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에 대한 바울신학의 이해
목 차
序 論 ---------------------------------------------------------- 1
A.本 論文의 硏究 目的 ------------------------------------------------ 1
B.硏究 方法과 論文의 構成 -------------------------------------------- 2
Ⅰ.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神學 理解의 전제와 語原的 考察--------------- 2
A.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神學의 理解의 전제 ------------------------- 2
B.律法과 恩惠에 대한 어원적 考察 ------------------------------------ 3
1.律法 ------------------------------------------------------------- 3
1)舊約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언어考察 ------------------------------ 4
2)新約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언어考察 ------------------------------ 4
3)조직神學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用語 考察 ------------------------- 5
4)바울의 νομοS 사용 ------------------------------------------- 5
2.恩惠 -------------------------------------------------------------- 6
1)舊約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言語 考察 ----------------------------- 6
2)新約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言語 考察 ----------------------------- 6
3)組織神學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用語 考察 ------------------------- 7
4)바울의 χαριS 사용 ------------------------------------------- 7
Ⅱ.律法과 은혜에 대한 바울의 理解 ------------------------------------- 8
A.바울의 思想的 背景 ------------------------------------------------- 8
1.헬라주의적 바울 思想 ---------------------------------------------- 8
1)다소의 宗敎들 ---------------------------------------------------- 8
2)신비주의 --------------------------------------------------------- 8
3)靈知主義 --------------------------------------------------------- 9
2.유대敎的 바울 思想 ------------------------------------------------ 9
1)헬라적 유대교 ---------------------------------------------------- 10
2)팔레스틴 유대교 -------------------------------------------------- 11
3.다메섹의 體驗 ----------------------------------------------------- 12
B.로마서의 歷史的 背景 ----------------------------------------------- 13
1.로마 敎會 --------------------------------------------------------- 13
2.著作 動機와 目的 -------------------------------------------------- 14
Ⅲ.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의 理解 內容 -------------------------------- 15
A.敎理的 理解 -------------------------------------------------------- 15
1.律法에 대한 敎理的 理解 ------------------------------------------- 15
1)롬1장 ------------------------------------------------------------ 15
2)롬2장-롬8장 ------------------------------------------------------ 15
2.恩惠에 대한 敎理的 理解 ------------------------------------------- 30
1)롬1장 ------------------------------------------------------------ 30
2)롬3장 ------------------------------------------------------------ 31
3)롬4장 ------------------------------------------------------------ 31
4)롬5장 ------------------------------------------------------------ 32
5)롬6장 ------------------------------------------------------------ 34
B.實踐的 理解 -------------------------------------------------------- 37
1.律法에 대한 實踐的 理解 ------------------------------------------- 37
1)바울의 律法에 대한 順從 槪念 ------------------------------------- 37
2)律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 39
3)律法에서 解放된 삶 ----------------------------------------------- 39
4)사랑은 律法의 完成이다 ------------------------------------------- 39
2.恩惠에 대한 實踐的 理解 ------------------------------------------- 40
1)恩惠아래 사는 삶 ------------------------------------------------- 40
2)聖靈을 쫓아 사는 삶 ---------------------------------------------- 40
3)몸을 통한 거룩한 산祭祀 ------------------------------------------ 41
4)넉넉히 勝利하는 삶 ----------------------------------------------- 41
結 論 --------------------------------------------------------- 42
Bibliography ---------------------------------------------------------- 44
序 論
A.본 論文의 硏究 目的.
律法과 恩惠의 關係性에 관한 문제는 초대교회 당시에 최초로 제기되었던 문제였다.1)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교회 회의가 열렸고 이 문제는 해결 되었던 것이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직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혼돈을하고 있어서 율법의 역활과 恩惠의 역활및 그 關係性에 대한 명확한 구별과 理解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논문은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律法과 恩惠에 대한 硏究로써 以信稱義(Just-ification)라는 바울신학의 중심을 근거로하여 올바른 律法觀과 恩惠觀을 정립하여 그 關係性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한다.
신약의 세권 이상이 주로 律法에 관한 誤謬를 시정하고 꺽기 위해 기록되었다. 사도시대로부터 시작 되어온 誤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律法主義, 반(反)율법주의, 갈라디안주의 등 세가지가 있다.3)
율법주의는 사람이 律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며 이 오류에 대한 대답이 바로 로마서이다.4)
둘째 誤謬는 첫번째 것의 정반대의 주장으로서 도덕률 廢棄論者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恩惠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행동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5) 예수님께서 오셔서 律法을 完成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음으로 도덕을 포함한 일체의 律法을 완전히 閉止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성경에 어긋나며,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준다.
세번째 誤謬는 갈라디안주의(Galatianism)이다. 이것은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지마는 行爲로 그 救援이 保存된다는 주장이다. 이것도 사단의 교묘한 속임수이다.6)
하나님의 恩惠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救援을 받고 (엡2:8), 義롭게 된다(롬1:16-17)는 것이 바울신학의 중심이자 기독교 진리의 核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논자는 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정립하는 것이 무었보다도 중요 하다고 생각된다.
B.硏究方法과 論文의 構成.
前述한 論文의 目的을 達成하기위해 롬1장에서 8장을 中心으로 바울이 이해한 律法과 恩惠를 硏究함으로써 律法과 恩惠에 대한 槪念과 敎理 및 실천적 이해를 考察하여 하나님의 일관성있는 구원의 계획 속에서 올바른 律法觀과 恩惠觀을 정립하여 그 관계를 理解 하고자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1장 에서는 본 論題를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의 이해의 前提를 로마서에서 찾아 보았다.
그 다음에 율법과 은혜에 대한 배경적 槪念을 살펴 보았다. 여기서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율법과 은혜에 대한 어원적 考察과 조직신학이 말하는 율법과 은혜의 정의와 바울이 전반적으로 사용한 율법과 은혜에 대한 用語의 槪念을 살펴 보았다.
2장은 바울이 율법과 은혜의 정확한 이해에 到達하게 된 방법 및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그의 思想的 배경과 로마서의 배경을 理解 하려고 試圖해 보았다.
3장 에서는 본 論文의 中心으로서 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의 利害의 내용을 롬1장-8장을 본문으로하여 각 장에 나타난 정확한 意味를 註釋的 연구 방법으로 고찰하고 敎理的인 理解를 定立해 보았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律法과 恩惠에 대한 實踐的 이해와 關係性을 찾아 봄으로 실제적인 신자의 삶에 적용 할수 있는 정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結論을 내려 보았다.
Ⅰ.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신학의
理解의 전제와 어원적 考察
A.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신학의 理解의 前提.
롬1:16-17에서 사도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義가 나타나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선언 하였다.이것은 바울 說敎의 主題이며, 바울이 福音을 宣布할 당시의 敎會가 서고 넘어지는 주제'(articulus stantis et candentist ecclesiae) 였었다.7) 또한, 롬3:38에서는 사람이 義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認定 하노라. 고 주장하였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인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論證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죄가 신자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主張하면서 그 이유를 신자가 律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行爲로 의롭게되고, 律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을수 있다는 시내산 아래서의 삶을 포기하고 갈보리 산으로 돌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을 때, 그리스도는 그에게 律法의 마침이 되어 주신다.8)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행위언약의 복귀를 目的으로 한것이 아니고 백성들을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위한 目的을 가진것이다.9)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復活로 律法의 時代는 지나갔고 恩惠의 時代가 도래되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고 외쳤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律法의 요구에 직면해서 그 값을 치루시고 믿는 자들에게 그의 義를 부어 주셨다.10)
그러므로 신자들은 恩惠속에 살면서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11)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 利害의 前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12)
둘째, 稱義와 성화도 律法의 준수나 行爲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13)
셋째, 신자는 律法아래 있지않고 恩惠아래 있다.14)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을때, 이미 그 안에서 律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復活하게 된다는 사실이 롬1:1-6에서 立證 되었다.
B.律法과 恩惠에 대한 어원적 考察.
1.律 法
1)구약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語原的 考察.
구약에서 律法은 일반적으로 토라'( )로 불리워 졌는데 이 말은 야라(Yara)의 히필(Hiphil)형으로 호라(Hora)에서 유래된 단어로 어근의 의미는 던지다'이다. 따라서 히필형은 가르치다' 즉, 지시하다' 혹은 질서' 혹은 줄'(row)이 라는 意味로 사용 되었고 70인역 에서는 νομοS 로 번역 되었다.15) 본래 이 말은 제사장이나 豫言者가 주는 개개의 지시, 가르침을 의미했다. 후에는 어떤 규정, 法, 法令集 등을 가리키게 되었고 모세오경 전체를 가르키게 되었다. 후에는 구약전체, 때로는 종교적 가르침 전반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다.16) 구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법을 의미한다.17)
이스라엘의 律法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單語들로서는 미츠바( )와 다바르( ), 호크( ), 미슈파트( ), 에다( ), 피쿠딤( )등이 있다. 토라의 동의어로서이것들의 意味는 구약 律法을 理解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뜻은 각각 다음과 같다.
(1)미츠바(명령 혹은 명령들)-- 이 술어는 율법이 하나님의 意志의 표현으로 서 인간에게 부여된 명령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適用 되었다.
(2)다마르(말씀, 출34:28)
(3)에다(증거 혹은 증언)-- 하나님꼐서 자기 백성을 취급하시는 기본 원리들을 증거해 주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述語이다.(출25:22)
(4)미슈파림--하나님께서 승인 하셨다는 면에서 토라에 속하면서도 재판관들이 裁判 사건을 처리하고 決定한 법들을 가리킨다.
(5)피쿠딤(校訓들)-- 이것은 시편에서만 발견되는 술어이며, 인간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에 맞게 제공된 規則들이나 助言들을 意味하는 것이다.
(6)후킴(법령들)-- 무자 그대로는 새겨진 법들로 이것은 입법자에 의하여 직접 법령화된 법들을 가리키며18) 거기서 구전 율법과 成文 律法이 구분된다.19)
2)신약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언어 考察
헬라어로 νομοS 이며, 나눈다'(divide out), 분배한다', 배정한다' 등의 뜻을 지닌 νεμω에서 由來했다.20)
그리고 일반적으로 확립된 기존사물, 또는 관용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 그리고 관습, 풍속, 법률 등을 뜻하는 것이다.21)
신약에서는 명령 또는 法으로 쓰이고 있다.
토라(tora) 및 노모스(nomos)의 종합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律法은 規範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부터 하나님의 계시, 구약전체, 모세오경, 십계명의 개념으로 점점 구체화 혹은 특수화되고 있음을 알수있다.
3)조직신학에 나타난 律法에 대한 용어 考察
조직신학에서도 율법이란 단어는 매우 많은 그리고 다양한 意味로 사용되고 있다. Alexander Hodge 교수는 인격적인 도덕적 주체들에 대한 인격적인 도덕적 통치자의 최고 권위에 의해 인류의 밖에서 그리고 위에서 부터 그들에게 부과된 도덕적 탁월성의 최고적인 標準이며,
(1) 그것은 진리와 의무에 관한 啓蒙(enlighten-ment)의 어떤 정도
(2) 법의 강제력(sanctions)을 갖추고 있는 의지를 조절하고 양심을 얽매이는 행동의 규칙이나
(3)순종을 강요하는 명령적인 동기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22)
Henry C. Thessen 박사는 율법을 하나님의 권세에 의해 강요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며, 기본법(element law)과 실정법(positive enactment)의 형태를 지닌다고 하였다.23)
4)바울의 νομοS 사용
바울의 νομοS 사용은 일정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구약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모세의 律法을 지칭 하기도하며, 십계명을 의미하기도 한다.24)
일반적으로는 구약에 포함된 하나님의 律法의 意味로 사용했다. 바울에 있어서
νομοS 는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특별한 뜻으로 理解 되었다.25)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뜻의 표현 이었고26)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영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회심 이전에 바리새인 이었던 그는 律法에 대해 대단히 열심 이었고,27) 이것으로 인해 교회를 핍박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회심은 율법에 대해 재 평가하게 했고, 회심후에 그는 율법은 그리스도를 감추는 베일(고후3:14-15),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夢學先生(갈3:24)으로 깨달았다. 바울은 律法 아래서의 그의 삶과 그리스도의 恩惠 안에서의 그의 삶의 차이를 발견함으로써 율법의 불안정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롬6:14,롬7,8장)
2.恩 惠
1)구약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언어 考察.
