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정치철학에 대해서 | ||
◆ 정치철학의 성격과 역할
우리가 현대 사상에서 1,2 강에서는 주로 존재론(ontology) 또는 형이상학(meta physics)을 가지고 했고, 그 다음에 3, 4 강은 주로 현상학, 해석학을 했죠. 1, 2강은 세계에 대한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사유이고, 그 다음 3, 4강은 인문주의, 인간의 독특성, 고유함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 다음 5, 6, 7 강은 합리주의. 논리라든가 합리성, 과학성을 중시하는 거죠. 근데 앞으로 두 시간은 정치적인 철학 또는 사회적인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전통사회 같은 경우는, 고대 그리스 제외하면 정치절학이 사실상 없었죠. 왜냐하면 정치 철학이란 건 사람들 사이의 갈등, 문제, 여러 가지들을 토론, 논증 등을 통해서 해결하는 게 정치죠. 우리는 보통 정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정치라는 걸 나쁜 의미로 사용하지만 사실 정치는 굉장히 중요한 거죠. 왜냐하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갈등, 모순들을 전쟁이나 육체적인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논쟁하고 타협하고 선거를 하고 등등을 해 가지고 해결하는 게 정치니까요. 그래서 정치라는 건 인간에게 굉장히 소중한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왜곡된 정치를 알고 있는 거죠. 본연의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잘못된 의미의 정치를 알고 있는 거지. 근데 전통 사회는 정치라는 게 거의 없어요. 왜냐? 인간들 사이에 생기는 모순과 갈등을 이미 신분 사회의 구조 속에서 해결된 것이지. 왕이 이렇게 해라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정치란 건 존재하지 않죠. 정치라는 게 만일 존재한다면 지배자층(우리로 말하면 사대부 계층) 내에서만 정치가 존재하죠. 오늘날 같이 일반적인 의미의 선거를 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이런 건 없죠. 그렇기 때문에 물론 전통 사회에 정치가 없다면 과장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적극적 의미의 정치는 옛날 사회에는 있기 힘들죠. 서양도 마찬가지죠. 종교가 정치보다 위죠. 어떤 갈등이 생기면 기독교 교리에 의해 해석하죠. 그래서 성직자 계층이 그걸 담당하는 거지. 본연의 의미의 정치가 유일하게 있었던 것은 그래도 고대 그리스죠. 본격적으로는 근대에 와서 마키아벨리라든가 토마스 홉스 같은 사람 이후에 정치가 본격적으로 성립하죠.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지난 학기에 근대 철학 배우면서 봤듯이, 마키아벨리부터 칸트, 헤겔, 존 스튜어트 밀 등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면 맑스, 엥겔스가 나와서 이른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을 전개하는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볼 적에는, 그 이전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은 자유주의로 특징짓죠. 자유주의는 개인의 출발점이에요. 개인 개념은 그 이전과 다르죠. 옛날에는 ‘개인’ (개념)이 사실은 희박하죠. 이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나왔다든가, 어느 가문이라고 하죠. 그래서 옛날 사람들, 예컨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보면 나오잖아. 이야기할 적에, 나는 누구라고 이야기 안 하고 어느 가문의 누구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가문이나 지역이 중요해요. 이름도 그렇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하면 vinci(빈치)가 그 사람 태어난 마을 이름이죠. 또 Jeonne d'arc 에서 arc가 그 사람 마을 이름이지. 그러니까 출발은 신분 질서, 지역, 가문 이런 거죠.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개인(individual)이고, 그 점에서 아주 결정적인 변화가 오는 거죠. 이건 인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개인을 존경했다는 거예요. 한 사람의 개인이 개인으로서 존중을 받는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사회 자체가 허용을 안 하지. 어차피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하니까 혼자 살 수는 없고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한 사람의 개인이 아주 온전하게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사람은 지구상에 많지 않죠.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정치사상이 중요한 진보를 이뤘는데 이 사회주의자들이 볼 적에는, 근대 개인 중심의 정치사상이,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코뮤니티적인) 존재 방식을 말살시켰다고 해요. 