해 수입과 부, 기회와 안락함이 동일하게 수혜되어야 하고, 인종간, 남녀간, 사회 계층간, 일의 형태 그리고 지역색에 의한 편파성이 제거되어야 한다.121) 이러한 국내정치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경제적, 정치적 민주주의로서 매일의 활동과 시민 생활에 있어서 의사표시와 자결(自決)을 통한 민중의 진정한 참여이다.
2) 농촌 지역의 재정비를 통해 토지를 개혁하고 농촌 지역과 인구가 적은 지역에 재정착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늘어나는 인구를 위한 삶의 공간을 마련할수 있게 된다.
3) 제 3 세계에서의 생산은 음식, 주택, 의복, 교육 그리고 교통을 위한 가난한 민중의 절박한 요구에 응해야 하며, 외국 시장이나 풍요한 지역의 요구에 의해서는 안된다.
4) 대재벌의 국유화 및 사회화를 통해 생산 과정이 원자재 이용 능력을 높이고, 노동자의 기술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소유권의 공동체화를 통해 모두를 위한 봉사가 그 목표가 되어야 한다.
5) 국내와 국제 시장에서의 중개상의 착취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가격의 조절을 위해 국내적 혹은 국제적 기구에 의해 조정되어야 한다.
6) 교육 체계나 기구의 변화는 사회 걔혁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교육은 수공노동자나 지식 노동자 간의 차이를 제거해야 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의 기회는 균등해야 한다.122)
둘째로, 국제 정치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국제 정치가 세계적인 불균형에 대항하도록 정향(定向)되어야 한다고 보고있다. 이는 주로 정치적 알력과 경제적 이득에 의해 변화된다.123) 그목표는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1) 무역의 공정한 조건은 인간 가치와 그 필요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 로 그 가격은 국제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2) 공정 무역을 보증하는 생산자의 기구의 조직화을 통해 공동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OPEC, 77그룹 등이 이에 속한다.
3) 경제적 생활을 위한 지역 연대로서 남남 협력이나 이러한 조정 기구는 시장 조성, 금융 기구,조사, 개발 산업의 조정에서 다국적 기업을 제한할 수 있다.
4) 자원은 부유한 국가에서 빈곤국으로 이동되어야 한다.
5) 국제적 수입 관세는 그 나라의 국민총생산(GNP)에 따라 지불되어야 한다.
6) 다국적 기업을 통제함으로서 국가와 민중의 공동선(Common Good)을 기를 수 있는 국제적 기관을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자연 자원은 다음 세대를 위해 조정되어야 한다.
7) 과거와 현재의 국제적 불의(不義)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요구된다.124)
8) 토양의 생산성 유지와 생산고를 위한 연구, 산성화 방지, 인간의 남용에 의해 파괴된 지역의 회복 추구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북부의 사막화, 체르노빌의 핵 유출로 인한 피해 등과 같은 것이다.125)
세번째로, 세계 체계(WORLD SYSTEM)의 변화이다. 티사는 특히 세계 체계의 변화를 위해 세계 기관(WORLD AUTHORITY)의 필요성과 인구의 재정착을 말하고 있다.126)
티사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은 세계 정의의 방해물로 인식된다. 이는 그 주권의 보장을 위해 핵무장을 함으로써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 지구적 권위를 갖는 기관이 인간의 공동선을 위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적 기관은 국제적 무역, 재무, 매체, 자연자원, 기술이전, 환경 보호, 군비 통제를 지배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티사는 말한다.
또한 인구의 재정착 문제는 앞서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2장 1절)에서 밝힌 것과 같이 세계 체계의 발생으로 생겨난 것이며, 이는 아시아의 인구 분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아시아 인구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그 지역의 수용성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를 위해 세계적 기관은 이러한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평화롭게 다른 땅으로 이주시킬수 있는 권한을 소유해야 한다고 본다. 바로 지구의 주요 정치는 땅없는 사람들(PERSONS without LAND)을 사람없는 땅(LAND without PERSONS)으로 이주하도록 돕는 것이 며, 이로 인해 현재 인구의 성장에 역동성을 주는 것이며, 동시에 다국적 기업에 의해 가난한 민중의 자원을 약탈과 국제 무역의 불공평에 대해 변상하는 유일한 길일 것 이다.
인류는 이제까지 백인을 위해 건설된 옛 범례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가 국가적 한계 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범례(a New Paradigm)을 채택하려는 평화롭고 의로운 대안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티사는 바로 이러한 이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러한 목표를 위해 시행착오를 통해서 더욱 더 많은 민중과 집단, 그리고 국가들간에 우리의 지구적 단결을 위한 의식의 고양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27)
(2)세계 변형을 향한 투쟁과 전략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전체적 이상(VISION)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 목표의 인식은 통전적 인간 해방(Integral Human Liberration)을 위해 자극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이기주의가 이같은 목표와 이상에 정반대로 이 사회에서 체계화 되었는지를 명확히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티사는 그 전략을 위해 현재 사회의 체제의 현실파악을 요청한다. 무엇이 우리의 적이며, 동지인지를 구별함으로써 공동 목표와 전략을 더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 그는 현재의 세계 체계를 서구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계로 파악한다.128) 이러한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적이고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경제 관계를 수립하고 있으며, 이는 제 3 세계의 경제 개발과 사회정의에 입각한 원리적인 적(Enemy)으로 파악된다.129) 그러나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도움을 주었다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바로 구조화된 이기주의(Structured Selfishness)가 실제적인 적이며, 모든 차원에서 이기주의와 대항하고 불의한 사회 체계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무는 양편으로서 1)인격의 변형과 사회 체계의 혁신적 변화(radical change)이다.130)
티사는 바로 이러한 전략을 각 투쟁의 차원을 설정하고, 그 수단을 환경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티사는 투쟁의 차원을 지역적,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신 세계 질서를 위한 목표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지역내에서의 투쟁은 바로 지극히 작은 것'131) 이것도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지구적 이상(vision)을 가졌다 할지라도 활동은 지역적 차원을 필요로 한다. 티사는 지역적 투쟁 활동을 1) 각 쟁점의 확고한 이해와 연관된 인물에 대한 존경, 2)다른 쟁점과의 비교 이해(a cross-fertilization), 그리고 3)더 큰 공동선과의 연대이다.132)그는특히 성공적인 지도력은 이러한 세 단계를 상호 관련성과 다양성 안에서의 교체를 통해잘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둘째로, 국내적 차원에서의 투쟁은 지역적인 투쟁은 한계가 있으며, 국제적인 차원은 이상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정의를 활동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한 국가의 정치력이 민중의 필요를 향해 충족되도록 되어져야 하며,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조정으로부터의 지역적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제 3 세계 국가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은 외국의 착취로부터의 해방이며, 국가적 자결(self-determination) 능력이다. 또한 사회주의 권에서의 국가적 투쟁의 예는 이미 민주화된 폴란드의 연대 자유노조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회주의 지역에서의 민중 참여의 모델은 그의 말대로 세계 민중의 희망의 표식이 되어졌다.133)
셋째로 국제적 차원에서의 투쟁은 국가 집단들의 연대(Soridarity)는 부강국이나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경제 지배에 대항하며,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데 유리한 전략이다.134) 제3 세계 국가들은 국제적 세력을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의사 결정에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티사는 바로 이러한 의사 표시와 각 정부의 영향력을 통해 세계 변형의 전략을 그 목표에 맞춤으로서 신 세계 질서의 이상을 성취해 나갈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상황과 인격의 다양성을 통해 같은 목표를 향한 다양한 방법과 전략을 기대한다. 이러한 개방적 자세는 우리에게 다양한 투쟁의 수단을 제시할 수 있다.
세계 정의를 위한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혁명은 폭력을 필연적으로 요청하지 않으며, 정신과 사회 체계의 한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만약 혁명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법적 수단에 의한다면 더욱 좋은 경우이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눌린 자로서의 민중은 폭력을 의지하게 된다.135)
티사는 투쟁의 방법의 다양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들을 서술하지는 않는다. 다만 투쟁의 대상은 조직화된 군사세력이나 이기주의적인 자본주의 근성으로 보고있다. 비폭력 또한 반듯이 폭력의 반대일수만은 없다고 보는 그의 견해는 투쟁의 방법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긍정한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비폭력적인 경쟁을 추구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부유층이나 부유한 노동 계급이 상대적인 민중이 불의를 치료하고자 하는데에 동참하지 않고 거부한다면, 혁명적 폭력은 세계에서의 정의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어질 것이라고 보았다.136)
또한 정당 정치를 통해서는 토지 개혁과 부(富)의 재분배가 정치적으로 착수되어야 하며, 대중운동을 통해 지배의 형태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차원 곧 사회구조적 차원에서의 민중의 해방을 성취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파업은 정의 사회를 위한 바른 의사 표시가 되어야하며, 강력한 무기가 되어질 수도 있다. 대중 정치 활동은 법의 체제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며, 불의한 법의 파괴를 수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투쟁은 구(舊)사회주의적 국가에서 나타난 폴란드 자유 노조의 조직화된 파업으로 그들의 민중 지향적 경제 계획과 결사,언론, 출판 그리고 종교적 자유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투쟁은 지구 곳곳에서 기초공동체 운동과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민중의 적은 국내적, 국제적으로 동맹되어 있으며, 여기에 대항한 민중의 세계적 연대는 인류의 사상과 행동에 끝없는 영향을 끼칠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여성의 참여는 소비 문화에 있어서 큰 주역을 감당할 것이며, 젊은이들의 미래 개방적 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불의한 세계 체계에 대항할수 있는 큰 세력이 되어질 수 있다고 티사는 강조한다. 그는 정의를 위한 활동의 보편화하는 것은 모든 시대의 집단들과 가족들의 사람들과 관계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137)
(3) 신 세계 질서와 인간 해방
현재의 세계 체계가 남성주의적, 백인적, 그리고 자연의 파괴에 의한 서구 자본주의의 확장의 결과라면 교회는 그 착취의 오백여년간 무엇을 하였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부각되고 있는 세계의 불의(不義)를 보면서 그리스도 교회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그들의 비인간적인 확장주의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면 그리스도 교회는 먼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개방과 대화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자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티사에 의하면 현재까지의 그리스도교회는 서구의 확장주의에 연루되어 교회의 최대 가치를 확장 - 근본적으로는 식민주의자들과 동일한 확장으로 인식하였다.138) 이로 인해 교회중심적 신학과 영성은 식민지적 정복과 관계되거나 자본주의와 결탁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정복민들의 문화적 가치의파괴, 의존의 창조, 노동 자원의 착취, 무역의 불공정, 자연 자원의 약탈에 교회는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였다.
교회의 남성위주의 권위 조직화로 인해 여성의 해방운동에 소극적이었고, 개인주의적 도덕의 강조로 그리스도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간과됨으로서 인간의 착취나 자원의 낭비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러한 교회의 신학적 탈선은 결국 창조자로서의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부성적(父性的)인 모습 만의 강조로 인해 교회의 실천에 있어서 세계 질서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고 티사는 비판한다.139)
우리 시대는 급변하고 심원한 변화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교회는 인류봉사의 전략을 세워야할 필요성이 있으며, 우리 시대의 구조적 악들에 대항하며, 정의의 사유와 체계들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시대적 임무는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재화시키고, 생존을 위한 지구적 추구 안에서 인류에 봉사하는 것 이다.140)
세계의 민중은 보다 큰 정의의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연대하고 있으며, 지구적 친교를 위한 인류의 성숙함을 보고있다. 위기에 놓인 전 세계 질서와 인류의 도전에 의미있게 응답하도록 믿는 자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충분성을 성서는 갖고 있다. 그리스도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그의지를 동력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신 세계 질서를 향한 책무를 감당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티사는 바티칸 제 2 공의회를 넘어서는 신학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는 바티칸 공의회 신학자 - 콩가르, 라너, 라징거, 큉 같은 이들의 신학적 공헌을 넘어설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이는 그들이 아직도 유럽적이며, 아직도 교회-중심적인 신학(church-centered theology)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한다.141) 그러나 그는 1980년대를 전후해서 그리스도교회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다른 지역에서 정의를 위한 투쟁을 포함하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활동 단체와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명상을 위한 아쉬람(Ashram)들과 신앙 상호간의 대화를 위해 움직여 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142)
이제 우리는 그의 위성 신학의 근거로써의 세계를 파악하였다. 신학은 상황과 밀접하게 관게되며, 그 터전과 관계되어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갖는다. 교회는 신세계 질서를 위한 그 신학적 지표를 위성 신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Ⅲ . 위성 신학 : 세계 종교해방에로의 길
하나의 위성적 상황에로 지구를 단일화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 종교에도 하나의 은총이 될수 있다. 바로 위성적 상황의 인식은 그리스도교를 성서적 기본 메세지에로 복귀시키며, 그 메세지에 따라 살도록 돕기 때문이다.
