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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을 중심으로한 챨스 피니 이해

하나님아들 2021. 8. 29. 16:00

 

성화론을 중심으로한 챨스 피니 이해

 

                                         이 종진 (서울장신대학교)

 

1. 논문의 목적

 

    교회사의 인물들에 대해서 서로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챨스 피니만큼 서로 상반되게 평가하는 예는 드물다 하겠다. 챨스 피니는 주로 칼빈주의자들에게서는 이단에 해당하는 용어인 펠라기안으로 평가를 받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흥운동 지지자들과 성령운동 지지자들에게는 굉장히 좋게 평가를 받고 있다. 피니의 이해에 차이가 나는 결정적인 문제는 피니에게 있어서 피니의 어떠한 주장을 핵심적으로 보는가 하는 데에 있다. 그의 인간 이해를 중요하게 본다면 그는 논란의 여지없이 펠라기안이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학자는 위필드(B. B. Warfield)이고 유명한 설교자인 로이드 존스(D. M. Lloyd-Jones)도 이 해석을 따르고 있다.1) 그러나 피니에게서 성령의 세례를 중요하게 보는 학자들은 피니를 펠라기안으로 보지 않는다. 이의 대표적인 학자는 티모디 스미스(Timothy L. Smith)이며2) 존 그레샴(John L. Gresham, Jr)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3) 

    필자는 이 문제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주제가 그의 성화론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논문은 챨스 피니를 그의 성화론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를 해 보려고 한다. 그의 성화론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성화론은 인간의 자연적 의지의 능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성령에 의한 성화를 동시에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챨스 피니의 신학을 이해한다고 하지 않고 챨스 피니를 이해한다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피니는 신학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활동과 회고록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성화론은 단지 위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피니에게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피니가 평생을 통해서 목표로 삼은 것이 개인과 사회의 성화이다. 피니가 목회 사역의 초반에는 회심을 모든 활동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1836년 이후에는 그의 관심과 설교의 목표가 성화로 바뀌었다. 회심을 일종의 완전치 못한 성화로 본다면 그의 생애 전체를 성화를 추구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화는 피니를 전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2. 피니를 이해하기 위한 원칙

 

    역사상의 한 중요한 인물을 연구하는 것이 교회사 연구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 인물을 어떻게 연구해야하는가 문제는 대체로 많이 논의되어 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르고자 한다. 첫째로 부분적인 것은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말은 피니의 어느 한 부분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거나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거의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그 내부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인격적인 통합이 없다면 그는 정신 분열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정신 분열적인 사람이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일은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한 주장은 그 사람의 전체적인 사상의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원칙이 피니 연구에는 적용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피니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어느 한 부분을 연구하고 그를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 논문은 피니의 전체적인 사상의 맥락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두 번째로 모든 사람의 사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당연히 후에 주장된 내용들이 성숙된 사상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전에 주장했던 내용을, 외부의 비판에 답변하면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여러 부분적인 사상들의 통합성를 추구하면서, 수정하거나 더 완전한 체계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주장이 무엇인가를 연구할 때 그의 성숙한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 초기의 주장을 그의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논문은 피니 연구의 기본적인 자료를 1852년에 발행된 그의 조직신학과 말년에 쓴 그의 회고록을 피니 사상의 근간으로 삼고 연구를 하려고 한다. 피니는 그 이전에 쓴 많은 글을 썼고, 구두로 한 강의가 기록되어 책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가 최종적인 그의 주장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전에 발간된 책이나 조직신학 외에 설교들도 자료로 사용된다. 설교를 특별히 사용하는 것은 피니는 역사적으로 신학자보다는 설교자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니의 조직신학의 경우 주의해야 될 것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많이 보급이 된 것은 1878년 판 조직신학이다. 이는  1852년 판을 그의 후임으로 오버린(Oberlin)대학의 학장이 된 훠어챠일드(J.H. Fairchild)가 축약한 것이다. 내용을 바꾼 것은 아니고 반복되는 논의를 뺀 것이다. 그러나 피니 자신이 축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1878년 판은 피니 연구에 있어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성화론의 경우 1852년 판은 17장으로 되어 있는데, 1878년 판은 4장으로 되어 있다. 1852년 판이 저자가 쓴 마지막 최종판이다. 따라서 그 책을 가지고 연구를 하여야 한다.

 

3. 피니 신학의 출발점

 

 

    인물연구에서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그의 가정적 배경과 교육받은 배경이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인이 된 과정과 경험이 중요하다. 그의 신학의 출발점은 거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 피니의 가정적 배경과 받은 교육

 

 피니는 적어도 1639년 이전에 영국에서 이주해온 앵글로 색슨계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 죠시아(Josiah)는 1756년에 회중 교회를 자기 지역에 설립했던 사람이다.  피니는 1792년 8월 29일 할아버지 때부터 거주한 것이 분명한 코넥티커트주 리취필드(Litchfield)의 와렌(Warren)에서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피니의 아버지는 농사가 생업이었고 가난했던 것으로 피니의 전기 작가 배실 밀러(Basil Miller)는 말한다.4) 

