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지혜 |
머 리 말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에 시가서 과목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시가서”라는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시와 노래”라고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가서라고 부르게 된 역사와 여러 관련문서들을 조사해 보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가서라는 말은 전문적으로 “히브리 시와 지혜문학”(Hebrew Poetic and Wisdom Literature)이라고 하지만 “시와 지혜”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에 시가서로 분류된 다섯 권의 책인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는 시와 지혜의 문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가서 가운데 욥기, 잠언, 전도서 이 세 권을 가리켜 “지혜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 것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설교를 준비하다가 Graeme Goldsworthy의 Gospel and Wisdom: Israel’s Wisdom Literature in the Christian Life (New South Wales: The Paternoster, 1987)라는 책을 읽고 난 뒤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시가서와 관련된 몇 권의 책들을 읽고 시가서를 보는 눈이 많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시편 강해서 1권인 『복 있는 사람』의 “머리말”에도 썼습니다만 오랫동안 시편을 읽고 설교하였지만 시편이 히브리 시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형식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 표현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생생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미학적인(aesthetic) 중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시편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제가 출강하고 있는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현대구약해석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계시의 전달방법인 문학적인 부분에 대하여 강의를 준비하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시편과 구약의 지혜서를 강의하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구약성경을 분류하여 모세오경과 역사서와 선지서에 대한 강의는 오랫동안 하였으나 시가서는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시가서”를 강의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았을 때 처음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당시에 제가 섬기는 목회현장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제 자신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화가 있었습니다. 시력도 약해졌고, 기억력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지난 2004년 필리핀의 한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갔는데 그 잘 보이던 히브리어 모음부호가 잘 보이지 않아 처음으로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에 약간의 신체적 변화와 함께 교회의 시험까지 겹쳐 이상한 무력감이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시편을 연구함으로 다시 연구하고 자신감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혹시 그 강의를 지금 다시 맡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여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편을 주로 가르침으로 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시가서를 강의하면서 많은 유익이 있었으나 2014년에 연구년으로 영국에 계셨던 신득일 교수님이 선교목회대학원과 신학과에서 “시가서” 과목을 가르쳐 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처음 시가서를 맡았을 때 가르치던 내용을 새로 다듬고 그 사이에 책을 읽고 연구하며 이미 강의했던 것을 많이 보완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가서 안에 “무엇을”(what) 기록하고 있는지 그 계시내용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어떻게”(how)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저의 학위논문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가서를 가르친 일은 제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저의 선배이면서 박사 과정에서 지도해 주신 신득일 교수님이 공교롭게도 약 7년 전에 연구년에도 히브리어와 히브리어 강독, 구약총론 등을 가르치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때도 저에게 많이 유익하였고, 당시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해서도 저에게 배우고, 지금까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득일 교수님이 저를 믿고 강의를 맡겨주신 것을 감사하고, 제가 여러 가지 약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대해 주신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쓸 때마다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일반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의 성장과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판단하시겠지만 저는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발생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항상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성도들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양육하였지만 그들이 가장 아프게 하는 아픈 체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어렵게 교회를 개척해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교회의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좋은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시가서의 특성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몇 몇 본문을 설교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특히 이 설교들은 제가 목회했던 교회와 여러 가지 교회적 상황에서 한 설교를 가감 없이 그대로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설교가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성경본문을 설교로 옮길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보이고 함께 토론해 보기 위함입니다. 이론만 설명하고 그 실제를 보이지 않는다면 때로는 이론이 공허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혁주의 교회의 설교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The minister of the Word of God)라고 한 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바르트가 한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할 때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사람이 변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은 저를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에서 가르쳐 주셨던 고재수(Nick Gootjes) 교수님이 보여주셨고,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시드니 크레이다누스의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학생신앙운동)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수님은 우리 대학원에서 헬라어와 조직신학 서론과 신론을 가르치셨습니다만 채플에서 하신 설교를 통하여 신학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여 청중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일이 우리 교단 교회와 한국교회에 더 큰 영향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한국에 계시면서 하신 설교가 『구속사적인 설교의 실제』(기독교문서선교회, 1987)로 출판되어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고, 여러 편의 논문도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큰 유익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성경을 읽을 때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여서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계시의 말씀을 주실 때 어렵고 복잡하게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복음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성경을 인간이 다양하게 쓴 문학을 읽듯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읽어도 그 말씀이 가지는 신비롭고 이상한 세계를 접하게 되고,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새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가서를 읽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고 구원을 얻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생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이 점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시와 지혜(시가서 강의)|작성자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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