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천국 상급
-신자는 모두 구원 받지만 천국 상급에는 차등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 가히 요한계시록 시대라고 할만큼 종말론과 요한계시록에 대한 세미나도 많고 말세를 주제로 한 인터넷 자료나 유튜브 비디오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현상, 휴거나 재림 날짜에 대해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구원 받은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처럼 신자는 하시라도 임할 수 있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 휴거 되기만 하면 만사가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신자는 예수님의 재림 이전이라도 죽으면 천국(낙원)에 가서 주님과 함께 지내다가 재림하실 때 몸이 부활되어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면서 산다. 그러나 그 이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바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주님을 위해 살았는가를 가름하는 천국 상급 심판 과정이다.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전 5:10).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0-15).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내신 성적이 입학 당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본인의 믿음에 의한 것이지만 천국 상급을 얼마나 받느냐는 것은 본인이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주님을 위해 살았느냐에 좌우된다.
이 땅에 사는 동안의 신앙 생활의 진실성 여부는 불 시험으로 판가름 나는데, 금과 은 같은 보석 재료로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이 있고 나무·풀·짚 같은 재료로 집을 지은 사람은 불에 타서 없어지기 때문에 상은 없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신비다.
태어나는 것이 신비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랫동안 가난과 핍박 가운데 살아 온 한국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생존경쟁이 심하고 아직도 갑과 을의 차이가 심한 한국에서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 자식만은 갑의 위치에서 살기를 원한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신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신자들이 세상의 성공과 출세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다. 실제로 예수를 믿고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이 타 종교나 비 종교인 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는 티켓은 따놓은 당상이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신자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신자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눈에 보이는 사역이나 목회를 크게 하고 구제·봉사·선교를 많이 하면 신앙 생활을 제대로 잘 하는 것일까? 신자의 현재 생활이 천국의 상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 한 모든 것은 불 시험을 거쳐서 진위 여부를 점검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한국의 간판 대형교회였던 C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시차를 두고 역임했던 두 명의 박사·목사의 명암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L목사는 C교회를 그만두게 되자 따르는 수천 명의 교인을 이끌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며 수년 동안 목회를 잘 하면서 각종 단체의 대표직을 역임하다가 명예롭게 은퇴했다. 그런데 얼마 전 목회하던 동안 미국의 유명한 박사·목사의 저서를 수십 년 동안 표절 수준이 아닌 복사 수준으로 베껴서 설교하고 심지어는 출판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서 교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편, 또 다른 한 명인 S목사는 C교회를 그만둔 후 문제가 많은 교회들에만 청빙되어 가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나중에 천국과 지옥을 보면서, 자신이 C교회 당회장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원로목사의 비위나 맞추면서 행세한 것이 자기로서는 성공하고 출세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지옥에 갈 가능성으로 보였다’고 고백한다.
이 모습을 본 목사는 C교회에서 쫓겨난 것에 대해 억울해하고 불평도 했지만 실제로는 지옥에 갈 가능성에서 건져냄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오히려 문제가 많은 교회들을 담임하면서 당한 고난,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천국에 대한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한 공로 덕분에 하나님 보좌에서 세번째로 가까운 곳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오지의 선교사로 갔다가 지금은 돌아와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아직 두 사람 모두 생존해 있기 때문에 길고 짧은 것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신자가 생각하는 성공과 출세와 천국과 지옥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노예선 선장 출신이었다가 회심하여 목사가 된 존 뉴톤은 유명한 찬송가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가인데 그는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했다.
“이 다음에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첫째 천국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다.
둘째, 그곳이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천국에 와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얼마 전 죽은 한국의 유명한 몇 명의 목사들에 대한 평가도 분분하다.
