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 타락 구속 - 김석주
Ⅰ.삼위일체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유일한 하나님인 동시에, 세 인격,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다. 이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독특한 교훈이다. 그것은 철학적 유신론이나 다른 종교에서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특유의 사상이면서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다. 셋이 하나가 되고(3=1), 하나가 셋(1=3)이 된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계산이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자연세계에서 하나는 하나이고 셋은 셋일 뿐이다.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으로 초자연적 진리에 속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근본적으로 이해의 항목이 아니라 신앙의 항목이다. 이해되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되는 진리이다.
1.삼위일체론의 형성
어떤 이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삼위일체론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성경이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가 언급하는 근본적인 개념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성부가 하나님이고 성자가 하나님이고 성령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종말론, 인간론, 성령론, 죄론 등과 같은 기독교 교리의 전문 용어들이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으나, 그들은 분명 성경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도 그러하다.
하나님이 한 분인 동시에 세 인격체라는 진리는 점진적인 계시를 통해 확립된 기독교 교훈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예시되었고, 신약성경에서 명시되었으며, 니케아 신조에서 완성되었다.
삼위(Trinitas)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2세기 중엽의 교부 터툴리안으로서 그는 삼위일체론의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뒤 아다나시우스와 그레고리, 특히 어거스틴에 의해서 그 개념이 명확해지고, 다메섹의 요한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신조 가운데서 가장 정확하게 이 이론을 표현한 것은 아다나시우스 신조로, 제1부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공동교회의 신앙은 이러하다. 즉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삼위에서, 삼위를 일체에서 예배한다. 위격을 혼동하지 않으며 본질을 가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한 위격이 있으며, 아들에게, 그리고 성령에게 각각 한 위격이 있으나,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며 유일하다"
2.성경적 증거
앞서 언급했듯이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는 물리적, 수학적 추론이나 어떤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계시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한 진정한 진리를 알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1)구약에서의 언급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통일성이 크게 중시되었으나 하나님 안에서의 복수성에 관한 암시도 적지 아니하며, 그 중 어떤 지시는 이 복수성이 삼위일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여호와가 여호와로부터 구별되어 있다(창 19:24).
둘째로 인간 창조에 있어서 복수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셋째로 성령은 하나님과 구별되고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2)신약에서의 언급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적 언급은 신약에 와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삼위 하나님이 나타나난다(마 3:16-17).
또한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삼위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가지셨던 친교에 관해 언급하고 계시며(요 14:16-17), 제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라고 말씀하셨다(마 28:19-20). 바울 사도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를 축복하였다(고후 13:14).
셋째로 하나님으로 인식되는 세 인격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먼저 아버지는 하나님으로 인식되어 집니다(롬 1:7, 갈 1:1,3). 아들도 하나님으로 인식되어 집니다(요 1:1, 요 1:18, 요 20:28). 그리고 성령도 하나님으로 호칭되었다(행 5:24, 고후 3:17).
성경은 성부, 성자, 성경의 신격과 통일성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증거는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과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첫째, 기독교는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신구약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증거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20:2-3)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의해 그의 유일성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제 2 계명 역시 하나님의 유일성에 근거하여 우상숭배를 금지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 위대한 진리로 명해진 것, 즉 쉐마 역시 하나님의 유일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4).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했으며(딤전2:5-6), 이에 근거하여 우상숭배를 금했다(고전8:4-6).
둘째,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체가 하나님이다. 구약성경은 삼위 하나님에 대해 많은 예시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문은 이사야 48장 16절이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 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복음주의적 주석가들에 따르면, 이 본문의 진술자는 주의 종, 약속된 메시야이다. 본문의 "나"는 성자의 예시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이 성자와 성령을 보내셨다는 것을 말한다. 신약성경에는 삼위일체 교리의 골조가 되는 많은 본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28장 19 - 20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으로 위대한 사명을 주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됨과 동등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 구별이 없다면, 세 별개의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삼위 하나님이 동등하지 않다면, 예수께서 마지막 명령과 사명을 주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세 이름을 함께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세례는 세 하나님의 이름도, 한 하나님과 두 피조물의 이름도, 하나님의 세 부분의 이름으로도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영원히 아버지, 아들, 성령인 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된다.
성경이 없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생각될 수 없고, 삼위일체 교리가 없으면, 성경의 하나님을 분명히 제시할 수 없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다.
