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20. 4. 29. 16:48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고신교단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용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콘텍스트와 무관하지 않다. 아래의 글은 한국교계에서 사용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함께 ‘자유주의’를 ‘개혁주의’와 ‘정통신학’과 비교하여 분석한다. 졸저 [교회연합운동과 다원주의](2005)에서 옮긴 것이다.

영국국교회 사제 존 셀비 스퐁은 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급속하게 변모하는 21세기 기독교를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라고 일컫는다. 신약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를 ‘새로 등장하는 기독교’(a Newly Eemerging Christianity)로 지칭한다. ‘신세계 기독교’(a New World Christianity)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뜻한다.
교회의 분위가 바뀐 오늘날 ‘자유주의,’ ‘자유주의 신학’라는 용어는 다소 고루한 인상을 풍긴다. 진보진영의 목회자와 신자를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대부분 ‘복음주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들이 속한 교회의 신학노선, 사고양식, 외국교회와의 관계, 신학적 전제가 변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신문 『뉴스앤조이』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한국기독교의 신학적 분위기가 얼마나 탈정통적인가를 느낄 수 있다. ‘신세계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신학계를 진보와 보수,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신학으로 나누는 것 보다 더 적합한 용어는 없어 보인다. 자유주의 신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과 에큐메니칼운동의 흐름도 ‘새로운 기독교’를 일컬어 ‘자유주의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이보다 더 포괄적 개념을 가진 용어를 찾기는 어렵다.

그레스앰 메이첸은 여러 세대 전에 이미 이 신종 기독교의 정체를 규명한 바 있다.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23)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새로운 기독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실상 전혀 다른 뿌리에서 생겨난 별개의 종교라고 단정한다.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라 별종 종교(a different religion from Christianity)라고 한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새로운 종교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아우를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 메이첸은 이것을 교리관·신론·인론·성경관·기독론·구원론·교회론·그리스도인의 봉사론을 비교하면서 입증한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일제의 한국통치가 본격화될 때부터 정통신학을 줄기차게 공격해 왔다. 광복 후에는 조선신학교를 장로교단 교역자 양성기관으로 즉각 인가하고, 장로교단을 그 전수받은 정통신앙에서 이탈시키려고 여러 가지 독설을 내뱉었다. 예컨대 김재준 교수는 “옛 건물”(정통신학)을 파괴해야 “새 건물”(자유주의 신학, 신신학)을 건축할 수 있다고 하고, “정통신학은… 인본주의요 정통적 이단이다”2고 공격했다.

고려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정통신학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펼치다가 출옥한 성도들은 조선신학교 인사들이 한국장로교회가 지향해 오던 신학을 거부하고 유서 깊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신학사상을 보급하는 것을 보고서 이 학교를 설립했다. 박윤선 교수를 구심점으로 출범하여 박형룡 박사를 교장·교수로 초빙한 것은 이 신학교가 한국교회의 정통신앙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출옥성도 한상동·주남선 등은 한국교회가 일제말기에 배교하고 이교화된 배후에 자유주의 신학이 자리 잡고 있었고 총독부 울타리 안에서 황민화의 도구로 설립된 조선신학교가 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과연 자유주의 기독교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아닌 ‘별종 종교’라고 하는 메이첸의 판단은 옳은가? 그렇다면 그러한 신학을 지향하거나 비슷한 패러다임, 전제, 고백을 가진 교회와 하나되는 것은 진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옳지 않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를 하나로 묶거나 아우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이며, 정통 기독교 신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를 요청한다. 개혁주의는 무엇이며, 사도적 전통에 충실한 기독교를 ‘근본주의’로 단정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1. 자유주의 기독교

자유주의 기독교는 통일된 규칙, 확고한 신조, 정연한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믿는 일련의 신학 흐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대마다 이론이 다르고, 정통신학과의 거리도 일정하지 않다. 온화한 자유주의가 있는가 하면 과격한 자유주의도 있다. 극단의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자유주의가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같은 근본 도리를 신봉하지 않는 자유주의도 있다. 성경을 신화, 영웅담, 전설 모음집으로 취급하는 자유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정통주의, 신정통주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 복음주의적 자유주의자, 자유주의적 복음주의자가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현실 세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내는 세상의 합리성과 충돌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마저 넘어서는 영속적 진리에 속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계시의존 신앙에 근거하지 않고 경험이나 깨달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유서 깊은 기독교를 배타적인 집단으로 단정하고 그것을 ‘열린 기독교’로 전환시키려는 대 변혁을 도모한다. 교리보다는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며, 영혼구원이 아니라 지상천국 건설과 사회정의에 역점을 둔다. 복음보다는 문화와 사회에 더 관심을 가지며, 신자화·복음화 보다는 인간화·사회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유주의 기독교와 그것에 상반되는 전통적인 기독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뿌리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의 속성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에 교리와 신앙고백을 거부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신조를 신자 개인 경험의 변화무쌍한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2) 자연주의(Naturalism)에 입각하여 사색한다. 기독교의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적 토대를 부정한다. 이성에 기초한 인간 진리와 신의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 진리 사이에 단절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유일한 길이 아니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계시가 기독교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3) 기독교 경전이 역사적 사료편찬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과 하등비평을 지지한다. 복음 메시지에 추가된 문화적, 신화적 요소를 배제한다고 하면서 바울 기독교와 예수 기독교를 구분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지 절대적 계시를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복음을 현대인의 세계관에 걸맞게 개조, 해석하려고 한다. (4) 도덕과 사회면을 강조한다. 기독교를 교리 중심, 진리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도덕생활과 실천 종교로 이해한다. 가난, 전쟁, 인종차별, 평화, 사회악 개선 등 현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 악의 원인은 인간의 원죄나 타락한 본성이 아니라 무지라고 본다. (5) 신학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기구적인 연합을 지향한다.