티사에 의하면, 신학의 위성적 차원은 성서와 오늘날의 세계 현실에 대한 명상에 의해 전개되어 지는 것이다.143) 티사는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의 메세지와 지역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요구를 관계시킴으로서 그 활동과정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제 신학은 단순히 지역적 이어서는 안된다. 신학은 위성적 관점에서 지구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해방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출발이며, 모든 종교들의 목표이어야하고, 통전적인 인간 해방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전통 신학의 재고
전통적인 신학은 재고되어져야 할 필연성을 갖는다. 새로운 개념들의 필요성과 이전에 있던 개념들의 새로운 상황화에 직면하고 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보호하시고, 사랑과 정의의 관계성 속에서 그들의 완성을 향해 이끄신다. 이제 우리는 위성 신학의 개념이 세계 종교해방의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질수 있음을 상기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티사는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신학이재고되어야 하며, 신학의 상황화와 지구적 차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44)
전통적 신학은 서구의 우월주의에서 탄생하였으며, 우월한 세계 세력들과 집단에 의해 특권주의적으로 전 세계의 신학적 관점에 영향을 끼쳐왔다. 그것은 그들의 환경, 관심, 정보와 인식 영역에서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수백여년간 서구 신학자들이 선취한 대부분의 것들은 제 3 세계 민중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해로운 것이었다.145) 또 타종교에 대한 접근은 서구적 편견을 가지고 그것들을 대항하고, 서구 식민 통치자들과 연계됨으로서 하느님에게서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은폐된 그리스도교인 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티사는 전통적 신학을 북대서양 지역에서 발생한 재고되어야 할 신학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146)
1) 문화-제한적 신학 - 서구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우월주의는 아시아 지역의 식물과 동물을 포함하는 생명 존중의 자연관을 무시하고, 소유와 노동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이러한 면들을 무시하였다.
2) 교회 중심적 신학 - 교회는 자신을 보편적인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우(愚)를 범하고, 교회의 확장을 인류의 공동 선으로 착각했다.
3) 남성 우월의 신학 - 신학은 성인 남성 위주의 관심에 의해 수행되었고, 성서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읽혀졌다. 여성의 권리는 신학적 반영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교회 생활에도 남성과 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동일성은 수용되지 않았다.
4) 시대우월적 신학 - 젊은이들을 교회의 참여에 배제함으로서 생동감, 역동성, 접근의 신선함, 미래에의 개방성, 날카로운 정의감, 그리고 문제에 대한 신속함을 잃어 버렸다.
5) 전기-자본주의적 신학 - 신학자와 교인 모두가 서구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전세계의 시골 빈농이나 도시 노동자들의 가난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들은 구조의 근본적 개혁 보다는 대안에 치중하고 있다.
6) 반공주의적 신학 - 이러한 반공주의적 신학은 세계의 공산주의 국가의 멸망 이후에도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계속되고 있으며, 서구 우월주의적인 문화적 침투는 언어, 예배 의식, 사상-체계 등으로 인해 계속되고 있다.
7) 비혁명적인 신학 - 전통적 그리스도교인들은 혁명적인 지구 신학이 결여되었다. 이는 세계 체계의 근본적이고 급격한 변화(radical and rapid change)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8) 사회적 분석없는 신학 - 전통적 신학은 단지 성서에서만 취해짐으로서 편견과 착각, 신학자들의 선취에 강하게 영향 받았다. 사회-정치적 세력 분석의 부재로 인해 타자에 대해 우월 의식으로 대하게 된다.
9) 과도한 이론적 신학 - 사회적 분석의 결여는 곧 전통적 신학이 활동 지향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학문적 신학은 사회적 변화는 물론 갈등 상황에 대한 활발한 참여를 피할 것이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힘을 가진 압제자들의 편이다. 그러나 해방 세력이 힘이 있을 때 그들의 편에 선다. 이러한 얄팍한 기회주의에서 벗어나 예언자적 카이로스의 때에 악전 고투하고 있는 눌린 자들의 편에 서야 할 것이며, 그 과정 중에 계속적으로 변화해 가야 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 신학 은 하느님 나라의 역동적 본질과 인간 역사에서의 그의 고난을 무시하였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모든 면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회안에서의 정의를 추구하는 신학을 필요로 한다. 이는 눌린자의 편에 서며, 인간 역사 안에서 활동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 중심적인 신학이어야 한다.147)
티사는 상황 신학이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문화와 철학적 용어로 그들 지역의 민중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148) 한국은 독립적인 삼자(三自)애국 운동은 하나의 지역 신학이며, 한국의 민중 신학, 인도의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아쉬람 운동(Ashram Movement),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사회 경제적 정의와 종교 문화적 대화의 큰 흐름은 더 통전적인 인간 해방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149)
또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해방신학으로,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는 흑인 신학으로, 혹은 여성 신학으로나타나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정치 신학은 유럽의 사회정치적 문제를 겨냥한 상황 신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상황 신학이 그리스도교 생활과 신학의 진보에 생동감을 주었으나 계급적, 인종적, 성적, 그리고 동일한 문화적 집단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티사는 상황 신학을 위성적으로 이끌기 위해 전체로서의 세계에 관계하는 더 보편적 관점에 의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결국 티사의 신학은 상황적이며, 지구적이 된다. 그의 신학의 역동성은 활동 중심적이며, 사회적 변화를 위한 지구적 전략에로의 보편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정향된 위성 신학을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2. 창조와 해방의 하느님
(1) 하느님과 창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성부 하느님과 성령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한다. 즉 세 위격을 가진 한분 하느님은 서로에게 완전히 동일하다고 믿는다. 그 상호 관계성은 티사에 의하면, 역동적이며,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다.150) 바로 세계는 하느님의 상호 인격적 관계성의 개화(開花)로써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인격적이며, 사회적이다.151)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은 세계와 인류의 창조자이다.(창세 1:1) 그 하느님은 인류에게 그 세계를 위탁하시고 의로운 청지기의 모습을 기대하셨다. 우주는 하느님의 무한한 보호의 은총하에 유지되었으며, 우주의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해 인류는 하느님의 힘과 관심을 인식하였다. 전체로서의 자연은 스스로 주체적이며, 스스로 생존하는 시종일관 놀라운 균형을 유지한다.
창조의 교리는 바로 위성 지구와 그에 대한 인간의 관계성을 다루는 신학이다.152) 이 인간이 땅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며 개발한다면, 땅은 인류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땅을 황폐케 한다면 인간 생활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땅으로부터 오고 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땅과 인류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의 풍요한 경험을 얻는다.그러므로 우리는 땅을 보호하고, 존경하며, 존중하여야 한다.153)
티사는 창조 기사와 하느님에 대한 명상이 위성 신학에 기여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인식이라고 평가한다.154) 지구는 모든 인류의 고향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를 필요로 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지구는 모든 시대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둘도 없는 유산인 것이다.
티사는 성서의 유일신론이 이러한 관점에서 보편적 차원의 계시라고 본다. 즉 유일하신 하느님은 모든 인간과 민중들을 사랑하신다. 다른 신조를 믿거나 성서적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한분이시고, 유일하신 하느님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지지한다.
창조는 인류의 연합을 의미하며, 모든 민중의 보편성의 근거를 지지하는 것이며, 모두를 위한 창조자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155) 여기에서 창조는 바로 인종 차별, 성차별, 계급주의, 종교주의, 자연의 약탈에서 벗어나야 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이러한 유일한 하느님과 모든 인간 존재의 방식으로 설수 있는 종교, 문화, 이데올로기 혹은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156)
티사의 하느님 이해는 창조를 통해 인류의 하나됨을 선포하고, 창조 세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계시하고 있다고 본다. 하느님에게 있어서 세계는 세계자체로서 수용되기 때문이다.
(2)해방자 하느님
티사에 의하면, 창조는 유일회적이고 모두를 위한 정적 활동이 아니라 고 주장하면서,157) 출 굽을 인격적,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인간 폭력을 당하고 있는 하나의 범례로 설명한다. 바로의 인종 차별적인 유태인 압제와 성차별적 단손(斷孫) 명령은 위의 모든 인간적 폭력을 나타낸다.구약 성서에서 하느님은 생명과 자유의 하느님이며, 압제받는 그들의 참여(participa -tion)를 통한 민중 구원을 원하시는 분으로 계시된다.
해방자로서의 하느님은 그들의 지도자와 함께 하시고 그들의 해방투쟁 가운데 연합하신다. 해방의 하느님은 그의 미중과 그 해방 투쟁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 분은 유순하고 줏대없는 중성자가 아니라 명백히 눌린자의 편에 서신다.158) 이는 전통적인 영성이 하느님은 눌린자의 목소리를 듣는 분으로 성서에 묘사되어 있으며, 기도는 눌린 민중과 해방을 위한 우리의 인격적 책임의 실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의와 자유 그리고 약속된 땅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며, 그 때에 정치적 의미로 혁명과 같은 출애굽 사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해 종말을 고하는 것이며, 삶의 양식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눌린자들은 때때로 빠르고 쉬운 결과를 원하지만 해방의 활동은 장기적 과정이 요구되어 진다고 티사는 강조한다. 해방과정의 저속도에 실망해서는 안되며, 급격한 변화는 모두에게 장애가 될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티사는 오늘의 세계에서 시대적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와 징벌에서 인간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세계 대전들, 환경 오염, 인플레이션, 실업, 높은 자살율, 가족의 분열, 불명확한 위협 등이 그것이다.
출애굽에서 티사는 해방을 위한 민중 운동과 전체로서의 민중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의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압제 구조의 거부와 광야에로의 행진은 자연적' 발전이 아닌 투쟁'의 결과이며, 하느님의 의지는 인간의 참여를 통한 완전한 성취임을 이해 하였다.
인간 해방은 하느님의 계시이며,159) 구약 성서에서 그의 민중은 삶의 의미, 고난, 정의, 투쟁 그리고 승리를 배우게 된다. 하느님은 의로우시며, 해방자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시다.160) 민중의 희망인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곧 신앙이다. 우리는 약속에 대한 희망가운데 하느님을 만난다.161) 그분은 해방자로서 우리를 민중 가운데 정의를 위한 투쟁에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 투쟁에 참여하신다. 그는 압제자나 눌린자 모두에게 인격적 변화를 요구하는 해방자이다.162)
제 2의 창조 혹은 계속되는 창조로서의 해방 투쟁은 새하늘과 새땅의 이상(Vision)을 가진다. 티사는 이사야 65장의 새로운 나라의 약속을 기대하면서 그들의 노력의 댓가로 주어지는 일상세계를 추구하고 있다.163)
티사는 하느님 나라의 이상에 비추어 현실의 착취의 문제를 다룬다. 즉 착취는 19세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서적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노동 계급의 비참함과 외국 식민지역의 착취에 의해 그들의 부를 축척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와 착취에 대한 분석은 옳지만, 현재에 그 의미를 적용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하느님 나라는 착취란 없으며, 나눔의 터이다. 하느님은 풍요의 하느님이며, 분배와 기쁨 그리고 경축의 하느님이다.164)
하느님의 여성적 표현으로서의 어머니 시온(Mather Zion)은 부성적인 관념을 넘어 선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 해방적인 추구와 맞물리는 것이다. 지구는 인류를 위한 진정한 고향으로서 보호와 제공, 위안, 위로, 그리고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어머니와 같은 이상을 가진다.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Our Father)라는 부성적 표현은 모든 인간 존재가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165)
창조와 해방의 하느님은 우리로 하여금 한 형제 자매로서 사랑 가운데 연대함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더불어 창조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166)
3. 우주적 그리스도와 보편적 성취
(1) 예수와 하느님 나라
예수의 기본적 가르침은 사랑의 하느님과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며, 이는 지구적 질서를 위한 우리의 추구에 매우 중요한 보편적 접근에 영감을 주고 있다.167) 예수는 종교의 편협함과 사회적 관계성, 그리고 집단에 대한 태도를 거부하였다. 또한 그는 계급, 직업, 인종, 성(性) 그리고 선행(善行)에 의한 엘리트주의를 반대했다. 그가 가난한 자, 눌린 자, 한계에 놓인 자, 그리고 낮은 자들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은 신약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티사에 의하면 예수의 보편성의 근거는 원수 사랑 이며, 이러한 가르침에 기초한 사랑은 자기희생적이고, 비(非)배타적인 것이며, 이해관계를 넘어선 것이다.168)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지된다. 이는 상호 인격적이며, 사회적 관계성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다. 바로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참사랑이 없는 곳에 하느님은 현존하시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며, 자기 희생적이며, 타자 중심적이다. 이러한 감각으로 사랑은 혁신적(radical)이며, 타자에 대한 불의, 타락, 낭비, 무관심과 타협하지 않는다.169)
예수는 착취가 깊게 자리잡은 시대에 혁신적인 새 가르침을 선포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이며,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새로운 인간, 새 사회이며, 새로운 인격과 사회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170) 이것이 새 소식이며, 복음이다. 그가 교회를 말하기 보다 하느님의 나라를 말했다는 것은 그의 가르침의 대부분이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다.(마태 6:33) 특히 로마의 착취적 상황에 놓여있는 유대인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네안에 있다 는 표현은 그 시대의 권력에 대한 전적인 충성으로부터의 내적이며, 인격적인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171)
그의 설교는 평민과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 둘 다를 상대화 시킨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느님 만이 절대적이다. 그리하여 하느님 나라의 개념은 특별히 역사적 교회를 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비평적인 표준이다. 그 나라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의 성취이며, 이는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변형 세력으로 우리 가운데 있다. 그 나라는 믿음으로 그 영역을 식별할 수 있으며, 희망 가운데 투쟁으로서 그 나라를 향해 공헌할 수 있다. 사랑은 그의 성취이며, 기쁨은 그의 열매이다. 그 기쁨은 순수하며, 비이기적이고, 활동적이며,창조적이고 해방하는 기쁨이다.172)
이제 신학은 교회중심적인 신학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 중심의 신학으로 옮겨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개인적 관심 보다는 우리의 이웃과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행태 속에서 그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종교-해방적 시도를 발견할 수있다. 그 미래로서의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꿈이자 인류의 목표로써 변하지 않는 세계 종교들의 이상이다.173)
(2)예수와 인간 해방(人間 解放)
예수의 삶은 유년기에 정치적 탈출과 후기에 로마 황제의 적으로 살해되었다.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세계 체계의 적절성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역할을 재고하여야 한다.
