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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인 인간품성의 기질과 행태에 대한 신학적 성찰

하나님아들 2020. 1. 19. 00:19

한국 기독교인 인간품성의 기질과 행태에 대한 신학적 성찰
제39차 한국기독교학회 주제강연 [김경재]   

입력 Oct 27, 2010 04:48 PM KST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I. 서론: 민족성의 존재여부(存在與否) 담론과 민족성 형성요인들
 II. 한국민족성의 품성과 그 기질적 특성
 III.. 복음전래 이후, 성서적 신앙과 한국민족성의 만남에서 도전과 응전
 IV. 맺는말: 한국기독교인의 기질과 행태에 대한 한국사회의 평가와 그 치유의 과제


1. 서론: 한국민족성 존재여부 담론과 민족성 형성요인들

 2010년 기독교공동학회의 주제와 관련하여, 발제자에게 부여된 본래 과제의 촛점은  “한국교회 신자들의 인간성(人間性)에 대한 신학적 반성”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의 인간상(人間像)에 대한 오늘  한국사회인들의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al) 평가와  한국종교문화사의 통시적(通時的) 관점에서도 논구해 보라는 언질도 주최자 측에서 덧붙였다.

 인간성, 인간상(像), 그리고 민족성등의 개념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복잡하고 심원한 주제(主題)임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기독교공동학회 주제로서 성공적 결실이 가능할 것인가 함께 염려하게 된다. 그리하여, 본래 주어진 과제를 논자가 이해하는 대로 표현을 조금 구체화시켜  말해보려 한다.

 제일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도대체 지구촌의 정보화시대에서, 다문화ㆍ다종교 ㆍ 다인종이 상호 심층적으로 관계하고 이동하며 섞여 살아가는 현대문명 상황에서, 불변하는 실체론적 민족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말 할 수 있는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문화인류학적으로 보아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촌에 흩어져 자연환경및 역사환경 속에서 적응하면서 형성해가는 ‘인간현상’(human phenomenon)이 있을 뿐이지, 본체론적  ‘인간성’(human nature)을 담론화 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 아닌가라는 근본질문에 직면한다. 

  이 질문에 관한 논자의 입장을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성 및 민족성에 관한 경험론적이고 과정철학적인 ‘생성론’(生成論)과, 그것들은 항구불변하게 주어져 있다고 보는 실체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존재론’(存在論)의 두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려고 한다.  인간성과 민족성이란 생명진화의 긴 과정에서 보면 생성유동(生成流動)하지만, 적어도 몇만년이나 몇천년 단위의 시간 안에서 보면 생성되고 유동하는 그 무엇 곧 ‘과정속에 있는 주체적 실체’가 있는 것이다. 민족성의 존재여부에 대한 담론에서 조지훈의 다음말로 필자의 입장을 삼으려 한다.

  민족성은 역사적으로 생성되지만, 그것은 다시 역사의 주체로서의 고유소(固有素), 곧 기본소(基本素)를 지님으로써 역사를 움직이는 법이다. 바꿔 말하면, 민족성은 생성과 존재의 어느 한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통일에서 체득되고 파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민족성이란 말은 민족적 성격, 민족적 개성이란 말과 동의어 임을 알 수 있다. ... 민족문화는 민족성이 같은 풍토적 환경에서 같은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공동의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한 공동한  마음바탕이라 할 수 있다. 趙芝薰, 『韓國文化史序說』, 20-21쪽 (나남, 1996)

  기독교 복음이 한민족에게 전해질 때, 긴 안목에서 보면 한국민족성 그 자체까지도 서서히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이 있지만, 민족성은 짧은 시간안에 인위적으로 개조(改造)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복음은 민족성의 원형적 특성을 타고서(乘) 민족성이 보다 숭고한 방향에로 승화(昇華)되고 발전되도록 창조적 효소역활 혹은 촉매역활을 해야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비유에서 ‘누룩비유’(마13:33)가 말씀하시는 정신과 같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면   타고난 성질이나 성격이 변하여 요한이나 야고보 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그의 개성이 지닌 성격이 ‘예수의 뜻’을 실현하려는 방향에로 ‘삶의 목적 지향성’이 변화되면서 ‘혈육적 격정성’이 또한 ‘창조적 용기’에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성의 형성요인 혹은 요소들은 무엇인가? 민족의 기본구성요소들은 두가지 범주로 대별된다.  자연환경적 요소와 사회문화적 환경요소가 그것이다. 첫째, 자연환경적 구성요소 중에는 특히 지리적 기후풍토와 의식주 재화의 생산ㆍ분배양식이다. 둘째, 사회문화적 환경요소 중에는 인접 민족공동체와의 정치적 관계, 언어문화, 그리고 종교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한민족의 민족성 형성과정에서 볼 때,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한 한민족 조상들은 북방계열의 대륙성과 남방계열의 해양성을 갖게되는데, 그 혼합적 성격자체가 기후지질풍토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는 위도상으론 온대에 위치하지만, 기후상으로 북쪽에서 남쪽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한대적ㆍ온대적ㆍ아열대적 기후가 공존하고 교체하면서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를 가져왔다. 북쪽의 산악적 기질과 대륙성 기후,  남쪽의 평야와 긴 해안선을 낀 해양성 기후는 서로 대조되는 민족성 기질을 만들어주었다. 高大民族文化硏究所, 『韓國文化史大系』제1권. 民族ㆍ國家史,20-56쪽 참조.(고대민족문화연구소출부, 1970)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정치적 시련, 위대한 세계 고등종교문화의 최종 정류지로서 위치, 그리고 독특한 언어와 문자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민족성을 형성시켜 왔다. 한민족의 기질적 특성들은 무엇인가? 그 특질들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인간성과 품성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II. 한국 민족성의 품성과 기질적 특성

 자연환경과  사회문화환경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수 천년간 집단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오면서 한민족은 인간적 품성과 민족적 기질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국민족성에 대한 여러사람듫의 연구중에서 특히 함석헌, 조지훈, 유동식의 견해를 고찰하려고 한다.  
 
