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학
제1장 서 론
A. 연구의 의의와 목적
한국교회에서 ‘牧會者 像’은 다분히 구약적이며 특히 제사장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제단’,‘제사’,‘제물’ 이라 는 말을 상징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예배용어로 사용하며, 또한 제사장적인 역할과 그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우고 몇몇 목회자들은 제사장들이 했던 병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을 지나치게 행사함으로 거기에서 야기되는 부작용들을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목회자들이 가장 성별 되어야 할 제사장의 모양은 있고 사모하지만 실제생활에 있어서는 제사장적인 규범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이고 비성서적인 자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중심, 성경중심의 목회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여겨진다. 물론 목회자의 인식이 나빠지는데는 일반교인들의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 일반세상인들의 무시나 불신앙적 비판, 질시도 그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목회자가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牧會者 像’ 을 정립한다는 것은 시기 적절하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람직한 목회자 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從으로서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치며 다스리는 靈的牧者와 監督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從으로서의 바람직한 牧會者 像’ 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중심으로 밝혀보려는 것이다.
성경에서 본 ‘하나님의 從으로서의 牧會者 像’ 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제시하신 목회자의 자격을 온전히 구비하고 그의 직무를 생명바쳐 수행하며, 하나님이 주신 리더쉽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목회는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아 온전히 구원 얻게 하는 것 ’ 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목회자가 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로서의 昭命의식이 투철해야하고, 성경에 제시된 목회자의 자질들을 모두 갖추어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목회자에게 필요한 리더쉽을 주셨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것을 잘 개발하므로 그의 목회사역은 더욱 성숙해지고 더 풍성한 열매들이 맺혀지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통해서 1) 목회자란 누구인가?
2) 목회자의 자격은 어떠한가?
3) 목회자의 직무와 수행방법은 어떠한가?
4) 목회자의 리더쉽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를 밝히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성경적인 참 목회자 像’ 은 이것이다 라고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의의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B .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상을 신.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성경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從 - 指導者’로서의 목회자의 모범이 되신다. 그는 섬기는 자로서 오셨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으뜸이 되고자하면 남의 從이되며,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마20:26-27). 그의 사명이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서 희생적 죽음을 죽는 것이듯이(막10:45), 그의 일생전체가 섬기는 從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섬기는 종으로서의 삶이 그가 구세주임을 증거 하였으므로 그는 ‘從 - 指導 者’로서의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성서의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성서의 제 인물들 가운데서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종과 지도자로서의 여러 자질을 목회자의 자질로서 적용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종과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한 사람들을 대표적으로 두 사람만 택하라고 하면 구약에서는 모세와 신약에서는 바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從- 指導者(Servant-Leader)’ 의 목회자상을 우리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본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하여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 서론에서는 연구의 의의와 목적 그리고 연구방법과 범위 등을 논하였다.
제 2장은 본 논문의 주제인 ‘牧會者 像’ 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목회자가 누구인가를 고찰하되,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와 성경적 의미 및 성경에 나타난 Minister의 종류와 특성을 다루었다.
제 3장은 목회자의 資格을 밝히기 위해서 목회자의 昭命과 證據에 대하여
그리고 신. 구약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의 資質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제 4장은 목회자의 職務를 설교자, 교사, 상담자, 행정가로 나누고 이 직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를 4가지로 구분하여 신. 구약을 중심으로 논하였다.
제2장 牧會者란 누구인가?
‘목회자’ 가 누구인가? 를 알려면 먼저 목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1) 왜냐하면 목회자는 목회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회라는 말은 목사(牧師)의 ‘牧’ 2)자와 교회(敎會)의 ‘會’ 자가 연결된 단어로서 ‘목회’ 는 목자가 양을 치는 것같이 목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신자들을 진리로 가르치며 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3).
따라서 목회자란 목자가 목장에서 양을 치고 기르며 다스리고 보살피듯이, (영적인 목자인 목회자가) 영혼의 목장인 교회에서 양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지도력으로 설교하고 교육하고 지도하며, 보살피고 다스리고 양육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요 봉사자인 것이다.
Thomas C. Oden은 목회자가 목회의 정의를 내리려고 할 때에 만약 그리스도의 목회와 무관하게 정의한다면 이는 가지에서 잘려 말라버린 나무 잎과 같게 될 것이며(요15:1-5)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될 것이라(마15:14)고 하면서 목회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목회자는...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부름 받아 안수식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하나님의 자기노출에 전적으로 응답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하도록 따로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하나의 구성원이다.4)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목회자란 말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한다.
A . 牧會者 의 어원적 의미
목회자란 말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사용어로서 영어에는 Minister, Pastor, Bishop 등, 세 가지의 낱말이 있다.5) 그러면 이 낱말의 어원적 의미를 하나씩 구분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Minister
이 용어는 라틴어 Minuere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본래 그 말은 ‘가장 적다, 저하시키다, 감소시키다, 일과(Lesson)' 등의 뜻을 나타내며 그 말이 동사 Ministrare로 쓰여져서 ‘섬기는 것’(to serve), ‘종속되어지는 것’(to be Subordinate)이란 뜻으로 통용되어 거기서 Minister라는 말이 된 것이다.6) 그리고 이 말은 신약에서 세 가지의 다른 헬라어 어휘를 번역한 것인데 첫째는 διακονοs(Diakonos)로서 ‘노동자, 집사’ 뜻이 있고, 다음은λειτουργοs(Leitourgos)로서 ‘공공 봉사자, 일 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며, 그 다음은υπηρετηs(Huperetes)로서 ‘제 2인자, 보조자’ 란 의미가 있다7)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말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Diakonos는 그 유래가 확실치 않다. 로버트슨(A.T.Robertson)은 그것을 Dia(통해서)와 Konis(먼지)의 합성어로, 봉사 하기 위해 서두르느라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사람으로 본다.8) 테이어(Thayer)는 이를 거부하는데, 그는 이것을 Diako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9) Diako는 Dioko와 동류어인데, 과제나 목표를 추구하는데 근면하고 신속한 것을 암시하는 뜻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Diakonos 를 주인 격인 다른 사람의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봉사자를 대표한다” 고 결론을 내렸다10) 결국 이 말의 최종적인 의미는 사실상 똑같다. 예수는 명예나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봉사하는 일 그 자체가 기쁨이기에 바로 그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셨다(마20:26). 같은 본문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교역을 말하는데 Diakoneo라는 동사를 쓰셨다(마20:28, 참조5:8). 또한 이 말은 보통 ‘從’에 대해서도 씌어져있는 말로11) ‘하인’(요2:5,9), ‘섬기는 자’(마20:26, 23:11 ; 막9:35,10:43, 요12:26) 등으로 쓰여지고, 특별히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일군을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롬16:1;고후3:6,6:4,11:15,23;엡3:7,6:21;골1:7, 23,25,4:7;딤전4:6).
