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상급론

하나님아들 2022. 2. 26. 16:24

상급론

 

 

 


고린도 전서 11 (3:4-15)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이 진리가 어떻게 상호 조화되는가를 고전 3:4-15의 말씀으로 토론해 보자.


바울은 사도들, 즉 바울 자신과 아볼로, 베드로를 교회에서 각자 맡은 사명을 다한 자들로 표현을 한다. 자신은 개척 선교사로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아주 잘 했으며, 지혜로운 건축자 같이 터를 잘 닦았다고 자부하면서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으며 그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의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아볼로가 와서 성도들을 좀 더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을 하였는데 이것을 바울은 “물주는 이“ 로 표현한다. 이런 가운데에 베드로(게바)가 혹 유대 예루살렘 출신의 사도로서 모세 율법을 강조하고 음식을 가린다든지 우상과 어울리는 일들을 상당히 엄격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베드로를 추종하는 자들이 예수께서 교회의 주춧돌로 베드로를 삼았기 때문에 우리가 베드로의 가르침을 따라야지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으로 고린도 교회에 분파가 일어나고 분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바울은 사도들이 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자기의 독특한 사명을 감당할 따름이고 주춧돌은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고 그 위에 우리가 집을 지어가는 자들인데 문제는 각 사도들이 어떻게 집을 짓는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을 집 짓는 자들로, 교회를 세우는 자들로 나타내면서 사도들이 자신의 맡은 일을 금과 은과 보석으로 한다고 할 수 있느냐 아니면 비효과적이고 튼튼하지 않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한다고 하는 거냐 하는 것을 잘 살펴야 된다고 한다. 이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텐데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집은 다 타서 없어질 것이며 그렇게 집 지은 사도 자신은 구원은 받을 것이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치 불 가운데를 지나간 자같이 겨우 구원만 받게 된다. 이와 반대로 사도의 직분을 성실하고 효과적으로 잘 감당한 자, 즉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은 불 심판 가운데 더욱 환하게 드러나서 상을 받을 것임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바울, 아볼로, 베드로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명을 받았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자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집을 지어가는, 즉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우리 각자가 우리 삶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에 어떠한 공헌을 했느냐 그것이 나중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교회 생활과 개인 생활을 분리해서 우리 개인 생활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허는 일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우리의 말하는 것, 행동하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교회를 세우고 때로는 교회를 허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옳은 것을 생각하고 따뜻한 사랑의 말을 하고 옳고 사랑스런 행동을 하면 그것 자체로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증거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 모이게 되고....... 이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인데 꼭 교회 내에서 성도에게 좋은 일을 하고 권면하고 하는 이런 것만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나쁜 것을 생각하고 나쁜 말을 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옳지 않은 모의를 하고 또, 남에게 해 되는 일을 하면 당장에 그리스도가 욕을 먹고 교회가 욕을 먹고 이것이 바로 교회를 허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바울이 사도들인 자기와 아볼로와 베드로를 염두에 두고 말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적용성이 있고, 우리가 우리 삶 전체로써 얼마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했느냐, 무엇으로 집을 지어 갔느냐, 즉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었느냐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었느냐하는 것이 심판 받을 때에 드러날 것이기에 우리는 여기서 경고 받고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갈등할 문제가 생긴다.

(갈등) 바울은 롬4:5에서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또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받고 심판대로 상을 받는 자가 있고 상을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고 하느냐?

롬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 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함이라


어떤 학자는 행위대로의 심판을 바울이 유대 과거 바리새인 랍비 신학자로서의 자기의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데서 나온 찌꺼기로 생각했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1. 최후의 심판 때 상을 못 받을 짓을 한 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는 하되 불 사이를 지난 자 같은 가난한 구원을 받는다. 히6:4-12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체험 했다고 하더라도 후에 신앙을 부인하고 뒷걸음질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역사하시나 그것을 계속 뿌리치고 계속 뒷걸음질치면 구원에서 떨어진다고 바울이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성화의 과정 가운데서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짓는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을 원천적으로 부인 않는 한 (원천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로가 없다 하더라도 구원은 받는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풍성한 열매(금, 은, 보석으로 집 지은 자)를 맺는 자는 상을 받는다.


3.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상태에는 논리적으로 등급이 있을 수 없다.

일등 구원, 이등 구원……. 다 100평 아파트인데 로얄층, 1층, 2층,.…….이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라는 말은 “ 완전함” 이란 뜻인데, 일등 구원과 꼴지 구원이 있다면 결핍된 구원을 받는 것이 된다. 구원은 온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영생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금 우리의 삶이 근심, 걱정, 두려움, 고독, 병듦과 같은 죽음의 증상들로 얼룩진 것이라 한다면 구원 즉, 영생을 얻는 것은 결핍에서 오는 부자연, 지혜 부족에서 오는 불안,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갈등, 근심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부요한 하나님의 무한을 얻는 것이다. 즉 한계(결핍성, 제한성)를 극복하므로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의 온전함에 참예함, 이것이 영생이고 하나님적인 삶,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같이 스스로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때에는 인간 이하가 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됨을 허락 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4. 상의 의미

상은 좋은 것이고 잃어버림의 반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은 세상의 상과 같이 우리를 자랑하게 하고 자만하게 하고 이웃을 깔보게 하는 상은 아니다. 이런 행위는 바로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이것은 죄다.


5. 의를 보상하고 불의를 벌주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으면 도덕은 있을 수 없고 죄의 개념도 성립될 수 없다.


1-5을 정리하면 우리가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온전한 것이라서 상급을 많이 받고 적게 받는다는 것이 성립이 안 된다. 반면에 최후 심판이 없으면 도덕도 없고 죄의 개념도 성립될 수 없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정진하게 하는 동기도 없어지게 된다.


이 상반 모순되는 두 가지 관점 때문에

6. 행위에 대한 심판이 있을 뿐 아니라 있어야 된다.

위의 내용을 대충 연결해 보면 바울은 은혜로 받은 우리 구원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뜻1) 의인 ― 하나님 법정에서 무죄 선고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벌 받고 죄의 대가를 치르심을 믿으면 의인이라 선언되는데 의인으로의 선언은 벌써 미리 일어난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벌써 의인으로서의 선언됨이 심판에서 확인된다는 말이다.

뜻2) 의인 - 헬라어의 법적 개념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관계론적 개념이다. 무죄 석방된 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간 자이다. 지금 벌써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선언되고 이 선언은 최후 심판을 거쳐서 확인되고 완성되어진다.


벌써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속에서 우리가 의인이란 것은, 믿음으로 의인 되었다는 것은 최후 심판을 거쳐서 우리 의인됨의 축복을 완전히 누릴 때까지, 그 때까지 우리는 욕심 즉, 하나님 뜻보다 내 스스로가 운명의 주가 되고 내 인생의 주가 되라고 조종하는 사단의 도전에 노출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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