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허물고 주님을 세우는 삶" (저자:앤드류 머래이)
-paul555k 요약 -
1.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를)…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 : 1 )
이 구절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두 가지 단계(유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신령한 그리스도인)
가. 육신에 속한 상태의 네 가지 특징
유아기가 너무 오래 지속인 상태
·자립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가 항상 그를 돕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죄와 실패가 끊이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는 있으나 성령의 은혜는 없는 삶
·육신에 속한 자 : 하나님의 성령의 일은 별로 없고 육신의 일이 현저하여 성령 님께 서 그들의 삶 전체를 통치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신 령 한 자 : 그들 안에 육신의 일이 조금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 안에 거 하시는 성령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시고 따라서 사람들이 그들을 만나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거룩하게 하 셨다는 사실을 즉각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신령한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무능력하다.
·신령한자의 특징( 갈 6장) : 죄에 빠진 자들을 돕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온유함, 능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 이러한 신령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첫번째 : 우리는 사람이 땅해서 구현해야 할 신령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신령한 삶을 살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삶을 마땅한삶으로 여기신다면 우리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고 이것이 우리의 의 무이며 우리도 신령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 안에서 마음으로 분명하게 확신할 때까지 말씀을 연구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두 번째 : 내가 지금까지 그러한 삶을 살지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죄송스럽게 생 각 하는 것이다.
세 번째 : 육신에 속한 자에서 신령한자로 넘어가는 것이 단지 한 걸음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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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아름다움 이 형성되려면 성장의 시간이 필요합니 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자에서 신령한자로 넘어갈 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걸 음뿐입니다.
네 번째 :신령한자가 되려면 반드시 이 한 걸음, 즉 엄숙하고 복된 이 한 걸음을 떼어 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명령과 통치에 마음을 다바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이 자기들의 못된 기질이나 여러 가지 죄들을 제거하는 데 힘을 기울여 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께 나아가 자기의 삶의 전체를 의탁한다면 그분은 강하신 능력으로 당신을 구원해 주실것입나다.
오직 우리를 신령한자로, 신령한 삶으로 만들어 주실 분은 내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 뿐이다.
2. 자 아 의 삶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 마 16 : 24 ) 우리는 타협적인 삶에 대해 들을 때마다 도대체 그러한 삶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됨과 특권으로, 영광으로 살지 않고 세상과 손을 잡고 살아가는 것으로써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골백번 기도하고 다짐한 후에도 여전히 혼탁하고, 바라는 바와는 동떨어진 그리고 열매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이 의문들에 대한 해답은 한가지다. 즉 자아(Self)가 모든 문제의 뿌리이다.
이 자아로부터 자유하고 승리하려면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삶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삶을 대신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기(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표시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자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각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부여하신 능력입니다. 자아는 창조 받은 존재의 핵심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천사나 인간에게 자아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그분이 여기에 당신의 생명을 가득 채워 주실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자아를 빈 그릇 상태로그분께 가지고 나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자아를 매일 가지고와서 "오 하나님 여기에 들어와 주십시오. 이것을 당신께 바칩니다"고 말할 자기결정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당신의 신성하고 풍성한 아름다움과 지혜와 능력을 부어줄 그릇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아는 창조주가 우리 안에 자신을 계시하도록 허락하는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등을 돌린 자아는 바로 지옥의 어두움과 불입니다.
· 자아의 핵심적인 작용 ( 자기본위, 자기확신, 자만 )
자기본위 : 세상과 타협하는 모든 죄의 뿌리에는 이 자기본위가 도사리고 있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멸에 이르렀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매순간 나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나는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자기를 기쁘게 하고 그분을 부인하든지 이 둘 중에 하나를 해야합니다.
자기과신 : 스스로를 기쁘게 하기 시작하면 곧"자기과신"과 이와 관련된 "자기신뢰" "자기노력" "자기의존"에도 빠지게 됩니다. (예) "베드로의 예수님부인
자 만 : 항상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하는 한가지 생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찬사를 앙망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얼마나 안달하며
살고있는지요!