恩惠란 말의 히브리어는 하눈(Han, ) 이라는 말로서 셈語의 好意를 보여주다' 라는 원래의 意味를 內包하고 있다.28) 이런단어에 어원을 두고있는 히브리어 명사형 (hen)은 70인 역에서 거의 대부분이 χαριS 로 번역되어 있는데 권세를 가진 자가 호의를 베풀다' 매력'(charm) 미'(beauty) 라는 의미로 쓰여졌다.29)
同義語로는 헤세드( )가 있는데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긍휼) 이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矜恤은 義를 排除 하지는 않는다.
신약의 χαριS 에 내용적으로 가장 가까운 말은 인자로 번역된 Hesed이다. 그러나, 구약에는 恩惠의 의미를 보여주지 못한다.
2)신약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언어 考察.
통속적인 헬라어에서 χαριS 는 히브리어 에서 처럼 일반적으로 쾌활함, 친절, 혹은 매력을 의미한다.30) 이런단어는 친절한 태도 및 찬성 혹은 호의를 의미 하기도 한다.31) 또한, 고마움, 感謝의 意味로도 사용되었다.32)
70인역에서 χαριS 는 히브리어 Hen( )의 번역으로써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그가 양해를 받아야 할 자로부터 好意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33)
Aristotle은 이 단어를 필요한 자에게 補償을 바라지 않고 충분한 도움을 주는 것' 이라고 定義했다.34)
3)조직신학에 나타난 恩惠에 대한 언어 考察.
恩惠에 대한 모든 槪念은 공통적으로 두가지 성질이 들어 있다고 William Ba-rkley교수는 지적하였다.35)
먼저 恩惠란 본질적으로 아름다운것, 매력 있는것(a lovely thing) 이다.
다음으로 恩惠란 말에는 언제나 값없이 자격을 따지지 않고 주는 선물이란 개념이 들어있다.
Calvin은 하나님의 恩惠는 福音에서 만이 생각되며, 믿음으로만 체험되는 것으로 특별은혜의 일반은총이 있는데 特別恩寵은 一般恩寵안에 둘러쌓여 있다'고 말했다.36)
4)바울의 χαριS 使用
바울에게 있어 χαριS 는 구원의 사건을 이해 하는데 있어서 가장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중심개념이다. 그에게 χαριS 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공로없는 인간에게 주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膳物을 뜻한다.37)
바울서신 이외에 신약성서에서 χαριS 란 말이 51회 나와 있으며, 그중 27회가 사도행전과 베드로 전서에서 나오고 있다. 그 까닭은 이들 문서가 바울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울서신 전체를 통하여 χαριS 란 말이 101회나 나온다.38)
이런 숫자를 통한 중요성을 제외 하고도 χαριS 란 말은 바울에게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福音을 理解하고 선포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있는 용어이다.
Moffatt가 지적한것 처럼 그는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아가면서 모든 멧세지에서 All is of grace, and grace is for all 의 사상을 담아서 宣布하였다.39)
Ⅱ.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의 理解.
A.바울의 思想的 背景.
1.헬라주의적 바울 思想.
바울에게 있어서 확실한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다는 것이다.40) 헬라주의적 바울 硏究는 宗敎史學派의 産物이다. 이 경향의 사람들은 바울이 대부분 이방 환경에서 산 사람 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그 影響을 찾으려고 하였다.41)
당시의 言語는 코이네로 統一되었고 지중해 세계의 통일은 편리한 交通의 組織에서 이루어졌고 權力의 통일과 한 民族의 法을 超越하는 법의 통일을 첨부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 전파에 유리 하였던 條件이다.42)
이러한 헬레니즘의 文化的 요소들이 바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울으 다소의 市民이었다. 또한 로마의 市民權을 가졌다.43)
1)다소의 宗敎들.
다소는 國際的인 都市로서 學文과 貿易의 中心地 였으며, 宗敎도 盛行 하였다.44) 다소에는 農事의 神 Sandan이 禮拜 되었고, 신비종교 비슷한 모양으로 祭祀를 지냈다. 또, 다소에는 고대 황제 예배가 있었지만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 禮拜에 참여할 義務를 公的으로 免除 받았다고 한다.45)
이러한 宗敎나 儀式들은 바울신앙의 形成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2)신비宗敎.
헬라의 신비종교 신앙과 이스라엘의 豫言者 精神이 바울에 의하여 잘 혼합되어 새것으로 형성 되었다. 라이첸스타인은 이것을 證明하는 것으로서 바을이 사용한 비 유대적인 서로 對立되는 槪念들을 들었다. 곧, 영과 혼,영과 육,신앙과 功勞 같은 槪念들이다.46)
3)靈知主義.
Bultmann은 바울이 세운 敎會안에 영지주의자들이 들어간 흔적을 고린도 교회에서 復活을 精神化 하였다는 것(고전15장)과 다른 예수를 傳하는 자가 있다는 것(고후11:4)과 거짓교사가 세계의 원소를 숭배할 것을 주장 하였다는 것(골2:4-23)들로 지적하였다.47)
영지주의의 靈을 가진 인간이 神化된 존재인 반면에 바울에게 있어서 믿는 자와 믿는 자안에 內在하는 그리스도 사이에는 인격적 구별이 주의깊게 保存된다.48)
以上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 하였으며, 成長하면서 헬레니즘의 諸 要素에 接觸 할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헬레니즘의 사상과 槪念을 福音전파를 위해 혹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유롭게 독창적으로 利用했으며, 또한 새로운 意味를 부여 하였다.49)
그는 이러한 思想體系에 마음을 열어 놓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들이 그를 形成하지는 않았다.50)
2.유대교적 바울思想.
生涯의 마지막까지 바울은 자랑스럽고 완강하며, 변함없는 유대인이다.51) 바울의 사상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으로서 자랑과 기쁨이 여러번 나타나 있다.52) 유대인으로서 바울의 特徵은 말과 行動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思想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바울은 특히 하나의 책의 사람이었는데 그 책은 바로 구약성서이다.53)
바울 당시의 유대교는 팔레스틴 유대교와 흩어져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헬라적 유대교가 있었다.
1)헬라적 유대교.
(1)디아스포라 바리새.
바울은 디아스포라 바리새 家門에서 태어났다.(행23:6)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는 것과 로마의 市民이란 資格을 한데 연결시켜 가진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은 유대 제자들 가운데 없는 것으로 특별한 意味를 지닌다.54)
바클레이 敎授는 헬라와 유대 사이에 교량이 되어 基督敎가 全 世界를 향해 전파되기 위해 두 世界의 사람 바울'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놓으셨다고 했다.55)
(2)70人譯 聖經.
바울의 全部를 理解하려면 70인역의 精神을 理解해야만 한다.56) 그러나, 바울 書信의 구약 인용들은 대부분 自救的 引用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70인역을 가지고 읽었는지는 確定하기 어렵다.57)
(3)헬라 哲學.
當時에 다소에 유명한 哲學派인 Sotic철학파가 영향을 끼쳤는데 스토익 개념이 나탄난 것은 다음과 같다.58)
선한 良心은 사용 되었는데 사람의 내적 法庭이란 뜻을 가진다. 본성(φυσισ)은 創造에서 얻은 높은 本質, 곧 이방인에게 律法의 역활을 하는 것이다.(롬2:14) 영적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禮拜와 구별되는 것이다.(롬12:1)
합당치 못한 일(롬1:28) 등은 다 스토익적인 用語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스토익 用語와 이 思想을 자신에게 有用하게 使用하였으며, 그는 자기의 精神으로 그것을 變形하였고, 그의 마음 中心部를 흔들수는 없었다.59)
(4)필로의 經典.
필로에게 있어서 特異한 試圖는 구약성서의 알레고리적 解釋法을 使用하였으나,60) 바울이 하려는 中心 思想은 기독론적인 것으로서 필로가 목적한 유대교 思想이 헬라 사상과 유사하다는 증명이나 일반적 知慧로 말한 것과는 다르다.61)
이 思想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은 헬라적 유대교의 特徵的 요소인 70인역이나 필로 스토익의 철학 用語나 思想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자신의 目的과 福音전파를 위해 새로운 意味나 內容을 담아서 獨創的으로 使用하였다는 것을 알수있다.62)
2)팔레스틴 유대교.
(1)랍비적 聖書解釋.
바울이 랍비였다는 事實은 그의 宗敎가 過激한 바리새즘이나 새로운 근거를 갖는 바리새즘으로 理解된다.63)
그는 철저한 바리새인 이었으며 랍비로 一生동안 聖書에서 引用하였고, 예수의 메시야적 特性과 구속론적 역활도 구약성서에서 認證하고 있었다.64)
(2)終末論的 思想.
예수 그리스도의; 出現이 終末論의 시작이요, 새세대의 시작(갈4:4-5)이며, 地上에서의 神國도래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主張이요(막1:45), 바울의 主張이다.65)
(3)默示文學的 思考.
묵시문학은 종말론적 소망의 특수한 형식이고 BC 2C경 부터 있었따.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문학적 接觸으로 부터 發達했다.66)
(4)바울과 初代敎會와의 關係.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을 當時 오순절날 聖靈降臨의 大役事가 나타났다. 이때 바울도 들었을 것이다. 사도들의 놀랄만한 活動과 기사와 표적들이 예루살렘 全域에 전파되었다.
바울이 열정적으로 獻身하고 있는 律法宗敎에서 볼때 예수는 결코 메시야일수 없었다. 케네디와 바클레이는 바울이 敎會를 逼迫한 이유를 그의 律法에서의 熱情때문 이라고 하였다.67)
예수를 메시야라 主張하는 者들은 神聖 모독죄를 범하는 자들이요, 핍박의 당연한 대상자들 이었다.
3.다메섹의 體驗.
바울의 回心의 經驗은 바울 생애에 가장 생명력있고 거대한 影響이 되었다. 바울 자신의 告白에 의하면 그의 회심과 사도됨은 인간적인 手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恩惠로운 選擇임을 强調한다.(갈1:15-16)
바울의 회심의 意義로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들어간 것이다.68)
復活하신 그리스도는 바울의 모든 것을 變化시키셨다. 그의 告白에 의하면 옛 세계를 특징 지우는 罪(롬6:2)와 律法(롬7:6,갈2:19)과 초등학문(골2:20) 그리고 世上에 대해서 죽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갈2:20)
바울의 배경연구에 관하여 Stwear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심경험은 바울의 생애에 가장 생명력있고 구성적인 영향이다. 이에 비하여 그밖의 모든것 -그의 유대적 家門, 랍비적 訓練, 헬레니즘과의 接觸, 遺傳과 환경의 모든 要因은 二次的인 것이다.69)
B.로마서의 歷史的 背景.
사도바울 當時 그리이스와 로마 世界는 希望이 없는 世界였다. 그리이스, 로마의 思考 槪念에 따르면 臨終의 순간에는 肉體를 위한 所望이 없으며 靈魂을 위한 所望도 없었다.70) 스토아 哲學者들은 대부분 영원히 남는 것은 合理的인 宇宙이며,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 하였다. 로마서는 所望을 준다.71)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 이라고 부른다.(롬15:13) 본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쁜소식을 전파하고 있다.
1.로마 敎會.