셋 모두 지옥에 갔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에는 갔지만 상급은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은 한국 교회의 성자라고 불릴 정도로 겸손하고 검소하여 좋은 옷을 가난한 자에게 줄 정도로 사랑이 많았다. 그러나 불의에 대해 담대하지 못했다(막 6:14-28 참조).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한 것은 나중에 회개를 했으니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新)군부가 불법으로 정권을 탈환했을 때 순교를 각오하고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하고 그들을 용납한 죄, 말년에 치매로 인해 예수조차 부인한 사실로 인해 과연 천국에 갔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 한 사람은 생전에 섬기는 교회를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지만 검소하고 정직하여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지만, 성령의 은사사역을 정면으로 두 번이나 크게 대적하여(살전 5:19 참조) 과연 그가 천국에 갔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임종 직전에 하나님이 몸을 치셨을 때 혹시라도 회개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보지만 어떻든 천국 상급은 생각 보다 크지 않다고 한다.
마지막 한 사람도 평생 연약한 육신을 이끌고 사랑과 수고로 대형 교회를 키우고 각종 선교도 열심히 했지만, 말년에 탐욕이 들어서서 각 지역에 지점 교회를 세우면서 주변의 지역 교회들을 초토화시켜 주변의 목회자들에게는 원성이 높다. 그 많은 사랑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탐욕(골 3:5 참조)을 버리지 못한 그가 천국에는 갔겠지만 상급은 별로 없다고 한다.
신성종 박사·목사(이하 ‘신성종’)의『신성종의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을 보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는 ‘한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이고 다른 한 가지는 ‘천국에 차등 상급이 있는가?’이다. 신성종은 이 둘을 기정 사실로 여기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주제는 아직도 교계에서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이다.
구원의 보장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하는 신자라면 누구나 자신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종의 저서에 의하면, 세상에서 유명했던 목사나 총회장 급 중에서도 지옥에 간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한, 자신도 큰 교회 담임 목사를 할 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가, 아니면 잃어버릴 수 있는가?
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장로교 계통의 입장이고 후자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감리교 계통의 입장이다. 두 교파는 수백 년 동안 이 주제로 논쟁을 벌여왔지만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지금도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가 강한 한국에서는 공개적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 이단이나 사이비 시비에 걸릴 정도로 장로교 구원관이 우세하다.
그러나 모든 장로교인이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위에 예로 든 신성종은 물론 장로교 박사나 목사 중에서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아담의 타락을 허용하셨듯이, 하나님은 구원의 상실을 허용하시며, ‘히브리서의 경고가 실제가 아니라면 허풍에 불과하다’면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장로교의 구원관이 더 무섭다.
장로교의 구원관에 의하면 ‘진정으로 회심하여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 인격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거짓 회심을 한 사람, 즉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신성종은, 성직-장로직 권사직 안수집사직-을 매매한 목사들은 물론 대형 교회 담임 목사나 총회장 급 중에서도 지옥에 온 사람이 많다고 한다. 총회장 목사들은 교회의 재정으로 총회장이 되기 위해 부정 투표를 하도록 뇌물로 사용했고, 자기 교인들의 영혼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영광과 유익만을 챙겼기 때문이라고 한다(신성종, 같은 책, p. 40).
또 지옥에 온 대형 교회 담임 목사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고, 많은 사례금으로 가족만 호화롭게 살았고, 제자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자기 제자로 삼았고, 천국 일꾼을 키워 사회 정화와 사회에 유익한 일꾼이 아니라 기복신앙만 길러 이기적 신자로 만든 잘못 때문이라고 한다(신성종, 같은 책, p. 41-42).
이들은 교인들을 축복한다는 빌미로 많은 재물을 착취했고, 필요 이상으로 호화롭게 살았고, 주변의 가난한 자와 고난 당하는 자들을 외면했고, 교회들에게 진정한 비전을 주지 않고 번영만을 설교했고, 그들의 행함의 근본 이유가 자신들의 탐욕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다가 죄로 인해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인가?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는 장로교인들은 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많은 장로교인들 중에는 ‘자기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서 죄 의식도 없이 담대하게(?) 죄를 짓고 회개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각자가 어떤 구원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경의 주요 구절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천국 상급에 대한 견해도 달라진다. 필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조심스럽지만 차등적 천국 상급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한다.
천국과 천국 상급
*차등적 천국 상급이 존재하는가?
