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생명나무 주장은 예수님 자리 탈취한 사이비 해석
오명현 목사 ·전주함께하는교회 ·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시작하는 글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론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었다. 그는 1859년에 <종의 기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유럽사회는 진화론의 화마(火魔)에 휩싸였다. 진화론은 과학을 넘어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찰스 다윈은 속이 타고 있었다. 가정(加定)에 불과한 의문을 증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임종 직전에 “나는 미숙한 개념을 알고 있었던 젊은이였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와 구원이야말로 최고의 주제”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던진 의문의 진화론에 확신이 없이 죽었다.(나이젤 리 저, 이승구 역, 성경에서 본 인간) 내용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자들이 있으니, 성경에 나오는 허구의 나무에 매달려 자신을 죽지 않는 나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어떤 교주는 자신을 ‘두 감람나무’(계 11:4) 중의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혹자는 자신을 ‘생명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7절의 “생명나무”에 대한 사이비적인 주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바이다.
1. 신천지의 생명나무에 대한 주장
신천지의 이만희는 그의 저서들에서 생명나무와 과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로 이만희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은 우리 영혼에 영생하는 양식(창 3:22)이 되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이만희는 잠언 3장 18절을 인용하여 ‘생명나무의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가 된다고 말했다.(이만희저 요한계시록실상) 셋째로 신천지가 내놓은 다른 책에서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은 생명나무요(요 15:1)라고 해놓고, 오늘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 계시(계 10장)를 받은 이긴 자는 생명나무가 된다고 했다.(신천지총회교육부,계시와주석) 넷째로 신천지는 위의 세 주장과는 달리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나무는 계시록 7장의 하나님의 인을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예수그리스도의행적) 다섯째로 이만희는 자신의 저서(천지창조)에서 에덴동산의 두 나무(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실제 나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아담에게 속한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다섯째로 이만희는 생명나무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일곱 개의 성경구절을 인용했다.(창 2:9; 요 15:1; 마 13:31~32; 잠 3:18; 겔 47:12; 계 2:7, 22:2).
2. 신천지 주장에 대한 반론
첫째로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2장 7절의 “생명나무”를 이긴 자(이만희 자신)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그의 마술과 같은 비유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만희는 생명나무는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전제한 뒤 “하나님께서 베푸신 비유를 풀어야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 구절을 시편 78편 2절과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다고 하면서 근거 구절(사 5:7; 렘 5:14; 눅 8:11; 마 13:31~32)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비밀”과 “비유”라는 단어로 성경을 해석하는 접근 자체가 성경을 심히 왜곡하는 사이비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시편 78장 2절을 보면, “비유”라는 단어가 나오고, “감추어졌다”는 단어가 나온다. 그러나 신천지 이만희가 주장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감추어진 비밀이 아닌 아삽에게 이미 알려진 것이라고 시편 78편 3절에서 밝히고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삽 시대(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찬양봉사자) 이전의 조상들에게 주신 법도(율법)를 후손들에게 알리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인도하실 때에 보이셨던 능력과 기이함을 전하라고 해서 아삽이 그 시대의 후손들에게 전한 것이다. 따라서 시편 78편 2절의 “비유”와 “감추어진 것”을 성경 전부에 대입하는 것은 이만희의 자유이지만, 거기에 모종의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만희는 에덴동산의 “두 나무가 실제 나무였다면 노아 때 홍수로 없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자신의 주장이 모순됨을 반증하고 있다. 만약 두 나무와 에덴동산의 각종 실과가 실제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노아의 식구(8명)외에 모든 사람들이 홍수 심판으로 없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분명하게 홍수 심판 이후의 남은 사람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뿐이었다. 두 나무는 실제 식물로서 인간(하나님을 닮은 존재)과는 구별된 것이다. 서철원 박사는 이 두 나무에 대해서 “선악과로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세우셨다”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를 선악과에 매셨다”라고 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에덴동산의 ‘두 나무’를 비유로 푸는 이만희의 주장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셋째로 이만희는 성경을 비유로 풀어야 창세부터 감추어진 비밀을 밝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잠언 3장 18절을 인용하여 ‘생명나무의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가 된다’고 했다. 이어서 요한복음 15장 1절을 인용하여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은 생명나무요, 오늘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 계시(계 10장)를 받은 이긴 자는 생명나무가 된다고 했다. 계시록 2장 7절을 해석하면서 에덴동산의 두 나무를 이용하고, 잠언 3장 18절을 이용하고, 요한복음 15장 1절을 이용해서 결론은 자신을 “생명나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성경을 해석한다 해도 결론이 예수님 자리를 탈취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한다면 이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이비 이단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 생명나무에 대한 개혁주의 해석
