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목; 교의신학 인간론 2.주교재; 1)교의신학3, 인간론, 하문호 저, 그리심 3.참고교재; 1. 교의신학 인간론, 박형룡 저 2. 벌콥 조직신학 인간론, 루이스 벌콥 저, 고영민 역, 기독교문사 3. 개혁주의 신학총서 인간론, 최홍석 저, 개혁주의신행협회 4. 인간의 전적부패(아더핑크의 인간론), 아더 핑크 저, 임원주 역, 누가 5. 개혁주의 인간론, 안토니 A. 후크마 저, 기독교문서선교회 6. 인간론 강해설교, 임종만 저, 성광문화사 7. 하지 조직신학 2권, A 하지 저, 고영민 역, 기독교문사
4.과목개요 및 강의목표;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이다. 성경은 구원계시이며, 구원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본 과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아야 할 인간에 대해 연구하고 신학생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며,이 구원을 교회와 세상에 실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6.강의내용; 1)강의계획표, 일반적 고찰(인간의 기원) 2)일반적 고찰(인간의 구성요소, 인간 영혼의 기원) 3)창조시의 인간상태(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4)창조시의 인간상태(행위언약하의 인간) 5)범죄 후의 인간 상태(죄의 개념, 기원) 6)범죄 후의 인간 상태(인류의 죄) 7)범죄 후의 인간 상태(형벌론과 징계론) 8)범죄 후의 인간 상태(율법론) 9)은혜언약 하의 인간(언약개관) 10)은혜언약 하의 인간(구속언약) 11)은혜언약 하의 인간(은혜언약) <2-일반적 고찰-인간의 기원> 1. 신학에서 인간론의 중요성에 관하여 1)신학의 근원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특별계시이다. 구원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구원 받아야 할 자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교의신학에 있어 인간론은 왜 독생자 예수께서 희생적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셔야 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 지식은 구원 사역을 위해 부르심 받은 사명자 뿐 아니라, 구원 받아야 할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2. 인간의 기원 개요? 1)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에 관해 인류는 종교적, 철학적으로 해답을 제사하고자 했고, 적지 않은 해답 중에 대표적인 것이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3. 진화론에 관하여? 1)진화론(進化論)이란 영국의 박물학자 촬스 다윈(1809-82년)의 종들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년)이라는 책에 의해 널리 퍼진 생각이다. 다윈은 그의 책에서 여러 가지를 가정하였는데, 그 중에 특히 ①생명은 무생물에서 자연 발생하였으며, 그것은 역사상 단 한 번만 일어났다. ②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들, 그리고 동물들은 모두 상호 연관되어 있다. ③단 세포 동물(아메바 등)에서 모든 동물이 진화되어 나왔다. ④무척추 동물에서 척추 동물이, 척추 동물에서 양서류(물과 육지 양쪽에서 사는 것들, 개구리 등)가, 양서류에서 파충류(뱀 종류)가, 파충류에서 조류나 포유류가 진화되어 나왔다. 사람은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기번 등 소위 유인원(類人猿)인의 자손이거나 그들과 공통의 조상을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진화론의 주장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되지도 않고 확실히 증명되지도 못한 불확실한 가설(假說)에 불과할 뿐 아니라, 현대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근거가 분명하지 못한 잘못된 주장으로 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2)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성경의 진리에 명백히 반대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분명히 증거한다(창 1:1). 또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식물들, 물고기들, 동물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반복하여 증거한다(그런 표현이 10번이나 나옴). 특히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흙으로 만드셨고 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창 2:7). 성경의 이러한 증거에는 진화의 여지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3)인간은 처음부터 동물과는 구분된, 즉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창1:28). 인간에게 주어진 이 특권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곧 영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 지음받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실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전혀 비교될 수 없는 탁월성을 말해주는 것이며, 동물의 자연적인 진화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3. 창조론에 관하여? 1)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증거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하나님과 능히 교통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렇게 탁월한 존재로 지음받아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피조물인 것이다. 2)“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는 말씀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두 요소로 구성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생령‘은 영적 생명을 의미하며,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분짓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말씀과 같이 삼위 하나님에 의해 인간이 창조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게”(창2:18)여기셔서 “돕는 배필”(창2:20)로 하와를 지어 주셨고 또한 생육하고 번성(창1:28)하는 축복을 주셨다. 4. 인간 기원의 단일성에 관하여? 1)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증거는 또한 인류의 단일성(單一性)을 내포한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 온 인류는 한 부모로부터 나왔고, 넓은 의미에서 한 가족들이며 친척들이다. *창 1:27, 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3:20 -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사도 바울은 범죄 및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류 구원의 문제를 논할 때, 인류의 유기적인 단일성의 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롬 5:12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전 15:21,22 -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3)전 인류가 한 혈통이요 한 형제이다. *행 17:26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히 2:11,12 -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3-일반적 고찰-인간의 구성요소> 1. 인간의 구성요소에 관한 주장 1)인간의 구성요소에 관한 주장에는 삼분설과 이분설이 있다. 삼분설은 인간의 구성요소를 몸과 혼과 영,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며, 이분설은 인간의 구성요소를 육체와 영혼, 두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다. 2. 삼분설에 관하여? 1)삼분(三分)설은 인간이 몸(Body)과 혼(Soul)과 영(Spirit)의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몸은 물질적 부분이며, 혼은 동물적 생활원리이며, 영은 인간의 이성적 생활원리로 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초대 교회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닛사의 그레고리, 다메섹의 요한 등의 교부들과 현대에 와서는 챨스 하지(C. Hodge)교수 등이 이러한 견해를 취하였다. 2)삼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창 2:7의 ‘생기’(lives)가 복수로 사용되어 삼분설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였고, 히 4:12에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라는 말씀 등에 의지하여 이분설 주장에 반대하고, 인간은 몸과 혼과 영의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3. 삼분설에 대한 비판 1)창 2:7의 ‘생기’는 하나님의 성령을 불어 넣은 결과 흙으로 지어진 육체가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라고 스트롱(A.H.Strong)1) 교수가 지적하고 있다. 히 4:12의 말씀도 인간의 구성요소로서의 의미라기보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라는 표현은 인간의 여러 가지 면모를 의미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마 22:37)라고 말씀하실 때, 전인적 삶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2)삼분설을 주장한다 하여 이단은 아니지만, 삼분설을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 이단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초대교회의 시대에 이단 영지주의(그노시스파 -Gnosticism)는 사람의 영이 신적 본체의 일부분이므로 범죄할 수 없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였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육체는 부패하였으므로 범죄하는 것에 대해 방관적 태도를 취하였으며(요일 1:5-10),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과 혼만을 가지셨고 신적 로고스가 그의 영을 대신하였다 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 생각한 이단이 되었다. 4.. 이분설에 관하여? 1)첫째로, 성경은 인간 전체를 묘사할 때 어떤 때는 몸과 영, 어떤 때는 몸과 혼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고전 5:3, 5,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둘째로, 성경은 죽음의 묘사에서, 영이 떠난다, 혼이 떠난다는 말을 구별 없이 사용한다.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영]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행 7:59, “주 예수여, 내 영혼[영]을 받으시옵소서.” 창 35:18,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2)셋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회생(回生)의 묘사에서도, 영이 돌아온다, 혼이 돌아온다는 말을 구별 없이 사용한다. 눅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왕상 17:21, 22,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그리고 넷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묘사에서도, 영과 혼을 구별 없이 사용한다. 히 12:23,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계 6:9, “죽임을 당한 영혼들[혼들].” 계 20:4,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 4)다섯째로, 흔히 삼분설에 의하면, 영은 고상한 기능을 하고, 혼은 저급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도 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 11:5, “여호와는 (악인을) . . . 마음[혼]에 미워하시는도다.” 사 1:14, “내 마음[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렘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혼]이 너를 싫어하고.” 또한, 성경은 사람의 종교적 활동들을 영에게만 돌리지 않고 혼에게도 돌림으로써 영과 혼의 기능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눅 1:46, 47, “내 영혼[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5)이분설(二分說)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터툴리안과 어거스틴, 중세의 안셈, 종교개혁 시대의 루터와 칼빈의 견해이었고, 그 후 개신교회들의 절대 다수의 견해가 되었다. 이분설의 근거는 영과 혼이라는 두 말이 성경에서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확실히, 그 두 말은 한 실체를 나타내는 두 개의 용어에 불과하다.