사도 요한이 배격한 영지주의(Gnosticism)는 고대판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라고도 일컬어지는 17-18세기 영국의 이신론(Deism)도 자유주의 신학의 일종이다. 본격적인 자유주의 신학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인식론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신학사조로, 독일의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온상에서 자랐다. 구자유주의(Old Liberalism)는 기독교의 핵심이 윤리와 경험에 있는 것으로 본다. 기독교의 본질이 인간의 직관, 감(感)에 있다고 말한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 기독교의 본질이 교리나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와 실천에 있다고 말한 알버트 리출(1822-1889)이 이 범주에 속한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이 직관으로 파악되며, 종교의 본질은 감정과 경험이라고 보았다. 리출은 기독교의 본질이 윤리의 실천과 우주적인 사랑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인간 잠재적 가능성과 도덕실천을 통한 지상낙원의 구현을 추구했다.

구자유주의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을 부인하고,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는 비평학을 고무시켰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창세기를 단일 저자의 기록이 아니라 여러 전승(傳承)들의 편집으로 보았다.

미국의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기에 나타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기적 행하는 능력 등을 단지 이론(theories)으로 보았다.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를 사실상 부정하고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고백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신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현대주의 사상으로 나타났다.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주의, 불트만의 비신화화 신학, 모세오경의 모세저작을 부정하는 고등비평학, 구약성경을 신화집·전승집으로 보는 성경신학, 성경적 신론을 신화로 취급한 폴 틸리히와 존 로빈슨의 신학, 화이트헤드의 과정 신학, 알타이저의 사신(死神)신학, 하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 신학,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으로 나타났다.3

박형룡은 ‘자유주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성경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경의 권위보다는 그리스도가 직접 말씀하신 교훈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학, 역사, 도덕에 관한 성경 본문에는 오류가 있다고 한다. (2) 반(反)교리적이다. 성경을 기본으로 하여 작성된 교리, 신조를 배척한다. 기독교는 생활이지 교리가 아니라고 한다. 신조는 사상의 자유를 유린한다고 본다. 교리나 신조는 각 종파 사람들의 심리적 경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며, 신관(神觀)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교리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4)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것이지 이적은 아니라고 한다. (5)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6)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7) 그리스도를 신앙의 모범으로, 독특한 인물로 추대하는 반면 그의 초자연적 능력과 인격을 부정한다. (8) 원죄를 부정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하고 그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 타락의 교리를 부인한다. 죄의 중대성과 흉독성을 희박하게 여긴다. (9)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구원관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한 구원을 부정한다.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한다. 성령으로 중생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10) 천국과 영생의 희망을 포기한다. (11)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신앙하지 않는다. 현실세계를 선행으로 극복하겠다고 한다. 타계적·초자연적 능력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격변시키려 하지 않는다. (12) 영벌과 지옥, 형벌, 심판도 없고, 백색보좌도 없고, 심판주도 없다고 한다. (13) ‘내재하는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일을 자신들의 비범한 업적으로 간주한다. 그 내재성은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의 내재성이 아니라 과학에 맞추기 위해 초월성을 제외한 내재성이다.4

용어의 개념은 그것이 사용되는 콘텍스트의 이해에 달려 있다. 박형룡과 한국의 보수계 교회들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체계화한 신신학, 바르트주의(신정통주의)를 ‘자유주의 신학’에 포함시킨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변증법적 신학을 제시한 20세기 신학자이다. 박형룡은 구자유주의(Old Liberalism)와 바르트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자유주의 신학으로 분류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5

바르트주의는 전통적 신학술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통신학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술어에 새로운 개념을 부가하여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기독교와 다르다. 옛 신학술어들을 그대로 쓰면서 그 속뜻을 다르게 풀이하여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을 새 사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바르트 신학도 옛 신학술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해석에서 성경적 전통적인 본의를 떠남으로써 기독교를 재해석한다. 일종의 새 신학체계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편에서는 그의 보수적 경향에 주목하여 ‘신정통’이라고 부르지만 코넬리우스 반틸 같은 신학자는 이 신학에 담긴 자유주의 내용을 보아 ‘신현대주의’라 일컫는다고 말한다.6