2) Leitourgos는 신약성경에서 이 말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으로 쓰였다(롬13:6,참조, Diakonos로 롬13:4). 또한 하늘의 성전에서 사제직을 맡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히8:6,참조,1:7).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이라고 이 말을 한번 썼다(롬15:16).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공중예배와 복음의 공중선포를 인도하는 두 가지 개념을 내포한다.12)
3) Huperetes는 ‘아래’ 를 가리키는 헬라어 υπο(hupo)와 ‘노 젖는 사람’ 을 말하는 ερετηs(eretes)의 합성어로서, “아래의 노 젖는 사람” 을 뜻한다.13) 따라서 시중드는 종이나 하인을 의미한다.14) 그리고 이 말은 다른 사람 밑에서 시중드는 하인이나 공무원에 적용되어 왔다(참조,마5:25,26:58). 그리스도인 이라는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 으로서 자기와 아볼로를 가리키는데 썼다(고전4:1). 더우기 이 말속에는 종속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밑에 있는 일꾼들이거나 ‘양의 위대한 목자’ 이신 우리 주 예수 밑에 있는 하층 목자이다(히13:20). 게다가 바울은 Huperetes를 “청지기:οικονομοs”(딛1:7;벧전4:10), 또는 “하나님의 신비를 돌보는 사람”(House Mansger)과 같은 말로도 사용했다.
그러므로 Minister란 말속에는 하나님의 종, 일군, 청지기 등으로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케 된다. 구약에서는 Minister란 말의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 중에 폭넓게 쓰여지고 있는 ‘(Ebed)’ 는 “남을 섬기고 쓰이는 일에 종사하는 자를 총칭” 하는 말로서 구약에 799회 씌어 있다.15) 성서에서는, 이스라엘(사4:8), 아브라함(창26:24), 모세(출14:31), 여호수아(수24:29), 다윗(삼하3:18); 왕상3:6), 선지자 아히야(왕상14:18), 선지자(왕하9:7,21:10), 욥(욥1:8), 이사야(사20:3), 스룹바벨(학2:23), 바울(빌1:1), 야고보(약1:1), 베드로(벧후1:1), 유다(유1:1), 요한(계1:1) 등 하나님의 일의 대행자로 택함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고있다(시105:42,등).
이처럼 Minister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본이 되어야함을 이 말의 어원적 고찰을 통하여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우기 Minister로서의 목회자는 성찬을 집행하는 자 곧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교인들에게 상징적으로 공급하는 봉사자이기도 한 것이다.16)
2. Pastor
이 용어는 ‘보호한다’(to Protect)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된 헬라어 ποιμην (Poimen)에서 번역한 말인데, 기본적으로 ‘목자’ 를 뜻한다. 또한 이 용어는 ποιμην 과 같은 뜻인 라틴어 Pastores에서 유래되었다.17) 그리고 이 용어는 신약에서 18회나 사용되었는데, 8회는 양의 ‘목자’와 관계되는 것으로(마9:36,25:32;막6:34;눅2:8,15,18,20;요10:2), 7회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마26:31;막14:27;요10:11-2,14,16), 1회는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말하는 것으로(히13:20), 또 한번은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쓰여졌고(벧전2:25), 이 용어가 ‘목사’ 로 번역되어 유일하게 쓰여지는 것은 신약 전체에서 단 한번 나타나는 엡4:11이다.18) 그러나 이 용어의 동사형인 ποιμαινω (Poimaino)는 신약에 11회가 나타나는데 4회는 다스린다는 뜻으로(눅2:6;계2:17,12:5,19:15), 1회는 양을 친다는 말로(눅17:17,참조,고전9:17), 또한 한번은 자기의 양을 먹이시는 어린양으로(계7;17), 그 외에는 유다서 1장 12절을 제외하고 “그리스도의 무리를 먹이시는 영적 목자”(요21:16;행20:28;벧전5:2)로 쓰여지고 있다.19)
구약 성경에는 ‘목자’ 란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1) ‘ (Anshe Miqneh)’ : 이 말의 의미는 “가축의 사람들” 인데 “목축업으로 사는 자”(Keepers of Cattle)로 개역 되어 있으며, 요 셉이 친형제를 바로에게 소개할때 사용한 표현이다(창46:32,34).20)
2) ‘(Boqer)’ : 이 말은 ‘묻다, 구하다, 찾다’ 는 뜻의 ‘ (Baqar)21)’ 에서 유래된 것으로 ‘목자’ 를 의미한다.22) 그리고 이 말은 아 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그가 가졌던 직업을 가리키는 말로 단 한번 사용되었다 (암7:14) 23).
3) ‘ (Noqed)’ : 이 말은 아카이어의 ‘Neqidu’ 에서 온 것으로 ‘양 사육자’ , ‘양 관리자’(감시인), ‘목자’ 등의 의미가 있다. (왕하 3:4;암1:1).24) 그리고 이 말은 ‘목자’(Shepherd)로 번역되어 아모스의 직업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고 또 한번은 모압 왕 메사에 대하여 “양을 치는 자”(Sheep Breeder)로 번역 되어있다.25)
4) ‘ (Roeh)’ : 이 말은 ‘돌보다, 기른다, 풀을 먹게 한다, 친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 (Raah)’ 의 분사인데 명사로서 취급되며, ‘ 목양자’를 의미한다.26) 이 말은 구약에 인용되어 있는데 한글 개역에는 ‘목자’ 로 거의 번역되어 75회나 쓰여지고 있다.27) 또한 이 말은 형용 적으로 지배자에 대하여 쓰여졌다(사56:11;렘3:15;겔34:2;슥10:3,11:5,13:7).28)
위를 정리하면 Pastor라는 말은 목자가 양을 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을 먹이고, 치고, 다스리시는 영혼의 큰 목자로서 지칭하는데 대부분 쓰여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엡4:11에는 목사로 번역되어 유일하게 쓰여지는데, 이를 통해서 목자로서 큰 목자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의 양 무리를 먹이고, 치고, 다스리는 목회를 하는 자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어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기의 양을 먹이시는 분으로 묘사될 때에도 이 용어가 쓰여졌음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계7:17).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 혹은 일군 및 청지기로서 뿐만 아니라 양을 보살피는 목자로서의 직능이 있으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3. Bishop
이 단어는 교회 곧 양떼를 인솔하여 다스리는 ‘감독’ 을 뜻한다.29) 그리고 이것은 헬라어인 ‘επισκοποs(Episkopos)’ 와 라틴어인 ‘Episcopus’ 의 대응어이다. 70인 역은 이 말을 교회, 국가, 군대의 ‘감독권’ , ‘감찰’ ,‘조사’ (민4:16,31:14) 등의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30) 고전적 헬라어에도 나타난다.31) 또한 이 단어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의 성직의 지위에 있어서 성직자의 최고의 지도자로 일컬어진다.32) 그런데 현재 감리교회에서는 최고의 지도자를 ‘감독’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 용어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으로서의 목회자의 의미로 지칭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본다.
