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는 개념은 무엇인가
현대 교인들에게 “예수 믿으세요?” 물으면 거의 모두가 “네”라고 답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넌 날 믿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네. 믿습니다.”라고 답한다고 했을지라도 그를 자기를 믿는 자로 인정하실까?
요한복음 2장23절엔 특이한 표현이 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그의 몸을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속성)을 아시기 때문이라.” 하였다.
예수를 믿었으나 주님께서는 “넌 내 사람이 아니야” 라고 천명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속성을 아시기 때문이다. 거짓 믿음이다. 곧 변심할 믿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이다.
실로 그러하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거나. 오병이어를 먹을 때엔 구름 때처럼 그 분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 들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엔 아무도 곁에 없었다.
바울은 말하길 “우리가 영광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지니라..” 하였고.
베드로 사도는 증거하길“ 고난 생을 뒤따르기 위해 부르셨다.” 라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구원 안으로. 예수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발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세상 사람처럼 살던 인생을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구출(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다시 세상사람처럼 살도록 부르셨을까? 땅에 속한 민족들처럼 살아라고 부르신 것일까? 아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어떠한 사고방식으로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땅의 “민족(the nations)들이 불탈 것을 위해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도록 하신 것이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합2:13)
열국(히브리어=레옴)이....민족들(히브리어=)이
불타 없어질 것에 수고토록 인생들을 버려두셨다.
열국(히브리어.레옴)은 ‘땅에 공동체’란 히브리어이다.
민족들(히브리어,am)은 'the nations'가 가장 근접한 의미를 가진다.
창세로부터 오고 가는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땅에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다가 다음 세상에로 들어가야 하는가?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모르고 지각없이 사는 인생을 불신자라고 성경은 정의한다.
왜 인생을 태어났는가?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 세대에 왜 태어나서 현존하는가? 무엇 때문에 이 시대에 태어나 현 세대에 살고 있는가?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가?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신이 당신을 이 시대에 존재하도록 하셨을까? 이것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세상 민족이다. the nations이다. 땅의 사고방식에 협력하는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 시대에 존재하게 하신 이유를 못 깨우친 사람은 천국백성이 아니라. 세상 백성이다.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백성은 인생으로 불타 없어질 것에 주목하며 그것을 더 얻기 위해 분주하다.
거짓 선지자 목사들이 추앙하는 ‘목회성공’이란 무엇인가? 자기 설교를 듣는 청중을 많이 모은 것으로 간주한다. 과연 교인을 만명. 십만명 모았다고 하나님이 “너 성공한 신앙인생이야”라고 평가 하실까? 아니다 불타 없어질 것으로 수고한 셈일 뿐이다. 왜냐하면 시금석이 나타난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도 보존된 신앙인들을 창출하였는가? 그날엔 불로 테스트할 터인데 그대로 보전되면 상을 얻을 것이요. 자기가 모으고 양육한 신자들이 불타 없어지면 그 목회자는 화가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고전3:15)
열매가 무엇인가? 예수처럼 된 제자를 낳는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하셨다. 예수가 한 알의 토실토실한 한 알의 밀알이다. 예수가 죽고 썩어..거름이 되어 많은 예수를 탄생시켰다. 초기교회 120명은 예수라는 한 목숨이 죽어서 얻은 열매이다. 다시 사도들은 희생을 하였다. 자기를 죽였다. 죽음에 넘기우고 새 생명에 의해서 그 생명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아 확산되었다. 증가되었다. 재생산되었다. 예수같은 사람이..예수처럼 사는 인간이 하나 둘 늘어났다. 이들의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다. ‘크리스찬’이단 말이다.
당신을 보는 주변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하는가? “당신은 참으로 예수처럼 사는 사람이군요” 평가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다. 예수 제자이다. 당신이 마음과 정신으로 믿는 예수가 참이다. 예수처럼 살지 못하거나..아니하는 신자들은 모두 가짜이다. 한 알의 밀이 재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확대된 모습이다. 이것이 참 교회이다. 진정한 교회이다. 단체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다,,,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이다. 지금 예수가 통치하고 계신 공동체이다.