신정통주의(바르트주의)와 자유주의는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교계와 세계의 일부 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를 동일한 맥을 가진 것으로 취급해 왔다. 박형룡은 바르트주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연루(連累)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본다. 둘째, 파괴적인 성경비평학을 허용한다. 셋째, 인본주의에 기초한 신학을 재구성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성경적인 기독교에서 떠났다.7

한국교회가 바르트주의를 자유주의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전통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괴적 성경관과 성경비평학을 수용하는 현대주의자들, 아빙돈주석 사건,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 바르트주의 성경관에 대한 논쟁 등과 관련되어 있다. 박형룡은 1930년대 중반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기독교신학난제’를 가르치면서 기독교계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신학 사조들을 비판했다. 그 무렵, 김재준·송창근·채필근·김영주·김춘배·김관식·조희염 등은 자유주의 신학자로 주목받고 있었다.

박형룡 이후의 한국교회 신학자들 가운데도 바르트주의를 자유주의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김양선은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1956)에서 광복 후의 한국교회의 분열을 자유와 보수의 대결로 파악한다.8 조선신학교의 김재준, 프린스톤신학교의 존 매카이와 에밀 부룬너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단정한다. 총신대학교에서 가르친 바 있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간하배(Harvie M. Conn) 교수는 미국의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김재준을 자유주의 신학자로 규정한다.9 총신대학교의 박용규 교수는 『한국장로교사상사』(1992)10에서 간하배의 논지를 확대 서술하면서 김재준과 송창근을 자유주의자로 분류한다.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의 성경관과 신학에 대해 총회에 제출한 진정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면서 김재준의 자유주의 사상을 진술한다.

장로교 남부총회(1946)가 조선신학교를 총회 교역자 양성기관으로 공식 인준했을 때, 그 학교 안에는 교회에서 정통신학을 배우고 자란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총회에 ‘진정서’(1947)를 제출했다.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성경관, 교리, 신관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이 진정서는 김재준·송창근·정대위 교수의 신학을 다루지만, 주로 김재준의 사상에 초점이 있다. 김재준은 구약성경을 유태교의 성경이라고 하며, 문서설을 주장하여 모세 6경설, 제2이사야서설을 가르친다. 성경은 주변국의 종교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오류가 많다. 노아홍수설, 바벨탑 기사, 인류의 기원 등은 모두 허구이다. 여리고성의 함락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신적 승리였다. 정통신학은 신신학보다 더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이며 정통적 이단이다. 성경은 교리의 교과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칼빈의 예정론은 운명론과 다를 바 없다. 유일신 엘로힘은 셈족의 신이다.11

김재준은 성경관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이단시비가 제기되자 신속히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천명했다. “성경에 다소 오류가 있으나 그 속에 구속하는 이치가 있다”12는 점에서 성경은 무오(無誤)하다고 했다. 역사적·과학적 오류가 있으나 구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는 오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김재준을 자유주의 신학자로 간주하고, 그를 동력(動力)으로 삼아 교회를 분리해 나간 기독교장로회를 자유주의 신학과 동일시한다. 김재준은 철저한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철저한 바르트주의자도 아니었다. 정통주의 신학자는 더욱 아니었다. 포괄성과 수용성의 면모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신학은 모두를 부정하는 부정신학(Nein-Theologie), 모두를 수용하는 포괄신학(Umgreifen Theologie), 마치 이것인 듯하기도 하고 저것인 듯하기도 한(Als-Ob) 신학이다. 어느 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높고 먼 공중을 떠도는 신학―장공신학(長空神學)이다.13

