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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箴言):Proverbs

하나님아들 2021. 9. 5. 22:29


 잠언(箴言):Proverbs
 






 
Proverbs(The Book of Proverbs) 구약성서 중의 1서.

1. 본서의 정전(正典)에서의 위치-본서는 히브리어 성서인 구약정전의 3부분-제1부 율법, 제2부 예언서, 제3부 제서(諸書)에 있어서, 제3부에 속하고, 제서는 그리스어의 [성문집]( aJgiovgrafa=hagiographa) 또는 [성문학서]를 말한다. 본서는 그 성문학서 11권 중의 1권으로, 시편욥기 다음에 두어져 있다. 또 그 문학적 특징에서, 히브리의 지혜문학에 속하고, 더구나 그대표적인 것이다. 히브리의 지혜문학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구약 정전 중에서는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의 3권과 구약외전에 속하는 벤 시라의 지혜서(The Wisdom of BenSirach, Ecclesiasticus)의 2권으로, 합쳐 5권이다. 이 외에 시편 중의 수편(1, 37, 49, 50, 73,112편, 기타).


2. 본서의 명칭-히브리어의 명칭[마-샬- lv:m:(mashal)]은 [비교](Comparison) 또는 [유사](Likeness) 등의 의미인데, 깊은 진리를 알기 쉬운 일과 대조케하여, 가르치기 위해 이러한 문체를 쓴 것으로, 즉 A를 생각케 하기 위해, B를 아우러 비교케 하여 기억케 하는 방법이다(잠 11:22). 한글역의 잠언은 일본역과 한가지로 한역성서에서 온 것이고, 영어는[Proverbs](속담)라는 역을 붙이고 있다. 잠언은 한문에 있어서는 [가르쳐서 훈계되는 말]이다.


3. 본서의 저자,연대-히브리 성서의 표제(表題)는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잠언이다]고 했다. 랍비의 가르침에서는, 아가는 솔로몬의 청년기에 있어서, 잠언은 중년기에 있어서, 전도서는 노년기에 있어서 집필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전설은 솔로몬이 지혜에 뛰어나 있었다는 성서의 기사에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왕상 3:28,4:32,5:9-,10:1-, 11:41). 체인(Thomas Kelly Cheyne 1841-1915 영국의 신학자, 벨하우젠파의 대표자)같은 비평적 학자도, [이 전설의 본질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는 없다](Job and Solomon, p. 131)고 말하고 있다. 유다 전통에 의하면, 구약의 율법은 모세에게, 시가는 다윗에게, 지혜는 솔로몬에게관련시키고, 잠언도 또 솔로몬의 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솔로몬(10:1) 이외에도 몇사람인가의 저자명이 더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지혜 있는 자](22:17, 24:23), 또는 [야게의 아들아굴의 잠언](30:1), [르무엘왕,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31:1)등의 표현, 그리고[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25:1)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므로 이들 잠언의 대부분이 솔로몬의 작이었다고 해도, 실제로 편집되고, 수록된 것은, 히스기야의 신하들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잠 25:1). <<벤 시라의 지혜>>에는, 이 잠언을 알고 있었던 것을 뒷받침하는 말이 있는데서(시라知 47:17), 전 180년경기록된<<벤시라의 지혜>> 보다 일찍 편집되고, 이미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서잠언은, 히스기야왕 시대와 <<벤 시라의 지혜>>의 시대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고,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 이스라엘의 정책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서,에스라가 활약하고 있었던 때로 여겨진다.


4. 본서의 목적-지혜를 획득하여 하나님을 경외케 하도록 하는데 있다. 1:2-4에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당할일에 대하여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요컨대 잠언의 목적을 말한 것이다. 잠언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알게하는 일을, 제1의 목적으로 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잘 분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곤란한 부정에의 유혹이 많은시대 중에서 어떻게 냉정하게, 평화롭게, 품위를 지켜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가르치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언자적 정렬이나 율법의 엄정함은, 무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주(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1:7외에 20회)라는 말은, 잠언 전체의 기조(基調)이고, 따라서 단순한 철학사상, 휴머니즘, 인생교훈과는달리, 신앙에 의한 삶의 방식(윤리)의 가르침이다. 또, 이것이 청소년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의미가 있다.