신약 성경에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벧전2:25)” 라고 그리스도 자신에게 적용되어 쓰여지고 있으며 바울 서신에는 ‘장로(Presbuteres)’의 의미로 자주 언급된다.33) 이렇듯 ‘목회자’ 란 말을 영어의 Minister, Pastor, Bishop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고, 또 그 셋을 한꺼번에 사용해서 나타내는 삼중 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34) 왜냐하면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Minister는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며 봉사자인 동시에 ‘성찬을 집행하는 자를 의미’ 하는데 이처럼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그리스도의 몸을 영적으로 공급하는 신령한 봉사자라는 의미에서 ‘목회자’란 단어 속에는 얼마든지 Minister라는 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Pastor 는 ‘목자’ 라는 뜻인데 ‘목회자’ 는 목자가 양을치는것 같이 목회자도 교회를 진리로 가르치며 기르는 영적인 목자인고로 Pastor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Bishop은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으로서 ‘목회자’ 가 하는 일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니 ‘목회자’ 란 칭호는 우리만의 기쁨이요 자랑이라 하겠다.35)
B . 牧會者의 성경적 의미와 명칭
앞에서 우리는 목회자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이런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를 성경에서는 ‘목자와 양’ 의 관계 속에서 찾게된다. 또한 목회자의 이런 직능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의 양 무리를 보살피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따라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는 상호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양’ 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 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또한 양 무리는 교회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목자와 양’ 과의 관계성을 말할 때 요한복음 10장과 시편 23편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먼저 요한복음 10장을 퀘일 감독(Bishop Quyle)이 “신약에 있는 목자 시편(The Shepherd Psalm)의 대헌장” 이라고 주장했듯이36)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 된 모든 목회자들의 모델로서 ‘선한 목자 상’ 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음으로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이다. 그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는 목자로서(삼상16:11)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능력을 행하기도 했던(삼상17:34-6),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다(삼하2:1-4,11). 그런데 그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고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일과 델리취는 시편 23편을 “압살롬의 치하에서 반란이 있었던 때에 속하는 것”37) 이라고 했는데 그런 상황 하에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다윗이 여호와를 찬양한 것은 과연 여호와께서는 양을 만족시켜 주시는 완전하신 목자이시며 그는 여호와께 속한 양으로서 선한 목자의 모든 은택을 받아 누리며 모든 면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모든 목회자의 모범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며 또한 그의 보살핌과 인도하심을 받는 행복한 양을 바라보게 된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기들만 위하고 양들을 괴롭히며 파멸의 길로 몰아 넣었던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고 명령하시면서(겔34:1-10),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모아 좋은 꼴로 먹이고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다(겔34:11-16).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선한 목자이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다윗이 여호와를 가리켜 ‘목자’ 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확증되었는데, 그가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요10:14), 양과 함께 있으며(눅22:27), 양 무리보다 앞서가며 인도하고(요10:3-4), 양을 보호하고(요10:10), 양들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한다(요10:11,15,17,18).38)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 하셨으며 그의 양들을 인도하는 목회자(牧者) 들이 되게 하셨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요21:15)”, “내 양을 치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요21:17)” 고 세 번이나 목양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목양을 명령받은 베드로는 ‘장로’ 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 하였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고 세움을 받아 그의 양들을 목양 하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영혼의 목자임을 명심하여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목회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바쳐 우리를 충성 되이 여겨 맡겨주신 그의 양 무리를 두렵고 떨리는 심정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스리고 먹이고 보살피고 양육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성경적 목회자가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목회자의 진정한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목회자와 관련된 다른 많은 명칭들이 나타나 있는데,39) 이 명칭들을 목회자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치리하는 목자와 감독으로 정리 할 수 있다. 또한 이 목회자는 교사, 전도자, 청지기로서의 사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명칭들을 7가지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종 혹은 그리스도의 일군(고전4:1;고후3:6;빌1:1).
2)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는 자이므로 목자(벧전5:2-4).
3) 그리스도의 교회와 교인들을 치리 하는 자이므로 장로 혹은 감독(벧전5:1-3; 딤전3:1-2).
4) 하나님께서 보낸 자이므로 복음의 사신(使臣) 혹은 사자(계2:1;고후5:20).
5) 교훈하고 가르치는 자이므로 교사(딛1:9;딤전2:7).
6) 복음을 전하는 자이므로 전도자(딤후4:5).
7) 주인의 위임을 받아 일하는 자이므로 청지기(눅12:42;딛1:7;벧전4:10).
이상의 명칭들을 요약하면, 목회자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치리하는 목자와 장로 혹은 감독이며, 또한 그는 교사, 전도자, 청지기 등의 사명이 있음을 알게된다. 특히 목회자와 관련된 다른 명칭들 중에서 “청지기: οικονομοs” 란 명칭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수 가 있는데, 그것은
1)수탁자로서의 청지기
2)수호자로서의 청지기
3)사도적 가르침의 전승자로서의 청지기
4)경영자로서의 청지기이다.40) .
청지기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수탁자이다(고전4:1). 또 청지기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움을 지키라” 는 수호자이다(딤후4:8,13). 그리고 청지기는 사도바울이 선한 청지기로서 그가 가르친 바를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사도적 가르침의 전승자’ 인 것이다(딤후2:2). 더우기 청지기는 예수님께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의 복” 이 있으며,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고 하신 것처럼(눅12:42,44), 청지기는 경영에 참여하여 효율적으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적 창조주시며 만물의 소유주이시다(창1:1;시24:1;학28:8;요1:3).41)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언젠가 결산할 날이 온다는것을 기억하고(롬14:12), 몸, 시간, 봉사, 재물, 복음 등의 청지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야만 한다.
C . 성경에 나타난 Minister 의 종류와 특성
구약시대에 나타난 목회자상은 시편 23편에서 제시된 목자로서의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선지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從-指導者’ 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12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그 후 바울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런데,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 혹은 일군으로서의 직분들을 보면 구약에서는 족장들, 민족 지도자들, 사사들, 왕들, 제사장들을 들 수 있고 신약에 와서는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사와 교사를 들 수 있다.