 신천 함석헌(信天 咸錫憲, 1901-1989)은 동경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ㆍ윤리를 전공분야로하여 교사로서의 고등지식을 훈련받았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역사사건이 펼쳐지는 지리기후풍토적 여건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는 동경유학 후,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민족학교인 오산학교에서 10년간(1928-1938) 역사교사로서 교편을 잡게된다. 이치석, 『씨 함석헌 평전』, 연보참조. 647-657쪽(시대의창, 2005)

그 기간동안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였고, 그 책이 기본이 되어 남하 한 후(1947), 한 두차례 증보판을  내다가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1)라는 책이름으로 셋째판에서 그의 ‘고난사관’을 토대로한 명저(명저)를 남겼는데, 그 책 제1장에서  한민족의 민족성을 논술하였다. 함석헌 , 『뜻으로 본 韓國歷史』, 83-97쪽 참조. (한길사, 1983)
 
 먼저 함석헌은 중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인상적 평가자료인 『山海經』과 『後漢書』의 문헌을 근거로하여, 한민족의 가장 장점의 특성으로서 ‘호양부쟁’(好讓不爭)의 덕 곧 ‘착함’(仁)과 ‘강용이근후’(强勇而謹厚)의 덕 곧  ‘날쌤’(勇)을 지적하였다. 함석헌은  한민족의 본래적 민족품성의 장점을 열거한 후에, 결정적 약점을  ‘심각성의 부족’, ‘생각하는 힘의 모자람’에서 보았다.  ‘함석헌은 한민족의 특성을 이렇게 말한다.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너그럽고, 날쌔고, 조심성 있고, 예의높고, 얼핏 보기에 바보라     할이만큼  무게가 있음 다음에는 대민족의 기상이다. 큰 나라를 세우고 고상한 문화를      낳을 수 있는 자격이다. 이점에서 나무랄 것이 없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부족     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위와 같은 책, 93-94쪽.

  
  함석헌은 본래 한민족이 만주벌판과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나라살림을 펼쳤던 고대 부족국가시대는 물론이요,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정립(鼎立)하던 삼국시대 까지만 해도, 한민족의 기상과 민족품성의 장점이 살아 꽃피고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당(唐)나라의 힘을 빌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한민족의 기상은 반도땅 안에 갇혀 위축되고 창조적 기백을 잃고 퇴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고려ㆍ 조선의 왕조국가 시대 1,000년 동안, 한민족의 민족성은 인접강대국들과의 종속적 정치역학관계 속에서, 그리고 자국내 정치사회문화의 퇴영적(退嬰的)환경 속에서  병들어 가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 치유책으로서 고난을 통한 민족성의 자기정화(自己淨化)와 주체적이고 ‘생각하는 백성’으로서의 거둡나기를 기대했다.

 지훈 조동탁(芝薰 趙東卓, 1920-1968)은 조부로부터 한문을 수학하고, 보통학교를 거쳐, 학력으로는 일본 와세다대학 통신강의록을 공부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의 천재성과 지조를갖춘 선비로서의 학문깊이와 업적은 세인이 길이 흠모할 인물이다. 조지훈으로 더 잘 알려진 조동탁은 시인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사에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지만,  문학사 방면만 아니라, 한국민속학과 역사학에도 탁월한 공헌을 하였으니, 그 대표적 결실물이 『한국문화사 서설』이다.
 조지훈은 한민족에게 주어진 지리적 환경 곧 대륙성과 해양성이라는 양극적 요소는 민족성 형성과정을 거치면서 ‘격정성’(激情性)과 ‘평화성’(平和性)을 지니게 되었다고 본다. 다른한편 정치사회적 환경 곧 인접국가들과 접촉하는 ‘다린성’(多隣性)과 반도안으로  움츠려든 ‘고립성’(孤立性)은  민족성 형성과정을 거쳐가면서 ‘적응성’과 ‘보수성’이라는 대조적 기질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한편 세계문화의 최종 정류지로서 한반도의 문화적 환경은 한민족에게 ‘수용성’(受容性)과 ‘난숙성’(爛熟性)을 부여했다고 본다. 정리하면, 조지훈은 한민족의 민족성의 기본특질로서 격정성, 평화성, 적응성, 보수성, 수용성, 난숙성등 6가지를 추출해냈다. 

 이상의 6가지 민족성 안에 잠재해있는 기본요소는 격정성과 평화성, 적응성과 보수성, 그리고 수용성과 난숙성 끼리 조(組)를 이루며 각각 대조되는 양면성 특징을 지닌다. 이 대조적 양면성이 조화와 지양을 거치면서 창조적으로 발현되면 빼어난 웅혼성(雄渾性),  조형성(造形性), 창조성, 예술성으로 나타나면서  이상적 민족공동체 건설이 가능했다. 통일신라시대 석굴암, 고려시대 청자와 목판 대장경 간행, 조선조 한글창제, 현대한국의 IT산업등은 그러한 예들이다. 그러나, 6가지 민족성의 기본소(基本素)들이 외곬으로만 발현되거나 서로 충돌하면,  잔인, 광기, 독선, 나태, 사대(事大), 미성숙, 외형주의 등으로로 타락한다. 조지훈, 『한국문화사서설』, 26-29쪽.

  조지훈도 한국문화에서 모자라는 점은 ‘심원성’(深遠性)이라고 보았다. 위와 같은 책. 28쪽.

그러한 관점은 함석헌이 민족성의 결여점으로서 ‘생각하는 힘의 부족’ 곧 심각성(深刻性)의 결여라고 말하는 점과 통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겠다.
 