<4-일반적 고찰-인간 영혼의 기원> 1. 영혼 선재설(先在說) 1)개인의 영혼은 세상에 출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선재설(先在說)은 보통 각 개인의 영혼이 전세(前世)에서 범죄하였다고 본다. 역사상 플라톤, 필로, 오리겐, 칸트 등이 이런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선재설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성경에 반대된다. 특히, 선재설은 인류의 단일성과 원죄의 교리에 충돌한다. 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또 사람은 전세(前世)에 대한 아무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범죄에 대한 기억도 없다. 2. 영혼 유전설(遺傳說) 1)개인의 영혼은 부모로부터 출생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유전설(遺傳說)이라고 한다. 역사상 터툴리안, 어거스틴, 루터, 델리취, 로버트 댑니, 윌리암 쉐드, A. H. 스트롱 등이 이런 견해를 가졌다. 하나님이 한번 창조한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대로 번식의 방법으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고, 성경에는 자손들이 조상의 허리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창 46:26, 히 7:9, 10).
2)성경에는 자손들이 죄 중에 출생한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영혼의 기원과 그것의 죄악성이 부모에게서 나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욥 14:4, 시 51:5, 요 3:6). 성경이 하와의 영혼 창조에 대하여 침묵한다는 점(창 2:22, 고전 11:8),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창조의 6일 이후 중지되었다는 점(창 2:2)도 유전설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 본다. 3)그러나 이러한 그럴 듯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유전설에는 어려운 점들이 있다. 우선 유전설로는 개인의 영혼의 전달 방식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자녀의 영혼이 부모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 부모가 자녀 영혼의 창조자인가? 아니면,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영혼으로부터 물질처럼 분할(分割)되는가? 혹은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영혼 안에 선재(先在)하였는가? 그 어느 대답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들의 창조자라고 불리울 수 없다. 또 인간의 영혼이 물질처럼 분할될 수 있다는 생각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또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영혼 안에 존재해 있었다는 것도 매우 부자연스럽다.
4)유전설은 인류가 첫사람 아담 안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가정하는데 그러한 가정은 불합리해 보인다. 또 성경은 각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독립적 인격임을 말하며, 따라서 비록 성경이 원죄에 대해 말할지라도, 선조들의 누적된 죄책(罪責)의 전가(轉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유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무죄성(無罪性)을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만일 자녀의 영혼이 부모에게서 유전한다면,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에서 마리아의 원죄의 죄책과 부패성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는가? 3. 영혼 창조설(創造說) 1)개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에 의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을 창조설(創造說)이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상 고대의 동방교회의 견해이었고, 서방교회도 제롬과 힐래리 이후 거의 보편적으로 이 견해를 수납하였다. 중세교회는 일반적으로 이 견해를 취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칼빈, 베자, 투레틴, 핫지, 박형룡 등 개혁교회의 신학자들 대다수는 이 견해를 채택하였다. 2)전 12:7, “흙[몸]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는 말씀은 육체와 영혼이 상이한 기원을 갖는 것을 의미하며, 영혼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성경은 창조설에 부합하는 많은 말씀들이 있다(사 42:5, 슥 12:1, 히 12:9, 렘 38:16 등). 유전설은 영혼의 성질과 모순되었으나, 창조설은 영혼의 비물질적, 영적 성질과 조화된다. 그리고 성육신의 교리와도 조화를 이루는 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3)그러나 창조설에도 어려운 점들이 없지 않다. 창조설은 죄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죄악된 영혼을 창조하실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깨끗한 영혼을 창조하여 즉시 원죄의 죄책과 부패성을 갖는 죄인이 되게 하심으로써 죄악의 간접적 책임자가 되시지는 않겠는가? 여기에 대해 창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아담의 범죄로 원죄성이 전 인류에게 전가된 결과이지 하나님이 순수한 영혼을 유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정의 정신적 유전 문제도, 비록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긴 하지만, 창조설에 있어 문제의 하나이다.
<5-창조시 인간 상태-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1.개요? 1)하나님은 인간은 특수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특권을 주셨다. 즉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는데, 그것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로마교회의 견해 1)로마교회2)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자연적 하나님의 형상’과‘초자연적 하나님의 형상’으로 구분한다.