로마교회는 바울 자신이 선교활동을 통해 設立한 敎會는 아니다. 로마 도시가 로마 帝國 안에서 취하고 있는 戰略的인 位置와 오순절 날 이후에 기독교 敎會안에서 役事했던 요소들을 고려해 보면 쉽게 로마교회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짐작 할수 있다.72)
John Murray敎授는 오순절날 베드로의 說敎를 듣고 기적적인 현상들을 목격한 로마의 여행자들이 회심하고 로마로 돌아가 그리스도인의 共同體를 形成하였고 당시 로마는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往來와 旅行의 대명사였으며 立身出世 하려면 반드시 이 都市에 와야 한다는 유혹이 수많은 사람을 유혹했을 것이고, 그들 중에는 다수의 그리스도인들도 썩여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모여서 敎會를 形成하였다.' 고 說得力있게 主張하고있다.73)
로마교회의 구성원은 유대인 이나 이방인 양자가 다 있었음을 알수 있다.74) (롬16:1-17)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전하는 文獻에서 유대인에게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볼수 있고 9-11장까지 나타난 유대인에 대한 깊은 관심의 문제를 다룬 論說들로 미루어 보아 교회 안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뿐만 아니라 롬11:13이나 롬15:8-29을 통해 로마교회는 이방인들도 있었음을 明白히 하고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두 무리의 有益에 동일한 關心을 계속 표시하고있다. 바울이 유대인 무리를 많이 평가해 주며 그의 同族이 하나님과 關係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친교의 統一性을 지니도록 하며 그들의 유익을 增進시키기에 그토록 열심이긴 하지만 그러나, 바울이 생각한 것은 로마 敎會 자체였다. 그는 로마교회를 크게 擴大해서 이방인에게 具體的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한 예로 생각했다.75)
2.著作 動機와 目的.
바울은 수년동안 로마에 가기를 念願하였다. 그는 로마에서 이러한 그의 희망을 披瀝하였다.(롬1:10,11,15:23)
왜 바울은 로마 敎會를 방문하려고 했는가? 매우 온유하고 사랑이 믿은 바울이 동료들에게 神靈한 恩師를 나누어주고 (롬1:10-11) 그들과 편히 쉬기 위하여 로마에 가기를 원하였다.76)
다음으로, 그는 로마 敎會가 祈禱 가운데 그를 기억해 줄것을 要請할 必要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목적에 包含된 事項중의 하나는 롬15:24이 明確히 보여주는 바 대로 그가 計劃하고있는 스페인(서바나) 에로의 여행과 관련하여 로마 교회의 協助를 확보 하려 하였다77) 는것이 事實이다.
Ⅲ.律法과 恩惠에 대한 바울의 理解의
內容.
A.敎理的 理解
1.律法에 대한 敎理的 理解.
로마서에서 바울은 다양한 의미로 律法이란 用語를 사용하고 있다.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律法이란 單語가 59번 사용 되었으며 9장에서 16장까지 7번 사용되었다.78)
본논문에서는 롬1장부터 8장까지 각 장에 나타나는 律法의 意味를 분석하고 교리적인 理解를 分析하고 교리적인 理解를 정리하고 實踐的인 理解를 考察해 보고자 한다.
1)롬1장
복음의 核心과 優越性에 대해 言及한다. 1장에서 바울은 로마서의 主題가 되는 이신칭의'의 위대한 宣言을 한다. (롬1:16-17) 루터는 이서신의 大義와 要地는 肉身의 모든知慧와 義를 끌어 내리고 잡아 꺽으며, 파괴시키어 우리가 그 존
재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罪의 實在를 認定하고 상술 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79)
바울은 사람이 진정으로 선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律法에 있지않고 하나님의 義에 의하여 恩惠로 提供되는 것임을 1장에서 알려준다.
2)롬2장 - 롬8장
律法이란 用語가 16회, 律法과 비슷한 용어인 儀文이란 用語가 2회 나온다. 이곳에서 바울은 유대인 역시 稱義가 필요함을 强力히 주장하고있다.
(1)롬2:12-16에 나타난 律法理解.
바울은 人類를 두 分類로 나누고 있는데 律法없는 사람과 律法아래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이나 최후의 심판날에 判斷받는 것은 사람들이 律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會堂이나 다른 어떤곳에서 朗讀되는 律法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과연 그 律法의 요구에 순종하여 그들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있다.80) 여기서 律法이 말하고있는 律法이 무슨 律法이냐 하는 점이 問題가 된다.
John Murray교수는 이 律法을 特別啓示로 보며 律法을 심판의 도구 혹은 基準으로 보는 것이 適切하다고 말했다.81)
13절에서 律法은 律法아래서 犯罪한 사람들에게 宣告된 정죄의 도구'라는 前提를 支持하거나 確證하고있다.
15절에는 그 마음에 새긴 律法' 이라는 말이 나타 나는데 여기 언급되어진 律法은정해진 律法으로서 앞의 여러 절에서 具體化된 하나님의 律法'이다.82)
이방인이 본래 돌판에 기록한 律法은(출24:2) 알고있지 못하다 할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마음에 (렘31:33,고후3:3) 율법이 요구하는 行爲를 기록해 두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기록한 것은 그 사람의 良心속에서 反應을 나타낸다.83)
(2)롬2:17-29에 나타난 律法理解
이 부분에서는 바울의 順從槪念을 알수있다. 이곳에서 바울은 律法의 참된 의도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指導, 判斷하는데 있다고 지적 하였다.84)
여기에 律法은 유대인의 정죄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역활을 감당한다. 여기서 유일한 문제는 儀文이란 用語(27,29절)의 意味이다. 바울이 이 말을 다른곳에 使用한 것을 보면85) 의문은 律法을 지적하고 있다.
John Murray 敎授는 그렇게 지적한 이유를 律法은 돌비나 聖經에 기록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고 했다.86)
바울은 割禮의 有益은 하나님의 律法에 順從하므로 사라진다고 하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儀式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順從에 있는 것이다.87)
(3)롬3장 - 律法에 나타난 한 義.
롬3:19-31에서 바울은 律法에 대한 順從 槪念을 정확히 전달해 주고있다. 바울의 順從槪念은 律法의 行爲들을 반대하는 그의 논박 속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律法의 行爲들은 그것을 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功勞가 認定되는 價値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며 行爲者는 그 行爲들을 자신과 하나님과의 關係를 確立시켜 주고 保障해 주는 成就들 이라고 看做한다.
퍼니쉬 敎授는 바울사도의 의도를 看破하여 진정한 順從은 律法을 단순히 形式的으로 지키는 것이라고는 말 할수 없고 全 人間을 하나님께 委任하는 것이다.'(롬3:29)88)
20절에서 바울은 모세의 律法에 의해 옳다고 인정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을 指摘하며 律法이 우리 모두를 정죄하고 사람들이 갇고있는 하나님의 恩惠와 矜恤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罪의 容恕와 참 救援에의 所望에로 指示해 준다.89) 19 절에서 바울이 使用한 律法의 意味는 시편과 이사야서에서 引用해 왔기 때문에 구약과 동의어인 의미로 律法을 使用함이 틀림없다.90)
律法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律法아래 라는 것은 율법의 領域 즉 지금까지 律法이 말하고 實例를 들어온 바 있는 律法의 요구사항과 심판의 方法으로 適用되는 領域인데 그는 이것을 온 世上이라고 불렀다.(19절)
그러므로, 이방인도 律法아래 있는 것으로 看做된다. 律法適用의 포괄성을 말해주고있다.91)
27절에서 바울이 믿음의 법에 관하여 말할때 그가 믿음과 정반대되는 의미의 律法을 意味하지는 아니했다는 것이 明白하다. Calvin은 法이란 單語가 여기서 믿음에 適用되어 있는 것은 適合치 못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이것은 조금치도 바울이 意味하는 바를 흐리게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가 意味하는 것이 '믿음의 法 에 이르게 되는 때는 行爲의 모든 자랑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92)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신 일종의 恩師이며 救援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人間의 獨創的인 産物이 아니라 (엡2:8-9) 하나님께 얻는 것이며, (고전4:7)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해야 한다는 것을 (고전1:31) 확신하게 된다.
핸드릭슨은 무었이든지 자랑할 여지가 없다는 진리를 含蓄하고 있는 것이 以信稱義의 敎理이다.'고 말했다.93)
바울은 로마서 3장 후반부에서 律法의 行爲로는 아무 육체도 義롭다 하심을 받을수 없다는 事實과(20절) 하나님의 義는 律法외에' 나타났다는 事實과(21절) 福音의 原理는 믿음의 原理' 이지 行爲의 原理'가 아니라는 事實과(27절) 사람은 律法의 行爲없이 믿음으로 義롭게 된다는 事實을(28절) 主張해 왔다.
律法의 行爲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은 律法은 어떠한가? 그것은 閉止된 것이냐? 그것은 소용없는 것인가? 하는 質問을 내게했다. 31절에서 그 解答을 제공한다. 믿음으로 도리어 律法을 굳게 세우느니라' 여기서 擧論되고있는 律法은 順從하고 實踐할 것을 명하는 律法이다. 그러나, 어떠한 계명에 대한 어떠한 順從行爲라도 稱義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바울이 주장하는 內容이다.94)
핸드릭슨은 31절에 나타난 律法이란 용어를 聖經과 同義語로 보고있다.(롬4:3)95)
Calvin은 도덕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되게 確證되고 確立된다. 왜냐하면 律法은 사람에게 대해서 가르쳐 주고 그리고,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목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는 이율法이 成就되지 않는다. 사람이 그리스도 에게로 오면 먼저 그 안에서 律法의 正確한 義(The exact righteousness of the law)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義는 우리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 우리것이 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聖化를 발견 할수 있다는 것을 주장 하였다.96)
바울은 이 부분에서 도덕 폐기론적 추론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하는 論證을 제시하고 있다.97)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 문제를 계속 다루고 있다.
(4)롬4장
바울은 이미 율법 외에 하나님의 義가 律法者 선지자 즉 구약에 의하여 證據 되었다는 事實을 말한바 있다.
4장에서 그는 이신칭의의 성경적인 본보기인 아브라함을 들어(1-12절) 하나님의 約束이 行爲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실현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3절에 아브라함 이나 그의 후손에게 하신 言約은 律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라는 말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고 John Murray 敎授는 指摘한다.
첫째는 律法은 무었을 意味하는가?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어떠 사람인가? 여기서 律法이란 말은 順從을 요구하는 계명인 律法을 가르키는 것으로 모세의 律法중 十誡命을 意味한다.98)
바울이 여기서 主張하는 것은 律法과 約束과의 완전한 대조' 이다. 律法은 명령하고 그것이 파괴 될때에는 진노를 이룬다.(15절) 律法은 恩惠를 모른다. 그러나, 약속은 은혜부여의 확증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랍비들은 律法이 시내산에서 宣布되어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이 그것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며, 그 細部項目까지 모두 지켰다고 主張하였다.99)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는 바울의 陳述은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認定되었기에 그 約束을 받은 것이며 의롭다 인정 받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의 結果임을 證據한다.
15절에서 바울이 律法이 없는 곳에는 犯함도 없다고 말한다. 罪란 法을 侵犯하는데 있기에 사람의 죄된 상황 하에서는 언제나 방법이 있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다. 이에대한 바울의 宣言은 律法은 震怒를 이룬다.'는 것이다.
16절에 율법에 속한 이란 말은 모세의 법에 속한 이란 말을 意味하며 모세의 제도 하에서 有益을 가진 사람100) 을 가르킨다.
사실은 또 다시 바울이 律法아라는 말을 얼마나 包括的으로 使用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은 恩惠에 基礎를 두었으며101) 律法자체가 證據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믿음에 의해 (롬3:21) 그 律法은 行爲의 法 이기를 그치고 믿음의 法이 되는 것이다.102)
믿는 자는 자기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순종하며 바치기 때문에 律法의 行爲로 부터 새로운 의미에의 律法의 수행을 위해서 자유롭게 되었다.103)
(5)롬5장 - 律法이 있기전에 存在함 (5:13)
以信稱義에 대한 講解(롬1:16-11:36)라는 일반적인 제목아래 바울은 이 칭의가 필요한 것이며 실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롬1:16-3:31) 성경적인 것이기도 하다(4장)는 것을 보여 주었음을 알수 있었다. 5장에서 8장까지 그는 그것이 또한 효과적인 것이며 풍부하게 열매 맺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104)
롬 5장의 주제는 이신칭의의 열매 이며 전반부에는 그 열매가 和平, 기쁨, 所望으로 나타나며(1-11절) 후반부에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救援의 確實性과 풍요함을 말하고 있다.
