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윤리학! 상담학! 교육학!

제10강 정치철학에 대해서

하나님아들 2020. 3. 31. 23:53

제10강 정치철학에 대해서

◆ 정치철학의 성격과 역할


▲ ‘정치’의 왜곡된 의미가 근대의 의미로 정립되기까지

우리가 현대 사상에서 1,2 강에서는 주로 존재론(ontology) 또는 형이상학(meta physics)을 가지고 했고, 그 다음에 3, 4 강은 주로 현상학, 해석학을 했죠. 1, 2강은 세계에 대한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사유이고, 그 다음 3, 4강은 인문주의, 인간의 독특성, 고유함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 다음 5, 6, 7 강은 합리주의. 논리라든가 합리성, 과학성을 중시하는 거죠. 근데 앞으로 두 시간은 정치적인 철학 또는 사회적인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전통사회 같은 경우는, 고대 그리스 제외하면 정치절학이 사실상 없었죠.

왜냐하면 정치 철학이란 건 사람들 사이의 갈등, 문제, 여러 가지들을 토론, 논증 등을 통해서 해결하는 게 정치죠. 우리는 보통 정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정치라는 걸 나쁜 의미로 사용하지만 사실 정치는 굉장히 중요한 거죠.

왜냐하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갈등, 모순들을 전쟁이나 육체적인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논쟁하고 타협하고 선거를 하고 등등을 해 가지고 해결하는 게 정치니까요. 그래서 정치라는 건 인간에게 굉장히 소중한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왜곡된 정치를 알고 있는 거죠.

본연의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잘못된 의미의 정치를 알고 있는 거지. 근데 전통 사회는 정치라는 게 거의 없어요. 왜냐? 인간들 사이에 생기는 모순과 갈등을 이미 신분 사회의 구조 속에서 해결된 것이지. 왕이 이렇게 해라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정치란 건 존재하지 않죠.

정치라는 게 만일 존재한다면 지배자층(우리로 말하면 사대부 계층) 내에서만 정치가 존재하죠. 오늘날 같이 일반적인 의미의 선거를 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이런 건 없죠. 그렇기 때문에 물론 전통 사회에 정치가 없다면 과장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적극적 의미의 정치는 옛날 사회에는 있기 힘들죠. 서양도 마찬가지죠.

종교가 정치보다 위죠. 어떤 갈등이 생기면 기독교 교리에 의해 해석하죠. 그래서 성직자 계층이 그걸 담당하는 거지. 본연의 의미의 정치가 유일하게 있었던 것은 그래도 고대 그리스죠. 본격적으로는 근대에 와서 마키아벨리라든가 토마스 홉스 같은 사람 이후에 정치가 본격적으로 성립하죠.


▲ 자유주의와 정치철학 - ‘개인’으로부터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지난 학기에 근대 철학 배우면서 봤듯이, 마키아벨리부터 칸트, 헤겔, 존 스튜어트 밀 등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상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면 맑스, 엥겔스가 나와서 이른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을 전개하는데,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볼 적에는, 그 이전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은 자유주의로 특징짓죠.

자유주의는 개인의 출발점이에요. 개인 개념은 그 이전과 다르죠. 옛날에는 ‘개인’ (개념)이 사실은 희박하죠. 이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나왔다든가, 어느 가문이라고 하죠. 그래서 옛날 사람들, 예컨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보면 나오잖아. 이야기할 적에, 나는 누구라고 이야기 안 하고 어느 가문의 누구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가문이나 지역이 중요해요. 이름도 그렇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하면 vinci(빈치)가 그 사람 태어난 마을 이름이죠. 또 Jeonne d'arc 에서 arc가 그 사람 마을 이름이지. 그러니까 출발은 신분 질서, 지역, 가문 이런 거죠.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개인(individual)이고, 그 점에서 아주 결정적인 변화가 오는 거죠.

이건 인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개인을 존경했다는 거예요. 한 사람의 개인이 개인으로서 존중을 받는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사회 자체가 허용을 안 하지. 어차피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하니까 혼자 살 수는 없고요.