먼저 우리는 예수 시대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재고해야 할 것이며, 인간 해방에로의 길을 여러 문제점들과 더불어 논의해야 할 것이다.
로마 사회는 기본적으로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를 가지고 잇는 제국주의적 식민 사회였다. 이는 노예제를 통해 착취가 당연시되고 로마 군대의 압제는 보편적이었다.174) 유 땅 역시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적 식민 사회로서 로마 제국의 총독 정치하에 있었다.175) 그시대에는 종교와 정치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며,176) 대제사장들은 종교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세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 사회적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 모든 인간 존재의 인격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권력, 부(富), 사회적 신분, 육체적 건강함, 지적 날카로움, 법적 고위층 나아가서 종교에 반기를 들었다.177) 예수는 하느님의 자녀와 자유의지의 소유자로서의 모든 인간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확고히 서서 진리와 정직 그리고 정의의 편에 서도록 도전 시켰다.
티사에 의하면 예수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며, 영적인 지도자이다.178) 그 가르침은 정치적 전략 보다 더 중요하며 그의 메세지는 보편적이다. 예수는 모든 시대에의 한 예증으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예수의 사랑과 봉사의 권위로 다스려지는 새로운 인간성에 기초를 둔 나라를 가르쳤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 시대의 정치적 구조와 종교적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적- 원수에 대한 사랑 은 질투와 이기심 그리고 복수에서 벗어나는 정신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로마의 군사적 정복을 통한 제국주의에 대하여 대조적인 하느님 나라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제자들은 로마 종교- 황제를 신(神)으로 숭상하는 종교-를 부정하였다.
예수가 가르친 사랑, 정의, 그리고 자유는 최근 수백년 동안 그 가치들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통일점이 되어 왔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정의로운 투쟁이라는 개념은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세계 종교들과 더불어 역사에서 영원한 혁명을 위한 세력에 의하여 동기를 부여받아 깊이있게 되어질수 있다. 대중 혁명 세력은 민중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어야 하며, 카리스마적인 자기-희생의 지도자에 의해 인도되어져야 한다.179)
또한 예수는 여성을 동등한 사회적 인격으로 대우함에 따라 여성이 눌림받는 사회에서 해방의 길을 열어 놓았다.180) 여성은 예수의 삶의 중심에서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로 신약 성서는 묘사하고 있다.181) 예수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로 인해 교회는 성차별의 현실에서 자기 정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지표를 삼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창녀, 세리, 젤롯당, 그리고 사마리아인과 같은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인종차별, 계급주의, 그리고 종교적 편협성에서 초월하였다. 예수는 인간 존재와 사회와 눌린자의 집단의 해방자였다.
티사는 예수의 인간 해방의 길에서 종교주의(Religionism)를 비난했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종교적이고 사회정치적 권위가 분리되지 않았고, 그 민중의 정서와 관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182) 예수는 종교 혹은 종교주의에서 영성과 외적 요소를 명백히 구분한다고 티사는 주장한다. 예수는 그 시대의 유대 종교의 형식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하느님과 율법을 동일시한 율법주의의 허상을 폭로하고 교정하였다.
예수는 그의 높은 영적 이상은 그 제자들에게 기르쳤다. 거룩함이란 비이기주의적 사랑이며,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는 완전함이다.(마태 5:43- 48) 티사에 의하면, 그는 종교적 본질을 곧 성부와 자신의 양심에 대한 내적 관계성'이라 가르쳤다고 이해한다.183) 예수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사제이며 그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서 존재의 깊은 차원과 보편적 중요성을 가지고 중재한다.
예수는 바로 제의의 우월성과 종교를 불경스런 세계의 바깥에 거룩한 분리지역(Ghetto)으로 만드는 경향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켰다. 예수는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친교와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성실함, 진리, 정의, 나눔과 비이기주의적 사랑을 추구했다.184) 이러한 것은 모든 종교적 경험과 표현에서 영원한 가치를 두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제국주의적 현실과 착취, 여성차별, 그리고 종교주의의 편협성에서의 인간 해방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해방 과업이 이념이나 사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적 실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185) 이 해방을 향한 정의의 영성으로 성령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계속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3)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적 실천
나사렛 예수의 인생은 인간 해방과 또한 우리에게 인격적 헌신을 위한 하나의 중대한 예증이다. 우주적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계시는 전 우주와인간 역사에 대한 진보에로의 더 나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있다.
티사에 의하면, 예수의 역사적 삶은 우리의 인격적 삶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차원(micro-level)을 이해시켜 주며, 우주적 그리스도로서의 이해는 전 실재와 더불어 우리 자신의 삶에 최대 중요성(macro-significance)을 부여한다.186) 예수는 하느님의 의지를 행하는 혁신적인 새 관계성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의 말씀은 최종적인 말씀은 아니며', 성령은 더 놀라운 것을 계시하실 것이며, 예수가 이룩한 것보다 더 큰것을 이룰 것이다. 여기에서 티사는 예수의 종극성(finality of Jesus)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즉 그는 요한 복음 1장의 로고스 찬양시(요한 1:1-14)을 위성적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서 예수 <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리스도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께 연관되며,완성된 상태로 창조자에게 복귀하려는 전우주에 관계한다. 티사는 그리스도로써의 예수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신성과 인성이 교차하며, 그 안에서 하느님은 자연, 역사, 그리고 모든 시대의 인간 존재에게 우리의 이해 차원을 넘어서 알수 없는 방식으로 관련되어 진다고 파악한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바울의 표현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골로 1:15)'이며,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 것이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인간 차원, 생명 차원, 존재차원을 넘어서는 더 깊은 존재이다.187) 우주적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의 완전성은 모든 것을 화해시키시며, 그 안에 피부색, 종교, 경제 상태, 교육 정도, 인종 배경, 성별에 기초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우주적 그리스도는 우주적 인간 연대의 원리'이다.188) 또한 주 그리스도(Christ the Lord)'는 나사렛 예수보다더 풍요하고 더 넓은 차원이다. 그는 나사렛 예수와 주 그리스도 사이의 정확한 구별 보다는 관련성에 더 관심한다. 구별에 대한 서구 신학의 모순은 그 논리의 모순성에 있다고 비판하면서 동양적 사고는 통합의 논리이며, 비연속성보다는 연속성을 강조한다고 보았다.189) 전통과 그리스도교 신학은 물질과 영, 우주와 하느님 자연과 무제약적인 것, 그리고 예수와 우주적 그리스도의 보편성 사이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차원에로의 복귀는 하느님의 성령을 더 쉽고, 다른 종교와 이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진정한 대화를 하는데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는예수 , 그리스도, 하느님을 독점하려는 경향 속에 있었지만 이는 교회의 편협한 이해의 결과였다. 개인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평화 시대에 있어서 신학은 더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향한 책임 있는 태도를 추구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였다.
제 3 세계의 민중은 우주적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요구한다. 이는 세계 권력 구조의 재구성에 대한 요청이며, 더 공정한 방식으로 지구의 자원과 지표면의 분배, 국가 주권의 제한이 필요한 사회가 되어졌다.190) 또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명상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청한다. 자연에의 존중, 오염, 낭비와 파괴의 방지는 그리스도적 차원에서 요구된다. 그리스도적 차원의 이상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며, 보편적 행복의 최종적 성취를 희망하는 믿는 자들의 의식이다.
제 3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들의 열망과 투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와 영감을 관련시킴으로서 세계사의 각 단계에서 공헌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혁명적 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 혁신적이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가치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보수적이어야 한다.191)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계시의 혁신성을 고수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실천자로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한다(빌립 3:10-11). 이 세계는 그리스도적 차원의 실천을 통해 완성되어져야 할 인류의 미래인 것이다.
4. 변화하는 시대의 교회론
(1)교회의 근본적 전환과 선교
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핵심, 삶의 의미에 대한 인간적 추구, 그리고 인간 착취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재고가운데, 선교와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자아실현, 각 개인과 모든 인류, 그리고 자연의 완전한 개화(開花)를 위하여 나아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신앙과 이념을 넘어서서 협력하고 착수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갱신된 위성적 선교와 전도의 개념은 의의 통치 - 하느님 나라 - 의 성서적 가치에 기초한 사람들과 민중 가운데 연대의 관계성을 촉진시키는데 우선해야 한다.192)
새로운 교회론과 교회의 자기 인식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집단적으로 나아가는 인간성 회복 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교회의 선포는 예수가 의도했던 그 선포 곧 그가 우리를 사랑했던 것처럼 또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요한 13:31)이다.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교 공동체 건설은 사람들과 국가들 간에 사랑과 나눔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며, 복음 증거는 통전적 말씀과 실행이어야 한다. 티사에 의하면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전환을 요청하는 것'이다.193) 이러한 전환 가운데 십자가는 우리 자신의 상황과 그리스도교적 순종과 제자도의 결과를 수행하면서 증거할 때 만나게 된다.
세속적 실재로서의 세계는 그리스도교 선교의 촛점이며, 주체가 된다. 하느님은 창조의 힘과 사랑에 의해 모든 실재 안에 현존하신다.194) 하느님의 영은 세계 안에 계시며, 세속 세력을 통해 교회를 훈련 시켰다. 이는 창조의 하느님이 곧 역사의 하느님(the God of History)이며, 인간과 지구를 궁극적인 나라에로 그 완성을 향해 이끌고 계신다.
이러한 시기에 필연적인 해방 활동의 표식을 식별하지 못하는 교회는 인간 사건의 중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비이기주의적인 태도로 자기 자신의 의무를 간과하지 않으면서 타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인격적 완성을 추구한다.
교회는 개인적,사회적, 지역적,국가적, 그리고 국제적인 각 차원에서 공헌 할 수 있는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여 수행해야 할 것이다. 진지한 명상은 이웃에 대한 혁신적인 사랑의 요청이며, 혁명은 하느님, 인간,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 대한 명상 안에서 인식된 그 이상(the Vision)을 인식하려는 활동 투쟁에 대한 명상의 전형적 결과이다.195)
이러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전환은 바로 교회 선교에 있어서 본질적인 양면이다. 교회와 집단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류와 인류의 고향인 위성 지구에 충성을 다하는 새로운 인간성의 전형을 요구한다.
선교가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면,196) 타선교와의 대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것이며,197) 대화는 타자의 현실에 대해 진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세계의 민중과 각 교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가능한 한 모든 곳에서, 지역에서 부터 지구적 차원에 까지 단결되어야 하며, 다양한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하여 교회의 일치운동은 지구적 정의를 위한 혁신적인 희망을 갖게한다. 이러한 세계 민중과 교회일치운동 - 조사, 자료 수집, 교육, 세계적 여론(public opinion)의 창조, 눌림 받는 자와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한 유통, 정부와 정치적 엘리트들에 대한 압력, 믿는 자들의 신학적 반성과 동기 부여 등 -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를 위한 활동의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해방에로의 전환은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구조의 변혁에로의 활동을 위한 선택이 요구된다.198) 이러한 선택은 진정한 해방을 위한 내적이고, 외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결정이다.