특히, 롬5:13이하 부터 그는 죄와 律法과의 關係를 잘 설명하고 있다.105) 바울은 律法자체가 罪와 동일한 것이라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고 그 사실을 강조하지도 않는다.(롬7:7) 그럼에도 불구하고 罪가 이세相을 지배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한다고 主張한다. 로마서에서 이 두 구절106) 이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롬5:12 이하에서는 죄가 律法이 있기 전에도 있었으나 律法이 없었을 때에는 罪를 罪로 여기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죄나 죄의 근원의 문제가 아니요 새로운 삶의 근원에 관한 문제라고 Bultmann은 主張한다.1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는 바울의 律法과 罪를 理解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罪는 아담의 犯罪로 世上에 들어왔다.(12절,15절) 따라서 律法이 주어지기 以前時代에도 罪는 이 世上에 存在했었다. 여기서 律法은 모세의 律法을 意味하며 사람들이 어떤 특수 조항을 범한 것이 없이도 律法에 의해서 심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人類가 母胎로 부터 여전히 咀呪아래 있었다고 바울은 말한다.108)
罪와 더불어 죽음이 아담 뿐 아니라 모든 人間들 위에그 전체적인 왕노릇 을 하기 시작했다.(14절) 하지만 바울은 모세 이전시대의 아담의 범죄와 일반적인 人類의 罪사이의 差異를 識別한다. 律法이 없었을 때에는 罪를 罪로 여기지 아니한다. 는 말이 이 事實을 암시한다.
특별한 律法 條項이었을 때에는 罪가 具體的인 條項에 대한 犯法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109)
퍼니쉬 博士는 아담의 罪는 자기에게 주어진 계명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것에서 생긴 것이지만 아담 범죄 이후에 따라온 人類一般의 罪는 어떤 주어진 法을 違反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110)
아담의 罪는 개인적인 次元을 지니며 아담의 자손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責任性을 지닌다. 12절에서 모든 사람이 罪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는 언급 속에서 개인적인 범죄와 책임성에 대한 바울의 認識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죄가 각 사람의 實存속에서 개인적 要素로 되고 特定犯罪로 개체화 되는 것은 바로 律法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20절에는 律法이 이 世上에 들어온 결과가 犯罪의 證據 라고 技術되어 있다. 이전에는 단지 하나의 罪(아담의 罪) 밖에는 없는 곳에 이제는 많은 罪들이 있게 되었다. 사실 각 사람을 그 자신의 아담으로 만듦으로써 아담의 罪를 增殖시킨 것이 바로 이 世上에 들어온 律法의 기능 이었다.
이제 13절에서 바울이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도가 각 사람은 죄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의 犯罪와 책임성을 經驗하며 律法으로 인하여 罪는 具體化되고 犯罪는 개별화 됨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律法에 비추어 자신의 죄성과 나약함을 알기 시작하면 할수록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 주신 恩惠에 대하여 하나님께 더욱 感謝를 드리게 될 것이다.111)
(6)롬6장
6장에서 바울은 이신칭의는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과(1-14절), 누가 너희의 主人인가? 罪 인가? 하나님 이신가?(15-23절) 날카롭게 반문하고 있다.
이곳에서 바울의 順從槪念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롬6:12 이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구절은 17절 너희에게 傳하여 준바 校訓의 本을 마음으로 順從하라 는 말씀이다. 도드는 초기 基督敎 傳承에 관한 그의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17절의 권면을 특수한 道德的 本 을 따르라는 勸勉이라고 생각했다.112)
14절에 너희가 法아래 있지않고 恩惠아래 있다 는 것은 罪가 주관치 못한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 나타난 律法은 一般的인 意味의 律法으로 理解해야 할 것이다.113)
律法의 無能은 律法을 파괴하는 자를 義롭게 할 아무런 일도 행할수 없다는 것과 罪의 속박을 벗게 할 아무런 알도 행할수 없다는 것이다.
(7)롬7장 - 律法에 대해 죽음
이 부분은 롬6:14과 필연적으로 관계된다. 여기서 使用한 律法은 구약에 기록된 律法 특히, 모세의 律法이 분명하다고 죤 머리는 確言한다.114)
律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主管한다 는 陳述은 하나의 一般的인 原理를 말할 目的으로 내어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바울은 일반적인 結婚의 類推를 律法및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는 關係의 영역인 靈的인 領域에 適用하였으며 이 例가 말해 주고자 하는 주된 核心은 남편의 사망이 여자로 하여금 結婚關係에서 풀려나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律法과 恩惠가 믿는자에게 어떤 關係를 나타내고 있는가를 說明하고 있다.115)
律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라고한 4절의 표현은 그리스도 죽음 안에서 영구화된 破滅을 象徵하는 것으로 解釋되어왔다.116)
律法에 대한 우리의 빚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전히 갚아져서 117) 그 結果 신자들이 律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곧 신자들의 支拂 請求書가 完全히 해결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十字架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118)
律法으로 부터의 解放은 그리스도 즉 復活하신 이와의 聯合을 意味함에 틀림이 없다.119)
율법과의 結婚은 열매를 맺지 못하나 그리스도와의 結婚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한다(4절)고 바울은 주장한다.
이 모든 말씀을 集約해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律法에 대하여 죽었지만 우리가 과부가 된것이 아니라 주예수께 시집 간것이 되었고 律法보다 높은 次元의 法인 사랑의 法아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律法을 지킬 必要가 없는 것인가? 디한 博士는 믿는자는 이제 審判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救援에 대한 感謝와 그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그의 法을 지킨다.'고 적절하게 말하였다.120)
지금이 律法時代는 아니지만 도덕시대인 것만은 사실이다. 律法아래 있지않고은惠아래 있다는 것은 信者 본연의 位置에 있는 것이며 信者의 位置에 있다는 것은 倫理的, 道德的 責任아래 있다는 것이다.12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順從할 義務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律法이 요구하여서나 審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法에 順從하게 된다.
롬7:7-13에서 바울은 律法으로 말미암아 罪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原理(롬3:20)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것은 이론적 知識이 아니라 律法에 의해 罪와 罪性(Sins a-nd Sin)을 깨달아 確信된 경험적인 確信인 것이다.122)
이 부분에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成文法에 犯하는 問題를 論證하면서 바울은 10회 정도나 자기자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여기서 일인칭 단수를 自敍傳的 方法으로가 아니라 一般的인 意味로 使用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칼빈은 이 見解에 동의하지 않으며123) 論證도 Calvin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바 이다.
8절에 律法이 없으면 罪가 죽은 것이다. 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罪의 非 存在性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存在하되 단지 죽어있는 罪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124)
계속해서 바울은 罪가 機會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 고 主張한다. 이 말씀은 律法이 傳達해 주는 罪에 대한 知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125)
9절에 계명이 이르매 罪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도다. 고 바울은 외쳤다. 이것은 죄에 대한 확실한 認識없는 상황에서 나는 安全함을 느끼고 道德的으로 靈的으로 아주 健全하게 있다고 생각 하였으나계명이 이르자 즉, 律法이 진정으로 要求하는것(막12:29-31)이 나에게 절실하게 느껴지자 나는 내가 얼마나 큰 罪人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126)
10절에서 그는 생명에 이르게 할 율법이 내게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 고 했는데 이 言及은 律法의 원래적인 目的을 가르키는 것이다. 律法의 目的은 義의 길 안에서 人間의 生命을 지도하고 規定하여 生命을 保存 하자는데 있었다.127)
율법이 의식속에 새겨지면 질수록 罪는 더욱더 行動으로 나아간다. 律法은 단순히 律法이기 때문에 治療的인 效果를 發揮할수 없다.
그 律法이 死亡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 는 絶叫는 바울을 잡고 흔들었던 그의 體驗속의 悲劇과 환멸을 反映해 주고있다.128)
그러나, 13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사망이 되었느냐? 고 반문 하면서 곧, 그럴수 없다고 완강히 답하며 죽음을 일으킨 것은 律法이 아니라 罪 라고 했다. 律法은 罪를 노출하고 確證한다. 律法은 인간안에 거하는 부패가 그것으로 活動의 기회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죄의 機會가 된다. 律法은 罪가 더 惡化해서 표현되는 도구이다. 그러나, 律法이 罪스러운 것은 아니다.129) John Murray敎授는 이 時機를 그가 이제 막 靈的 마비상태에서 죄의식을 가지게 된 體驗의 時機이다. 고 말한다.130)
로마서 7:14-25에는 성소속의 투쟁 을 언급한다. 이 부분은 해석사상 굉장히 심각한 見解 差異를 드러내는 곳이다.
Calvin은 이 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引用하여 信者의 나약함과 그것이 얼마나 큰 問題인가를 묘사하고 있다 고 했다.131)
世紀를 통틀어 내려 오면서 펠라 기우스파를 제외한 수많은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중생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是認해 왔다.132) 그러나, 보수진영의 여러 학자들은 바울이 자기자신과 一般的인 意味에서의 信者들을 言及하고 있다고 하는데 다음의 학자들에 의하여 支持된다.133) 여기서 묘사된 인물은 罪를 미워하고(7:15) 선을 행하기를 원하며(19-20절) 그의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法을 즐거워하고(22절) 자기 罪惡을 깊이 後悔하며(15,18-24절) 자기의 救援을 하나님께 感謝드린다.
비 중생인 에게는 이러한 특징이 있을수 없다. 그러므로 論者는 이 부분이 중생한 바울의 經驗의 묘사라고 結論을 내린다. 중생한 자로서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자신의 상황과 그와 유사한 다른 상황을 성찰하면서 곤고한 사랑의 투쟁과 승리에 대하여 토론을 전개해 나간다. 바울은 罪로 더럽혀진 자신의 모습과 그와 마찬가지의 상태의 다른 이들의 모습을 드러내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律法에서 어떠한 잘못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가 律法을 신령한 줄을 알았거니와 나는 肉身에 속하여 罪아래 팔렸도다. 라고 告白한다. 그리하여 그는 비록 하나나가의法이 善하다고는 하지마는 그것이 어떤 公言이 될수 없음을 認定한다. 그는 자기가 이 罪많은 땅위에 살고 있는 동안은 육신에 속한즉 神靈하지 못하고 세상적이며 完全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惡이 함께 하는도다. 고 말하는데 解釋家들에게 크게 나누어지는 問題點은 이 귀절에서 말하는 法의 意味이다.134)
그것이 하나님의 法을 가르키느냐? 罪의 法을 가르키느냐?는 것이다. 양자가 文法上 , 構文上으로 다 容納된다. John Murray 敎授는 여기서 法은 行爲를 意味하는 要求를 지닌 法의 一般的意味로 使用되기 보다는 행위의 規則내지는 原理의 의미로 보았다.135)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罪아래 팔렸다는 事實을 眞心으로 개탄한다.(20절) 그러나, 속사람 으로서의 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며 도리어 상황을 미워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感謝하리로다. 라고 歡呼한다.
전체의 論證을 요약하면 바울은 다음과 같은 記術로 이 장을 끝맺고 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法을, 肉身으로는 罪의法을 섬기노라. 이귀절은 8장과 아름답게 연결된다.
이러한 상황은 바울의 善함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恩惠에 기여하는 것이다.136)
(8)롬8장 - 生命의 聖靈의 法
恩惠를 통하여 生命의 聖靈의 法아래 있는 자는 결코 定罪이함이 없으며(롬1-30절) 天下無敵의 勝利를 얻게한다(31-39절)는 것은 8장의 內容이다.