한민족의 민족성을 간추려 살피는 과정에서 세 번째 참고하려는 인물은 소금 유동식(素琴 柳東, 1922-  )선생의 풍류도적(風流道的) 민족 심성론이다. 유동식, 『風流道와 한국의 종교사상』(연세대 출판부, 1997)

토착화 신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술신학으로 그의 신학여정을 총정리하고 있는 유동식의  신학세계는 그야말로 한민족의 민족성에 뿌리를 내리는 주체적 한국신학을 정립하고 있다. 그는 우선 9세기 통일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의 ‘난랑비서문’에 나오는 풍류도에 관련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그의 풍류신학을 전개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고 한다. 이 교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삼교를 포함한 것이요, 모든 중생과 접해서는 그들을 교화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편.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최치원이 언급한 풍류도를 유동식은 한민족의 근본적 영성 특히 종교적ㆍ예술적 민족 심성의 원형이라고 본다. 그 풍류도를 현대적 감각언어로 총괄하여 표현하여 ‘한 ㆍ 멋ㆍ삶’이라고 해석한다. 이 풍류도는 고대 한민족의 부족국가시대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된 ‘집단적 영성의 원형적 구조’로서  종교, 예술, 문화, 스포츠, 과학, 정치등 여러분야에서 발현되고 있다고 본다. 유동식의 견해를 직접 들어 보자..

  풍류도는 어떤 고대종교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각종 종교를 형성케하고,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며, 이것을 전개시키는 종교문화의 장(場)이며, 정신적 원리가 되는 영성이요 민족의 얼이다. 유동식, 『풍류도와 예술신학』, 23쪽 (한들출판사, 2006)


 유동식은 풍류도의 세가지 기본적 영성의 지향성은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성격을 지니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포월적 성격’, 생동감과 율동성과 조화로움을 갖춘 ‘예술적 성격’, 현세에서 대동적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 진지한 ‘삶의 긍정성’이라고 본다. 그리고, 유동식은 한국 종교사에서 화엄불교를 통하여 ‘포월적 성격의’ ‘하나’를 제대로 맛보았고, 유교를 통하여 ‘천인합일’하면서 대동세계를 이루려는 ‘삶의 정치철학’을 맛보았고, 이제 기독교를 통하여 앞선 두가지를 더 온전케 하면서도  성령의 영적종교로서 ‘자유와 사랑의 예술문화’의 꽃핌을 대망하고 있다.

  유동식은 그의 풍류신학에서 한민족의 민족성을 자세하게 논구하지 않았으나, 그의 논지를 추론하여 정리하면 밝고 높은 한(韓)추구의 종교성, 역동적 율동성을 비대칭적 형식과 조화시키는 예술성, 그리고 치열한 현실적 삶에 대한  긍정성등을 꼽았다. 이러한 풍류도의 집단영성 DNA가 발현될 때, 발생하는 부정적 성질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 기독교가 풍류도에 내포된 3가지 기본소(基本素)  ‘한ㆍ멋ㆍ삶’ 중에서 특히 ‘멋’의 요소를 꽃피울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는 성령의 종교’로서 언급할 때, 아직은 당위적 요청으로 언급된다.

  과연 유동식이 지적하고 요청한대로 지난 130년간  한국문화-사회사 속에 자리잡은 한국기독교가, 한국사회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풍류’를 아는 멋진 ‘생명과 평화의 신앙집단’, ‘자유하면서 사랑하는 영성적 집단’으로 개신교를 느끼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아직 개화(開花)가 덜 되었기 때문인가, 과일나무에 병이 들었음일가? 무엇이 문제인가?  진단하고 해부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된다.

III. 복음전래 이후, 성서적 신앙과 한국 민족성의 만남에서 도전과 응전

3.1. 복음의 도전: 사회제도개혁과 인간성의 혁명

  한국 카톨릭교회의 조선에 대한 그리스도교 포교과정에서 흘린 순교자적 성혈(聖血)과 교육ㆍ구제ㆍ의료 사업의 업적을 본고에서 취급하지 않더라도, 개화기 이후 개신교의 전래와 더불어 한민족의 민족심성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가 주목하여 본다.

  소래교회의 자생적 설립(1884)이나 공식적 선교사의 제물포 도착(1885)이후, 130년 가까운 역사시간이 흘렀다. 복음은 과연 그 자체가 지닌 생명력과 진리의 힘으로 말미암아, 한국 근현대사회의 변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 『한국 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의 사회ㆍ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한국신학연구소, 2005)

그 변화의 구체적 내용은 사회문화의 제도적 변화를 촉매하는 간접적 기능과 인간성 변화를 촉매한 직접적 기능으로 대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예로서 신교육기관의 설립, 현대의료기관의 설립, 인권의 신장,  남녀성차별과 사회신분차별의 철폐, 민주주의 가치의 토착화, 현대예술의 소개와 보급, 한글성경보급과 문맹의 해소, YMCA나 YWCA등 시민운동 견인, 고아원등 사회복지시설의 설립등 그 영향을 다 열거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변화는 복음이 한민족의 민족성에 끼친 영향이다. 이 변화의 충격과 그  도전은 진퇴를 반복하면서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결실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보여질 것이지만, 복음전래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1884-1950), 한국개신교사 전반부 기간동안 복음은 ‘창조적 소수집단’(creative minority)의 배출에 성공하였고,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12:1), 근현대사회의 제도적 변화보다도 복음이 가져다준 ‘인간혁명’이 더 중요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다시말하면, 복음의 어떤 생명력과 진리의 힘이 한민족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혁명을 일으켰는가? 예들어  복음에 의한 ‘인간혁명, 인격혁명’을 자신 안에서 경험하여  창조적 삶을 살고간 ‘구름같이 두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사례를 예들어 본다. 서북 기독교의 밭에서 배출된 서상륜, 안창호, 길선주, 조만식, 이승훈, 주기철, 함석헌, 한경직등의 인물들만 열거한다. 관북지방과 북간도에서  김약연,송창근, 김재준, 정재면, 문재린, 그리고 여성지도자 임뵈메와 김애신이 생각난다. 중부지방에서는 독립신문의 서재필, YMCA 영원한 청년 이상재, 유영모, 현동완, 상록수 최용신, 주체적 예수사랑 목회자 이용도와 최태용,  독립운동의 전덕기와 이동휘,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기업인 유일한의 이름이 떠오른다. 남부지역에서는 한국의 슈바이쳐 장기려, 무등산자락  문둥이의 아버지 최흥종과 강순명, 청빈의 탁발승 이현필과 이세종의 이름이 생각난다.  여기 열거한 분들이 대표적 인물이란 말도 아니고, 그 외에는 인물이 없단 뜻도 아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의 사례를 본인의 기억에  이름이 떠오른 사람만 나열한 것 뿐이다. 