    출생 2년 후(1794) 미국에서 그 당시 서부로 이동하는 대이동을 따라 피니의 부친은 이웃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살림살이를 싣고 허드슨 강 건너편 아직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황무지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뉴욕주 오네이다(Oneada)군 브라더 타운으로 갔다가 인디언들의 정착문제 때문에 다시 하노버(Hanover)로 옮겨갔다. (후에 이곳 지명이 킬크랜드(Kirkland)로 바뀌었다). 그 곳도 황무지였는데 거기서 16세때(1808)까지 정착하였다. 피니는 거기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14세대는 1806년부터 2년간 클링톤(Clinton)에 있는 해밀톤 오네이다(Hamiltion Oneida Academy)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후에 번창하여 해밀톤 대학이 되었다. 피니는 그 학교의 교장이며 교수인 세트 노턴(Seth Norton)에게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를 배웠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웠다.5)

    16세 때인 1808년 그의 가족은 뉴욕주 제퍼슨(Jeffersdon)군의 헨더슨(Henderson)으로 다시 이주하였다. 피니는 그 곳 지방학교에서 4년 간 교사로 가르쳤다. 20세 때(1821년)에 공부를 더하기 위해 혼자 출생지인 코넥티커트 와렌으로 와서 삼촌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는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예일대에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결국 가지 않고 예일대 출신인 그곳 교사에서 2년 간 개인 지도를 통해서 공부를 하였다. 피니가 예일대에 가지 않고 개인지도를 받은 이유를 그의 교사가 "대학을 졸업하려면 4년이 걸리지만, 그 학교에서 하는 전 과정을 2년이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낭비다."6)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피니가 예일대를 가지 않은 이유는 실제 돈이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피니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그 교사가 지정하는 과제를 받아 가지고 공부를 했다. 피니는 이런

 

식으로 2년 간 배우면서 가르쳤다.

    1814년부터는 뉴저지에 있는 학교에서 가르쳤다. 4년 후 와렌에서 피니를 지도했던 교사가 남부로 가서 학교를 운영하지고 제안을 하였는데, 어머니의 병환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의 의견을 따라 가족이 있는 제퍼슨군으로 돌아왔다. 그 후 부모의 권유에 따라 1818년(26세)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아담스(Adams)의 벤자민 라이트(Benjamin Wright)법률사무소에 들어가 일하면서 법률을 공부하여, 2년 후 변호사 자격을 얻었고 변호사 조합원이 되었다. 피니는 아담스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1821년(29세)에 회심을 하게된다. 그의 성장과정을 정리하면, 그는 그 당시로는 서부 개척지에서 성장하였고, 그의 전직은 교사와 변호사이다. 그리고 그는 초등학교와 해밀톤 아카네미에서 공부한 것 이외에는 개인지도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공부한 것뿐이다.

 

  2) 회심에 이르는 과정

 

    피니는 아담스 마을로 온지 3년 만인 1821년 10월 10일에(29세)회심을 하였다. 자신은 회고록에서 "나는 25세 때 법률을 배우기 위하여 아담스로 오기까지 신앙에 대해서는 이교도만큼이나 무지했었다"7)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의 신앙을 형성하는데 어린 시절에 영향을 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피니 자신의 말로는 "부모는 둘 다 신앙을 공언한 사람은 아니었다"8)라고 말한다.  피니가 살았던 지역은 교회가 없고 가끔 순회정도자가 와서 설교했던 지역이다. 이들 순회전도자들은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피니가 매주 교회에 참석해서 설교를 듣기 시작한 것은 아담스에 왔을 때부터이다. 그곳에는 프린스톤 대학 출신이며, 후에 존 낙스( John Knox)대학을 설립한 조지 게일(George Gale)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었다. 게일 목사는 피니에게 성가대 지휘를 맡겼기 때문에 피니는 매주 교회를 나갔다.

    피니가 회심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피니 자신이 성경책을 읽어 본 것과 아담스 지역에서 제데디아 버카르트(Jedediah Burchart)라는 평신도에 의해서 일어난 부흥이다. 피니는 회고록에서 그 지방에서 일어난 부흥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을 하지 않는다. 피니가 아담스 지역에서 일어난 부흥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워필드가 말하고와 있는데9) 피니 회고록에서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다. 피니가 성경책을 읽은 것은 법률을 공부하는데 모세 법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는 법률적인 관심을 가지고 성경책을 읽은 것이다.

    피니는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성경책을 읽으면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

 

느 시점 이후로 아담스 교회 교인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영혼의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했다.10) 이때가 1819년인데, 위필드는 "1819년 아담스 지역에서 65명의 회심자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11)고 말한다. 피니는 이때부터 도전을 받아 고민하며 성경책을 읽었는데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821년 여름 게일 목사는 병든 누이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갔고, 교회는 임시 제데디아 버카르트라는 사람에게 맡겨졌다. 이때 다시 부흥이 일어났다. 이런 부흥의 상황에서 피니는 "나는 나의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하다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기로 마음에 결심했다"12) 피니 회고록의 가장 큰 결함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을 극소화시키는 경향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주로 자신이 성경을 읽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회심을 한 것으로 말한다.

