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증주의 등장
▲ 현대 합리주의의 세 갈래 이번 학기에 20세기를 수놓은 여러 가지 사조들, 생각의 흐름들을 보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개별적인 사상이나 결론보다는 20세기 사상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전제되는 사유 문법을 배우고 있죠. 그래서 이른바 metaphysics(형이상학)또는 ontology(존재론)를 배웠죠. 그런데 플라톤 이래에 존재(being)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형이상학을 니체, 베르그송을 통해 배우고 있죠. 그 다음 현상학(phenomenology)과 해석학(hermeneutics)은 이 계열이 ‘존재에서 생성으로‘를 밑바탕에 깔면서 세계 전체에 대해서 굉장히 큰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한다면 존재론은 일종의 인문주의죠. 인간과 삶까지도 전부 과학과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경향에 반대해서 인간의 주체성(subject) 또는 인식, 의미 같은 인문적인 거를 구출하려고 하는 사조에요. 저 두 사조하고는 굉장히 판이한 성격의 사조가 합리주의(Rationalism)죠. 그러니까 형이상학하고 현상학, 해석학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죠. 논리, 분석, 수학, 공간적 사고 등등으로 나타나는 합리주의를 거부하는 거죠. 형이상학은 이런 것들을 포용을 하면서 더 큰 얘기를 하는 meta-physica이고, 거꾸로 현상학, 해석학은 그런 것보다는 인간의 삶의 구체성, 의식, 실존, 의미를 다루는 거죠. 거기에 비해서 오늘부터 세 시간동안 할 내용은 합리주의를 거부하는 것하고는 반대되는 거예요. 논리, 분석, 수학, 공간적 사고들을 중시하는 철학 사조에요. 어찌보면 원래 서양철학의 중심이고 전통이죠. 플라톤 이래에 이성, 합리주의가 오히려 기본이고 이거 두 개는 이거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온 거예요. 다만 형이상학과 존재론은 과학을 흡수하되 becoming의 관점에서 새롭게 우주를 사유하는 거고, 요건 논리나 분석, 합리성 이전에 인간의 실존, 삶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이거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이에요.
그렇다면 20세기 현대에 와서는, 서양 원래의 합리주의나 분석적 전통이 없어지느냐? 물론 그건 아니죠. 저렇게 전통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새로운 사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주의 역시 20세기에도 또 다른 관념으로서 지속되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세 시간 동안 할 건데 첫째 시간에는 과학철학이죠. 과학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과학의 근거, 방법 등에 대한 성찰로서의 과학철학이지. 두 번째는 분석철학이에요. 생성(becoming)이라든가 인간 실존 이런 게 아니라 분석적(analytical)인 철학을 할 수 있단 거죠. 세 번째는 구조주의에요. 어떤 생성이라든가 실존이 아니라 구조(structure)를 얘기하는 거죠. 이렇게 세 가지가 현대 합리주의의 세 갈래에요. 그래서 오늘은 과학철학을 공부하도록 합시다.
▲ 실증주의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Isidore Marie Auguste Francois Xavier Comte) 전통철학에서도 인식론이라고 하는 것, 과학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의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역시 철학의 핵심은 형이상학과 윤리학이죠.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뭘까를 사유하는 형이상학과,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윤리학 내지는 정치학이 철학의 기본적인 두 가지 흐름이죠. 그리고 안다는 것, 지식, 진리 등이 뭘까하는 식의 학문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인식론도 물론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철학에서는 약간 차선의 문제였죠. 그러나 근대에 와서 근대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두면서 내용이 아니라 과학 자체를 설명하는, 과학의 전제들, 논리적 구조, 방법론적 성격 등을 그것 자체로서 따로 탐구하는 과학 철학(방법론, 인식론, 메타적인 분석)이 큰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도 역시 19세기말에 만들어진 열역학, 진화론, 집합론 등등을 비롯한, 제2의 과학 혁명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과학 철학, 인식론이 전개되었습니다. 현대 인식론의 모태인 19세기 인식론에서 현대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실증주의(positivism)에요. 오귀스트 콩트(Isidore Marie Auguste Francois Xavier Comte, 1798~1857)에 의해 창시된 실존주의는 현대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배경이 됩니다. 