또한 여성은 정의와 사랑의 진정한 관계성을 위한 본질적인 동일성과 존엄성을 그들의 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199) 여 은 이제까지 눌린 자로서 교회의 성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교회는 남성위주의 독점정책에서 벗어나 해방되어져야 한다. 교회의 바른 수행을 위해서 여성 세력의 공헌은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며, 제 3 세계의 그리스도교 운동에서 교회는 모든 여성 운동과 연계되어야 한다. 또한 계급적 착취에 대한 해방 투쟁을 통하여 통전적인 인간 해방을 향한 지구적 전략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지구적 상호작용과 의의 통치로서의 하느님 나라가 궁극적 틀이 되는 선교의 현대후기(Postmodern Age)로 넘어가면서 교회는 갈라졌던 자신의 틈을 메우고, 세계 민중들과 더불어 민중의 요구에 응답하는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성찬(聖餐)과 인간 해방
티사에 의하면 성찬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핵심'이다.200)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신비를 가지고 있는 상징이며, 우리에게 참여를 통해 그 영성을 부여 받도록 요구한다. 예수의 죽음은 통전적인 인간 해방과 완성을 위해 확고히 섯기 때문이다.201) 바 우리는 성찬을 통해 눌린 자의 위치를 반영해야 한다.
우리가 성찬을 인격적이고 사회적인 해방에 관계시키는 과정에 창조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성찬의 의미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월절의 성찬은 정치적 해방'의 축제로 지켜졌으며, 신약 성서의 성찬 제정은 유대 민중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202) 티사에 의하면, 예수에 의해 제정된 성찬은 통전적인 인간 해방을 위한 자기-봉헌(Self-sacrifice)이라고 파악하면서 다음의 네가지 양상으로 이해 한다.203)
1) 하느님에 의한 해방의 회상으로서의 축제적인 만찬.
2) 현 시대에 그의 희생과 계명에 응답하는 초대로서의 예수의 현존.
3)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추모.
4) 계약의 갱신
티사는 신약에서 성찬은 예수의 투쟁과 그의 생애 곧 삶, 고난, 그리고 죽음에 의해 주도된 인간 해방을 위한 것에 대한 감사와 기억으로 본다.204) 예수께서는 성찬을 통해 믿음과 물질의 나눔을 기대하셨으며, 그 기대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마태 6:9-13)에서 확연해 진다. 그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모든 이들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생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민중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성찬이며, 그 성찬 가운데 먹고 마시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예수의 생애에 드러난 만찬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자, 여인, 어린이를 포함하는 것이었으며, 진정한 나눔의 실천이었다. 바로 진정한 기도는 활동에 관계 되어진다. 그 활동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랑과 정의를 위한 효과적인 실천을 요구한다.205)
그러나 오늘날 성찬의 신학에 있어서 그 집행자들이나 제정자들이 압제의 경험을 가져보지 않았으며, 그들은 오히려 통치 세력의 한부분으로 착취 구조의 필요를 확고하게 해주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티사는 비판한다.
오늘날 요구되는 인간의 해방과 더불어 성찬의 해방도 요구되며,압제받는 민중의 목소리, 그들의 고난과 경험은 바로 신학과 영성의 주제로 부각되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회개를 요청한다. 이러한 요청은 세계의 노동 계급과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과 관련되어진 현실이다. 이들은 교회의 왜곡된 체계와 성찬론을 다시한번 재고하게 하며, 민중의 시대적 요청에 귀 기울이기를 원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체계는 바로 사랑의 나눔이라는 성찬의 가치와는 대조적으로 착취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이기주의이다. 최근 국가들의 경제 블록화 현상으로 무역 보복 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며, 각국들은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성찬(Eucharist)이 공동체를 세우고, 보편주의적이며, 평등한 사회를 촉구하며, 겸손한 봉사를 목적으로하며, 빵을 나누고, 땅을 공유하고자 한다면, 세계 체계(World Sytem)는 사람과 민중을 파괴하며, 인종주의적이고, 국가 주도권을 다투며, 특권을 추구하고,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땅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206)
그러므로 성찬의 신학은 티사의 말대로 위성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지구적 영성'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207) 이는 우리의 일상 생활이 세계의 다른 부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양식, 의복, 교통 수단은 모두 세계의 여러 민중들의 현실과 관련된다. 이제 성찬은 연합의 성례'이며 또한 세계정의의 성례(the Sacrament of World Justice)가 된다.208) 하나이며, 지구적이며, 보편적이 되어가는 교회의 의미는 오늘날 인류 가족에게 위성적 일치의 용어로 이해되어 져야 한다. 만약 세계에 대항하는 성찬 운동이 형성된다면 교회는 바로 해방을 향한 하나의 중요한 동맹이 되어질 수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찬의 신학은 아직도 유아기적인 상태이지만 위성적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성찬 신학에 대해 집단적이고, 창조적이며, 적절한 대응을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티사는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 세계노동기구(ILO), 식량농업기구(FAO), 세계 보건기구(WHO)와 같은 제 3 세계 국가가 발언권을 많이 소유한 국제 기구를 지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혁식적 복음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209)
(3) 교리 교육의 재검토
티사는 성찬 신학의 개편과 더불어 교회는 정의로운 인간 연합의 메세지를 나눌수 있는 위성적 교리 문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210) 이러한 교리 문답은 인권, 인간 성취, 그리고 생태학적 문제를 더 확대하고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갖는다. 티사는 교회에 속한 자들의 그리스도인 교육으로서의 교리 문답은 이러한 문제에 주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211)
오늘 우리의 질문은 교리 교육이 정의, 자유,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나눔에 대한 인간 관게의 영역에 침묵하는가?'이다. 아직도 교회는 개인적 구원과 성화의 문제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으며, 사회적 분석과 정치적 적용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비정치적 태도로 이하여 정의를 위한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에 한계짓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 변화를 향한 교리 교육의 태도를 주도하거나 참여하기에 불충분하며, 교재는 주로 교회 내적인 일이나 매일의 개인 생활에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티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교육 교재가 세계, 우주적 원리들, 국가 현실, 인간 해방을 위한 민중의 투쟁, 타종교와 그 중요성에 대한 토론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212) 이러한 관점에서 티사는 교리 교육, 십계명 그리고 성례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먼저 교리 교육은 세계의 현재 상황과 관계시킬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 이는 교리 교육이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의식 없이는 사회적 변화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은 곧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해방의 교육이며,그 나라에 대한 정치적 교육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의 변화는 깊은 인격적 헌신과 연구와 반성에 대한 결과로서 가능해 질 수 있다.213)
교리 교육은 인류의 창조, 하느님의 보편적 부성(Fatherhood), 인류의 일치성을 강조해야 하며, 재산의 사회적이고 집단적 소유, 국가 주권의 제한 , 국가 재산의 조정, 인종과 문화의 개념들,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성, 국가내에서의 부(富)의 재분배, 피부, 카스트 제도, 성(性) 혹은 연령에 의한 차별, 자연 보호 등과 같은 모든 것에 대해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관점에 의해 영향받아야 할 것이다.214)
티사에 의하면, 죄란 사람 가운데 하느님의 부성(父性)과 정의의 현실화를 특별한 구조나 환경을 통해 방해하는 것이며, 민중을 하느님에게서 분리하는 것이다. 또한 회개란 교정된 본질로 이해되고, 이는 정신적 변화의 교정적 노력을 포함한다.215)
나아가서 계명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도덕 생활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명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이거나 부정적 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위성적 관점에서 계명의 의미를 심원하고 폭넓게 재발견 해야 한다. 티사는 특히 그리스도교 계시의 관점에서 유일한 사랑의 계명과 산상 보훈의 정신에서 계명을 재고하고 있다.216) 그의 십계명을 사회적 관계성을 위한 지침으로 파악한다. 각 계명은 사회적 변화와 정의라는 촛점하에 새롭게 읽혀지고, 생태학적 관점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례는 외적 예식의 강조에서 내적인 영적인 의미의 강조로 전환 되어야 하며 성례는 내적은총의 외적 표식으로 인지되어야' 한다.217) 세례는 예수에 의해 표명된 하느님과 정의와 사랑의 나라에로의 전환'으로 이해한다.218) 세례는 외적 표식보다 내적인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며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성원이 됨이며, 모든 인간의 선한 의지에 연합하는 것이며, 우주적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믿음을 통해 교제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관심과 존경을 표하는 신앙적인 실재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의 결과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강조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신앙, 삶, 그리고 활동의 대화를 위해 예비된 것이다.219) 이를통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세계 변형에 참여를 위한 영적 갱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활동/반성에 기초한 교리 교육의 방법론은 사회-정치적 쟁점에 개방시킴으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교리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발전들은 그리스도교 예전과 기도에 깊은 충격을 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더 밀접하게 이끌리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교리 교육의 운동을 통하여 세계 변혁의 과정에 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확신한다.
(4) 예배의 갱신과 아시아 종교
오늘날 세계는 교회로 하여금 선교가 현 시대 민중의 희망과 기쁨, 슬픔과 혼란에 응답하도록 급격한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는 예식들은 반성과 활동 사이에서 중재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티사에 의하면,예배는 다음과 같은 주제에 맞추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촛점을 형성하도록 제공되고 재편되어야 한다 : 음식, 피난처, 가족, 성(性), 환경, 건강, 교육, 노동, 자유, 진리, 정의, 종교적 조화 등220)
교회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명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를 위한 사랑의 더 나은 표적을 행해야 한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투쟁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참여한다면, 그 예배들 역시 이러한 투쟁에 연관되어야 힐 것이며, 매 주일 예배 모임은 그리스도인들의 연대를 위한 중요한 행사가 되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의와 폭정을 타도하는 세력에로 그들을 변형시키기 위해서 심원한 문화적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바로 주일 예배는 내적인 인격적 성장과 사회적 헌신을 위한 최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221) 물론 이러한 예배에서 설교는 예언자적인 설교로서 깊이 스며든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는 것이어야 하며, 설교자는 공동체의 양심을 대변하는 용기를 가지고 부패한 사회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222)
그러나 앞서 다룬것과 같이 서구의 배타성으로 인해 이러한 아시아적인 종교 의식이나 문화가 배타적인 것으로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아시아인의 영성에는 아시아적인 것이 기본적인 영성의 흐름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사는 바로 이러한 관점을 수용한다. 그에 의하면 문화는 민중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 이다.223) 그러나 서구의 배타성으로 인해 이러한 아시아적 요소는 제거되었다. 아시아 종교들의 전통에서 유래한 요소 외에 일반적 문화 전통은 종교 예전에 수용되어져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민속 명절들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들의 근본적인 가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224) 예술, 음악, 연극, 그리고 춤 등의 전 영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교 예식을 위한 갱신과 채용의 폭넓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된 많은 교회들은 타종교에 대한 태도에서 더욱 개방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타종교와 함께 공유할 가치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티사는 아시아 종교들에게서 채용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초연함(Detachment), 금식, 명상, 단념, 비이기적인 봉사, 삶의 단순성, 절제, 그리고 사상과 활동에 있어서의 비이기성이라고 맣한다.225) 또한 타종교의 상징과 상징의식 특히 세정식(ablutions), 조명 단순한 흰 복장, 꽃들은 종교적 믿음 보다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더 관계된 것들로 그리스도교 예식에 쉽게 채용될 수 있다. 이로인해 아시아적 의미를 더 살릴수 있으며, 전통적 사회 가치와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일치시킬수 있다.226)
나아가서 아시아의 영적 지도자들과 경전에도 존경을 표함으로서 그들이 아시아 민중의 영적 각성에 중대한 역할을 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아시아의 영적인 경전이 그들 나라에 준 하느님의 계시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의 선한 것을 종교 교육과 명상 그리고 에배에 수용하고 통합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227)
이를 통해 종교 상호간의 활동과 반성은 폭이 널어지며, 심원한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세계와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변형은 세계 종교들을 믿는 자들의 참여와 연대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문화적 혁명은 가치를 변화 시키는 깊은 반성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활동 집단은 다종교적(多宗敎的)이며, 일반적인 반성과 기도의 도전은 그리스도인이 인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활동 집단을 형성했을 때 더 강해진다.
