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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정치철학은 국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나님아들 2020. 3. 31. 23:54

제11강 정치철학은 국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레닌과 그람시를 통해 살펴보는 정치철학


▲ 레닌 이후의 정권교체

레닌은 문화혁명을 제창하는데, 문화혁명을 일으켜서 대중교육과 협동조합을 역설하죠. 그러면서도 관료제도의 위험을 고발하고. 국수주의를 비판하고, 1924년에 사망하는데 유언에서 스탈린의 거친 성격에 우려를 표명한다.

스탈린이 되면 안 된다, 스탈린은 성격이 너무 안 좋아서 얘가 되면 큰 일 난다 했는데, 죽기 전에 스탈린을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리죠. 그런데 그게 실패하고 결국 스탈린이 국가 주석으로 되고, 사할린의 정적이었던 트로츠키는 멕시콘가 어딘가로 망명을 떠나죠.

그랬다가 트로츠키의 비서가 스탈린과 내통해서 도끼로 등을 찍어 죽이지. 그래서 이 사람은 아주 객지에서 비명횡사 했죠. 스탈린이 공업으로 가야 한다. 무조건. 공업으로 가야 러시아가 산다. 자본주의를 이긴다. 이런 논리로 가서 당시 시베리아 쪽의 무수한 농장을 완전히 그야말로 초토화했죠.

그래서 어떤 통계에 따르면 200만 명이 죽었다 그래요. 그 통계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농민들이 200만 명이 죽었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거지. 내가 저번 주에 학술 발표하러 중국에 갔었잖아요. 시안에 갔는데, 어디를 봐도 사회주의는 없어.


▲ 이념만 있고 실재는 없는 중국의 현 사회주의의 모습

도시는 자본주의고, 도시 바깥에 한 발자국만 나가면 완전, 이건 농촌도 아니고 토굴 수준이야 토굴. 어떤 곳은 산에 구멍 뚫어서 사는데, 진짜 문자 그대로 토굴이지. 우리가 옛날에 인류학 책에서 가끔 보는 게 지금도 있어서, 거기서 살아. 설마 사람이 사냐 했더니 산다고 하네.

그러니까 도시는 자본주의, 시골은 완전 토굴, 관광지 가면 왕조, 그러니까 왕조, 비참한 시골, 자본주의, 모르겠어요. 짧은 시간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사회주의는 아무리 봐도 없어요. 그 다음에 ‘당‘증 하나 있으면 무조건 그어. 자기 돈으로 밥 안 먹어. 그건 무조건 긋는 거야.

친구 놈 데려가서 긋고, 다 그어. 당원증만 있으면 다 공제야. 짝짝 다 그어. 이게 무슨 사회주의야. 귀족사회지. 그래서 본연의 이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진 거죠. 거기서 사회주의적인 거 딱 하나 봤다. 그게 뭐냐면 서안에 가면 무슨 광장이 있어요. 우리로 말하면 세종 문화회관 같은 건데요.

거기 밤에 가니까 사람 수 백 명이 모여서 춤을 추더라고요. 수 백 명 되는 거 같은데, 다 밤에 모여서 춤을 춰. 근데 춤이 디스코가 아니고 같이 협동해서 추는 거 있죠. 어깨동무해서 추는 거.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광경 아냐. 우린 뭐 춤, 맨 연예인 나와서 춤추는 거밖에 없죠. 그거 보니까 정말 사회주의답더라고요.


▲ 소비에트 이후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

레닌이 소비에트를 세운 이후에도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그래서 자유주의 진영하고 사회주의 진영이 아주 강하게 대립했죠.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엄청나게 많이 전개되는데요. 재밌는 건 자유주의는 사상이 빈약해요. 자유주의 철학·사상이 빈약해.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말하자면 현실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에, 그것을 철학적으로 비판하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 사회과학적으로 관리하면 되는 거지. 그래서 자본주의나 자유주의는, 예컨대 경영학이라든가, 경제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걸 들어서 그 사회를 관리하고, 조정해 나가면 되는 거예요.