3.이론의 부가적인 특징
첫째로 하나님의 삼위격(三位格)에 대한 교리는 하나님의 통일성의 교리와 상충되지 않는다. 즉 삼위일체는 결코 세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지 복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삼위라고 하는, 어쩌면 모순 같은 사실에서 하나님이 바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 안의 이러한 구별은 영원하다. 이것은 아버지와 함께 한 그리스도의 존재가 영원에서 시작됨을 의미하고(요 1:1, 빌 2:6, 요 17:5), 성령의 영원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1:2, 히 9:14).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한 영원한 관계의 성질은 보통 "출산"으로 언급되며, 아버지 및 아들과 성령 사이에 존재하는 영원한 관계의 성질은 "발출"(發出)로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셋째로 세 위(位)의 격은 동일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먼저, 아들을 둘째, 성령을 셋째로 배열하던 것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조 같은 기본적인 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게 고백하는 순서에 따라 편성되었으며, 기독교교리는 보통 이 순서에 따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열은 영광과 능력, 또는 존재의 기간 상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순서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Ⅱ.삼위일체와 창조 타락 구속
1.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Trinitarian work of creation)
삼위일체 하나님의 밖으로의 사역이 다 그러하듯이 창조도 나누어질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우리 선배 교부들의 유명한 모토인 “삼위일체의 밖으로의 사역은 나뉘어지지 않는다”(opera ad extra sunt indivisa)는 말이 여기도 적용된다. 특히 창조에 대해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이신 성자의 사역, 그리고 최초로 창조된 원물질을 싸고 계시며 그로부터 말씀의 작용에 따라 피조계를 내시는 성령의 작용을 생각하면 삼위일체의 각 위가 창조 사역에 놀랍게 관여하고 계셨음을 어렵지 않게 확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이해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바람’이나 ‘대풍’이라는 해석(G. von Rad, Genesis, p. 49; Speiser, Westermann, NEB) 또는 ‘하나님의 에너지의 작용’이란 해석보다는 ‘하나님의 신’으로 보는 해석을 애호하는 해석으로 다음을 보라. E. J. Young,『창세기 1장 연구』(서울: 성광문화사, 1982), pp. 63-68
같은 동사 “메라헤페트”(תꖒꙝꖮ, meraḥeeṯ, hovering)가 신명기 32:11에 사용된 것으로부터 “오경의 첫 부분과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비슷한 표상이 사용되고 있음은 여기서 의도된 것이 하나님의 영에 대한 그림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의 “보존하시며, 유지하시며, 통치하는 기능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일에 성령이 관여하심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성령께서 생명 없고 형태 없는 땅 덩어리 위를 마치 새가 보금자리에서처럼 품고 계시므로 인해서, 그것에게 생명의 씨앗을 전달해 주신다. 그리하여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뜻하시는 바를 그의 말씀에 의해 산출하게 되도록 하셨다.” 윤영탁 역,『구약신학 논문집 (3)』(서울: 성광문화사, 1985), p. 109.
월필드는 이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이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이 ‘혼돈과 공허를 품고 계셨기(brooding) 때문에 그 '혼돈’한 물들이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 명령 -- “빛이 있으라”(창 1:3), “궁창이 있어라”(1:6),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창 1:9),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에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1:20)는 창조 명령에 순종하며 또 순종할 수 있었던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빛이 있어라”고 하늘에서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한 것은 수면 위에서 품고 계시던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었다.......피조물 위에 계신 초월자 하나님과 대면하여 피조물을 품고 계신 하나님이 여기에 나타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암시된 것은, 피조물이 움직이고 활동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 오로지 피조물을 품고 계신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인 듯하다.......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른 바 아직 형태를 못 갖춘 땅 덩어리(world-stuff)에 내재해 계셨고 그의 내재하심으로만이 그 덩어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질서를 갖춘 지구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은 구약의 최초부터 만물의 존재와 존속의 원리이시며, 모든 움직임과 질서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성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윤영탁 역,『구약신학 논문집 (3)』(서울: 성광문화사, 1985), pp. 109-10.
그래서 이후로도 성령은 일반적으로 피조계를 온전케 하시고, 채우시며,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신다”고 말하며(욥 26:13),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30). 성령의 창조적 능력으로 관여하시는 일이 계속적인 것임을 이 말씀은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므로 창조의 사역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다 같이 관여하셨다고 단언할 수 있다.
2.타락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다(창1;골1). 하나님의 창조는 선한 것이었고,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보며 기뻐하셨고, 그 세계에 당신의 소망을 두셨다. 그래서 인간에게 당신의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할 것을 명령하시고(창1:26) 인간을 창조세계의 리더로 세우셨다. 여기서 창조세계의 범위는 자연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삶을 구성하고 창조의 섭리 안에서 형성된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창조세계 전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도록 부름 받았었으나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에 닻을 내리고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로서 세상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관계도 단절되거나 오염되었다.
아담은 세상의 리더였으므로 아담의 죄는 창조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세상에 대해 그처럼 커다란 권위와 책임을 부여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결과가 온 창조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7-18) 땅과 사람의 관계는 갈등의 관계로 바뀐 것이다. 창세기, 3장이하, 로마서 8장, 고롤새서 1장 등...
3.구속
세상은 저주로 휩싸였다. 그렇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한 순간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시기에 창조세계에 대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창조세계를 회복시키셨다. Albert M. Wolters, “창조, 타락, 구속”양성만 옮김(서울: IVP, 1992) 4장을 보라.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성취 그리고 성령의 적용이 그것이다. 바울사도는 성자예수께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평화를 이루고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성부와 새롭고 바른 관계로 회복하였다고 말한다.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세상과 화목을 이루셨다. 세상은 성자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성자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골1:13-20). 그리고 성자의 사역은 항상 성령을 힘입어 이뤄지는 사역 이였다. 그러므로 타락한 세상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께서는 함께 사역하시는 것이다.
참고도서
Albert M. Wolters, “창조, 타락, 구속”양성만 옮김(서울: IVP, 1992)
윤영탁 역,『구약신학 논문집 (3)』(서울: 성광문화사, 1985)
E. J. Young,『창세기 1장 연구』(서울: 성광문화사, 1982)
[출처] 삼위일체 하나님과 창조 타락 구속 - 김석주|작성자 더로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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