 

5. 본서의 내용 구분-본서는 8집 또는 7집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 모두가 표제(表題)를 가지고있을 뿐 아니라, 각집(各集)이 특성을 가지고 있다. 7집으로 구성할때는 제3, 4집을 하나로한다.
제1집 1:1-9:18. 전체의 서문의 역할을 하고 있고, 여기서는 지혜의 찬미가 주로 되어 있다. 각절이 병행의 시형(詩形)을 이루고 있다. 그 배열에는 일정한 순서는 없고, 사상도 논리적이 아니다. 제반문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으나, 특히 현저하게 특징적인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추상(抽象)하여 의인화한 교훈이다(8:1-9:6). [지혜 hm;k]j;(chokmah=wisdom)는 하나님의 창조의 제1로서, 그리하여 지혜를 하나님의 첫아들(초생자)로 보고, 우주는 이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며, 모두 이에 따르는 왕자, 현인등은 반드시 이에 의해 보상된다고 한다.후세의 로고스설의 서곡(序曲)으로 일컬어지기에 족한 것이다. 이 1집에 있어서의 문체(文體)의 특징은 [아름답게 연마된 시라기보다는 오히려 풍부한 수사적 산문이다]. 델리치(F.Delitzsch 18:50-1922 독일의 구약학자)는, 이 1집의 장려적 요소를, 신명기의 그것에 비교하여 [신영기가, 후에 올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모세의 율법을 심어놓듯, 여기서 저자는, 듣는 자의 마음에, 지혜의 율법을 각인(刻印)하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제2집 10:1-22:16. 솔로몬의 잠언으로 되어 있고, 본편은 잠언의 가장 주요한 중심부분이다. 각절이 모두 2행시의 대구(對句)로 이룩되고, 반대의 경우를 대조하여 진리를 강조한다.375(374로 계수하기도 한다)의 2행시가 여기서는 수집되어 있다. 하나님의 지배가 강조되고,사회생활에의 지시가 풍부하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인과가 필연적임을 말하며, 사람의 도를 가르친다. 왕의 덕을 예찬하여, 충성과 순종을 권하고(14:35, 16:10, 12, 13, 20:8, 21:1,22:11), 부모의 사랑을 말하여 복종을 촉구한다(13:1, 24, 15:5, 19:18, 26, 20:20, 22:6, 15). 기타 오만을 경계하고, 혀의 죄를 말하는 등 각종의 실제문제에 언급한다. 또 하나님의 권위와능력을 강조하여 마음으로 이를 경외할 것을 가르치고(15:3, 11, 16, 29, 16:2, 4, 17:3, 19:21,20:12, 24, 21:2, 30, 22:2), 또 하나님의 희생제물보다도 정의를 기뻐하시는 점을 지적하여,예언자적 경고를 준다(21:3, 및 15:8, 16:6, 21:27 참조). 널리 인생문제에 언급하나, 그 사이에 연락없고, 개개의 교훈의 잡연(雜然)한 집성(集成)인데서, 장절에 따라 이것을 분류할 수는 었다.제3집 22:17-24:22. 지혜있는자의 말로서, 본편의 시형은, 제2편에 비하여 보다 자유롭고, 4행시도 적지 않은데, 개중에는 단시(短詩)로 보아야 할 것도 있다. 여기 취급되어 있는 주제는, 2집에 있어서와 같고, 다만 장려적 요소가 현저한데 일상 생활을 깊이 관찰하여,인생의 공리(公理)를 엿보게 한다.제4집 24:23-34. 이것도 역시 지혜있는 자의 말로, 제3집에 유사하고, 그 보충과 추가, 또는 부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제5집 25:1-29:27. 솔로몬의 잠언으로, 제2편의 보충,추가, 또는 부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같은 종류의 격언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왕(25:1-7), 이러석은 자(26:3-12), 게으른 자(26:13-16), 궤휼한 자(26:23-26, 28)등과 같이. 제2집과 한가지로 대구법으로 이룩된 것이지만, 유사한 사실을 비교하여, 의미를 강하게 하는 것도 있다(25-29장에 이런 유가 많다). 이것은 당시의 학자(히스기야시대)가 왕명에 의해 편집한 것으로되어 있다.제6집 30장.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으로, 본편은 다른 것에 비교하여 현저히 다른데가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로 고민하는 자에게 향하여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다음에 10-33절까지에 9종 가지의 격언을 싣고 있다. 그중의 6종, 즉 (1) 악한 세상의 죄악 넷(11-14), (2) 족한줄 알지 못하는 것 넷(15-16), (3) 헤아려(깨달아)알기 어려운 것 넷(18-20), (4) 견디기 어려운 것 넷(21-23), (5) 지혜로운 동물넷(24-28), (6) 잘 걸으며 위풍있게 다니는 것 넷(29-41)을 열거한 것은, 각각 4종의 사실을 병기한 점에 있어서, 잠언중, 다른 유를 볼 수 없는 것이고, [수(數)의 잠언]으로 일컬어진다.제7집 31:1-9. 르무엘왕의 말로, 즉 그 어머니가 그에게 가르쳐준 말이다. 여기서는 음주(飮酒)가 금해지고,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 고조되어 있다.제8집 31:10-30. 어진 부인, 완전한 아내에 대한 말로서,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본서의 부록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시는, 알파벳 시로서, 최초의 행(行)이 히브리어 알파벳의 최초의 글자로 시작되고, 나머니 21자가 각절 처음마다 순차로 나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부와 명예는 어진 부인이 당연히 받는 보상인데, 그러나 어진 아내로서의 귀한 생애의 원천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경건한 신앙에 의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6. 본서의 형식 - 본서 중에는 대별하여, 세가지의 형식이 있다.