2)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혼의 영성, 의지의 자유, 육체의 불사성 같은 자연적 은사를 인간에게 주셨는데 이것을 자연적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3)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 자연적 은사를 가진 인간에게는 식욕,정욕 등 열등한 성향이 있어서 범죄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초자연적인 은사를 덧붙여 주셨다고 주장하고, 이 초자연적인 은사로 말미암아 ‘원의(原義)’가 주어졌는데, 이것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4)이같은 주장으로 본래 창조된 인간은 원의가 없었으나 또한 죄도 없었고 다만 죄의 결과를 낳기 쉬운 경향을 가진 것뿐이었는데, 범죄 후 인간은 처음 창조 때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 후 인간의 전적부패의 교리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5)문제는 범죄 가능성이 있는 창조시의 인간에게 원의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인간이 타락할 수 있었겠는가가 문제이고, 범죄 후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영적인 사물을 분별하는 일에 있어서나 영적인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해졌음에도, 로마교회는 범죄 후의 이러한 인간의 부패를 간과하고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교리적 기초를 여기에서 놓고 있다. 3. 루터파3)의 하나님의 형상관은 무엇인가? 1)루터파는 영적 특질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영적 특질이란 참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가르키며, 이것은 원시적 의라 한다. 그러나 루터파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로마교회가 범죄후 잃어버린 원시적 의만 가르킨다. 2)이 주장의 문제는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후에도 아직 동물과 다른 특성들, 곧 이성와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4. 개혁파4)의 하나님의 형상관은 무엇인가? 1)개혁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두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좁은 의미는 범죄 후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참 지식, 의, 거룩함(엡4:24, 골3:10) 등을 의미한다. 2)넓은 의미로는 범죄 후에도 아직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다른 동물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이성과 지성과 양심, 만물 통치권 등을 말한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런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수립함으로써 루터파의 모순을 지적하였을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으로는 영적인 선이나 공로를 쌓을 수 없고 또 영적인 진리를 전혀 분별할 수 없다(고전1:20;고전2:13-15;롬3:10-18;시14:1-3 등)고 하여 로마교회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3)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적생명을 가지고 있다. 범죄 이전에 그 영적 생명은 참 지식과 거룩성과 의와 지성과 만물 통치권 등 모든 특질 등을 가지고 있었으나 범죄 후에 그 영혼의 기능이 마비되어 참 지식과 거룩성,의 등 소위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만으로는 영적 진리를 분별하거나 영적인 선을 행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 5. 하나님의 형상의 이해 1)지식과 도덕성;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특성은 지식과 거룩성이다. 지식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아는 것을 말하며, 그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행동하는 지혜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땅의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음을 증거한다. 과연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그의 지식과 지혜를 잘 나타내 보였다(창 2: 19, 20). 2)도덕성은 이성적 판단과 의지적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사람이 본래 가졌던 거룩과 의(義)이다. 이것을 흔히 ‘본래의 의’(原義, original righteousness)라고 부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2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을 부여하셨고”라고 진술하였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느 기간 동안 지켰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동안 그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행위이었다. 첫사람은 얼마 동안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다. 3)이상 두 가지의 요소는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상실되었다. 사람이 다른 생물들에 비해 여전히 지혜롭고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실인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에게 참 지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도덕성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사람은 본래의 그 거룩과 의를 다 잃어버렸다. 사람은 지금 심히 죄악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이 두 요소의 회복에 촛점이 있다. 골 3:10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씀했고, 엡 4:24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증거했다. 6.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누리게 된 특권은 무엇인가? 1)영생의 가능성을 가진 특권; 하나님은 영이시며(요 4:24) 영원한 존재이시다(딤전 6:16). 영적생명은 소멸되지 않는 생명이다. 천사와 마귀도 영적존재로 그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받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땅에서는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영생이란 단순히 소멸되지 않는 생명의 존속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의 영원한 지속을 의미한다.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지속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수 있는 복된 상태의 삶이었고(창 2:8,9,25), 또 우리가 누리게 될 영생이란 영화로운 삶이다(고전 15:51-56, 계 21:1-7). 2)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특권; 즉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성질의 유사는 만물 가운데 인류만이 가진 특징일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재량에 필요한 조건이며 따라서 그들의 종교적 성질의 기초이다(박형룡). 인간이 영적 생명을 가진 존재인고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적 세계를 분별할 수 있다(고전2:13,14). 3)만물을 주관하는 특권;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만물 주관하는 특권을 인간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고 그의 만드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다(시8:5,6).
<6-창조 시 인간 상태-행위언약 하의 인간> 1. 행위언약이란 무엇인가? 1)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과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으로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며, 이 명령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 영생과 사망의 결과가 오게 되어 있다(창 2:16,17). *창 2:16,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2)이 언약은 다른 피조물들에는 주시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주신 명령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갖추고 순종,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 영을 가진 존재임을 증거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7:2)은 진술하기를, “사람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는데, 그 언약에서 아담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했다. 2. 이 첫 명령(창 2:16,17)을 ‘행위언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1)이 첫 명령은 언약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 명령에는 언약의 두 당사자(하나님과 인간), 언약의 조건(순종)과 약속(영생 또는 사망) 등 언약의 모든 요소가 갖추어져 있다. 2)호세아 6:7은 “저희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라고 증거 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 첫 명령을 가리키고, 그것이 하나의 언약이었음을 증거 한다고 본다. 3)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전제한 것이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구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의 실패에 근거한 것이다. 4)로마서 5:15-21의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는 행위언약의 개념을 증거 한다. 한 사람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와 죽음이 되었으나, 한 사람 그리스도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을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의와 순종의 행위가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의 의와 생명이 되었다. 한 사람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 위치에 있었던 사실이 행위언약을 증거 한다. 3. 행위언약의 요소에 관하여? 1)언약은 당사자와 약속과 조건, 이 세 가지로 성립된다. 2)당사자;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다. 제1 당사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은 이 언약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고, 하나님이 우월한 당사자로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그 언약의 내용인 약속과 조건을 결정하여 주셨다. 그리고 제2 당사자는 아담이다. 단 여기서 아담은 개인에 국한된 자가 아니고,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아담으로서의 언약 당사자이다.
3)약속; 언약의 내용은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이것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벌칙의 경고 속에 암시되어 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금하신 그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약의 벌칙은 죽음이다. 그 죽음은 성경 전체가 입증하는 대로 영적 죽음(하나님과 분리됨), 육신적 죽음(영혼과 몸의 분리), 영원적 죽음(지옥 형벌, 둘째 사망)을 다 포함한다. 4)조건; 언약의 조건은 순종이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완전하고 조건 없는 순종이어야 했다. 이 원리는 구약의 도덕법에서 다시 강조되었고 신약에서도 다시 확증되었다(신 27:26, 갈 3:10, 약 2:10). 4. 행위언약의 성질 1)일방성;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세우신 것이며, 하나님께 어떤 이행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일방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언약이 부당할 수 없는 것은 은혜로운 언약이기 때문이다. 2)유효성; 행위언약은 하나님의 공의 법으로서는 영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 순종의 기본 의무를 보이고,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정당성을 증거 해 준다. 그리고 행위언약에서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다만,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뿐이며, 폐기된 면은 하나님께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길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행위언약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즉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롬 3:21, 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믿는 자는 이제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5. 생명나무에 대한 해석의 문제 1)창 3:22에 나오는 ‘생명나무’에 대해 루터(Martin Luther)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생명을 항상 건강케 또는 젊게 만들어 주는 나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을 ‘실재설’이라 한다. 2)벌콥(Louis Berkhof) 교수는 이 나무의 열매를 불멸성을 주는 실재로 보지 않고, 반드시 지정된 생명의 상징이나 표식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상징설’을 주장하였다. 3)하지(Charles Hodge) 교수는 그 나무가 실재이든 상징이든 확정할 수 없고, 다만 그 나무 열매를 먹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영생을 누리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면 된다는 ‘불가지설(不可知設)을 주장하였다. 4)생명나무는 실재하되 그 나무가 영생을 주는 주체 효능을 가지고 있는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는 하나님이 성찬을 제정하심과 같이 지정하신 나무인 고로 생명의 인호가 되었다는 주장을 ‘인호설(印號設)’이라 한다. 칼빈(John Calvin)도 이런 입장에서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하였다.