신성종은 차등적 천국 상급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책 내용을 전개해 간다. 개신교의 세대주의는 물론 개혁주의도 차등적 상급을 주장하는 사람이 다수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1) 차등 상급 지지자:
종교개혁의 시조인 칼뱅은 물론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메튜 헨리, 게할더스 보스, G.C. 벌카우워, 하인리히 헤페, 윌리암 핸드릭슨, 안토니 후크마, 웨인 그루뎀, 밀라드 에릭슨, 박형룡, 박윤선, 권성수 등이 차등 상급론을 지지한다.
2) 차등 상급 반대자:
조지 G. 래드, S. K. 키스메이커, F.H. 보쉬, 크레이그 블롬버거, 정훈택, 정용섭 등은 차등 상급론을 반대한다.
차등 상급 지자자들은, 상급 자체도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신자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선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며,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7-10).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3:2).
그러므로 하나님은 일에 대한 삯의 개념으로 상급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장려하고, 노력의 성실성을 보상하고, 신자의 고난과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상급을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2:6).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요약하면, 상급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선행을 장려하고 노력을 치하하기 위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상급이 사람의 공로에 의한 것이라면 상급을 제대로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예수를 믿은 후 주님을 위해 살기 위해 온갖 핍박, 구타, 굶주림, 투옥 등을 당한 사도 바울과 평생 제 멋대로 살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한 마디의 신앙 고백으로 낙원에 간 강도와 차이가 없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불공평하지 않을까?
천국 상급이 없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공하고 출세한 후에 적당하게 봉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면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과 오지나 변두리에서 평생 가난과 핍박 속에서 주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한 사람이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말인데, 이것이야 말로 더 불공평하지 않은가?
*논란이 되는 대표적 성경 구절들
-누가복음 17장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차등 상급 반대자(이하 ‘반대자’)는 이 구절을 근거로 반대한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상급 자체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구절이지 다른 수많은 구절들에 의할 때 상급 자체를 부인하는 구절은 아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마 20:1-16).
반대자들은 포도원 품꾼 모두가 일찍 와서 일했든 늦게 와서 일했든 한 데나리온씩 동일한 삯을 얻은 것을 예로 들면서 차등 상급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일찍 예수를 믿었든 늦게 믿었든 모두 동일하게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신분’에 관한 비유이지 ‘차등 상급’에 관한 비유가 아니다.
-면류관이 상급인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 2:19).“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계 3:11 참조).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계 2:10).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신자들이 상급으로 받을 면류관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이다. 이는 경기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화관(wreath)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전에 쓰신 가시 면류관이나 금 면류관과는 다르다.
반대자들은 면류관은 신자 모두가 받는 영생(구원)이라고 주장하지만 각 면류관 마다 받는 조건이 붙어있다. 즉 절제(썩지 않는 면류관), 전도와 양육(자랑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믿음 지킴과 재림 사모(의의 면류관), 인내(생명의 면류관), 양 무리의 본(영광의 면류관)이 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킨 신자는 면류관을 상으로 받고 그렇지 못한 신자는 받지 못할 것이다.
▲ 성도가 받는 5가지 면류관 |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은 면류관 상급도 일[doing] 보다는 인성[being]이 더 중요한 요건이라는 사실이다.
-계시록의 상급들?(계 2:1-3:22)
계시록의 7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상급 약속이 구원인가 차등 상급인가?
반대자들은 영생(구원)이라고 주장하지만 “(회개하여) 이기는 자~”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회개하여 이기는 자’는 약속한 상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구원이 아니라 차등 상급을 말한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큰 상급’?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물론 신자에게는 하나님 자신 더 나아가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상급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어떤 은사보다도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고(마 10:20, 성경도 ‘믿음의 마지막 보상은 영생’이라고 했고(롬 6:22),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노라”(딤전 1:16), 여러 가지 덕목을 쌓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간다고 기록한다(벧후 1:11).
그러나 이러한 구절이 차등 상급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지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할 필요도 있다.
반대자는 하나님 자신이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방패이시며 여기서 ‘상급’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차등 상급의 주장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큰 상급”은 분명히 ‘그냥 상급’과는 다른 차등 상급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도 예수로 인해 우리가 핍박을 때 기뻐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다(마 5:11-12). 즉 핍박이나 어려움이 올 때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뻐하는 자에게 큰 상을 주신다는 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신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등 상급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적 근거
신자가 예수를 믿고 천국 가는 것 외에 부수적인 차등 상급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들은 천국 상급 추구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차등 상급론을 부인한다.