1절에 결코 定罪함이 없다는 것은 죄의 行惡으로 부터 뿐만 아니라 그것의 從으로 삼는 능력(Power of Sin)으로 부터 自由를 意味한다.137)
生命의 聖靈의 法이란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과 生活속에 內住하시는 성령의 强力하고 효과적인 활동이다.138)
이 法은 롬6:23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즉 그의 代贖의 功勞에 근거하고 그와 聯合하는 生動하는 힘에 의하여 이 일을 이룬다는 것을 알수 있다.
3절에 律法이 肉身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이라는 말씀으로 보아 律法이 罪의 權勢를 정복할수 없음을 明白히 보여준다. 肉身은 罪있는 人間의 性品이다. 律法의 無能性은 그것이 救續적 性質혹은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反映된다.139)
4절에서 바울은 律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했는데 律法의 要求는 義로운 요구상황이다.(롬2:26)
바울은 그리스도의 救續 事役에 의해 促進된 最後의 목표인 거룩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의 완성으로 생각 하였는데 이것은 신자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위치를 雄辯的으로 말해주고 있다.140)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律法의 요구를 이룩 하셨다.
7절과 8절에 나타난 敎理는 自沿人의 전적인 無能性의 敎理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그리고 그가 기뻐하는 일을 행하기에 육신은 전적으로 無能하다는 것이다. 이 문단 전체에서 人間의 전적 부패와 전적 無能의 敎理에 대한 성경적 基礎를 取한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은 全的腐敗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는 것은 全的無能이다.141)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로마 敎人들에게 너희는 罪많은 人間의 本性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聖靈에 의하여 支配되고 있다 고 陳述한다.(1-2절)
이 말은 너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으며 또한 사실상 기쁘시게 하고 있다 고 하였다. 따라서 신자가 살아가는 동안 聖靈의 인도하심과 調和를 이루며 사는 것이 신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從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다.(8:16) 그들은 후사 곧 하나님의 相續者들이다. 現在地上에서 그리스도의 苦難에 同參하고 있는 자들은 훗날에 그의 영과에 참여할 것이다.(9-18절)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다가올 榮光의 날을 모든 被造物이 고대하고 있다(19-27절)
고 진술하며 바울은 生命의 聖靈의 法아래 사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넉넉히 승리하고(31-39절)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信者를 끊을수 없다는 영광스러운 확신으로 8장을 끝맺는다. 32절 이하의 부분은 하나님 恩惠에 대한 결정적인 終言이 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論者는 롬1장에서 8장까지 나타난 律法의 本文속에서의 정확한 의미를 考察해 보았다. 여기서 얻어진 結論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에게 있어서 νομοσ의 사용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사상은 그가 수많은 모순적인 陳述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理解하기 어렵다.
그는 롬1장에서 8장 사이에서 律法이 비록 거룩하며 義로우며 善하다고 强調하면서도(롬7:12) 그리스도인은 律法아래 있지 않고 恩惠아래 있다고 주장하며(롬6:14) 律法을 行하는 자들이 義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며(롬2:13) 律法으로 말미암아 살것이라고 主張하지만(롬10:15) 同時에 그는 律法의 行爲로는 하나님 앞에 義롭다 하심을 얻을 肉體가 없나니 律法으로는 罪를 깨달음 이라고 말하며(3:19-20) 儀文ㅇㄹ 통해서는 死亡에 이를 뿐이라고 主張한다.(고후3:6) 또한 그는 자신이 律法의 義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主張하지만 어느 누구도 律法을 완전하게 지킬수 없다고 주장한다.(롬8:7) 律法이라는 用語 자체도 가끔 구약의 개념으로 말하나 전적으로 그 의미는 아니며 또한 그의 律法의 개념은 단순히 모세의 法에서만 出發하지 않았던 것이다.142)
둘째로, 바울이 해석한 律法의 여러 특징들은 오직 그의 終末論的인 展望에서만 이해 될수 있는 새로운 基督敎的 解釋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143)
그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메시야 時代가 시작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것이 孕胎 하였음으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전에 律法을 κατα σαρκα 즉, 人間的인 觀点에서 그리고 모든 經驗을 解釋 할때 처럼 옛 세대를 理解 하였다.
肉的인 次元(κατα σαρκα)에서 볼때에 律法은 긍지와 자랑거리인 善行의 基礎였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靈的次元(κατα πνευμα)에서 볼때 율법은 하나님의 救續目的 가운데 전혀 다른 역활을 감당하게 되었다.
셋째,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律法에 대한 태도가 두가지로 드러남을 알수있다.먼저 否定的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바울은 律法이 救援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認定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율법을 전적으로 不正하는 것은 아니다.144)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율법의 失敗와 律法을 통한 罪의 支配라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여전히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지만 律法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義롭게 하는데 失敗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가진 연약성(롬8:3) 墮落性(롬7:23) 때문에 律法이 요구하는 順從을 할수 없다는 것이다. 律法이 犯罪한 人間들을 義롭게 할수 없는 또한 다른 이유는 그것이 외적인 儀文인 반면 , 인간의 타락한 마음을 변화시키는 내면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데 있다.145)
律法은 기록된 法典이지 하나님의 靈이 주는 生命이 아니라고 바울은 主張한다.
또 그는 律法을 통하여서 죄의 지배가 이루어 진다고 말하였다.(롬5:13이하, 7:7이하)
罪는 律法아래서 機會만 계속 노리고 있다. 그는 律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고 못을 박아 말한다.(롬4:15)
죄와 죽음으로 부터의 解放은 律法으로 부터의 解放을 意味한다.(롬7:1)
다음으로, 그는 律法에 대해 肯定的, 積極的 評價를 내리고 있다. 그는 律法을 하나님의 法이라고 表現하며(롬7:22,25) 神靈한 것이라고 宣言하며(롬7:14) 律法의 戒命들은 거룩하며, 義로우며, 善하다고 宣布한다.(롬7:12)
또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律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새운다. 고 말한다.(롬3:31)
바울은 律法의 行爲로는 아무 肉體라도 義롭다 하심을 받을수 없다는 사실과(롬3:20) 하나님의 義는 律法외에 나타났다는 사실과(롬3:27) 사람은 律法의 行爲없이 믿음으로 義롭게 된다는 사실(롬3:28)을 主張해왔다. 律法의 行爲에 대한 반복적인 부정은 律法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폐지된 것이냐? 는 질문을 낳게 했다. 그는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대답했다.(롬3:31-32)
여기서 나타난 律法은 順從하고 實踐할 것을 命하는 律法이며 어떠한 戒命에 대한 어떠한 順從 行爲도 正義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바울의 主張이다.146)
바울은 恩惠의 敎理에서 道德 廢棄論的 推論이 나올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롬6장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잘 다루고 있다. 그는 道德 廢棄論的 推論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하는 論證을 提示하고 있다.147)
그렇다면 律法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計劃속에 건설적인 자리를 차지 하는가? 먼저, 律法은 하나님의 目的들과 하나님의 요구들을 證據하는 것으로 看做된다.(롬3:21)
다음으로 律法은 죄의 중개자로서 그 하는 일 속에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奉仕 한다는 것이다.148)
롬7:11-12에 律法에대한 否定的인 진술과 肯定的인 진술이 나란히 나타난다. 罪가 機會를 타서 戒命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런 이유로(ωστε=for this reason) 律法도 거룩한며, 戒命도 거룩하며, 義로우며, 善하도다. 罪가 드러났고 심히 罪되게 되었다. 고 바울은 말한다. 罪가 개개 罪人들의 삶 속에서 은신처를 구했으며 그 사악한 意圖들이 드러나게 되는 단계는 바로 그 罪가 패배하는 제 1단계이다.149)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려 함이라. 그러나, 罪가 더한 곳에는 恩惠가 더 넘쳤나니..... (롬5:20-21)라고 외쳤다.
넷째, 바울이 율법의 재해석을 시도함을 알수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律法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달리 하나님의 義에 완전하게 이르게 할수 없었던 일을 숙고하면서 하나님의 全般的인 救續目的가운데 律法이 차지하는 역활을 새롭게 解釋한다. 먼저 그는 律法이 하나님의 본래 目的이 아니었음을 보여 줌으로써 救援을 제시 할수 없는 律法의 無能力을 설명한다. 그는 롬4:1-5에서 아브라함이 律法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믿음으로 義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主張한다.그리고 割禮의 표가 있기전에 義가 믿음으로 주어진 사실을 지적한다.(롬4:9-12) 만일 救援이 律法으로 말미암지 않고 約束으로 말미암는다면 하나님의 救續目的 가운데서 律法이 차지하는 역활은 무었인가?
律法이 더한것(παρεισηλμθεν)은 사람들을 그들의 罪에서 救援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가 무었인지 보여주기 위함이다.(롬3:20,5:13,20)150)
하나님의 뜻을 선언하고 하나님이 禁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律法은 죄가 무었인지 보여준다.151) 그래서 바울은 律法을 定罪(롬5:13), 震怒(롬4:15) 그리고 死亡의 道具라고(롬7:19) 불렀다.
이 悲劇的인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은 律法자체가 아니라 사람속에 있는 罪이며 로마서에 실린 바울의 論議는 유대인들이 律法을 어떻게 理解해야 할 것인가를 敎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대 그리스도인들 처럼 律法에 대해서 연관성 없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恩惠로 救援얻는 길을 바꾸지 않도록 指導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152)
2.恩惠에 대한 敎理的 理解.
그리스도敎가 은혜의 宗敎인 것같이 理解된 것은 바울에 의하여 되었다고 할 만한 것이다. 바울이 사용한 恩惠란 말은 기쁨, 사랑스러움(엡4:29,골4:6), 好意(롬1:5), 感謝(고전10:30) 따위의 의미로 使用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歷史的 사실을 지시 하는데 주로 使用하였으며 하나님 편에서 온 犧牲, 矜恤, 慈悲를 지시하는 것이다.153) (롬3:24)
恩惠라는 用語가 로마서에서 22번 나타 나는데 그 중 1장부터 8장까지 11번 11장 부터 16장 까지 11번 나타난다.154)
먼저 각 장에서 바울이 使用한 恩惠의 敎理的 理解를 考察해 보고자 한다.
1)롬1장.
5절에서 그는 예수로 말미암아 恩惠와 使徒 職分을 받았다고 한다. 恩惠와 使徒의 職分은 使徒的 恩惠 를 意味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더 好感이 가는 것은 John Murray敎授가 밝힌 것처럼 恩惠란 하나님께서 功勞없는 자에게 주시는 一般的인 好意 라고 본다.155)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 救援에 나타난 하나님의 恩惠는 悔心의 체험을 통해 使徒職을 받은 것과 분리 되었던 것은 아니다.156) 그럼므로 이 경우에 있어서 一般的인 恩惠와 특수한 恩惠가 서로 密接하게 聯關되어 있다고 보겠다.157)
7절에 나타난 恩惠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는 인사말을 바울의 매 書信마다 비슷하게 사용158)하고있다. 바울이 쓴 모든 書信은 恩惠란 말로 시작하고 또한 恩惠란 말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바울 사상 가운데서의 恩惠의 위치를 알아 볼수 있다.159)
여기서 사용된 恩惠란 말의 의미는 그 활동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의적이며 값없이 주시는 慈悲이고 효력에 있어서는 避難處를 찾아 그에게 돌아오는 罪의 짐을 진 罪人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慈愛이다.160)
恩惠와 평강은 바울 書信에서 항상 떨어 질수 없는 쌍둥이로 나타나는데 이 단어가 순서대로 항상 使用되는 이유는 恩惠를 경험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161)
이 바울의 인사법은 헬라인 인사법 카이레 (καιρειν=기뻐하라)와 유대인들의 인사법 샬롬 (Salom=peace)을 결합시킨 것이다. 이 두 인사말을 결합 시킴에 있어서 바울은 카이레 대신에 그와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基督敎的 색체가 뚜렷한 카리스 (καρισ)를 使用하였다.162)
2)롬3장.