이러한 위성 신학적 현재에 우주적 그리스도의 신학과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는 직접적으로 중요하다. 타종교 전통과의 대화는 반성적 예배의 형태에 공헌할 것이며, 그러한 예식들은 모든 종교와 이념을 넘어서는 통전적 인간 해방(integral Human Liberation)의 투쟁을 향한 예배가 되어질 것이다. 이는 영적이며, 말씀과 실행의 예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접근해야 할 긍극적인 에배의 형태는 교회의 분리, 종교 계급, 여성 차별, 성서와 예전의식이 없는 것에로의 접근이며, 하느님이 새하늘과 새땅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228) 우리는 이러한 보편적 화해와 지구의 정의(正義)를 향해 모든 종교가 통전적 인간 해방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는 티사와 모든 인류의 희망이며, 천상적 예배이다.229)
5. 정의의 영성
(1) 정의의 필요성
티사에 의하면, 영성(Spirituality)은 자아 완성과 완전을 위한 추구에 의도된 종교적 문서에서 사용된 용어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이 서구의 영성과 종교적 거만함으로 인해 다른 영성들을 인간적 창조물로 무시하였다는 것이다.230)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서구 자본주의적 사조에서 무의미성을 느끼자 동양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그 해결을 위해 보수적 근본주의, 영성 운동, 요가, 동양 전통, 나아가서는 마약 같은 것을 통해 정신적 공허함을 벗어 나려고 한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아 실현(Self-realization)은 모든 차원에서 원초적인 관심이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해방의 영성으로,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들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자유와 책임감, 그리고 사랑을 충분히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의 보편적인 접근은 건전하고 올바른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그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며, 참된 게몽적 의식 개혁과 집단적 노력은 모든 곳의 대중들을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의의 영성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부(富)와 수입, 기회와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추구하며, 이기주의에 대한 투쟁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 정의의 성장은 모순되는 결정에 대항한 집단적 투쟁을 요구한다. 이는 사회정의에 대한 장애물이 개인적 노력에 의해 극복되지 않으며, 집단 활동을 통해서만 극복되기 때문이다.231)
티사에 의하면 사회 정의는 역동적인 덕(Virtue)이며, 사회에서의 물질,소유, 분배, 교환의 상황에서 직접적 영향을 끼치며, 또한 이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 헌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왜냐하면 현세계에서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인권의 실현이 정치적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32) 나가서 사회 정의는 집단적 자기 비판과 현 상황에 대한 조직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종교들은 영성 생활의 중심으로서 정의를 주목하지 않고 예언자적 전통 보다는 제의적 전통을 따름으로서 현재의 종교적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티사는 전통적 영성이 신앙인들의 사회정의에 대한 헌신에 오히려 방해물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종교의 내면에 있는 사회적 혁신주의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다.233) 종교들은 각기 방식대로, 보편적 연대, 동일성, 정의, 자비, 그리고 진솔함을 가르친다고 보았다. 우리가 이러한 방식대로 이해할 때 각 종교는 정의의 근거를 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또한 성서에서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를 발견하며, 이것이 곧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 구체화되는 현실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234) 많은 예언자들은 참된 종교란 이웃에 대한 정의에 기초하는 것이며, 정의 없는 예배는 무의미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신약에서는 명백히 사회정의를 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격적이고 사회적인 통전적 해방을 설교하셨다. 그리스도는 눌린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했으며, 그의 생명은 해방을 위한 투쟁에 내어 주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사회 정의의 실천과 사랑이었다.
티사에 의하면, 정의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첫 요구이며, 하느님에 대한 성례'인 것이다.235) 성령의 은사와 은총 가운데 사회현실의 식별, 정의로운 행함에의 용기, 집단적 안에서의 관계성의 진전, 직업의 선택과 생활 방식의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 활동의 시기, 전략에 대한 결정 등을 포함한다.
성령은 의의 통치로서의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일하게 하며 진리, 사랑, 정의 그리고 평화의 가치에 따라 살도록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바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혁신적 투쟁에 선한 영감을 주심으로서 전세게의 광대한 변화 속에서 현존하고 계신다.236)
(2) 신학적 덕목과 사회 정의의 덕목
여기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관계성을 세가지 신학적 덕목으로 살펴보고, 사회 정의의 덕목으로서의 용기, 분별, 절제를 살펴볼 것이다.
티사는 하느님에 대한 관계성을 믿음, 희망, 사랑의 신학적 덕목으로 뚜렷이 말하고 있다. 티사는 이것들을 삼위일체의 이해와 통전적 인간 해방의 용어로 재고하고 있다.237)
믿는 자들의 신앙은 여행하는 순레자들과 같은 것으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이다. 신앙인들은 그들의 순례의 과정 속에서 많은 장애물을 만든다. 이러한 시기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역사의 행진 가운데 깊은 확신을 요청한다. 이 확신은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위성적 관계성 속에서의 진보이다.238) 신앙은 하느님이 우리의 노력 속에 현존하시며, 그 분이 각 사람과 집단 그리고 공동체의 자아실현과 성취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성서의 기본 메세지를 수용하는 것이다.
또한 희망은 잃어버린 신학의 덕목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약속의 현실에 대하여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239) 세계의 수많은 민중과 창조물들은 하느님의 자녀와 더불어 같은 자유와 영광을 누리길 희망'하고 있다.(로마 8:23) 진리, 자유, 정의, 사랑, 그리고 평화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인류와 우주의 미래의 광채(로마 8:18)에 대한 확신때문에 가치있고 참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 상태를 만족하지 않고 인류의 미래를 건설하려는 막을 수 없는 낙관주의적 희망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희망이 고난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며, 희망은 고난의 부정적 성격을 변화시킬수 있는 영적 힘으로 이해하고 있다.240)
마지막으로 신학적 덕목으로서의 사랑은 정의로부터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은 사랑을 인간 관계성의 핵심적이고 최상의 덕목으로 파악하였다.(1고린 13:13) 사랑과 정의의 관계성은 좀처럼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것은 정의없이 실현되지 않으며, 정의와 양자택일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정의는 사랑의 시작이다. 이 사랑 가운데 하느님과 사람은 만나며, 사랑으로 인해 하느님과의 교제를 의미있게 하고 타인과의 교제를 인격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나눔은 세계 공동체의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서로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날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241)
사회 정의의 덕으로서의 용기, 분별, 그리고 절제는 긴장과 갈등의 구조 안에서 재고 되어야 한다.242)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사회정의의 영성의 출발이다. 이는 눌린자들을 위한 정의의 편에 서는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기 위한 것, 즉각적인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계성, 우리측 투사와의 새로운 관계성 형성의 재고, 그리고 인류의 미래가 희망하는 것에 대한 인내를 위하여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는 정의가 좋은 행운의 결과가 아니며, 고난을 수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별은 다른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처음에 인격적 관계나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의 용어로 보았으나 이제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갈등 구조 안에서의 역할이 있다. 그것은 불필요한 투쟁과 부차적인 것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는 위험도를 산출하며, 극단적 희생 - 감금, 삶 자체 - 에 관련된 것을 결정하는 지혜이다.
또한 절제의 덕은 인내심과 성급함, 활동과 반성, 신속과 신중, 타협과 극단의 조화로서 이해될 수있다. 이는 타자를 존경하고, 사회정의에로 그들을 도전시킬수 있다. 자유와 규율(Discipline)은 혁신적 투쟁에 결합되어져야 하며, 각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져야 한다. 규율은 정의 사회를 원하는 자들 가운데에서 분열을 막을 수 있다. 바로 절제의 덕은 자유와 규율을 일치시킨다.
(3) 사회 정의(社會 正義)의 영성
티사는 사회정의의 영성을 위한 선택의 결과를 미리 전제함으로서 그 선택의 결과를 인지시킨다. 티사는 사회 정의를 위한 하겠다는 맹세를 하려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장애물을 먼저 인식하도록 요구한다.243)-자기 만족, 물질적 보장, 일상성의 추구, 주변의 불의에 대한 무관심, 사회 문제에 대한 피상성, 해야할 일과 가족, 적당주의, 문제 의식 결여, 지나친 관심거리, 운명주의, 무비판적 태도, 징벌과 무지로 인한 두려움, 돈과 안정에 대한 지나친 관심, 가난한 자에 대한 무지, 정치적 중립, 변화 방식의 회피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정의의 덕목 안에서 성장하는데 관심하는 사람등이나 집단이 심각하고 성실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정의의 영성이 이러한 것들에 대해 자주 침묵하거나 비판적으로 관계짖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와같은 정의의 장애물을 과감히 딛고 일어서야 사회 정의의 덕목을 소유하여 정의의 영성(Spirituality of Justice)으로 민중의 통전적 해방을 이룩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244)
이러한 장애물 극복의 과정에서 우리의 내적 두려움과 이기주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245) 사상적 해방과 인간 해방 모두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과 사회 안에서 형성된 이기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티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랑이 동기를 주는 영성을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눌린자들에 대한 사랑은 압제에 대해 우리의 활동을 강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동맹, 우정, 사회적 관계성을 재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관계성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그 관계성에서의 소외를 맛보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246)
나아가서 오랜 기간의 종속화로 인해 사회적 변화를 반대하는 눌린자들이 발생함에 따라 그 해방 투쟁에 대한 지지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과 저항은 이웃에 대한 봉사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영성을 발전시키는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티사의 말대로 '정의의 영성은 갈등과 긴장의 한 가운데서 내적인 깊은 평화를 이루도록 도울 것이며, 다만 이는 정의의 활동에서 더 많은 반성과 집단적 진보가 요구된다.247)
그리하여 사회정의의 영성(a Spirituality of Justice)은 반성, 명상, 기도, 그리고 피정의 혁신적 형태들을 전개시켜야 한다. 이것은 사회 환경과 집단과 사람에게 유효한 선택의 인식을 포함할 것이다. 기도에 충실한 반성(prayerful Reflection)은 자기 비판과 개인적, 집단적 평가를 필요로 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시대적 체계와 타협하려는 유혹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헌신에 대한 견해 차이를 동료들과 더불어 일치시키며, 주어진 상황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248)
나아가서 사회정의의 영성을 위한 작업으로 눌린 자들과의 동일화에 힘써야 한다. 티사는 이러한 동일화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눌린자에 대한 봉사 - 인격적 ,물질적인 나눔으로 돕는 것,
2) 정신과 마음으로의 연대 - 눌린자의 고통과 고민을 나누는 것,
3) 그들의 투쟁에 참여 - 의식 개혁과 여론 조성 및 참여,
4)생활 양식의 동일화 - 물질적인 가난함에 스스로 처함,249)
위와 같은 태도는 눌린 자를 이해하고 체험하는데 도움이된다. 그러나 실제적인 것은 자신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단한번의 모두를 위한 죽음보다 더 어려운 것은 타자와의 고난을 동일시하기 위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죽는 것이다.
영성적 인격 성장은 또한 삶의 방식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종교, 계급, 혁신 집단, 성(性)에 의한 옛 구분에서 벗어나 사회-정치적 선택에 기초한 사회적 목표, 전략, 수단에 의한 새 생활 양식에로의 재집단화가 요구된다.
이는 또한 새로운 형태의 에큐메니즘으로서 교회 내적 투쟁과 교회 상호간의 투쟁을 넘어서는 것이다. 생활 양식의 변화는 우리에게 자각과 확신,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 헌신은 위험, 긴장, 갈등, 단절등을 가질수 있으며, 깊은 반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세계의 뒷편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압제의 시기에 시민권의 옹호를 위해 자신을 투신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사유깊은 결정을 요구한다.
사회 정의를 위한 기도는 성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그 실체를 발견하여 모든 이의 아버지 로 불리는 하느님의 요청은 피부색, 계급, 카스트 제도, 그리고 성차별에 기초한 사회적 차별의 모든 형태에 대항하는 선택으로 우리를 이끈다.250) 나날이 증가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회 정의에 헌신한다는 것은 고난을 의미한다. 정의를 위한 우리의 질문은 자기-증여를 통해 대답되어질 것이며, 그들의 사랑은 실존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와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사회 정의의 영성은 살과 피로써 획득되어지는 사랑이다.
Ⅳ . 결 론
1. 요약
우리는 이제 까지 티사 발라수리야의 위성 신학을 종교 해방 신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티사의 위성 신학은 스미스와 파니카 그리고 피어리스의 관점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해 왔음을 우리는 알수있다. 바로 위성 신학의 연구 가치는 위성 신학의 촛점에 세계적이라는 관점에서 만나며, 파니카와 피어리스의 종교적이며, 해방적 신학은 그와 같은 인도 문명권이라는 장점으로 이해 유사한 가치관과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티사의 위성 신학은 다종교 안에서의 종교적 연대라는 촛점에서 스미스와 파니카를 만나며, 다종교의 현실 속에의 상황 신학으로서의 가능성 가운데서 파니카와 피어리스를 만난다.