천국 상급을 강조하면 교인들끼리 경쟁을 부추기고 심지어는 목회자를 향한 충성심을 자극하는 폐단이 생긴다고 한다. 천국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신부’(천국)에게 ‘영화 관람권’(상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신비를 아는 사람은 결코 그런 상급 따위에 마음이 가지 안는 법이다. 신랑이 오는 그 순간에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기쁨에 차 있을 뿐이다”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칸트는 ‘덕은 덕 자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이를 결과에 대한 상급과 관련시키면 비열한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칸트에 의하면 상급을 강조한 성경의 가르침조차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많은 개신교 학자들이 칸트의 영향을 받아 상급 교리를 다루기를 꺼려했다. 물론 덕 자체가 보상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덕에 따른 상급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두 사람이 사랑하여 결혼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가?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건강과 물질 등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더군다나 천국 상급은 세상처럼 한정된 파이(pie)를 더 많이 가지거나 높은 등수를 얻기 위해 각축하는 경쟁이 아니다. 세상 상급은 얻는 사람이 있으면 못 얻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승자는 우쭐대고 패자는 주눅든다.
그러나 천국 상급에 합당한 선행과 인성을 쌓은 자는 숫자에 제한 없이 누구나 상급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상급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의해 주어지는 것이고 사람에게 보이면 이미 세상에서 상급을 받았으므로 천국 상급은 없다. 물론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세상처럼 승자와 패자가 없고,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반대자는 세상 논리로 경쟁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한다.
둘째, 또 어떤 사람은, 한국 교회가 말하는 상급론은 사행성이나 기복신앙을 부추긴다고 한다.
“하나를 심어 하나를 가꾸는 성실한 삶이 아니라 하나를 심어 열을 거두려 하고 인생의 대박을 터뜨리려고 하는 허황된 삶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면서 “’상’ 개념 자체가 그런 불씨를 품고 있다. 즉 심은 것 이상의 과다한 열매를 주는 것, 받는 것, 기대하는 것, 그리고 기대하게 하는 것이 ‘상’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나 당연한 귀결이 아니라, 그러한 결과나 귀결에 붙어 오는 것, 더 주는 것이 ‘상’이다”면서 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오남용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급론을 부인한다는 주장밖에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 오남용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목사, 장로와 같은 교회의 직분 교단이나 노회 같은 교회의 조직, 기적행하는 은사 등이 오남용의 가능성이 농후한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러 것들을 부인해야 하는가?
또한, 천국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자기 영광이나 세상 영광을 위해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이미 지상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상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이하 참조).
셋째, 공로 사상 때문에 천국 상급을 부인한다.
자기의 공로로 상급을 얻는다는 공로 사상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천주교가 구원에 있어 사람의 공로를 주장한다. 그러나 천국 상급에 대한 성경 구절을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주장은 인간적인 논리에 의한 헛된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자기 영광이나 세상 영광을 위한 행위는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 상급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셨고(마 6:2, 5, 16), 불로 시험하여 타서 없어지는 나무나 짚은 상급이 될 수 없다고 성경은 기록한다(고전 3:12, 15).
*천국 상급 차등제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의 이유
천국 상급에 대한 오해나 무관심은 다른 통로를 통해서도 온다.
첫째, 지나친 ‘현세 기복주의’ 때문이다.
이미 임한 현림 천국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번영 복음 (prosperity gospel)의 영향이 천국 상급에 대해 소홀하게 만든다. 번영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신자는 믿음으로 건강과 재물은 물론 필요한 모든 것을 청구하여 받아서 현세에서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천국 상급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구분하지 못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건강하고 부자가 되고 형통하고 장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을 다 고친 것은 아니다. 또한 능력 전도와 능력 치유를 강조한 존 윔버의 집회에서도 병이 나은 사람은 30% 수준도 되지 않는다.