    1821년 가을 어느 주일날 저녁 무슨 설교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나는 나의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하다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기로 마음에 결심했다. 피니는 이 주간 월요일 화요일 양일간 고민을 하다가 수요일 날 숲 속에 기도하러 가서 신구약의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들을 "틀림없는 진리로 거짓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장으로 받아들였다"13)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사무실 방에서 성령 세례(baptism of Holy Ghost)를 받은 것을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난로 옆에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나는 강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그런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에  생각해 본적도 없고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성령은 나 의 몸과 영혼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나에게 임하였다. 나는 나를 통과해 지 나가는 전류와 같은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그것은 사랑의 물결 같았고  다른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숨결 같았다. 그것은 커 다란 송풍기로 나에게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던 것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속에  흘러 들어가는 그 놀라운 사랑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기 쁨과 사랑으로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무엇을 말해야 되는지 몰랐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감격으로 인하여 문자 그대로 울부짖었다. 이 물결이 나에게 밀 려 오고 또 밀려오고 하였기 때문에 나는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물결이  계속 내게 밀려온다면 나는 죽을 것입니다. 주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 죽음의 두려움은 없었다14)

 

    여기에서 피니는 회심 다음에 성령의 세례를 경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성령은 사랑을 넣어 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3) 피니가 받은 신학 수업

 

     피니는 정규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피니는 회심 이후 2년 후인 1823년 12월 30일 아담스에서 개최된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노회에서 전도사 자격(licence to preach the gospel)을 얻고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하지 않았다. 회심한 다음해인 1822년 봄 세인트 로렌스 노회에 목회자 후보로 등록하여 노회의 지시에 따라 게일 목사와 보드만 목사에게 지도를 받은 것뿐이다. 그가 왜 신학대학을 가지 않았는지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몇몇 목사들이 나에게 프린스톤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였으나 나는 거절했다. 그 들이 왜 프린스톤에 가지 안냐고 물었을 때 경제적 사정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나의 경비를 돌봐 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계속  가기를 거절하자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이 받은 영향 밑에 들 어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15)

 

    피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 상이  프린스톤 출신 목회자와 맞지 않았다.16)고 말한다. 이 당시 피니가 그의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들의 설교에 대한 비판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피니는 목회자들이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 어리석은 변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 식으로는 사람을 얻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호소해온 식대로 만약에 변호사들이 법정에 서서 자기의 소송 의뢰인의 무죄를 위해 변호한다면, 그는 단 한 건도 승소를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7)라고 피니는 말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피니는 그 당시 설교에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피니는 게일 목사의 서재에서 개인지도로 신학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피니가 게일 목사가 전해주는 프린스톤의 신학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일 목사는 피니에게 " 피니씨, 나는 당신이 나와 더불어 신학을 배웠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될 것에 대해 심히 부끄럽게 생가하오"18)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피니 자신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그가 직접 성경을 읽음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아주 중요한데 피니는 평생 자신이 처음 성경책을 읽은 관점 즉 법률적인 관점에서 성서을 해석한다. 이 점은 피니 신학에 대한 가장 본격적인 연구서를 낸 웨들(David L. Weddle)의 기본 논지이다.19) 피니에게서 뉴 잉글랜

 

드 신학의 내용이 많이 나타나 있지만, 그의 신학의 출발이 법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성서라는 것은 웨들에 의해서 잘 논증되고 있다. 다만 웨들의 문제점은 피니가 성령의 체험을 그의 신학에 포함시키려 했다는 점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니의 사고의 독창성은 뉴 잉글랜드 신학의 역사를 연구한 포스터(Frank Hugh Foster)에게도 인정되고 있다. 그는 "피니가 보통 생각되는 것같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고는 출발부터 강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20)고 말한다. 드럼몬드(Lewis A. Drummond)도 "법은 아마 그의 접근방식의 가장 중요한 기초"21)라고 말한다. 피니는 회심 후 어떤 소송 사건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자 " 나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소송을 변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당신의 소송을 맡을 수 없습니다"22)답변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의 평생 사역을 대변하는 말로 볼 수 있다. 즉 피니의 설교가 초기에 성공을 거둔 한 요인은 하나님이 의롭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변론했기 때문이다. 1830년 10월 로체스터에서 피니가 설교하는 것을 들은 변호사이며 언론인인 헨리 스탄톤은( Henry B. Stanton)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것은 설교라기 보다 변호사가 재판관과 배심원 앞에서 소송을 변론하는 것 같 이 들렸다. .... 그의 말은 논리의 연속이었고 예증에 의해 명백하게 되었다. ... 그 의 방식은 특별히 변호사들에게 매력적이었다.23)

 

    피니는 설교를 하면서 회개하라는 요청에 사람들이 핑계를  대며 저항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핑계를 대항하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그의 신학의 출발에 있다. 그의 신학은 설교자로서 사람들에게 하는 요청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 있다.  피니 신학의 출발은 두 가지 요소이다. 하나는 복음 사역을 법정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 사람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워놓고 율법의 준수를 요청하는 하나님이 정당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유죄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의 법에 따라 살게 하려는 것- 둘째는 그가 체험한 성령세례의 경험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요소에서 청중들은 배심원도 되고 피고발자도 된다. 이 송사를 이기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은 상식적 이성에 의한 판단이다. 피니는 상식적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도 사람들이 죄인인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책임은 능력을 전

 

