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1999년 9월 26일 / 저녁예배 / 벧전 2:1-10 / 새 신분 새 삶, 그리고 성숙

하나님아들 2019. 1. 12. 12:08

새 신분 새 삶, 그리고 성숙

1999926/ 저녁예배 / 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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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모든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의 상태로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갓난아기가 어떻게 양육되느냐?에 따라서 그 존재의 양태(樣態)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거듭나 새생명의 출발을 시작한 성도에게도 이러한 양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령한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거듭난 성도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지녀야 할 성장을 위한 생활 자세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거듭난 새 생활을 위해 먼저 망령된 옛 행실을 버려야 합니다.(1)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성장하려면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분의 모형을 본다면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요셉, 욥 등을 신약에서는 보통 사람으로는 얼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본다면 역시 예수님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마음을 보면서 거듭난 새생활을 하도록 하십시다.

 

1. "모든 악독"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악독한 모든 태도를 가리킵니다. 실제적으로나 또는 상상으로나 상대방을 상해하려는 분노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였을 때, 그 일 때문에 그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면 이것이 바로 악독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그러한 지경에 도달하셨지만 마음은 죄인들의 마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2. "모든 궤휼"을 버려야 합니다. 궤휼은 사기를 말합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궤휼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자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사람은 너무나 의심이 많아 자신 이외에 그 어떠한 사람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신실한 자입니다. 욥은 궤휼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다나엘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역시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진실하신 분으로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도 이러한 점은 인정하였습니다.

 

3.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궤휼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서 궤휼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외식이란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가 행동하는 것처럼 실제의 자기 자신의 모습은 감추어 놓고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식은 위선이요,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기독교인은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알지 못하여 그렇게 살아온 것만해도 큰 죄악인데 더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살려고 합니다.

4.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분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살고, 더 존경을 받고, 더 큰 명예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질 때에 시기심이 발동됩니다. 특히 믿는 이들로서는 누가 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느냐? 누가 더 큰 은사를 가졌느냐?는 시기심이 많이 발생합니다. 성도가 시기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남이 잘 되도록 격려해주고 때로는 박수도 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5.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이 비방하는 말은 시기심이 발전하여 나타나는 언어의 형태입니다. 시기심이 비방하는 말을 하게 하며, 비방하는 말은 모든 공동체의 평화와 조화를 깨뜨려 파멸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비방하는 말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오해와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심에 은근히 의혹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람의 인격을 손상시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손상된 것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비방하는 말을 일체 그 입술에서 제하고 버려야 합니다.

▶▶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고 자라나기를 원하면서 이상과 같은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지 않았다면 모든 다른 노력을 중단하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자기 자신을 깊이 살펴서 악한 요소들을 남김없이 회개하고 자복하여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만이 진정한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거듭난 새 생활이 계속되기 위하여 성숙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2-8)

본문 1절에 나타난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들은 옛사람의 망령된 행실들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것들이 여전히 교회 성도들 간에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곧 미성숙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악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성숙되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의 중함에 걸맞게 보여지기 위하여 겉으로 사랑이 많고 가장 올바르게 헌신하는 척 하는 외식과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관용하기 보다 일일이 들추어내어 비방거리로 일삼는 행동들은 아직 성숙되어져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제법 기도도 하며, 충성하며 헌신한다고 자부하는 그 마음 자체가 오히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자신이 그래도 상당히 괜챦은 신앙과 헌신을 드리고 있다는 그 생각 자체가 근거가 되어 다른 성도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나아가 비방거리로 바꾸어 버리는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모두 미성숙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거듭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성숙되지 않으면 문제 투성이 신자로 교회에 누를 끼치는 분별없는 영적 말썽꾸러기 아이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러면 이 미성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에서 성도의 미성숙 문제의 해결 방법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1. 갓난아이처럼 순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이제 막 탄생의 신비를 깨치고 나온 갓난아기처럼 순수하고 천진(天眞)한 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놀라운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들에게는 이전의 삶과 기존 지식들이 모두 무의미해지며, 필요도 없거니와 도움도 안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이전에 지녔던 지위와 지식들을 모두 하찮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3:8). 물론 이 말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녔던 모든 것이 세상을 살면서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세상 것을 최고로 알고 또 그렇게 믿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서 그 분의 뜻과 인도하심만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오직 인생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쁨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겸손한 깨달음이 있을 뿐입니다. 교만하고 강한 마음으로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좇아 살아가던 사람이 온 마음을 비우는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나아만의 살을 어린아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심으로 늘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의 심정을 갖고 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속 깊히 체험하여 일평생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또 결단하면 반드시 어린 아기처럼 순진해지는 변화가 나타집니다.