2. 정통 기독교

학자들 가운데서 자주 발견되는 우상성은 자신의 신념을 유일한 성경적 견해로 여기며 그것을 절대화하는 태도이다. 타성적으로 지금까지 다루어 오던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형식 속에 집어넣어 판단하면서, 오히려 자기는 모든 입장을 초월한 것같이 생각한다. 자신을 자연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주관적 입장을 말하면서도 자주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것과 다른 신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유서 깊은 기독교, 혹은 정통 기독교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 기존의 입장을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주저하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 상태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엿보인다. 신학도의 임무는 쟁점들을 명확히 밝히고 신앙고백적 공동유산을 비평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적합한 기준을 제공하며 성경, 교회전통, 신앙고백, 교리, 신학, 역사 등 신앙의 내적 외적 요소들을 해석, 재해석하는 일이다. 정통신학은 이러한 비평적 작업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주의계 신학자들 사이에도 해석학적 겸손이 결핍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도 반지성주의적(anti-intellectual)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앙과 이성을 구분하고, 기독교 신앙이 토대를 두고 있는 기독교의 초기 역사(도성인신, 동정녀 탄생, 부활, 기적 등)에 대한 이성적 증거를 부정한다. ‘선 무당 사람 잡는 식’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적 폭군이 되지 않으려는 신학도는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왜곡, 편견, 실수에 대해서도 비평적이다. 해석학적 활동에서 본문을 자신의 선(先)이해에 밀어 넣어 맞추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동시에 타인의 견해를 기꺼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다. 본문에 의해 자신의 선이해가 검토되고, 해석학적 검토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해석학적 통찰을 기꺼이 교정하려는 선비적 태도를 유지한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사물이해는 온전할 수 없다. 해석학적 겸손을 가진 사람은 이성적 진리와 교회적 전통이 제시하는 진리 사이의 갈등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면서, 이성적 진리가 이성 자체의 제한성과 속임수 때문에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간파한다. 이성적 발견을 최대로 고려한 비평적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신학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저 수많은 탁월한 학자들의 이론들을 맛보는 것조차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배우고 담아 본 후에 그것을 버리는 자유인의 기개를 가진다. 현대신학의 변화와 흐름들, 현대의 지성적 신학자들이 무엇을 갖고 고뇌하며 씨름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배울 것은 주저하지 않고 배운다. 시대적 적실성 있는 주제에 대한 자기 부족을 깨닫기도 한다. 진리탐구의 길을 뚫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유서 깊은 기독교의 중심에는 정통신학 신념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신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 표준으로 삼고 성경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신학활동을 하고자 한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신학적 토대로 삼는다. 사물을 성경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성경에 충실한 신조, 신앙고백, 교리를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교회들은 정통신학의 교리적 표현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성경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탁월한 신앙고백서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박형룡은 정통신학을 정의하기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술된 말씀과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중심축으로 삼는 신학이라고 한다. 박형룡은 칼빈주의가 이러한 류의 가장 명확한 신학적 표현이라고 말한다.13 자유주의 신학이 과학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계시신학(啓示神學)의 본성(本城)을 버리고 자연종교의 막연한 황야로 도피했다고 본다. 자유주의 신학, 신신학, 현대주의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판한다. 『기독교신학난제선평』(1935)에서 정통신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정통신학은 절대적인 인식학적 권위가 오직 천계(天啓)와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에 있는 것이다. 순전히 성경에 따라서 거기 기초하고 거기 부합하는 종교적 의견이면 ‘옳은 의견,’ 곧 정통신앙으로 인정할 것이다. 교회의 교리를 제정함에 있어서 다수인의 권위나 선생의 권위에 따르지 않는바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그 의견이 성경과 합하느냐 않느냐를 상고하여 성경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의견을 정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14

정통신학은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셨고 사랑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속(redemption)에서 능동적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믿음과 칭의와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이다. 그는 만물의 주이며, 유일한 구원자이다. 창조·보존·섭리·통치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은 우주적 차원을 지닌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며, 그리스도는 시간의 끝에 심판주로 재림한다. 신앙을 전 삶과 인격의 문제로 본다.15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을 수용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이 교회들은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버렸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상반되는 새로운 기독교로 거듭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고유한 성경관을 버린 것이다.

3. 성경과 교리

성경이 하나님께서 계시한 말씀, 곧 신언(神言)을 담은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거짓이다. 성경이 항구적인 진리를 담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것과 말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모두 헛것이며, 속이는 것이다. 기독교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은 모두 성경에 기초해 있다.

정통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자연적인 종교의 경전은 동등한 차원에 있지 않다고 본다. 세상 종교들이 일련의 의미 있는 인생교훈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들은 자연은총이 낳은 것으로 진리의 그림자이며 시간과 공간의 제한 아래 있으며 인간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고 본다.

신행(信行)의 평가 기준은 정통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 보수주의가 아니다. 좌우논리, 흑백논리도 아니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제3의 길’도, 보수주의에 뿌리를 둔 중도파 혹은 회색주의도 아니다. 극단의 배타주의와 선민의식, 개 교회의 이익을 추구하고 무조건 타교단과 담을 쌓고 지내는 종파적 성향도 아니다.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규범은 성경이다. 성경은 신학과 에큐메니칼 활동에 대한 평가 기준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이 신행의 최종적 판단 기준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주저한다. 유태인들의 종교적 경험의 산물이라고 본다. 복음이 현대 과학에 부합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가 문화적 탁월성과 동시대성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문화와 복음을 구분하지 않는다. 주변 문화의 이상과 구별되는 명백한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과 구별되는 뚜렷하고도 확실한 메시지를 제공하지 못한다. 한 동안 진리처럼 여겨지던 사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캄캄한 흑암을 돌아다니는 유리하는 별처럼 잠시 빤짝이다가 그 빛을 상실한다.

자유주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교회로 하여금 점차 세속 문화의 흐름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세상과 문화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한다는 미명하에 교리와 신학의 한계를 넓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것은 교회가 세상과 문화를 변혁시킨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의해 변질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복음과 문화를 구분하는 것을 어렵게 되었다.