물론 육신을 가진 인간이 이 땅에서 살고 하나님 나라 일을 하기 위해서도 건강과 재물이 필요하다. 또한 필요하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도 하게 하신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직 완전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신자에게 지상적 축복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적이고 주권적인 섭리에 해당된다(히 11장 참조. 특히 35-40 참조).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하나님 나라 일을 제대로 한 경우, 지상 축복과 천국 축복을 동시에 누리기도 하지만(마 19:29; 막 10:29-30), 지상 축복만 누리는 경우(마 10:41), 천국 상급만 받는 경우도 있지만(마 5:12; 6:1, 3-4, 5-6, 16,18;14:30 등), 이 둘의 구분이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둘째, 일반적으로 천국 상급은 믿음의 ‘행위’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전도를 많이 하고, 봉사를 충성스럽게 잘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성가대나 찬양대에서 섬기는 것 등의 행위에 의한 천국 상급을 주로 강조해 왔다. 신성종의 저서도, 물론 동기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하지만, 일의 종류에 따라 차등 상급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행위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마 6:1 이하). 아무리 선행을 하더라도 자기 영광, 세상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님이나 천국 상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또한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심지어 순교를 하더라도 사랑에 의해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전 13:3).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고 큰 사역을 해도 불법을 행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면 상급이 없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더라도 불법을 행하고 자기 영광이나 세상 영광을 위해 불순한 동기로 했다면 불에 타서 없어지는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사역이 되어 상급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국 상급의 실체
천국에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고 모든 것이 풍족한 데 차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다. 신학자들은 ‘천국 상급이 있다, 없다’에만 관심을 갖지 차등 상급이 주는 구체적 혜택이나 유익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도 상을 받으면 상장과 함께 상금과 같은 구체적 부상(副賞)이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천국 상급은 상만 있고 부상은 없는가?
필자도 천국 상급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천국 상급의 서열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얼마나 지근거리(가까운 거리)에 있느냐로 갈라지며, 상급에 따라 누리는 기쁨과 영광의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신성종의 저서에 의하면 천국 상급의 차등은 이렇다.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운 줄에 있을수록 상급이 큰 사람들이다.
1. 순교자들
2. 전도자들- 전도와 선교
3.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
4. 무명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
5. 가난한 자 도와주고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한 사람들
6.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
7. 교회 건축자들 선교관 봉사관 기도원 등
8. 신학교 교수와 선교사들
9. 농어촌 목회자들
10. 직분에 충성한 장로와 집사들
-중보기도자들
1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들
얼른 보면 이런 일에 헌신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상급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을 하되,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고, 다른 불법이나 죄악으로 인해 상급을 까먹지 않은 경우에 이런 상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언제 천국 상급을 까먹는가?
요즈음 세상적으로 존경 받던 사람들이 한 순간의 성추행, 뇌물 수수 등으로 인해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평생 쌓은 일[doing]이 인성[being]의 부족으로 인해 한 순간에 추락하는 것이다. 얼마나 밑지는 인생(?)인가?
국회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전문성[doing]과 도덕성[being]을 검증한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나더라도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집이 있으면 여론 재판을 통해 자진 사퇴하거나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천국 상급도 비슷하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 일을 크게 많이 하면 상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첫째, 사람 보는 데서 선행을 하면 천국 상급이 없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사람 보는 데서 하면 이미 사람 영광, 세상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 상급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좀 잘되면 주변 사람이나 매스컴이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그리고 잘 되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 광고를 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사람 영광을 많이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역이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둘째, 아무리 큰 학문을 쌓고 능력을 나타내도 불법을 행하면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신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이 구절은 해석이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학문과 지식이 있어서 설교와 가르침을 잘 하는 선지자 노릇을 하고, 큰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기적을 행했더라도 불법을 행한 그 사람을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그들이 행한 설교나 가르침, 기적이 가짜라고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바르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기적을 행했더라도 그 사람 자체가 불법을 행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 내게서 떠나라’고 하신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
여기서 ‘안다’(헬. 기노스코)는 말은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된 단어이다. 즉 아무리 학식이 많고 기적을 행하였더라도 열매 맺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애초부터 하나님이 모르는 사람 즉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 자기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마 25:12의 열 처녀 비유 참조).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 13:18).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전통적 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면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지만 신앙 인격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고 사는 동안 완벽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의 심판 때에, 신앙 인격의 열매를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하나님에게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길고 짧은 것은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사전에 징조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성경은 분명히 불의한 자, 육체의 일 곧 죄로 물든 겉사람이 행하는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미래형)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현재형)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미래형)”(갈 5:18-21).