1. 구약
구약의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적 직분들은 신약의 목회자와 동일시 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가지고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의 일면들을 살피면서 목회자의 그 특성을 밝혀보려고 한다.
a. 족장들
하나님의 택한 자손에게 하나님의 종 또는 지도자로서 목자의 역할을 한 족장은 아브라함(창18:19)과 요셉(창37:2) 등을 들 수 있다. 42) 족장들은 가정의 ‘재판관’(참고,창21:,22:,27:)이며 하나님과 종족들 사이의 제사장으로서의 직권이 주어졌다.43)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예배했으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각기 자기 가문의 수호신으로 삼았다.44)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은 족장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게된다(참고,창12:2-3,18:18,26:4,28:14).
b. 민족의 지도자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지도자로서 Minister의 역할을 한 지도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출3:1-10)와 여호수아(민27:18-23;수1:1-9)를 그 백성들의 지도자요 목자로 세우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는 임무가 주어졌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송들과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c. 사사와 왕들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이 주어지고, 그 힘에 채워져 활약한 사람들로서, 주위에 있는 나라들의 압박에 의한 위기에 처하여 군사적 지도를 한 군사 지도자이고, 평시에는 백성을 다스려 인도한 정치적 지도자이다. 그들의 기능은 첫째, 자기 민족을 원수들의 압박으로부터 영웅적으로 구원했다는 점과 둘째, 왕국을 세우지 않고 죽기까지 집정관으로서 지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45) 시편2:10에 보면 이들은 왕과 대등한 권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참조,호7:7).다음으로 왕직은 제사장 직분, 선지자 직분과 아울러 봉사직 이었다.46)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관리하고 보호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최초의 적극적인 왕인 다윗은 하나님의 권위와 지도력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태도와 뛰어난 통치에 의한 나라의 번영으로 인해, 그는 후에 이스라엘 왕의 이상상(理想像)으로 되었다.
d. 제사장, 선지자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회중이 바로 하나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들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것이 곧 목회였기 때문에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에 나타난 목회자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 47)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과 하나 돠어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로서48) 그의 직무는
1)여호와 앞에 있는 성소와 재단에 쓰이는 일(민16:40,18:5),
2)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대하15:3;렘18:18;겔7:26;미3:11),
3)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우림과 둠밈에 의해, 출28:30;스2:63),
이 밖에도 소송을 취급하고 전쟁시에는 양각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메는 일, 또는 문둥병자를 식별하는 일 등을 임무로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직분을 행하게 하셨다(출18:1).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외에 선지자들을 세워서 백성들을 돌보게 했다. 선지자(豫言者)들은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불러모으고 구속 주의 강림을 선포함으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다.49)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범죄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사1:8).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는 선지학교를 세우고 목회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50) 나단과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들(예: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을 위한 특별 목회를 했다. 더우기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리는 당시의 백성들의 그릇됨을 지적해 주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양들을 지도하게 하셨다(말1:7-14).
2. 신약
신약 성경에 있는 Miister 의 종류는 첫째로 사도, 다음은 선지자, 세째는 복음전하는 자, 네째는 목사, 끝으로 교사라고 부른다(엡4:11). 이 중에서 끝에 있는 둘만이 교회내의 평상직이요, 처음 셋은 주께서 그의 나라의 초창기에 세우셨고 필요에 따라 가끔 부활시키신다. 51)
a. 사도들(Apostles)
사도란 명칭은 엄격하게 구분하면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열 두 제자와 사도 바울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교수가 지적하듯 사도는 바울을 도와서 복음에 수종든 사도적인 사람들과 사도직의 은사와 은혜가 아울러 부여된 사람들까지도 일컬어진다.52) 그리하여 사도들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바나바와 다른 동역자들을 포괄하여 지칭한다. 53)
사도들이 하는 일의 성격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마28:19;막16:15). 주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자기를 본받아 그의 몸과 피의 거룩한 상징인 떡과 잔을 분배하라고 명령 하셨다(눅22:19-20). 여기서 “사도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신성불가침의 영원한 법이 부과되었고, 이 법에 의해서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성례를 집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54)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우신 사도들은 온 세상에 복음의 교리를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었다. 55)
b. 선지자들(Prophets)
신약성서에서도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56) 이 선지자들로 말마암아 교회의 덕을 위하여 말하는 은사는 크게 발전되어 졌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비밀을 계시하거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는 도구로 쓰여졌던 것이다. 57) 또한 그들은 단지 예언자들로 불리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때로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는 현재 없거나 아니면 옛날같이 흔히 볼 수 없다.58) 그들의 일은 교회에 있어서 다만 어떤 하나의 신분이지 ‘직분’은 아니었다.59) 여기서 비밀을 계시하는 것은 교회 안에 영속하고 있으며 이는 개혁교회에 의해서 명백하게 승인되어 졌다.60)
성경은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고 했다.
c. 복음 전하는 자들(Evangelists)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을 새로운 곳에 전하는데 그들을 선교사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61) 사마리아에서 첫번째로 복음을 전한 빌립(행 8:6-14)은 가이사랴 해안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행8:40).62) 그리고 그 다음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에바브라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골1:7, 4:12). 또한 마가, 디모데, 디도, 등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같이 복음전하는 자들로 알려 졌는데 그들은 사도들과 동행하면서 때론 특수선교를 위해 파송 되기도 했으며 더우기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도 주었으며 장로들을 세우고(딤전5:22;딛1:5),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했던 것이다(딛3:10).63)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움직였던 힘은 그들과 동행하시는 주님의 선물(은사)과 성령의 능력이었던 것이다.64)
d. 목사와 교사
목사와 교사는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책들이다. 칼빈은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믿는다고 한다. 교사들은 제자훈련이나 성례집행이나 경고와 권면하는 일을 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 만을 맡았다. 이는 신자들 사이에 건전하고 순수한 교리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목사직은 이 모든 의무를 겸한다.65) 따라서 목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으로 권면 하고(딛1:9)”, 참된 경건을 가르치며 거룩한 성례를 위해서 사역하는 일을, 목사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양떼를 위해서 일 해야하는데, 66) 이것이 바로 그가 받은 직분이다.
이상과 같이 목회자란 누구인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와 성경적 의미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른 명칭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목회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에게 맡겨진 주님의 양 무리를 목자와 감독의 위치에서 진리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다스리는 직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는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다스릴 때에 부득이 함이나 더러운 ‘利’ 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종-지도자로서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목자의 본을 보여 주셨듯이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즐거운 뜻으로, 또는 ‘從’ 의 정신으로 항상 양 무리의 본이 되어 그들을 다스려야 하며, 더우기 목회자는 양떼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에서 본 하나님의 종, 혹은 지도자로서 牧會者 象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경의 지도자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從’ 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양떼를 다스리는 지도자로서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없고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그들을 섬기고 자기의 몸을 그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바람직한 목회자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이러했다. 그는 양떼를 섬기려하고 자기 몸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로 내어주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막10:45).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모든 지도자와 목회자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상을 발견할 수 가 있고, 또한 그 모델을 제시할 수 가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런 목회자의 자격이 어떠한가를 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목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 4 장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용어만 간단히 설명한다.