그 전에 이미 17,8세기 영국 경험론과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이, 이미 고전적인 종교나 형이상학에 대해서 radical한 비판들을 가했죠. 그러나 실증주의는 그런 길을 잇고 있지만, 한편으론 19세기에 새로 등장한 과학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편으론 좀 더 방법론적으로 세련된 과학적 탐구의 성격을 띤 인식론이죠. 그러니까 영국 경험론은 인식론이지만 그것이 목표하는 근본적인 지향점은 인간의 마음(mind)연구에요. 또는 로크에 표현에 의하면 오성(understanding). 또는 데이빗 흄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human nature-내가 보기엔 가장 적절한데)이죠. 그러니까 분과화되고, 전문화된 인식론이 아니고, 내용상 인식론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철학적 문제의식은 인간의 인성(nature)을 해명하는 거예요. 둘째,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도 역시 인식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철학적 지향점은 정치철학이죠. 고전적인 종교, 이른바 '앙시엥 레짐'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유의 제도를 건설하려고 하는, 정치, 사회, 윤리적 맥락이죠. 두 사조 모두 인식론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자체가 인식론이라기보다는 인간본성이나 정치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럼 실증주의와 비교해 보죠. 콩트는 물론 나중에 자신의 실증주의를 근거로 사회학을 창시하고 정치, 종교까지 나가지만 실증주의의 출발점은 전문적인 형식의 과학 철학이에요. 그러니까 인성의 탐구나 정치를 깔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 자체로서의 철학, 본격적인 인식론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문적인 과학철학계에서는 실증주의는 낡은 지나간 이론이지만, 일반적인 과학의 세계, 학문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실증주의가 가장 기본적(기초적)인 인식론이죠. 실증을 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학문의 기본 상식이죠. 콩트는 달랑베르의 제자인 생시몽의 제자죠. 이런 점에서 콩트는 전문적인 면에서 볼 적에 아주 특화된 과학 철학자이지만, 넓게 보면 역시 계몽사상의 적자입니다. 달랑베르, 생시몽, 콩트로 이어지는 계몽사상의 적자지요. 그래서 이 사람의 계몽사상적 측면은 후기에 사회학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콩트는 인류의 지식의 역사가 세 단계를 밟는데 첫째가 신학적 단계고, 그 다음 형이상학적 단계, 마지막 실증적 단계라고 했습니다. 19세기 철학자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첫째는 발전사관이에요. 역사가 발전해 왔다고 보는 거죠. 둘째,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19세기)가 역사의 최정점이다는 의식을 공유하죠. 그게 Hegel-Marx의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Conte-Spencer의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어느 경우든 19세기 철학자들한테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기 시대가 진보가 활짝 핀 시대라고 하는 지극히 낙관적인 믿음을 공유하던 시대에요. 그리고 이성, 과학, 합리를 통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시대입니다. 과학이 인류의 모든 미래의 무게를 담당하는 시대였죠. 지금은 과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죠. 그러면서 콩트는 그와 같은 이른바 실증철학을 세우고,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전개했고, 그 바탕 위에서 말년에는 사회학(sociology)이란 학문을 수립하죠. 이 사회학을 전개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른바 인류교란 종교도 창시하죠. 지금도 프랑스는 인류교가 있어요. 파리에서는 지금도 콩트한테 제사지낸다고 해요.
▲ 현상(phenomenon)이란 독자적위치를 가지며 일정한 법칙이 있다 과학은 실증성(positivite)에 기초해야 한다. 달리 말해서 현상(phenomenon)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인식주관의 구성을 통해서만 비로써 의미를 부여받는 칸트적 현상이 아니라 독자적 위상을 가지는 현상이다.‘ 칸트 같은 경우에는 지각만으로는 인식이 안 돼. 이렇게 보고 듣고 만지는 지각은 그냥 인식 질료에요. 그것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지요. 어떤 인식, 지식이 아냐. 그냥 흐물흐물 희끄무레한 질료야. 내가 지각을 한 것이, 내 개념·범주·의식으로 구성이 되어야 돼. 그래야 판단이 서는, 성립하는 거죠. 거기에 비해서 콩트는 현상이라는 것, 나에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는 것 등의 현상이 그것 자체로서 어떤 실재성을 가진다고 보는 거죠. 그 얘기는 내 의식이 구성을 해야만 현상이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라, 거꾸로 그 현상이 내 의식을 바꿔놓는 거죠. 