예수께서 인정하시지도 않는 거짓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주님의 교회’라 칭한들. 누가 인정하리...인간적 사고관념에 빠진 그들이 보기에는 ‘기독교회’가 맞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보실 땐 당신의 교회가 아니다. 하나의 사상적 집단일 뿐이다.
예배를 드린다고? 그래도 교회가 아니다. 예수께서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지금부터다...하셨기 때문에 ...유대민족이 드리던 그런 예배..구약적 사고관념으로 드리는 예배..그 제사는 하나님이 역겨워 하신다. 제발 헌물도 가져오지 말라 지쳤다. 제사를 드리지 말라 역겹다 하시지 않으셨는가?“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
구약적 방식의 신앙생활은 종식이 선언되었다. 요한복음4장에서 예수께서 이미 “새로운 예배를 드릴 때가 오나니..곧 지금부터다” 선언해 버리셨다.
첫 신약의 복음을 증거하다 순교한 스테판의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가?
“너희가 신앙하는 그 모든 행위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질타한 것이다. 행7:41-43을 자세히 살펴 보라. “자기들이 손으로 만들 것을 기뻐하더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하늘군대(공중권세잡은자)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하였다.
오늘 이 시대에 스테판이 나타난다면 똑같이 이 시대에 기독교회를 향해 외칠 것이다. “귀신을 섬기는 자들이여 돌아서라”
오늘날 교인들은 구약적 신앙방식에 똘똘 뭉쳐져 있다. 건물을 성전이라 하고, 성직자를 제사장(하늘과 땅의 축복받는 중개인)으로 여기며, 예수님이 맘 중심에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민족처럼 ‘건물성전중심’ 신앙을 하고 있다. 거짓이지 참인지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 교회당에 가까이 있으면 신앙이 살아나는 것 같고 교회당이 멀어지면 신앙이 퇴락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세우신 신앙.즉 사도시대에 신앙인들은 예배당이 근처에 있든지,.없든지..같다. 한결같이 성령충만한 삶을 산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강력한 그리스도인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오늘날 교인들은 예배당에 자주 나가 새벽집회. 철야기도회. 수요.주일 낮.저녁...집회에 열심히 참석할 때엔 뭔가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어떠한 환경에 의하여 홀로 떨어 트려보라...예수 안 믿는 자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이것 때문에 가짜라는 것이다.. 예배당 안에 가면 교인이 넘치지만. 세상에 나가면 참다운 크리스찬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음 속에 주를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건물 속에 좌정하시는 하나님, 예배집회에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가짜들이다.
예수께서는 고의적으로 안식일날 밀밭사이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다. 왜 그러하셨겠는가?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시다. 예수님 따라 다니면 거기가 안식일이요. 안식이요. 천국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 있는 곳.거기에 너희도 같이 있으리니,,,하셨다.
현재 내 속에서 예수가 왕으로 통치하시니...영원히 그 분이 계시는 곳에 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일주일에 두 번.혹은 세 번. 혹은 열 번, 인사하러 다니는 구약 시대 신앙인들,,,그렇게 믿는 시대는 끝났다. 항상 주와 함께 동행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요17: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행동)이 무엇인지 내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롬게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라.“(미가6:8-9)
“노아는 의인이요...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6:9)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그날에는....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요14:20)
그날이 언제인가?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언제 예수께서 그들 안에 계시게 되었는가? 어제부터 제자들 안에 들어가셨는가?
십자가. 부활. 승천. 그 다음이다. 제자들은 예수 따라잡기를 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장소에 따라갔다. 부활하신 장소에도 있었다. 승천하실 때에도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오겠다. 너희 속에 오겠다, 약속을 확고히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침내 성령으로 ..예수님의 다른 모습으로 그들 속에 오셨다. 보혜사란 이름으로 오셨다. 이제 그 후로 그들은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할렐루야!