<7-범죄 후의 인간 상태-죄의 개념> 1. 개요 1)죄란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탁월한 지위와 특권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누리던 인간이 어떻게 범죄하게 되었고, 죄로 인한 결과의 비참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2)역사상 종교와 철학은 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역사에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죄를 물질적 몸의 특질, 진화되지 못한 동물성, 존재의 부정 혹은 제한, 단순한 결핍, 실재(實在)하지 않는 착각, 정신의 불건전한 병적 상태, 선에 대한 필요한 대립 원리, 사람의 이기심, 하나님 의식에 대한 인간 자아 의식의 투쟁 등으로 보는 것들이 그러하다. 죄에 대한 바른 개념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즉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2. 성경의 용어를 통해 본 죄의 개념? 1)‘죄’의 성경적 용어를 통한 정의; 먼저 성경에 나타난 용어들을 통해 죄의 개념을 정의 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죄를 ‘하타드’(표적을 맞추지 못함), ‘아웰’ 혹은 ‘아온’(지정된 길에서 이탈), ‘페사’(정당한 권위에 도전), ‘아삼’ 혹은 ‘마알’(신실되지 않음, 반역), ‘아웬’(공허), ‘아와’(곡해)를 사용하여 표기하였고, 신약에서는 ‘하말티아’(표적에서 빗나감), ‘아디키아’(부정), ‘파라바시스’(곁길로 감), ‘파랖토마’(실족), ‘아노미아’(불법), ‘파라노미아’(불법) 등을 사용하여 죄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이 용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죄가 하나님께 대한 것(시 51:4; 롬 8:7)이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요일 3:4;5:17). 즉 죄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생각과 행위라고 할 수 있다. 3. 죄에 대한 신학자들의 정의? 1)비트링가; 죄는 인간의 행위,성향 또는 상태가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되지 못함이다. 2)디이슨; 죄는 이성적 피조물에게 하나의 규범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지 못하거나 침범하는 것이다. 3)벌콥; 죄는 행위에서나 성향에서나 상태에서나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을 향한 불순종이다. 4)스트롱; 하나님의 율법은 외면적 행위는 물론 그 내면적 성향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죄는 외면적 행위에 의한 위법과 마찬가지로, 그의 내면적 성향이나 상태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일치되지 못하는 것도 율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3. 죄의 성질 1)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롬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소요리문답 제 14문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나 둘 다 실상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이므로,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이다. 특히,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과 권위을 반영하므로, 죄는 그 성격상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을 모독하는 것이요 그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죄의 사악성과 심각성이 있다. 창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2)악(Evil)은 죄(sin)보다 그 의미가 넓다. 악은 천재지변이나 질병과 같이 비인위적인 요소도 포함하나 이것들이 죄는 아니다. 죄(Sin)는 특별악으로 인간이 직접 책임을 지고 인간을 정죄의 선고 하에 두게 하는 도덕적 악인 것이다. 그리고 죄는 절대성을 갖는다. 선과 악의 중간 상태는 없다. 윤리적 영역에서 선과 악의 대조는 절대적이다. 인간은 선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악의 편에 서게 된다(마10:32,33;눅11:23;약2:10). 즉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그것 때문에 벌써 악으로 특징지어 지는 것이다. 인간은 선에 서 있든지, 악에 서 있든지, 둘 중 어느 한쪽에 서 있는 것이다(마 10:32,33; 12:30; 눅 11:23; 약 2:10). 3)죄는 죄책(罪責)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죄책이란,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법적 책임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첫째로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실과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죄책이다(롬 3:23; 5:12). 부패성이란, 죄인이 가지고 있는 죄악된 성질(죄성, 罪性), 죄를 향한 경향성 혹은 연약성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나는 죄인이다’고 느끼는 것은 이 부패성 때문이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즉 인간의 심령 자체를 더럽혀서 어둡고 완악하며 무지하게 만든다(엡 4:17,18). 4)죄는 결코 인간 내부의 어느 일부분에만 자리잡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 심령, 즉 지·정·의 전 인격에 자리잡고 전인(全人)에게 영향을 미친다(마 15:19; 잠 4:23). 그리고 죄는 단지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성향이나 영혼의 상태에 존재하고 있다. 즉 외부적 행동과 더불어 악한 생각이나 성향 역시 죄이다(마5:22,28;갈5:24). 특히 이 점에서 잘못된 견해들이 있다. 반(半)펠라기우스주의는, 죄가 항상 인간 의지의 의식적 행동이어야 하며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죄악된 성질과 습관은 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의 죄악된 욕구(concupiscence)는 죄의 기회일 뿐이며 그 자체가 형벌 받을 죄는 아니라고 보았다. 알미니우스주의도, 죄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인간의 자발적 행위라고 보며, 비자발적 범죄는 인성의 자연적 결과로서 죄책을 돌릴 수 없으며 엄밀히 말해 죄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 견해들은 공통적으로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을 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죄악된 마음의 상태와 습관도 죄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잠 21:4,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 마 5:22,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15:19, 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롬 7:17, “내 속에 거하는 죄.”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8-범죄 후의 인간 상태-죄의 기원> 1. 죄의 우주적 기원에 관하여 1)선하신 하나님(요일 3:5; 벧전 2:22)은 죄를 창조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신다(고후 5:21). 그러나 현상 세계에 죄는 존재한다. 본래 이 죄는 교만한 천사들의 도덕적 자유 남용으로 생겨났고(요일 3;8; 유 6), 인간에게도 전달되었다(창3장). 2)죄는 인간 세계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천사들의 세계에 있었다. 유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에서 흑암에 갇히게 된 천사는 본래 창조 때부터 악했던 것이 아니며, 자기 지위를 이탈하고 자기 직무를 유기한데서 악한 천사가 된 것이다. 천사의 타락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교만이 동기이다. 이 교만은 아담을 시험에 빠뜨릴 때에도 같은 미혹의 수단이 되었다. *창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인간의 문제, 인류의 문제 근원은 교만하여 자기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도 인간이 자기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절대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이요, 이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2. 인간세계에서의 죄의 기원? 1)인간 최초의 범죄는 한마디로 말해서 선악과 범죄였다. 시험하는 자는 영적 세계로부터 와서 사람을 하나님과 대적하는 위치에 둠으로써 그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고, 아담은 그 시험에 굴복하였다. 즉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첫 번째 죄를 범한 것이다. *죄는 유혹하는 실체가 있다. 성령께서 거짓된 유혹을 분별할 수 있게 하신다. 2)선악과나무는 실재로 에덴동산에 존재하는 나무이었으나, 그 나무 자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내재적 효력을 지니고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선악과로 지칭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무를 향한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아담에게 먹지 말도록 경고하신 말씀에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표적이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의 신실하심과 주권과 전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3)인간의 첫 범죄는, 죄의 전형적인 본질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즉 그 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본질로 하고 있다. 아담의 죄를 분석하면 지성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고 뱀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감정에서는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써 얻는 불결한 만족이었고, 의지에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최초 범죄는 그 마음속에 불신의 씨를 심었던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초래되었다. 뱀은 실물이지만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죄가 삶의 지성, 감정, 의지의 인격을 통해 전인적으로 부패하게 하고, 죄의 결과에 굴복케 하듯이, 구원도 지, 정, 의의 인격 전체를 구원하심으로 인생 전체를 구원하신다. 3. 선악과 범죄의 결과? 1)행위 언약의 파괴로 인하여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흙을 먹게 되며(창3:14), 사단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어 머리가 상하게 되며(창3:5),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창3:16),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이 나므로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고, 육체의 죽음을 맛보며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다(창3:17-19,25). *이러한 죄의 결과의 영향 아래 있으나,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천국의 자유를 누린다.