우리는 먼저 그의 이러한 세게 체제의 문제점에 앞서 아시아의 현실을 논함으로서 셰계 재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아시아의 현실은 다종교와 고난의 현실로써 아시아 민중은 하느님과 더불어 고통하며, 민중의 새 시대즉 하느님나라의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질서는 서구의 세계적 패권주의에 의해 종속적 상황에 있지만 민중의 해방적 투쟁과 정의의 영성으로 인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티사는 강조하였다.
세계 체제는 15세기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적 착취로 인해 발생된 서구 우월 의식의 결과로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놓여지게 되었으며, 이의 극복을 위해 제 3 세계의 민중이 연대해야할 필요성을 말한다. 세계 민중의 연대는 인간 해방이라는 차원을 향해 종교, 문화, 피부색, 인종, 성(性)의 구분을 넘어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라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 세계 질서의 가치는 통전적인 인간 해방(Integral Human Liberation)이며, 이 해방의 실천을 위해 끝없는 투쟁이 요구된다. 이는 과거의 민중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특히 여성-의 해방은 신 세계 질서의 확립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 받는다. 이를 위해 종교적, 정치적 민중의 연대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향한 세계 종교 해방의 길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정치-경제적이며, 다문화적(多文化的)이고, 다종교적(多宗敎的)인 사회의 일치와 완성을 위한 그리스도교 노력을 위해 위성 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위성 신학은 바로 전통 신학의 재고로 부터 출발한다. 전통신학은 오늘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잃었으며, 지역적이 되었으며, 교회중심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 신학을 넘어서 상황적이며,지구적인 관점을 가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소유한 신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티사는 그리하여 하느님을 창조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우주적 관점에서 다시 재고하며, 하느님을 역사의 하느님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해방자로 파악하며,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인간 해방(人間 解放)의 실천적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그리스도의 해방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적 차원을 인식하게 된다.
급변하는 세계는 교회로 하여금 교회적 우월주의를 포기하고 근본적인 전환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오늘날 민중의 현실에 응답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티사는 역사의 하느님을 인식시킨다. 오늘날 교회는 세계와 타자에 대한 깊은 명상과 성찰을 통해 위성적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이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타종교와 의 연대를 필요로 하며, 교회는 인간의 해방과 성취를 위한 지역적, 국내적, 국제적인 차원의 연대에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특히 성찬의 신학은 민중과의 나눔'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정향되어야 할 문제로 그리스도교의 증거는 복음의 말씀과 실천이 동시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 투쟁의 길에서 그리스도교적 종교 교육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세계 종교와의 대화, 그리고 정치적 교육으로 부각되어야 하며, 통전적 인간 해방의 길에 투신하는 의식적 노력을 추구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 투쟁의 연대와 각 종교의 풍성함,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완성을 위해 순례자적인 시간안에서 서로의 것을 배우고 수용함으로 말미암아 타종교와 공유할 새로운 가치들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희망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그리스도교적 투쟁에서 정의의 영성은 중요하다. 이는 하느님의 요구(미가 6:8) - 정의롭게 행함, 따뜻하게 사랑함, 겸손되이 하느님과 동행함 - 이며, 우리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실천으로서의 정의를 수행하는 것이다. 바로 정의는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바로 믿음, 희망 사랑의 덕목과 용기, 절제, 분별의 덕은 정의의 중요한 성품으로 사회정의의 영성을 추구하는 데 큰 활력을 지니게 된다.
사회정의의 영성은 갈등과 긴장 그리고 소외의 현실적 가능성을 수용하면서, 묵상, 기도 그리고 피정을 통해 훈련되어진 민중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모든 이의 아버지'인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하느님 나라를 향한 투쟁에서 실천되어져야 할 것이다.
2. 세계 종교 해방의 신학을 향하여
이제 우리는 세계 종교-해방 신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근대후기 시대 에 있어서 신학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위성 신학의 추구이기도 하다. 위성 신학의 하느님 이해가 창조자로써 바라 보는 것은 창조 안에 내재하시는 그 분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며, 우주 질서의 창조자이신 그분을 올바르게 섬기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질서의 하느님을 섬기는 신학은 스미스의 말대로 비교종교학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인의 아버지이신 그분을 믿는 신학은 당연히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종교 해방의 신학의 차원을 두 주제에 따라 이해 해야 한다. 하나는 종교 해방의 관점이며, 또하나는 존재 해방의 관점이다.
종교 해방의 관점에서 티사의 말대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연대에서 종교, 이념, 체제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각 종교는 그 나른 대로의 가치관과 의식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서로 공유할 가치를 찾아내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풍요케 함으로써 종교'라는 편협함에서 해방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형식이며,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하느님은 종교가 아니라 진리이시다. 나아가서 민중의 해방은 한 종교, 한 국가, 한 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종교적 민중의 연대가 우선시되며 종교적'이라는 한계에서 해방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면 종교의 형식은 상실될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강조점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의 사회 (sustainable society)는 유한한 자원과 생태학적 파괴라는 전지구적인 세계 질서의 불의에 대항하는 그리스도교의 응답이었다. 또한 1976년 스위스의 모임에서는 정의와 생태학 의 문제가 주로 다루어 졌고, 1991년 캔버라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제는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였으며 그 핵심은 해방하는 생명 (Liberating Life)이었다.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여러 논의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적 연대 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주요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존재 해방의 차원에서 일본 선불교 철학자 도겐(Dogen, 1200-53)의 불성(佛性)의 차원이해는 그리스도교적 생태학적 신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體衆生 悉有佛性) 이라는 관점에서 해방을 말한다면 이는 인간 존재의 해방, 생명존재의 해방 뿐만아니라 모든 존재 자체의 해방과 관련된다. 세계내 존재로써의 하느님을 말한다는 것은 세계의 모든 존재의 해방이 완전한 해방이며, 성서는 이러한 생태학적 완성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위성신학의 길이 세계 종교 해방을 향한 길이며 우리는 이길에서 끝까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부름 받았다는 각오로 실천될 때 이러한 신학은 이제 그 중요성이 부각 되어질 것이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개 하노라. (계시 21:6)
2)W. C. 스미스,지구촌의 신앙,(왜관: 분도출판사,1989),p.150.
3)新패권주의 美國세계지도' 그린다,조선일보, 1992년3월10일, 5면.
4) 일본 패권주의화 경계해야',새누리 신문,1992년3월7일, 10면.
5)W. C. 스미스,앞의 책 ,P.22-23.
6)E. J.Hughes,WILFRED CANTWELL SMITH:A THEOLOGY FOR THE WORLD,(London :SCM Press,1986)P.151.
7)박갑서,Wilfred Cantwell Smith의 세계신학 연구,석사학위 논문,
감리교 신학대학원,1988.P.75
8)Hughes, 앞의 책,P.164.
9)박갑서,앞의 책,p.105.
10)그의 주요 저작은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1981 개정판), the
Trinity and World Religion(1970),the Trinity and Religious Experience
of man(1973),그리고 the Intrareligious Dailogue(1978)이다.
11)R. Panikkar,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maryknoll,NY:Orbis
books,1981),P.7.
12)정상용, 레이문도 파니카의 종교신학 연구 ,(석사학위 논문,감리교
신학대학원,1987,)p.55.
13)위의 책,p.56.
14)Panikkar, 앞의 책,p.25.
15)위의 책,p.27.
16)Paul F. Knitter,NO OTHER NAME ?,(Maryknoll:Orbis,1985),p.155.
17)H. Coward,PLURALISM:Challenge to World Religion,(Maryknoll:Orbis
books,1985),p.43 - 44.
18)A. 피어리스,아시아의 해방신학,(왜관:분도출판사,1988),p.210.
19)위의 책,p.211.
20)피어리스, 앞의 책,p.248.
21)위의 책,p.249.
22)위의 책,p.12.
23)위의 책,p.16 - 17.
24)피어리스,앞의 책,p.261.
25)위의 책,p.90.
26)위의 책,p.95.
27)위의 책,p.97 - 98.
28)변선환, 비서구화와 제 3세계 신학 ,(신학사상46집, 1984년 가을),p.563 -564.
29)Britanica Book of the Year 1991,edit by Daphne Daume,p.299.
30)Balasuriya,앞의 책,p.3에 의하면 그는 아시아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을 주로 다룬다. 이는 그 자신이 세계의 여러 곳을 방문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31)Balasuriya는 2장에서 세계 조직(World System)을 다루고 3장에서 아시아
에 대해 말한다.
32)A. 피어리스에 의하면, 가난의 원인과 그 발생의 메카니즘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가난이 여러 국가에서는 죄악과 압제적인 사회 구조와 부정 부패의 결과이며, 불의한 국제 경제 질서의 산물이라 고 보았다. 피어리스,아시아의 해방신학,p.50.
33)Balasuriya,앞의 책,p.78.
34)위의 책.
35)위의 책,p.79.
36)위의 책.,A. Pieris에 의하면 제 3 세계 속에서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경계선을 이루는 특징을 세 가지로 지적한다. 1)언어의 이질성으로 특정 문화는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상징을 통해서 포착하는 근본 실재가 있으며,이는 근본 진리와 교감하는 것이라고 본다. 바로 여기에는 인간적 해방과 우주적 해방을 포착한다고 본다. 2)아시아 종교에 우주적 요소와 초우주적인 요소가 통합되어 있다고 보는 것인데 이는 일부 서구 학자들이 경멸조로 말하는 정령 신앙'이며, 이는 아시아인의 근본 심리 안에서 작용하는 종교심(宗敎心)이다. 이와 더불어 힌두교, 불교, 도교의 초우주적 구원 사상'이 추구하는 최고선(summum bonum)은 영지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며, 이는 신비주의적 수행(修行)으로 말미암아 해방된 인간'의 본보기가 된다. 3)비그리스도교적 구원 사상의 성행인데 이는 아시아 교회의 잠재력일 수 있다. 즉 다른 제 3 세계나 서구와는 달리 다원적 종교안에서 교회가 비그리스도교 해방체험에 참여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시아 방식의 그리스도교가 될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아시아의 해방신학,p.172-181.
37)Balasuriya,앞의 책,p.138, 이러한 종교-문화적 이해는 G. Lindbeck의 새로운 신학 이해로서 비신학적인 종교론'을 시도한다. 이는 최근의 언어 철학과 사회학 등에서 영향을 받은 문화-언어적 접근법 이다. 이를 통해 종교적 교리의 성질연구와 새로운 종교신학을 수립하려고 시도한다. 그의 책, THE NATURE OF DOCTRINE,(Philadelphia:Westminster,1984)를 참조하라.
38)Balasuriya,앞의 책,p.113.
39)위의 책,p.114-115.
40)위의 책,p.118.
41)위의 책,p.119.
42)위의 책, 또한 서광선, 해방의 탈춤 ,한국민중신학의 전개,한국신학연구소 편,(서울:한국신학연구소,1990)p.490에서 서광선은 종교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토양과 현재의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우상의 자리로부터 내려와서 다른 종교를과 대화하고 종교 없는 동지들과도 함께 일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43)Balasuriya,앞의 책,p.137. 그러나 티사 역시 이슬람 종교는 확실히 침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44)위의 책,p.139.
45)위의 책, 티사는 또한 p.140에도 타종교의 구원 능력에 대해 질문하면서 모든 인간 존재를 향한 하느님의 선하심과 모든 인류를 향한 구원과 구속의 수단없이 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46)위의 책,p.140.
47)위의 책,p.141.
48)위의 책,p.141.
49)에드 데 라 토레 (Ed de la Torre), 필리핀: 크리스챤과 해방의 정치학 ,세계의 상황 신학(서울:민중사,1987) p.54에 보면 에드 데 라 토레(Ed de la Torre)는 필리핀의 2월 혁명은 주로 비좌익이었지만, 역사관을 갖고 잇는 사람이라면 그 토대가 상당수 좌익 조직에 의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혁명은 중간층에 의한 정치세력이 강하며 이들에 의해 연합정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50)Balasuriya,앞의 책,p.73.
51)위의 책,p.74.
52)위의 책,p.146.
53)위의 책,P.75, 그리고 대만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송천성,아시아 모태신학,이덕주 역,(왜관:분도출판사,1990)P.171-186을 보라. 그는 감자 라는 시를 대만의 고난받는 민중의 역사를 담은 비유로 읽는다.
