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유 신 론

하나님아들 2022. 1. 21. 17:35

   유     신     론

 

     제2장 유신론

 

   1.본체론적 증명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선험적 논증으로서 하나님의 존재가 실유의 개념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계획되어 있다.

1) 안셈

우리는 무한히 완전한 한 실유에 관한 개념을 갖고 있다. 실제 존재는 무한한 완전함안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큰 실유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개념을 갖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것은 물론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증은 어떻게 이상이 실재를 내포하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2) 데카르트

우리는 무한히 완전한 한 실유의 관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 개념이 우리에게서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존재가 이와같 이 필연적 가정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3) 새무얼 클라크

이 논증은 시간과 공간의 존재로부터 한 본질적인 실유의 존재를 추론한다. 우리는 세계의 비존재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간과 기간의 비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간과 기간은 본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 영원하고 필연적인 본체(곧,신)에 대해 우연자들인 공간과 기간은 본체가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영원한 본체가 무엇인지, 어떤 속성들이 그것에 속하는지 결정하기 위하여 현상계에 조회해 보지 않으면 않된다. 그러면 그논증은 후천적이다.  4) 쿠 생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이 주어질 때, 무한하고 완전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권한 속에 있지 않다. 이성의 필연적 산물이요, 그러므로 진정한 산물이라고 한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의 개념은 의식 속에 주어진 완전한 것의 상관개념 또한 원시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무한자는 무엇인가? 쿠생과 더불어, 무한자가 전부이다. 그러므로 유신론은 이 형이상학적 논증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2. 우주론적 논증

이것은 원리의 원리위에 기초한다. 삼단논법으로 논하면, 모든 결과는 적절한 원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그 자체밖에,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에 적절한 원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1> 인과관계

1) 주제에 관한 공통의 교훈

  (1) 원인이란 어떤 것이다. 그것은 실재적 존재를 가지고 있다. 비실제는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하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면, 그러면 무가 유를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이요, 이는 모순이다.

  (2) 원인은 실제적인 것일뿐만 아니라 힘과 능률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원인의 성질에 관한 참된 견해이다. 원인이란 한낱 전항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관계를 표시하고 있다고 사람마다 의식하고 있다.

  (3) 인과관계의 성질에 관한 이 견해는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신념에 포함된다. 힘 또는 능률의 행사 없이는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고 어떤 변화도 산출될 수 없다.

2) 원인의 필연성에 관한 직관적 확신

결과마다 원인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보편적 신념의 기초는 무엇인가? 흄은 말하기를 그것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경험에 의해 제한된다고 한다. 우리의 관찰영역 안에서 모든 결과는 원인이 선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우리의 관찰영역 넘어서도 동일한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다는 그 사실은 우주가 원인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가정할 아무런 권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칸트는 말하기를,원인과 결과의 법이 오직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사람은 우주가 영원하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가 원인없이 존재하기 시작했으며,무에서 생겼났다고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주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영원부터 존재해왔든지 아니면 그 실유에 대해 현존하는 그대로 설명하기에 적합한, 그 자체에서 비롯된 한 원인에 그 존재를 힘입고 있다.

  2> 세계는 결과이다.

1)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의 존재로부터 영원히 움직이는 힘, 제일동작자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우발적이라면, 이 영원하고 필연적인 실유는 우주밖의 제일원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 유신논증이다.

2)역사적 논증

다윈의 주장은,우주 그 자체로부터 자존하는 원인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우리는 우주가 무에서 생겨났든지, 또는 자존하고 영원한, 우주밖의 한 실유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3)지질학적 논증

지질학자들의 동의;(1)지구에 현존하는 종류의 동식물은 지구의 역사속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2)경험이나 과학도 사실이나 이성도 자연발생의 가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 (3)속과 종은 영원하다.

만약 이 원리들이 용인된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결과가 된다. 또한 그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면, 그들은 피조되었고 그러므로 한분 창조주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우발적 사건들의 무한한 연속을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는 무에서 우주의 기원을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반대. 흄의 학설

1)우주론적 논증이 기초하고 있는 원리에 대한 반대

흄은 사람마음의 인식이 인상과 개념으로 환원된다고 하는 원리를 내세웠다. 이로부터 우리의 모든지식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결과가 된다. 그가 끌어낸 결론중 “우리는 우리가 개념을 형성할 수 없는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이유를 결코 가질수 없다” 는 추론에 의해, 그는 본체와 같은 것을 언급하는 바, 이로부터 우리는 어떤 인상을 받을 수도 없고 또한 결과적으로 이에대한 개념을 가질 수도 없고, 따라서 존재한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믿을 수 없다. 하나님에 관하여도 동일한 것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접증명법같은 논증은 확실히 흄의 이론을 반박한다. 그는 한사물이 다른것을 산출하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그러나 그의 교훈에 따르면, 그는 힘 또는 능률 같은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생산같은 것은 없다.

