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원장 서창원 박사)이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세곡교회(담임목사 박의서)에서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설교'를 주제로 제29기 정기세미나를 개최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설교전문세미나로 주강사로는 미국 그린빌신학교 총장 죠셉 파이파 박사가 초청돼 9개 강의를 맡았으며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담임)가 23일 첫째날 특강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김남준 목사는 '멀러 테제와 개혁신학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하며 "저는 16세기 루터와 칼빈의 신학은 그의 계승자들, 곧 멜란히톤과 베자를 필두로 하여 17세기 신학자들에 의해 도입된 이성주의로 말미암아 순수성이 오염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진술한 신학은 별 가치가 없다고 교육 받았다"며 그러던 중에 약 7년 전 우연히 칼빈신학교 멀러 교수(Richard Muller)의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 교의학'의 제1권 '신학서론'을 읽으면서 '커다란 지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 책은 '16세기 말과, 특히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과의 만남'이라는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으며 '개혁주의 신학의 위대한 유산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멀러 테제'(Muller Thesis)는 종교개혁과 중세 스콜라주의신학 방법론과의 관꼐,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의 신학적 연속성 문제 등과 관련된 테제이다"며 "그의 '교의학'은 이러한 멀러테제를 입증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고 평했다.
김남준 목사는 멀러 교수가 지지하는 그의 테제의 핵심적인 주장 네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채택한 스콜라주의는 신학방법론이지 이성주의로의 변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멀러 교수는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신학을 이성주의로 회귀시킨 것이라는 가설을 비판했다며 "이 주장들의 비합리성을 누구도 도전한 적이 없었던 방식으로 역사와 신학에 관련된 방대한 문헌들을 통해 입증했다"고 했다.
둘째는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적 연속성에 대한 재평가이다.
김남준 목사는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을 계승한 정통주의자들 간에 신학적인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은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잘못 유포된 견해"라는 멀러 교수의 입장과 같이했다.
그는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과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의 내용들을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이어 받았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단순히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반복이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는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이 멀러의 주장이라고 했다.
또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중세 스콜라주의의 방법론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전개한 신학의 내용면에 있어서 중세 스콜라주의의 신학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상세화, 종합화, 체계화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불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고 소개했다.
셋째로 이 테제에 관한 멀러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은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성경신학을 무시하였다는 비난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원어와 근동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기독교 역사 가운데 그 어떤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성경의 신적 권위와 충족성을 믿언 사람들이었다"며 "그들이 정통 교리를 진술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비판할 때 호소한 최종적인 원천은 언제나 성경이었다"고 강조했다.
넷째로 멀러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은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들은 철학적으로 아리스토텔레주의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남준 목사는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의 내용을 체계화하고 변증하는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한도 안에서 여러 철학자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 '절충주의자들'이었다"고 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7세기-개혁파-정통주의-신학-이성주의-로-회귀-아니다-54073.htm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
페리 밀러(Perry Gilbert Eddy Miller, 1905-1963)와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1948-)는 미국 학자들이다. 두 사람이 규정한 학문 카테고리가 한국 교회에 교회사를 이해하는 두 진영을 만들었다.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이다.
유럽 학자들도 두 테제로 묶을 수 있다. 테제에 따라서 학문의 이해가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문은 전제와 결과가 일치해야 정상이고, 일치하지 않을 때 왜 일치하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 밀러 테제(Miller Thesis)와 멀러 테제(Muller Thesis)로 17-18세기 교회 신학을 볼 때 전혀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 두 테제의 공통점은 루터와 칼빈을 지지하지만, 17-18세기 산물에 대해서 전자는 “염려와 의혹”, 후자는 “긍정과 존중”으로 다르다. 그래서 연구자는 두 테제 중 한 테제를 자기 관점으로 삼고 연구를 하면 될 것 같다.