그래서 18세기 계몽사상의 여러 흐름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코뮤니즘)이었죠. 그런데 맑스나 엥겔스가 볼 적에는, 계몽 시대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너무 공상적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회주의는 또는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해요. 물론 이건 맑스 쪽에서 말하는 거지. 뒷사람은 앞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앞사람은 죽었기 때문에 뒷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말 못하지. 항상 그래서 일방향성을 전제해야 되죠. 그리고 맑스·엥겔스가 이야기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시민에 대한 것이죠. 근대 시민 사회가 도래하는데, 근대 시민 사회가, '시민', bourgeois 란 단어에서, bour는 ‘시‘라는 뜻이어서, 부르주아라고 하면 시민 계급이죠. 여러분들 유럽 도시 보면 함부르크, 룩셈부르크처럼 부르크가 들어간 이름이 많죠? 루소는, 근대 부르주아 계급이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이고 평등한 의미에서의 시민이 아니라 도시 중산층, 도시 신흥 자본 세력이 되어 버렸다고 해요. ’부르주아 계급‘이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이 아니라, 당시 도시에 출현했던 신흥 자본가 계급, 신흥 상업, 상업 자본주의의 신흥세력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본주의, 부르주아란 말과 구분해서 citoyen이란 말을 써요. 그래서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 계급을 타파하고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죠. 지금도 사실은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요. 맑스·엥겔스의 사회주의 사상은 서양의 근대 정치철학이,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평등한 행복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 특정 계급의 이익에 맞추어서 생겨난 정치 이념이다. 모든 것을 부르주아의 이해에 맞추었다. 근데 이런 현상은 산업 혁명 때문에 더욱 본격화되요. 산업 혁명 시대에 이르러서 공업 시대가, 산업 시대가 도래하죠. 기계가 만들어지고, 공장이 세워지고, 그러면서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고 등등 전개되죠.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상업자본주의가 아니라 산업자본주의가 되죠. 그러면서 이전까지 귀족과 천민이라는 신분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이제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갈라지죠.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계급’은 맑스가 창안한 개념이에요. 신분이 아니라 계급이죠. 그러면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가져온 갖가지 모순에 대한 하나의 처방으로써 맑스와 엥겔스의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 이후에 이 사상이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하나의 사상이 어떤 하나의 지식, 이론, 사유로서가 아니라, 사회전체를 조직하는 정치적 힘으로 화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 중에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중 하나가 맑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죠. 그리고 맑스·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현실화 되는 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죠.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이른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그 다음에 모택동에 의해서 중화 인민 공화국을 만들죠. 동부 코바, 인도차이나 반도, 북한 등등에 의해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상들이 발생했습니다. 20세기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굉장히 많지만, 그 중의 하나가 맑시즘에 의한 일종의 역사 실험이죠. 실험실에서 하는 과학철학이 아니라 역사 실험이에요. 역사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고, 무수한 사상적 투쟁, 실제 전쟁으로 점철된 세기였습니다.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에 의해서 세워진 러시아, 소련(소비에트 연방)이죠. 지금은 소련이란 말 안 쓰죠? 1989년이던가? 소련이 무너지고 지금은 갈라져서 다시 옛날 이름, 러시아란 이름을 쓰죠? 그래서 이제는 소련이란 말이 낯선 말이 되었는데요. 19세기 말 러시아는 아직도 짜르(카이사르)죠. 카이사르(Caesar)에 의해 통치된 봉건국가였는데, 극단적인 신분 체제를 구성했죠. 이른바 치노프치크, 즉 출세용 사다리 체제가 그 사회를 지탱했다. 