  우리의 관심은 무엇이 그들의 인간성에 ‘혁명적 불꽃’으로 작용하여  ‘창조적 능력의 사람들’로 변화시켰고, 한민족의 본래 민족성 속에 잠재되어 있던 민족심성의 우성적(優性的) DNA를 발현시켜 역동적 활동을 하게 했는가 이다. 한국교회초기 선교역사와 복음에 의한 사회적,인간적 변화에 관한 연구는 한국교회사 서적을 비롯하여 다음자료를 참고했다. 민경배, 『한국교회사연구』 , 제3편 (한국기독교출판사, 1992); 이영헌,『 한국기독교사』, 제2편 .한국의 개신교(컨콜디아사, 1992);김양선, 『한국기독교사연구』(기독교문사,1971); 이만열외 7인 지음,『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1986); 서굉일,김재홍공저, 규암 김약연 선생』(고려글방, 1997); 이덕주,『 초기한국기독교사연구』(한국기독교사연구소,1995);  이덕주,『한국 토착교회 형성사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류대영,『 개화기 조선과 미국선교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 노치준,『일제하 힌국기독교민족운동 연구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1993)
 

3.2. 복음의 능력이 한국 그리스도인의 인격형성에 끼친 영향

교회사 연구자료들이 들려주는 정보와 기독인들의 신앙간증을 종합해서 볼 때,  복음이 한국인의 민족성 특히 그리스도인의 인간성 변혁에 끼친 영향을 다음같이 몇가지 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성경적 종교는 한민족에게, 초월적 인격신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아버지되심을 알려줌으로써, 희미하게 망실되어간 한민족의 ‘하눌님’ 신앙에 새로운 생명력과 유일신 신앙의 범우주적 의미와 능력을 선물하였다. 그 결과, 민족성에 내재해있던 ‘높고 밝음을 추구하는 영성’을 회복시켰고 온전케 하였다. 민족성속에 있었던 ‘웅혼한 기운’의 잠정적 회복을 가져왔다.

 한 문화의 높이와 깊이는  그 문화공동체가 갖는 종교 특히 신관의 높이와 깊이에 좌우된다. 한민족의 민족형성 초기에 지녔던 ‘풍류도적 영성’이 지닌 ‘하느님 신앙’은 샤마니즘, 불교, 유교등을 만나면서 훼손되어갔다.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하느님’은 신통계의 최고 자리에 명목상으로만 배정될 뿐 민간신앙은 다신론적 기복신앙으로 ‘가무강신 소원성취’를 추구하는 원시종교로 변질되었다. 불교를 통하여 ‘포월적 일심’(包越的 一心)으로서 ‘하나’를 재강조 했으나 승려수행자들의 화엄교학(華嚴敎學)과 선수행(禪修行)에서 비인격적 ‘無와 空’의 화두로서만 작용할 뿐, 일반 불자(佛子)들은 샤머니즘과 습합(習合) 된 기복불교(祈福佛敎)가 거의 전부였던 것이다.

  조선유교 500년은 성리학이 주도함으로서 인격적 하느님 신앙은 ‘태극이무극, 이기이원론’(太極而無極,理氣二元論)안에서 선비들의 관념세계를 지배할 뿐, 민간인은 ‘조상제사’로서 간신히 종교성의 명맥을 지탱할 뿐이었다. 동학(東學)이 19세기 말 ‘시천주’(侍天主)신앙을 들고 나와 심성과 사회성의  일대개혁을 시도했지만, 당시 부패한 정부군과 일청(日淸) 외국군에게 전멸당해 개혁의 불길은 꺼져버렸다.

  초기 기독교 개종자들의 증언 중에서, 선도(仙道)에서 기독교에로 개종한 길선주, 유교에서 개종한 신석구, 무교적 민간신앙에서 개종한 백사겸의 증언에서 보는대로, 초월적 이면서서도 인격적인 ‘하나님 아버지 신앙’이 그들의 인격과 인간성에 변화를 일으킨 가장 근본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덕주, 『 초기한국기독교사 연구』, 87-94.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기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렬하게 변화를 일으켰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일신 신앙’( the monotheistic  faith)이,  서구기독교 문명신으로 대체하는듯한 ‘일신교적 신앙’( the henotheistic faith)으로 퇴조해갈 때, 한민족에게는 성경의 야훼신앙이 서구에서 전래된 ‘기독교 종교신’으로 비춰지게 되었고, 종교간의 긴장갈등의 잠재적 불씨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Richard Niebuhr, 『 Radical Monotheism and Western Culture』(Harper & Row, 1943). 리챠드 니버는 이 작은 고전적 책 안에서,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자라난 서양문화사는 진정한 성서적 신앙 곧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초월하는 ‘유일신관’(One beyond Many)의 관철이 아니라, 여러신들중의 최고신으로서 하나 를 말하는 ‘일신교적 신앙’(One among Many)이었다고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둘째, 성서적 종교는 한민족 개종자에게 ‘죄의 심각성’을 자각하게 함으로써, 한국종교사 이전시대까지를 지배해왔던 ‘禮文化에 기초하는 수치의식(羞恥意識)이나  ‘깨달음에 기초한 三毒哲學宗敎’와  전혀 다른 ‘罪 意識’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한민족의 심성속에 부족한 ‘심각성’(深刻性)을 다소 보완하였다. 그러나, ‘죄의식의 심각성’은, 거룩하신 인격적 하나님 앞에선 개인양심의 불안과 죄책감정이 주도하였고, 역사적 존재로서 개인실존의 ‘집단적 인격성 자각’의 면에서는 미흡하였다.

