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유다

탈무드

하나님아들 2020. 4. 1. 18:12

탈무드

 

 

 


 
유대인하면 탈무드를 떠올린다.
유대인 정신의 보고라 할 수 있는 탈무드는 유대인 정신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요즈음 대형서점에 가보면 '탈무드'라는 이름의 많은 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려 이십여 개의 출판사가 앞다투어 내놓은 것을 보면 그래도 꽤 잘 팔리는 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가 영어나 일어책을 번역한 원조(?)인지 번역한 책을 그대로 또 베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탈무드'는 유대인의 처세술에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으니 이 또한 놀랍다.
과연 탈무드가 처세술의 책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 탈무드를 배우고 있는가?
그러나 실제로는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탈무드를 배우고 있다.
유대인이라고 모두 탈무드를 배우거나 능통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그들의 역사의 일부로서 성경을 배우기는 하지만, 탈무드는 종교인들만이 배운다.
우리들이 탈무드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출판된 책을 읽고 탈무드를 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더 이상 사서삼경을 배우지 않듯이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탈무드를 배우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약 6 퍼센트를 차지하는 정통파 종교인들은 자녀들에게 세속교육은 아예 시키지 않고 탈무드 교육만을 시키고 있다.
종교인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거니와 세속 어린이를 사귈 기회도 없다. 종교인 가정에는 바보상자인 텔레비전도 없으니, 도심 속에 살아도 종교인들은 일반 세상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또한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세속적인 유대인과 종교적인 유대인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 오늘의 이스라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는 좁은 뜻으로는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만을 가르치지만, 넓은 뜻으로는 구약성경 전체와 탈무드까지도 포함된다.
유대교에서는 토라를 성문 토라와 구전 토라로 나눈다. 유대인들은 구전 토라를 구약성경인 성문 토라와 똑같은 권위로 인정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구전 토라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전수되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유대인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은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사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토라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토라는 주후 220년 랍비 예후다 하나시가 집대성하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부른다.
미쉬나는 씨앗(농사에 관하여), 절기(명절), 여성(결혼, 이혼 등 가정사에 관하여), 손해(민법, 형법, 재판에 관하여), 성물(聖物, 희생제사와 성전 제사에 관하여), 정결(제의적인 정결과 부정에 관하여)의 여섯 개의 큰 주제로 나뉘고 큰 주제는 약 10여개의 소 주제별로 또 나뉘어진다.
이 미쉬나는 유대인 삶의 모든 영역을 규범화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대교 현자들은 미쉬나를 해석하고 설명해 나갔다. 이 미쉬나에도 추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다. 미쉬나를 본문으로 하고 이를 해석하는 주석 그마라가 덧붙여진 것이 탈무드의 형태이다.
주후 5세기에 갈릴리에서 편찬된 탈무드는 후에 편찬된 바벨론 탈무드와 비교하여 팔레스타인 탈무드 또는 예루살렘 탈무드라고 불린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나서 바벨론의 유대교 현자들은 더 광범위한 바벨론 탈무드를 완성시켰다.
바벨론은 남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정착하면서부터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중심지가 되었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율법연구는 팔레스타인이 아닌 바벨론의 수라(Sura)와 품베디타(Pumbadita)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공자와 맹자의 교훈 되는 말 몇 마디로 유교를 안다고 할 수 없듯이 탈무드의 재미있는 예화 몇 가지만으로 유대교와 탈무드를 다 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탈무드에 대한 책들은 그 예화 몇가지를 소개함으로서 그것이 탈무드의 전체인양 소개한다.
실제로는 유대인 학생들조차도 탈무드는 배우기 어려운 과목으로 여긴다.
이제 더 이상 탈무드를 처세술이나 이솝이야기같이 재미있는 책의 하나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면 미쉬나의 절기(Moed)편은 12개의 장으로 주제에 따라 나누어져있다.
안식일(Shabbath)은 미쉬나 절기(Moed)의 첫 장인 셈이다. 이 미쉬나를 본문으로 하여 주석이 추가하여 탈무드는 이루어져있다. 미쉬나에서 한 장으로 속해있던 안식일(Shabbath)은 탈무드에서는 독립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러므로 탈무드는 책의 권수만으로도 6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렇다면 탈무드는 무엇인가?
<탈무드>란 히브리어로 '가르치다'라는 의미에 관련된 교훈이나 설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탈무드>는 <구약성서>가 씌여진 뒤 유태교의 법률, 전통적 습관, 축제, 민간 전송, 해설 등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성서 다음으로 유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왔다.
여기에는 유태인들의 종교적 생활만이 아니라 법적 규정이나 판례법 까지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 유태민족의 생활양식은 물론 기독교와의 관계를 아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원전 200년부터 약 700년에 갈쳐 많은 학자들과 랍비들의 연구 결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탈무드>는 수천년 동안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것들이다.
<탈무드>는 권수로 모두 20권이며, 12,000페이지에다 단어의 수만도 무려 250여 만개 이상이며, 그 무게가 7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다.
<탈무드>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또 어떤 내용의 책인가를 이해시키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너무 간단하게 말해 버리면<탈무드>의 진정한 의미에서 벗어나기 쉽고, 그렇다고 좀 상세하게 설명하게 되면 그야말로 한이 없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탈무드>란 책이 아니고 문학이다.
1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500년에 걸쳐 천년 동안이나 구전되어 온 것들을 수많은 학자들이 10여년에 걸쳐 수집 편찬한 것이다.
또한 이<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500년에 걸쳐 천년 동안이나 구전되어 온 것들을 수많은 학자들이 10여년에 걸쳐 수집편찬한 것이다.
또한 이<탈무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생활 속에까지도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유태인들의 5000년에 걸친 지혜이며, 지식의 보고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탈무드>는 유능한 정치가나 과학자 또는 철학자 ,저명인사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학식 있는 학자들에 의해 문화, 종교, 도덕, 전통 등이 망라되어 엮어진 것이다. 때문에 <탈무드>에는 법전은 아니지만 법률이 있고 역사책이 아니지만 역사의 내용도 들어 있으며, 인명 사전이 아니지만 많은 인물들이 망라되어 있기도 하여 백과사전 같은 내용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무엇이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5000년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 온 유태인들의 온갖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이 모두 이 <탈무드>한 권에 담겨져 있다. 이렇게 볼때, <탈무드>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값진 문헌이며, 화려하게 꽃피운 문화의 모자이크이다. 서구 문명을 만들어 낸 문화의 양식이나 서양 문명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탈무드>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본 <탈무드>의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성서에 이른다. 이것은 옛유태인들의 사상을 모은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를 보완하여 그 지혜를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탓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 출현 이후에 만들어진 유태인들의 문화는 의식적으로 무시하였으며, 심지어는 <탈무드>의 존재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탈무드>가 책으로 엮어져 정착되기 전에는 선생에서 제자에게로 구전되어 전승되었다. 때문에 내용의 대부분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내용의 범위도 광범위하여 모든 테마들이 히브리어나 아랍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글로 옮겨질 때도 문장에 필요한 부호나 구둣점같은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머리말이나 맺는 말도 없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체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탈무드> 만들어지던 그 당시에는 내용이 양적으로 방대하였고, 때문에 유태인들은 <탈무드>의 일부분이 잊혀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승자들을 각처에서 두루 모았다.

