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부에 대한 성경적 이해
(글 : 김창주)
Ⅰ. 들어가는 글
성경을 볼 때 우주관의 차이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나타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신학자들 사이에는 우주관의 차이로 인하여 ‘종말론’이라고 하는 신학적 화두를 놓고서도 견해가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개혁 신학에서는 종말론을 크게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말이라 하면 보통 예수의 재림과 낙원에서 잠자는 성도들의 부활, 아직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는 성도들의 휴거가 이루어지는 때를 말하는데, 이러한 예수의 재림, 성도의 부활과 휴거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교 강단이나 설교자의 강단에서 예수의 재림이나 성도의 부활, 믿지 않는 자의 심판 따위는 강조되지 않으며, 혹 신자들에 대한 경고성 발언 정도에 그칠 뿐이다.
‘종말론’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해석 차이로 인하여 이미 육체를 떠난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예수의 재림 때까지 기다리는 소위 ‘사후 중간단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개혁 신학은 신자는 죽는 즉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불신자는 죽는 즉시 심판받아 지옥에 간다고 교리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1)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성도의 첫째 부활이나 휴거 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 신학은 신자의 사후에 즉시 천국에 이르지 않고 예수의 재림 때까지 낙원에서 기다리며, 불신자는 사후에 음부인 이 세상이나 ‘무저갱’에서 심판을 기다린다고 본다. 그래서 낙원에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의 첫째 부활과 세상에 머물고 있는 성도들의 휴거를 지지하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이 성도의 첫째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중간단계’를 인정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은 여타의 신학보다 ‘낙원’, ‘음부’, ‘무저갱’, ‘타르타로스’ 등의 ‘중간단계’에 대한 분명한 연구가 진행되어, 천국과 낙원이 다른 곳이며, 음부와 지옥이 다른 곳임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한편, ‘중간단계’에 대한 해석은 한국교회와 신학계에서 한창 논쟁 중인 ‘귀신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중간단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귀신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소고에서는 일반 개혁 신학이 갖고 있는 우주관의 한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의도 신학의 우주관을 중심으로 ‘중간단계’에 대한 개념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간단계’에는 신자들이 사후에 거할 ‘낙원’이나 ‘아브라함의 품’도 포함될 것이나, 여기서는 불신자들과 마귀와 그 수하들이 거하는 장소를 순차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우선, Ⅱ장에서는 교회사적으로 ‘중간단계’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통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며, Ⅲ장에서는 하나님의 의도 신학의 우주관을 김기동의 주장을 중심으로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Ⅳ장에서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용어들을 어원적 접근과 함께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을 것이다.
Ⅱ. 교회사적으로 살펴본 음부 개념
1. 구약시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구약시대부터 존재했다. 바로 구약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히브리어 ‘스올’( sheol)이 바로 그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스올은 65번 쓰였는데, 킹제임스역에서는 ‘무덤’, ‘지옥’, ‘구덩이’로, 그리고 미국 표준성경과 개역성경에서는 ‘스올’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이 단어가 다양한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올은 주로 사망과 관련하여 함께 사용되었다(삼하 22:6, 사 28:15; 38:18, 호 13:14, 합 2:5). 다시 말해서 스올은 사망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악한 자들의 거처라고 명명된 곳이 있기는 하지만(욥 21:13; 24:19, 시 9:17; 31:17), 결국 구약 사람들에게는 스올이 죽은 사람의 거처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서 도덕에 관계없이 의인이나 악인이 모두 거하는 곳으로 일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곳에는 형벌이나 상급도 없다.2) 또한 ‘무덤’, ‘구덩이’, ‘땅 아래’ 등의 용어들이 모두 죽으면 육체가 가는 곳을 강조했다고 하여, 구약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거하는 장소보다는 육체가 거하는 장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3) 그러나 보다 일반적인 입장은 스올이 ‘죽은 영혼들의 처소’라는 것이다.4)
구약성경에는 이 스올이 ‘땅 아래’(민 16:30)5), ‘대양 아랫부분’(욥 26:7), 또는 ‘산 기슭 밑’(욘 2:6)에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땅 속, 지하세계’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념이었다.6) 그리고 그곳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두움과 혼돈(욥 10:20, 21)과 음산한 적막(시 94:17; 115:17)으로 특징지워졌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는 스올이 어떤 형벌이나 고통의 장소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래드(G. E. Ladd)가 “스올은 죽음이 인간 존재의 종국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약적 표현 방법이다”라고 말한 것처럼8), 구약 성경은 죽음 이후의 세계로서 스올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그곳은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부활할 때까지 머무는 중간단계였음을 말해 준다.