▲ 당시의 개인중심적 정치사상은 모든 것이 시민(bourgeois)의 이해에 맞추어져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한 사람의 개인이 아주 온전하게 한사람의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사람은 지구상에 많지 않죠.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정치사상이 중요한 진보를 이뤘는데 이 사회주의자들이 볼 적에는, 근대 개인 중심의 정치사상이, 인간의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코뮤니티적인) 존재 방식을 말살시켰다고 해요.

그래서 18세기 계몽사상의 여러 흐름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코뮤니즘)이었죠. 그런데 맑스나 엥겔스가 볼 적에는, 계몽 시대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너무 공상적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회주의는 또는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해요. 물론 이건 맑스 쪽에서 말하는 거지.

뒷사람은 앞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앞사람은 죽었기 때문에 뒷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말 못하지. 항상 그래서 일방향성을 전제해야 되죠. 그리고 맑스·엥겔스가 이야기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시민에 대한 것이죠.

근대 시민 사회가 도래하는데, 근대 시민 사회가, '시민', bourgeois 란 단어에서, bour는 ‘시‘라는 뜻이어서, 부르주아라고 하면 시민 계급이죠. 여러분들 유럽 도시 보면 함부르크, 룩셈부르크처럼 부르크가 들어간 이름이 많죠?

루소는, 근대 부르주아 계급이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이고 평등한 의미에서의 시민이 아니라 도시 중산층, 도시 신흥 자본 세력이 되어 버렸다고 해요. ’부르주아 계급‘이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이 아니라, 당시 도시에 출현했던 신흥 자본가 계급, 신흥 상업, 상업 자본주의의 신흥세력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본주의, 부르주아란 말과 구분해서 citoyen이란 말을 써요. 그래서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 계급을 타파하고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죠. 지금도 사실은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요.

맑스·엥겔스의 사회주의 사상은 서양의 근대 정치철학이,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평등한 행복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 특정 계급의 이익에 맞추어서 생겨난 정치 이념이다.

모든 것을 부르주아의 이해에 맞추었다. 근데 이런 현상은 산업 혁명 때문에 더욱 본격화되요. 산업 혁명 시대에 이르러서 공업 시대가, 산업 시대가 도래하죠. 기계가 만들어지고, 공장이 세워지고, 그러면서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고 등등 전개되죠.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상업자본주의가 아니라 산업자본주의가 되죠. 그러면서 이전까지 귀족과 천민이라는 신분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이제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갈라지죠.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계급’은 맑스가 창안한 개념이에요.

신분이 아니라 계급이죠. 그러면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가져온 갖가지 모순에 대한 하나의 처방으로써 맑스와 엥겔스의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 이후에 이 사상이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하나의 사상이 어떤 하나의 지식, 이론, 사유로서가 아니라, 사회전체를 조직하는 정치적 힘으로 화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 중에서 가장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중 하나가 맑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죠. 그리고 맑스·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현실화 되는 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죠.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이른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그 다음에 모택동에 의해서 중화 인민 공화국을 만들죠. 동부 코바, 인도차이나 반도, 북한 등등에 의해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상들이 발생했습니다.


▲ 맑시즘에 의한 역사 실험

20세기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굉장히 많지만, 그 중의 하나가 맑시즘에 의한 일종의 역사 실험이죠. 실험실에서 하는 과학철학이 아니라 역사 실험이에요. 역사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고, 무수한 사상적 투쟁, 실제 전쟁으로 점철된 세기였습니다.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에 의해서 세워진 러시아, 소련(소비에트 연방)이죠. 지금은 소련이란 말 안 쓰죠? 1989년이던가? 소련이 무너지고 지금은 갈라져서 다시 옛날 이름, 러시아란 이름을 쓰죠? 그래서 이제는 소련이란 말이 낯선 말이 되었는데요.

19세기 말 러시아는 아직도 짜르(카이사르)죠. 카이사르(Caesar)에 의해 통치된 봉건국가였는데, 극단적인 신분 체제를 구성했죠. 이른바 치노프치크, 즉 출세용 사다리 체제가 그 사회를 지탱했다. 사회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출세 코스를 만드는 거예요.