제로 하기 때문에 인간이 유죄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능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데, 이를 지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죄인은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의를 행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피니에게 무능은(inability) 하지 않으려 하는 것에(unwillingness) 불과 하다.24)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이 하지 않으려는 것을 하도록 설득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만일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베풀어주는 호의로서의 은혜가 될 수 없고, 통치자로서 마땅히 해 주어야 할 공의이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해주어야 은혜가 은혜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초기부터 후기까지 초지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다.   피니의 조직 신학은 이러한 출발점에서 테일러(Nathaniel W. Taylor)의 신학을 대체로 받아 들였다. 따라서 그의 조직신학은 역사적으로 그다지 중요성을 갖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들어 있는 성화론은 중요성을 갖는다. 이는 그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 째 요소인 그의 성령체험은 그의 평생에 걸쳐서 존재하는데 후기에 새롭게 경험한 것이 있다. 이는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오는 성화로  피니는 생애 후반에 가서야 이러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25) 따라서 성령체험은 초기와 후기의 경험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피니의 사상에 있어서 인간의 능력에 관한 부분은 변화가 없지만, 성령의 관한 이해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피니가 성령의 작용을 설득적이라고 보는 것은 초기나 후기나 차이가 없다. 위필드는 피니가 성령을 이렇게 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26) 그러나 성화에 관련 되서는 그가 새롭게 경험하는 요소들이 있다. 피니가 설득적이라고 할 때 이는 합리적인 것을 말한다. 죄인들의 핑계가 불합리하고 하나님의 요청이 합리적인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을 말하며, 이를 이성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주로 설교자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화에 와서는 합리적인 것이 아닌 그리스도에 관한 영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피니는 다음과 같이 초기와  후기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시인한다.

    피니는 1845년 1월 29일에 오버린 전도자(Oberlin Evangelist)에 투고한 글에서

 

          " 나는 처음 설교를 시작했을 때 부흥에 관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나는  단지 매우 제한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부흥에 관한 나의 성숙한  경험과 확신들을 말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방법과 영에  있어서 몇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을 나는 나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통해서 지적하기를 원한 다."27) 

 

 

    그가 지적하는 잘못은 여러 가지 인데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이다.

 

          "많은 경우에 기독교인과 죄인의 마음에 역사 하는 하나님의 영향력의 필요성 을 충           분히 강조하지 못했다. 죄인들과 타락한 사람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호소와 안식           처를 격파하기 위해 죄인의 자연적 능력에 너무 지나친 강조하고, 성령의 영향력           과 하나님 은혜에의 의존의 성격과 범위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무시했다. ...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와 강력한 역사의 필요성을 알지 못한 채 흥분을 시키           는데 사용된 방법에 의해서 흥분하고 소망을 얻고 있다"28) 

 

4. 피니에게 있어서 율법의 이해

 

    피니의 신학 전체와 성화론에서 피니의 율법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는 기독교의 전체를 설명한 다음의 설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통치자와 시민의 최고의 복지를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 수립된 정부가 있다고 합시다.       이 정부의 수반이 자신의 전부-부, 시간, 정력-를 최고의 공공의 유익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실현하는데 투자했다고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가능한 최상의 법률을 제       정하려고 합니다. 그 법률은 준수되기만 하면 군왕과 신민 양자의 최고 유익을 보장해       줍니다.29)

 

    피니는 하나님을 통치자로 보고 있으며, 모두에게 최고의 유익을 가져오려고 한다는데 하는 목표에 그의 사랑이 표현되고 있고, 이를 실현하는 가장 지혜롭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율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율법의 준수는 그에게 필 수적인 것이다. 그는 율법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최고의 보편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것의 주되고       궁극적인 목적은 엄격히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충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기 보다      모든 도덕적 지성적 존재의 최고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의      전부의 이익 말입니다.30) 

 

    따라서 율법에 대한 순종은 인간편에서 반듯이 해야할 필수적인 것이다. 회심

 

과 성화 둘 다 이 법에 대한 순종이다. 다만 성화는 전적으로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성숙한 단계를 의미한다.

 

5  피니가 성화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피니가 성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니 자신의 말로는 10년 간의 부흥운동을 한 후에 뉴욕에 정착해서 일을 하기로 한 즈음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첫째는 자신의 믿음과 사랑에 있어서 안정성(stability)이 부족하다는 것과 신자들이 은혜 안에서 별로 진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31) 그는 신자들이 알 수 있는 더 높고 더 지속적인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 더 차원 높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인을 세워주기 위해 복음이 어떤 약속이나 수단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숙고했다. 그래서 감리교의 견해를 검토해 보았는데, 피니는 처음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은 성화가 감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32) 피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화에 관련된 책을 읽고, 성경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때 또한 피니의 성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 생겼는데 나중에 완전주의자(The Perpectionist)라는 잡지를 발간한 노이즈(John Humphrey Noyes)를 만나서 성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건이다. 노이즈는 1811년 버먼트의 브래틀보로(Brattleboro) 출신으로 다트머스 대학을 1830년에 졸업했고, 그 후 회심을 하였다. 목회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애도버 신학교와 예일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는 1834년 자신은 죄 없는(sinless) 상태라고 선언했고, 완전주의와 재림에 관한 견해 때문에 예일대에서 축출되었다. 그는 뉴욕으로 갔고 윌즈(Charles Weld)의 제안으로 피니를 방문했다. 처음에 피니가 여행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지만, 후에 만나서 몇 시간동안 면담을 하였다. 노이즈는 반율법적인 성화를 가르쳤다. 후에는 오네이다 공동체를 만들었고  복합결혼(complex marriage)등을 주장했다. 그가 피니의 기도 동료인 내쉬(Father Nash)의 제자인 보일(Boyle)과 함께 문서들을 제작해서 오버린 대학의 학생들이 읽게 되었다.33) 사람들은 이러한 운동이 피니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니는 성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6. 성화론의 형성과정

 

    1) Lectures to Professing Christians에서 주장된 내용들

 

 