그에 비해서 사회주의는 기존의 삶의 형태하고는 완전히 다른 걸 만들어야 되는 거고 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상은 아주 풍부합니다. 묘하죠. 그러나 자유주의는 철학이나 사상이 풍부한 게 아니라 사회과학으로 경영학, 행정학, 사회학, 범죄학, 이런 걸로 그 사회를 관리해 나가는 거고,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그 자체에 대한 철학이나 사상이 풍부하죠.

그래서 현대 정치사상의 한 8-90프로가 다 사회주의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 중에서 레닌 바로 이후에 등장한 중요한 인물이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 인데, 레닌이 나로드니키를 비판한 것은 그들이 오브시추나(전통적인 농민 공동체)에서 사회주의로의 직접적 도약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이미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가 퍼지고 있었고, 다시 말해서 농촌 공동체가 이미 해체되고 있었고, 그래서 농민들이 임금 노동자로 변하고 있었죠. 또 화폐유통이 자본주의를 확대시키고 있었고, 그래서 레닌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기존 모순을 와해시키는데 과도기적인 공헌을 하리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레닌이 볼 적에 나로드니키의 문제점은 이런 겁니다.

나로드니키는 뭐라고 했냐면, ‘서구 사회는 이미 산업 사회로 진입했고, 산업 자본주의적인 모순이 팽배했지만,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농민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방식의 운동, 투쟁들을 러시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고 하죠.

레닌은 그것 자체(나로드니키의 비판 자체)는 옳다는 거야. 맞다! 서구 자본주의 비판을 일방적으로 러시아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다. 옳다. 그런데, 당신들(나로드니키)은 러시아의 특수성을 잘못 봤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거지.

현재 러시아의 특수성은 서구와는 달리 농민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민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ks로의 이행에 있는 거라는 거지. 이 대목을 좀 음미할 필요가 있죠. 또 레닌은, 시스몽디에게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상적인 비판은 그릇 되다고 하죠.

자본주의에 대한 감상적 비판은 누구나 하죠. 누구나 세상은 돈이 웬수야, 자본주의의 폐단이야 누구나 이야기하죠.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그런 감상적인 비판은 별 소용이 없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필요 하다는 거죠.

생산력이란 건, 노동과 재료와 기계를 투입해서 생산할 수 있는 전체 양이고, 생산 관계는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에 성립하는 인간 관계, 사회적 관계죠. 그래서 생산 관계를 비판하되,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비판하되, 생산력은 인민들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먹고 사는 절대량이 안 되는데, 사회주의적인 이상이나 도덕성에 대한 강조가 먹혀들어가겠느냐는 거죠. 그러니까 한국 사회는 지금 역사가 거꾸로 된 거지. 만약에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 노태우 시대 같은 파시즘 시절에 한국 경제 수준이 엄청 낮았다면, 그 파시즘은 훨씬 더 강한 저항에 부딪쳤겠죠.

근데 대중은 도덕성보다는 경제거든. 설문조사 나오면 항상 그래요. 무조건 1등이 경제 아냐. 파시즘이 나쁘다, 이 사회에 정통성이 없다고 해도 경제만 잘 돌아가면 저항에 안 부딪히죠. 만약에 그 때 당시에 경제가 아주 안 좋았다면 그 정권도 금방 무너졌을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근데 경제가 성장(?)하니까요. 지금은 반대지.

지금 정권은 역사상 그 어떤 정치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 속에서 탄생한 정부이고, 도덕성으로 말하면 가장 (뭐 요새 이라크 파병이라든가, FTA 같은 굉장히 나쁜 모습이 보이지만 그래도 역사를 쭉 보면 그나마) 도덕성 있는 정부인데, 못 사니까, 경제가 안 돌아가니까 만날 욕먹는 거야.

완전 거꾸로 되는 거야. 경제가 쫙 올라갈 적에는 파시즘 정권이고, 경제가 바닥을 칠 때에는 그나마 도덕적인 정권이죠. 참 뭐랄까, 유행가 가사에 ‘엇갈린 쌍곡선’인가 그런 게 있는데 하여튼. 그래서 생산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인류의 생산력을 발전시킨 건 사실이지. 그런 역사적 단계에서의 역할은 인정해야 한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쓸 당시에 러시아 혁명 세력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노동자 계급이었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혁명하고, 분명한 뚜렷한 이론적 근거로 인해서 일어나는 건 분명히 똑같지는 않죠.