물론 신자라도 용서 받는 죄인이기 때문에 연약하여 어쩌다 한두 번 이런 죄들을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하는 자들’의 의미는 ‘상습적으로 그런 죄를 짓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런 죄들을 지어도 회개하기는커녕 고집을 피우면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하면서 계속 죄를 짓는 사람을 말한다.
얼마만큼 자주 죄를 지어야 상습적으로 짓는 것일까?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죄를 지어놓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탐욕, 거짓 및 음란의 죄를 짓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성경을 기록한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는? 두 본문의 의미는 신자들은 이런 죄들을 상습적으로 짓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만일 신자라고 고백한 사람들이 이런 죄들을 상습적으로 짓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은 애초부터 거짓 회심을 한 사람,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천국 상급을 제대로 받으려면 불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0-15).
이 구절은 특별히 사역자에게 해당되는 구절이다.
교회라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섬기되, 고린도 교인들처럼 세상 지식이나 지혜로 세우는가, 순수한 복음의 기초 위에 세우는가에 따라 불 시험을 통해 상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전임 사역자에게 해당되지만 성도들 또한 함께 지어가는 사람들이므로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구절이다.
-어떤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가?
요한계시록의 7교회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 자료 : 요한계시록. 『그랜드주석』 |
7교회는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서 지역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들이다.
혹자는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이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 교회라고 하지만 이는 세대주의자들이 시간 순서로 계시록을 해석하여 잘못 내린 결론이다. 7교회는 실제로 당시 소아시아에 존재했던 교회들이자 교회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7교회는 3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죽은 정통의 교회
교리와 전통은 바르다고 고백하지만 합당한 행위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들이다. 오늘날 전통 바르다고 자부하는 많은 교회들이 이 부류에 해당된다. 에베소 교회, 사데 교회 및 라오디게아 교회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단성 있는 교회
신앙의 인내, 사랑, 헌신과 봉사는 있지만 이단성이 있는 교회들이다.
오늘날 일부 교리적으로 빗나간 교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버가모 교회와 두아리아 교회가 여기에 해당된다.
-칭찬만 받은 교회, 책망만 받은 교회
연약하지만 충성스런 빌라델비아 교회, 가난하나 부요한 교회인 서머나 교회가 여기에 해당된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에게 칭찬만 받은 교회는 대형 교회가 아니라 소형 교회이다. 라오디게아 같은 대형 교회는 칭찬이 하나도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이다. 대형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다.
필자가 대형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둥은 진리와 사랑인데 진리와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면서 대형 교회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대형 교회가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계가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있는 이상으로 교계가 성장 포퓰리즘에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대부분의 대형 교회는 정치계 보다 더 심한 포퓰리즘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계는 그래도 학자나 언론들이 그리스나 아일랜드 같은 PIGS국가의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실제로 목격했기 때문에 좀 자제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대형 교회는 끄덕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역자가 스타가 되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대형 교회 목사일 때 지옥갈 수도 있었다는 신성종 목사의 경고가 영웅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라는 사실을 대형 교회 사역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7교회의 장단점이 곧 그런 교회에 속한 개인의 장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나 신자는 장점은 계속 유지하고 단점을 회개해야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7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는 경고의 강도로 보아 상급이 아니라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급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이기다”는 말은 헬라어 니카오로서 죄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눅 11:22; 요 16:33; 롬 12:21; 요일 2:13, 14; 4:4; 5:4, 5; 계 12:11 등).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상급이 없다.
-달란트 비유(마 25:14-30).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에게 달란트를 받았다.
