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의 '최소합의선'을 찾아서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 신학 내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대한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구원을 잃겠지만, 삼위일체를 인정하려는 사람은 지성을 잃을 위험에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애쓴 가장 위대한 석학들조차도 삼위일체 가운데 3을 강조하는 '삼신론' 혹은 1을 강조하는 '양태론(moalism)'으로 종종 빠지곤 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석학들조차 이렇게 우왕자왕하는 모습을 보이니, 많은 사람들은 이 삼위일체론의 실재를 의심해왔습니다. 도대체 삼위일체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우리가 '최소한'으로 합의할 수 있는 선은 무엇일까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짤막하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교파가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삼위일체의 기본 정식
먼저 모든 교파가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삼위일체의 기본 정식에 관한 가장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아래의 세 그림부터 보겠습니다.
위 세 그림은 삼위일체에 대해 오해를 살 수 있는 그림입니다. 맨 좌측의 그림은 성부, 성자, 성령이 모여있지만 '분리'와
'일치'의 역설(마치 그리스도가 100% 인간이자 100% 신이듯이)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중앙의 그림은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기본 공식을 지키지 못한 비성경적인 도식입니다. 맨 우측의 그림은 '아들로부터'(filioque)의 구절이 반영되지 못하면서 정교회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삼위일체 정식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삼위일체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삼위일체 이해는 아래와 같이 가장 단순한 그림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정적으로 삼위일체에 관한 가장 단순하고 올바른 이해를 표현하고 있는 위의 그림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여섯 명제로 정리됩니다.
하나님=성부
하나님=성자
하나님=성령
성부≠성부
성부≠성자
성자≠성령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중요한 그리스도교 고유의 명제를 추가하면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핵심적인 정식'이 도출됩니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석학 필립 캐리(Philip Cary) 는 삼위일체 신학의 중요 명제들로 7가지 명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위의 도표에는 없는 한 가지 명제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입니다. 그는 이 7가지 명제가 '삼위일체 교리를 구성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를 구성하기에 충분한 7가지 명제를 다시 온전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간단한 7가지 명제>
하나님=성부
하나님=성자
하나님=성령
성부≠성부
성부≠성자
성자≠성령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함.
이 7가지 명제는 기본적으로 삼위일체를 존중하는 모든 교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삼위일체에 관한 정식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명제들이 삼위일체의 기본이 됨에도 삼위일체를 '인간의 언명'으로 온전히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3세기로부터 시작한 삼위일체론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며 이는 신학이 그저 철학자들의 사변이 아니냐 하는 숱한 의혹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일면적으로 보인 바와 같이 삼위일체론은 겉보기처럼 그리 복잡하지만은 않습니다.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모든 논쟁은 기본적으로 "구조는 이미 정해져 있고,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구조는 이미 정해져 있고,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로서의 삼위일체 정식
잘 알려진 바처럼 현재 '모든' 정통적 기독교 교파가 동의하는 삼위일체의 최종 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단어의 사용이 조금이라도 틀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충분히 기울여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최종정식: "한 본질, 세 인격"
[콘스탄티노플 신조 보기: 다음 아티클]
[사도신경 대신 니케아-콘스탄티노플을 채택하는 경향의 예: 다음 기사]
이 "한 본질, 세 인격"의 공식은 중요한 고대교회 에큐메니칼 신조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에서 비롯됩니다.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말하자면 이 신조는 전체적으로는 어느 교파에서나 기꺼이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권위보다 높게 평가됩니다.) 왜 니케아-콘스탄티토플 신조를 가장 근본적인 삼위일체의 공식으로 모든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교파들이 고배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아마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표명된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 거의 필연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서로 다른 유형의 신앙 고백을 하도록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이 이천 년 간 변해오지 않은 기본적 사실이 부정될 가능성이 있다면, 기독교 신학은 앞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바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삼위일체에 관한 언어 설정을 지시합니다.
동일본질(homoousios) > 유사본질(homoiousios)
본질(ousia) = 본질(substantia)
위격(hypostasis[휘포스타시스]) = 본질(substantia)
동방과 서방신학 진영의 이견에 대하여: 필리오케(filioque)에 관한 간략한 소고
위의 신학적 합의와 삼위일체의 기본적 정식으로 인해서, 동서방 신학 진영의 이견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합의가 가능한 문제였고, 이는 지난 세기 후반부에 에큐메니칼적 운동의 일환으로 (모든 교파가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지만) 여러 합의문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WARC와 정교회를 중심으로 1992년에 "합의된 거룩한 삼위일체에 관한 일치의 성명"(Agreed Statement on the Holy Trinity)과 같은 문서들은 우리가 주목해서 볼만 합니다. 바르트에 관한 유명한 석학 토랜스(T.F. Torrance, 1913-2007)이 주도한 이 문서는 '아들로부터도'(filioque, [필리오케])라는 구절을 기존의 일치된 신조에서 제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필리오케 구절은 동방과 서방의 천 년이 거뜬히 넘는신학적 불일치를 상징해왔습니다. 이 구절이 동서방의 불일치의 근원이 된 것은 서방신학이 589년에 기존의 니케오-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임의로 이를 첨가했기 때문입니다. 동방은 이에 반발했고, 필리오케 구절을 빼달고 여러 번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서방 측에 의해 묵살당했고, 이 불일치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 여러 곳에서 암시적으로 제가 설명하고 있듯이 서방과 동방 신학의 불일치는 삼위일체의 기본적 정식에 비추어 볼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 짚어두고 이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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