그러나 사실 역으로 말하면,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론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이런 방식의 대중들의 봉기가 없으면 소용없는 거지. 그게 아주 절묘한 결합이 되어야 하죠. 게다가 레닌이 비판한 사민당이 결정적으로 있었구요. 아까 말했지만 사민당은 말이 사회주의지 상당히 다른 거야.


▲ 인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조직을 세우기 위해 창안한 ‘당’의 개념

그래서 그릇된 이론이 인민을 호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론은 지식인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이론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실천과 연계 고리가 만들어져야겠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레닌은 운동을 이끌어 나갈 전이(아방가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당’이라는 것으로 짐작했다.

레닌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혁명이 성공하려면 대중들의 의지나 분노만 가지고는 안 되고, 그거에 정치적인 정확한 방향성과 모양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는 전이부대, 아방가르드가 필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그 아방가르드를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러면서 결정적인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게 바로 ‘당’이란 개념이죠.

지금은 ‘당’하면 느낌이 안 좋지. 우리가 워낙 퇴폐된 당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독재하고 이런 이상한 거를 알고 있으니까. 근데 원래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철저하게 훈련되고, 강철처럼 강인한 직업적 혁명가들의 존재만이 러시아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론으로 얘기하는 것하고, 실천은 엄청 다르죠. 자기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걸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 거지. 죽는 것도 곱게 안 죽으니까. 완전히 사람을 끝까지 괴롭히다 죽이고 하니까. 그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함부로 이런 얘기 못 하는 거지. 말로야 쉽지.

인간이 어찌 보면 얼마나 약한 존재인데 이런 운동에 투신할 정도면, 그 심정이란 거는 정말 강철 같은 사람밖에 못 하는 거지. 이들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가 성립 가능하다. 헤게모니를 통해서 운동의 자연발생성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형태 없는 대중의 분노를 어떻게 모양을 부여하고 방향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야만 이게 의미 있는 결과로 도래한다는 거지. ‘헤게모니‘는 그리스어 ’에게스타이‘ 또는 ’에게모네오‘에서 유래했으며 인도하다, 안내하다, 선도하다, 앞에 서다 등을 뜻한다.

원래 에게모니아는 군대의 최고 지휘를 뜻했죠. 레닌에게서 헤게모니는 대중을 사회주의적 투쟁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대중의 모든 요구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띄었다. 이것은 곧 혁명적 주체 개념을 함축한다.

레닌은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인 해석 (이건 이제 맑시즘에 대한 진화론적인 해석이죠. 역사가 이렇게 진화하게 되었다는 그런 식)을 물리치고 주체적 힘과 정치적 주도권을 중시하는 맑스-레닌 주의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 국가사회주의와 혁명


▲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hegemony) 이론

그람시가 레닌을 이어서 헤게모니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그람시는 진지전과 기동전을 구분하죠. 기동전은 사회의 구조가 흔들리고 급박한 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때 필요하다. 그람시는 1917년 3월부터 11920년 3월까지가 기동전이었다고 보지만, 반대로 유럽에 필요한 것은 진지전이다.

왜냐하면 유럽은 이미 많이 안정된 사회이고, 자본주의가 옛날식의 무대뽀 자본주의가 아니고 조금 다듬어진 자본주의이고, 사회가 흔들리기에는 너무나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진지전 보다는 기동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 사회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데, 예를 들어 한국 같은 경우 1980년대에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데 ‘역사는 한 발자국씩 가야한다‘ 이런 말 하는 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거지. 그 상황에서는 한 발씩 못 가는 거지.

거꾸로 그 사회가 이미 상당 부분 안정이 되어서, 이미 구조가 되어 있는데, 쉽게 흔들릴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혁명하자 이러면 또 웃기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사회변혁의 강도는 그 사회의 현재, 성격과 맞춰서 일어나야 되는 거지. 그야말로 정말 총 들고 싸워야 할 때도 있는 거고, 아니면 아주 사상적, 문화적, 이념적으로 사회를 닦아나갈 때도 있는 거죠.