정통신학은 교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적 사실과 기독교의 교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성경과 교리, 그리스도와 신조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교리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바울 서신의 약 3분의 2 분량은 교리를 담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경, 교리, 신앙고백, 신학이 없이 각자의 생각대로 믿으면 인간의 제한성과 주관성의 포로가 된다.

자유주의는 그리스도와 교리를 구분한다. 교리가 교회의 분규를 조장하고 연합을 방해하며 신학의 발전을 제한하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본다. 교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리무용론, 신조무용론을 펼친다. 사도신경을 비교리의 전형(典型)으로 보면서 그것을 고백하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고 본다. 다양한 사상과 교리들을 모두 아름다운 신앙유산으로 받아들이자고 한다. 무조건 하나가 되자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유한한 인간이 어찌 자기가 믿는 것만을 절대화 할 것인가? 어찌 자기 교단, 종파만 옳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사물이해와 사상은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식으로 복음을 전하려면 새로운 발견, 창조적 지식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문화적 정황과 관련을 갖고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인간이 무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상상적, 형이상학적, 초역사적 또는 초인간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합리적으로 절대적이거나, 명제적으로 무오한 진리를 아는 것이 쉽지 않다. 사물이해에 대한 해석학적 조건과 제한성을 깨달아 항상 배우고 겸허하게 진리의 확실성을 탐색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하는 위험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그 어떤 것보다 성경과 그것의 권위에 의존한다. 기독교는 계시(啓示)라고 하는 초월적·신적 수단인 신탁(神託)에 토대를 두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의 제한된 범주를 넘어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유한한 싸이클에 맞추어 자신의 말씀, 영원한 진리를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구프린스톤신학자들은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의 교리를 천명했다. 그들이 제시한 성경관은 창작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쳐 온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의 근본이 종교 감정이나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facts)과 그것에 대한 설명―교리에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인간이 (1) 그리스도를 믿고, (2)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3) 율법을 지키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유태주의자들은 (1) 그리스도를 믿고, (2) 율법을 지키고, (3)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것을 명확히 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교리이다. 교리가 사실을 명확하게 한다.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복음제시의 ‘방법’보다는 복음의 ‘내용’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바울은 다른 책에서 기독교들이 관용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관용은 복음의 내용에 대한 무차별적인 태도가 아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진리에 관한 문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한 것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 시대의 자유주의 신학(영지주의, 거짓교사)에 전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고 말했다.

바울은 진리의 복음을 비복음, 거짓복음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진노한다. 경험을 복음으로 보지 않는다. 경험은 주관적이어서 특정인에게는 진리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바울은 기독교를 진리(교리)에 기초한 삶으로 이해한다. 교리(복음)가 먼저이고, 체험(삶)이 나중이라고 본다. 그는 교리를 탓하는 다원주의자가 아니었다. 항구적이고 우주적인 진리에 관심을 가졌고, 성령의 영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체계화했다. 바울의 관점에서 볼 때 교리를 빼면 기독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교회의 전횡적인 무대였던 유럽을 기독교의 불모지가 되게 만든 것은 자유주의 신학, 포용주의 태도, 타종교와의 대화, 다원주의적 에큐메니칼 사상이다. 영국, 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의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추락하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를 신앙하고 고백하는 것을 ‘배타적’이라고 보는 탈기독교 사상이다. 역사와 교리를 구분하고, 전통적 성경관을 무시하며, 신학을 시대사조, 시대정신에 걸맞게 변개해 왔기 때문이다.

칼빈은 “거짓이 종교의 성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자마자, 요긴한 교리의 요점이 뒤집어지자마자, 교회의 죽음이 초래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교회가 사도와 선지자의 교리 위에 기초해 있다면… 그 교리가 파괴될 때 교회가 어떻게 계속 존속할 수 있겠는가?”16고 말한다. 다양한 신학에 교회의 문을 열어주면 기독교는 교리 없는 종교, 십자가 없는 복음, 믿는 바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 집단으로 전락한다. 종교다원주의, 신학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의 성경적 토대를 확고히 하고, 교리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4. '개혁주의' 스펙트럼

정통신학을 신념체계로 가진 ‘개혁주의’(Reformed)는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이후 스위스 중심의 개혁파 전통 아래에 있는 개혁파 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전통을 일컫는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비로마가톨릭교회와 비루터파 개신교회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도 개혁주의자(개혁파 신학자)라고 불리며, 20세기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칼 바르트도 개혁주의 신학자로 불린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그레스앰 메이첸과 코넬리우스 반틸과, 국제기독교연합회(ICCC) 총재 칼 매킨타이어도 충실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은 개혁파 진영 안에 있는 진보계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국제개혁교회연합회(ICRC)는 보수계 교회들의 연합단체이다.