사회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출세 코스를 만드는 거예요. 공무원 같으면 18급에서 17,16 쭉 올라가죠. 회사도 쭉 있고요. 그러니까 출세 코스를 만들면 사람들이 그 출세 코스를 따라가느라고 딴 생각을 못 하죠. 그래서 그 출세 코스를 가능하면 여러 단계를 만들어요. 치노프치크는 14단계였습니다. 그 사회에서 뭔가 그래도 한 가닥 하는 사람이 되려면 14단계를 통과해야 돼.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다른 생각할 새가 없죠. 그거 하다 인생 다 보내는 거지. 그래서 지식인들의 신분 상승을 보장해 줌으로써 사회의 신분 체제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장치다. 과거 제도나, 우리나라의 고시 같은 것이 그렇죠. 고시는 좀 낫지. 왜냐하면 고시는 한 큐에 그냥 끝내는 거니까. 근데 이건 14번을 이겨야 되니까 아주 엄청난 거죠. ‘1861년 계산된 농노 해방 이후에 러시아 자본주의가 급작스럽게 발달했다.’ 전쟁과 평화를 보면 안드레 공작이 농노 해방을 시킨 걸로 나오죠. 근데 그건 소설에서 비공식으로 이야기이고, 정식으로 농노 해방이 이루어진 게 불완전하게나마 1861년인데, 이건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회발전의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를 통제 control 하기 위한 조치였죠. 이후에 러시아 자본주의가 급작스럽게 발달하죠. 우리한테는 러시아 그러면 우리 느낌으로는 서양 느낌이지. 근데 서구 사람들한테 러시아는 동방이야. 러시아 사람 자신도 서구를 서양이라고 불러요. 유래를 말한다면, 서구는 서로마 제국의 후예들이고, 이 쪽 러시아 동부는 동로마 제국의 후예죠. 뿌리가 다른 거야. 그래서 러시아는 농사 지역이었다가 점점 자본주의가 도입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른바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 ‘라는 계층이 등장해요. 이게 이 때 나온 말인데. 인텔리겐차는, 여러분들이 뭘 떠올리면 되냐면,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사람들 있지? (주인공들) 이름이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사람들 생각하면 돼. 이런 사람들이 나로도미키, 나로도 즉 인문주의자들이 등장해서 이론이나 사상만 가지고는 안 되고 농민층에 직접 뛰어들어서 말하자면 농촌 공동체로부터 농민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운동은 그렇게 큰 성공은 못 거두죠. 왜냐하면 이미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진입하고 있었고, 전 세계적인 사회운동의 표본이 농민보다는 노동자 계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원래 농민은 철저히 보수적인 집단이죠.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농민 집단이에요. 가끔 도저히 ‘못참겠다’ 그러면 한 번씩 들고 일어났다가 가라앉죠. 또 하나 그다지 큰 성과를 못 거둔 이유는 바코닌의 무정부주의(anarchism) 때문이죠. 아나키즘은 an+arche죠. arche는 여러분들이 철학사 강의 맨 첫 시간에 들었던, 그리스 철학에 나왔던 원리, 근원, 중심을 뜻하는 말이죠. 그런데 아나키즘은 이 세계에 원리 , 중심, 근원을 설정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걸 지배하는 걸 다 거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맑시즘과 아나키즘은 묘해요. 서로 겨냥하는 적이 비슷하거든? 자본주의, 자유주의죠. 겨냥하는 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상당히 비슷한 양태로 나타나는데, 이론적인 백그라운드는 굉장히 다르죠. 아나키즘은 테러리즘과 관련되죠. 테러리즘이 맨 처음에 아나키즘에서 등장해요. 근데 사실 테러리즘이 아나키즘의 핵심은 아니고, 아나키즘이 전개되는 과정에 나타난 하나의 방법적 차원에서 등장한 거죠. 그러나 테러리즘이란 말이 아나키즘과 결부되면서, 아나키즘이란 게 상당히 속된 말로 무대뽀 이미지가 붙지. 어쨌든, 이 때 당시에 러시아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열혈 청년들과 농민들 간의 거리가 참 컸다. 이렇게 당시 러시아 사회를 개혁하려 했지만 러시아 실정에 아직은 잘 안 들어맞고, 여러 가지 시행 착오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흐름들을 비판하면서 러시아 맑시즘이 등장하죠. 그러면서 이른바 러시아 맑시즘의 아버지라고 하는 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지치 등이 노동 해방단을 결성해서 나로드미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산업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러시아 혁명을 꿈꾼다. 그런데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요. 노동자·농민을 그냥 편하게 붙여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굉장히 안 맞거든. 노동자 중심이면 이미 도시 중심·산업중심이고, 농민 중심으로 가면 지역 중심, 농촌 중심이죠. 말처럼 쉽게, 간단하게 갖다 붙는 게 아니고 상당히 어려운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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