내 안에 주님이 사신다. 누구에게 사시는가? 눈의 초점이 예수의 죽음. 예수의 부활. 예수의 승천, 예수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자...그들에게 ..그들 속에 오셨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실재를 그대로 그림을 펼쳐 보여준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세 번이나 죽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그의죽으심과 합하여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장례식을 치렀나니....
또한 죽었기에 예수가 죽고. 무덤에 안치되고 난후 다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났듯이 ...정말 죽었다면..자신이 예수와 함께 죽음에 합해진 것이 믿어진다면...믿었다면...하나님이 그 믿음을 사실로 인정한다면...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도 나타나 살리실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할렐루야!
예수 따라잡기에 성공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이다. 크리스찬이다. 그리스도인이다. 예수의 추종자이다. 믿는 자이다.
바울사도는 확정적으로 선포한다.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또한 그처럼 부활할 줄을 믿노니...”(롬6:8)
“먼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습으로 연합되었다면...되었더면....또한 그분의 부활체처럼 되리라...”(롬6:5)
이성봉 목사님의 찬송에서 그는 이 죽음과 부활.승천.성령강림을 믿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수 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승천. 예수님 내주여 내 중심ㄴ에 옵소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자 그러면 예수께서는 이럴게 복음을 설명하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예수께서도...바울처럼,,사도들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복음(생명얻는 길)을 전하셨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처자와 네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무엇을 시사하고 계시는가? 땅의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게 만드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
육신의 먹고 사는 문제로 고심하는 것은 세상민족이나 하는 생이 아니냐?
육신, 인류의 후손이 가진 목숨, 인류의 혈연. 인류가 가진 삶의 방향성, 세계관. 존재이유. 목적,,,그것에 대해서 죽은 자로 취급하는 자라야 예수의 추종자가 될 수 있다.
자원하여 마음에 할례를 행한 자인 것이다. 옛 사람. 태생을 끝낸 사람이다.
죽은 자 즉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마찬가지인 자들,,,지옥불에 떨어질 자들,,,멸망할 자들,,,그들과의 단교이다. 단절이다., 그들이 사는 방식에 동조자로서 살던 생을 버렸다.
버리지 못하면, 예수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의 생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예수의 생을 따라 잡는 자만이 살 것이다. 죽은 자가 살 것이다. 자신을 죽음에 넘겨 버리는 자가 살 것이다. 예수가 그러하였기에 그를 따라가면 영생을 얻을 것이란 사실을 믿는 자는 자기를 예수와 함께 못 박아 버린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못 박혔나니....”선언해 버린다. “세상이여. 날 거기에서 죽은 자로 여겨 주시오..난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시체로 만들어 묻었습니다. 나의 주.예수가 묻히던 그 장소에 나의 선천적 생명을 거기에 둡니다. ”
죽으면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약속을 믿는 자만이 자신의 옛사람을 흔쾌히 죽음에 내 던진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내 버려두고 너는 나를 좇으라...아멘.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믿는 자로 여기는 자는, 자신의 목숨(아담의 후손인 생명)을 죽은 사람을 취급해 달라고 선언하고 “예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결심하고 좇는 자이다. 이들이 믿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다.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 민족들이 보편적으로 가는 생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세상에 대해서. 육신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예수 추종자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혼동하지 말라. 머리로 아는 예수에 관한 지성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예수처럼 사는 자가 예수 믿는 자이다.
예수 믿는 자.즉 추종자는 어떠한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추종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나의 추종자(믿는 자.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거짓 복음. 약화시킨 복음. 희석화된 복음 설교에 속지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 나의 추종자가 되는 길,,,제자가 되는 길,,,믿는 자가 되는 길은 같은 의미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 스스로 예수 제자처럼 살지 못하니 “믿는 것과 제자의 길은 다르다” 라고 설파하고 다닌다.