○. 이러한 자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것이니라"나를 스스로 부인하고 예수님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어야만 합니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자아의 삶과 그리스도의 삶) 신자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자신들에게 나타나기를 계속 간구하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아의 삶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이 두 진리는 항상 함께 합니다. 먼저는 "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고 다음이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이다 오직 자아의 삶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께 마음을 쏟으며 그분의 교훈을 듣고, 그분께 자신을 매일 바침으로써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3.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시62:5)
나의 하나님은 어떤 환경보다도 월등하며 어떤 상황보다도 내게 더 가까운 하나님인가? 부함이나 가난, 기쁨이나 슬픔의 영향력이 하나님의 영향력보다 내게 강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아, 우리가 개개인의 삶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진심으로 " 내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고 부르짖는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과 임재가 얼마나 우리에게 풍성하게 나타나겠습니까?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을까요? 왜 그와 같은 일이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그토록 희박하게 나타나는 걸까요? 대답은 한가지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기도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가까이 하심을 겸손하게, 그리고 조용히 인정하며 경배를 드릴 때 우리는 기도를 마치면서 얻게된 바로 그 축복을 처음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실로 내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좀더 깊은 신앙, 좀더 풍성한 은혜, 좀더 강한 능력, 그리고 좀더 많은 열매를 원한다면 더욱 더 하나님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심령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더욱더 하나님을! 더욱더 하나님을! 그리고 나의 영혼을 향해 이렇게 말합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4. 안식에 들어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 4 : 1 )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 히 4 : 11 )
○ 사람은 어떻게 이러한 안식에 들어가는가?
첫 번째 단계 : "나는 진심으로 믿음의 삶속에 안식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라고 말하기를 배워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먼저 구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양면성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와 가나안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첫 번째 차이 : 광야에서 40년동안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즉 하나님 이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는 온전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가나안 으로 들어간 그리스도인의 삶과 광야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차이 입니다.
■.두 번째 차이 : 광야에서의 삶이 궁핍의 삶이었던데 반해 가나안에서의 삶은 풍요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차이 : 광야에서는 승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땅에서 그들은 모든 적을 물리쳤습니다.
두 번째 단계 : "나는 그러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을 가 지고 있지 않다"
라고 고백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밀하게 저는 이러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마음이 아픔니다. 저는 안식의 땅에 거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자백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 : "저를 위해 이러한 삶을 준비해두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하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 근심 없이 항상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사는 일이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아로부터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이 귀한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 구출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바로 그들을 요단강 너머,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 십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을 회심시켜 주신 하나님을 당신에게 이러한 복된 삶을 매일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 단계 : " 내 노력으로는 결코 이것을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것
을 내게 주셔야 한다." " 이것이나를 위해있다"
라고 말할 때 아주 담대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후에 나는 또 당신이 낮아져서 " 나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취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다만 하나님만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이 일단 당신에게 전적인 무능과 자기절망을 깨닫게 해주신다면, 다시 당신을 부르시고 " 내가 네안에서 이일을 이를 줄 믿느냐?" 이때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붙들거나 이일을 내안에서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것을 나에게 주셔야 합니다. 이복된 무력감을 품으십시오. 무력해 지는 것이 당신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성령 님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참된 무력함을 계시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 주님, 당신이 이것을 이루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일을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것을 이루려고 ,얻으려고 노력했기에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안식을 얻기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는 선물입니다. 이것은 돈이나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나의힘, 나의 능력, 즉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이 값진 보배로운 진주는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나는 티끌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당신의 지혜와 생각을 전부 버리십시오. 부디 이 단계를 딛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 나는 이 값비싼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모든 시간, 나의 모든 관심, 그리고 나의 모든일, 나는 하나님의 안식을 인생의 첫째 자리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을 부차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친다" 그리고 나의 신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데 전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그렇게 값비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값비싼 진주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최고 가치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최고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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