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물은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성경본문:요4:10-15절
오늘날 기독교가 왜 매력이 없고, 재미없는 종교로 전락되었을까? 왜 성도들이 기쁜소식을 누리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의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위로와 기쁨을 주었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지성인들이 교회로, 교회로 몰려 왔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교회다니는 것이 자랑스럽고, 폼나는 일이어서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예쁜 옷을 입고 교회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수많은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샘솟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각종 병자가 고쳐지고, 가난한 자가 부한 자로, 약한 자가 강한 자로, 두려움의 사로잡힌 자들이 교회에 가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런 소문을 듣고 힘들고 어려운 자들이 소망을 가지고 교회로, 교회로, 몰려와서 십자가만 세워 놓으면 교회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개척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면 교회가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자신의 꿈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물질로 섬기고, 은사와 재능으로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교회는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하였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그 소망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까? 첫째, 예수의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이 주시는 샘솟는 기쁨과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의 본질과 매력을 잃어버리고, 혼합주의 신앙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교회의 매력은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사건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의 복음이 나의 기쁨이 되는 신앙의 본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이 강같이 흐르고, 기쁨이 샘솟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의 퓽요로움속에서 고뇌, 대중속에 고독, 인생의 방황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지 않습니다.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책을 읽으며, 무슨 철학가의 생각에 빠져보기도 하고, 군중 속에 묻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큰 소리로 외쳐도 보았지만 남는 것은 짙은 허무뿐, 내 목마름은 더 깊어만 갑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고, 끊임없는 삶의 질문들이 머릿속에 얽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관심병사인줄을 알지 못하고 총과 탄알을 주면서 그 청년이 그 총으로 표적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총으로 쏘아 몇 명을 죽였습니다. 그 청년의 호주머니에서 낙서와 같은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청년은 몇 달 전부터 사는 것이 재미가 없고,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죽을 것을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죽으면 외롭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흥분되게, 멋지게 죽자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였다고 사격시간에 큰 일을 범한 것입니다. 이런 청년이 우리 주변에 한 두 명이겠습니까? 자기 목숨을 끊을 용기가 없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무엇으로 치유하며, 희망을 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신바람나는 인생으로, 행복이 넘치는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복음 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게 하는 샘물을 주시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더 이상 물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생겨납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시원하게 예수 안에서 해결됩니다.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호수는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우간다 등 나라들에 생명의 물줄기입니다. 그런데 강우량 부족으로 물이 줄어 땅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이뤄진 호수는 마를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속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샘은 다함이 없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연간 12억t의 생수가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 생수가 서해를 향해 흘러가는 압록강과 동해로 흘러가는 두만강, 그리고 중국으로 흘러가는 송화강을 이룹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오감(五感)을 통해 얻은 기쁨은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수의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는 끊임없이 능력과 지혜, 기쁨과 평안과 감사를 재생산합니다. 그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십니까?
1.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십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왜 예수님을 믿는지, 그 분을 믿을 때 어떤 복을 얻게 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또한 그 분을 통해서만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가? 의심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는 만났지만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주님이시며, 구원주이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지금 자기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유대인의 랍비 정도로 생각하였을 뿐 온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도 그 분의 본질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기까지는 오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6:17)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 분을 만나고, 그 말씀과 가르침을 경청하며, 그 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목도하였지만 거기서 메시야를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난 것은 메시야가 아니라 놀라운 일을 행하는 나사렛 예수라는 한 유대인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교인들도 실제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이 허다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있고, 신학도 알고, 교리도 알지만 정작 중요한 그리스도는 모른 자들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자들이 인간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모르기에 본질적인 복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비본질적인 것들에 치중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의 여인은 처음에 예수님을 그냥 유대인의 청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외모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비웃듯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내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나는 당신과 전혀 상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내가 누구인줄을 알았더라면 네가 내게 도리어 생수를 구하였으리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 때에 여인은 말하기를 이 우물은 깊이가 25미터나 되는데 두레박도 없는데 어떻게 내게 물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때에 예수님은 매우 신기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3-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의 우물과 내가 주는 물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이 주는 물은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즉 근본적인 목마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한번 마신다고 갈증이 영원히 가시는 것이 아니함으로 반복해서 계속적으로 마셔야 합니다. 육신적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하여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반복해서 물을 마셔도 또 다시 갈증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 권세와 지식은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중요한 육신의 물입니다. 그 물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은 몸부림치며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얻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가 없고,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나면 또 갈증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지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이 인생의 해답인 줄 알고 부지런히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일을 하지만 참된 행복과 만족은 돈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자신의 갈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치지만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뇌만 늘어나고, 머리만 복잡해집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재물을 얻었고, 뛰어난 지식을 얻고 부린 사람을 꼽는다면 솔로몬 왕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의 지혜는 천하가 부러워하였고, 그의 재물과 부는 천하의 열국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참된 만족과 행복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전1:2절에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고백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의 인생 만년에 한 고백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영역,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빈곳을 두셨다고 말한 것을 옳은 말입니다. 