배한극은 밀러의 The Marrow of Puritan Divinity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배한극: 1981, 21, 신학자 이름은 저자의 표기를 그대로 인용함). “뉴우잉글랜드의 언약신학은 윌리암 퍼킨즈, 영국 청교도 신학자 윌리암 아메스, 영국 청교도 신학자 죤 프레스턴, 그리고 리차드 시보스의 저작과 설교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의 저자는 뉴우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며 모든 도서관에서 비치한 책들이었다. 언약이란 말은 성경에서 나오는 말로서, 루터나 캘빈은 그것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16세기 신교의 여러 신앙고백에서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안상혁은 페리 밀러가 역사학자인데 언약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연구자로 제시했다. 안상혁은 밀러 테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청교도의 언약 신학은 칼뱅의 예정론 신학 전통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칼뱅의 하나님이 전제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예측 불가하다면 청교도의 하나님은 언약의 조건을 수행하고 인간의 행위에 따라 규칙적으로 반응하는 예측 가능한 하나님이다. 둘째, 청교도의 언약 신학이 그들을 칼뱅으로부터 차별화시켰다면, 17세기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교회 언약은 그들을 영국의 청교도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표지가 되었다”(안상혁: 2016, 23)
안상혁은 이러한 밀러리안들은 17세기 청교도들의 수준을 캘뱅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캘빈(Calvin against the Calvinists)으로 표현했다고 제시했다. 페리 밀러보다 더 앞선 밀러리안으로 에른스트 비처, 찰스 맥코이, 바질 홀, 발터 키젤,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있었다(안상혁: 2016, 24). 그리고 밀러 후대의 학자들은 제임스 토란스, 홈즈 톨스톤 3세, 로버트 켄달, 찰스 벨 등이다. 신정통주의인 토란스가 17세기 언약 신학을 율법주의로 규정하여, 칼빈 신학에서 일탈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제시했다(안상혁: 2016, 24).
밀러 테제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하는 중에, 예정론과 속죄론 그리고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대해 홀 헬름, 칼 트루먼, 스코트 클락, 빌렘 반 아셀트, 에프 테커, 리차드 멀러가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안상혁은 이들이 일차 문헌 자료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근거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연속성을 설들력 있게 논증했다고 제시했다(안상혁: 2016, 27).
이러한 견해를 멀러 테제(Muller thesis)라고 한다.
안상혁은 <언약신학>에서 그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다. 밀러 테제의 일면적인 구조 이해에서 양립 구도로 한 테제(멀러 테제)가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칼빈과 17-18세기 청교도의 단절성을 주장하는 밀러라인이 극도로 약화된 상태임을 제시했다(안상혁: 2016, 27). 멀러라인의 공통점(안상혁, 로이드 존즈)은 사무엘 러더포드, 존 낙스(스코틀랜드 언약도)와 잉글랜드 청교도(회중파)를 함께 묶어서 한 신학 체계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즈은 『청교도 신학』에서 바실 홀, 켄달의 이해를 비판하면서, 자기 이해를 제시했다. 바실 홀과 켄달은 밀러라인로 분류되어 있다(참고, 안상혁: 2016, 24).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로이드 존즈는 멀러라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안상혁은 “밀러 테제와 칼뱅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칼뱅 테제”와 “멀러 테제”를 제시했다. 안상혁은 두 테제에의 근원이 언약 이해에 대한 두 전통과 비교했다. 개혁파 언약 이해에는 제네바 전통과 취리히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편무적(unilateral)이고 후자는 쌍무적 개념(bilateral)이다. 송영재는 제네바는 유언(testament)에 의거한 은혜 일변도의 초월신학, 취리히는 언약(covenant)에 의거한 역사와 인간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않는 내재신학으로 구분했다.
밀러라인은 종교개혁 이후 제 2세대 개혁신학은 두 개혁자들을 분기점으로 칼빈파와 불링거파, “유언신학(Calvinist)”과 “계약신학(Federalist)”이라는 두 라인이 융합될 수 없는 독특한 신학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송영재). 그러나 송영재는 두 진영의 공통점(은혜신학, 공로를 배제함)을 강조하며, 갈등 원인은 행위언약에 대한 논의로 연결했다. 송영재는 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두 테제의 보완성을 인정하여 다양성을 인정하면서(쌍무적과 편무적 개념), 속죄론에서 “공로”를 철저히 배격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병립된 두 테제가 있다.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 그리고 스위스 언약 이해의 두 유형, “유언신학과 계약신학(제네바와 취리히, Calvinist and Federalist)”이다. 송영재는 칼빈파와 불링거파의 비분리성을 주장했다. 필자도 그 증거로 불링거와 칼빈이 작성한 채택한 제2헬베틱 신앙고백서를 제시한다.