 성령체험을 통한 집단적 중생경험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발생했음을 교회사가들은 모두 증언한다. 이 회개와 부흥운동이 ‘하나된 몸과 몸에 붙은 여러지체들과 유기적관계’를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본문(고전12:27이하)을 읽으면서 부흥불길이 떨어진 것은 그 운동이 ‘공동체적인 교회의식의 발로’의 단초가 되었음은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로서 ‘교회의 하나된 몸’의 신비를 자각하는 일이었고, 죄의 심각성 고백은 어디까지나 ‘개인 실존 내면의 문제’였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한국기독교의 경건유형을 결정하는데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데 교회사가들은 동의한다. 민경배, 『한국기독교교회사』,제14장 참조. 249-277쪽.

그러나, 1907년 대부흥운동의 본질규정을 함에 있어서 두 입장으로 대별된다. (i) 주류 선교사들과 정통교회사가들의 입장이 있다. 이 부흥운동은 ‘인격적 개인경건의 신앙’,‘개인내면 죄의 참회와 형제죄의 용서’, ‘하나님과의 영통경험을 통한 개인영혼의 정화’, ‘교회의 탈정치화와 신령화’에 공헌했다는 견해이다.

  (ii) 보다 진보적 견해의 입장이 있다. 이 부흥운동은 당시 지배적이거나 교도적(敎導的) 선교사들의 교만과 조선의 토착 그리스도인과의 갈등이 빚어낸 ’교회의 분렬과 아픔‘을 회개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했음으로 교회의 성례전적 공동체 신비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부흥운동은 교회의 비정치화 혹은 탈정치화를 염원하는 선교사들의 의도대로 결국 발전해 갔지만, 중생경험을 통한 ’신앙의 내연‘(信仰 內燃/ 민경배)은 결과적으로 한민족의 현실에 눈뜨게 하고, 선교사들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현실에 눈 뜬 진취적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강교육운동‘에 투신하는 ’외연참여‘(外延參與)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3.1만세운동’의 내공력을 축적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셋째, 성서적 종교는 한민족의 종교체험 전통안에서, ‘성령감림’이라는 초월적 황홀경험을 통하여 역동적 감정황홀체험과 방언ㆍ예언ㆍ신유체험등 은사체험을 갖게했다. 그결과 종교적 예배양태에서 심령을 밝히고 맑게하는 로고스적 진리빛이 내면의식에 비취는 조명은 배면으로 물러가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도들의 성령체험은  뜨겁고 격렬한 프뉴마적 열기의 내면의식 가열성이  전면으로 부각됨으로 인하여 성령의 임재를 ‘거룩한 불의 현존’으로서만 강조된다. ‘미세한 소리ㆍ이슬비ㆍ미풍’등 성령임재의 다양한 이미지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성령강림의 ‘불현존체험 양태’의  종교체험은  한민족의 민족성이 지닌 격정성(激情性)과 결합되어 평화성이나 조화성이나 명상성을 잃고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쇠퇴시켰다. 지성과 감성이 충돌하여 진정한 영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위험요소가 된다.

  한국의 성령운동은 20세기 전세계의 동시다발적 오순절 성령운동의 맥락속에서 동시대에 일어났고 발전되어  왔다. 특히 1907년 ‘대부흥운동’ 이후, 대표적으로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이끈 길선주ㆍ김익두ㆍ이용도ㆍ이성봉ㆍ조용기 목사에 이르기까지, 성령운동은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한 특징을 형성했고, 기독교의 질량적 확장에 공헌해 온 것을 부정 할 수 없다. 류장현, 『 한국의성 령운동과 영성』제2장참조.(프리칭 아카데미, 2004)
  
  본래 성령체험이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役事) 체험’이므로 종교학적으로 말하자면 ‘거룩체험’이다. 루돌프 오토의 고전적 연구가 밝힌대로 ‘거룩체험’은 본질적으로 ‘경외하고 두려워 해야할 신비’ (mysterium tremendum)와 ‘매혹적이고 황홀한 신비’(mysterium fascinosum)에 대한  역설적 동시체험을 그 본질로서 갖는다. 루돌프 오토(길희성 역), 『성스러움의 의미』(분도출판사, 1991)
전자의 체험적 요소는   인간으로 하여금 경외감ㆍ침묵ㆍ자기부정ㆍ내적 성찰을 동반한다. 후자의 체험적 요소는 황홀감ㆍ 기쁨ㆍ찬양ㆍ감사ㆍ감정의 고양 등을 동반한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의 ‘성령운동’의 종교체험적 성격에서 경외감과 황홀감의 절묘한 조화, 로고스적 빛과 프뉴마적 힘의 절묘한 조화, 지성의 밝아짐과 감성의 뜨거움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 여부의 문제이다. 이 조화가 깨질 때, 한국 기독교의 예배형태는 지나친 감상주의 부흥회로 치닫고 심리적 차원에서의 과잉흥분과 광신적 신앙양태로 까지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성령체험은 ‘중생’의 경험을 핵심으로 하는데,   ‘중생한 사람’에게 마땅히 갖추어져 있어서 할 도덕적 숭고함, 지성적 진지함, 실천적 윤리성이 결여될 위험이 동반된다. 함석헌이 강조하여 말하는 ‘깊이 생각할 줄 모르는 감정종교’가 되고 만다. 

  넷째, 성서적 종교가 한민족에게 준 가장 놀라운 새 경험은 초기 선교사들의 교회사역, 교육사역, 의료사역을 통해서 보여준 아무 조건없이, 댓가를 바라지 않는, ‘자기희생의 아가페적 사랑’이었다. 이 놀라운 아가페적 사랑은 한민족의 맘 속에 깊은 곳에 잠들고 있었던 민족성의 근본소(根本素)인 ‘착한 마음, 어진 마음’을 되살려 내고 신적사랑의 단계로 질적변화를 시켰다.