유태인들은 그때 전승자들 가운데서 머리가 뛰어나게 우수한 사람은 일부러 제외시켰는데, 그것은 <탈무드>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견이나 소신을 가미시킬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탈무드>가 왜곡되지 않겠는가? 이런 과정을 거쳐 구전되어 오던 <탈무드>의 내용들이 몇 백년 동안 각 도시에서 편찬되기 시작하여 현재에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가 더 비중있는 책으로 그 권위가 인정되어 일반적으로<탈무드>하면 이[바빌로니아의 탈무드]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탈무드>는 이처럼 유태인에 있어서는 다름아닌 '얼'이다.2000년이란 오랜 세월을 세계 각처에 흩어져 수난 속에 살아야 했던 유태 민족에게 오직 이 <탈무드>만이 유일하게 이들을 연결해 준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유태인들 모두가 <탈무드>를 공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정신적 자양분을 이<탈무드>에서 취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생활 규범을 찾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탈무드>는 유태인을 유태인답게 만들어 왔고, 또한 유태인들이 <탈무드>를 지켜온 것 못지않게 <탈무드>가 유태민족을 지켜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원래 <탈무드>란 말은 "위대한 연구","위대한 학문이나 고전 연구"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탈무드>를 읽지 않았어도 이미 여러분은 <탈무드>의 연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겨진 1페이지는 독자 여러분의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은 <탈무드>는 끝없이 넓고 커서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담겨져 있고, 또한 그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하여 <탈무드>를 '바다'라고 부르고 있다. 유태민족 사이에 구전된 이러한 지혜와 가르침이 학자들과 랍비들의 힘에 의해 오늘날의 <탈무드>로 빛을 더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탈무드>를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는 관념을 버리고 보다 더 가깝게 대할 수 있는 삶의 지혜로 이해하여야 좋을 것이다.