복음성가

1.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 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2.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2. 성숙되기 위하여 신령한 젖(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아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머니의 젖을 찾아 먹으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영적 탄생 이후 자연히 말씀의 젖을 찾고 사모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젖 속에는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양분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신앙의 성숙에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공급합니다.(8:3 /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4)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양육받는 성도는 치우침이나 구부러짐이 없이 영육간에 모두 강건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영적 미성숙의 원인은 신령한 젖인 말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루 속히 미성숙을 벗어나 성숙된 성도가 되어 다른 연약한 성도들을 바로 도와주는 자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여 끊임없이 말씀의 양식을 공급받아 자라나면 온전한 구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고 성숙이 없으면 그것은 영적 기근과 기아로 허덕이다가 아사상태에서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린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마침내 주인으로부터 찍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심판의 불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여 자라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무의미하며, 한낱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같이 버려진 존재였었는데 선택받은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버림을 받고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보배로운 산돌이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의 죄악에 찌들려 버림받고 무기치하며 저주받은 삶이었으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주받아 죽은돌이 축복받은 산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바로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무가치한 우리를 가치있는 존재로 바꾸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여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라는 새 신분에는 특권과 의무가 동시에 부과 됩니다.(9-10)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자기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조국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며 권리를 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와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상 나라에서 누릴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를 못합니다.

본문은 바로 하나님 백성이 누려야 할 특권과 감당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권

 

(1) 성도는 선택받은 족속입니다.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활동하던 당시에 로마 제국의 속국 국민들이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많은 돈을 주고 시민권을 사거나, 로마 제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아니면 여간해서 로마 시민권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절차와 의식을 통해서만이 유대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이처럼 많은 돈이나, 혁혁한 공로나, 까다로운 요식행위로는 도저히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만이 이루어지는 축복입니다. 성도들은 로마 황제나 그 어떤 임금보다도 우월한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으며, 로마제국이나 세상의 가장 큰 나라의 국민보다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선택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 이 말씀은 왕과 제사장이 겸직된 신분을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도 시민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나려는 이유가 타당해야 하고 심사를 거쳐 시간을 배당 받아야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러한 심사와 절차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도 제한받지 않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불만과 요구를 말할 수 있고, 이웃과 형제의 문제 해결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성도의 신분이 마치 왕과 같으며 제사장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주의점은 (벧전 2: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전도한 영혼들을 위하여 왕과 같이 돌보아 주며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도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 세상 나라가 어떤 나라든지 민족적인 기질이 있고 국가적인 이념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 백성다운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나라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결과 거룩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를 말끔히 씻음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한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성결과 거룩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표는 어디까지나 성결(거룩)입니다.

(4)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그 몸과 피를 값주고 산 존재들입니다(벧전 1:18-19).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팔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지불하신 성도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데, 예수님은 마10:30 너희에겐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2. 특권에 따르는 의무.(9)

본문 9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따르는 의무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여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은혜와 사랑을 참으로 깨달은 자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답을 덮어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부모님께 감사하고 이웃과 형제와 후손들에게 그 덕을 기리고 칭송합니다. 마찬가지로 참으로 하나님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받았다고 인정하는 자들은 그 아름다운 덕을 널리 선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 성도로 부름받은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우리는 평생을 다하여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 살아가야 할 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특권들을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신 특권들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은혜로운 삶이며, 동시에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는 길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고 선전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올라가는 연쇄적인 축복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천성성결교회
글쓴이 : 천성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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