천국 상급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달란트를 얼마나 잘 활용했는가에 달려있다. 달란트는 당시의 화폐 단위로 금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일당인 것을 감안하면 1 달란트는 20년의 봉급에 해당되는 많은 금액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달란트가 ‘재능’이나 ‘은사’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 비유에 의하면, 10달란트 받은 사람이 10달란트를 남겼고, 5 달란트 받은 사람은 5 달란트를 남겨서 예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23절) 이라고 칭찬하셨다.
그러나 1 달란트 받는 사람은 게으름 피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절)고 책망하시면서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9, 30절)고 하셨다.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8:12; 22:13; 24:51; 25:30; 눅 13:28)는 무슨 뜻일까? 이것은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인데 바깥 어두운 곳은 환하게 빛나는 천국(계 21:23-25)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심판의 장소를 의미한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표현은 자책과 후회, 두려움과 분노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지옥에 떨어진 불신자의 처절한 심정을 잘 묘사한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게으름 피우다가 예수님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 사람은 상급을 못 받는 정도가 아니라 천국 밖의 어두운 지옥으로 던져졌다. 이런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 받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10 달란트 받은 사람이 7을 남기고 5 달란트 받은 사람이 5을 더 남기면 누가 더 큰 상급을 받을까? 사람 보기에는 전자가 훨씬 더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시다.
언젠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집사님 한 분과 이제 갓 집사가 된 한 분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다. 전자는 각종 예배 참석은 물론 십일조도 잘 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후자는 이제 겨우 신앙에 재미를 붙이고 주일 성수는 제대로 하지만 십일조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하나님이 전자를 더 사랑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기도하니 하나님은 후자를 더 사랑하셨다.
전자는 더 잘 할 수 있는데도 남은 달란트를 자기 영광과 세상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지만 후자는 작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눅 12:48 참조). 그러나 천국에서 정산하실 때는 적게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 많이 가진 자에게 주신다(마25:28-29; 눅 19:26 참조).
-양과 염소 비유(마 25:31-46)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베푼 선행 여부에 따라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라진다는 무서운 말씀이다.
-므나 비유(눅 19:12-27).
므나 비유가 달란트 비유와 다른 점은, 전자는 세 사람 모두 똑같이 한 므나를 받았지만 달란트 비유는 각기 다른 달란트를 받았다. 한 므나는 노동자 3개월 정도의 품삯으로 100데나리온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므나 비유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는 반면 달란트 비유는 맡겨진 사명이나 재능을 충성스럽게 사용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므나 비유나 달란트 비유 모두 충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상급과 심판은 유사하다.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과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 대해서는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또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17절, 19절)라면서 칭찬하시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게으른 자에게는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27절)고 하신다. 게으름을 부린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나가는 말
신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신앙 생활 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지만 동시에 얼마나 잘 했는가에 따라 천국 상급도 받는다. 물론 달란트나 므나 비유처럼 신앙 생활에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애초부터 구원을 받지 않았을 공산이 큰 사람이다.
그런데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큰 사역이나 성공을 한 사람이 신앙 생활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한국 교회는 교회 생활 잘 하고 사역 잘 하는 사람은 잘 양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 잘 하는 사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양성하는 데는 소홀하거나 취약한 것 같다.
누구나 말로는 신앙 생활 잘 해야 하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말만 한다고 해서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역하고 봉사하는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생각 보다 드물다.
그러나 신자 각자가 일[doing]과 인성[being]의 어떤 분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가는 현재 이 땅에서 얼마나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누리는가, 천국 상급을 얼마나 많이 받는가로 결판이 난다. 본인은 열심을 내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자기 영광이나 세상 영광을 누리는 사람, 눈에 보이는 일은 많이 했지만 불법을 행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 그외에 불순한 동기를 갖고 한 사람들은 천국 상급이 별로 없다.
실제로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유명한 사역자들보다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온 평신도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을 받을 일인가(고후 5:10), 불로 시험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금과 은 같은 일일까(고전 3:12)를 늘 상고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많은 수고를 한 후에 상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한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4-27).
여기서 ‘버림을 당한다’는 말은 ‘상을 잃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심히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그리스도의 보혈에 자기 죄를 씻어 속죄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