그리고 17세기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논쟁도 심각했지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채택으로 종결시켰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이후에 사보이선언 등으로 분열하면서, 다양한 언약 이해의 난립, 구원의 서정 이해 난립, 율법 이해 난립 등 그리고 최근에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로 대립되어 있다. 칼빈을 사랑하지만 두 테제로 병립된 상태는 일치되어야 바람직하다. 일치되는 방안으로 송영재는 오직 은혜(인간 공로가 없음), 행위언약, 대리적 속죄 구도의 명료한 이해를 제언했다. 필자는 현장에서 적극적인 복음 선포를 협력하여 전개할 것을 제언한다. 세밀한 부분은 다르지만, 죄인을 구원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에서 발생한 아디아포라 논쟁,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선택과 언약 이해,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율법과 죄의 문제, 국가와 교회 문제 등에 대해서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 과정에서 큰 변이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문제이다. 1688년 명예혁명 이전까지 신학은 종교와 국가를 일치시키는 구도였다. 그러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뒤에는 정교분리가 되눈 구도가 되었다.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정교일치 사회에서 작성된 문서이다. 서양은 일련의 역사에서 학문을 하고 있고, 우리는 정교분리가 확정된 된 이후 사회에서 학문을 하고 있다.
우리는 밀러 테제와 멀러 테제 중 하나를 채택해서 학문을 해야 한다. 그러나 두 테제 모두 칼빈을 근거해서 진행하는 학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멀러 테제는 16세기 칼빈 사상이 지금까지 연속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테제이고, 밀러 테제는 17세기 잉글랜드 청교도가 칼빈 사상을 변개시켰다고 주장하는 테제이다. 우리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터와 칼빈에서 시작해서 형성한 독일, 네덜란드, 영국의 거대하고 다양한 신학 이론을 정립해야만 한다. 17세기 잉글랜드가 유럽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분파를 만들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다양한 분파를 한 줄로 정립시키는 시대적이고 교회사적인 과제가 있다.
<참고문헌>
(참고) 원종천은 행위언약 어휘가 1562년 울시아누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20년 뒤에 피터 라무스(Peter Ramus)의 영향을 받은 페너와 같은 사람에게서 다시 발전되었다고 제시했다. 1590년 이후 유럽과 영국에서 보편적으로 수용했다(재인용, David A. Wier, The Origin of the Federal Theology in Sixteenth Reformation Thought(NY: Oxford Univ Press, 1990).
안상혁, 『언약신학, 쟁점으로 읽는다』(수원: 영음사, 2016)
로이드 존즈,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서울: 생명의말씀사, 2013)
빌렌 판 아셀트, 에프 데커 엮음,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송영재, “개혁주의 언약교리에 나타난 조직(신학)과 경건의 조화: 윌리암 펄킨스(1558-1602)와 죤 프레스톤(1587-1628)”,
배한극, “페리 밀러와 뉴우잉글랜드 퓨리터니즘”, 경북전문대학 논문집 3권, 1981년.
이승구, “개혁파 정통신학에 대한 멀러 테제에 대한 교의학적 성찰”, 성경과신학 43권, 2007년.
원종천, “16세기 영국 청교도 언약사상 형성의 역사적 배경”, ACTS신학과선교, 2권, 1998년.
https://blog.naver.com/ktyhbgj/221532140037
멀러의 테제와 멀러리안들
이 글에서 나는 멀러 교수(칼빈신학교, 교회사)의 테제를 소개하고, 어떤 학자들이 그 테제에 동의하는지 밝히며, 이 테제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의의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멀러 테제
멀러 교수의 테제 즉, “16세기 개혁파와 17세기 개혁파 사이에는 아주 강한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테제는 이제 ‘멀러 테제(Muller’s Thesis)’로도 알려질 정도로 이쪽 분야에서는 유명하다.