    피니가 성결에 관한 최초의 주장내용은 1837년 뉴욕의 교회에서 행한 일련의 강의에 들어가 있다. 이는 'Lecture to Professing  Christian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34) 그 책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강의가 19번째에 들어가 있다. 이 강의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첫 번째는 웨슬리의 책이고 또 하나는 그 자신의 경험이다. 그는 그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니는 뉴욕에서 지냈던 마지막 겨울에(1836-1837), 자신의 영혼이 새롭게 힘을 얻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마음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게 한 후, 주님은, 가끔 그랬던 것처럼, 나를 넓은 곳으 로 데리고 가셔서 내 영혼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신의 경험에서 얻었다고 말하 는, 그러한 신적인 감미로움(divine sweetness)을 주셨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철 저하게 깨어졌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상당한 기간동안 내 자신 의 죄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으로 몹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그 해 겨울에는 자주 있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  특권과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증가되었으며, 나의 영적인 능 력은 새로워졌다.35)

 

    이러한 배경에서 피니가 주장한 한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두 가지 의 완전을 가지고 계신데 이는 자연적(natural)완전과 도덕적(moral)완전이다. 하나님의 자연적 완전이란 하나님의 성품, 존재를 구성하는 것으로, 영원성, 불변성, 전능성 등을 말한다. 이러한 완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완전은 유혹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요구되는 완전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도덕적 완전도 아니다. 기독교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도덕법에 대한 완전 순종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법은 완전하고(perfect), 사욕이 없고(disinterested), 편협하지 않은(impartial), 호의(benevolence)로서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님같이, 우리의 분량 내에서 완전해야 한다.36) 이런 의미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 땅의 삶에서 얻을 수 있다.37) 성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는 거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거룩을 요구하실 때 부분적인 거룩을 요구했겠는가 하고  질문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을 약속하셨다. 거룩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약속된 가장 큰 축복이다. 그는 벧후 1;4를 인용한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성화의 목적으로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사용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38) 에스겔 36:25-27은 복음의 큰

 

축복을 약속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에게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에게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또한 예레미아 33:8에도 똑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악에서 사할 것이라"  그리스도가 오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을 성화 시키기 위한 것이다.39) 그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한다는 것은 완전 성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40) 믿는 자 안에서 완전한 거룩은 성령의 목적이다. 거룩하게 되라는 모든 명령들, 약속들, 예언들, 축복들, 심판들, 종교적 의무들은 성령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데 사용하는 수단들이다.41) 만일 거룩이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복음의 동기들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거나, 성령의 능력 부족이다.42)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성화와 거룩하게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셨다. 사람들은 결심이나 행위를 통해서 거룩을 추구한다.43) 그러나 믿음이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정결케 한다. 우리가 사는 삶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야 한다. 성령은 조명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임 충만으로 우리 영혼을 채우시고, 인도하시고, 거룩케 하시고, 감성을 일깨우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44)

    피니는 1837년에 이미 그가 주장하는 성화론의 골격을 다 형성하였다. 즉 신,구의 계약과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피니와 웨슬리의 완전론은 그 근본에 있어서 거의 차이가 없다. 약간의 차이가 난다면 웨슬리는 주로 신약을 내용을 많이 인용하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주장하는데 비해서, 피니는 구약의 약속을 중요하게 지적한다는 점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뉴 잉글랜드 신학 계열의 용어, 특히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의 용어로 정의한다는 것뿐이다.

                     

2) 'The Promise of the Spirit' 실린 내용들

 

    피니는 오버린 대학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오버린 전도자'(Oberlin Evangelist)라는 신문에 1839년 1월 1일부터 1839년 12월 18일까지 24회에 걸쳐서 2주일에 한 번씩 24회 강의를 '지극히 크고 놀라운 약속들'에 대해서 연재했다. 이 내용을 티모디 스미스가 '성령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에 책으로 출간했다.45) 이 글에서 피니는 구약에서 완전성화와 성령이 약속되어 있고 그것이 신약에

 

와서 성취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실현해야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전하고의 차이는 성령의 세례를 성화와 강하게 관련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연재를 하는 끝에 가서  쓴 목회자들에게 글에서  신자들에게 회심 후에 성령의 세례를 추구할 것을 가르쳐야 된다고 주장한다.  성령의 세례는 기독교인 성품(character)의 안정성의 비밀이라고 말한다.46) 피니는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점에서 스미스는 피니의 성화론은 웨슬리와 계약신약의 종합이라고 주장하며 피니는 성화론을 성령론적 언어로 설명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내용은 피니의 최종적인 견해가 아니다. 피니가 이 시점에서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영향력에 자신의 영혼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화로 제시된다. 그가 우리를 성결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분 자신이 우리의 성화이다. 믿음은 내주 하시는 구주로(이는 문자적으로 사실이다), 다스리시는 왕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모든 자발적인 능력을 그의 신적인 통제 안에 내어놓는 것이다. 주님은 성령에 의해서, 그리고 그의 진리와 설득하는 영향력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인도하고, 지시하신다. 그가 우리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서 거룩을 산출하는 것은 주님의 존재와 작용 때문이다. 그의 성화가 수동적으로 즉 전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즉 우리의 능력들을 그의 통제 안에 자발적으로 드림으로, 그의 성화와 생명의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피니는 신앙이라는 것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따라 전가를 수동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거부한다. 피니가 강조하는 것은 자발성이다.47) 피니의 강조가 다시 나오는데 우리 자신의 작용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영향력아래서도 자유롭고, 전적으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도덕적 즉 설득하는 것이며, 그의 영향력은 믿음에 의해서만 받아 들여 지는 것이다. 피니는 물리적 즉 강제적인 영향력을 반대한다. 즉 불가항력적 은혜를 거부한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은혜를 거부하고, 설득적인 은혜를 따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믿음으로 그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48)