  특히 제1세대 선교사들이 당시 한민족의 비참한 민중현실을 직시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긍휼히 여기는 마음’ 과 ‘치유하고 살려내려는 마음’은  곧 성서적 하나님의 본질속성 ‘헤세드’의 나타남 이었고, 예수의 대속적 십자가 죽음이 내포하는 생명적 사랑의 능력 바로 그것 이었다.
  유교에서도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쳤고 특히 ‘충서’(忠恕)는 공자의 모든가르침에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핵심 본질이지만, 유교의 ‘인’(仁)은 가까운 혈육부터 시작해서 확산해가는 혈연주의와 사회신분제도에 갇혀 있었다.   불교에서 ‘보살도’(菩薩道, 카루나)는 ‘반야지’(般若知, 프라쥬나)와 불가분리적인 양면성으로 가르치지만, 당시 산중불교(山中佛敎)와 출가승(出家僧)들의 명상적 선수행(禪修行)은 고난받고 있는 민중현실을  살려낼 수 없었다.
  초기기독교의 경우,  세브란스 병원을 비롯하여 전주, 광주, 대구, 원주, 부산, 소록도등에 세워진 여러형태의 ‘예수병원’은 현대 의학적 치료를 받아 건강회복을 받는다는 ‘육신치료’의 의미를 넘어서, 아가페적 사랑의 능력에 접촉하여 ‘영혼의 치유와 소생’을 한국민중들이 경험하였다. 성경의 아가페적 사랑이 ‘예수 십자가 사랑’의 본질이며, 그 아가페적 사랑의 힘만이 인간의 죄를 소멸하고 대속하며 존재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라고 믿고 예수의 삶을 닮은 ‘예수제자무리들’이 한국 짧은 교회사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때는 교회가 살아 있었고, 기독교는 한민족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었다. 마르다 헌트리 지음, 차종순 옮김,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제7장.544-620쪽 참조. (쿰란출판사, 2010)

  그러나, 시대가 흘러가면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혹은 “십자가는 믿는자에게 구원의 능력이다”는 원초적 복음이 ‘사랑의 실천’(요15:21) 으로서가 아니라, ‘구원교리’의 계시적 지식으로서 변질되어 갔다. 그 때부터 한국의 일반인들은 ‘십자가의 영성’ 대신 ‘십자군의 영성’을  ‘종교단체 한국기독교’ 안에서 강하게 느끼면서 초창기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했던 ‘존경과 기대’를 거두어 버렸다. 이용도 목사의 신랄한 교회비판은 오늘에도 그대로 타당하지 않을까?

  악한 교회가 강단에서 교리나 신조를 설명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삼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잊어버렸구나!  믿음이란 교리의 승인이나 신조의 묵인에 있지 않고, 예배의식을 집행함에도 있지 않고, 연설에나 기도에도 있지 않고, 할렐루야 아멘하며 노래하는 데도 있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 神이 나의 神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므로 죽엄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어느 교만한 교회가 알맹이는 빼어버리고 무엇을 하며 사랑이라 하는고!  이용도, 『서간집』, “이호빈씨에게”(1931.10월초 편지), <이용도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논문집: 이용도의 생애ㆍ신학ㆍ영성>(한들출판사,2001), 33-34쪽에서 중인용함. 


한국 민족성 속에 간직 되어있는 기본인자 6가지 중에서, ‘평화성’과 ‘수용성’이 살아지고 ‘격정성’과 ‘보수성’만이 강하게 표출될 때, 한국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영성’(spirituality of crucifixion)이 아닌 ‘십자군의 영성’(spirituality of crusade)으로 변질되어, 독선ㆍ독단ㆍ공격적 승리ㆍ힘의 숭배ㆍ바리새적 교만이 신자들의 심성을 지배하게 된다.

다섯째, 성서적 종교를 통해서 한민족이 배운 새로운 안목은 ‘역사의식’이다. 동양문화에서 역사란 제왕들의 통치업적을 중심으로한 과거기록을 통한 지혜를 배움에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하여 한민족은 삼라만물의 운동과 변화를 단순한 ‘반복과 회귀’가 아닌 것, 곧 ‘목적지향적 뜻의 실현과정’으로서 이해하는 사관을 얻게 되었다.

  성경의 역사를 ‘구속사’로서 읽게 되었고, 출애굽기의 기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해방사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에게 무한한 영감과 미래역사의 비젼을  갖게하는 사관을 갖게하였다. 사물의 변화를 목적지향적 통일성으로 본다는 말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는 고차원의 통합적 지식능력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신적 종합능력은 한민족에게 본래있었던 민족성의 ‘수용성’및 ‘난숙성’과 접합되어 고도의 역사철학과 예술문화를  창출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안병무나 서남동의 ‘민중신학’, 유영모와 유동식의 ‘토착화신학’은 그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구속사적 안목’에서만 강조함으로서 성경이 지닌 다양성이 안보이게 되었다.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경륜과 영광의 광체를 보지못하도록 약화시킨 과오를 개신교는 범했다고 반성된다. 자연은 하나님의 ‘구속사 드라마’가 그 위에서 연출되는 무대혹은 배경 정도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소위 말하는 ‘생태학적 영성’의 눈뜸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자연은 ‘인간에게 위촉된 관리영역’이거나 , ‘물질적 활용 대상물’로서 정위되어 왔다. 동학의 최시형이 말하는 삼경사상(三敬思想 : 敬天,敬物,敬人)은 범신론적 사고라고 너무 쉽게 매도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무오설에 가까운 성서문자영감설에 그 신앙의 기초를 두고있기 때문에, 성서적 신관이 ‘인격적 초월신관’에 경도되고 있으며, 성육신 신앙의 원리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배타적 계시론에 유폐되어 있다. 그 결과,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신국이해는 ‘이곳과 저곳’ 혹은 ‘하늘과 땅’으로 이원화되어 자연/초자연의 이원론적 도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IV. 오늘의 개신교도가 보이는 인간품성의 기질(氣質)과 행태(行態)에 대한 한국인의 양면적 평가