믿는 것과 제자가 되는 조건은 같다. 거짓말에 속지 말라. 사후에 속았다 탄식하지 말고 현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예수처럼 살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 믿는 자가 아니요. 예수가 가신 발자취를 따라잡지 아니하는 자는 제자도 아니요. 영생에 길로 나아가는 신앙인도 아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인의 표준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그 정(헬라어=파데마)과 욕심(에피뒤미아)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교회 다니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인줄 아는가? 아니다.
예수님께 속해진 사람들은 그 육체(헬라어=사륵스)와 함께 파데마.에피뒤미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을 지닌 자이다.
1)육체(사륵스)란? 육체에서 기인된 모든 것을 말한다. 육적 요소 전체를 말한다. 혈기.욕망, 야망, 인류의 후손들이 꿈구는 성공. 행복...모든 것을 말한다..예수의 사람은 이런 것에서 끝났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다. 세상사람이 생각하는 행복도. 꿈도. 바램도. 모두 버렸다. 오직 나의 바램은 주님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영구히 살려고 애쓸 뿐이다. “너희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2) 그정(헬라어 파데마)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을 포함하여 마지막 십자가 고난까지를 말하는 단어이다.(헬라어 신학사전을 탐구바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란 예수에게 평생을 가격하고 고통을 주던 그 고난을 수용한 맘을 말하는 것이다. “주여 우리가 주를 위하여 종일 도살할 양처럼 여김을 받았나이다.”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을 뜻한다.
초대교부. 타툴리안은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고 있는 흔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를 따라 가니 땅의 민족들이 상상하는 그런 축복이 임해서 추종자가 된 것이 아니다. 영생의 말씀이 공급되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의 고백을 하며. “내 아버지께서 일하니 나도 인한다. 나의 양식을 이 일을 이루는 것이다.”아멘. 아버지의 일을 위해 세상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의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속에서 인도하시는 보혜사성령과 함께 초막이나 궁궐이나 아골골짝 빈들에도 주와 함께 가오리다...외치며 날마다 산다. 이들이 예수의 사람들이다.
3)욕심(에피뒤미아)을 못 박았느니라. 사람이 왜 죄를 범하는지 아는가? 왜 죄의 유혹에 부방비 상태가 되는 줄 아는가? “각 사람의 미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하였다. 죄의 맛에 관심을 꺼버린 신자는 죄를 범하는 삶에서 해방되어 버린다. 이 방면에 대해서는 찰스피니 목사님이 잘 설명하였다. 사탄이 인간이 관심을 표하는 장면을 알기에 눈동자 앞에 보여준다. 그러면 관심이 있는 자는 눈동자가 그리로 자기도 모르게 움직인다. 이래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다. 마음 속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믿음이 없으므로...관심이 동하고 눈동자가 그것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의 욕심(에피뒤미아)에 대해서 죽은 자에겐 그 어떤 죄의 유혹도 먹혀 들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 그의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죽었다., 거기에 대해서 죽었다. 살았다 하나님에 능력에 의해 살아났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 실제로 이루어진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라는 격언이 있다. 송장을 발로 찬들,,망치로 두들기든지..반응이 있겠는가?
크리스찬이라는 사람들과 같이 운전하다보면...아주 아이러니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열받다.”하며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다. 세상.육체.인간의 활동에 대해서 죽은 자가 무슨 반응이 있겠는가? 그는 죽은 자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니다...그리스도인은 내적 성령에 따라 반응만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죽었고 현재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한 분노를 낼 수도 있다. 감정에 의한 화냄이 아니라..절제하는 분노. 제어하는 감정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의 9가지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심, 양선, 주께 충정. 온유한 성품, 육체를 제어함.등이 자동적으로 맺어진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내게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해 못 박히리라..“(갈6:14)
“오직 (중요한 것은) 새로 창조된 것만이 중요하니라”(갈6:15)
“만일 성령으로 산다고 주장한다면 실제로 성령을 행할지니라.”(갈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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