공무원 같으면 18급에서 17,16 쭉 올라가죠. 회사도 쭉 있고요. 그러니까 출세 코스를 만들면 사람들이 그 출세 코스를 따라가느라고 딴 생각을 못 하죠. 그래서 그 출세 코스를 가능하면 여러 단계를 만들어요. 치노프치크는 14단계였습니다.

그 사회에서 뭔가 그래도 한 가닥 하는 사람이 되려면 14단계를 통과해야 돼.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다른 생각할 새가 없죠. 그거 하다 인생 다 보내는 거지. 그래서 지식인들의 신분 상승을 보장해 줌으로써 사회의 신분 체제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장치다.

과거 제도나, 우리나라의 고시 같은 것이 그렇죠. 고시는 좀 낫지. 왜냐하면 고시는 한 큐에 그냥 끝내는 거니까. 근데 이건 14번을 이겨야 되니까 아주 엄청난 거죠. ‘1861년 계산된 농노 해방 이후에 러시아 자본주의가 급작스럽게 발달했다.’


▲ 농노 해방이 실패한 원인

전쟁과 평화를 보면 안드레 공작이 농노 해방을 시킨 걸로 나오죠. 근데 그건 소설에서 비공식으로 이야기이고, 정식으로 농노 해방이 이루어진 게 불완전하게나마 1861년인데, 이건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회발전의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를 통제 control 하기 위한 조치였죠. 이후에 러시아 자본주의가 급작스럽게 발달하죠. 우리한테는 러시아 그러면 우리 느낌으로는 서양 느낌이지.

근데 서구 사람들한테 러시아는 동방이야. 러시아 사람 자신도 서구를 서양이라고 불러요. 유래를 말한다면, 서구는 서로마 제국의 후예들이고, 이 쪽 러시아 동부는 동로마 제국의 후예죠. 뿌리가 다른 거야. 그래서 러시아는 농사 지역이었다가 점점 자본주의가 도입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른바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 ‘라는 계층이 등장해요. 이게 이 때 나온 말인데. 인텔리겐차는, 여러분들이 뭘 떠올리면 되냐면,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사람들 있지? (주인공들) 이름이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사람들 생각하면 돼.

이런 사람들이 나로도미키, 나로도 즉 인문주의자들이 등장해서 이론이나 사상만 가지고는 안 되고 농민층에 직접 뛰어들어서 말하자면 농촌 공동체로부터 농민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 운동은 그렇게 큰 성공은 못 거두죠.

왜냐하면 이미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진입하고 있었고, 전 세계적인 사회운동의 표본이 농민보다는 노동자 계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원래 농민은 철저히 보수적인 집단이죠.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농민 집단이에요. 가끔 도저히 ‘못참겠다’ 그러면 한 번씩 들고 일어났다가 가라앉죠.

또 하나 그다지 큰 성과를 못 거둔 이유는 바코닌의 무정부주의(anarchism) 때문이죠. 아나키즘은 an+arche죠. arche는 여러분들이 철학사 강의 맨 첫 시간에 들었던, 그리스 철학에 나왔던 원리, 근원, 중심을 뜻하는 말이죠.

그런데 아나키즘은 이 세계에 원리 , 중심, 근원을 설정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걸 지배하는 걸 다 거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맑시즘과 아나키즘은 묘해요. 서로 겨냥하는 적이 비슷하거든? 자본주의, 자유주의죠.

겨냥하는 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상당히 비슷한 양태로 나타나는데, 이론적인 백그라운드는 굉장히 다르죠. 아나키즘은 테러리즘과 관련되죠. 테러리즘이 맨 처음에 아나키즘에서 등장해요. 근데 사실 테러리즘이 아나키즘의 핵심은 아니고, 아나키즘이 전개되는 과정에 나타난 하나의 방법적 차원에서 등장한 거죠.

그러나 테러리즘이란 말이 아나키즘과 결부되면서, 아나키즘이란 게 상당히 속된 말로 무대뽀 이미지가 붙지. 어쨌든, 이 때 당시에 러시아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열혈 청년들과 농민들 간의 거리가 참 컸다.

