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신앙관!

'기독교 문화’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20. 1. 7. 22:14

'기독교 문화’란 무엇인가?


1) 문화는 하나님의 창조와 복된 명령에서 출발한다.

기독교에서 보는 문화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거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문화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산물이며 그것을 잘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위임한 하나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창세기 1장27과 28절은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으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여기서 문화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문화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인간(남자와 여자)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창조했고 이 인간들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모든 생물을 복 주셨기 때문에 문화가 성립되었다.
둘째. 문화는 인간이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세상을 관리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이 세상에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성하게 살아가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 활동이 바로 문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문화위임”(cultural mandate)의 명령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창세기의 문화개념은 현대의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도 이러한 포괄적인 문화이해와 서로 통한다. 문화인류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에드워드 타일러는 “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가지게 되는 지식, 신앙, 기술, 도덕, 법, 습관 등의 모든 능력의 복합체”를 문화로 규정했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은 하나님의 창조와 위임명령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문화를 후천적인 것으로 보며 다양한 문호내용들의 가치를 철저히 상대적으로 보는 ‘문화상대주의’의 경향이 강하다.
이에 반해 성경은 문화적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선천적으로 주어졌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과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다. 선포한다.


2) 문화는 끊임없이 타락한다.


하나님의 명령에서 문화가 출발했지만 모든 시대의 문화는 끊임없이 부패해 왔다.
현대의 문화인류학이 문화상대주의에 기울거나 현대문화이론에서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이유는 문화의 타락을 가져온 인간의 타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를 자본주의의 유지수단으로서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 역시 인간의 근원적 타락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차게”(롬 1:21)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의 타락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상숭배’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하나님을 추구하되, 창조주 대신 ‘다른형상’을 만들어 그것에 경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세계의 다른 종교의 시작이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통한 문화의 타락은 결국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졌다. 구약 시대의 몰록 종교는 자녀를 죽여서 몰록에게 번제물로 바치도록 했고 신약시대에는 바울이 전도한 고린도의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에는 수백 명의 신전 창녀들이 있었다.
오늘날도 종교지도자의 성적타락이 문제가 되고 있고 룸살롱으로 대변되는 일반사회의 성문화의 타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에서도 돈과 인기에 대한 맹목적 추종, 성적방종이나 매체중독현상 등 부정적인 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3) 문화회복은 기독교인과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다.


네델란드의 개혁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와 클라스 스킬더(K.Schilder)는 문화데 대한 논쟁에서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의 두 측면을 우리에게 부각시켰다.
카이퍼는 하나님의 창조의 선함에 강조를 두어 아직도 일반 사회와 문화 속에 남아있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적인 문화회복을 주장했고 스킬더는 세상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일반은총이 가능하며 문화도 새롭게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 결과 카이퍼는 정당과 노조, 대학, 언론, 경제의 독립된 각분야에서 창조의 선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반면에 스킬더는 카이퍼로부터 분리하여 깜펜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와 신학교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을 강조하는 운동을 했다.
이러한 개혁주의 문화이해를 배경으로 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복된 소식인 복음은 유럽이나 북미 같은 어떤 특정한 문화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문화에 타당했고 앞으로도 타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며 복음이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딤후3:16) 쓰여졌기 때문이다.
복음은 3500여년 전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인 상황으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갈대아 우르의 문화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문화 영향 속에서 민족을 형성한 이스라엘은 모세의 지도아래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타문화에 대한 문화적 수용과 투쟁을 동시에 경험했다.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언제나 이중적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특정한 문화가 주어져 있고 거기에는 신앙적 가치관으로 볼 때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그리고 이 문화를 복음에 의해 변화시키고 문화 속에서 (또는 통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도 있다.
특히 오늘날은 ‘문화의 시대’, 즉 문화예술의 대중적 영향력이 극대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이 사명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4) 기독교문화는 일반문화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 가치와 정신적 내용,의도,가치관 다시 다양한 문화로 돌아가 보자.
“전통문화, 토속문화, 정치문화, 도시문화, 지방문화, 노인문화, 청년문화, 음식문화, 음주문화, 주거문화, 성(性)문화, 놀이문화, 향락문화, 스포츠문화, 정보문화, 교육문화, 직장문화, 출판문화, 교회문화, 일본문화, 서구문화, 고대문화, 현대문화, 미래문화......” 이 많은 문화는 기독교 문화와 비기독교문화로 구분 될 수 있을까?
만일 있다면 문화회복의 사명을 따라서 어떻게 비기독교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변혁할 수 있을까?
다른 문화는 제쳐두고라도 기독교 도시문화, 기독교 주거문화, 기독교 음식문화, 기독교 놀이문화가 가능할까? 분명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이 음식을 만들거나 집을 짓거나 놀이를 하거나 도시를 개발하고 건설할 때도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문화의 재료와 형식은 차이가 없더라도 그것에 부여하는 가치나 운영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당장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화를 창조-타락-구속(회복)의 관점에서 만들어 가는 기독교 신앙의 가치론적 입장은 기독교 문화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신자에게도 공감대를 형성시켜주는 근거가 된다.
나머지 다른 문화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문제되는 것은 틀림없다.
예를 들면 전통문화를 기독교가 사용할 때도 그 속에 들어있는 다른 종교적, 철학적 세계관을 축출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도원리로 삼아야 한다.
문화의 모든 영역이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해 조정되고 운영되도록 만드는 일 - 그 일이 바로 기독교문화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최태연 교수 (강의 발제 : 백석대/기독교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