이 테제는 “16세기 신학은 역동적이고 성경적인 신학이었는데 반해, 17세기 신학은 경직되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이며 사변적인 스콜라 신학이었다”는 교회사의 유서 깊은 테제를 반대한다.
이 주장을 모두 담은 책은 아래의 방대한 저서이다.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The Rise and Development of Ed Orthodoxy, Ca. 1520 to Ca. 1725, 2nd ed. 4 Vols. (Grand Rapids, Mich: Baker Books, 2003).
* 멀러의 연속성 테제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조.
http://evangelicalcalvinist.com/2010/08/28/richard-mullers-thesis-of-continuity/
수정 링크 : https://growrag.wordpress.com/2010/08/28/richard-mullers-thesis-of-continuity/
2. 멀러 테제를 강화하기 위한 하위 테제들
멀러 교수는 자신의 테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다음을 주장한다.
(1)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사용했던 스콜라적 방법은 방법론에 불과했으며, 신학의 내용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참고로, 스콜라 방법론은 말그대로 “학교(=스콜라)에서 사용한 방법론”으로서 중세 대학에서 사용된 교육 방식이다. 즉 테제를 하나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과 그 반론에 대한 재반론으로 내용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연상하면 되겠다.]
물론 스콜라적 방법론을 씀으로 인해서 이전에는 신학적 주제가 안 되었던 것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물러 받은 16세기 전통을 언제나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그 내용들을 이어갔다.
(2)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의 저서들은 다양한 문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모든 신학 저술이 스콜라 방식으로 저술된 것은 아니었다.
즉 17세기 문헌들 가운데, 주석은 주석대로, 교리문답은 교리문답대로 그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방법론이 적용되었다. 그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스콜라 방법론을 적용해서 책을 쓴 것은 결코 아니다.
(3) 17세기 개혁파 신학도 여전히 성경적인 신학이었다.
멀러 교수는 16-17세기에 나온 주석들을 모두 모은 결과 레터지로 250매에 해당하는 서지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중에 95%를 멀러 교수는 pdf파일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 17세기 신학자들이 쓴 주석은 엄청나며, 그들의 주석법은 철저하게 원어와 문법, 배경 연구(랍비 문헌 및 그레코-로만 문헌들)에 기초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4) 16세기 신학자들 역시 스콜라적 방법론을 일부 사용하고 있으며, 스콜라 신학 일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16세기 신학자들 역시 중세 스콜라 신학이 남긴 수많은 주석들을 참고하였고, 그들이 학교에서 가르칠 때 여전히 스콜라식 방법론을 차용했었다. 한 예로 루터는 멜랑히톤의 교수 방법을 스콜라적 방법론이라 우호적으로 부르고 있다. 칼뱅이 『기독교 강요』 라틴어판에서 스콜라 신학자들을 비판할 때는 특정한 신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칼뱅이 직접 쓴 『기독교 강요』 불어판에서는 동일한 자리(스콜라 신학자를 비판한 자리)에서 칼뱅은 “소르본느의 [가톨릭] 신학자들”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루터나 칼뱅이 중세 스콜라 신학의 내용은 부정한 적이 있더라도, 그 방법론 일체를 거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5)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결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이용하였다. 특히 신학적 주제들을 논증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자주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 그 누구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라간 사람은 없었다.
멀러 교수는 오히려 17세기 신학자들이 “절충주의”(eclecticism)를 신학 방법론에 전략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플라톤, 토마스, 스코투스 등등 그들이 자료로 가질 수 있는 모든 저작들을 두루 인용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유익한 것은 도입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3. 멀러리안들
이 테제에 동의하는 멀러리안(Mullerian)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멀러리안이란 말은 위의 멀러 테제에 동의하는 사람만을 뜻하기 위해 쓴다. 즉, 멀러리안이라고 해서 멀러 교수가 어떤 학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래에 언급하는 멀러리안들은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자신들만의 연구 주제들이 다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17세기 연구는 멀러 이전과 멀러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멀러 교수의 영향력은 크다.]