영어 ‘Reformed’(독일어 Reformiert)는 약 10 가지의 다양한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1) 형용사적인 기능을 가진 분사로 사용될 경우는 ‘개혁된’을 의미한다. 개악(改惡)된 것이 아니라 고쳐져 새롭게 되었다는 뉘앙스를 가진다. (2) 중세교회로부터 종교개혁을 통해 새롭게 된 종교, 곧 개신교를 의미한다. 해방 전후 우리나라 문헌들에는 ‘개혁교’(改革敎), ‘개혁종’(改革宗), ‘갱정교’(更正敎)와 같은 표기가 나타난다. (3) 개신교회 가운데 루터파, 재세례파, 영국 국교회와 구분되는 ‘개혁파’를 뜻한다. 개혁파는 쮜리히의 쯔빙글리와 제네바의 칼빈, 스트라스버그의 부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교파이다. (4) 스위스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개혁파 전통을 따르는 교단을 지칭한다. 화란개혁교회, 헝가리개혁교회, 미국개혁교회 등으로 사용된다. (5)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번역되는 것은 ‘개혁주의’이다. ‘개혁파’ 또는 ‘개혁교단’이 믿고 신앙하는 것을 일컫는다. ‘개혁주의’로 번역할 때 이데올로기적인 뉘앙스의 오해가 생긴다. 개혁신앙은 이데올로기적인 ‘주의’(-ism)가 아니다. 그 밖에도 문맥에 따라 (6) ‘개혁주의자’를 뜻하기도 하고, (7) ‘개혁파 전통’을 의미하거나 (8) ‘개혁주의 신학’을 뜻하기도 한다. (9) ‘개혁주의적 혹은 개혁파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며, (10) 간단하게 ‘개혁’으로 번역되어 ‘개혁신앙,’ ‘개혁신학,’ ‘개혁교회’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Reformed’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종교개혁의 역사 초기에 교황주의에 반대하는 개신교들을 일컬을 때였다. 기독교회의 개혁의 필요성이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새롭게 된 교회가 본래의 신적 질서와 생활을 회복했다는 의미로 ‘개혁된 교회,’ ‘교정된 교회,’ ‘정화된 교회’로 일컬어졌다.

그 뒤 ‘Reformed’는 루터파와 쯔빙글리파 모두를 일컫는 포괄적인 용어로 발전되어 교황주의자들을 대항하는 자들을 일컬었다. 루터파 신앙고백서인 좬협정신조좭의 도입 부분은 “우리 개혁교회는 교황주의자들과 다르게, 타락하고 저주받는 종파와 이교도로부터 분리되었다”17고 진술했다. 독일 안의 멜랑히톤계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엄격하게 반대하여 작성된 이 루터파 신조는 자신들의 교회를 ‘개혁된 교회,’ 곧 ‘개혁교회’라고 불렀으며, 16세기 말 그리고 17세기 초까지는 이 같은 용례로 계속 사용되었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Reformed’란 용어를 복음주의(evangelical: Lutherans)에 대한 동의어로 사용한다. 루터파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루터파’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들의 교회는 새로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개혁된 교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혁파’라는 이름이 종교개혁에 속하는 비루터파 구성원만을 일컫는 용어가 된 것은 성만찬논쟁 때였다. 이 논쟁은 개신교인들을 다시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개혁파로 구분하게 만들었다. 칼빈파로 비난받던 팔라틴 왕국의 프레드릭 3세는 1563년의 한 편지에서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성찬 교리에 관한 주님의 말씀의 본문에서 이탈한 자들”이라고 말했다. 좬협정신조좭는 칼빈파를 “모든 성찬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유해한 자들”18로 묘사한다.

한국장로교회의 신앙의 틀은 영미의 청교도적 배경을 가진 개혁주의 장로교회들의 선교를 통해 잡혔다. 신학의 조형기(造形期)로부터 한국장로교회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비록 이 고백서들은 1960년대 후기에 이르러 공식적인 문헌으로 받아들여졌지만, 1907년에 출범한 한국장로교 독노회가 조직된 때부터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어왔다.

한국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주권, 성경에 대한 높은 권위, 확신 있는 전도의 실천을 중시하는 개혁주의 전통을 받았다. 초기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개혁주의 전통에 바탕을 둔 퓨리탄 형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는 경건생활, 청교도적 개혁주의 메시지를 가지고 교회, 학교, 도시, 촌락에서 말과 글로, 행위와 활동으로 전도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개혁주의 전통과 관련해 처음으로 ‘개혁’이란 단어가 한글 문헌에 사용된 것은 1920년 4월에 발간된 [신학지남]이다. ‘만국장로회연합총회’라는 이 글은 부두일 선교사가 번역하여 게재한 것으로 1877년 에딘브라에서 모인 제1차 장로교연합총회를 소개하고, 그 모임에 다수의 ‘개혁교인들’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개신교를 ‘갱정교회’(更正敎會)란 말로 일컫는다. 한국인으로서 ‘개혁’을 문헌상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남궁혁 박사였다. 1934년 7월 [신학지남]에 실은 ‘칼빈신학과 현대생활’이란 논문에서 ‘칼빈주의’가 무엇인가를 소개하면서 사용했다. 개신교를 일컫는 것이었다.19

