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시키지 마십시요- 나드향님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제자입니까? 라는 책을 쓴
후안 카룰로스 목사님이 그 책에서 이런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하루는 성도를 심방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문을 안열어 줍니다.
분명히 속에서 사람소리가 나는데
아무리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문이 열려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부엌에서 일하고 있고 남편은 쇼파에서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까지 부지런히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가서 이야기를 걸어봅니다.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아는 채를 안합니다.
본체하지 않습니다.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시도하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하면서
목사님 그동안 안녕하시냐고 잘 계셨느냐고 인사를 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이겠지요.
우리가 주님의 성령님을 이렇게 대할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원하시고
하나님의 길을 보이시기를 원하시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보기를 원하면서
그분의 마음을 거스리고 앞서서 행하면서
그분과 지속적으로 교제 하려고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요.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것은
성령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단순한 감동이나 능력으로만 여기는것도
성령님을 근심케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인격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님을 대할 때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 안에 늘계신데 늘 그분과
모든 삶을 의논하며 살아야합니다..
늘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것은
성령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수시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로렌스님이 쓴 하나님의 임재 연습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늘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고
늘 기도로 이야기하며 살때 성령님은
영의 세계를 보이시고 여십니다.
갈2:20절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안에 사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수시로 의식할 뿐아니라
우리가 수시로 그분을 바라며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갈때
성령님은 섬세하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기뻐하심이 무엇인가를
묻는 자세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주님도 스스로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신것들만 하신다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야고보서 4:4-5절입니다.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세상사랑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여기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라는 말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사랑이 영적인 간음이라는것입니다.
세상사랑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지요.
그래서 세상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거나
하나님과 친밀함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렘2:27, 7:24, 18:17절에 보면
안믿는 사람들은 어차피 우상숭배의 삶을 삽니다.
어차피 세상의 것들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형적인 우상숭배는 혼합주의적인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보면 그들은 모든 종류의 예배를 빼놓지 않고 드렸습니다.
살진 짐승들을 무수히 드리고
엄청난 기도와 엄청난 금식을 했지만
그들안에는 세상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고돔의 백성이요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사랑은 영적인 간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사랑을 가지고는 하나님과 친밀함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사랑이 버려지지 않는 한 아무리 우리가 기도와 금식을 많이 해도
헌신을 해도 우리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로 이끌수 없습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한다.는 말을 5절에서 말씀하는데요.
하나님은 질투를 가지고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에 대해 사모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세상사랑이 하나님을 성령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우리 마음이 육신적인 생각만 하고 산다면
성령님은 근심하십니다.
갈 5장 25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행할지니라는 말은 영어성경으로 보면,
성령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함께 걸으려면 육체의 일을 죽이는 것만큼
걸을 수 있고 함께 걷는 만큼 육체의 일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일은 성령을 근심케 합니다.
여러분 여가생활도 필요하고 운동도 필요하고
건전한 취미생활도 필요하고 식구들과 함께
야외에 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육체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불을 꺼뜨립니다.
육체의 일은 성령을 근심케 하기 때문에
또한 영적인 분별력을 어둡게 합니다.
이처럼 세상사랑은 영적인 간음으로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방해하고 세상사랑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고 성령을 소멸하고 근심시키게 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우리 자아가 즐기던
세상일들을 버려야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식하게 되면
즐기던 세상 일들 내려놓은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5장 24절도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면서
갈 5장 24절에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6장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고 여기는것입니다.
죄와 욕심이 유혹할때마다 나는 죄를 지을수 없다
나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나도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죄는 죽은 사람이다 라고
살아 있는 자아를 죽음에 넘기우십시요.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습니다.
우리 힘으로 육체의 소욕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결심을 아무리 해도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합니다
할수록 어쩌면 여러분들은 더 자주 넘어질 것입니다.
엡4장 30절에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앞뒤에 여러 죄들을 언급합니다.
거기 언급된 죄들 뿐아니라 모든 죄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적질 거짓말 음란 술취함 방탕 이런 모든 것들이 도덕적인 죄들입니다.
당연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요일1:9절에 우리가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죄들은 도덕적인 죄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지들 못지않게 심각한 죄이며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푸밎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것도 심각한 죄입니다.
어떤 도덕적인 죄들 못지않게
성령님을 근심케 하며 하나님과 친밀함을 방해합니다.
용서못함 미워하는 마음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불평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 후욕하는 것 상대방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품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런 죄를 품고서는 절대로 깊이 기름부으심을 받을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관계의 죄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상대방이 아무리 우리에게 잘못을 해도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치르신 그 값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할 부분을
신실하게 상대방에 대하고 좋은 마음으로 대해야합니다.
하나님앞에 설 때 내 권리 내 주장 내 입장 내 주도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아주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의중을 드러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하
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지 않습니다.
엡4장 30절에서 너희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영어성경은 너희는 감히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속의 날까지 그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과 육체를 절대로 이길 수 없기에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가운데 그분의 인도에 민감하여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할일은 나무에 꼭 붙어 있는것입니다.
성령께 민감하여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행복하고 잘살기를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삶속에서 성령님을 근심 키킨다면
언제까지나 참아 내시고 있지만 않는다는것을
저는 사람속에서 경험을 헸습니다.
우리 마음을 다루십니다.
자아를 갈아 내어 부드럽게 하기도 하고
잘못된 사랑들은 가위로 짜르듯이 잘라내기도 하고
뜯어 내기도하는것을 영적인 비밀을 보는 가운데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제일 두러워해야 하는것은 성령을 근심시키는것입니다..
제가 저에게 쓰는 글입니다.....
[출처] 성령을 근심시키지 마십시요- 나드향님(다음카페 은혜샘)|작성자 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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