54)Balasuriya,앞의 책,p.55
55)티사는 세계의 가난한 자들의 85-90%를 아시아가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물론 1984년도 이전의 통계이다. 위의 책,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연구원,아시아의 정치와 경제,(서울:한길사,1991),p.78.에 보면 아시아의 경제 성장율을 동아시아, 동남 아시아, 서남 아시아로 구분하는데 이들 국가들은 국민총생산을 기준해서 소득 수준이 신흥공업국가들은 5,860달러,아세안국가는 670달러,그리고 서남아시아(인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는 215달러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1/3내지 1/18의 수준이다. 이러한 경향은 해마다 더욱 심화되고 있다.(이 책의 저자명은 앞으로 아시아 연구원으로 사용 한다.)
56)Balasuriya,앞의 책,p.57
57)위의 책,p.58.
58)위의 책,p.60.
59)진덕규, 제 3 세계와 민족주의 ,민족주의와 기독교,김용복 편,(서울:민중사,1981),p.27에 의하면 중국의 이러한 삼자(三自)정책은 일종의 민족주의로서 스스로에 의한 자기 확립은 물론이며, 자기 결정과 자기 집행, 나아가서는 자기 책임이라는 연속적인 과정을 확립하려는 행동의 독립을 의미한다.
60)Balasuriya,앞의 책,p.60
61)위의 책,p.64.
62)위의 책,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연구원,제 3 세계의 역사와 현실,p.247-248에 의하면 중동에서는 이라크, 이스라엘 등이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고 군비확대의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라크의 화학 무기와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는 우려할 만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63)Balasuriya,앞의 책,p.65-66.
64)이러한 개발독재는 결국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게 되었고 외국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저임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로 인해 생겨난 정권의 군사화는 1)군사비의 증강과 2)통치수단으로 조직 폭력을 사용(軍이나 정보계통)하고, 3)군부 세력의 사회 각층의 결정권 강화, 4)치안 중심(안보 중심)의 사회화가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아시아 연구원, 제 3 세계의 역사와 현실, p.171.동 연구원,아시아의 정치와 경제,p.25-32도 보라.
65)Balasuriya,앞의 책,p.67.인도와 스리랑카는 다종족의 사회로 끝없는 인종 분쟁에 휘말려 왔다. 특히 스리랑카 분쟁은 다수인 신할리스(Sinhales)와 소수인 스리랑카 타밀(SriLanka Tamil)간의 종족 분쟁으로 1987년 인도의 간디 수상과 스리랑카 쟈예와르데네 대통령 사이의 협정에 의해 내전은 종식되었다. 이는 타밀족의 집단 대표제 혹은 연방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타밀족의 권리에 대한 투쟁 때문이다. 아시아 연구원,아시아의 정치와 경제p.242-243.
66)Balasuriya,앞의 책,p.67.
67)그러나 제 3 세계의 민족주의의 사회주의 세력으로서의 정치적 엘리트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 민중 전체가 추구하는 개인적인 자유나 인격의 평등화와는 거리가 먼 독재나 전체주의로 나아가는데 문제가 있다. 진덕규,앞의 책,p.42.
68)Balasuriya,앞의 책,p.70
69)위의 책, p.73.
70)위의 책,p.69, 그리고 아시아 연구원,제 3 세계의 역사와 현실,pp.174-
181.
71)Balasuriya,앞의 책,p.76.
72)위의 책,pp.76-77.
73)루돌프 슈트람, 왜 그다지도 가난한가,(왜관:분도출판사,1987),p.149. 특히 아시아 공업지역의 85%의 노동자가 30세 미만의 여성이며, 한국의 섬유산업 노동자들은 주당 50-60 시간의 노동 그리고 대만의 경우 하루 평균 12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74)Balasuriya,앞의 책,p.12.
75)폴 니터는 범세계적인 해방 운동은 범세계적인 종교간의 대화를 요청한다고 말한다.Paul F. Knitter,"Toward a Liberation Theology of Religions",
The Myth of Christian Uniquness,(maryknoll:Orbis,1987),p.180.
76)호세 미구에즈 보니노, 해방 신학의 관점에서 본 웨슬리의 성화론 ,웨슬리와 해방신학,(서울:전망사,1987),p.57.
77) 사회 교리에 대한 아시아 colloquium 폐막 성명서 , 우리는 믿는다 제 5 항,사목 160호,1992년 5월,p.126. 이후에는 사회교리 성명 으로 적는다.
78)A. A. Yewangoe, Theologia Crucis in Asia,(Amsterdam:Rodopi,1987)p. 16-17
79)송천성,아시아의 고난과 신학,(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2),p.49.
80)주재용 편역,아시아의 상황과 신학,(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7), p.241 -246. 또한 M.M.토마스,아시아 혁명과 기독교, 이장식 역,(서울:대한기독교서회,1975)도 참고하라.
81)니터는 이러한 해방신학은 타종교와의 만남을 전제하며, 이는 다양성과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과 억압을 제거하고, 우선적으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라고 말한다.Knitter,앞의 책,p.181.
82)한국 연구원,앞의 책,p.130. 그러나 서광선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은 그 대륙을 침략한 자들의 후예들이 하는 신학이다.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해방신학자들은 원주민들의 토속적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 한국의 민중신학 ,앞의 책,p.58.
83)Balasuriya,앞의 책,p.150.
84)Knitter,앞의 책,p.178.
85)위의 책,p.186.
86)사실상 각 지역의 원주민의 입장이나 제 3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신대륙의 발견이라기 보다는 침략이라고 할수 있다.
87)Balasuriya,앞의 책,p.17. 특히 1990년 3월에 있었던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대회는 지구의 생태학적 현실에 대한 고백이며, 서광선은 대회의 목적을 정의의 문제로 보고있다. 서광선,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JPIC) 세계대회와 한국교회의 선교과제 ,종교 다원주의와 신학적 과제, 신앙과 신학 7집, 1990,p.270.
88))아시아 연구원,제 3세계의 역사와 현실,p.54.에 의하면, 세계적인 공업화의 진행으로 말미암아 자연 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이러한 환경 오염은 특정 지역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인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89)Balasuriya,앞의 책,p.20.
90)위의 책.
91)위의 책,p.21.
92)Thomas P. Fenton,ed., Education for Justice:A Resource Manual(Mary-
knoll: Orbis Books,1975),pp.102-103.,Balasuriya,앞의 책,p.21-22에서 재인용.
93)Balasuriya,앞의 책,p.25.
94)위의 책,p.26.
95)위의 책,p.28.
96)위의 책,p.29에 의하면, 예를들어 미국에서의 흑인, 말레이지아,스리랑카그리고 서인도에서의 본토민, 일본에서의 한국인 등이다. 특히 1992년 4월 29일, LA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은 로드니 킹에 대한 배심원들의 인종 차별적 판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의 본래적 근거는 백인의 우월주의 였으며, 대중 매체는 이를 한국인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지어 보도함으로서 흑인의 한국인에 대한 약탈은 극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LA한인 고립무원 ,동아 일보, 1992.5.3. 6면.
97)슈트람, 앞의책,p.191에 보면 제 3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80%는 인종문제, 사회적 부정의, 기본적 구조문제및 종교적 갈등이며, 강대국의 이해 충돌과 관련되고 대리전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같은 예는 최근의 페루에서발생한 대통령의 국회 해산이다. 이를 통해 독재 정권의 강화와 외자의 유치를 강화하려고 한다.
98)특히 1980.5월의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로메로의 암살사건이나 광주 민중 혁명의 경우에서 잘 나타나 있다.
99)Balasuriya,앞의 책,p.33.
100)위의책,p.34,슈트람, 앞의 책,p.17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상의 전 인구의 26%는 동구권이나 서방권의 선진국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이 전 세계 GNP의 78%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부의 불균형을 말하고 있다.
101)실제로 세계 은행은 제 3 세계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으며, 개발도상국의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를 통해 다국적 기업의 진출을 돕고있으며, 상대방 국가에 대한 정치적 통제와 혁명 예방을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또한 IMF의 투표권 분포를 보면 선진 공업국 59%,OPEC 산유국11%, 개발도상국 30%를 차지함으로서 서방의 조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슈트람,앞의 책,pp.111,181. 또한 김용복, 경제 문제에 대한 세계 교회의 논의와 그 전개 ,신학 사상 76집,1992년 봄,pp.47-48.
102)Balasuriya,앞의 책,p.37.슈트람,앞의 책,p.179. 슈트람은 원조에 기대하거나 외국 자본의 유입 보다는 자국의 저축에 기초를 둔 면밀한 계획 수립과 침착한 집행을 강조한다.
103)이것에 대하여는 라인홀드 니이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서울:현대 사상사),1983.를 참조하라. 그는 서론에서 집단간의 관계는 윤리적이기 보다는 정치적 이라고 평가하면서 힘의 우위 가 우선된다고 보았다.p.18.
104)김용복,앞의 책,pp.39,49.
105)Balasuriya,앞의 책,p.40-41.
106)위의 책.
107)위의 책,p.42. 실제로 태국, 말레이지아, 홍콩, 싱가포르의 신문들은 주로 영국과 미국계의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108)위의 책,p.44.그리고 다니엘 벨 역시 폭팔적인 인구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이민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그의 책,2000년대의 신세계 질서,서규환 역,서울:디자인 하우스,1991,p.50.
109)위의 책,p.46.
110)위의 책,p.46.
111)위의 책,p.52.
112)아시아 연구원,제 3세계의 정치와 경제,p.43. 제 3 세계의 민중에 대한 인권 침해의 본질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과 봉건적 잔재, 신식민주의적 개발 정책에서 빚어진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113)Balasuriya, 앞의 책,p.53.
114)아시아 연구원,제 3 세계의 정치와 경제,p.71. 또한 사회교리 성명 ,우리는 믿는다 제 7항,앞의 책,pp.126-127.
115)Balasuriya,앞의 책,p.80. 최근에 발표된 리오 선언 은 이러한 세계 공동체(World community)적인 것이며, 상호 존중의 미래를 위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116)위의 책,p.81.
117)위의 책,p.82.
118)위의 책.
119)위의 책, p.83. 그는 자본주의의 비젼은 곧 자유와 정의의 이상이며, 무계급과 나라가 없는 사회(stateless society)라는 마르크스적 이상은 유대 예언자의 묵시적 전통 이었다.
120)위의 책,p.83.이것은 특히 음식, 주택, 의료 보장, 교육에 관한 것이며, 오염 증가, 군비 부담, 외채, 국제적 세력에의 의존은 제거되어야 한다.
121)이는 또한 한국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특히 토지 가격의 급 상승으로 인해 토지 소유와 무소유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지방색에 의한 정치적, 정신적 갈등도 중요한 문제로 국내의 정치적 변화 없이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122)위의 책,pp.84-88.
123)니이버,앞의 책,p.102. 니이버는 미국과 일본의 생사(生絲)의 예를 들어 말하기를 국제적 교역의 발전과 국제간의 경제 협력의 증대와 기술 문명이라는 큰 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도리어 국제 간의 문제를 해결할 예지가 생기기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들을 증가 시키고 있다. 고 비판한다.
124)이는 최근 아시아 권에서 일본의 전후 배상문제가 다시 제기 되고 있는데 이는 1940년을 전후해서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면서 아시아 민중을 징용하여 노무와 군무에 의한 강제적인 노동, 성적 착취, 군 징용에 대한 것이다.
125)Balasuriya,앞의 책,p.89-90.
126)위의 책,pp.91-93
127)위의책,p.91.
?)위의 책,p.96.
?)위의 책, 그는 여기에서 원리적 적(principal enemy)으로 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 이는 경제 생활과 사회 조직으로서의 세계 조직이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착취하는데 공헌했다고 비판한다.
?)위의 책,p.97.
?)마태 25:40,45.
?)Balasuriya,앞의 책,p.98.
?)위의 책,p.100.
?) 리오선언에 대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의사 표시는 콸라룸푸르선언'을 통해 표현되었다. 리오 선언의 주도국인 선진국들의 개발제한 압력은 개도국들의 불만을 만들었고,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부담 책임, 개도국의 견해 수용을 콸라룸푸르 선언에서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동아일보,1992.4.29.2면,5면.
?)그 예로써 티사는 존 F. 케네디의 말을 인용한다. 평화로운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는 필연적으로 폭력 혁명을 만든다. Balasuriya,앞의 책,p.102에서 재인용.
?)위의 책,P.107.
?)위의 책,P.111.
?)위의 책,p.121.
?)위의 책,p.127.
?)위의 책,p.128.
?)위의 책,p.148.
?))위의 책,p.149. 물론 티사의 위성 신학의 출판이 1984년도이므로 현재와의 시간적 차이가 좀 문제된다. 현재 사회주의 국가는 붕괴되었고, 세계의 상황은 다원주의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점차 기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위성적 세계 질서에 대한 견해는 긍정되고 있다.