멀러의 테제에 동의하는 이들 가운데는, 다른 누구보다 우트레흐트 대학의 반 아셀트(Van Asselt)가 있다. 이 학자는 멀러 교수와 독립적으로 17세기를 연구하다가 멀러 교수와 동일한 결론에 이른 사람이다. 하지만 멀러의 테제가 위력을 떨치기 전까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가, 그 이후에 덩달아서 학계에 많이 알려진 학자이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칼 트루먼(Carl Trueman)이 있다. 트루먼은 존 오웬 연구로는 미국에서는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이다. 트루먼과 멀러 교수는 상당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트루먼의 거의 모든 책에는 멀러 교수가 언급이 안 될 때가 없을 정도이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이레나 바쿠스(Irena Backus)라는 유명한 여자 교수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바쿠스 교수 역시 16-17세기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대가이다. 하지만 멀러 교수에 비해 볼 때, 신학적 관심보다는 “순수 역사적 주제”에 관심이 많다.
칼빈신학교 근처에 있는 퓨리턴리폼드 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PRTS)의 총장인 조엘 비키(Joel R. Beeke)도 역시 멀러 교수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멀러 교수와 조엘 비키는 아주 친하여 거의 메일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라고 한다. 비키는 청교도 연구로 매우 유명한데, 나와 개인적인 대화에서 “영국의 청교도들 중에서도 대륙의 개혁파 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보다 스콜라주의적인 성향을 많이 띤 청교도들이 신학적으로 훨씬 더 깊이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비키가 가장 좋아하는 청교도 신학자는 토마스 굿윈, 존 오웬 등이다.
* 박사 학위를 여러 개나 소지한, 지금도 엄청나게 논문을 쏟아내는 이레나 바쿠스 교수의 홈페이지는 아래를 참조.
http://www.unige.ch/ihr/presentation/equipe/Backus.html
* PRTS의 교수진에 대해 아래를 참조.
http://www.puritanseminary.org/academics/faculty.php
4. 스타인메츠 그룹
물론 멀러 교수의 스승인 스타인메츠(David Steinmetz)는 당연히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다. 특히 스타인메츠는 종교 개혁 신학자들의 신학은 서로 연결되며, 루터나 칼뱅은 동시대 신학자들(멜랑히톤, 버미글리, 부커, 츠빙글리, 불링거, 무스쿨루스 등등)의 작업과 연관 지어 연구할 때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멀러 교수는 이 작업을 17세기까지 연결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David Curtis Steinmetz, Calvin in Contex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David Curtis Steinmetz, Luther in Contex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
스타인메츠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었다. 이 중에서 풀러 신학교의 존 톰슨(John L. Thompson)이나 시카고 대학의 수잔 슈라이너(Susan Schreiner)도 16-17세기 관계에 있어 멀러 교수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서든 뱁티스트의 교회사 교수들 중에 2명(이름 기억 안남)도 멀러 교수에게 배운 이들로서 멀러 테제에 동의한다.
* 수잔 슈라이너의 홈페이지는 아래를 참조.
http://divinity.uchicago.edu/faculty/schreiner.shtml
* 풀러의 존 톰슨 교수.
http://www.fuller.edu/academics/faculty/john-thompson.aspx
5. 독일의 크리스토프 슈트롬
독일 교회사가들 중에서는 여전히 16세기와 17세기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말의 유명한 독일 교회사가들은 대체로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교회사 연구의 대가였던 아돌프 폰 하르낙과 그 제자들이 있다.
이들이 16-17세기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루터에 대한 칭송과 스콜라주의에 대한 지극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텔러는 독일 역사학자들이 유난히도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멀러 테제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그중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개혁파 신학을 가르치는 크리스토프 슈트롬(Christoph Strohm)은 멀러 교수의 테제(16세기와 17세기의 연속성)에 아주 강하게 찬성한다.