1) 짧은 구술의 격언 같은 것이 그 하나인데, 이것이 가장 오래고, 예컨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 같다](창 10:9)든가, [악은 악인에서 난다](삼상 24:13)등에 보여지는 것이다.

2) 이행으로 된 대구인데, 이것이 잠언 중에서는 가장 많이 보여진다. 이것은 서로 동의적인 경우도 있는가 하면, 반의적인 경우도 있는가 하면, 반의적인 경우도 있다. 예컨대 다음 같은 것을 들 수가 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리라](10-16)-동의적 대구.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고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14:1)-반대적 대구.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16:8)-비교적 대구.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26:11)-비유적 대구. 

3) 약간 수필 같은 줄거리를 가진 것이다. 7:6-23, 31:10-31 등이 그것이다.

 

7. 본서의 본문 - 잠언에 있어서 가장 곤란한 것은, 저본으로 되는 히브리어의 본문이 오손되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히브리어 본문에는, 난해한 곳이 많고, 특히 솔로몬이 지은 것에 많이 보여진다. 그것은 고전인 이상 부득한 일이다. 당시의 히브리 언어의 지식은 오늘도 불충한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의 진전과 함께, 차츰 새로운 빛이 던져지고 있다. 그렇지만 성급한 수정은 극력 삼가해야 할 것으로 되고 있다.