143)Balasuriya,앞의 책,p.151.
144)위의 책,p.13.
145)위의 책,p.3.
146)위의 책,pp.3-10.
147)위의 책,p.9. 제임스 콘, 눌린자의 하느님,(서울:이화여대 출판부,1979),
pp.115-116에서 콘은 눌린 자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예수의 하느님을 말하려면 신학은 정치적이 되어야하며,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하느님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48)Balasuriya,앞의 책,.p.14.
149)이상윤, 인도 민중신학 ,새누리 신문,1992.3.28.7면에 보면 최근 인도의 민중 신학은 달리트의 해방신학으로 각 종교의 달리트(불가촉천민 계급)들의 연대를 통한 해방 투쟁을 신학화 하고 있다.
150)Balasuriya,앞의 책,p.165.
151)몰트만도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다.
152)Balasuriya,앞의 책,p.152.
153)J. 몰트만,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김균진역(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7), p.125에 의하면 몰트만은 창조자 하느님과 창조된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구분이 인간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로 인해 비신격화된 하느님없는 자연에 대한 견해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멸적인 관계가 만연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느님과 자연에 대한 통합적인 개관'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것만이 자연과 인간에게 해방을 가져올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54)Balasuriya,앞의 책,p.153.
155)위의 책,p.127.
156)위의 책,p.154.
157)위의 책,p.154, 그리고 몰트만,앞의 책,p.250에 의하면 티사의 의견에 접근한다. 즉 몰트만은 창조의 단계를 태초의 창조(creatio originalis)-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새창조(creatio nova)로 보는 관점에서 계속적 창조를 지지한다.
158)Balasuriya,앞의 책,p.156.
159)레오나르도 보프,해방하는 은총,김정수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1988), p.236.에 의하면, 보프는 인간 해방의 과정은 하느님의 해방에 대한 역사적 구체화이다.
160)Balasuriya,앞의 책,p.159.
161)몰트만은 하느님의 이름은 약속의 이름이며, 이 하느님은 우리가 희망과 변화 속에서 그의 약속을 기다리는 곳에 현재한다고 강조한다. 위르겐 몰트만,희망의 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0-13판), pp.35-36.
162)H. 골비처,신학의 연대성,박종화 역,(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3),p.172에 의하면, 사회전체의 의지와 개인의 의지 쌍방 간의 해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163)보프에 의하면, 해방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기때문에 인간적이라고 보는 동시에 그 원동력이되고, 그 행위에 깊이 침투하는 이는 하느님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해방은 하느님의 해방'이다. 보프,앞의 책,p.237.
164)Balasuriya,앞의 책,p.164 그리고 죠지 V.픽슬레이, 하느님 나라,(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7),p.134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는 성서 속에서 정의, 평등, 그리고 풍요한 사회를 의미한다.
165)Balasuriya,앞의 책,pp.164,179.
166) 이는 보프의 말대로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의 해방이며, 이는 불의한 과정 만의 극복 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인간에게 새롭고 변혁적인 전망을 주면서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기도 한다. 보프, 앞의 책,pp.238-239.
167)Balasuriya,앞의 책,p.162.
168)위의 책,p.163.
169)위의 책,p.164.
170)위의 책,p.167.
171)누가 17:21, L. Boff,Jesus christ Liberator,(Maryknoll,NY:Orbis Books,1989),p.55에 의하면, 보프는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는 하나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질서(A New Order)로 모든 것 - 세계, 인 간 존재 그리고 사회을 포함한다. 또한 보프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는 인격적으로는 사유와 활동의 혁명이며, 세계적으로는 인간 세계의 혁명이다. 위의 책,pp.63-79를 참고하라.
172)Balasuriya,앞의 책,p.169.
173)W. 카스퍼,예수 그리스도,(왜관:분도출판사,1988),p.118 - 119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예수의 메세지는 평화와 자유, 정의와 생명에 대한 인류의 갈망과 추구라는 지평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174)Balasuriya,앞의 책,p.179.
175)예수의 시대상에 대하여는 안병무,갈릴래아의 예수,(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0),pp.42-64에서 간단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76)지동식,로마제국과 기독교,(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3),p.22.
177)최영실, 예수와 해방운동 ,성공회대학 논총 5호,1991년 9월,p.60.에 의하면 예수가 선포한 해방 사건은 억압하던 자들을 심판하고 지금까지 억눌린자들의 상황을 뒤바꿔주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178)Balasuriya,앞의 책,p.175.
179)최영실, 앞의 책,p.67.
180)Balasuriya,앞의 책,p.180.
181)이런 관점에서 루이제 쇼트로프의 글은 옳다. 그녀의 글, 신약성서 시대에 예수를 따른 여인들 ,여성들을 위한 신학,이우정 편,(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8),pp.236-250. 또한 엘리자벳 휘오렌자,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과 여성들 ,위의 책,pp.223-235도 참고하라.
182)Balasuriya,앞의 책,p.182.
183)위의 책,p.183. 요엘 2:13의 의미는 거룩함을 인간 활동에 있어서의 내면성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184)위의 책,p.184.
185)최영실,앞의 책,p.68.
186)Balasuriya,앞의 책,p.185. 또한 몰트만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J. 몰트만,예수 그리스도의 길,(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pp.384,387.
187)Balasuriya,앞의 책,p.186. 위의 차원에 대한 이해는 선불교의 도겐이 이해한 존재의 구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Abe Masao,ZEN AND WESTERN THOUGHT,
(Hong Kong:Macmillan Press,1985),pp.34-36.
188)Balasuriya,앞의 책,p.187.
189)티사는 이런점에서 신학과 영성에 아시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존재론적 최고선이라는 개념에 대해 해석학적 모순을 가진다고 말한다.위의 책,p.188.
190)위의 책,p.189 그리고 맹용길, 기독자됨의 의미,(서울:전망사,1983),p.99에 의하면, 1970년경 까지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사회 사상과 실천의 강조점은 책임 사회로써 이는 좀 더 정의롭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교회의 추구라고 할 수있다. 책임 사회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富)와 수입의 공정한 분배, 2)불의(不義)를 야기 시킨 정치적, 경제적 제도의 변혁, 3)인권, 모든 인종의 평등한 취급, 민족 해방 및 자결권 운동, 4)산업화된 서방 국가들의 지배와 착취의 결과에 대한 극복이다.
191)Balasuriya,앞의 책,p.191.
192)위의 책,p.194.
193)위의 책,p.195.
194)위의 책,p.196. 그리고 몰트만,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p.28에 의하면, 그는 하느님과 세계의 구분과 더불어 오늘날의 생태학적 창조론은 하느님의 세계 내재'를 인지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Balasuriya,앞의 책,p.198.
196)물론 이러한 입장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상징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지만 하느님 나라는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구체화된 공간이다. 바로 선교의 목표는 인간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성취이다. 홍정수, 다종교 상황과 선교론 ,신학과 세계 23권, 1991 가을,p.105.
197)Knitter,"toward a Liberation Theology of Religion",p.181.에 의하면, 그는 종교간의 대화가 세계적 해방에 필수적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198)Balasuriya,앞의 책,p.208.
199)위의 책,p.222.
200)Tissa Balasuriya, Eucharist and Human Liberation,(Maryknoll,NY:Orbis
books,1980),p.5. (이후에는 Eucharist로 적는다.)
201)몰트만,예수 그리스도의 길,p.264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으로서의 고난의 의미를 죄의 힘과 우리가 당하는 죄책의 짐에서 해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202)J. 몰트만, 그리스도의 친교 공동체 속에 있는 성령의 생활 표적 , T. 런연 편저,몰트만과 실천 신학,이기춘 역,(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3),p.60에 의하면, 초대 그리스도교의 성례전은 압축된 출애급의 체험이요,그리스도께 대한 귀중한 기억이며,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희망의 행동이다.
203)Balasuriya,Eucharist,p.8.
204)Balasuriya,Planetory Theology,p.158.
205)Balasuriya,Eucharist,p.21.
?)위의 책,p.115.
207)위의 책,p.116.
208)위의 책.
209)위의 책,p.118.
210)위의 책.
211)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26.
212)위의 책,p.227.
213)위의 책,p.228.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교육에 대해서는 그룸, 기독교적 종교 교육,제 3장 하느님 나라를 위한 교육을 참조하라. pp.67 - 93.
214) 이러한 의미에서 1991년도 여름성경학교 교육의 실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하겠다. 교회의 정의 교육 이라는 주제하에 정의 교육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말하고 있다. 1) 정의 교육은 영성 구조에 있으며, 이는 정의로운 삶에 대한 교육과 그 실천이라 하겠다. 2) 사랑과 정의는 같은 삶이라는 성서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3) 이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전체 삶- 개인적, 공동체적,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차원-의 변화 속에서 회개를 강조한다. 4) 교회의 정의 교육은 창조 신앙의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대한기독교교육협회 편, 깨끗함 마음 바른 삶:여름성경학교 공동교재 어린이부 교사용,(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1991년 여름),p.14.
215)Balasuriya,앞의 책,p.228.
216)위의 책,p.229.
217)위의 책,p.232.성찬에 대해서는 앞절의 성찬과 인간 해방 을 참조하라.
218)위의 책.
219)위의 책,p.233.
220)위의 책,p.242.
221)위의 책,p.243.또한 p.183에 의하면, 예배의 본질적 가치는 사랑이 의미하는 자기 희생의 정신으로 내적인 참여로써 이는 제단에 봉헌하는 것은 마음의 순수성과 타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222)토마스 C. 오덴,목회 신학,(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6),pp.209-210. 이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223)Balasuriya,Eucharist,p.119.
224)위의 책,p.125 그리고 Planetory Theology,p.244도 보라.
225)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46.
226)이는 단순한 의미의 종교 혼합주의가 아니라 교회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문화적 영성의 수용으로 자신의 종교를 더 풍요하게 하는 것이다.
227)위의 책,p.249. 그리고 그의 책, Eucharist,p.124.
228)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51.
229)Balasuriya,Eucharist,p.134.
230)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52. 최근 10여년간에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우리것 회복에 대한 문화 운동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231)위의 책,p.254. 물론 민주적 선거나 투표도 이의 한종류로써 집단적 의사 표시이다.
232)J. 몰트만,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0) ,pp.322 -344를 참조하라. 여기에서 몰트만은 삶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해방과 자연의 파괴-산업화, 그리고 삶의 의미에서의 해방을 말하고 있다.
233)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56.
234)이러한 요구는 출애급의 해방 전통(출애 3:7-8),예언자의 전통(아모 5:21 -24,미가 6:6-8,예레 7:3-10,루가 3:10-14) 그리고 예수의 나눔(누가 19: 1-10,마가 6:30-44)에서 잘 나타난다.
235)위의 책,p.258-259.
236)위의 책.
237)위의 책,pp.260-261.
238)이는 그룸의 말대로 신앙의 활력있는 차원이 세개의 본질적인 활동을 포함하고 이 세상에서, 시간안에서 순례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그 실천의 차원은 믿는 것, 신뢰하는 것, 행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전체 인간과 관련된 전생에 걸치는 발전적 과정이다. 그룸,기독교적 종교 교육,pp.129-130.
239)이러한 희망에 대한 정치적 신학으로서 몰트만의 신학은 새 시대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는 의미있는 신학 중의 하나이다. 그의 책, 희망의 신학,(서 울:기독교서회,1990),13판.
240)C.S.송,아시아의 고난과 신학,(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2),p.232.
241)위의 책,pp,116-117.
51)Balasuriya,Planetory Theology,pp.264-265.
52)위의 책,pp.261-262.
53) 특히 도어에 의하면, 영성은 세차원을 가지는데 이는 겸손되이 하느님과 걷는 것'으로서의 종교-신앙적 회개를 통한 영성,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으로서의 도덕적 차원의 회개를 지닌 영성, 그리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으로서의 정치적 회개로써의 영성을 말한다. 이러한 영성은 균형과 통합을 통해 심원하게 투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보았다. 도날 도어,靈性과 正義,(왜관:분도출판사,1990),p.31-32.
54)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62. 특히 티사는 자기 극복과 타자를 위한 삶이 우리의 사회적 상황으로 이해 극히 어렵다고 평가한다.
55)위의 책,p.263.
56)위의 책.
57)이러한 기도는 도어에 의하면, 가난과 불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섭리에 대한 인식을 더욱 깊게 해주며, 이는 무감각한 태도와 운명론에 도전하여 새로운 확신과 사명감을 주며, 그 자신을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 예수를 따르도록 불린 하느님의 선택된 도구로 이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도어,앞의 책,p.353.
58)Balasuriya,Planetory Theology,p.266.
59)위의 책,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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