1장부터 3장까지 罪惡에 대한 論述을 전개한 바울은 3장24절에서 稱義의 恩惠를 言及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義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絶對 主權的 恩惠性 을 말하며163) 3: 20에서 主張된 사실 곧, 律法의 行爲로는 하나님 앞에서 義롭다 하심을 얻을 肉體가 없느니라 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164)
로마서의 主題인 이신칭의의 교리에서 이것보다 더 核心的인 요소는 없다고 죤 머리 敎授는 힘주어 말한다.165)
은혜로 값없이 라는 말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데 분에 넘치게 주는 것이다.166)
특히 이 귀절의 각 낱말은 극히 강조적으로 서로 힘주고 있다. 不義한 자가 義롭게 됨은 最大의 事件이다. 그리고 이 最大의 事件이 寵愛(Melanchthon)로 주신 선물 이었다. 어거스틴이 말한데로 그 사건은 無에서의 創造였다. 167)
3)롬4장.
롬4장에서 바울이 피력한 恩惠思想은 4절에 補償 과 대조되는 은혜사상이다.
그는 여기서 일하는 자의 삯은 恩惠에 의한 것 임을 부정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規制할 것인가 하는 信仰倫理生活에 관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救援의 이유에 관한 것이다.168)
바울은 우리에게 義를 빚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論證한다.169) 만일 사람이 행咸으로義롭게 된다면 그 義人은 하나님께 받은 빚이요, 恩惠는 아니다. 그러므로 恩惠란 觀念은 말살되는 것이니 있을수 없는 것이다.
여기 일하는 (εργαζομαι)은 2절의 行爲 와 같은 말이며 여김 (λογιζομαι)은 3절의 義로 여긴바 와 같은 낱말이다.170) 義로 여기심이 行爲에 있지않고 믿음에 있고 따라서 全的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비유이다.
16절에서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恩惠로 제공 하시는 것을 사랑이 믿음을 통해 자기의 것을 삼을수 있다는 原理를 간결하게 陳述하였다.171)
바울이 먼저 밝혀 둔 것은 순수한 恩惠만이 믿음 앞에 올수 있다는 것이다.(cf.엡2:8) 즉, 믿음의 객체는 순수한 恩惠라는 말이다.
후사가 되는 이것이 恩惠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를 로버트슨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κατα καριν)를 따르기 위한 모범으로서의 은혜를 보았다.172)
16절에서 바울은 앞부분(1-15절)의 결론을 내린다.律法은 후사가 되게 할수 없고 가령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恩惠가 아니요 정당한 삯이 될 것이다.(4절)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해서는(ινα κατα χαριν) 믿음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73)
4)롬5장.
2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이 恩惠에 들어감을 얻었으며(....προαγωγην εσηκαμεν) 원문에는 이 귀절이 먼저 나타난다.174)
이 과거형은 1절의 현재형(εχομεν)과 대조되어 있다. 전절에서는 義롭다 하심을 얻은 신자의 현재의 축복의 상태를 말했으나, 이것은 과거의 상태로서 이미 은혜에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175)
이 귀절에서 제일 먼저 야기되는 질문은 여기서 말하는 恩惠란 무었인가?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恩惠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통해 얻어지는 稱義의 恩惠를 언급한다.176)
15절에서 바울은 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恩惠 를 언급한다. 이 구절에서 反映되어진 恩惠의 풍성함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심에 있어서 보다는 恩惠를 주심에서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다.177) 여기에 주장된 恩惠의 豊盛은 바울이 뒤에서 언급한 곧, 罪가 더한 곳에 恩惠가 더욱 넘쳤나니 (20절)라는 사실과 일치된 경우로 발견된 것을 말한다.178)
하나님의 恩惠 란 하나님이 바울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 준 선물이며 이것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成肉身, 죽음, 復活, 昇天, 再臨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恩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實現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179) 바울은 계속 17절에서 生命안에서 왕노릇 하게 하는 恩惠 에 관한 언급을 하게한다. 이곳에서 은혜와 義의 膳物(稱義의 膳物)이 동일시 됨을 발견한다.
그런데 恩惠로 말미암은 선물 은 우리에게 수여 되어진 모든것은 恩惠에 속한다는 것을 가르킨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恩惠 라는 표현을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恩惠 (του ενοσ Ιησξου χριστου)로 표현 할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義의 膳物을 받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예수에 의해 활용되어진 恩惠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자신의 恩惠가 우리의 稱義에 作用하고 있다는 것이다.180)
20절-21절에서 바울은 罪가 더한 곳에 恩惠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폭탄 선언을 한다.
모세의 律法은 犯罪를 더하게 하려고(롬5:13) 가입했다. 律法은 확대경 역활을 하는데 율법에 비추어 자신의 죄성과 나약함을 알면 알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恩惠에 더욱더 感謝하고, 그 결과 罪가 더한 곳에 恩惠가 넘친다. 는 告白이 흘러 나오게 된다.181)
하나님의 救援하는 恩惠는 律法의 定罪하는 힘과 맞먹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능가 하는 것이다.182)
더욱 넘쳤나니 (υπερεπερισσευσεν)는 강조적인 단어이며 최상급의 표현이다.183) 즉, 恩惠의 물결은 罪의 물결을 덮는 위대한 것이 된다.
21절에는 왜 恩惠가 풍성한지 그 목적을 보여준다. 恩惠는 義로 말미암아 永生에 이르도록 왕노릇하기 위한 목적으로 넘쳤던 것이다.
17절에서의 은혜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는데 대해 21절애서는 恩惠가 義에 이르도록 왕노릇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주님의 중보 사역을 떠나서는 도저히 생각 될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恩惠가 개인들 속에 역사하기 시작하면 罪와 사망이 왕노릇 하던 것이 중단된다.184)
5장에서 은혜는 죄와 율법을 능가하고 몰아내고 정복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5)롬6장.
바울은 恩惠를 더하게 하려고 罪에 거할수 없다고 5장에 뒤이어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1절)
여기서는 恩惠敎理에 대한 단순한 이론적인 반대만 다루지 않는다. 1-2절에서 바울이 目的이 手段을 正當化한다는 말 즉, 罪안에 거함으로써 恩惠를 얻을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럴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恩惠는 罪가 많은 곳에 넘칠진대 또, 많은 犯法이 恩惠의 빛을 드러 내는데에 기여 할찐데 하나님께서 그의 恩惠를 더 擴大하심으로 榮華를 받으시도록 우리는 더욱더 罪를 犯해 주자는 論理的 推論이 나올 것이다.
John Murray敎授는 이에 대하여 이것은 恩惠의 교리에 대한 道德廢棄論的 逆說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인한 行爲와는 無關한 稱義의 敎理에 대한 律法主義者의 반대이다. 로 알축해 버린다.
信者는 그리스도의 恩惠로 罪에 대하여 죽었다. 그러므로 罪를 폐하는 것이 罪에게 힘을 주어 그것을 조장 시키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거짓된 것이다.
信者가 義롭다 함을 받은 것은 이후로 純潔한 生活을 통하여 하나님께 敬拜하기 위함이다.'185)
14-15절에서 바울은 은혜아래 있는 삶 을 다루고 있다. 아들을 보내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恩惠의 本質이다. 그리고 이 恩惠는 용서 하실 뿐만 아니라 淨潔하게도 하신다. 恩惠는 罪를 그 權座에서 끌어 내린다. 恩惠는 죄의 주권을 용납하지 않고 信者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사랑어린 봉사 가운데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무었이든지 드리게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의 咀呪로 부터 信者를 救續 하였음으로 더 이상 信者는 法아래 살지 아니하고 恩惠아래 삶을 살게된다.(롬8:1,6:14)
여기에 나타난 恩惠라는 말은 律法과 대조하는 方法으로 보아 「救續의 對策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것」'을 말하는 것이다.186) 즉,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復活안에서 그 核心을 이루는 救續的인 새로운 恩惠아래로 왔다는 것이다. 恩惠아래 있다는 것은 罪가 主管치 못한다는 保證이다. 罪의 반대는 하나님의 順從이다.(15절) 이것은 義로운 상태의 條件으로 인도한다.187)
그러므로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絶對的인 意味로 自己의 主人 에서 自由로울수 없다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主人을 가지게 되는데 그 주인은 罪나 하나님중 어느 한쪽 이라는 것이다.188)
恩惠아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生命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生活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自發的으로 또, 기쁘게 順從하는 것이 그 特徵이다. 이와같이 恩惠아래 있는 信者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自發的으로 기쁘게 順從하게 된다.189)
이제까지 고찰해온 바를 집약해 보면 바울의 恩惠에 대한 敎理的 理解를 잘 把握하게 된다.
첫째,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恩惠槪念 배후에 있는 基本思想은 하나님의 자격을 묻지 않으시는 관대하심 이라는 것이다.190) 이런恩惠는 어떤 이유에 根據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恩惠를 받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서 어떤 制約을 받는 것이 아니다. 恩惠는 恩惠를 받을 사람의 條件과는 아무런 關係가 없다. 하나님의 恩惠는 너무나 관대하고 측량 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部類의 罪人들이 다 받을 수 있도록 되어진 것이다. 바울의 恩惠思想은 값없는 恩師로써 人間을 容恕하시는 하나님 이시라는 思想이다.
받을만한 資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받는 것이 恩惠이다. 로마서 전체를 통하여 바울은 恩惠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서 오는 膳物이며 人間이 결코 벌어 들이거나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그저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191) 恩惠는 功勞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恩惠가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恩惠에는 무진장의 넉넉함이 있다고 바울은 理解했다.192)
바울은 罪가 많은 곳에 恩惠가 더 넘치게 되었다고 고백 하였다. 恩惠에는 일종의 무한성이 있으며 완전한 타당성 일종의 무진장함이 있다.193) 인자의 救援받는 것은 恩惠로 말미암은 것이며, 오직 恩惠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다. 사실 다른 어떤 것을 개입 시키면 救援의 전체 원리가 붕괴된다. 이것이 로마서에 깔려있는 論議이다.194)
여기서 바울이 대항하고 있는 사상은 恩惠와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마는 그러나, 恩惠의 작용은 공로를 얻기위한 행위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보조되고 협조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195) 바울에게 있어 恩惠와 行爲는 서로 배타적인 行爲임을 알수 있다.
셋째, 恩惠는 恩惠받는 사람을 債務者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롬6:23) 사람들은 흔히 恩惠로 救援받고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지키려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恩師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主안에 있는 永生이니라 고 말했다. 永生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膳物이다. 恩惠는 갚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善한 일을 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구든지 救援을 받은 후에는 善한 일을하며 하나님을 忠誠되게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行動의 배후에는 그 동기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넷째, 恩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밝히 啓示되었다. 恩惠의 中心은 예수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歷史的 事實-죽으심, 復活, 昇天 등을 지시 하는데 주로 恩惠라는 말을 使用하였다.
恩惠는 그리스도의 사실에서 客觀的으로 일어 났으나 聖靈으로 現代的 사실로써 바울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意味를 강하게 담고있다.19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恩惠의 具體化 혹은 本質 이라는 것이 바울 思想 저변에 깔려있다.197)
바울은 하나님의 恩惠가 공로사상에 기초한 세계가 붕괴 되었을 때 도입된 하나의 비상수단이나 律法의 可能性이 發見되었을 때 개입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永遠하신 攝理이며 모든 시간 이전 부터 있었다고 理解했다. 왜냐하면 恩惠의 本質되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先在 하셨기 때문이다.(요1:1-2)
다섯째, 恩惠는 義로 말미암아 왕노릇 한다.198) 하나님은 인간을 救援하시는 일을 기뻐 하시지만 동시에 義로써 人間의 救援을 保護 하시는 것도 기뻐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恩惠를 하나님의 寬容으로 착각 한다면 그리스도의 十字架는 필요없고 無意味한 것이 된다.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하면 바울은 自己에게 있는 모든 것이 恩惠에 의한 것이 었다는 말이다.(롬12:3)
B.實踐的 이해.