사회의 성격에 따라 변화의 강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그람시는 당대 유럽, 그러니까 러시아가 격동에 휘말릴 적에, 사실 유럽은 평화로운 시대거든요. 물론 1914년부터 1차 대전이 일어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진지전이 필요하다.


▲ 진지전의 가장 결정적인 주적은 파시즘이다

근데 이와 같은 진지전의 가장 결정적인 주적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뭐냐면 국가 사회주의죠. 말하자면 군국 사회주의죠. 이 사회의 자본주의 모순, 사회 부패, 부정·부패, 기강 해이, 등등을 민간적인 수준에서는 해결이 안 된다 이거에요. 민간 정치를 통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아예 군부가 나서서 혹은 군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기에 해당하는 어떤 단체가 나서서 이 사회를 완전히 꽉 잡아야 한다. 그게 파시즘의 출발점이죠. 그러니까 파시즘 시대가 도래하면 우리 옛날에 왜 학생이 군복 같이 생긴 교련복 맨날 입고 다니고, 걸핏하면 운동장에서 포복하고 말이죠.

그래서 장학사가 오면 모래 하나 없이 쫙 닦고, 그 다음에 아침에 조회시간 되면 줄 서서 미동도 안 하고 서 있고, 그런 분위기지. 군바리 분위기. 우리 같은 건 약과고. 이탈리아나 독일 이런 데에는 완전히 극단적인 경우죠. 그러니까 파시즘은 말하자면 군부 세력이 나서서 하는 거예요.

근데 이제 정치가들이 그걸 이용하는 경우도 있죠. 예컨대 일본 같은 경우는, 2·26 사태라고 있어요. 2·26 사태 같은 경우는 군대 애들이 나서서 천황 중심으로 사회 기강을 잡아야 한다. 그래가지고 완전히 설치다가 몇 명이 사형 당하고 물러났는데, 재밌는 건 그렇게 일어난 애들은 사형시켰지만, 걔네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는 정부가 이용을 하는 거예요.

걔네들이 이룩해 놓은 분위기는 정부가 접수하는 거지. 그러니까 걔네들이 저만큼 나갔으면 이 정도로 약간 줄여서 하는 거지. 그게 일본이 결국 파시즘으로 가고, 그게 2차 세계대전까지 쭉 가는 거지. 1929년에 이른바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공황이 몰려오죠.

그 때 미국의 월 스트리트 거기서 모든 게 결정 나지. 이른바 검은 목요일의 증시가 완전히 다운되어 버리지. 그걸 기화로 해서 이른바 대공황 시대가 오죠. 맑스가 그걸 예상했죠. 대공황이 온다고 예측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공황이 자본주의를 패망시키지 못하죠.

그 때 등장한 사람이 유명한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850) 죠. 등장해서 이른바 ‘뉴딜정책’을 실시해서 자본주의를 살려내죠. 그것은 왜냐, 이미 자본주의가 옛날의 무대포 자본주의가 아니가 성숙한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따라서 폭격을 해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 참호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은 단지 전쟁이나 혁명 또는 기타 방법 외에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는 않는다. 국가 권력을 쟁취한다는 건 사실 지배 계급이 바뀌는 것뿐이에요.

윗대가리 바뀌는 거지 그게 무슨 사회 변화야. 물론 윗대가리 바뀌면 개혁을 하니까 변화가 좀 오긴 오지. 근데 그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지. 시민 사회 자체를 정복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시민들이 과연 사회주의적 인간들이었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예컨대 우리 같은 경우는 할리우드 영화 비판한다 말이야. 할리우드 영화가 상업적이고 미국 이데올로기이고, 유아적이고 막 비판을 한단 말이에요. 근데 동구라파나 러시아 애들은 숨어서 그걸 본 거에요. 반대로, 거꾸로. 숨어서 보니엠 같은 애들 팝송 듣고 말이죠.