이 종이는 아무 것도 아닌 재료인데, 구성을 해야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이 놈이 내 의식에 들어와서 나를 바꾸는 거죠. 굉장히 큰 차이가 나타나죠? 세 번째 시간에 후설 할 적에, 칸트와 후설의 구성주의가 다르다고 했죠? 칸트는 일방적인 구성주의지만, 후설의 구성주의는 대상 자체의 noema와 나의 noesis가 만나는 것 또는 원래 만나 있는데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야기 했죠? 그런 생각이 콩트에서 등장해서 브렌타노로 이어지고 후설한테 영향을 끼치게 되요. ’과학은 현상의 원인이 아니라 법칙을 탐구한다.‘ 과학은 저 현상의 원인, 그 배후에 있는 무엇, 그 현상을 그 현상으로 만들어주는 어떤 근본 실재를 찾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형이상학이 하는 거라고 하죠. 현상의 배후가 이데아다, 신이다, 모나드다, 정신이다, 등등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는 메타피직이다. 이 사람에 의하면 과학은 탈 존재론하는 거예요. 과학은 뭐냐? 현상 너머에 뭐가 있는지 얘기 안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 그게 뭡니까? 데이터(data)죠. datum 의 복수형이에요. 데이터는 불어식발음이고 원래는 다타죠. datum의 의미는 주어진 것(the given)이죠. 내가 하늘을 보고 무지개가 나타났어. 주어진 거죠? 내가 무지개를 원한 게 아니라, 무지개가 나에게 그냥 나타난 거죠? ‘법칙들이란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변적 관계다.’ 그러니까 현상 너머 얘기는 하면 안 되고 오로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들을 잘 관찰해서, 거기에서 반복적으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양태를 조사해서 그것을 수학, 논리로 표현한 거라는 게 이 사람의 실증주의적 과학이죠. ◆ 실증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
▲ 프랑스 계몽사상 -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콩트는 백과전서(encyclopedia)파의 후예답게 과학을 분류하고자 하죠. 프랑스 계몽사상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학문을 분류하는 거예요. 그 관심을 이어받아 학문을 쫙 분류하죠. 분류의 기준은 가장 단순한 것을 연구한 것에서부터 점점 복잡한 것을 연구하는 것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맨 처음에 수학이 옵니다. 그 다음 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규칙적이고, 수학적인 현상이 천문학이죠. 일 년이 쫙, 정확하게 돌아가잖아요. 그 다음이 역학(넓게 말하면 물리학)인데 왜냐하면 물리현상이 그 다음으로 규칙적이죠. 그 다음에 화학, 생물학, 생명 현상을 보죠. 생명 현상은 물리현상보다 훨씬 복잡하죠. 그 다음, 심리학, 사회학 순으로 학문을 분류하죠. 과거의 철학은 이런(수학, 천문학, 역학 등) 걸 넘어서 형이상(physica- 수학은 좀 다르지만)의 것을 찾는 건데, 이 사람은 철학은 지식들을 넓게 종합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구도는 지금도 영향을 많이 끼치죠. 오늘날에도 학문의 순서를 생각할 적에 대체적으로 저렇게(수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생각하죠? 심리학, 생물학은 묶을 수 있어요. 생리학(physiology), 심리학(psychology)은 biology하고 한 덩어리로 봤어요. 지금은 많이 무너졌지만 굉장히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 학문 사이의 관계 - 복잡한 학문이 이전의 학문을 바탕으로 하지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의 주장 중 중요한 게 뭐냐면, 뒤에 나온 좀 더 복잡한 과학은 앞에 나온 과학, 간단한 과학에 의존한다는 점이에요. 화학은 물리학에 의존, 생물학은 화학에 의존, 심리학은 생물학에 의존, 사회학은 심리학 내지는 생물학에 의존한다고 보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앞에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생물학은 화학에 의존하지만, 생물학이 화학은 아니죠. 그럼 생물학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죠. 그리고 사회학은 심리학 생물학에 의존하긴 하지만, 사회학은 심리학이나 생물학은 전혀 아니죠. 다른 학문이지. 그러니까 그 아래 학문이 바탕은 되지만, 위 학문이 아래 학문으로 환원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학문 사이 관계를 설정하죠. 그리고 자신은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것은 그걸 정리한 것이고, 자기 스스로가 발전시킨 학문은 사회학(sociology)이에요. 그래서 사회 정학과 동학(물리학의 스태틱스하고 다이나믹스를 응용)을 발전시켰지. 또 하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처럼 과학과 정치를 굳게 연결시켰다는 점도 참 중요한 대목이에요. 과학을 순수하게 본 사람이 있죠. 과학은 그냥 순수하게 이 세계를 알려고 하는 거다, 별들이 어떻게 돌고, 무지개가 왜 생기고, 물은 왜 아래로 떨어지고, 알코올은 왜 먹으면 취하고 등등을 알려고 하는 거다. 이렇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학을 기술 및 정치에다가, 자본주의까지 직접 연결시키는 사람이 있어요.