2)인간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지상의 기쁨이 되도록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나 죄책으로 인해 빛으로부터 떠나려는 수치와 공포에 처하게 되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가 변화된 것이다. 반대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에도 변화를 초래하여 진노와 견책과 징벌과 저주가 나타나게 되었다. *구원의 은혜는 죄의 영향에서 해방시키신다. 빛에 거하고, 하나님의 축복에 거하라! 3)죄는 물질적, 비 영적 세계에도 전폭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피조물이 함께 고통하게 되었다(롬8:20-22). 그리고 이 죄는 아담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도 미쳤다. 죄는 인류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집단적으로 부패시켰다. *죄로 말미암은 인류의 고통을 밝히 아는 자가 인류를 위한 사명자이다. <9-범죄 후의 인간 상태-인류의 죄> 1. 죄의 전가(轉嫁)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인가? 1)성경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부패성이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고 전달되었음을 밝히 증거 한다. 성경에서 죄의 전가의 사실을 잘 증거 한 부분은 로마서 5장이다. 로마서 5장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고(15, 17절), 많은 사람이 정죄되었고(16, 18절), 많은 사람이 죄인 되었음(19절)을 밝히 증거 한다. 뿐만 아니라, 기타 성경과 경험이 증거 하는 죄의 보편성, 정죄(定罪)의 보편성, 그리고 죽음의 보편성은 죄의 전가의 사실을 확증한다. 2)성경은 죄의 보편성을 밝히 증거 한다. 왕상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욥 14: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 하는도다.” 전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않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롬 3:11, 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이요, 모든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할 바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3)성경은 또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定罪) 아래 있음을 증거 한다. 롬 3:19,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엡 2:3,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요 3:5, 6,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정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과 경험은 또한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롬 5:12,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교회가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구원의 절대성을 전제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 죄의 전가에 대한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5)는 무엇인가? 1)롬 5:12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아담이 현실적으로 범죄 하였기 때문에 사망한 것 같이 모든 후손들도 현실적으로 범죄 하기 때문에 사망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대교회의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의 전가를 부정하였다. 그는 아담의 타락 후에도 모든 사람은 선을 행할 본성적 능력, 곧 자유 의지를 부여받았다하여 ‘내가 해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죄는 의지의 개별적 행동이며, ‘죄악 된’ 성질이나 습관이라는 것은 없고,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책임을 진다고 하였으며, 그러므로 원죄나 부패성의 유전 같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육체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고 자연적 현상이라고 하였고, 사람은 누구나 죄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 은혜는 필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사상은 비성경적 주장이다. *비성경적이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비성경적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자신이 원죄의 영향 아래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사도 바울도 한 때 그러했다. 3. 죄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1)죄는 아담이 행위 언약을 어김으로 생긴 원죄(原罪)와 인간 각자가 범한 본죄(本罪), 즉 자범죄(自犯罪)가 있다. 4. 원죄(原罪)란 무엇인가? 1)원죄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죄책과 부패성을 가리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3, “그들은 모든 인류의 뿌리이었으므로, 그들로부터 일반적 출생법으로 태어나는 모든 후손들에게 이 죄의 죄책이 전가(轉嫁)되었고, 죄로 인한 그 동일한 죽음과 부패성이 전달되었다.” 2)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의 전가(轉嫁)뿐 아니라, 또한 그 범죄로 인한 부패성이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첫 범죄로 인한 인성의 부패성을 흔히 전적 부패성과 전적 무능력이라고 부른다. 원죄로 인하여, 사람은 지, 정, 의 전체에 있어서 전적으로 부패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열등한 욕망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람은 때때로 사람의 표준에서 선하게 보이는 일들을 더러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믿음이나, 혹은 구원에 이르게 할 선과 의를 행하기에 무능력하여졌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2, “이 죄(원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들의 본래의 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떨어졌고, 그래서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으며, 영혼과 몸의 모든 기능들과 부분들에 있어서 전적으로 더러워졌다.” 3)사람의 전적 부패성을 증거 하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치료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이라.” (시 58:3, 롬 3:10-18, 고전 2:14, 엡 4:18, 19). 4)성경은 또한 사람의 전적 무능력을 증거한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8:7, 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악된 실상을 밝히 깨닫게 하시며, 애통하게 하실 것이다. 5)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우리로 모든 선에 대하여 전혀 싫증나며 무능력하며 반대하게 하고 모든 악으로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이 본래의 부패성에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6:4). “사람은, 죄의 상태로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수반하는 어떤 영적 선에 대한 의지의 모든 능력을 전적으로 잃어버렸으므로; 본성적 사람으로서는, 그 선을 완전히 싫어하며 죄로 죽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회개시키거나 그것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킬 수 없다”(9:3). “본성의 이 부패성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중생한 자들 안에 남아 있고;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되고 극복된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와 그것의 모든 활동들은 참으로 그리고 정확히 죄다”(6:5). *사람들 속에 있는 죄악성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진실한 구원을 간구하게 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을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간구한 것같이·····. 6. 자범죄(自犯罪)란 무엇인가? 1)자범죄(自犯罪)란, 원죄의 부패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실생활 속에서 짓는 죄를 가리킨다. 원죄와 자범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서로 구별된다. 첫째로, 그 둘은 인과(因果)의 관계가 있다. 원죄는 원인이요 자범죄는 그 결과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4, “우리로 모든 선에 대하여 전혀 싫증나며 무능력하며 반대하게 하고 모든 악으로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이 본래의 부패성에서 모든 실제적 범죄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이지만, 자범죄는 여러 겹(sins)이다.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은 근원적 죄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원인적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면 자범죄에서 자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둘째로, 원죄와 자범죄는 인식의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원죄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인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앙자들은 그것의 존재를 빈번히 부정하지만, 자범죄의 존재는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셋째로, 원죄와 자범죄는 죄책의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다고 흔히 생각된다. 원죄는 본성의 죄로서 죄책을 포함하지만, 자범죄는 자신의 의지적 악행이기 때문에 더 큰 죄책을 가진다고 본다. *자기 속에 있는 원죄적 실체를 아는 자가 깨어있는 자이다. 근원적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 3)자범죄들은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 종류에 따라 죄책의 경중(輕重)이 있다. 모든 죄들이 다 죽음의 형벌을 받을 만하지만, 모든 죄들이 다 똑같이 극악한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50문답은 진술하기를, “하나님의 법에 대한 모든 범죄들이 똑같이 극악한 것은 아니고, 어떤 죄들은 그 자체에 있어서 그리고 몇 가지 더 가중된 이유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죄들보다 더 극악하다”고 하였다. 성경은 죄와 심판에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밝히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2:47, 48). 또 그는 자신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고 표현하셨다(요 19:11).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라고 증거한 사도 바울의 증거도 죄와 심판의 차등(差等)을 전제한다(롬 2:6). *그러나 진실로 성령 안에 거하는 자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며, 아무리 사소한 실수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애통하는 심정을 가진 자이다.