우리랑 반대에요. 우리 같은 경우 미국 퇴폐 문화라 그러지만 얘네들은 거꾸로 숨어서 미국 영화 보고, 팝송 듣고 이러거든? 그러니까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라 해서 소련에 살은 사람들이 모두 사회주의적 사람들이었냐는 말이야. 그건 천만의 말씀이지!

그래서 내가 학교 다닐 적에 후배하고 만날 그것 때문에 싸웠어요. 그 친구는 소련이 유토피아다 그거야. 그래서 거기는 사회주의 국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등하고 다 좋다 이거야. 내가 웃기지 마라.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거기(소련)도 마약도 있고, 창녀도 있고 다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소련에 왜 그런 게 없어? 천만의 말씀이지. 없는 거 없어요. 마약도 있고 다 있어요. 사회주의 윗대가리들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법에다 써 놓는다 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다 사회주의의 인간이 된다 하는 건 정말 소박한 생각이지.

지배자들이 사회주의 외칠 적에 아래 있는 아이들은 보니엠, 엘비스 프레슬리 이어폰 꽂고 듣고 있단 말이에요. 그건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인 가치를 공감하고 거기에 참여하고, 밑으로부터 뭔가 조금씩이라도 사회를 만들어갈 때 사회주의가 되는 거지.

누가 위에서 우리는 사회주의라고 쓴다고 그래서 사회가 사회주의가 된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에요. 마지못해서 그냥 따르는 척하는 거지. 근데 이게 어려운 문제를 낳죠. 인간의 본성이 뭐냐는 문제를 낳아요.

예컨대 중국에서 옛날에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많이 있었을 때조차도, 특구를 만들어서 자본주의 실험을 했거든요. 그래서 모델들 와서 발가벗고, 발가벗지는 않지. 몇 개 입고 이렇게 하고 뭐, 이렇게 실험상 들어왔단 말야. 그러니까 중국 젊은 애들이 난리를 치는 거야.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나 팝송은 전 세계 애들이 좋아하잖아.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그걸 좋아하게 되어 있는 거 같기도 하단 말이야. 본성이란 게 무슨 고상하고 이런 거보다, 할리우드 영화라든가 팝송, 스포츠 이런 걸 좋아하게 되어 있는 건지 모르죠.

아니면 그게 아니라 걔네들이 그렇게 상업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란 건 없는 건데,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문화가 일방적으로 밀려오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건지 모르는 거죠.


▲ 그람시 - 프롤레타리아 뿐만 아니라 전문가집단이 변화해야 한다

그게 참 재밌는 문제에요. 근데 전자로 보면 너무 대중들을 폄하하는 걸로 될 수도 있고, 후자로 보기에는 나타나는 현상들이 아무리 봐도 좀 그런 것 같고.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요. 특히 ‘그람시는 자본주의 국가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변화해야 한다.’ 고 얘기했죠.

그러니까 무조건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의 변화나 의지만 자꾸 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가 당장 혁명을 일으켜서 갑자기 사회주의 국가로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지금 한국도 그렇죠? 아니, 아무리 자본주의 모순이 이렇게 팽배해도 갑자기 몇 년 내에, 아니 몇 십 년 내에 사회주의 혁명이 벌어지겠어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특별한 계기가 오면 몰라도, 그럴 일은 사실 별로 없거든.

갑자기 누가 사회주의 혁명하자 그러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거기 동조하겠어? 특정한 사안에는 동조할 수 있어. 그런 사회에서의 변화란 무엇일까? 사회주의적이면서 좀 더 현실적인 측면을 인정해야 한단 이야기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갑자기 사회주의혁명이 발생해서 사회주의로 바뀐다? 그건 거의 상상하기 힘든 시나리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사회주의적인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면, 조금 더 현실 속에서 가져올 수 있는 변혁은 뭐냐? 무조건 프롤레타리아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변해야 한다는 거지. 변호사라든가, 의사라든가, 대학교수라든가, 엔지니어라든가, 신문사 편집장이라든가, 등등 이런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냐가 그 사회의 발전을 좌우한다.