2) ‘牧’ : 칠 목, 기를 목, 다스릴 목, 맡을 목, 살필 목, 목장 목
3)김병원, ?목사학? (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p. 11.
4) 토마스 C. 오덴, ?목회신학? 이기춘 역 (서울: 한국 신학연구소, 1986), p. 89.
5) 박아론, “성서의 목회자상,”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편 ?성서와현대목회? (서울: 유니온 학술자료원, 1982), p. 425.
6) 황의영, ?목회학? (서울: 성광문화사, 1980), p. 60.
7) 랄프 G. 턴불 편, ?실천신학 사전? 제 3권 , 박근원 외 역 (서울:대한 기독교출판사, 1981), p. 136.
8) Ibid.
9) Ibid.
10) Ibid.
11) 이성호, ?간추린 성서대사전? (서울: 혜문사, 1982), p. 1496.
12) 턴불, op. cit., p. 136.
13) 이성호,?간추린 성서대사전? (서울: 혜문사, 1982), p. 1496.
14)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종” 항목.
15) 이성호, op. cit., pp. 1576-78.
16) 박아론, op. cit., p. 426.
17) 턴불, p. 134.
18) Ibid.
19) Ibid.
20) 이성호, p. 544.
21) 겔34:11-12; 왕하16:15; 시편27:4; 잠20:25; 레13:36,27:33.
22) The Trinitarian Bible Society, ?히.헬 원어사전? 김상기 외 역 (서울: 로고스 출판사, 1989), p. 39,41.
23)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목사” 항목.
24) The Trinitarian Bible Society, op. cit., p. 190.
25)이성호, p. 544.
26) Ibid.
27) Ibid.
28) Ibid.
29) 박아론, p. 426.
30) 삿9:28; 왕하12:11; 대하34:12,17 등.
31)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감독” 항목.
32)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1976 ed., S.V. "Bishop"
33) 딛1:5, 7:, 딤전3:1,4:14,5:17,19.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감독” 항목.
34) 박아론, p. 426.
35) Ibid.
36) William Co. Martin, To Fulfill This Ministry, (New York & Nashville : Abingdon Press, 1961), p. 31.
37) 카일과 델리취, ?구약주해: 시편(상)? (서울: 기독교문화사, 1983),p. 360.
38) 추아 위 히안, ?오늘을 위한 성경적 리더쉽? 권영석 역 (서울: 한국기독교 학생회 출판부, 1990), pp. 40-3.
39) 성경에 나타난 다른 명칭들: 사람을 낚는 어부(마4:19; 눅5:10),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4), 가지(요15:5,8), 증인(행1:8, 감독자(행20:28), 전파하는자 혹은 좋은소식을 전하는자(롬10:14; 딤전2:7), 사역자(고전3:5), 그리스도의 일군, 하나님의 비밀을 맡든자(고전4:1), 새 언약의 일군(고후3:6), 그리스도의 사신(고후5:20), 하나님의 동역자요 함께 일하는자(고전3:9; 고후6:1), 하나님의 일군 혹은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고후6:4; 살전3:2), 교회의 사자(고후8:23), 군사된 자(빌2:25), 장로(딤전5:17; 벧전5:1), 하나님의 사람(딤전6:11),하나님의 종(딛1:1; 빌1:1; 롬1:1),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딛1:7; 벧전4:10), 별(계1:20,2:1).
40) 추아 위 히안, op. cit., pp. 30, 32-3
41) J. E. 딜라스, ?선한 청지기? 주성범 역 (서울: 침례회 출판사, 1966),pp. 8-11.
42) 김득룡, ?현대목회 실천론신강?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90), p.20.
43)이성호, p. 1573.
44)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족장” 항목.
45) ?성서백과 대사전? (1981), 성서백과대사전 편찬위원회, “족장” 항목.
46) 웟트니스 리, ?제사장 직분? 한국복음서원 번역부 역 (서울: 한국복음서원, 1989), p. 33.
47) 이성호, p. 1566.
48) 윗트니스 리, op. cit., pp. 11-2.
49) 마리아노 다이갠지, ?예언자들의 소리? 전광규 역 (서울: 두란노서원,1987), p. 8.
50) 김득룡,?현대목회학 신강?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4), p. 18.
51) 죤 칼빈, ?기독교 강요? 제 下권, 한철하 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6), p. 63.
52)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Pub.Co. 1981), p. 585.
53) 렌스키, ?성경주석: 에베소서? 장병일 역 (서울: 복음서원, 1975), p.453.
54) 죤 칼빈, ?기독교 강요? 제 下권, p. 65.
55) 죤 칼빈 ?성서주해? 제 9권, 죤 칼빈 성경주석 출판위원회 (편)역 (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2), p. 378.
56) 행11:28,13:1,2,15:32; 고전12:10,13:2,14:3; 엡2:20,3:5,4:11; 딤전1:18,4:14; 계11:6.
57) 황의영, op. cit., p. 65.
58) 죤 칼빈, ?기독교 강요? 제 下권, p. 64
59) 렌스키, ?성경주석: 에베소서?, p. 453.]
60)황의영, p. 65.
61) 렌스키, ?성경주석: 에베소서? ,p. 454.
62) Ibid.
63) 황의영, p. 65
64) 렌스키, ?성경주석: 에베소서? , p. 454.
65) 죤 칼빈, ?기독교 강요? 제 下권, p. 64.
66) Ibid., p. 66.
