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2014.9.10.(수): 가짜 와 진짜

하나님아들 2019. 1. 12. 12:13

 

 

요한복음 21:15-17(p185) / 가짜 와 진짜

 

먹거리 X파일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대다수의 식당이 착한 식당이 아니라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말은 착한 식당을 운영하면 돈을 벌수 없기 때문에 식 재료도 온전하지 않은 것, 고기 원산지를 속이는 것은 물론 g수도 속여야 이윤을 많이 남기기 때문에 오히려 착한 식당을 운영하면 손해라는 것입니다.

 

어렵게 어렵게 소신을 가지고 변칙이 아닌 원칙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아 검사하는 여러 전문가들이 이정도면 하고 인정을 해서 ‘착한 식당’이라는 간판을 붙여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점점 진짜보다는 가짜가 정상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무거운 질문을 안겨 줍니다. 그 질문이란 바로 우리의 믿음은 진짜냐? 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을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제 믿음은 진짜입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보이지 못하게 만드는 數(수)많은 罪(죄)의 잔뿌리들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3장12절과 누가복음3장17절에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였고, 또, 요한복음 13장10,11절을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다는 깨끗하지 않다>는 말씀은 전부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銀(은)30에 팔아먹은 가룟 유다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가짜와 진짜의 기준은 겉모습이 아니라 바로 속마음中心(중심)입니다.

사무엘상16장7절에 보면“~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外貌(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中心(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眞僞(진위)는 試鍊(시련)과 鍊鍛(연단)을 통해 확인이 됩니다. 위기가 닥쳐오면 사라지는 믿음, 교회를 잘 섬기는 것 같지만 조금만 기분 나쁘면 박차고 나가는 충성, 겸손한 듯하지만 남을 항상 무시하고 자기 잘난 것만을 내세우는 겸손....뭐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주님 앞에서는 늘 더러움의 모습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는 늘 위선자의 모습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는 늘 마음이 찔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 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믿음이 진짜이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약속이 진짜이시 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0장10절에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일서 5장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永生(영생)이시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약속이 진짜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도 진짜이기를요구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진짜가 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18절에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말로만 믿지 말고, 행동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생각만 품는 믿음, 말로만 믿는 믿음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시키는그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생활은 내 뜻대로가 아닌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생활 입니다. 

 

律法(율법)의 한계는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규칙대로 외형적인 모양은 만들어 갈수는 있지만 마음속 기쁨 까지는 결코 보장해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하라><하지 마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율법적인 신앙이란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치 <공부 해!>라고 하면 공부하고, <자!>하면 자고, <먹어!> 하면 먹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렇게 하면 물론 겉으로는 모범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아이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기계가 되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말하는데 선악과 사건도 따지고 보면 우리를 기계로 취급하지 않고 한 인격체로 존중 해준다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이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고, 우리 자신도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똑 같은 질문을 세 번씩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베드로가 말로 백 번, 천 번 悔改(회개)한다고 해도, 진실로 마음깊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우리를 진짜가 되게 합니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명 재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가짜 엄마와 진짜 엄마를 가려내는 재판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갓난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두 여인 모두가 한 아기를 자기 아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누가 진짜 엄마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솔로몬왕은 신하에게 칼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둘로 나누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서로 자기 아이라고 하니, 둘로 나눠 절반씩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정확하게 둘로 나눠 절반씩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한 여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제발 아기를 죽이지 말고, 차라리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진짜 엄마였기에 아기가 죽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 키우지 못해도, 미운 여인에게 주더라도 자신의 아기가 살아있길 원했습니다. 그게 참된 母情(모정)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方法(방법)은 바로 그 마음 중심에 사랑이 있고 없고의 문제 입니다. 사랑이 있고 없고는 곧 생명이냐 죽음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1~3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사랑 없는 能力(능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사랑 없는 慈善(자선)도 얼마든지 할수 있고, 사랑 없는 믿음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이라 해서 옆집 아저씨가 나에게 아무리 많은 용돈을 펑펑 주어도 진짜 아빠는 아닌 것입니다. 용돈을 펑펑 주지 못해도 진심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이고 아빠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사단을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으로 , 생명으로 다가오는 분,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은 겉은 광명의 천사로 나오지만, 속은 이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합니다. 할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까지도 넘어지게 하고자 우는 사자처럼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다 조건부적인 관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고린도전서13장4~8절을 보면 그 정의가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아멘-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 것을 알수 있는 것은 바로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믿음이 아닌 주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믿음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가 主(주)님의 永遠(영원)한 참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참된 信仰(신앙) 干證(간증)의 열매를 만들어 가는 福(복)된 믿음의 主人公(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眞心(진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祝願(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 한국의료선교회 - 안산 산재(중앙)병원 원목실
글쓴이 : 상록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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