예컨대, 신문사, 방송 같은 것도 비교적 아래 있는 사람들은 좀 의식이 있어요. 근데 아예 윗대기로 올라가면 철통같이 막고 있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여기(아래에서) 조금 될 것 같기도 하다가 안 되는 거지. 편집국장에 가면 잘라. 딱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쉽지가 않다 이거에요.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데. 아까 앞에서 얘기했죠? 출세 계단을 공들여 올라가는 사람들 아냐. 핏땀 흘려서 이 자리에 오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사회 변화를 원하지 않지. 어떻게든 그 자리를 지키고 싶지.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사회가 왜 바뀌어야 되냐 싶지.

그러니까 그 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나마 의식 있는 사람이 가끔씩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분포되어 있느냐가 그 사회의 변화에 중요한 변화라는 거야. 이건 사실 고전적인 사회주의 이론에서 볼 수 없는 통찰이죠.

또 하나. 시민 사회는 민족적 특징을 띠기 때문에 헤게모니는 민족적인 특수한 토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추구한다. 원래 사회주의 이념은 국제주의죠. 미국 사회주의, 소련 사회주의, 한국 사회주의가 없는 거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죠. 오로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만이 있는 거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각 민족들이 특징과 전통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아무리 이 세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국가라는 존재가 참 무섭죠. 외국에 한 번 나가려면 별 귀찮은 수속을 다 밟아야 되고 말이죠.

‘그람시에게 혁명이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것 못지않게 도덕적, 인식론적, 철학적, 문화적인 것이다. 그람시의 도덕적 지적 혁명 개념은 레닌의 문화혁명과 상통한다. 진정한 개혁이란, 관습을 철저히 공격하고, 문화와 사회의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게모니란 지도장치를 만들 능력, 동맹을 쟁취할 능력,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회적 기초를 제시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람시에게 헤게모니라는 것은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가는 게 아니라 능력의 범주로 이해되죠. 그래서 어느 한 계급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실행되는가,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를 이루는 과정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와 같은 물음들이, 중요한 물음들로서 제시된다.

‘이밖에 그람시는 문화와 대중 사이의 관계,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관계, 인문계와 실업계의 분리에 따른 계급 분화, 카톨릭교의 헤게모니에서 비롯한 많은 문제들을 그의 옥중수고에서 논의했다.’.

그러니까 그람시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되, 어떤 혁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탈취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문제 못지않게 삶의 저변에서의 사회주의, 교육계, 문화계, 문학·예술, 지식인들, 전문가 집단, 인문계와 실업계의 관계, 종교 문제 이런 거를 건드렸죠. 그런 면에서 정치, 경제, 국가, 군사적 사회주의 문제하곤 색깔이 또 다른 그런 사유를 전개했어요.

한국 사회가 파시즘 사회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분기점이 1989년 6월 항쟁이죠. 물론 노태우가 그 다음에 당선이 되는 바람에 전두환 정권이 이어지긴 하지만, 적어도 군사 정권 개념은 87년에 끝나죠.

그러면서 90년대 들어오면 사회전반이 변화하고 바뀌는데, 그 때에 그람시가 엄청 많이 읽혔어요. 왜냐? 인제 극악한 파시즘 정권이 아니라, 파시즘 같은 극단적인 정치가 물러나고 어찌되었든 문민정치거든. 노태우가 되는 바람에 군부가 이어지긴 했지만, 여기부턴 문민정치거든.

그러면서 맑시즘의 위기가 와요. 이제 뭐를 할 것이냐 할 적에 굉장히 많이 읽힌 사람이 그람시죠. 그게 바로 이 사람이 사회주의를 정치, 경제, 군사적인 일반적인 면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 사회 저변에서의 사회주의를 많이 얘기했어요.

한국의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그람시적인 사회주의가 읽을 게 많죠. 그 외에 서구 맑시즘, 루카치, 동구의 맑시즘이라든가, 사르트르-메를로 퐁티의 실존주의적 맑시즘이라든가, 모택동의 중국 맑시즘이라든가,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적 맑시즘 등등 많이 나오는데 요건 이제 다음 학기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