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13장5~7절(p299) / 생명이 있다는 것
우리 자신이 과연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의심을 가진 자들에게는 우리가 과연 자신의 믿음을 알 수 있느냐의 질문과 함께 더 나아가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을 입증하라고 말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매우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즉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몸은 살아 있지만 죄로 인해 영은 죽은 상태였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아는 방법은 바로 내가 주어진 하루하루를 영적 생명이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자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1.먼저 生命(생명)이 있는 자는 糧食(양식)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양식을 섭취하지 않습니다. 양식은 오직 산자들을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배고픔을 느껴야만 합니다.
만일 끼니때가 되어도 배도 고프지 않고 양식을 취할 마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움직이기 위해서는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양식입니다. 먹은 만큼 힘쓴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닌 자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이사야 55장1,2절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아멘-
믿는사람은 생명을 위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섭취해야만 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은 채 믿음 생활을 한다면 분명히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의 육신의 양식과 더불어 영혼의 양식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자가 福 있는 자 라고 말을 합니까? 요한계시록1장3절에“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을 붙들고 살아가는지 말씀이 내 인생을 붙들고 살아가는지가 곧 영에 속한 자인지 육에 속한 자인지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2. 生命(생명)이 있는 자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8~10절을 보면“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하였고
마태복음 7장16~20절을 보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했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생명의 씨앗을 가진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맺어지는 열매를 통하여 생명의 튼실한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열매가 좋으면 씨앗도 좋습니다. 열매가 안 좋으면 씨앗도 안 좋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있다면 반드시 그 사람은 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산 자가 되지만 반면에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아프나 괴로우나 상관없이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로마서6장20~23절에 보면“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永生(영생)이니라”-아멘-믿음의 최종 열매의 마지막이 永生(영생)입니다.
3. 살아있는 자의 향기와 죽은 자의 향기는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9장16~18절에“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그 숫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를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곧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위해서 행위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는 전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만 인정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서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지만 구원받은 증거를 위해서는 행위의 증거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그 향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산내가 납니다.
세상은 온갖 향기가 있지만 크게 나누면 산 향기와 죽은 냄새로 나눕니다. 꽃향기, 풀 향기, 가축 냄새, 땀 냄새 등.... 좋은 것은 대부분 향기로 나쁜 것은 대부분 냄새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2장14~16절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아멘-
우리의 믿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향기를 , 반대로 생명이 없는 믿음이라면 이미 죽은 자와 같이 세상의 것을 따라서 썩은 것들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고기라도 살아 있으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큰 고기이지 만 죽어 있으면 물살에 떠내려갑니다.
본문 고린도 후서13장5~7절 말씀 다시 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 -아멘-
저와 우리 모두가 구원을 위한 행위의 필요가 아니라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은 은혜 입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믿음의 주인공들로 다 세워지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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