첫째로 본문(계 2:7)의 생명나무는 언약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만희는 “하나님께서 종종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다”고 전제하면서 성경 두 구절(렘 5:14; 사 5:7)을 인용했다. 예레미야 5장 14절의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는 말씀에서의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로 말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사야 5장 7절의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는 말씀에서의 포도원과 나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을 계시록 2장 7절과 대입시켜 생명나무를 사람으로 비유한 것은 억지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 계시록 2장 7절의 후반부를 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다. 즉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대상이 ‘이기는 자’이다. 신천지는 이만희를 ‘이긴 자’, ‘생명나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먹는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몫이다.
둘째로 본문(계 2:7)의 “이기는 자”는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속한 신자들과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 속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헨드릭슨은 “이기는 자는 죄 마귀, 그리고 모든 권세 가진 대적자들과 싸우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끝까지 인내하는 자이다”라고 했다. 변종길 교수는 “‘이기는 자’(ὁ νικῶν)는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라고 했다. 그러기에 ‘이기는 자’는 어느 특정한 교주가 아니라 일곱 교회마다 황제숭배를 거절하고, 우상을 거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그 믿음을 지키는 자들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절대 가치(진리)를 상대화 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싸우고 있고, 다원주의적인 구원관과 씨름하고 있다. 또한 문화의 옷을 걸치고 교회 속에 파고드는 세속적인 복음에 오염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더 나아가 교회와 노회와 교단을 장악하려고 괴물의 역할을 하는 맘몬이즘과 치열한 영적 전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으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본문(계 2:7)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한다”는 말은 죄 용서를 받은 자가 누리는 영생을 말하되, 새 하늘과 새 땅(낙원)에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린다는 것이다. 권성수 목사는 “창세기 3장 22절과 계시록 22장 2절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으로서 승리하는 자가 영생을 풍성하게 누릴 것이라는 말씀이다”라고 했다. 이필찬 교수는 “생명나무”의 “나무(크쉴루,ξύλου)는 십자가의 재료인 나무와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것은 생명나무가 제공해주고자 했던 영원한 생명이 십자가에 의해서 종말적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이기는 자는 계시록 22장 2절의 약속처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 것”처럼 완성된 낙원에서는 더 이상 갈증을 느끼지 않는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오직 예수님’만을 구주로 믿는 신자들에게 최후 승리를 보장하는 그리스도의 위로를 담고 있다.
맺는 글
이만희는 “영생을 주는 양식인 생명나무 과일을 먹으려면 신천지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그러나 그의 주장은 계시록의 본 뜻을 왜곡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성경 해석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할지라도 결론이 중요하다. 그 결론이 자신을 예수님과 동등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는 거짓 사이비인 것이다. 이만희는 예수님도 생명나무이고, 자신도 생명나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성경을 삼시대로 나누어서 구약시대는 여호와, 신약시대는 예수, 재림 때는 자신을 이긴 자로 활동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긴 자는 죽음을 이겨야 한다. 그는 육체영생을 주장하나 과거 영생한다고 했던 문○○, 박○○, 조○○, 안○○ 등과 같이 육체의 죽음(히 9:27)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긴 자’, ‘생명나무’에 대한 비유풀이의 함정에 빠지면, 육체 영생은커녕 오히려 버거운 짐만 몽땅 지게 될 것이다. 바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영생을 얻고 부활의 소망으로 영생할 것을 믿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음을 굳게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인 것이다.(행 4:12)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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