제3장 牧會者의 資格
목회자의 자격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명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목양해야 하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증과 사람들 앞에 인정받음이 없이는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소명 받은 목회자들의 소명에 대한 확신과 증거가 잘 나타난다. 또한 소명받은 목회자는 성경에 규정된 목회자의 자격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가 목회자의 자격을 모두 갖출 때 그는 그의 사명을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이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성취되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A . 昭 命
소명에는 일반적 소명(General call)과 특별소명(Specific call)으로 구분해 볼 수가 있는데 일반적 소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을 부르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특별소명은 목회자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목회자의 소명을 말한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가? 이 질문 앞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비록 그가 훌륭한 외적인 자질과 자격조건을 구비했다 해도 목회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직은 자기가 하고싶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이며, 또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노력과 행동으로 훌륭한 자질과 자격요건을 고루 갖추는 일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따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만일 소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목회자로서의 외적인 요건이 잘 갖추어졌다고 해서 목회자가 된다면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 가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방해하거나 교회의 부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지식이나 세상의 무엇을 따라 목회를 하여, 참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존 c. 디쎈은 소명을 받지 못한 자들의 특성은, 그들의 사역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지상 과업으로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무오성과 영감을 자주 부인할 뿐 아니라, 설교할 때에 설교 문은 다른 사람들의 설교집에서 취하며 성경은 단지 그들의 설교본문에 필요한 귀절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만 인용하며 설교 사역에 자주 환멸을 느끼고, 그들의 수입에 낙심하며 그 사역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날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에게(밝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23)는 공의로우신 선고를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명을 무시하고 목회하는 자는 그분의 뜻을 무시하고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날에 받을 심판을 두려워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또한 이 소명은 근본적으로 교회나 특별한 지명에 의해서 올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내적 감화에서 올 때 그러한 소명이야말로 ‘효과적인 소명’ 인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알아 그 소명에 기쁨으로 응답해야 될 것이다.
1. 일반적 昭命(어원적 고찰)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부르실 때 우선적으로 일반적 소명을 먼저 하시고 그 다음에 특별한 소명을 통하여 목회자로 세우신다.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있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목회자들은 소명 받은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특별히 골라서 따로 뽑아 세우신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모든 신자들의 본이 되어야할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사도로 부르시는 일반적 소명에 모범적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그러면 잠시 소명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昭命이란 말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본문에 20단어 이상 나와있다. 그 중에서 주된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카라:’ 인데 이 용어는 자주 ‘부르다, 외치다’ 라는 일반적 의미로 쓰였고(삿9:7;사6:4), 또한 ‘초대하다(삼상16:3), 소환하다(삼하1:15), 이름을 부르다(창11:9)’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어 ‘카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칼레오:καλεω’ 인데, ‘부르다, 초대하다, 소환하다, 이름을 부르다’ 라는 뜻이며, 또한 이 용어는 신약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르시는 행동을 가리키는 특수한 의미로 쓰였다. 더우기 이 용어는 사도의 직분 같은 특별한 직책으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롬1:1), 선교(행13:2,16:2), 제사장직분(히5:4), 등에 적용되어 사용되었다.
루이스 뻘콥은 하나님의 소명에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소명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것은 먼저 성부의 사역이다(고전1:9;살전2:12;벧전5:10). 그러나 성부는 일들을 성자를 통해 수행하신다. 따라서 이 소명은 역시 성자에게 돌려진다(마11:28;눅5:38;요7:37).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부르신다(마10:20;요15:26; 행5:31,32).
이처럼 일반적 소명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시는 사역인데, 그리스도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 택한 자들을 부르신다. 칼빈은 “소명은 선택에 의존하며, 따라서 전적인 은혜의 사역이라” 고 했다. 즉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 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교회 안에서 내적인 확신과 증거를 나타내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서로 사귐을 갖게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되어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교회) 에 의해 확증된 내적인 확신” 이라 정의 할 수 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일반적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소명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서 그가 창조하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시며, 성도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성경은 “내 아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컽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시43:6하,7) 고 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녀들을 부르시는 것이다(참조,계14:1;눅19:5하;요11:43하).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게 하시려는 것이다(벧전1:15). 더우기 하나님은 야곱(이스라엘)을 부르실 때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사43:1)라고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의 이름을 부르신다.
둘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주님을 섬기라는 부르심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소명은 십자가로의 소명이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의 소명이다. 하나님의 소명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 그의 멍에를 메고 그의 제자가 되어야만 한다(마11:28-30). 주님의 멍에는 인류 구원을 위한 모든 고난을 의미하며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이 멍에의 최고봉이다. 그리스도께로 부름 받은 신자가 마땅히 주님과 함께 이 멍에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메야함은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 위함인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짐은, 지는 자에게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날 수 있는 날개가 된다” 고 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그리스도께로의 소명은 “십자가로의 소명” 이다. 또한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즉 우리는 주님의 멍에와 짐을 지고 그를 따르는 제자로 부름 받은 자이다. 그런즉 주님의 제자들은 과실을 많이 맺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한다(요15:8). 과실을 많이 맺으려면 썩는 밀알이 되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막10:45) 고 하셨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주님의 제자 된 우리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쫓아야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으로 구원 얻는 자가 되어야한다(막8:34,35). 이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부름은 순교의 부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지도록 부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셔서 그 영광의 보좌로부터 성령을 통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많은 선물(은사)를 주신다. 그 은사의 분량은 각 사람의 사역의 분량과 일치한다. 그런데 그 은사는 다양하나 그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은 한 분이시다(엡4:4).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것은 “한 소망 안에서의 부르심” 인 것이다(엡4:4하). 그러므로 우리에게 각양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4:1,3,7). 더우기 이 은사는 그리스도의 한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에 그 은사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전12:31,14:1). 그리고 “몸”(교회)은 각 지체의 유기적인 상호 의존을 통해서 성장하며 또한 “각 마디를 통해서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엡4:16)”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움을 받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사를 나눔으로서 우리의 소명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며(살전5;23;고전1:9),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사를 힘입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섬기는 종으로서 응답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그는 일반적 소명에 뒤따라오는 특별한 소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2. 牧會者의 特別 昭命
특별소명은 일반적 소명 다음에 오는 사역에로의 소명인데, 목회자는 이 소명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다는 내적 확신과 외적 증거를 가지고 그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 를 주셨으며 또한 그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혹은 사도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의 직분을 주신 것이라고 했다(엡4:7,11,12).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직분들은 한마디로 오늘날의 목회자의 다양한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목회자는 자기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택하시고 또한 부르심으로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참된 목회자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여 자기의 뜻대로 사역에 임할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에 위해서 소명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응답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목회자가 모든 그리스도인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면 그는 결국 무서운 심판을 자취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양 무리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밷전5:3).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는 어떤 권력자리도 마련되어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는 분만이 보좌에 앉으셔서” 그의 권위로서 양 무리를 다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윝치만 니는 “하나님의 활동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며,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권위 위에 세워진다. 만물이 하나님의 권위를 통해서 창조되며, 우주의 모든 물리법칙이 하나님의 권위로 유지된다” 고 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그의 권위의 능력으로 붙드시며(히1:3), 이와 같은 하나님의 권위로서 목회자를 특별한 소명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그의 권위를 가장 으뜸으로 섬기는 목회자에게 위임하여 양 무리를 치고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목회자에게 주신 직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과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목회자를 부르실 때,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도록 그리고 십자가를 지도록” 부르시며, 또한 “사람들을 주님의 왕국으로 모으도록” 부르실 뿐만 아니라 이 부르심은 “전도자로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서 그의 위치를 특정짓는 특별한 은사들에 의해 강화되게 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목회자를 부르시는 특별한 소명은 “전적인 부르심” 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1:21)라고 말한 것처럼 이러한 소명을 받은 목회자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회자의 특별한 봉사는 그가 받은 은사(선물)의 분량대로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가 주님께 받은 은사(선물) 의 분량에 따라서 봉사하게 된다는 말이다(롬12:3-8). 그러니까 “그가 받은 은사가 크면 클수록 그의 책임도 커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그가 받은 은사를 항상 불일 듯 하게 해야 한다(딤전4:14;딤후1:6). 만약, “믿음의 헌신 없이 그리고 순종하는 생활이 없이 목회하는 자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바람직한 목회자라 말할 수 없고 오히려 목회직을 일찌감치 떠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스펄젼의 말을 빌린다면 “돌아가서 제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그에게 무서운 화가 임하고야 말 것이라는(고전9:16,17;골1:25) 느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뼈속의 불과 같아야 할 것이다(렘20:9). 이상과 같이 목회자의 특별한 소명은 분명하고 독특한 부르심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부르심인 것이다.