[文獻] T.K. Cheyne:Job and Solomon of the Wisdom of the Old Testament, 1887; S.R. Driver: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Old Testament, Scribners, 1893; G.R. Berry:The Book of Proverbs, 1905;C.H. Toy:The Book of Proverb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1914; E. Oesterley:Proverbs(Westminster Comm.) 1929; O. Eissfeldt:Der Mashal im Alten Testament, 1913; J.H. Greenston:Proverbs with Commertary,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55; R.L. Harris:Proverbs (The Wycliff Bible Commentary), Moody Press, 1969; 松田明三郎:筬言略解, 1960; 淺野猶三郞:筬言略註, 1961; 尾山令仁:筬言註解,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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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Solomon(인명) 

(hmolv] ,Solomwvn, Solomon)「평화」

(1)서론:솔로몬(BC 990년 경- 932년 경)은 이스라엘의 제 3대왕(재위 BC 973년 경- 932년 경)이다. 그에 관한 기사는 사무엘하 11장- 20장, 열왕기상 1장- 11장 및 역대하 1장- 9장에 기록되어 있다. 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유세비우스(Eusebius) 및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등의 솔로몬에 대한 기사는 상술한 성경 기록에 의한 것이다. 또 잠언의 대부분과 전도서 및 아가는 그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한다.

 

(2)왕이 되기까지:솔로몬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랑인 다윗의 아들인데, 사무엘하 12:24, 25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난 밧세바의 두 번째 소생이며,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여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 이름을 `여디디야'(여호와께서 사랑을 입음)라 하였으나, 사무엘하 5:14와 역대상 3:5, 14:4에 의하면, 네째 아들(막내)로 되어 있다. 다윗은 자기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비교하여 그의 치세가 평안과 안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솔로몬'(평화의 사람)이라고 명명했다(대상 22:9). 솔로몬은 어려서부터 선지자나단에게 양육된 듯하다. 그는 어머니 밧세바의 감화를 많이 받고 성장한 듯하다.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 기지에 풍부한 부인이었다(왕상 1:15-31). 또 많은 신복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즉위하기까지의 솔로몬에 대해서는 역대상 22:6- 19 이외에는 별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다윗이 죽기 직전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하는 곳이다. 그가 다윗에 이어 왕으로되는 데는 경쟁자가 있었다. 즉, 다윗이 노년에 쇠약해졌을 때, 이복 형 아도니야(헤브론에서 난 왕자로서, 이미 암논과 압살롬의 사후였음으로 당시 최연장자였다)는 부왕 다윗의 승인없이 즉위하려고 했다. 아도니야를 옹립한 측에는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파에 대해 제사장 사독, 선지자 나단 및 기타 인물들은 솔로몬을 밀어 다윗의 위를 잇게 하려 했으므로, 아도니야 일파의 계획을 탐지하자마자 밧세바를 움직여 다윗에게 진언하여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기게 했다. 그들은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이를 백성들 앞에서 널리 공포함으로써 기선을 제하였다. 아도니야의 일파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도망쳤다(왕상 1:49). 솔로몬은 즉위 후곧 아비삭의 일로 인해 아도니야를 죽이고, 아비아달은 부왕에 대한 공을 참작하여 사형에서 감등하여 고향으로 추방하였다. 시므이에 대해서는 부왕의 유지에 반하여 관대히 대하다가 회개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도 역시 죽었다(왕상 2장).솔로몬솔로몬

 