1.律法에 대한 實踐的 이해.
1)바울의 律法에의 順從槪念.- 믿음은 진정한 順從의 길
바울은 律法에 대한 順從에 관해 언급을 피한다. 또한 그는 律法을 依支하는 자들 인 유대인들(롬2:17)을 批判하고 있다.(롬2:29)
유대인들은 律法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 하고도 최종적인 것으로 받쳐 주는 것으로 이해하며 자기들이 律法을 소유하고 있다는(롬2:13)사실 그 자체 만으로도 하나님과의 독특한 關係를 지니는 證據라고 생각한다. 律法안에서 자랑 하면서(23절)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들과의 關係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랑하는 律法이 犯해 졌을때 하나님을 모독 하는 것으로 변한다.(2:23-24)
롬2:25-28에 나타난 律法에 順從한다는 바울의 의도는 律法을 단순히 形式的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순종은 全 人間을 하나님께 委任하는 것이다. 이 점은 진정한 割禮가 마음속에 감추어진 그 어떤 것이라는 귀절에서 表現된다.(2:29)
특히 2:27에서 바울이 율법(ο νομοS)과 成文法典(το γθαμμα)을 구별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199)
바울은 롬7:6에서 聖靈과 律法을 대조 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律法에서 벗어나 靈의 새로운 것을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 귀절들은 진정한 割禮는 聖靈에 있고 文字에 있지 않다(εν πνευματι ου γραμματι)고 記術되어 있는 롬2:29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200) 바울의 순종개념은 律法의 行爲들 (εργα νομου)을 반대하는 그의 논박속에 잘 설명되어 있다.
律法의 行爲가 무었인가? 하는 것은 律法의 不可能을 알게 되고 福音의 威力에 사로 잡히는 깊은 體驗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그것은 恩寵의 體驗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復活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義人은 律法을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그 어떤 것이라는 견해를 거부 할때 그는 그 견해 속에서 전제되는 피상적인 순종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롬1장에서 行爲가 아닌 믿음으로 된다는 위대한 宣布를한 후에201) 롬2-3장에서 진정한 順從개념을 말하며 그리고 4장에 가서 아브라함의 例를 들어 믿음을 통한 철저한 順從을 强調하였다. 律法 자체가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롬3:21) 그 律法은 行爲의 法 이기를 그치고 믿음의 法 이 되었다.(롬3:27)
신자는 자기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순종하며 바치기 때문에 律法의 行爲로 부터 새로운 意味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되었다.
2)律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롬10:4)
그리스도는 律法의 마침이 되니라 는 말은 律法의 目的이 그리스도 안에서 成就 혹은 實現된 의미로 여겨져 왔다.202)
τελοS라는 用語는 여기서 이중적 側面을 지닌다. 한편 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통고된 救援의 양식인 律法이 끝나게 하여 律法의 行爲로 통하여 生命을 얻으려는 人間의 노력이 끝이라는 의미로 이 用語를 사용하며, 다른 면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律法의 참된 機能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評價 되었고 律法의 진정한 목표가 成就 되었다는 것이다.203)
사실, 律法의 모든 敎訓과 모든 命令모든 約束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信者는 모든 부분을 완성하신 그분께 적용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든 義를 벗어 던져 버리고 우리가 지은 罪惡들을 깨닫고서 屈服하여야 하며 또한 功勞없이 거저 주시는 義를 오직 그리스도 에게만 구할때 가능하게 된다.204)
3)律法에서 解放된 삶.(롬7:4)
律法으로 부터의 解放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의무에서 解放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 뜻을 우리의 힘으로 行하는 것처럼 行하는 그 行함에서 解放된다는 뜻이다.205)
만일 내가 肉身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 한다면 그 즉시로 나는 나 자신을 律法아래 두는 것이다. 나는 律法을 犯하였다.(롬3:10) 律法은 사형을 언도 하였다.(롬6:23) 그리고 그 死刑이 집행 되었다. 이제 죽음으로 나 즉, 肉의 나는(롬7:14) 律法의 모든 요구에서 解放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法이 있다. 이제부터 새 戒命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206)
4)사랑은 律法의 完成이다.
바울은 信者와 律法의 관련성을 이웃을 사랑하라는 律法의 命令에 入脚하여 規定 짓는다.207) 그는 무슨 戒命이든지 사랑 안에 다 포괄 되었다고 하였다.(롬13:9)
그는 남을 사랑하는 자는 律法을 다 이루었다 (πεπληρωκεν)고 하였고(롬13:8) 사랑(αγαπη)은 律法의 完成(πληρωμα του νομου)이라고 宣言 하였다. 완성(πληερωμα)이라는 말은 충만하다. 채우다.성취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208)
律法의 空虛를 채우며 그 약점을 보강하며 그가 뜻 하면서도 成就 못하는209) 바를 完成하는 것이 사랑이다.
바울은 사랑을 信者의 삶 전체의 內容과 양식으로 보고 있다.(고전13장)
2.恩惠에 대한 實踐的 이해.
바울은 로마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恩惠로 오직 믿음으로 義롭게 되어 진다는 논술을 전개해 나갔다.그러면 그 결과는 무었인가? 恩惠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미쳤다. 따라서 그는 恩惠의 도움으로 그 恩惠에 合當하게 사는 것을 보일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말할수 없는 바램과 慾望으로 가득 채워 져야한다.210)
恩惠는 약자의 왕국에 존재하는 罪의세력을 극복하게 만든다.(롬5:20)211)
1)恩惠아래 사는 삶.
肉身을 쫏지않고 靈을 쫏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지게 하려 하심 이니라.
바울이 聖靈안에서 恩惠의 생활의 積極的인 面을 상세히 설명하는 곳이 로마서 8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聖靈의 法을 따라 살때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롬8:1-2) 그런고로 ..... 결코 定罪함이 없나니 영의 생각은 生命과 平安 이니라. (롬8:6) 따라서 聖靈을 따라 行하는 삶의 結課는 勝利와, 生命과 平安이다.212)
신자의 삶 속에는 罪와 死亡의 法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生命의 聖靈의 法을 통하여 사망의 법에서 신자를 解放시키셨다. 主 예수님은 聖靈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가운데 거하신다. 聖靈을 쫓아 行하는 삶은 곧,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聖靈을 쫓아 行한다는 意味는 聖靈님께 服從하고 생활의 主導權을 맡기는 것을 意味한다. 또한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聖靈님이 行하시도록 자리를 양도하는 것이다.213)
3)몸을 통한 거룩한 산제사.(롬12:1)
8장에서 바울은 聖靈의 引道함을 받고 聖靈을 쫓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롬8:14)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義롭다 하시고 義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榮華롭게 하셨느니라, (롬8:29-30) 여기서 義人이 榮光으로 인도되는 것을 본다. 그 榮光은 다수로 나타나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214)
로마서 8장의 恩寵論은 그리스도의 몸을 主題로 하고있는 12장에 들어가면 분명해진다.
바울은 롬5장에서 信者의 罪가 容恕함을 받았다. 고 선언하며 6장에서는 信者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는 것과 7장에서는 信者는 날때부터 완전히 무력하다 고 하며 그런고로 內住하시는 聖靈님을 信賴한다고 8장에서 언급한다. 이런 결과로 12장에 우리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롬12장의 이하 장들은 신자의 실제 생활과 처신에 대한 대단히실제적인 교훈을 전하고 있다.215) 이런교훈들은 헌신에 관한 것을 일층 强調하고 있다.
4)넉넉히 勝利하는 삶.(롬8:35)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律法의 咀呪와 定罪로 부터 자유롭게 解放되었다. 罪와 자기의존과 個人主義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을 반대케하는 사람의 가장 교묘한 수법이다.216)
律法의 定罪에서 빛이나 恩惠아래 살게 된다는 가르침에 가장 자주 일어나는 반대는 마5:17-18의 말씀이다.217)
내가 律法이나 先知者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이 말씀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실때에 관한 것이다. 이 말씀은 十字架의 사건을 치루시기 전의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律法의 요구를 다 마치 시므로 律法을 完成 하였고, 律法의 끝이 되셨고 律法의 요구를 다 치루셨다.
律法은 救續史的인 觀点에서 볼때에 恩惠안에 융해되고 흡수되고 말았다.
따라서, 信者는 예나 지금이나 義롭다 하시는 이인 하나님 (롬8:32)과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롬8:33-34)를 믿을 때 우리는 恩惠아래서 넉넉한 勝利의 삶을 영위 할수 있는 것이다.
결 론
바울은 律法아래의 삶을 蒙學先生의 지도를 받는 것으로 또는 律法에 매인 것으로(갈3:23) 표현한다. 따라서, 律法아래서는 결코 平安함이 없으며, 죄책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律法에서 解放 되었으며(롬8:2), 벗어 났으며(롬7:6), 律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고 (롬7:4) 다시 律法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恩惠아래 삶을 살아야 한다(롬6:14)고 바울은 롬1장부터 8장까지 거듭 强調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律法의 마침(롬10:14)이 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律法의 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될수 없으며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가 될수 없게 되었다,
바울은 바리새적 律法 理解로 시작하여 律法의 義를 얻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그것이 不可能 하다는 것을 체험 하였고 다메섹 사건에서(행9:1-10) 그리스도와 만남으로서 유대교적인 義는 不可能함을 확신하는 恩惠를 통하여 믿음으로 라는 大 宣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律法의 마침은 恩惠의 삶을 시작함을 意味하는 것이다.
또 로마서에서 바울은 한 아내가 두 남편을 섬길수 없음을 明白히 하고 있다.(롬7장) 그리스도인은 律法인 옛 남편과 死別하고 恩惠및 義人인 새 男便과 再婚했다.218)
死別한 옛 남편을 계속 생각하고 미련을 둘때에 올바른 삶을 살아갈수 없다. 基督敎는 恩惠와 律法이 混合된 것이 아니고 오직 全的 恩惠를 통한 믿음의 종교 임을 알수 있다.219)
그렇다면 이제 恩惠아래 사는 것이 律法은 필요없는 無用之物이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의 恩惠의 福音이 우리에게 온 이후에도 律法은 恩惠가 오기 전과는 다른 양상에서 필요한 것이다. 즉, 恩惠로 律法에서 자유로와진 信者들에게 律法이 여전히 거룩하며 善한 것이다.220) 따라서 율법은 신자에게 거울처럼 인간의 처참하고 咀呪 받을수 밖에 없는 참 모습을 律法은 오늘도 보여준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救援의 길로서 律法이 그치고 폐지 되었으며 오직 言約百姓의 生活規範으로서 준행 되어야 할 法則인 것이다.221)
다만 律法의 얽매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믿음으로 기쁨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恩惠 아래서의 信者의 삶이 결코 放從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律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恩惠의 영역아래 들어 왔을때 사랑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된다. 法의 强要가 아니라 主의 사랑의 强請으로 날마다 제 十字架를 지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눅9:23)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몸을 쳐서 복종 시키며 그리스도의 德을 세우기 위하여 聖靈을 쫓아 行하며 부지런히 경건의 훈련을 쌓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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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15장
2)행15:31
3)엠.알. 디한,「율법이냐 은혜냐」,이용화역,(서울:생명의 말씀사,1971),pp.63-68
에드가.영.멀린스,조직신학원론」,(서울:침례회출판부,1982),p.518.
4)엠.알.디한,op.cit.,p.8.
5)Ibid.
6)Ibid.,p.67.
7)Paul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trans.by,Robert C.Schults,(ph
-iladelphia;Fortrenss, 1963), p.224.
9)롬10:4.
9)서철원,「복음과 율법과의 관계」,(서울;엠마오 출판사,1987),p.31.
10)디한, op.cit.,p.60.
11)롬13:10.
12)롬8:33,35-39.
13)엡2:8,롬1:16-17.
14)롬6:14.
15)G.Kittel,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Vol.IV,(Eerdmans),
1967, p.1044.
16)「새성서 대 사전」,Vol.9,(서울;성서교재간행사,1981),p.769.