개혁주의(Reformed)란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신앙고백적으로 공식 문헌에 사용된 것은 고신교단의 출범과 더불어 발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 발회식 선포문’(1952)20에서 였다. 이 문헌은 ‘개혁주의’를 3회 언급하면서 신생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장로교회가 전수받은 개혁주의를 계승한다고 선언한다. 평양에서 마포삼열, 구례인, 박형룡 등이 가르친 전통적 개혁주의, 한상동·주남선·손양원 목사가 전수받은 정통신학을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총신대학교 교수회는 ‘총신의 신학적 입장’에서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대한 고수를 선언했다. “우리 총신 교수 일동은 전국 교회 앞에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과 복음주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총신의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이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하면서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언급했다. 마지막은 흥미롭게도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실제적 특징인 적극적 문화관과 사회봉사를 강조한다”21고 진술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계 장로교회들과 신학교들이 사용하는 ‘개혁주의’의 개념은 고려신학교의 박윤선 교수와 직결되어 있다. 그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메이첸과 반틸의 신학노선을 따라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했다. 정통신학, 개혁파 정통주의, 칼빈주의, 전통적 개혁주의 등으로 일컬어져 온 신학노선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주의자, 구프린스톤신학자, 웨스트민스터신학자, 평양신학자들이 가르치고 고백하던 신앙노선이다.

‘개혁주의’가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 전통을 일컫은 용어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 관련문헌도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통합, 기장 등의 교단 관련자들은 칼빈의 영향 하에 있는 교회들을 모두 ‘개혁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은 자유주의와 신신학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1875년에 장로회 체제를 가진 유럽과 아프리카의 개혁교회 연합체로 시작했다가 1970년에 합동 과정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바뀌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을 지향하는 개신교회들, 특히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그리고 관련 기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사무실을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실 곁에 두고 있을 정도로 두 단체는 한 계통에 속하며 밀접하다.

이 단체는 안식교, 로마가톨릭교회 등과 대화 모임을 가지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세계루터파교회협의회(LWF)와 연합할 것을 모색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안수하고, 성경무오성을 부정하는 단체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교리를 벗어나 공동교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사회, 정치, 화해, 평등, 대화, 인도주의, 교제, 경제적 불평등 해소 둥에 관심을 기울인다. 신앙고백적인 일치보다 제도적 연합을 우선시한다. 세계의 모든 종교들과 문화를 수용하는 폭넓은 개념의 교회(A larger household of God, a broader OIKOUMENE to which renascent world religions and cultures belong)를 추구한다. “우리는 특히 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을 깨닫고 있는 다종교의 상황에서 다른 종교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문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고 실제적 협력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22고 한다.

기장교단과 통합교단은 여러 해 전부터 이 단체의 회원교회로 활동해 왔다. 근년에 대신교단과 합동정통교단이 이 단체에 가입했다. 교단의 지도급 인사들이 한국장로교연합회 중심으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을 하다가 기장교단과 통합교단 인사들의 권유를 받아 가입했다. 이 교단들은 교회의 정체성과 생명에 직결된 신앙노선, 신앙고백과 관련된 것을 결정하면서도 신학적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 나들이를 좋아하는 인사들이 주도하여 정치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23

한국장로교연합회의 서기 전병금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24고 말하면서 모든 장로교단들이 세계개혁교회연맹에 참여하여 세계교회와 연합을 강화해 나갈 것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고신교단도 한국장로교연합회 회원교회이므로 세계개혁교회연맹에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국제개혁교회협의회(ICRC)는 성경적 신앙고백과 개혁신학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신앙문답을 소중히 여긴다. 한국의 고신교단이 가입해 있고, 회원의 폭을 넓히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개혁주의계는 두 개의 상반된 보수계와 진보계 신학진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학과 신앙고백이 상호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극단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다 포함되어 있다. 조선신학교(한신대)의 김재준 교수, 총회신학교(총신대)의 박형룡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이종성 박사, 고려신학대학원의 이근삼 박사는 모두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개혁주의는 일반적으로 스위스종교개혁운동과 관련된 전통을 일컫지만, 자신이 개혁주의계 교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자유주의와 개혁주의가 상반된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5. 근본주의 바로 알기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외적 일치보다 진리를 우선시 하는 교회개혁운동을 폈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관용주의자, 포용주의자, 화평주의자, 신앙무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진리에서 떠난 교회와 더불어 화평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단자,’ ‘분리주의자,’ ‘주의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진리 안에서 일치’를 추구했다. 성경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를 고백하는 범위 안에서 연합을 도모하고 일치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을 고무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교회가 현대주의 신학 강령에 따라 개혁되는 것을 돕는 반면에 성경에 따라 개혁하는 것을 방해한다. 성경보다는 문화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에 따라 기독교를 변혁시키려고 한다. 무엇을 고백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성경이 제시하는 유서 깊은 정통교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소한 문제라고 본다. 정통신앙 운동,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신종 기독교를 양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근본주의자, 배타주의자, 성경문자주의자로,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성경의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 사람으로 매도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면서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근본주의는 ‘성경적 기독교’를 변호한 사람들이 초교파적으로 펼친 광범위한 신앙-신학운동을 일컫는 용어이다. 성경의 영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초자연적 기적능력을 표지로 삼아 정통과 비정통을 구분했다. 중추적인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을 목사로 안수하는 것을 부정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가졌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은 기독교의 근본 도리들을 한낱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오번선언서(Auburn Affirmation, 1924)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디모디 웨버(Timothy P. Weber)가 지적한 대로, 미국의 근본주의 운동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다. 그것은 도시와 시골, 사변성과 단순성, 지성과 반지성, 온건성과 극단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근본주의는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부정적인 대중 이미지보다 지역적, 사회적, 정치적, 교육적, 신학적으로 훨씬 더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25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은 그것이 “복음주의, 부흥운동주의, 경건주의, 홀리네스 운동, 개혁파의 고백주의, 침례교 전통주의 그리고 기타 교단적 정통주의 등을 포함한다”26고 옳게 지적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근본주의를 거부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기본 도리들을 거부하는 자이다. 오번선언서 사상을 따르지 않고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신앙해 온 근본 도리를 수용하고 신앙하는 사람들은 모두 근본주의에 속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칼빈주자들을 “극단의 근본주의자”라고 불렀다. 기독교의 근본적 도리를 완고하게 신앙한다는 것이었다.