이렇게 당시 러시아 사회를 개혁하려 했지만 러시아 실정에 아직은 잘 안 들어맞고, 여러 가지 시행 착오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흐름들을 비판하면서 러시아 맑시즘이 등장하죠. 그러면서 이른바 러시아 맑시즘의 아버지라고 하는 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지치 등이 노동 해방단을 결성해서 나로드미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산업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러시아 혁명을 꿈꾼다.

그런데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요. 노동자·농민을 그냥 편하게 붙여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굉장히 안 맞거든. 노동자 중심이면 이미 도시 중심·산업중심이고, 농민 중심으로 가면 지역 중심, 농촌 중심이죠. 말처럼 쉽게, 간단하게 갖다 붙는 게 아니고 상당히 어려운 문제죠.

 

◆사회주의와 레닌


▲ 국제 사회 민주주의의 결성과 유럽의 사민주의의 문제점

1889년 2차 인터내셔널, 이 때 플레하노프가 러시아 대표로 참석합니다. 그러다가 국제 사회 민주주의가 결성됩니다. 사회주의하고 공산주의는 뉘앙스가 달라요. 사회주의는 굉장히 애매한 개념이죠. 지금 이야기한 사회 민주주의는 독일의 사민당이 사회 민주주의 당이에요. 독일만이 아니라 몇 군데 있죠? 이게 사회 민주주의죠. 이건 좀 부드러운 사회주의였지.

혁명을 일으키자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완전히 뒤엎자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순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교정해 나가자는 주의에요. 지금 유럽 대부분이 사회 민주주의에요. 프랑스가 좀 센 사회주의인데, 프랑스도 요새 들어서는 좀 다르고요.

그 다음에 공산주의라고 하면 굉장히 센 거예요. 공산이니까, 완전히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자는 거니까 아주 강한 뉘앙스죠. 심지어는 나치즘도 사회주의에요.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zialism)죠. 국가가 나서서 사회주의 하는 거지. 이게 아주 웃기는 거지.

국가가 나서서 사회주의하면 그게 독재하는 거지. 그게 전체주의 아냐. 이거 외에도 변종들을 따지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사회 민주주의하면 지금 유럽풍 사회주의라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 유럽의 사회주의는 사실 사회 민주주의도 아냐.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에서 조금 멀다고 봐야 되지.

그런데 국제 사회 민주주의가 경제주의로 흐릅니다. 경제주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의 방향을 노동자들의 권익에 두는 것, 또 하나는 일단 부의 절대량이 되고,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다 같이 살자는 건 좋은데, 다 같이 못 살면 더 나쁜 거 아니에요?

이게 지금도 사실은 한국에서도 이런 주장 하는 게 많지. 지금도 분배 정의라든가, 사회 개혁을 하면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죠. ‘그렇게 하면 다 같이 못 산다!‘ 이게 경제주의죠. 그래서 이런 경제주의는, 말만 사회주의지, 묘한 거예요.


▲ 레닌의 등장 - 자연발생적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이럴 때 등장한 결정적인 인물이 블라디미르 레닌입니다. 레닌은 ‘투쟁의 목표를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에만 둔다면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가 계급을 도울 뿐이다’라고 하면서 베른슈타인의 이른바 수정주의를 비판하죠.

레닌은 ‘만일 경제 투쟁을 그 자체로써 완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런 투쟁 내에는 어떤 사회주의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임금 좀 더 받는 식으로만 생각하면 그건 오히려, 그야말로 자본주의 체제를 더 명확화 시키는 거고,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하죠.

그래서 레닌은 경제주의라든가, 수정주의라든가, 소영웅주의(테러리즘)를 모두 비판한다. 그러면서 대중들의 정신무장을 위해서 <리스크라>(불꽃)는 잡지를 출간하죠. 이때 레닌이 경제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쓴 책이 유명한 『무엇을 할 것인가?』이죠.

그래서 노동 운동의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 요소 사이의 관계를 규명했다. 고치세요. 자생적이라고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자연발생적‘인 거죠. 자연발생적인 건, 특별한 뜻이 있거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가치 때문에 투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오로지 배가 고파서 일어나는 거죠.