           두 개의 계명(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전체이다.49)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아야 된다. 하나님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50)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51)  이웃 사랑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고 모든 사람은 형제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모든 개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52)

 

     죄는 하나님의 법에 반대되는 마음의 상태이다. 이기심은 죄이다.53) 법 아래 있다는 것은 행위의 계약으로서의 법에 종속된 것을 말한다. 은혜의 계약아래 있다는 것은 법의 계약아래 있다는 것과 반대이다. 은혜의 계약은 선물로서의 구원의 모든 축복을 제공한다. 은혜의 계약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적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고, 은혜에 의해서 자극된 사랑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로부터 계속적인 생명과 영향을 받는 것이다.54)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 자신보다는 후손과 기독교 교회를 위한 것이다. 가나안에 대한 일시적 소유에 관한 부분도 그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히 11:13도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약의 그리스도인에게 속한다고 말한다. 렘 31:31-34의 새 계약도 그렇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2:39-40의 말씀도 그렇다. "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겔 36:25-27도 그러하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로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우리는 계명을 지킬 수 없고, 은혜만이 우리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만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55))  성도들이 이 땅의 삶에서 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면, 성도가 성화 될 것이라는 것을 성서로부터 믿을 이유가 없다. 교회의 성화를 위해 준비된 것들은 이 땅의 삶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수단들이 영원한 세계까지 있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56)

    새 계약은 약속들의 성취이다. 옛 계약은 거룩한 마음을 요구하였다. 새 계약은

 

이 거룩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옛 계약아래서 순종은 형벌에 의해서 강요되었다. 새 계약은 성령에 의해서 마음 안에 이 순종을 산출한다.57) 옛 계약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의 작용을 요구하였으나, 새 계약은 성령에 의한 효과적인 성화이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 성령의 약속을 받아들일 수 있다. 새 계약은 성령의 효과적인 내주이며, 이는 율법 혹은 옛 계약이 요구하는 바로 그 기질을 산출한다.58) 새 계약은 외적인 교훈이나, 외적인 어떤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 되어진 내적인 성결이다.59) 그리스도는 영혼에 들어오셔서, 거기에 거주하시고, 마음에 사랑의 법을 쓰시고, 육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그 영혼과 새 계약을 맺으시고, 전체 도덕적 존재에 신적인 영향력을 쏟으신다.60)

    옛 계약은 어떤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61) 그러나 새 계약은  그 자체가 완전하다.62) 새 계약은 성령에 의해서, 복음을 도구로 해서 마음에 이루어진 것이다.63)하나님이 복음에서 목적하시는 것은 옛 계약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고, 사랑의 법에 합치되게 하려는 것이다.64) 약속의 성취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이해하고, 믿는 것에 달려 있다.65)                 

  3) 조직신학에  나타난 내용

 

     피니는 성령 세례의 체험을 한번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계속 새롭게 주어지는 성령 세례의 경험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843년 겨울 보스톤에서 집회를 준비하며 피니는 다시 새로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을 말한다. 그 때의 상황은 집회를 성공적으로 하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밀러가 재림의 날짜를 주장하는 것이나 보편주의자들의 주장이 득세하고 있었다. 그는 교회의 능력 부족을 다시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었고 , 성경에서의 약속과 성취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그러한 약속을 따르는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지적 헌신, 이는 전적인 헌신을 위한 고투를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 때까지 내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높은 의미에서, 또 그 때까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의미에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기(consecrate)위한 투쟁을 하였다".66) 그 때 특별히 피니의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상태에 있었다.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해서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이 완전히 선하고 지혜롭다는 확신 속에서 모든 것을 맡기는 경험을 한 후에 피니는 마음에 기쁨이 샘솟게 되었고, 이러한 것은 더욱 발전되어 갔다. 그는 "이때쯤 내 영혼은 마치 그리스도와 혼인한 것같이 느껴졌다"67)고 말한다.

    피니는 한 번의 경험이 아닌 여러 단계의 경험을 거쳤다. 그러한 경험들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확신으로 나아가게 했고, 결국 하나님의 완전한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경험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배후에는 성령이 있고, 성령은 그 이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성화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가 말년에 쓴 회고록에 따르면 성화에 관해서 그가 실재적으로 경험한 것은 신앙의 자유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신앙적 낙관과 지속적인 믿음과 넘치는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며, 이는 지속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68)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피니는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주장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존재로 남는다. 성령에 대한 강조보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로 나갔다. 결국 피니의 최종적인 결론은 그리스도의 내주 혹는 연합에 의한 성화이다. 그러나 피니는 성화를 그렇게 정의하지 않고 성화를 도덕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라고 정의를 하며, 이를 가능케하는 조건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야기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점에서 피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성화라고 정의를 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도덕법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라고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의 조직 신학의 전체가 도덕법에 대한 순종이라는 주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관성에 그렇게 정의한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성령의 체험을 거기에 덧붙이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점이 피니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피니는 철저히 법정적인 성서 이해를 초지일관하게 붙잡고 있고, 성령체험에 의한 요소를 후에 덧붙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피니가 이 책에서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다.