4)죄들은, 죄책의 정도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알지 못하거나 연약하여서 짓는 죄이다. 이것은 비교적 가벼운 죄이다. 모든 죄가 지옥의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다. 레 4:2,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13절도). 레 4:22,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不知) 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레위기에 여러 구절들에서 ‘그릇’ 혹은 ‘부지 중에’ 등으로 번역된 비쉐가가라는 히브리어는 ‘실수로,’ ‘부주의하여,’ ‘무심코,’ ‘부지 중에’ 등의 의미를 가진다. 눅 12:47, 48, “주인의 뜻을 . .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5)둘째는 고의적으로 짓는 죄이다. 이것은 비교적 무거운 죄이다. 민 15:29, 30,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짐짓’이라는 히브리어 베야드 라마는 문자적으로 ‘높은 손을 들고’라는 말로서 ‘뻔뻔스럽게,’ ‘도전적이게,’ 혹은 ‘반항적이게’라는 뜻이다. 시 19:13,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故犯罪)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여기에 ‘고범죄’라는 말도 ‘뻔뻔스런 죄,’ ‘고의적인 죄’를 가리킨다. *이렇게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은 부패한 심령이 그대로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이 문제이다. 6)신약은 또한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한다. 이것들은 고의적 범죄의 극단적 형태라고 생각된다. 모든 고의적 죄가 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래의 네 구절들에 언급된 죄는 특별한 죄로 보인다. 마 12:31, 32,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 .” 히 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 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10:26, 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요일 5:16, “. . .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7)위의 네 구절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① 제롬과 크리소스톰은 성령 훼방의 죄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에만 사람들이 범할 수 있었던 죄로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 행하심을 사탄의 일로 돌린 죄만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 나오는 죄, 예를 들어 요일 5:16의 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② 어거스틴과 찰머 등은 위의 죄들을 ‘끝까지 회개치 않는 죄’라고 보았다. 그러나 위의 네 구절에 나타난 죄들은 일반적 성격의 죄가 아니고 특수한 성격의 죄를 가리킨 것 같다. ③ 후기 루터파 신학자들은 이것을 거듭난 사람들이 범하는 죄라고 보았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들도 죄를 범하지만 그들의 범죄를 성령에 대항하는 죄 또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위의 네 구절들에 언급된 죄들은 다 동일한 죄를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는 칼빈 등과 더불어 이것이 성령의 사역을 고의적으로 멸시하고 훼방하는 죄, 혹은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며 대항하고 참된 신앙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배교(背敎)의 죄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단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가 항상 살아있고, 성경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신실한 주의 종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복된 자들이다.
<10-범죄 후의 인간 상태-도덕법> 1. 하나님의 법에 관하여? 1)하나님의 법 속에, 넓게는 자연 법칙과 도덕법이 다 포함된다. 자연 법칙은 자연 만물에서의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 운행 방식이다. 도덕법은 이성적 피조물에서의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으로부터 나오며 그 속성의 핵심은 거룩이다. 이 도덕법은 인간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으며 모세의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법들은 ①도덕법, ②재판법, ③의식법(儀式法)의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2. 도덕법(moral laws)에 관하여? 1)도덕법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이며, 십계명에 잘 요약되어 있다. 십계명은 구약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다. 십계명의 해석 원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9문답에 잘 진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포함한다. ①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사람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된다. 1-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보인다. ②같은 종류의 죄들을 대표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십계명은 도덕법 전반의 요약이다. ③‘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금지를 다 고려해야 한다. 즉 무엇을 하라는 명령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하라는 명령을 포함한다. ④행위뿐만 아니라, 또한 생각과 마음에도 적용된다. 율법은 영적이다(롬 7:14). 3. 도덕법의 내용-십계명 1)제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 1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증거 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무신론(無神論)은 물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과 우상들을 인정하는 모든 생각이 잘못이다. 2)제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 2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하나님을 물질적인 존재로 형상화(形象化) 하는 것은 큰 오류요 죄악이다. 3)제 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망녕되이’ 라는 말은 ‘헛되이’라는 뜻이다. 제 3계명은 우리가 일상생활이나 종교적 의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무의미하게 불러서는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할 때와 기도드릴 때는 더욱 그러하다. 4)제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7일에 쉬었음이라.” 제 4계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에 대해 명령한다. 구약시대에는 한 주간 가운데 제 7일을 안식일로 성별하여 지키라고 명령되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나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다(출 31:14, 15, 민 15:32-36). *오늘날 안식일 계명이 문자 그대로 유효한가?’라는 문제는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이 도덕법인가 의식법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루터나 칼빈은 안식일 계명을 도덕적 교훈을 가진 의식법으로 보았다.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안식일 계명의 의식적(儀式的) 부분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으나, 교회의 공식적 집회와 휴식을 위한 필요성은 오늘날도 유효하며 따라서 신약 교회는 열심히 주일을 공식적 집회의 날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7세기 초 화란에서 열린 세계적 개혁교회의 도르트 대회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하나님의 율법의 제 4계명에는 의식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가 있다. 의식적 요소는 창조 이후 제 7일의 휴식과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부과된 그 날의 엄격한 준수이었다. 도덕적 요소는 어떤 특정한 날이 종교를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위해 종교와 그것의 거룩한 명상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휴식이 요구된다는 사실에 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주일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엄숙히 성별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십계명의 해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토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고 주일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것은 청교도들의 일반적 견해이었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이 제 4계명을 지키는 것을 도덕적 본무로 영속시키는데 대하여 여러 가지 이론이 있으나 청교도는 안식을 지킴에 매우 엄숙하므로 고상한 도덕 생활을 결과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적 자유를 가지고 주일을 온 종일 거룩히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공식적 집회의 날로 구별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사도 시대에 이미 주일이 구별되기 시작하였고 집회의 날이 되었다. 부활의 주께서는 주일에 부활하셨고 그 다음 주일에 제자들에게 또 나타나셨다(요 20:19, 27). 약속의 성령께서는 처음으로 주일에 제자들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2:1-4).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 중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날은 주일이었다(계1:10). 드로아의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떡을 떼며 바울의 설교를 들었다(행 20:7).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매 주일 정기적으로 헌금하라고 교훈하였다(고전 16:1, 2). *사도들의 제자들이었던 소위 속사도들은 주일 집회에 대해 증거하였다. 주후 100년경의 바나바 서신은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지킨다”고 썼다. 주후 107년경의 익나시우스는 “괴상한 교훈에 속지 말라. 새 소망에 이른 자는 안식일을 더 이상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킨다”고 말했다. 주후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은 “일요일에 모든 도시의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사도들의 글을 읽으라. 이 날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라고 말했다. 5)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 5계명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친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물론이고, 또한 노인과 청년,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피고용인, 정부와 국민의 관계 등 연령적, 지위적 상하 관계에도 적용된다. 