만약 우리 자신이 어떤것 곧, 실체, 본체요, 우리가 힘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이 의식의 사실일진대, 그러면 힘과 동인 같은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만약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직관적, 필연적 진리일진대,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면 세상은 그 자체로부터 그 존재의 적절한 원인을 가졌다는 것이 전혀 확실하다. 그러므로 만약 세계는 자존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논증이 건전하다면, 우주론적 논증은 타당하고 또한 결정적이다.

2)두번째 반대-우주론적 논증의 결론에 대한 반대

우주론적 논증은 한 영원하고 필연적 실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실유가 자의식적이요, 지적이라는 것은 타 논증들이 증명할 것이다. 더구나 이 논증은 이 실유가 우주 밖에 있다는 것을 꽤나 증명한다. 왜냐하면 우발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 자체로부터 그 존재의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인과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3. 목적론적 논증

  1> 그 성질

삼단논법의 형태로 진술된다. 설계는 설계자를 가정한다. 세계는 어느 곳에서나 설계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세계는 한 지적인 조성자에게 그 존재를 빚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사이에 이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인간 예술의 모든 제작품 속에는 죽은 소재들이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형성되고 결합된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자연의 작품들은 산원리에 의해 가동된다. 이것들은 그 원리가 외부세계 내부에서 온 것처럼 형성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들은 자라난다. 이것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점에 있어서 집과 나무나 사람의 몸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경우 모두 마음은 산출된 사물 밖에 있다. 왜냐하면 목적, 생각이 생산물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설계의 성질이 필연적으로 한 지적 행위자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설계의 증거를 보는 곳 또는 볼때마다, 그것이 마음의 작용에 관련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2> 세계속에 설계의 증거

1)단순기관 속에 설계

눈, 귀, 음식의 소화과정, 신체구조 등을 살펴보면 심사숙고, 지성, 지혜의 가장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설계자의 예정된 목적에 따라 규칙적으로 적응한다.

2)한 기관이 다른 기관에 관련된 설계

모든 동물은 완전한 전체이다. 각 부분은 모든 다른 부분에 대해 설계되고 예정된 관련을 가진다.

3)동물의 본능에 대한 기관들의 적응

본능과 신체기관; 본능은 기관을 설명할 수 없고, 기관도 본능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한편이 없이 다른 편만 발견되지는 않는다.그러므로 이들은 필연적으로 본능을 불어 넣고 알맞는 기관을 공급하는 한 지성을 내포한다.

4)예지로부터 논증

예지, 곧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 더 결정적인 지성의 증명은 없을 것이다. 젖먹이 동물의 가슴이나 유방, 달걀은 그 예증을 제공한다.

5)식물성 유기체

만약 무기물을 유기물로 변화시키는 식물의 기능이 없다고 하면, 우리 지구상에 지각있는 생명이 있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설계가 없다는 말인가?

6)자연의 적응으로부터

7)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다.

8)지구가 사람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증거

지구자체에서 사람을 위한 자비로운 배치를 보게될 때, 본능적으로 또한 합리적 필연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것들을 한 자비롭고 지적인 행위자에게 돌린다.

9)우주적 준비

키케로는 말하기를, 닥치는대로 글자를 집어던져 책 한권을 작성하듯,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에 의해 질서 정연한 세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4. 설계로부터의 논증에 대한 반대

  1>최종원인의 부인

실증주의자들은 감각기관이 인지할 수 있는 것 밖에는 믿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연속의 규칙성외에 어떤 다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용성, 의도, 정신은 감각기관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인정되지도 않거니와 또한 인정될 수도 없다.

  2>흄과 칸트의 반대

흄의 대답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조성자가 있다고 추측할 아무런 합리적 근거를 우리는 갖지 못한다.