그러면 계속해서 소명에 대한 증거에 대하여 고찰 하고자 한다.
B . 昭命에 대한 證據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목양의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사명감에 넘치는 목회자가 될 수 없고, 죽도록 충성하는 목회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르신 자의 부름을 의식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한 충성심이나 그를 부르신 목적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목회자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후4:1). 곽안련 목사는 목사 되기에 합당한 부르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부르심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온다.
2) 부르심은 직접 각 개인에게 온다.
3) 객관적으로만이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4) 부르심은 안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로부터의 소명을 받을 때에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확신해야하며 그에 따른 증거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내적, 외적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목회자의 昭命에 대한 내적 증거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죤 칼빈은 목회자의 소명을 “외적소명” 과 “내적 소명” 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는데, 내적 소명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아는 일이며 교회는 증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 직책을 받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려는 소원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의 속마음이 잘 증거한다” 고 했다.
이와 같이 소명을 받은 목회자는 그 확신이 성령의 내적 운동 가운데서 틀림없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증거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겸손에 기초” 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길목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사람을 어둠에서부터 빛으로, 영적인 죽음에서 삶으로 부르시는(참고, 마11:28-9;요6: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 중에서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 로 주시고(엡4:11), 그들이 성장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엡4:12-16). 더우기 성령님께서는 온 양떼들 가운데서 목회자로 세우신 자들을 감독자로 삼아 교회를 치게 하셨다(행20:2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교역에 종사케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적 확신을 가졌다(딤전1:12). 더우기 그는 주께서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9:14,참고,민18:8-20;고전9:1-19)고 명하셨다는 성경적인 원칙을 선포함으로서 영적인 봉사를 위해 물질적 추구를 떠나야함을 암시하였는데, 이것은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내적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곧,주님에 의해서 공급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의 삶 자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결과이며, 특히 성령의 개인적인 내적 체험은 “가장 숭고하고 축복받은 기독교 생활의 본체” 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분명한 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2. 목회자의 昭命에 대한 外的 證據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내적 확신과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가시적인 신앙 공동체의 확증이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요구되는 은사와 자질들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딤전3:1-7; 딛1:5-9에는 목회자의 자질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주께서는 목회자의 소명을 주신 자들에게 우선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무기를 주셔서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그들에게 필요한 무기와 도구를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 할 수 없는 구재(口才)와 지혜”(눅21:15)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막16:16-8)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데(행1:8;눅24:49),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수행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시는 영적 은사와 천래적(天來的)으로 타고난 자질들이 과연 내게도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 외적증거를 인정받아야할 것이다.
. 교회의 인정과 任命
주께서는 친히 목회자로 부르시고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신다(엡4:11). 그러나 주께서는 교회를 통한 소명이라는 규율을 이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 하셨지만, 행13:2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고 하심으로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었던 것이다. 또한 맛디아를 선택 했을 때도(행1:23) 두 사람을 세워 그 중 한 사람을 제비뽑게 했다. 이와 같이 “이 선택은 하늘의 명백한 확인을 얻었지만 조금도 교회 질서를 무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딤전4:14에는 “네 속에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라고 했고, 딤후1:6에는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나니” 라고 하였으니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면 거의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강한 지지를 받으며 안수를 받게 될 것은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성령께서 그를 목회자로 세우셨고 또한 동일한 성령께서 교회 앞에 인정받고 임명받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3. 목회자의 昭命에 대한 聖經的 證據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목회자들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부르셨지만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으므로 그들 자신이 분명히 알았다. 또한 소명 받은 목회자는 그 소명에 응답함으로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는데, 그들 중에 때론 곁길로 피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 하였으며 명하지 아니 하였나니 그들이 내 백성에게 아무유익이 없느니라(렘23:32)” 고 하신 말씀을 보면, 목회자의 소명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명받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전 생애를 바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소명은 분명하고도 독특한 부르심인 것이다.
a. 구약에서 昭命받은 목회자들의 증거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 사람들은, 에녹(유1:14-15), 노아(창6:13,6:9-22,7:5), 아브라함(창12:1-4,18:19,22:1-12; 히11:8), 요셉(창37:5,9,42:5-7,50:20), 모세(출3:1-4,4:20,7:6; 신34:10-2), 여호수아(수1:1-9,16-8; 민27:18-23), 기드온(수6:14,7:9-23,8:4-21), 다윗(삼상16:13; 대상11:1-3; 삼상16:18,23,17:45-51; 삼상13:14; 행13:22), 이사야(사6:8,50:4-5), 예레미야(렘1:5,9,31:31-4,19:1-18), 에스겔(겔1:1-3,33:1-20), 아모스(암7:16), 사무엘(삼상3:4,6,8,10,19,20), 요나(욘1:1,3:1) 등.
그러면 그들중에서 모세, 이사야, 예례미야, 이렇게 세 사람을 택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1) 모세의 증거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2-4).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애굽에서 학문을 익히고 난 뒤 목회자의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문명을 버린 상태에 있는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이유는 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족속, 여부스족속의 지방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출3:8,10).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때 그는 무려 5번이나 이유를 들면서 사양했다.
1) 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라고 겸손하게 사양하였다. 그가 일찌기 자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도우려고 했을때에는 온전히 실패 하였었다(출2:11-15). 그는 실패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일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겸손하게 사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나설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주기위하여 “내가 정녕 너와함께 있으리라, 내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보낸 증거(출3:12)” 라고 하신다.