(3)왕으로서의 솔로몬:솔로몬은 다윗의 시위대에 옹위되어 기브온에서 등극하고, 아도니야 일당은 붕괴되어 그의 왕위는 공고해졌다. 때에 그의 나이는 20세쯤이었다. 그는 애굽의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왕상 3:1). 여호와께서 실로를 버리신 후부터 그 곳 성소에서의 예배는 중단되고 있었다. 당시 여호와의솔로몬의 놋바다전은 기브온에 있었고, 여호와의 법궤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백성들은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솔로몬은 기브온에 가서 거기서 여호와께 일 천 번제를 드렸다. 솔로몬은 겸손˙공의˙순결˙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대해 자유 선택을 허락하셨다. 즉, 여호와께서는 밤에 그의 꿈에 나타나시어 무엇이든지 바라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는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지혜를 구하였다. 그것은, 당시 백성의 재판을 행하는 것은 왕의 직무였기 때문이다. 그의 요구는 이루어졌다. "내가 네 말대로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거니와 너의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요구를 가상하시고,아울러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도 주셨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여호와의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酬恩祭)를 드리고, 모든 신복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다(왕상 3:5-15). 곧 그의 지혜와 공정한 재판을 보일 첫 기회가 왔다. 그것은 두창녀가 한 아이를 서로 자기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복잡한 사건을 보기 좋게 재판함으로 증명되었다. 즉, 이 두 창기가 같이 아이를 안고 자다가 한 여자가 잘못하여 자기 아이를 깔아 죽이게 되자 옆에서 자던 여자의 아이와 바꾸어 놓았다. 날이 밝자 산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하다가 마침내 이들은 왕에게 소송을 한 것이다. 솔로몬은 사건의 내용을 듣고는 칼을 주면서 살아있는 아이를 둘로 나눠가지라고명령했다. 그 결과 참어머니는 차마 자기 자식을 칼로 짜를 수 없어 상대 부인에게 아이를 가지라고 했다. 그것을 보고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어 그 여자에게 아이를 돌려 주었다는 것이다(왕상 3:16-28,대하 1:3-12). 이 명판결로 그의 지혜와 명성은 높아졌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즉위 제 4년 2월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착수하여 제 11년 8월 준공함으로서 약 7년의세월을소비했다(왕상 6:38). 열왕기상 6장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사용된 채석장은 그 성전 구조를 말하고 있다. 이어 약13년동안왕궁을지었다. 왕궁의 규모는 성전보다 훨씬 컸다(왕상 7:1-12). 이 건축을 위해 솔로몬은 특히 아도람을 공사의 감독관으로 임명하고, 그 수하에 3,300명의공사 감독, 3만 명의 역군, 7만 명의 담군(擔軍), 8만 명의 석공이 동원되었다(왕상5:13-18). 또 그는 국내 곳곳에 정원이나 과수원을 만들었다(전 2:5,6,아 8:11).공사가 완료되었을 때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각 지파의 두목들(족장)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성대한 헌당식을 거행했다. 그날 법궤를 지성소로 이동 안치하였으니, 480년 간 성막에 있다가 완전한 성전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와 온 회중이 우양을잡고 제사를 드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였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능히 섬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솔로몬은 위로는 하나님께 충실했고, 아래로는 부왕의 유지(遺志)에 순종하였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단 앞에서 

① 왕실의 영속, 

② 왕과 백성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의뢰와 

③ 공정한 판결을 위해, 

④ 그리고 패전하게 될 때와 

②한재(旱災) 때, 기근˙온역 때, 

⑤ 이방인의 기도, 

⑥ 출전 때와, 

] ⑦ 포로 되었을때를 위해 기도하고, 

⑧ 결론으로 자기와 백성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바란다는 긴기도를 했다. 백성을 향해서는 

⑨ 하나님은 신실하사 모세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심과, 

⑩ 열조와 같이 지금도 우리와 같이 하시기를, 

⑪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⑫ 하나님의 보호와 권위를 간구하는 축복과, 전심으로 여호와의 법도를 준수하라는 훈사를 했다. 이때 솔로몬의 거국적 대 봉헌식에는 북쪽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하수까지 전 국민이 14일 간이나 참례하였다. 이때 화목제의 희생은 소 2만 2천, 양이12만이니 명실공히 사상 최대의 낙성식이었다(왕상 8장).