▲ 콩트의 기술관료의 세계 그러니까 science하고 technology하고 정치 경제(politic-economy) 이 세 가지 관계가 뭐냐. 다 다르게 볼 것이냐, 전부 한통속으로 묶어서 볼 것이냐, 묶어서 본다면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 이런 문제들이죠. 그런데 콩트는 과학을 기술에 종속시키고, 기술을 정치경제에 종속시켰어요.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기술 개발을 위한 거고, 기술 개발이란 것은 정치경제를 위한 것이라고 하죠. 콩트가 유명한 말을 하는데 ‘savoir, c'est pouvoir‘. 사부아(savoir)는 아는 거고 뽀부아(pouvoir)는 할 수 있는 거죠. 옛날에 프란시스 베이컨은 뭐라 그래요? 'knowledge is power(지식은 힘이다).' 사보아는 knowing that the power라는 뜻이에요. 아는 것이 권력이다. ’knowing that's the 'can'‘. 무엇인가 할 줄 안다는 뜻이죠. ’철저하게 안다’는 것은, 앎을 가지고 유용한 거를 하려는 거고, 유용한 것은 결국 정치경제를 위한 것이다. 이런 식의 콩트의 생각이 바로 자본주의 또는 기업가(사업가)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철학이에요. 자본주의 또는 기업가(사업가)가 사회의 핵심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군인, 귀족, 성직자 등등이 아니라 기업가, 말하자면 부르주아(bourgeoisie) 계층이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죠. 이런 콩트의 생각을 보통 기술관료(technocratia)라고 불러요. 오늘날에 관료들은 ‘테크노크라티아’지. 꼭 좁은 의미의 이공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런 구도(과학, 자본, 경제)를 전제하고 자본주의 기업가의 가치를 가지는 관료집단이 테크노크라티아다. 그래서 현대철학자 미쉘 푸코는 서양 근대의 학문·지식은, 사회과학 같은 실용적 학문은 기본적으로 knowledge(지식)-power(권력)의 연관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죠. savoir 와 pouvoir. 아까 콩트의 그 얘기지.
▲ 콩트의 영향 20세기 역사라는 건 사상적으로 조금 도식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콩트와 뒤에 나오는 존 스튜어트 밀, 스펜서의 실증주의 계열하고 헤겔 맑스의 변증법의 투쟁이에요. 콩트-스펜서- 밀 라인의 계열로 가는 세계(흔히 말하는 자연주의)가 있는 거고, 그 다음 헤겔-막스의 변증법 쪽으로 가는 거예요. 20세기 내내 그 두 개가 투쟁을 하죠. 지금은 많이 뒤죽박죽되어서 도식이 무너졌지만 말이죠. 20세기 역사는 두 집단의 투쟁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제 3의 세계인 니체주의가 좀 다른 거지. 일종의 예술적 사유라 그럴까? 낭만적이라고 그럴까? 그건 별개로 진행되죠. 어찌 보면 세 갈래가 20세기 사상을 삼분해 왔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콩트 영향은 심대해서 리트레, 텐느, 르낭, 르 당텍, 아벨 레이 등이 모두 콩트를 발전시키죠. 르낭 같은 사람이 유명하죠. 『예수의 생』이란 책에서, 예수의 생을 완전히 실증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쓰죠. 심리학에는 리보, 비네, 폴랑, 자네, 뒤마, 리셰 같은 사람들, 또 사회학에는 에스피냐, 르 봉, 따르드, 라꽁브, 뒤르켐, 위베르, 모스, 포고케, 부글레, 레비-브륄, 랄로가 있죠. 뒤르켐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뒤르켐은 사회학에서는 아주 대가이고 고전적인 사람이죠. 그 다음에 마르셀 모스란 사람은 증여론(gift)이 유명하고, 레비-브륄도 유명한데 한국에는 책이 나온 게 별로 없어요. 리학의 리보, 자네 같은 사람은 프로이드 바로 전 세대죠. 프로이드가 파리에 가서 공부할 적에 주로 가르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콩트의 철학을 받아서 좀 더 정교하고 거창한 논리로 발전시킨 사람이 밀과 스펜서죠. 밀은, 콩트를 로지칼하고 정교하게 정치적으로 다듬은 사람이고, 스펜서는 거창한 사람이지. 우주의 탄생부터 물질이 생기고, 생명체가 생기고, 동물이 생기고 인간이 생겨나서 문명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죠. 19세기까지의 우주 드라마 전체를 쓴 사람이야. 허술하긴 하지만 어찌 보면 대단하죠. 