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져라.⒂
성경: 엡6:10-12절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하면서 종말로 라는 수식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세상이 끝난다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 도 씁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것은 ‘시간이 없다’ 는 말입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고,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순종 해야 한다 는 말씀을 여러 모양으로 전해 왔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모와 자녀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종과 상전의 이야기 속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모든 문제는 불순종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순종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아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배우면 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불순종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종말로 형제들아 하는 말씀 속에는 그렇게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호하게 순종하라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참을 만큼 참으셨고, 말씀도 들을 만큼 들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우리목사님이 말씀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설교해주지 않아서 모르고 못 들어서 나는 못했다고 핑계할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아직도 얼마나 계속해야하겠습니까?
개인의 종말인 죽음의 소식을 우리는 날마다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쓰러지고 있습니까? 나는 그 죽음에서 제외 되어 있습니까? 이 종말이라는 말이 쓰일 때 긴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단을 해야 한다, 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마지막 말을 하겠다. 이제 더 시간이 없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바울은 하기 위해서 이 “종말로 형제들아!” 하고 시작을 하고 있을 가요?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강해져라
봉의 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려 올라옵니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가까이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적당한 경사도와 온갖 운동 시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날마다 빠지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남성은 알통이 보이는 단단한 몸매를 자랑하는데 자신은 삼천 몇 십번 째라고 합니다. 그러면 10년을 넘게 다녔다는 말입니다. 내가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우산을 들고 온답니다. 매일 일기를 쓰듯이 봉의 산을 올라 온 것은 체크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알통은 봉의 산 알통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있습니다. 나이는 71세인데도 옆에 아주 활발한 아주머니가 할머니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 할머니는 3남매를 두었는데 영감이 도 공무원 1호라나? 해서 사람이 잘나서 젊을 때 바람을 피우고 그렇게 고생을 시켰답니다. 자신은 장님이라도 좋고 앉은뱅이라도 좋으니 집식구가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관심 있는 남자와 삼일만 살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했답니다. 속이 상할 때 마다 둘째 딸을 그렇게 많이 때려줬는데 세 명 다 잘 자라서 그 딸은 도 공무원이고, 아들은 서울서 살고 이제는 자신의 인생이 챙하고 햇빛이 들었는데 이제는 봉의 산 올라와서 운동하는 이것 때문에 산다고 합니다.
지난 번 체육 대회 때 지방에서 온 목사님을 만났는데 자기는 매년 봄 2-3백만 원씩 보약을 먹고 몸을 추수리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쓸어 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밥만 먹고 그 흔한 보약한번 안 먹었으니 곧 죽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집사람에게 하니까? 여보 밥이 보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걱정하지 말랍니다.
이렇게 다 자신의 육신의 건강을 대단히 챙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전도사님이 강한 남자 클럽을 운영해서 4사람이 도장에서 유도를 하고 있다는 것 성도들은 아십니까? 여러분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돈이 들고, 시간이 들고 신경을 써야하는 것입니다.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죽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마지막 말씀을 마치기 전에 강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봉의 산에 올라가서 운동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보약을 먹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점점 세대가 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감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것처럼 참으로 믿음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에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찌하든 틈을 노려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영계의 싸움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악한 영들의 정체를 알고 싸워 이기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마귀에 대한 두 가지 실수는 마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과 다른 한편 마귀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성도는 마귀를 대단히 두려워하여 전전긍긍하며 죄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편 마귀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마귀의 활동에 대해 무관심하며 극 결과 쉽게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서 마귀의 파괴적인 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마귀는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를 미혹하던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천사로 위장해서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역사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알고 싸워 이기도록 우리에게 강해져라 는 것입니다.
요즈음 보건소에 가면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국가에서 6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무료로 놓아줍니다. 이것은 병원에서 맞으려면 2만원 줘야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노인들은 약하기 때문에 독감 걸린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보다 예방 주사를 맞게 하는 것이 서로 이익이 되게 때문입니다. 주사 맞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독감을 이기는 저항력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믿음이 있어 보이지만 약한 사람들 많습니다.