레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벧전 2:13, 14,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칭찬)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6)제 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 6계명은 사람의 생명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이것은 결투, 폭동, 자살, 낙태, 안락사 등의 모든 살인 행위를 금한다. 또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말씀한다(요일 3:15). 출 21:22-25,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그러나 사형, 정당방위, 정당한 전쟁, 동물의 살해 등은 성경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 출 22:2,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7)제 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 7계명은 사람의 정조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행위의 간음뿐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으로 정죄된다(마 5:28). 또한 간음의 이유 외의 이혼, 중혼, 근친상간, 동성애 등의 모든 부당한 성적탈선 행위를 정죄한다. 특히 근친상간과 동성애의 죄에 대하여 레 18:6-25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8)제 8계명: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 8계명은 사유 재산의 권리를 가르친다. 이것은 절도, 강도뿐만 아니라, 또한 사기, 횡령, 과분한 빚, 계약 위반, 거짓된 도량형, 투기, 고리 대금 등의 부정당한 경제 활동을 금한다. 레 19:35, 36,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를······ 사용하라.” 9)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제 9계명은 다른 사람의 명예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이것은 다른 이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거짓된 비난, 중상모략, 위증(僞證), 불공정한 판결, 아첨, 과장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거짓말을 금한다. 출 23:1-3,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10)제 10계명: “네 이웃의 집이나 아내나 기타 소유물을 탐내지 말지니라.” 제 10계명은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등의 죄의 근원을 지적하고 있다. 탐심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더 가지려는 욕심이 그 여러 죄들의 뿌리와 같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말씀했다(약 1:15). 모든 불평과 불만, 색욕이나 부정한 욕망, 그리고 물질로 인한 지나친 근심 등도 탐심의 결과일 것이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의 죄라고 표현했다(골 3:5). 탐심은 하나님 대신에 결국 물질이나 육신의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 처지에서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4. 도덕법의 목적? 1)도덕법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①도덕법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준다. 롬 7:12, 14,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②도덕법은 사람의 죄악됨을 깨닫게 해준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롬 7:7, “. . .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③도덕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5. 도덕법의 영속성 1)도덕법은 영속성을 가진다. 그것은 오늘날도 폐지되지 않았다. 성화의 목표는 의와 거룩이다. 한마디로, 죄 없는 성결의 상태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중심 요소이며, 구원은 그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도덕법은 유익하다. 롬 7:12, 14,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딤전 1: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마 5:17, 19,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6, 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도덕법은 모든 사람들, 즉 다른 이들 뿐만 아니라, 또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도, 영원히 그것을 순종할 의무 아래 두는데; 그것은 단지 그것에 담긴 내용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또한 그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생각해서도 그러하다. 그리스도께서도 복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이 의무를 해제하지 않으시고, 크게 강화하신다.” 그리고 생활의 규칙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를 알려 줌으로, 그들이 그에 따라 행하도록 지도하며 속박하고; 또한 그들의 본성과 마음과 삶의 죄악된 부패성들을 드러냄으로, 그들이 그로 인해 자신들을 살펴 죄를 더 깨달으며, 죄 때문에 겸손해지며, 죄를 미워하게 하고; 그것들과 함께,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순종의 완전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보게 하기 때문이다.
<11-범죄 후의 인간 상태-형벌론과 징계론> 1. 형벌론의 개념 1)스트롱 교수; 형벌이란 율법 위반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침해함으로 말미암아 율법 수여자인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주어지는 고통 또는 손실을 의미한다. 2)박형룡 교수; 형벌은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을 위하여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고악이다. 즉 범죄 때문에 과하여지는 고통이나 수난을 의미한다. 3)형벌이란 율법의 위반에 의하여 침해된 입법주 자신의 거룩을 옹호하시려고 그의 공의를 발동시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가하시는 고통 또는 손실이다. 2. 형벌의 목적 1)하나님의 공의의 만족; 죄는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공격이며 반역이므로, 이 거룩을 옹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범죄에 대한 형벌을 강요하는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으로서 이 율법에 대한 위반, 곧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관으로서 반드시 형벌하시는 것이 그의 공의인 것이다(욥 34:11,12, 시 62:12, 벧전 1:17) 2)형벌의 목적이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에 있지 아니하고 죄인을 교정하시고 개선시켜서 온전한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는 견해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유사한 죄를 범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할 목적으로 죄인을 처벌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그러나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이며, 죄인의 교정이나 범죄의 사회적 예방은 부수적인 목적이라 하겠다. 만일 죄인의 교정이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지옥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지옥의 형벌은 교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의 사회적인 예방이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범행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처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최종 심판 때까지 유보하시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사회의 국가의 법에 있어서는 그 형벌의 목적이 죄인의 교정이나 범죄의 사회적 예방에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겠으나,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형벌은 공의의 만족을 그 궁극 목적으로 한다. 3. 형벌의 내용 구분 4가지 1)영적 사망; 인간이 범죄 함으로 받게 될 형벌 가운데 첫째는 영적 사망이다. 성경에서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말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여 범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임을 의미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지속되는 생명이 불순종으로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2)생활의 고난; 아담의 선악과 범죄 후,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셨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게 되는 생활의 고난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에서 인간이 범죄 이후 당하는 모든 고난은 바로 죄의 결과인 것이다. 3)육체적 사망; 아담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창 3:19)고 말씀 하신 것은 죄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적 사망이 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임을 부인하였고, 근대의 칸트, 헤겔, 그리고 릿츨의 신학에서도 부인되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육체적 죽음이 육체적 구조상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창 2:17). 4)영원적 사망; 영원적 사망이란 인간이 죄 값으로 말미암아 영육 간에 지옥에 떨어져 영원토록 당하는 고통을 말한다(마 25:26, 막 9:47,48, 살후 1:9). 이 영원적 사망은 영적 사망의 끝이라 할 수 있으며, 형벌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4. 징계론의 개념과 정의 1)성경에서 말하는 징계는 자녀양육, 교육, 훈련, 교정, 징계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심 11;2, 잠 3:11; 13:24; 15:10; 16:22, 딤후 3:16, 히 12:5,7,8,11; 12:9). 징계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자녀가 잘못을 행할 때 그를 꾸짖어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처럼 교육, 훈련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2)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약하여 범죄 할 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가하시는 채찍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3)징계와 형벌은 다같이 범죄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징계란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내리시는 것인 바, 성화되지 못한 자녀들이 온전한 성화에 이르도록 성령을 통하여 그 양심에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그리해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채찍을 가하시는 것이니, 이것이 징계이다.