종교학이 말하는 근본주의자는 다양한 형태의 신념과 신조를 고백하고 종종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람이다. 열정, 확고한 의지, 냉정성이 철저하다. 근본주의는 인도 아요다(Ayodya)의 회교 사원을 폭파시킨 힌두교도나 소수 힌두교도를 박해하는 스리랑카의 불교도, 하나님이 아랍인의 땅을 자신들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는 구쉬 에누민(Gush Enumin)의 유대교도들 그리고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무조건 회교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역설하는 회교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근본주의는 체질상 새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타협과 변화를 거부한다. 현대의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고 혼란시키며 현대성(Modernity)을 반대한다. 매사에 우물 안 개구리식이다. 기독교권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나 종교적·민족적·정치적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만사를 단세포적으로 파악하고, 지적 탐색을 거부한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같은 종파의 종교인들을 다른 종파의 종교인들보다 더 가혹하게 대한다. 같은 종파의 배교자들을 불신자들보다 더 빨리 화형의 불길에 밀어 넣는다. 잊혀진 과거의 지혜를 상기시키지도 못한 채 전통에 연연한다.

기독교계 안에도 이러한 성격을 지닌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수장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현대적인 것을 거부한다. 정통신학을 수용하면서도 반지성적 태도를 유지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대학교는 군대식 근본주의(Militant Fundamentalism)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말씀보존학회라고 하는 그룹이 극단적인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킹 제임스판 외의 성경번역본들은 모두 사탄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학계가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있는 뉴인터내셔널판(NIV) 성경조차 거부한다.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틀을 세우는 데 기여한 박형룡·박윤선 교수는 정통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투신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들을 “극단의 근본주의자,” “극단적 보수주의자”27로 단정하는 것은 개혁주의 정통신학 전통에 반(反)한다.

한국의 보수계 장로교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구프린스톤신학은 바울, 어거스틴, 쯔빙글리, 칼빈의 신학을 이어받았다. 데오도르 베자, 프랜시스 투레틴, 칼빈주의자들, 알렉산더, 핫지, 워필드, 메이첸 등과 관련되어 있다.

프린스톤이 지향하던 칼빈주의 정통신학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성적 활동을 환영한다. 새로운 문명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보면서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근본주의가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문명건설을 위해 힘쓰기를 주저하는 것과는 달리 이 세계의 모든 선한 영역 안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좌경화 되기 전에 미국북장로교회가 가졌던 개혁주의 신학은 군대식 근본주의가 아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위필드, 찰스 스펄전, 수많은 순교자들이 지녔던 신념체계이며, 박형룡·구례인 교수가 가르치고, 주기철·한상동·주남선·박윤선이 배우고 전수한 신학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시켜 세운 교회이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게 하셨다. 주께서는 이 교회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엡1:4). 한국교회는 예배당 강대상의 높이를 낮추고, 영상시설을 설치하고, 현대풍의 세련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열중한다. 사회적 신인도 제고와 도덕성 고양과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기독교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신자와 교회와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을 돌리고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자유주의 신학사조에는 마음을 여는 교회운동은 유서 깊은 기독교 신앙에 역행한다. 진보와 보수를 포용하는 교회운동, 신학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은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사상에 교회를 개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해독성은 당장에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결과에 이르게 된다. 교회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잃게 된다.

 

고려신학대학원 최덕성 교수님 홈페이지(reformanda.co.kr)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