2) 모세는 아직도 용기를 얻지못하고 또 하나의 문제를 하나님앞에 제기하는데, 그것은 애굽에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고 물을때에 답변이 곤란하다는 것이다(출3: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있는 자” 라고 두번이나 강조하여 말씀 하신다(출3:14,15).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시고 그 말씀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이루신다는 뜻이다”.
3) 모세는 또 하나님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나타나지 아니 하셨다 하리이다”(출4:1) 라고 했는데, 이는 모세가 아직도 자신을 가지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것이 아니고 자신의 약점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의 표적을 통해서 첫째 표적은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되고, 모세가 그 꼬리를 잡았을 때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됨(출4:2-5), 둘째 표적은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발했고 그후에 다시 깨끗해짐(출4:6,7), 셋째 표적은 하수를 조금 취하여 육지에 부을때,그 물이 피가되게 하시는 것이다(출4:9). 그의 신앙을 강화시키고, 그의 백성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수 있게 하셨다.
4) 모세는 또 다시 말이 능치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한다(출4:10).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양하는 이유에대하여 해결책을 말씀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입” 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니 모세의 입과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는 것이다(출4:11-2).
5) 모세는 이제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사양한다(출4:13). 하나님은 그를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다시 대책을 세워 주셨는데, 그것은 그의 형 ‘아론’ 을 그의 대언자로 세워주신 것이다(출4:14-16). 그리고 모세에게 지팡이를 손에잡고 이적을 행하라고 하셨다(출4:17). 이렇듯 하나님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사양하는 모세에게 끝까지 사랑과 인내 하심으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때 말씀하시고 표적을 보여 주신대로 모세와 함께하셨고 권능을 주셨으며,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동안에 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삶을 살았다. 출4:20,7:6; 신34:10-12.
(2) 이사야의 증거(사6:)
이사야는 예언자들중 가장 전형적인 예언자로 간주 되어진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택하시고 선지자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사6:8중) 그때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하)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자원하는 심령이 되어 응답하였다. 이 응답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의 가장 모범적인 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소명을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1) 神의식에 뒤따르는 罪의식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이사야는 주권자이시고 전능자 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1-4절). 하나님을 본것은 이사야로 하여금 예언자가 되게 한 모든 것의 기초였다. 이 환상! 즉 이 하나님 의식은 곧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결과에로 다다르게 되는데 곧 죄의식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이사야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자신위에 있는 빛을 보았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데서 그의 생명과 그의 길을 보았다. 하나님 인식에 기초한 罪의식은 하나님의 예언자 즉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의 삶과 사역에 근본적인 것이다.
2) 罪의 고백 후에 따르는 罪 씻음(5:7)
이사야에게 있어서 죄를 의식하는 것은 바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죄를 고백하는 일에 그의 영혼을 쏟아 놓았다. 그는 부정한 입술에 관하여 그 자신이나 국가가 실패한 것을 알았다. 만군의 주인 되시고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환상이 전과 달리 이 사실들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곧 죄 씻음을 받는 것이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 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사6:6,7).
이사야는 즉각적이고도 완전하며 확실하게 죄 씻음을 받은것을 경험하였다. 하나님의 불이 단번에 그리고 철저히 그 일을 행하셨다. 이사야가 이렇게 죄 사함을 받았을때 하늘의 진정한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다.
3) 하나님의 昭命에 뒤따르는 하나님께로의 獻身
이와같이 죄를 깨닫고 죄사함을받은 예언자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더 깊은 계시를 받기에 영적으로 적합하게 준비되었다.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해야할 일이 있었다.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있었고(1절), 민족의 죄악이 하나님의 행위를 불러 들였다(5절). 우리가 하나님을 뵙고 우리의 죄를 알고 하나님의 용서을받고 그 용서를 알때만이 우리는 소명을 깨닫고 그 소명에 응답하며 전심으로 헌신을 하게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는 이제껏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과 죄를지은 백성들 중에 거하였다는 인식이 분명히 그로 하여금 이태까지 앞으로 나와서 그 백성에 대한 심판을 하지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깨끗게 하시고 사명을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하셨으므로 이제 이사야는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앞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었다. 이사야는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하였던 것이 이제는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응답하는 사명자가 되었다.
4) 하나님의 위탁 후에오는 하나님과의 영교(9-11)
보내심을 받을 준비가되자 곧 하나님의 위임이 따랐다. ‘가서 말하라’ 는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이사야는 “주여 어느때 까지니이까?” 라고 질문하며 하나님과 영교하는 자가 되었다. 이사야는 이처럼 神의식에 뒤따르는 罪의식, 죄의 고백후에 따르는 죄씻음, 하나님의 소명에 뒤 따르는 하나님께로의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위탁후에 오는 영교라는 독특하고 분명한 소명을 받은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예언하였다. 사50:5에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얼었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 가지도 아니하며” 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충실한 수행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하는 그의 순종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사50:4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명에대한 확증을 말해준다.
(3) 예례미야의 증거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소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내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자리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렙1:4-10). 예례미야가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임명의 말씀은 그의 선지자직의 신적 기원과 그의 예언의 신적 권위를 확증해 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실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약함과 영적 무력함을 고백하였다(6절). 그러나 하나님은 손을 그의 입에 대시며 강권적으로 그를 부르셨다(9절).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예언의 내용과 방법과 그 성취가 하나님에의해 직접 이루어질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명이 중차대 하며 매우 촉급하다는 사실을 두 환상을 통해 보이셨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겠다는 것이며(11-12절), 또 하나는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보이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게 하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긴 유다 백성들을 치게 하며,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13-16). 이어서 하나님은 사명을 수행하는 그에게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시겠다는 격려와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17-19).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예례미야는 소명의 확신을 가지고 모두 50년의 예언활동 기간을 하나님께 신실하게 헌신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만연한때에 하나님께 세움을 입어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므로서 그가 참 선지자임을 보여주었다. 이로서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증거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b. 신약에서 昭命받은 목회자들의 증거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은 먼저 세례요한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제자들을 부르시는 소명’ 예수님께서는 바다에서 요한을 부르셨다(마4:21-2).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시고(마9:9), 빌립을 부르셨다(요1:43). 소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우기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도 계속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사도와 설교자들을 부르셨다. 신약적소명의 특징은 몇몇 특별한 직접적인 소명을 제하고는 은사 및 교회의 요구, 그리고 내적 확신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명 받은 자들 가운데서 세례요한, 베드로, 바울, 이렇게 세 사람을 택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세례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보내시고(눅1:57), 그에게 성령이 임하여 말씀 전파자로 나서게 하셨다. 여기에서 성령의 임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징해 주고있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출생하기 전에 그의 부친 사가랴에게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세례요한을 특별한 사명자로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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