칸트가 원인과 결과의 연결이 외부세계에만 한정되고, 따라서 외부 세계자체의 존재에 대한 설명으로 인과관계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말할 때, 그는 실질상으로 흄과 동일한 반대를 제기한다. 세게가 유한하고 또한 우리 유한한 결과로부터 무한한 원인을 추론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무한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에 대한 대답-설계로부터의 논증이 증명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보다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에 더 정확하게 관여하고 있다. 이것들은 어딘가 우주의 모든 현상에 대해 설명하기에 적합한 한 지성의 존재를 받아들일 것을 수반하고 있다. 그 지성이 어느 곳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한 인격이지 않으면 안된다.

  3>기타 반대

1)동식물계에는 무한 지성의 통제의 개념과 조화되지 않는 기형 또는 비정상적 생산품이 있다고 하는 반대이다. 이것은 기껏해야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논증에 불과하다. 한 예로, 배버지씨의 계산기가 수백만번에 한번 틀린 숫자를 낸다고 해서, 이로 인해 그 구조작업에 지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진 못할 것이다. 성경안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성경저자의 완전함과 조화되지 않는 것 같은 몇구절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고귀한 구원진리를 거절하는 것은 몰상식하다.

2)쓸모없는 기관들이 유기체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반대는 또한 우리의 무지에 기초하고 있다. 필수품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은 보다 높은 목적에 부응할지도 모른다. 미적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비록 그 개체에는 필요가 없다손 치더라도, 전체 동물계가 건설된 계획의 통일성을 표시하는 데 도움을 준다.

3)본능;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충동”이 이성이 없는 동물의 작업에서 보는 모든 희한한 재간을 달성하듯이, 자연에서 유사한 장치는 자연의 조성자에 있어서 지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그 논증이다.

그것은 본능에 관한 잘못된 정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맹목적인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동물들에게 저들로 하여금 삶을 영위하고 종족을 계승하며 존재의 필요에 답할 수 있는 정도의 지성이다. 비이성적인 동물의 행동을 통제하는 원리를 지시하는 것으로서 본능이란 맹목적이 아니요, 지적이다. 그것은 목적에 대한 숙고와, 그 성취에 적합한 수단의 선택과 적용을 인정한다.

 

    5. 도덕적 또는 인론적 논증

  1>논증의 성질

사람의 영혼은 명확하게 또한 확실하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그 본성에서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 곧 결코 지울 수 없고 도한 가장 마음 내키지 않는 것에 관한 확신을 강요할 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정신의 존재로부터의 논증

우리는 정신이 물질의 산물이 될 수 없다는 인류의 일반적 확신에 호소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것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정신은 자존하거나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교자들조차도 믿는 것처럼, 우리의 영은 영들의 아버지이신 그분께 그 존재를 힘입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

  3>영혼의 성질로부터

동물에 있어서 배고픔은 그 갈망을 해소시키기에 적합한 양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가정하는 것처럼, 영혼의 배고픔은 그 필요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어떤 실유가 우주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가정한다. 이 두경우에 있어서 갈망은 선천적이요, 보편적이요, 명령적이다.

  4>사람의 도덕적 성질로부터

영혼은 감정과 행위의 도덕적 성격에 대한 즉각적 인식을 취한다. 우리의 도덕적인식 또는 판단은 독특하다. 도덕적 판단은 독립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양심은 우리가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법의 개념, 즉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규칙 또는 표준의 개념을 동반한다. 이 법은 우리에게서 유래되지 않은 권위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워진 어떤것이요, 그것에 대해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한 권위에 의해 따르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도덕성은 책임감을 동반한다.

우리의 도덕성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우주밖에 계신 한분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부득불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람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유행하는 하나님의 실유에 관한 확신에 대한 근거이다.

우리의 도덕적 감정은 교육에 기인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이 도덕적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는 말하기를, 죄인들이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롬1:32)있다고 한다.즉 죄에 관한 의식은 의로우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동반한다.

이 우주는 어떻게 유래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가? 무슨 경향이 있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답변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난제는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유신론은 한 해결책이다. 이것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한 실유, 곧 한 영을 가정한다. 그러므로 지적, 자발적, 자의식적이요 또한 도덕적 완전함이 부여된 실유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은 첫 질문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변이다. 우리는 그것이 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이 해결이 참인 것을 안다. 모든 사람이 알지못하고 경배하는 그 하나님을, 성경은 그 존재의 확실함 뿐만 아니라 그의 완전하심의 충만 속에 계시하고 있다.

 

[출처] 신론에서 유신론|작성자 작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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