      피니는 성화에 이르기 위해서 믿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성령의 약속을 믿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다.69) 성령이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어야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데, 성결은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화가 되기 때문이다.70)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서 완전히 마음의 눈이 감겨져 있다.  이 신령한 비밀들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다룰 수 없는 것이며, 영적인 진리가 그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영적인 세계가 영혼 속에 계시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고집에 묶여서 노예상태에 있는데, 이에서 풀려 나오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 속 사람에게 주시는 계시가 필요하다.71) 죄는 감성의 영향을 받는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 육신의 의지는 완전히 억제되든지 혹은 세상과 및 사간과 감성의 대상을 향하여 죽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을 돌아보고,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에 계시해 주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이런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하고 또 우리에게 나타내는 성령을 통해서 비로소 용이하게 해결 될 수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므로 우리가 그를 마음에 보좌 위에 영접하게 되며 전 인격을 통해서 통치하시도록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모든 의지와 지성과 감성이 완전히 그에게 헌신될 때 성령께서는 자신의 명료한 계시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발전시킨다.72)

    우리에게 빛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것을 공급하실 분은 성령이며, 성령은 다음의 사실들을 비춰 보게 하신다.

1.우리 자신 및 우리가 지은 죄들과 그 죄의 본성과 사악함은 물론 무서운 저주가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2. 우리가 영적으로 연약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주로 이것은 아래와 같은 원인이 그 배후에 있다.

    1) 육신적인 부정함이나 성격의 불건전한 개발

    2) 이기심에 몰두하는 아집

    3)세상과 육신과 사단으로부터 받는 시험의 위력등

3. 하나님의 성품, 그의 통치하심의 특성, 그의 법의 순수성 및 구속의 사업의 필요성과사실성을 깨닫도록 가르치는 성령의 빛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4. 영적이고 실제적인 성령의 모든 사역과 제반 관계에 있어 그리스도룰 배워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깨달음.

5.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구원이라는 명확한 믿음을 우리 속에 심어 주는 능력에 있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

6.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73)

    피니는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왕되신 그리스도, 중개자 되신 그리스도,변호사 되신 그리스도, 구속자 되신 그리스도,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 개혁자 되시는 그리스도, 화목제 되시는 그리스도,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그리스도,의롭다하시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슬픈자 되신 그리스도, 치유자 되신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는 그리스도, 통치자 되시는 그리스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전는자 되시는 그리스도, 평강의 왕되시는 그리스도, 구원의 대장이 되시는 그리스도, 유월절이 되시는 그리스도, 지혜되시는 그리스도, 성화 되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화이심을 계시해 줄 때 성령은 우리를 성결케 한다. 성령은 자신에 관한 것보다도 그리스도에 속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영혼의 구속되시는 그리스도, 선지자 되시는 그리스도,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74)

    피니는 이러한 것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떤 사고나 개념을 갖는 것과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다고 주장한다.75)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결은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생명의 관계가 각 사람 영혼 속에 계시되고 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온전한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서만 얻어 진다는 사실에는 전혀 소경이라고 말한다. 결국 피니는 그리스도와의 하나되는 연합을 성결의 방법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전에는 그리 많이 강조되어 있지 않던 내용들이다.  또한 인간의 영적 무지나 스스로 죄에 노예되어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그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자기 자신의 현실과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며 그렇게 될 때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영광에 대해서 장님이 될 수 밖에 없다"76)고 말한다.

 

7. 결론

 

    1. 피니의 신학은 성경의 법정적 이해와 성령의 체험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의 신학의 주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의한 통치이며, 피니는 여기에 성령의 역사를 덧붙이려는 시도를 하였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초기부터 있지만 후에 와서 특히 성화론에 와서 강조되었다.  피니가 부흥이나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부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의 회고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의 회고록은 자신의 일생에 대한 회고록이 아니고 부흥의 역사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는 그 책 전체에서 부흥은 성령의 부으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그 내용을 자세히 진술하고 있다. 다만 성령의 역사를 죄인의 내부에서 역사하는 것을 말한다기 보다 설교자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을 더 많이 강조하고 있다.  워필드도 피니가 성령의 세례를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점을 간과하는 것은 피니가 성령을 중생시키는 분으로(Regenerator) 보고있지 않고 다만 인도자로 보기 때문에 그는 실제적으로 성령을 신학에서 채용하고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77)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성령의 역사는 어떠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성령의 역사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 피니는 초지일관 되게  의지의 능력을 주장을 했지만, 후에 성화론에 와서는   인간의 의지가 스스로 노예 되어 있다는 것을 조직신학에서 말하고 있다. 인간이 의지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성령이 영적인 지식을 줄 때 스스로 벗어나야

 

되는 것을 말한다.  피니 는 육적인 인간은 영적인 실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므로, 인간의 무능을 새롭게 인정한다. 즉 의지의 무능을 부정하지만 영적인 인식에 대한 무능을 인정한다.

3.    피니는 그의 성화론에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성화를 하나님에 대한 헌신 혹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조건으로 성령의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바뀐 것이다. 차라리 성령의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성화라고 주장하고- 사실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화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결과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이라고 주장했어야 했다. 성령과 그리스도에 대한 역할이 보조적인 것처럼, 이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제공이 됨으로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만 주장되고 있다. 이점에서 피니는 실패를 하고 있고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피니가 성령의 역사를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못된 비판이다.