5. 징계의 목적 1)여호와의 명령을 지키고 그를 경외케 하기 위해 *신 8:5,6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 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 할찌니라. 2)하나님께 복종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 *히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3)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기 위해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4)의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5)징계는 성도들로 하여금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돌아오게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6. 징계를 받는 성도의 자세 1)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잠 3;11, 욥 5:17).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며,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으라는 뜻이다. 2)낙심하지 말아야 한다(히 12:5).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 인간의 한계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영적인 상태를 진실로 깨달은 자는 스스로 자유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성도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낙심치 않는 것이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인도하시는 과정이니, 한님의 진실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된 사단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3)인내해야 한다(히 12:11-13). 징계가 지속되는 동안,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찾아 지속적으로 달려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고난의 뒤에 하나님의 평강과 축복이 기다린다.
<12-은혜언약 하의 인간> 1. 언약의 개요 1)행위 언약의 위반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언약으로 나타났고, 이 언약은 두 가지로 구분하며, 그 첫째는 구속 언약으로 성부 하나님과 구원 받을 자의 대표인 성자 사이에 맺은 인간 구원을 위한 언약이다. 그리고 행위언약의 위반, 즉 범죄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게 된 인간들을 은혜로 값없이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 한다. 2. 구속언약의 개요 1)구속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속을 위해 성자 예수와 맺은 약속인데, 이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은혜언약의 근거가 된다. 은혜언약은 구속언약의 결과이다. 3. 구속언약의 성경적 근거 1)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구속언약을 전제한다. *엡 1:4,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획하신 영원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2)하나님의 영생의 약속도 구속언약을 전제한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요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17:2, 4,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4. 구속언약의 요소들 1)구속언약의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언약의 당사자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조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루실 구속 사역이다. 이 일을 위해 독생자 예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이 되셔야 했고,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심으로 완전한 의를 이루셔야 했다. *갈 4:4, 5,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5:8, 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선택된 사람들의 죄책과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율법의 완전한 순종과 대리적 형벌 담당이라는 두 요소를 필요로 하였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구속언약에 담긴 약속의 내용은 믿는 자들이 얻을 영생이다. *요 6:38-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이 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받으실 영광을 받으셨다. *요 17: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5. 은혜언약의 개요 1)은혜언약이란 행위언약의 위반, 즉 범죄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게 된 인간들 가운데 은혜로 값없이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을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3, “사람은 타락으로 [행위] 언약에 의해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주께서는 은혜언약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언약을 맺기를 기뻐하셨는데, 그 언약으로 그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요구하시고, 영생에 이르도록 작정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이 믿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그의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과 구원을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다.” *마 26:28, “이것이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6. 은혜언약의 요소들 1)은혜언약의 제 1당사자는 하나님이시고 제 2당사자는 인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보증이 되시며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만드는 중보자가 되신다. 그리고 언약의 조건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의 내용은 영생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한다. 아담이 하나님께 대해 가졌던 관계는 그의 범죄로 깨어졌었고, 은혜언약으로 회복된다. 이렇게 앞의 요소가 충족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8, 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요 1:12, “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 21:3, 7,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겔 36: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7. 은혜언약과 신, 구약시대 1)은혜언약은 역사상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조금 다르게 집행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약의 집행 방식의 차이이며, 두 언약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2)구약시대; ①은혜언약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뱀에게 하신 창 3:15의 선언에서 처음으로 암시되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구절은 죄인의 구원을 암시하는 ‘원시 복음’이라고 부른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②은혜언약은 노아와의 언약에서 나타났다. 노아와의 언약은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홍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의 약속이었다(창 6:17, 18). 그 구원은 방주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 방주는 분명히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구원을 예표한다. 둘째는 홍수 심판 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더 이상 홍수로 인한 멸망이 없을 것을 약속하신 것이었다(창 9:8-13). 무지개는 그 언약의 표로 주어졌다. ③은혜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아주 명료하고 충분하게 나타났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진다. 즉 이 언약은 하나님과 정식으로 맺어졌고 그 표로서 할례의 규례가 주어졌다(창 17:9-14). 할례는 언약 백성의 공식적 표가 되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은 의(義)에 근거하였다(창 15:6). 또한 이 언약은 민족적이며 또한 세계적이었다. 창 12:2, 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그리고 이 언약은 물질적이며 또한 영적이었다. 이 언약의 영적 성격은 그것이 신약 교회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창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롬 4:16,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④은혜언약은 시내산 언약에서 율법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시내산 언약은 구약을 대표한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으로 정의될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그 책을 백성 앞에서 낭독하였으며 그 책을 ‘언약서’라고 불렀고 또 제물의 피를 백성 앞에 뿌렸는데 그 피를 ‘언약의 피’라고 불렀다(출 24:1-8). 시내산 언약은 율법의 형식으로 주어졌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은 도덕법, 재판법, 의식법으로 구성되었고, 도덕법은 외적으로 행위언약적 요구를 강조하는 듯하였다. 도덕법의 요구는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도덕법의 의도는 행위언약의 갱신이 아니고 은혜언약을 위한 보조이었다. 성경은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함을 분명히 증거한다. 롬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리고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속의 은혜를 풍성히 증거한다. 예를 들어, 제사 제도와 성막 제도, 특히 지성소의 법궤와 속죄소의 규례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의 은혜를 예표하였다. 여기에 시내산 언약 즉 구약의 은혜언약적 성격이 증거된다. 레 4:20, “제사장이 그것[속죄 제물]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5, “그들[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약속된 메시아로 말미암아 완전한 죄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얻었었다.” 3)신약시대 ①구약에 예표(豫表)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 사역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히 7:27,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그러므로 구약은 예표적, 그림자적, 임시적, 가변적이었다면, 신약은 성취적, 실체적(實體的), 최종적, 영원불변적이다. ②신약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되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롬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③신약은 내적이며 영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약은 보다 외적이고 의식적(儀式的)이었다. 렘 31:31, 33,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④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 중심의 선민사상은 이스라엘만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족속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신약에서 현실화 되었다. 신약시대 은혜의 복음은 온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고 있다. 마 28:19,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8. 구약과 신약의 본질적 동일성 1)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듯이(히 13:8), 구약과 신약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왜냐하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창 15:6). 출애굽과 유월절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었다. 구약의 의식법, 즉 제사와 성막 제도는 사람이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 한다. 구약의 성도들은, 히브리서 11장의 증거 하는 대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선지자들도 의인이 믿음으로 살 것을 말씀했다. 합 2:4,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사야 7:9,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전혀 별개의 두 언약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동일한 언약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6은 이렇게 진술했다: “본질이 다른 두 개의 은혜언약들이 있는 것이 아니요, 다양한 시행들 아래 있는 동일한 한 언약이 있을 뿐이다.” [출처] 인간론 (모래내교회) |작성자 빵 --------------------------------------------------------------------------------------------- 하문호 고려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 졸업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졸업 총신대학 대학원 졸업(Th.M.): 조직신학 전공 San Francisco Conservative Theological Seminary(Th.M.) California Graduated School of Theology(Ph.D.) 칼빈대학교 교수 역임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강사 역임 현 평강교회 담임 목사 - 저서 교의신학 ① 서론 ② 신론 ③ 인간론 ④ 기독론 ⑤ 구원론 ⑥ 교회론 ⑦ 내세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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