후대에 밀보다 덜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 밀의 자유론(on liberty-미래 자유론)이 오늘날 자본주의 내지는 자유 의지 세계의 성경이에요. 그걸 꼭 읽어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밀은 또 정치나 윤리만 한 게 아니라 논리학의 대가에요. 로직에도 큰 비중을 두지요. 스펜서 같은 사람은 거창한 진화론이지. 또 앞에서 얘기했지만, 콩트의 실존주의는 브렌타노, 후설을 비롯한 현상학자들에게도 이어지고, 또 한편으론 우리가 두 번째 시간에 배웠던 베르그송의 경험주의 현상학에도 이어지죠. 후설(현상학)과 콩트(과학주의자), 얼핏 보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지. 또 실증주의자인 콩트와, 생명의 약동을 외친 베르그송하고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에도 콩트의 사상이 스며들어가 있어요. 경험의 중시, 포시티비테(positivite)에 대한 것이 스며들어가 있죠. 물론 테크노크라티아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고 공유하지 않죠. 후설이나 베르그송이 볼 적에 저런 식의 테크노크라티아 는 인간을 완전히 도구화하는 논리지. 콩트의 실증주의를 발전시킨 대표적인 과학철학자로는 끌로드 베르나르와 에른스트 마하, 두 사람이 비중이 크죠. 베르나르의 발견 중 유명한 게 당뇨병이죠. 지금도 우리가 많이 앓는 당뇨병의 정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에요. 이른바 내분비, 당뇨병을 발견한 베르나르는 생리학자(현대 생리학의 아버지)이지만 인식론적으로 보면 상당히 중요하다. 콩트의 실증주의 인식론을 상당히 정교하게 발전시킨 사람이죠. 이 사람은 유명한 『실험의학 입문』이란 책이 있어요. 문과계 학생에게는 관심 있을 책이 아니지만 과학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이죠. 그 다음에 에른스트 마하 같은 사람 역시 실증주의에 기반해서 특히 근대 물리학의 인식론적 근거를 파헤친 사람이에요. 또 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가설과 실험이죠. 과학에서는 관찰보다 실험이 중요하다. ‘관찰보다 실험이 중요하다. (실험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가설 또는 이론을 가지고서 자연에게 물어보는 행위이다. 과학은 오로지 이성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사물들에 대한 감성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실험은, 내가 이미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실험하는 거지. 무작정 실험 하면 아무 것도 안 나오죠.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확인하려고 실험해 보는 거죠? 그렇게 때문에 반드시 실험은 반드시 이론을 전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동적인 경험주의, 실증주의는 아니라는 거죠. 이미 우리는 사고를 하고, 가설을 제시하고, 그 놈을 확인(confirm)하기 위해서 실험을 하는 것이다. 마하 역시 콩트의 영향을 받아서 실증주의를 전개했고, 과학법칙은 (현상 너머가 아니라) 현상들의 관계에 대한 가장 경제적인 서술( Darstellung), 그러니까 어떻게 그 현상을 가장 수학적으로 간명하게 공식화할 수 있겠느냐가 과학의 핵심이라는 인식론에 입각해서 특히 근대의 역학체계(갈릴레오의 역학체계)를 설명했다. ‘마하의 영향은 엄청 커서‘. 루트비히 볼쯔만이라는 통계역학 건설자가 있는데, 물질세계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는데, 그걸 (마하가) 형이상학이라면서 안 받아들이죠. 사실은 모든 과학이 처음에는 당연히 다 형이상학이지. 나중에 시간이 가면서 과학이 되는 거지. 그래서 이 사람(볼쯔만)이 나중에 우울증 걸려서 자살하죠. 그래서 이 사람 묘가 비엔나에 있는데 묘에 이 사람 만든 공식이 써있죠. 실증주의는, 과학철학으로서는 좀 단순한 생각이에요. 과학에 대한 데이터 정리하고, 수학으로 표현하고, 실험해 보고, 어찌 보면 지금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과학철학이죠. 그래서 19세기 말 20세기 초로 건너가면서 초기의 실증주의로부터 점점 합리주의로 넘어가요. 그 과정을 봅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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