그럴 경우에, 그 투쟁은 당장의 배고픔만 면하면 사그라질 거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발생적인 변화는 수동적인 거죠. 왜냐하면 내가 수동적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거니까요. 근데 그런 식의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인, 이른바 의식화된 방식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자연발생적 노동운동을 비판하죠.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 자연발생적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획득한다는 경제주의 주장을 논박했습니다. 자연 발생적 요소는 노동조합적 의식에 그칠 뿐이며, 사회주의적 의식은 심도 깊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만 가능하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 2차 대회가 열리고, 그러나 마로토프 등의 맨쉐비키와 레닌 등의 볼쉐비키로 분리된다.

그래서 맨쉐비키는 상당히 유연성 있는 당이고, 볼쉐비키는 아주 강고한 당인데, 두 당이 부딪치죠. 일본이 1945년에 패전했지만 그 후에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죠. 그래서 60년대 쯤 되면 사회가 다시 고도로 발전해요. 거기에 따라서 모순이 등장하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7·80 년대 특히 그 때 일어났는데, 일본 같은 경우에 60년대가 되면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고, 그에 따른 모순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사회 투쟁도 많아지죠. 그 때 일본의 무수한 논쟁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나볼 논쟁’이었어요. 아나볼 논쟁은 아나키즘과 볼쉐비키 논쟁이에요.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가장 래디칼한 그룹은 다 볼쉐비키죠. 1905년에 이른바 ‘피의 일요일’이라는 큰 부딪침이 일어나죠. 그러면서 대중들이 뭔가 대중들에게 영합하는 듯이 보이던 짜르가, 사실은 그게 아니라 순전히 꿍꿍이속으로 그랬다는 걸 알게 되죠.


▲ 소비에트의 등장 - ‘대의’가 아닌 순수한 인민의 직접 통치

그러면서 러시아 전체에 총파업이 발생하죠. 그리고 <전함 포템킨>에서 거대한 반란이 발생하죠. (에이젠슈타인의 유명한 영화 있죠?) 1905년 10월 13일, 페테스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조직된다. 소비에트는 이른바 평의회에요.

그러니까 보통 인민들이 있고, 인민들을 대의(represent)하는 게 근대 정치 철학이거든요? represent가 존재론이나 미학으로 말하면 '재현'이죠. 그리고 인식론으로 말하면 ‘표상‘이죠. 근데 똑같은 말이 정치철학에서는 대의에요. 인민의 뜻을 대변하는 거지. 국회든 뭐든 인민의 뜻을 어떤 것이 대변하는 건데, 소비에트는 대변하는 게 아니라 인민들의 직접 통치죠.

역사상 가장 순수하게 나타났던 직접 통치가 두 번 있었어요. 하나는 1870년에 파리꼬뮨이고 하나는 이 때의 소비에트가 대표적인 예죠. 그래서, 파리 꼬뮨에 버금가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짜르의 기병대에 몰려 실패하고, 그 후 스톨리피가 나타나서 반동정치를 펼치죠.


▲ 레닌의 혁명, 그 과정의 의의의 변질

그러다가 1912년에 프라우다를 발간으로, 혁명 열기가 고조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1차 세계대전 사이에, 레닌이 제국주의를 지지한다. 제국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주의를 말하는데, 자본주의가 최고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유럽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서 유럽이 판로 개척, 원료 수입 등등을 위해서 유럽 바깥으로 쳐들어간 거죠. 그게 제국주의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이 제국주의로 가죠.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발생한다. 그런데 레닌은 오히려 제국주의야말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국주의가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라고 판단하죠.

그러니까 러시아가 오히려 전쟁에 짐으로써, 러시아가 패배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들고 일어난다고 판단하죠. 원래 혁명이나 사회 변화는 이성적인 게 아닌 거죠. 이성적인 것도 물론 개입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은 게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프로야구 같은 것도 왜 생겼냐면,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 때 하도 반감을 가지니까 그걸 무마하기 위해서 졸속으로 만든 게 프로야구죠. 그래서 해태가 자꾸 우승을 하거든. 그게 말하자면 사회의 원한을 풀어주는 치료약이 되는 거지.