“Methodology in Discussion of "Calvin and Calvinism",” in: Herman J. Selderhuis (Hg.), Calvinus Præceptor Ecclesiæ. Papers of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Calvin Research, Princeton, August 20-24, 2002 (Travaux d'Humanisme et Renaissance, 388), Genf 2004, 65-105에 실린 슈트롬 교수의 글을 보면, 거의 멀러 교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따라 가고 있다.
멀러 교수도 나와 개인적 만남에서 “독일 학자인데, 나와 독립적으로 연구해서 거의 나하고 같은 결론을 가진 사람으로 슈트롬이 있다”고 하셨다.
* 크리스토프 슈트롬 교수에 대해서는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조.
http://www.uni-heidelberg.de/fakultaeten/theologie/fakultaet/personen/strohm.html
6. 루터파 신학자 로버트 콜브
한편, 루터파 신학을 연구하면서, 멀러 교수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 중에 콘코르디아 신학교의 명예 교수인 로버트 콜브(Robert Kolb, 1941~)가 있다. 그는 16세기의 루터 및 루터파 신학과 17세기의 루터파 신학이 연속성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멀러 교수는 나와 개인적인 대화에서 “내가 개혁파에 적용한 테제를 그대로 루터파에 적용해서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데, 콜브다. 나랑도 매우 친하다”라고 하셨다.
콜브 교수가 이번 봄에 PRTS에 와서 강의를 한다. 멀러 교수는 그를 초청해서 칼빈신학교에서도 특강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콜브 교수가 최근에 편집한 아래의 저서에 실린 그의 글은 16-17세기 루터파의 신학 교육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16-17세기의 루터파 신학자들 모두를 망라해서 부록으로 싣고 있다.
Kolb, Robert. Lutheran Ecclesiastical Culture, 1550-1675, Brill's companions to the Christian tradition, v. 11 (Boston: Brill, 2008).
7. 한국의 멀러리안들
한국의 멀러리안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멀러 교수 밑에서 배운 박사 제자들이다. 그 외에도 멀러 교수들에게 석사 과정에서라도 배운 제자들은 대부분 다 멀러의 테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엄청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쉽게 반박할 수 없게끔 탄탄하게 세운 테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멀러 교수는 16-17세기 자료만 몇 테라 바이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또 하나의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싸게 구입한 것을 자랑할 정도로, 자료 모으는데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8. 멀러 자신의 주장
하지만 멀러 교수는 늘 말한다. 자기는 이 테제를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다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Paul Oskar Kristeller, 1905-1999)나 하이코 오버만(Heiko Augustinus Oberman, 1930-2001)과 같은 르네상스와 중세 연구의 대가들이 이미 주장하고 있던 것을 16-17세기에 적용했을 뿐이라고.
이 두 사람 모두 하버드에서 가르쳤던 사람들이다.
크리스텔러는 중세와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서로 연결되며, 중세에 이미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강하게 단절시켜 왔던 오랜 편견을 뒤집는 테제였다.
Paul Oskar Kristeller, “Humanism and Scholasticism in the Italian Renaissance” in Renaissance Thought: The Classic, Scholastic, and Humanist Strains (New York: Harper&Row, 1961), pp. 92-93.
Paul Oskar Kristeller, Philosophy and Humanism in Renaissance Perspective (Columbus: Ohio State University Press, 1966).
오버만은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 신학은 서로 연결되며, 종교 개혁은 어떤 면에서는 중세 신학의 결실임을 잘 논증해 주었다.
Heiko Augustinus Oberman, The Harvest of Medieval Theolog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3).
정리하자면, 크리스텔러, 오버만, 스타인메츠, 멀러 교수로 이어지는 이 계보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역사에 있어 이전 시대와 완벽한 단절 현상이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급진적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시대는 그 이전 시대와의 연속성 가운데 파악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그 시대만의 독특성 또한 알게 된다.
그 어떤 인물이든지 그 시대의 맥락 속에 놓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 인물은 동시대 사람들과 비교하여 파악해야 한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그 사람의 특성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
우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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