탈무드에 대한 일화

한 젊은이가 유태인에 대하여 연구하려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구약성서를 공부하고, 이어 유태인에 관한 많은 서적들을 탐독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유태인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유태인을 이해하려면 유태인의 생활 규범인 <탈무드>를 공부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어느날 유태교의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란 유태인에게는 스승이고, 재판관이기도 하며,때로는 어버이가 되기도 하는 매우 존경받는 존재이다. 랍비는 자기를 찾아온 젊은이게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해 보겠다는 결심을 세운 모양이지만 아직 <탈무드>를 앞에 펼쳐 놓을 자격조차 없는 듯하오'하고 -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하였다.
하지만 젊은이는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한테<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결정해 주십시오."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두 아이들이 집에서 굴뚝 청소를 하게 되었소. 그런데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을 잔뜩 묻히고 내려왔는데, 다른 아이는 얼굴이 말끔한 채 굴뚝에서 내려 왔소. 이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닦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젊은이는 너무 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야 물론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겠죠."

젊은이의 대답을 예상이나 한 듯 랍비는 냉정하게 말하였다.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소."
"랍비님,그렇다면 맞는 말이 무엇입니까?"
"만일 당신이 <탈무드>를 공부하게 되면, 그 물음에 지혜로운 답을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랍비는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두 아이들이 굴뚝 청소를 마치고 지붕에서 내려 왔소. 그런데 한 아이는 말끔한 얼굴이었고, 또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을 묻히고 있었소,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검은 아이를 보고는 '내 얼굴도 검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얼굴이 검어진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보고 내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이때 젊은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제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랍비는 웃음을 띠면서 앞서와 같은 내용을 다시 물었다.
"두 아이들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하고, 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워졌는데, 과연 어느 아이가 얼굴을 닦는다고 생각하시오?"

젊은이는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닦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이번에도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말하였다.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소이다."

젊은이는 너무도 낙심하여 지친 표정이 되었습니다.
"랍비님, 도대체 <탈무드>에서는 어떤 대답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어떻게 한 아이는 깨끗하고 한 아이는 더러워질 수가 있겠소? 두 아이가 다 얼굴이 더러워졌을 테니 둘 다 씻을 것이오."

랍비 아키바

랍비 아키바는 <탈무드>에 등장하는 랍비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며, 유태 민족의 영웅이다.
한때 그는 큰 부자집에서 양치기의 일을 한 때가 있었다. 그때 그 부자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집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키바는 남의 집에서 일할만큼 생활이 어려워 공부를 못했으므로 글을 읽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당신이 공부하여 지식을 갖추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아키바는 나이가 들어 아이들 속에 섞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이미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후 그는 최초의 <탈무드>를 편집한 인물이 되었으며, 또 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외국어까지 능통해 유태 민족의 사절로 로마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후 132년에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태인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는 유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 반란이 가까스로 진정되자, 로마인들은 학문하는 유태인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포하게 되었다. 로마이들은, 유태인은 그들이 배우고 있는 전통적인 책으로 인해 참다운 유태인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키바는 여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여우가 냇가를 거닐고 있는데, 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바쁘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그래서 여우는 "왜 그렇게 바쁘게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우리를 낚으러 달려드는 그물이 무서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여우는 친절한 척 "그럼 땅으로 나오렴. 내가 너희들을 지켜줄 테니까" 하고 말하였다.
물고기는 여우의 말에 "여우들은 꽤냐 영리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군 우리도 살고 있는 물 속에서도 이렇게 무서워 떨고 있는데, 땅 위로 올라가 무슨 변을 당할려고 올라가는가?" 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를테면, 유태인에게는 학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으므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잠시도 살 수 없듯이 유태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 뒤 아키바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로마로 끌려간 뒤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아키바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은 형벌로는 너무 가벼우며, 다른 사람에게도 본보기로 보여주어야 하므로 숯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아키바를 처형하는 현장에는 유태인의 지도자라는 것 때문에 로마 병사의 사령관이 나와 있었다. 마침 아침 기도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불에 빨갛게 달군 인두가 아키바의 등에 있을 때에, 아키바는 아침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사령관은 아키바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런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아키바의 대답은 담담했다.
"지금과 같이 이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다"
아키바가 조용히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