 

(4)솔로몬의정책:솔로몬의 사업은 부왕 다윗이 착수한 사업을 계승하여 이것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공고히 된 권력으로써 이스라엘 전 민족을 통일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제 민족을 용케도 제압했다(왕상 9:20). 예루살렘 도성은안으로는 성전과 궁전이 건축되고, 밖으로는 성벽이 견고하게 축조되고, 밀로도 건축되어 위력이 더하여졌다(왕상 9:24,11:27). 또 국고성과 병고성(兵庫城), 그리고 마병의 성들을 요소 요소에 건축했다(왕상 9:19). 또 1만 2천의 마병, 1천 4백의 병거가상비되었다(왕상 4:26,10:26). 그의 영토는 대략 북은 유브라데 강에서 남은 애굽 지경까지 미치고,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이 창대해졌다. 주변 나라들은 조공을 바쳤다. 솔로몬의 1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 30석, 굵은 밀가루 60석, 살찐 소 10, 초장의 소 20, 양 100 기타 등등으로서 그의 번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대제사장˙서기관˙사관˙군대장관˙관리장˙제사장˙궁내대신 등 내각을 조각하고, 12지방장관도 새로 두었다(왕상 4:1-28). 그의 시대는 비교적 태평하였으므로 다윗 시대처럼 전쟁에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솔로몬은 전쟁의 용사로서는 묘사되지않았다. 그의 시대의 사건으로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에돔 사람 하닷의 난(왕상 11:14-22),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의 난(왕상 11:23-25) 및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난(왕상 11:26-40) 등인데, 모두 대군을 동원할만한 대사건은 아니었던 듯하다.솔로몬의 회랑X현대에 건축된 것으로 예루살렘에 있다.〉전쟁에 시간과 힘을 빼앗긴일이 별반 없었던 솔로몬은 타국과의 외교˙무역에 뜻을 써서 이것으로서 이득을 얻었다. 그는 남방의 패자(■者) 애굽과 수교하여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솔로몬이선민의 혈통주의를 떠나서 애굽 왕 이방인의 딸과 결혼한 것은 조상의 유훈과 민족 혈통상 찬성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가나안 족속에 대하여는 잡혼을 금했으나, 애굽에 대하여는 관대한 듯하다. 모세˙요셉˙아브라함(하갈) 같은 이도 애굽 여인을 취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솔로몬의 결혼은 애굽과의 국교 수호에 한 방편이아닌가 생각된다. 이 결혼에 의해 그는 애굽 왕으로부터 게셀을 예물로 받았다(왕상9:15-19). 또 많은 말과 병거를 애굽에서 얻고, 또 이것을 팔아 이익을 얻었다(왕상10:28,29). 그런데 여기 `애굽'으로 번역되어 있는 !yIr"x]mi (미스라임)을 북 수리아의 `무스리(Musri)'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 후 여로보암의 난 때에는 애굽 왕시삭은 오히려 솔로몬에 대하여 반도(叛徒)를 비호해 준 일도 있다(왕상 11:40). 또솔로몬은 유브라데 강가에서 애굽에 이르는 대상의 통로 길목을 이용하여 많은 이득을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김함의 대상의 여관도 그 당시 생긴 것이리라(렘 41:17). 애굽에 이어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과 수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하면, 그는히람의 딸도 아내로 맞았다고 한다(왕상 11:1,5참조). 이스라엘족과 히람과의 수교는 다윗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것으로서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한층 친밀의 도를 더했다. 솔로몬의 성전과 궁전의 건축에 있어서는 이 히람에 힘입은 바가 크다(왕상 5:1-12). 즉, 솔로몬은 히람 왕의 축하사(祝賀使)에 뒤이어 답례사를 보내면서, 부왕의성전 건축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부왕의 유지를 계승할터이니 레바논의 백향목의 벌채 허가를 요청했다. 히람은 솔로몬의 요청을 쾌락했으니 솔로몬의 외교에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은 그 대신 히람에게 그 궁전의 식물로 밀 2만 석과 기름20석을 주기로 약조를 맺었다. 레바논 산에서 베어낸 백향목이나 잣나무 등 재목은 욥바의 항구에서 예루살렘으로 운송되고, 또 많은 건축자와 석공 등이 히람에게 보내어졌다. 히람은 그밖에 솔로몬에게 다량의 금(120달란트)도 주었다(왕상 9:11-14). 솔로몬은 이에 대해 갈릴리 20성을 주었다.솔로몬의 성전 상상도솔로몬은 많은 성읍을 건설했다. 즉, 수도 예루살렘을 비롯하여하솔˙므깃도˙게셀˙바알랏˙다드몰 등이다. 이 제 성읍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가나안의 남아 있는 자손들을 노예로 썼다. 솔로몬의 이같은 국내 건설에 민중의 호혈을 착취한 결과는 왕국 분열의 실정이 되고 말았다. 상기한 바와 같이 솔로몬은 국내 건설 뿐만 아니라 외국 무역에도 착념하고 조선소를 홍해의 에스연게벨에 두고 조선에 주력하는 한편, 두로에서 선원을 고용하여 무역에서 제 1차로 오벨에서 금 420달란트를 획득하였다(왕상 9:15-28).