17)문희석와 4인,「성서백과 대사전」.(서울;성서교재간행사,1981)pp.770-771.
18)레18:4,신4:1,8.
19)G.Kittel, op.cit.,1045.
20)Ibid.,p.1024.
21)M.E.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O.T & N.T, Edited by F.F.Bruce,(Rev
ell campany V.S.,1981), p.313.
22)A.Hodge, 「조직신ㄴ학」,고영민역,(서울;기독교문사,1981),p.67.
23)헨리 디이슨,「조직신학 강론」,권혁봉역,(서울;생명의말씀사,1975),pp.379-381
24)G.Kittel, op.cit., p.1069.
25)롬2:25,갈5:3,6:13.
26)G.kittel, op.cit., p.1070.
27)갈3:13-14,빌3:5-6.
28)G.kittel, op.cit., p.378.
29)Ibid.,p.397.
30)James Moffatt, Grace in the New Testament, (Hodder & Stoughton,london,19
31),p.21.
31)눅1:30,2:52,행2:47,7:10.
32)J.Moffatt, op.cit., p.22.
33)G.kittel, op.cit., p.398.
34)J.Moffatt, op.cit., p.25.
35)W.Barkley,「바울의 인간과사상」,서기산역,(서울;기독교문사,1974),pp.178-179
36)Herman Bavink,「칼빈과 일반은총론」, 손두환역. (서울;성암문화사,1961),p.55
37)G.Kittel,op.cit.,p.393.
38)문희석외 4인 ,op.cit., p.393.
39)J.Moffatt, op.cit., p.131.
1)W.Barkley, op.cit., p.22.
2)H.J.Schoeps,Paul,trans.by,Harold Knight,(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
-ss,1961), p.15 -종교 사학자들의 대표자들은 Vsenter, dietrich, Anrich, Bo
-usset, Cumont, Reitzentien등이다.
3)Dibelius,「바울」,전경연역,(서울;기독교서회,1965),pp.19-20.
4)행9:11,21:39,21:3.
5)J.G.Machen,The origine of Paul's Religion,(Michigan Grand Rapids,1925),p.
45.
6)H.J.Schoeps, op.cit., pp.17-18.
7)Dibelius, op.cit., pp.19-20.
8)H.J.Schoeps, op. cit., p.20.
9)R.Bultmann,Theology of the Testament,trans.by,Kendrick Grobel(New York,19
54),Vol.I,p.181.
10)R.Longenecker,The ministry & Message of Paul,(Michigan,Eodervon,1973),p.
26.
11)김철손외 4인공저,「신약성서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1973) p.165.
12)W.Barkley, op.cit., p.12.
13)고후11:22,롬11:1,4:1,9:10,3:1-2,고전9:20.
14)바클레이,op.cit., pp.12-14.
15)김철손외 4인 공저,op.cit., p.166.
16)W.Barkley,op.cit.,pp.34-35.
17)H.T.Schoeps, op.cit., p.99.
18)Ibid.
19)Ibid.,p.33.
20)김철손외 4인공저,op.cit., p.170.
21)갈4:21-26,고전9:10.
22)김철손외 4인공저,op.cit., p.166.
23)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일 것이
다.
24)H.J.Schoes,op.cit., pp.37-38.
25)김철손외 4인공저,op.cit., p.171.
26)갈6:14,고후5:17,롬7:6,8:1.
27)H.J.Shoeps, op.cit., p.41.
28)J.S.Stewart, op.cit., pp.134-135.
29)H.A.A.Kennedy, op.cit., p.55.
30)J.S.Stweart, A man in Christ, (Hodder & Stoughten Ltd,1964),p.82.
31)핸드릭슨,「로마서 주석」, 손종국역,(서울;아가페출판사,1983),p.14.
32)롬8:24,26-29.
33)John Murray, 「로마서 上」,권혁봉역,(서울;생명의말씀사,1979),pp.22-23.
34)핸드릭슨,op.cit., p.15.
35)핸드릭슨,op.cit., pp.36-37.
36)John, Murray,op.cit., p.28.
37)헨드릭슨, op.cit., p.42.
38)Ibid., p.44.
1)Young, Analytical Concodance to the Bible,(Lu Herworrth, 1979),p.591.
2)Martin Luther,Lectures on Romans, Vol.56,of the Weimar edition of Luther'
s Works, (Philadelphia,1961), pp.3-4.
3)핸드릭슨, op. cit., p.133.
4)John Murray, op.cit.,pp.114-116.
5)Ibid.,p.120.
Broadman, The Broadman Bible Commentary, Vol.10, pp.176-177.
7)척.스미스, 「恩惠에 의한 복음」, 정동섭역 (서울;복지문화사,1984),p.39.
8)롬7:6,고후3:6-7.
9)John Murray, op. cit., p.135.
10)척.스미스, op.cit., p.41.
11)V.P.퍼니쉬, 「바울의신학과 윤리」,김용옥역,(서울;대한 기독교출판사,1982),p
p.204-205.
12)척,스미스,op.cit., p.48.
13)John Murray, op.cit., p.166.
Ibid., p.157.
15)J.Calvin, 「신약주해 로마서」,(서울;성서교재간행사,1979), p.125.
16)핸드릭슨,op.cit., p.188.
17)John Murray, op.cit., p.180.
18)핸드릭슨, op.cit., p.191.
19)J.Calvin, op. cit., p.128.
20)John Murray, op.cit., p.189.
21)ibid., p.199.
22)John Calvin, op. cit., p.204.
22)핸드릭슨, op.cit., p.213.
24)롬4:13 이하.
25)V.P.퍼니쉬, op.cit., p.206.
26)Ibid., p.207.
27)핸드릭슨, op.cit., p.230.
28)F.F.Bruce,The epistle of Paule to the Romans,Tyndale Bible Commantary,19
63, p.129.
29)롬5:12이하,7:7이하.
30)V.P.퍼니쉬, op.cit., p.147.
31)J.Calvin, op.cit., p.171.
32)F.F.Bruce, op.cit., p.142.
33)V.P.퍼니쉬, op.cit., p.148.
34)핸드릭슨,op.cit., p.25
J.Murray,op.cit., p.279.
35)V.P.퍼니쉬, op.cit., p.209.
36)John Murray, op.cit., p.304.
37)Ibid., p.318.
38)엠.알.디한,op.cit., p.112.
39)John Murray, op.cit., p.322.
40)요3:16,롬8:32,사53:4,10 고후5:21.
41)핸드릭슨,op.cit., p.294.
42)롬6:6,골3:3.
43)디한, op.cit., p.118.
44)Ibid., p.57.
45)John Murray, op. cit., p.329.
46)John Calvin, op.cit., p.215.
47)John Murray, op.cit., p.330.
48)John Calvin, op. cit., p.214.
49)핸드릭슨, op.cit., p.301.
50)Ibid., p.302.
51)John Murray, op.cit., p.332.
52)Ibid., p.335.
53)Ibid., p.336.
54)J.Calvin, op.cit., p.220.
55)Bengel, Ridderbos, R.Bultmann, Robinson, C.H.Dodd,W.Sanday & A.C.Headlan
등 롬7:14-25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道德的으로 열심인 어떤 사
랑의 體驗에 대한 묘사라고 하였다.
56)L.Berkhof,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1949),p.540.
F.F.Bruce,The epistle of Paule to the Romann,(Tyndale Bible Commantary,
Grand Rapids,1963), pp.150-156.
J.Calvin,op.cit., p.221.
M,Luther,Lecture on Romans,p.203.
J.Murray, op.cit., p.339.
57)εγω는 다수의 사본에서 20절의 θελω뒤에 삽입되어 있다.
58)John Murray ,op.cit., p.348.
59)핸드릭슨, op. cit., p.325.
60)Ibid., p.335.
61)John Murray,「로마서 下」권혁봅譯,(서울;생명의 말씀사,1979),p.17.
62)Ibid., p.21.
63)Ibid., p.26.
64)Ibid., p.31.
65)G.Kittel, op.cit., p.1069.
66)G.E.Radd, op.cit., p.562.
67)Schoeps, op.cit., p.171.
68)G.E.Radd, op.cit., p.567.
69)John Murray, op.cit., p.180.
70)Ibid., p.181.
71)V.P.퍼니쉬,op.cit., p.168.
Ibid., p.169.
73)M.R.디한,op.cit., pp.18-19.
74)롬7:7,3:19.
75)L.Goppet,Jesus Paul & Judaism,p.147.
1)전경연외 4인,op.cit., p.216.
2)Young,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Luther worth,1879),p.831.
3)John Murray, op.cit., p.47.
4)Ibid.(고전15:10,갈1:15,딤전1:13,16,딤후1:9,딛3:5-7,cf.행26:12-18)
5)칼빈과 필립과 같은 이들은 이 경우의 은혜를 사도 직분의 은혜로 보아 보다 특수한 은혜로 여긴다. χαρισ라는 말이 아주 흔하게는 특수한 은사와 의미를 드러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롬12:6,고전3:10,고후1:158:6,갈2:9).
7)W.Barkley, op.cit., pp.181-184.
8)핸드릭슨, op.cit., p.73.
9)척 스미스,op.cit., p.16.
10)이상은,「로마서 주해」,(서울;총회교육부,1976),p.38.
11)J.Calvin, op.cit., p.119.
12)John Murray, op. cit., p.167.
13)Ibid.
13)렌스키,「로마서 주석」,김진홍역,(서울;백합출판사,1974),p.232.
14)이상근,op.cit., p.101.
15)John Murray, op.cit., p.189.
16)John Calvin, op.cit., p.133.
17)이상근,op.cit., p.111.
18)Ibid.
19)A.T.Robertson,op.cit., p.352.
20)이상근, op.cit., p.119.
21)Alford,op.cit., p.112.
22)John Murray, op.cit., p.221.
23)핸드릭슨,op.cit., p.232.
24)겔18:23,33:11 참조.
25)John Murray, op.cit., p.261.
26)「기독교 대백과」,op.cit., p.891.
27)John Murray, op.cit., p.262.(행15:11,고후8:9,딤전1:14참조)
28)핸드릭슨, op.cit., p.253.
29)렌스키,op.cit., p.355.
300)A.T.Robertson, op.cit., p.358.
31)J.Calvin, op.cit., p.182.
33)J.Caslvin, op. cit., p.184.
35)John Murray, op.cit., p.305.
36)롬4:3,약2:20-24.
37)John Murray, op.cit., p.278.
38)F.F.Bruce, op.cit., p.154.
39)바클레이,op.cit., p.186.
40)롬3:24,4:4,11:6.
41)롬5:20.
42)바클레이,op.cit., p.188.
43)Ibid.,189.
44)롬11:6.
45)전경연와 4인,op.cit., p.18.
46)바클레이,op.cit., p.192.
47)롬5:21.
48)이상근,op.cit., p.82.
49)V.P.퍼니쉬,op.cit., p.205.
50)롬1:16-17.
1)John Calvin, op.cit., p.147.
2)V.P.퍼니쉬,op.cit., p.171.
3)J.Calvin, op.cit., p.324.
4)워치만니,「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서울;생ㅁㅇ의말씀사,1983), p.175.
5)Ibid.,p.174. 새 계명은 사랑의 계명이다.(마22:35-39).
6)롬13:8, cf.갈5:13-14.
7)John Murray, op.cit., p.283.
8)V.P.퍼니쉬,op.cit., p.211.
9)바클레이,op.cit., p.196.
10)Samuel,J.Mikolask,The Grace of God,(Eerdmans,U.S.,1966),p.98.
11)웨치만니,op.cit., p.196.
12)ibid., p.209.
13)Ibid.
14)이상근,op.cit., p.288.
15)웨치만니,op.cit., p.233.
16)M.R.디한,op.cit., p.201.
17)M.R.디한, op.cit., p.116.
18)에드가 영 멀린스.op.cit., pp.461-462.
19)롬7:12.
20)서철원,op.cit., pp.1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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