그 빈 공간은 오직 예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말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특성이 있습니다. 그 물을 먹는 자마다 그 속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는 자에게는 샘솟는 기쁨과 놀라운 구원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물을 주는 주체는 예수님이시며, 특히 14절에 “먹는다” 라는 “피에” 라는 부정과거형을 사용함으로서 단회적인 사건으로서 단 한번의 성취만으로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이 주는 물은 순간적 만족감을 줌으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마셔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는 물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 단 한번 먹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영적 갈증이 예수님에 의하여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쁜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속죄사역으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꾸어 놓고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물을 주시는 분이십니까? 14절에 보면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생이 계속적으로 샘물처럼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주시는 성령을 마실 때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지며,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영생은 영혼불멸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요17: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영생은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함으로 주어지는 새 생명임과 동시에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영생은 예수님이 주는 물 즉 성령을 받은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원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은 한두번 맛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욱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맛이며,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강물처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신 사람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신비로운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영원토록 영혼의 목마름이 해갈될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출17장에 호렙산의 반석에서 나온 생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것입니다. 그 물이 없었다면 목말라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호렙산의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에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예수님은 친히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생수의 강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분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나를 거듭나게 하시고, 내 속에서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호렙산의 반석과 생수는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듯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의 생수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됩니다. 그 이후로 신령한 반석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다”는(고전10:4) 것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수가 내 속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불같이 임함으로 사랑과 평강과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내속에 넘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들은(살전5:16-18) 첫째, 항상 기뻐하라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넷째,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다(갈5:22-23)는 것입니다. 만약 의와 평강과 희락이 흘러 넘치지 아니한다면 조심스럽게 나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속에 정말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시는가? 진실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의 믿음이 점검해야 합니다. 고후13:5절에 보면 “너희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는 자니라” 지금 내속에서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치지 않는다면 아직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반드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흘러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생하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수를 마셔야 할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심령에서 샘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인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 대신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성한 낙원에 거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갈증에 허덕이는 간교한 들짐승 뱀이 주는 물을 마시고 영원한 갈증에 허덕이는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후부터 세상에는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수 샘물과, 피조물들이 거짓되게 창조주 하나님 행세하며 가르치는 갈증만 불러 일으키는 탐욕의 물이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피조물들이 창조주 행세하며 주는 물들은 대부분 장마 때 땅속에 스미었던 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물, 곧 건수(乾水)에 불과합니다. 이런 건수로써 세상에서 재벌이 되고, 권세자가 된 자들이 자자손손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풍요롭게 살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이 입김으로 한번 불어버리면 얼마 못가서 바닥을 보여 메마르게 됩니다.
이어령 박사는 자신을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늘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면 자신에게는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명예를 얻기 위하여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겼고, 돈을 벌려고 애쓰니까 돈이 생겼습니다. 또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니까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무엇을 해도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혼자’라는 절대 고독에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갈증이 진리에 대한 갈증이요, 창조주에 대한 목마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없이 우물을 파며 광야를 방황한 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으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얻을 것이라고 외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판 샘물은 일시적이고, 그 샘물 근처에 있어야만 마실 수 있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샘물은 언제든지, 그 어디서든지 솟아나는 영원한 생수가 될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8)고 하심과 같이 예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수 샘물은 그를 믿는 자들의 심령에서 솟아납니다. 그 생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솟아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생수를 마실 때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며, 놀라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 생수는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인들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마시고 나면 곧장 목마르는 이 세상 우물물만 구하려고 예수님을 찾을 뿐,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생수는 구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세상 물만 구할 뿐,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생수를 찾지 아니합니다.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 알고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샘솟는 샘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2~3) 우리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만날때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얻게 됩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신앙,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넘치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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