 

(5)솔로몬의 영화:다윗은 솔로몬에게 금 10만 달란트(1 달란트를 59kg로, 1g을 11,200원으로 계산하면 66조 8천만원), 은 100만 달란트(1g을 80원으로 계산하면 4조 7,200억원), 기타 놋, 철 등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물을 물려 주었다. 솔로몬의 세입금이 1년에 666 달란트였으며, 기타 제국으로부터 조공도 받았다(왕상 10:14,15). 솔로몬은 이것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거나 왕궁의 기구를 만들었다. 금 방패˙상아˙보좌˙정금 그릇 등이 그것이다. 스바 여왕을 비롯하여 열국의 왕과 기타 인사들이 솔로몬자신과 그의 지혜를 탐구하러 내방할 때 가지고 온 예물들은 금은 기명˙의복˙갑옷˙말˙노새 등인데, 일정수의 조공인 듯하다.솔로몬의 영화˙명예˙권세는 그 극에 달했다(왕상 10:14-25). 솔로몬은 그 거액의재화를 거의 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쓴 것 같다. 그는 성전과 궁전을 건축했을 뿐만아니라, 국내와 외국으로부터 많은 처첩을 맞고 그들을 위해서도 궁전을 지었다(왕상7:8). 솔로몬은 자기의 궁전을 짓는데 13년의 세월을 소비함으로써 성전보다(7년) 2배나 더 걸렸다. 얼마나 호화 찬란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재력과 인력, 그리고 시간을 정도 이상 낭비한 결과는 민중의 호혈을 착취한 것이 되어 후에 국토와 민족이 양분되고 말았다. 솔로몬이 자기 궁을 `레바논 나무 궁'이라고 하였다. 솔로몬의 다처주의는 그로 하여금 타락케 한 첫째 과오이다. 그는 후비가 700, 빈장(嬪■)이 300, 도합 1,000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대부분 이방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의 우상을 가지고 왔으므로 궁중은 우상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하나님께서는 왕된 자의 세 가지 금기 사항(말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말 것, 은금을 많이 두지 말 것. 신 17:14-20)을 명하셨던 것이다. 부왕 다윗도 이로인해 실패하여 꼬리를 이어 일어나는 가화(家禍)를 보고도 그 길을 갔으니 솔로몬은더 큰 죄에 빠졌다. 곧 우상숭배이니 여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왕위 피탈과 국가의분열로 징계를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즉위 후 24년에 그의 꿈에 다시 나타나,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따르면 그의 혈통에서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않을것을 약속하고, 또 엄한 경고를 주셨건만, 그는 이를 잊었던 것이다(왕상 9:1-9,대하 7:12-22).당시 유다족을 제외하는 이스라엘 나라는 지역별로 12로 나뉘어 각처에는 관장(官長)이 파견되어 각 관장이 왕의 생활을 한 달씩 교대로 맡아 보장하였다(왕상 4:7-19).이와 같이 솔로몬의 영화와 유다족의 특권적 생활의 반면에는 전술한 노동을 제공한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이스라엘족이 부담한 중세가 있었다(왕상 12:4). 이런 불평 불만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여로보암의 난이다(→왕상 12장). 이런 의미에서 솔로몬은이스라엘 왕국을 경제적˙사회적으로 파멸로 이끈 원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종교적 견지에서 고찰할 때, 솔로몬의 사업은 공과 상반하는 것이 있다. 장엄한 성전의 건축은 여호와의 종교가 가나안 사람의 종교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상징으로 되고,또 각처에 산재해 있던 소위 산당을 배제하여 유일한 중앙예배주의의 기초를 만드는결과를 초래하여 이스라엘 종교 사상 커다란 의의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그와 동시에, 솔로몬의 많은 처첩들의 자국의 종교를 이스라엘에 수입하여 이를 전파하여 여호와의 종교에 큰 장애가 된 것은 부정적 측면이 된다. 