돈이나 재물에 약해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문제는 다 통과 합니다. 그런데 돈 문제에 항상 시험을 받거나 걸려드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좀 잘해보려고 하거나, 신앙이 성장하려고 하면 물질적인 시험이 꼭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정신적인 통일성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싹 달아나고 인간적이 되고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해서 흔들리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하면 은혜가 없어집니다. 냉랭해 지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안 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와 닿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것이 느껴지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 나의 약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겠습니다. 베드로처럼 결단하겠습니다. 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 나야합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심령이 길가가 되고, 가시덤불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놀이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사랑하기 때문에 깨닫기 하기 위해서 징계를 내리십니다. 징계가 무엇입니까? 환난에 옵니다. 병이 듭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빨리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돈의 능력을 더 믿고, 하나님 보다 물질에 애착을 더 가진 모든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는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7-10절)
여러분 지면 비참합니다. 쓰러지면 장사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아간이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고 자기와 가족은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삼손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두 눈을 뽑히고 쇠사슬에 매여서 연자 맷돌을 돌리는 짐승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알려진 가문이요 족장의 대표자들입니다. 그들이 시험에 빠지고 넘어질 때 자신만 망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집은 대부분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온 식구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잘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2. 주안에서와 그 힘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면 강해지고 이겨야 하는데 그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고기가 물에 있을 때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밖에 만 나오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조스 같은 식인 상어라도 입에 들어가는 횟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자가 산에 있을 때 백수의 왕입니다. 당할 존재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물원 우리에 들어가면 구경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는 주님 안에 있을 때 입니다. 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사울은 감옥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그는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 같은 사람은 총독의 관저에서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호령하는 사람이지만 진리를 몰랐고 주님이 없는 자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근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과 함께 그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로 기록됩니다. 요셉, 에스더, 다윗, 다니엘,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그 악한 상황에서 안심할 수 있었고, 담대할 수 있었고, 노래하고 기도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할 때 대답은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실력은 환자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선생님의 실력은 아이들을 통해서 압니다. 그러면 참 신자는 어떻게 압니까? 교회 나오는 것으로, 성경 아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그가 두려움 없이 살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근심과 불안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말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종이는 그냥 찢어질 만큼 약하고, 바람에 날라 가는 가벼운 것이지만 벽에 붙고 천장에 붙으면 몇 년을 가도 그대로 있습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열 받는다, 고 스스로 죽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시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안이 없습니다. 아멘입니까?
또 주안에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의식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있을 때와 주님이 같이 있을 때는 다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가 주인이요 왕입니다. 모든 결정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물어 보고 주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과 주님의 의견을 물어보고 따르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하는 이것이 왜 능력이 되나요? 어린아이가 언제 유괴를 당합니까? 혼자 있을 때입니다. 이브가 언제 마귀의 유혹을 받습니까? 혼자 있을 때입니다. 엘리야 나의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왜 부르짖습니까? 혼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나만 혼자 남았다고 그러나 나를 죽여 주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신이 혼자라고 여겨지는 사람, 무언지 모를 두려움이나 쓸쓸함을 느끼면서 누가 유혹을 하면 넘어 갈 것 같은 그런 사람은 다 혼자 있는 사람이요 신앙의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같이 있는 것이 힘이요 능력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같이 있으면 누가 유괴를 합니까? 신자가 주님과 함께 있는데 왜 쓸쓸합니까? 스스로 주님의 손을 놓고 방황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결론
니미츠라는 소위가 근무하는 함대에 중요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행사에 참석하려고 해군 대장 방문하였습니다. 실수로 부딪치면서 대장 계급장이 떨어져 망가져 버렸습니다. 당황한 해군 대장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부관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있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배였습니다. 그 때 니미츠 소위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대장이 물었습니다. <아니, 소위인 자네가 어떻게 대장 계급장을 갖고 있었나?> 그러자 니미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소위로 임관할 때 애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애인은 제게 대장이 되라면서 대장 계급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니미츠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든 대장은 그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대단한 애인을 두었군. 열심히 노력해서 꼭 대장이 되도록 하게.> 그 뒤 니미츠는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대장 계급장을 선물했던 그의 애인은 니미츠 대장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로 탁월한 행정가였습니다. 놀라운 전략가였습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아처럼 혼자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닙니까? 오랜 가짜의 삶 끝에서 진짜의 얼굴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니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 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 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춘천그리스도의 교회 /조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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