우리는 제 II장과 제III장에서, 한민족의 민족성으로 열거되는 몇가지 기본소(基本素)를 열거하고, 복음이 한국문화 속에 전래된 후, 어떤 변화가 ‘도전과 응전’ 속에서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일별하였다.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자리에서 볼 때, 오늘의 한국 개신교도들에 대한 한국사회 일반인의 평가는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인  양면성이 있지만, 대체적 기류는 매우 비판적이라는 ‘불편한 진실’ 을 받아드려야 한다. 한국인 일반의 개신교도의  인간품성상 그 기질과 행태에 대한 평가는 한국교회사에서 30년을 주기로하여 시기마다  다소 달랐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제1기 ‘초기교회시기’(1884-1920), 제2기 ‘교회박해와 시련시기’(1920-1950),제3기 ‘교회분열과 자기정체성 확립시기’(1950-1980), 그리고 제4기 ‘교회급성장과 교회정체성 혼돈시기’(1980-2010)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중에서 한국은, 기독교 선교에 가장 성공한 나라로 평가되지만, 한국 사회는 기독교 사회가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통계조사(2006)에 의하면, 인구중 47%는 무종교인이며, 종교인중 65% 이상은 개신교인이 아니다. 2010년 기준 남한 인구 총수는 48,875,000명이며, 그 중 개신교인의 비율은 18.3%이며 숫자로서는 약 8,953,000 명이다. 통계청 ,『2006 한국의 사회지표 』,151-153쪽, 591쪽(종교인구분포2005) 참조.

한국사회일반은 다음같이 개신교도들의 인간품성과 행태(行態)를 평가하고 있는데, 평가가 양면적이며 상호 표리적(表裏的)관계를 갖는다는 특징이 돋보인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교수의 다음같은 최근의 저서를 참조하였고, 2005년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 한국개신교가 한국 근ㆍ현대 사회문화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주제를 가지고 , 3년간 연구과제를 수행하는동안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하여 조사한 각종 통계자료를 참고하여 필자가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원규, 『한국교회의위기와 희망』(2009);『힘내라 한국교회』(동연,2009) 


 (1)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역동적 적극성과 배타적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 개신교도들의 ‘역동적 적극성’은 아브라함적 종교들(유대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의 특징이면서 특히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일반적 특징을 이룬다. 개화기 시대에 한국 사회의 변혁에 가장 앞장선 종교인들은 개신교도들 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과, 기독교 교리신앙의 특징인 ‘소명의식’은 ‘적극적 사고’를 하게하고 진취적 삶을 살게한다. 복음전래시기 무렵(19세기 후반) 조선사회의 일반적 무기력감, 자조적(自嘲的)이고 퇴영적(退嬰的) 삶의 자세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 준것은 복음의 역동적 신앙이었다. 이러한 개신교도들의 품성과 행태에서의  ‘역동적 적극성’은 본래 한민족이 지녔던 진취적기상(進取的 氣像)을 다시 되살려내는데 공헌하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국일반사회인들이 개신교 교인들의 ‘역동적 적극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러한 역동적 적극성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배타적 보수성’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개신교도인이 믿는 신앙관 특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유일성 신앙’과 ‘계시적 진리경전 성경에 대한 자부심’과 ‘택함받고 예정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신앙관은 나와 다른 종교인들이나 사회인들에 대한 ‘배타적 보수성’으로 나타난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한국종교인들중, 전통문화와 이웃종교에 대하여 가장 배타적 태도를 취하는 종파가 개신교도로 나타난다. 이러한 배타적 보수성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딤후2:4)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신앙과 배치되는 것이다.
 
(2)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감성적 격정성’을 드러내며 ‘비지성적 독단성’을 보인다.

  한민족의 민족성 원형질 속에 대륙적 격정성이 있음은 조지훈이 지적하였다. 용맹함과 날쌤도 ‘수렵생활’을 통해 삶을 영위하던 한민족의 심성의 특성을 이루었다. 뿐만 이니라 한민족의고대 부족국가시대 ‘祭天儀式’은 ‘연일연야 음주가무’(迎鼓, 舞天)하였다. 샤먼은 엑스타시 속에서 감성적 격정속에 빠진다. 이러한 한민족의 심성적 ‘격정성’은 개신교의 부흥회와 성령체험, 대형집회, 정기예배 분위기를 감성적 분위기로 몰아가며, 심지어 집단적 감정의 흥분과 ‘질서없는 혼란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인간이 초월적인 영의 능력에 사로잡힐 때, 그 감정이 고양된다는 것은 비난 받을것 없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체험은 몰아적 엑스타시나 과잉흥분을 극복하여 인간의 지성ㆍ덕성을 고양시켜 더욱 ‘밝게 꿰둟어 비취이는 자기초월적 이성인’이 되게하는 것이다(고전14:19).

  그러나, 개신교도의 신앙유형적 특성이 ‘감성적 격정성’으로서 돋보이면서, 한국사회인 일반은 개신교도 일반이 대체적으로 불교,유교, 원불교,천도교, 그리고 동일한 뿌리인 천주교도들에 비해서 ‘비지성적 독단성’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함석헌이 강조하는 ‘깊이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종파로 보인다는 것은 깊이 반성 할 일이다. 개신교들의 교육적 수준의 낮은 것이 아니라. 개신교의 신앙유형이 지나치게 감성적인데 치우쳐 있단 말이다 

한국 종교방송의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는 사회인들은 불교방송, 평화방송, 원음방송, 기독교방송을 비교하면서 개신교도들의 품성과 행태가 ‘감성적 격정성’을 넘어서 때로는  ‘비지성적 독단성’마저 자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부목회자들의 감성 자극적 설교,  공공장소에서의 확성기 전도행위, 대중교통수단 안에서나 명동거리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의 공격적 전도행각, 천체물리학ㆍ지질학ㆍ생물학의 기초과학 이론을 부정하는 반과학적 언행등을 보면서, 한국사회 일반인들은 개신교의 미래를 밝게보지 않는다. 특히 미래의 종교는 ‘예언자ㆍ 과학자ㆍ예술가’가 그들의 “영성ㆍ지성ㆍ감성”이 동시에 긍정되고 풍성하게 되는 성숙한 종교이어야 함을 생각 할 때,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3)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몰정치적(沒政治的) 초월성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론 정치이념적 예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에 전해진 복음주의적이고도 경건주의적 신앙유형은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선교정책’과 ‘래세 영혼구원의 신앙강조’ 때문에 몰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태도를 ‘신령한 은혜받은 신자’의 이상적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풍토를 조성해 왔다.  죤 번연의 ‘천로역정’ 타입의 경건훈련은 세속적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태도와 화해될 수 없었다. 여기에 한국 개신교도 의식의 밑바탕에 있는 몰정치적 초월의식의 근거가 놓여있다.