또 일단 솔로몬 왕조에대하여 반항심이 일어났을 경우 예루살렘 이외의 사람들이 용이하게 우상숭배에 빠질위험성이 상존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왕상 12:26-). 또 성전 건축에 따른 제사장제도의 발달은 선지자의 활동을 추방하게 했다. 나단이나 아히야 등의 선지자들이 이같은 경향에 대하여 적어도 의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6)솔로몬의 지혜:실례를 이미 든 바 있지만, 솔로몬은 특별한 지혜의 소유자였다(왕상 3:16-28). 그는 재판이나 정치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연구에도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잠언 3천을 말하였으며, 시가(詩歌)는 천 다섯에 이르렀다. 또 동식물학에도 조예가 깊어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돌담에 나는 우슬초와 동물˙조류˙어류에 이르기까지 실로 박학다식하였다. 이렇게 솔로몬은 외적으로 평화와 번영, 그리고 축복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지혜와 총명이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그 소문이 온 천하에 퍼져 군왕들이 내왕했는데, 스바의 여왕도 그 중 한 사람이다(왕상 4:29-34).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 뿐만 아니라, 그 시설과 부귀영화에 심취하여 일국의 왕으로서의 체면도 잊고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왕상 10:1-13). 그는 잠언은 물론 전도서와 아가서를 썼으며, 시편의 일부를 쓴 것으로 보인다.(7)솔로몬의 만년:솔로몬의 만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건설과 사치생활, 그리고 국민에 부과한 중세는 백성을 적지않게 괴롭혔을 것으로 상상된다. 여로보암의 난이 그 한 현상이다(왕상 11:26). 여로보암의 배후에는 이미 이스라엘에 대한 친선적 태도를 버린 애굽 왕 시삭이 있었다. 그는 르호보암 왕 제 5년에 예루살렘에 침입했을 정도이다(왕상 14:25). 동시에 그가 거느린 수많은 처첩 때문에 여호와의 종교에서 떠나는 자가 늘어나 종교적으로 난맥상태를 나타내는 경향마저보였다. 그는 우상을 위해 산당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왕상 11:1-8). 이 배교때문에 솔로몬은 징계를 받아 왕국의 대부분은 그를 떠나 극소수만이 남게 되었다(왕상 11:9-13).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에게 찢은 옷 12조각 중에서 "너는 열 조각을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라고 예언했다(왕상 11:28,39). 이렇게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대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으나, 그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기까지는 왕국 분열은 표면화하지 않았다. 후세에 이르러 예수님은 그에 대해 언급하여"솔로몬의 모든 영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를 평하는 가장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즉, 그가 사치를 다한 것이 그의 두 번째 큰 과오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은 중세에 허덕여 마침내 왕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렇게 반역의 씨가국민의 마음에 뿌려진 것이다. 솔로몬은 40년 간 통치하였다(왕상 11:42,43,대하 9:30,31). 그의 위는 아들 르호보암이 이었다(대하 9:30,31).수델라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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