4.    피니에게  역사적으로 그의 성화론 보다는  부흥론이 더 성공적이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그의 후기 견해인, 성령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첨가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더군다나 후대에 그 내용이 들어 있는 1852연판 조직신학이 출판 된 것이 아니고, 그 내용들이 빠져 있는 1878년 판 훼어챠일드가 편집한 조직신학이 출판되고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8. 참고도서

 

Cox, Lee George. John Wesley's Concept of Perfection. 김 덕순역. 『존 웨슬리의             완전론』.서울: 은성,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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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_  Memoirs of Rev. Charles G. Finney. New York: A.S.               Barnes & Co.,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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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oyd-Jones, D. M. , The Puritans, 서문 강역 , 『청교도 신앙』.서울: 생명의 말             씀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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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 Timothy L. " The Doctrine of Sanctifying Spirit: Charles G. Finney's                Synthesis of Wesleyan and Covenant Theology" in Wesleyan                 Theological Journal vol. 13(spring, 1 978), 웹사이트                         http://wesley.nnc.edu/theojnl/

Warfield,, Benjamin B.  Perfectionism .Philadelphia: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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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dle, David L.  The Law As Gospel : Revival and Reform in the Theology              of Charles G. Finney. Metuchen: The Scarecrow Press Inc., 1985

 

 

                                                           


1)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챨스 피니 같은 사람의 생각 속에 그러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는 성령을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성령을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피니는 회심의 역사가 합리적 논증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봅니다." D. M. Lloyd-Jones, The Puritans, 서문 강역 , 『청교도 신앙』(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7), p.30.

2) Timothy L. Smith ed. The Promise of The Spirit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 Inc, 1980), p.23.

3) John L. Gresham, Jr, Charles G. Finney's Doctrine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Inc, 1987), p.13.

4). Basil Miller, Charles Finney (Minneapolis: Bethany House Publishers, 1942), p.9.

5) Lewis A. Drummond, The Life and Ministry of Charles G. Finney (Minneapolis: Bethany House Publishers, 1985), p.34.

6) Charles G. Finney, Memoirs of Rev. Charles G. Finney (New York: A.S. Barnes & Co.,1876), p.5. 이후로 Memoirs 로 표기.

7) Memoirs, p.7.

8) Memoirs, p.4.

9) Benjamin B. Warfield, Perfectionism (Grand Rapid: Baker Book House, 1958), p.15.

10) Memoirs,  p.9.

11) Benjamin B. Warfield, op. cit , p.9.

12) Memoirs, p.12.

13) Ibid.

14) Memoirs, p.20.

15) Memoirs, p.45.

16) Ibid., pp.45-46.

17) Miller, op. cit., p.33.

18) Memoirs, p.41.

19) David L. Weddle, The Law As Gospel : Revival and Reform in the Theology of Charles G. Finney (Metuchen: The Scarecrow Press Inc, 1985), p.13. 웨들은 피니의 신학을 법적 질서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20) Frank Hugh Foster, A Genetic History of the New England Theolog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07), p.453.

21) Drummond, op. cit., p.223.

22) Memoirs, p.24.

23) Edward R. Foreman ed., Publications of the Rochester Historical Society (Rochester: The Rochester Historical Society, 1925), pp.288-289., Drummond, op. cit., pp.139-140에서 재인용.

24)  Charles G. Finney, Crystal Christianity (Pittsburgh: Whitaker House, 1985), p.258.

25) Memoirs, p.380. 

26) Warfield, op. cit. p.175.

27) Charles G. Finney, ed. by Donald Dayton, Reflections on Revival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 Inc., 1979), p.11.

28) Ibid., pp.17-18.

29) Charles G. Finney, ed. by Louise G. Parkurst, Jr, Principles of Victory (Minneapolis: Bathany House Publishers,1981), p.74.

30) Ibid., p.80.

31) Memoirs, pp.339-340.

32) Ibid, p.340.

33) Keith J. Hardman ,op. cit, pp.325-327.

34) 이 논문에서는 David L. Young이 편집해서 Crystral Cristianity(Pittsburgh:Whitaker House, n.d.)로 발간한 책을 이하에서 페이지만 표시한다.

35) Memoirs, p.341.

36) pp.254-255.

37) p.257.

38) p.261.

39) p.262.

40) p.264.

41) p.264.

42) p.265.

43) p.270.

44) p.271.

45) Timothy L. Smith, The Promise of the Spirit (Minneapolis: Bethany House Publishers, 1980). 이하 페이지만 표시하기로 한다.

46) p.262.

47) p.38.

48) p.39.

49) p.68.

50) p.75.

51) p.76.

52) p.82.

53) p.117.

54) p.119.

55) p.135.

56) p.144.

57) p.148.

58) p.150.

59) p.154.

60) p.156.

61) p.157.

62) p.158.

63) p.161.

64) p.162.

65) p.164.

66) Memoirs., p.375.

67) Memoirs, p 378.

68) Memoirs, p.381.

69) Charles G. Finney, Lectures on Systematic Theology (London: William Tegg, 1851) 필자는 이 원문을 웹문서로 www.dragonfire.net/~fires/stcon.htm에서 얻어서 사용하였으므로, 장과 각 장의 페이지로 그 위치를 표시하기로 한다. Ch. LXII: 6.

70) Ch. LXII: 7.

71 Ch. LXIII: 2.

72) Ibid.

73) Ch. LXIII: 3.

74) Ch. LXIII: 3-12.

75) Ch. LXIII: 7.

76) Ch. LXIII: 8.

77) Warfield, op. cit.,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