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이란?

하나님아들 2020. 4. 29. 16:46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어느 분께서 신신학이 무엇인가? 하는 요청도 있고 해서 글을 씁니다. 재림교회가 우리집 번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의 번지도알아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기에 성도님들의 긴한 참고가 되시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신신학이란 자유주의 신학 같은 맥락으로 한국에서는 신신학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신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성경에 입각하지 아니하고 인간이성으로 성경풀이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의 근본 의미와는다르게 되고 틀리게 되고 인간 이성의 자유화의 해석을 하는 성경풀이를 말합니다. 물론 재림교회는 성경 중심 해석을 하기 때문에신신학 자유주의신학은 올바르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반대하고 있는 신학사조입니다. 사실을 아시게 되기를 열망합니다. 조금 길지만 기회에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인가? 자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많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신앙과 신학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지요. 18세기까지는 성경을 대체로 초월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르네쌍스를 비롯하여 인본주의적인 태동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사상과 지혜가 강조되는 18세기 이후부터서는 인간지식으로신앙을 찾고자 하는 사상이 강조되어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드리려는 신앙’(faith) 보다는 진술’(reason) 의해서 성경을 이해하려고하는 경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려고 하기 보다는 일단 그것이 그러한지에 관하여 의문적인 사고와 이해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결과로 그들은 신학이라는 명명 아래 결국 철학적 사고와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지향하면서 신신학, 정통주의신학, 자유주의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과 이론의 과정과 순서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인간의 이성에 비추어 진술하는 사고로 성경을 해석하고 해석의 신앙사상을 재해석하는 형식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께서 아실 것은 이것이 우리 재림교회가 지지하는 성경해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유주의신학의 간략한 발전사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하여 왔느냐?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의 목적은 성경진리의 옹호를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2. 미국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과 발전

 

미국에 말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1922년에 나와 ’(I and Thou)라는소책자를 저술했는데 이것이 당시 신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고서를 도서관에서 입수해 보았는데 아주 작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세상에서의 사람의 관계란 가지 관계가 있는데 나와 ’(I and Thou) 관계와 나와 사물’(I and It)이라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물론 나와 관계 에는 사람과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 그리고 나와 라는 관계 속에서 마치 사물적인 관계(I and It) 같은 것이 개입되어 사는 것이란 바람직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다는 그의 이론입니다. 여기까지 옳은 포착이고 옳은 견해이지요. 그렇지요. 아무런 흠이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형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나와 관계란 두뇌(brain)로만 생각하는 사물적인 관계처럼 살지 말고 마음(heart)으로 느끼고 애호하며 사랑하는 관계정립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람과의 사랑을 가진 관계로살아야 하지 사람이 마치 책상이나 걸상이나 관계처럼(It관계처럼)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말틴 부버는 인간의나와 라는 정신 세계에서 나와 사물관계와 같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나와 라는 관계만 ,사랑의 관계만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론이 좋지요. 매력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만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론이 대단히 순수하고 흠까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다음에 전개시키는 내용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대뜸 하나의예로 들면서 성경이란 사물’(It)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인 만큼 나와 라는 관계 속에서 이것도(사물인 성경도) 제헤버려야한다는 주장입니다. 놀랍지요. 벼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감이 들지요. 이론은 맞는 감이 있지요. 깜짝 놀라운 말이지요. 잘못 속을 있습니다. 그러나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 번지를 달리하게 되는 데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이란 과거에 계시의 책이긴 했지만 지금은 다만 참고가 뿐이다!’라고 하는 주장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말을 믿고 따를 있겠습니가! 자유주의자는 모르지만 성경주의자는 결단코 따를 없지 않을까요!

 

여러분! 미국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의 이성해석이 성도들을 속이고 결정적인 인간 이론과 주장에 기초하여 발전해 갔습니다. 이러한이유로 해서 성경을 무시해버리고서는(참고가 된다 라고 하지만) 이제는 진일보하여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나와 관계, 이것만이 오늘날의 하나님의 만남의 신학(Encounter Inspiration Theorogy) 된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세주를만난듯 했지만 결국 이것은 비진리요 성서를 등지고 인간 이성을 우상화한 사상적인 탕자 같은 범죄를 태동케 것입니다. 그래서말틴 부버를 일컬어 미국에서의 자유주의신학 (한국에서 부르기를 좋아하는 신신학) 조상격으로 생각하게 되어진 것입니다.

 

만남의 신학’, 언뜻 듣기에는 아주 신앙을 추구하는 좋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야 말로 성경과 계시성을 전혀 무시해버리려는 고단위 속임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독주 한병을 먹는 보다 나쁜 한권을 읽는 것이 몇배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영혼을 죽입니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서회이지만 나쁜 책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책을 사는대도 조언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이미 알고 계신줄 압니다. 나쁜 책이란 사람의 사상을 바꾸어놓고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신학을 현대신학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러한 물줄기를 타고서 이성주의를 한끝 높이면서 에밀 부르너(Emil Bruner), 바르트(Karl Barth),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등과 같은 많은 비성서적인 신학자들을 탄생시키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성경의 계시성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깊이 분별하시면서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소위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신학사조가 공교롭게도 말씀으로 말미암는 기독교의 교리 내지 구원관을 전격적으로 대치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수많은 인류를 이러한 독약이 박하사탕으로 먹이면서 하나의 떠내려가게 하는 , 거짓교리에 떠내려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5 참조) 우리는 반드시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개신교도들, 특히 그들의 지도자들은 성경과 성경의 증인이나 다름이 없는 기독교사의 명확한 확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쩔 없이소유해 , 이를테면 로마교회에서 유산으로 받은 일요일과 영혼불멸설과 같은 변명의 여지도 없는 비성서적 비진리를 가지고 진리인양 아직도 엉뚱한 방어책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많은 순수한 무리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마쳐야 하겠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신신학 하는 것은 이성주의로 성경을 자유해석하는 바람직하지 않는 해석입니다. 이성은 말씀으로 지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진리(예언의 포함) 지지하고 주장하고 전도합니다. 그래서 더욱 천사의 기별이야 말로 현대를 위한 마지막 긴급한 남은 무리의 기별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