그런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요소가 정치에 영향을 많이 끼치죠. 이것도 그 중의 하나인데, 1917년 2월이 되면 드디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죠. 그러면서 짜르 체제가 붕괴합니다. 그러나 곧장 우리가 아는 그 러시아 정부가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건 아니고, 부르주아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가 공존하게 되죠.

4월 3일에 레닌이 핀란드역에 귀환하면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고 외치면서, 말하자면 전반적인 정세가 소비에트 쪽으로 기울어지죠. 이른바 4월 테제를 제시하는 거죠.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이 혁명 주체가 되는, 혁명 2단계로의 도약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르주아 임시정부가, 의회주의 공화국으로 복귀하자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죠. 그리로 가면 부르주아 혁명이 되는 거니까 안 된다고 하죠. 그리고 경찰, 관료, 군대 등을 폐지, 토지를 국유화하고, 이렇게 레닌이란 사람이 소련을 만드는 데 아주 결정적인 인물이죠.

그러면서 점차 레닌이 힘을 얻게 되죠. 그러면서 10월 25일 아침에 무장봉기를 했고, 특별한 전투 없이 혁명을 이룩합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총진군, 독일의 지원으로 백군이 결성되고, 백군과 적군 사이에 3년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엄청 피폐화되지요. 그리고 1919년에 제 3 인터내셔널이 결성되고 러시아 외에는 전반적으로 실패한다. 그러면서 레닌이 이른바 NEP(New Economy Policy, 신경제정책)를 발표하죠. 그래서 경제발전을 위해 일부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심지어 테일시스템까지 출현한다.

그러니까 항상 혁명을 하기 전과 후는 굉장히 다르죠. 전에 세 번째 학기 ‘유교’할 적에 한 무제가 왜 유교를 국교로 만들었느냐는 얘기 했었죠? 혁명은 말 위에서 하는 거지만, 물론 유방은 혁명은 아니지. 그건 그냥 나라 뺏는 거니까.

하여튼 싸움은 말 위에서 하는 거지만, 나라를 만들었으면 그 다음엔 말 위에선 못 하는 거지. 그러니까 한 나라를 세우긴 세웠는데, 유방 집단이 전부 거친 사람들이거든. 번쾌는 백정이고 영포 이런 애들은 뭐 말할 것도 없지. 한신은 약간 그래도 좀 알고, 전부 다 그런 애들이거든. 칼잽이들, 백정, 건달, 깡패 전부 이런 애들이야.

그러니까 나라를 세우긴 세웠는데, 툭하면 칼부림이 나는 거야. 회의하다가 큰 소리 나고, 야 이 새끼야 너 혼자 했어? 칼 뽑아서 싸우고, 술 마시고 오바이트 하고 그런단 말야. 그러니까 유방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가지고, 유교를 보니까, 아! 유교 좋거든.

신분도 딱 정해져 있고, 예법도 정해져서 이럴 때 이렇게 하고, 심지어 들어갈 때 나갈 때 이렇게 하라고 하니까, 아 이거 해야겠다. 이래서 어찌보면 유방 집단과 너무나 대조적인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는 거죠. 그런 경우 참 많습니다.

그런데 소련도 마찬가지야. 혁명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요. 전까지는 이념이 중요하고 사상이 중요하고 순수성이 중요하지만 딱 그렇게 세웠어. 세운 다음에는 이념이나 사상이 뭐가 중요해? 경제가 중요할 거 아냐. 완전히 초토화된 러시아를 일으켜 세워야 할 것 아냐.

그래서 이 사람이 말년에 가면 심지어는 아이러니컬한 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출발점인 테일 시스템을 도입해요. 테일 시스템이 뭐냐면, 콘베이어벨트 도입하고, 분업해서 어떤 사람은 나사만 조이고, 어떤 사람은 요거만 올리고 하는 거죠.

지금은 이제 그게 다 기계화되어서 없어졌는데요. 지금도 중소기업, 아주 작은 기업에서는 그렇게 하죠. 하여튼 이렇게 아이러니컬하게 오히려 경제를 중시하면서 원래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