  그런데, 1907년 ‘대부흥운동’이후, 내면적 회개와 개인윤리적 강조에도 불구하고, 일본식민지배 속에로 빠져드는 나라의 위기에 대한 ‘나라사랑과 민족애’는 초대기독교 신자의 정치적 관심을 억압할 수 없었다. 그 후, 해방과 한반도 분단과정과 한국동란을 거치는 동안, 한국 개신교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보루가 되었고,  한미동맹체계와 공산주의이념의 종교억압적 체험은 자본주의적ㆍ자유민주주의적 이념에 대한 파수꾼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는 가장 비정치적ㆍ몰역사적 종교인의 초월성을 강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가장 정치이념적 예속성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왔고, 개화시기의 교육,의료,출판사업의 재정 후원처가 미국이었기에,  개화와 근대화의 접촉창구가 유럽ㆍ 미국ㆍ일본중 미국이 압도적으로 컸다. 초기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사회의 장점을 표본으로 삼게되었다. 남북분단 과정에서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종교박해와 종교박멸정책은 남하(南下)를 결행한 수많은 기독교지도자들과 기독교신도들로 하여금 ‘체험적 반공주의자’들이 되게하였다.  그간의 사정을 이해 할지라도, 한국 개신교가 ‘숭미주의’라고 할만큼 미국에 의존하고, 사대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정치판도에서  ‘우파적 보루’처럼 일반사회인의 눈에 평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모든 정치경제적 이념을 심판하면서 초극하여야 한다.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사회가 지닌 개인의 자유와 권리, 창조적 자기개발과 인간평등과 같은 고귀한 가치가  미국시민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속에 다분히 내재해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세속국가로서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제국주의적 속성이나 도덕적 위선마져  한국 기독교의 ‘모범이라고  평가되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줄여말하면,   한국개신교도들의 표리부동한 정치신학적 초월성과 예속성은 오늘 한국사회 속에서 성서적 신앙이 발휘할 창조적 기능을 제약하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4)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대속주의’를 기본신조로 고백하지만 현실적으론 ‘십자군의 자강주의(自强主義)를 추구하며, ‘열려진 세계적 보편주의’를 주장하면서도 현실적으론 ‘닫혀진 국소적 분파주의’에 갇혀있다.

 오늘날 한국일반인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 개신교는 복음적 기독교의 종지(宗旨)가 가르치고 주장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표리부동성을 노정하고 있다고 본다. ‘十字架의 代贖主義’는 성경이 증언하는  자기비움ㆍ자기 낮춤ㆍ자기희생ㆍ대속적 사랑ㆍ용서와 화해등 모든 숭고한 하나님 사랑의 ‘肉化의 신비’요 그 총괄적 결정체(結晶體)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의 개신교는 ‘十字軍의 自强主義’에 빠져있는 것으로 사회인들은 본다. ‘십자군의 자강주의’ 특색은 힘 숭배ㆍ 승리주의 ㆍ성전의식(聖戰意識)ㆍ종파이기주의(宗派利己主義) ∙ 외양결과중시(外樣結果重視) 등으로 표출되곤 한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영성위기는 ‘도덕적 위선의 자기합리화’에서 드러난다. 입으로는 신령한 ‘영성’(靈性)을 말하지만, 실질적 삶에서는 일반인보다 더한 ‘물성’(物性)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시대 세속적 가치추구는 소위 ‘3A추구’ 즉 물질풍요 (affluence)ㆍ외모(appearance)ㆍ 성취(achievement)를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개신교 교계활동의 행태(行態)도 비슷하게 물질축복ㆍ외형과시ㆍ성취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김준우, 『기후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 59쪽. (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막스베버가 분석한 초기 자본주의 형성과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상관관계성(相關關係性)이론은  신의 ‘예정선택을 받은자’가 청교도적 근검절약 통해서 그 사실을 ‘확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본축적을 가능케한 정신적 힘이었다고 보았다. 비슷하게도, 오늘의 중산층 으로 사회적 신분상승에 성공한 한국 개신교도들은 ‘부와 권력의 소유’가 곧 ‘신의 축복’의 표징이라고 해석하려는 무의식적 자기합리화에 도취해 있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사회나 세계정치ㆍ경제구조의 구조악은 간과되거나 신의 섭리적 ‘리성의 奸計’정도로 치부된다.

 동일한 교파명칭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수십단체 개신교 교파들은 ‘분파주의’의 현주소의 감출 수 없는 증거다. 입으로는 ‘열려진 세계적 보편주의’를 강조하면서 현실적으론 ‘닫혀진 국소적 분파주의’ 안에 농성하고 있다. 도처에 신학교 간판이요, 도처에 교파본부 간판이다. 거기엔 한치의 부끄럼이나 체면을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일본 식민주의사관에 젖은 학자들이 한국인들의 분렬적 ‘붕당정치’(朋黨政治) 행태가 마치 열성적(劣性的) DNA 유전자를 지닌 민족성 그 자체로부터 연유하고 있다고   보았지만, 사실은 제한된 농토와 제한된 권력자리의 소유권 쟁탈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분파주의도 결국 따지고 보면, ‘밥그릇과 자리’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교권정치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상 4가지 점에서 오늘날 한국개신교도들의 사람됨의 품성이 나타내는 기질적 특성과 행태유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지나치게 부정적 평가에 치우쳤다면, 한국교회가 본래지녔던 치유능력과 창조적 능력 회복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신학적 수련의(修鍊醫)의 거치른 수술집도 때문일 것이다. 한국 개신교 신자들이 지닌 기질과 행태 중에서 귀중한 요소는 더욱 살려나가되,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것들은 치유와 혁신이 요청된다. 어떻게 그 일을 가능케 할 것인가는 한국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몫이며, 오늘의 논문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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