2. 신구약 중간기
죽은 자의 음산한 거처인 스올에 대한 구약의 묘사는 구약의 두 묵시문학인 이사야 24∼27장과 다니엘 12장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기를 거치면서 스올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부활 전에 거할 중간단계에 대한 개념이 좀더 구체화된다. 스올은 더 이상 죽음을 통과한 자들의 영원한 거처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스올은 중간 장소에 불과하며, 여기에서 어떤 사람은 메시아 왕국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리고 어떤 사람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기 위하여 부활의 장소로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다.9)
요세푸스(Josephus)는 바리새인들이 죽은 후에 상벌이 있음을 믿었다고 진술했으며, 여러 유대 문학서들 중에서도 하데스는 악인들이 고통받는 장소이며, 의인들은 낙원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등장했다.10)
이렇게 스올을 두 구역, 즉 의인과 악인의 구역으로 나누게 되면서 점차 사후 세계의 지형을 좀더 명백하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작업이 뒤따랐는데, 이 과정에서 스올(Sheol) 외에도 낙원(Paradise), 하늘(Heaven), 지옥(Hell), 게헨나(Gehenna)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옥이란 말이 고통의 장소로 처음 묘사된 것은 제1에녹서 22장 9∼13절이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 여러 곳에서 쓰이게 된 것이다.11) 구약의 스올은 신약성경의 지옥과는 다르다.12) 후대 유대사상에서도 스올과 영벌의 장소가 명백히 구분되었다.13)
3. 교부 시대14)
져스틴(Justin Martyr)은 “부활은 없고 죽으면 영혼만 천국으로 간다고 말하는 자는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신자의 부활을 강조했고, “경건한 자는 보다 좋은 곳으로, 악한 자는 그와 반대의 장소에서 심판을 기다린다”고 하여 사후의 중간 단계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터툴리안(Turtullian)은 “모든 사람의 영혼은 부활 때까지 하데스(Hades, 음부)에 가 있으며, 의로운 자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 또는 낙원이라고 불리우는 하데스의 한 부분에 가 있게 된다”고 함으로써 부활 때까지 거할 중간단계로서 음부(Hades)를 제시했다. 오리겐(Origen)도 또한 “경건한 죽은 자들은 낙원으로 간다. 이 낙원은 하데스의 일부는 아니로되 천국과는 또한 구별되는 곳이다” 라고 했다.15)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영혼이 죽어 즉시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영혼은 공동의 장소에서 지고한 심판자가 그들의 선악을 심판할 때까지 머무른다”고 했고, 어거스틴(Augustine)은 “죽음과 최후 부활 사이의 기간 동안 각 영혼은 합당한 휴식 또는 형벌을 당한다”고 하여, 중간단계가 존재함을 시사했다. 이처럼 교부들은 신구약 중간기에 제기되기 시작했던 세분화된 음부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죽은 영혼들이 그 즉시 천국와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 전까지 머무르는 중간단계가 실재함을 말하고 있다.
4. 중세 가톨릭 시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람이 죽을 때 완전히 순결한 영혼들은 곧바로 천국 혹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복락으로 들어가지만(마 25:46, 빌 1:23), 완전히 깨끗함을 받지 못한 자, 즉 여전히 소죄(小罪)를 짓고 있어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늘 나라의 최상의 복락과 즐거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결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나온 교리가 ‘연옥교리’다. 연옥은 정화의 장소이며,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 확실하면서도 아직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복락에 합당하지 못한 신자들의 영혼이 준비하는 곳이다.16) 이 연옥은 지옥의 대기실로 불린다.17)
로마 가톨릭은 베드로전서 3장 19, 20절을 ‘연옥교리’의 성경적인 근거로 삼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나오는 ‘옥’은 노아의 날 예비할 동안에 불순종했던 자들을 가두어놓은 곳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근거로 연옥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일단 육체를 떠난 영혼은 회개도 불가능하며, 또한 죽은 자를 위한 어떠한 중보나 기도도 소용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는 어떠한 수고와 노력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육체가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정하고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5. 종교개혁자들과 개혁 교회
(1)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종교개혁자들은 일제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연옥설’을 반대했다. 연옥설은 전혀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 목회의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성서적 주장이다. 이 연옥 교리에 대하여 제일 먼저 반대한 쯔빙글리는 “성서는 연옥에 대해 이때까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했으며18), 현대 신학자 헨드릭슨(Hendrickson)도 이 연옥 교리에 대하여 비판했다.
루터(M. Ruther)나 칼빈(J. Calvin)은 죽은 후의 영혼들의 운명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연옥과 관련한 사후의 상태나 장소에 대한 주장에 반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죽음을 보편 부활에 긴밀히 연결시킴으로써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을 단축시켰다. 결국 루터는 죽은 자의 영혼이 거쳐야 할 장소나 연옥 지옥에 대한 언급을 모두 부정했다. 더구나 루터는 지옥을 실재하는 심판의 장소로 보지 않고 자기 양심이 고뇌하는 관념적인 장소로 이해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지옥을 설명한다.
지옥의 본질은 물질적인 불이나 육체의 고문 같은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에서 비쳐나는 진노에 대하여 악한 양심이 불타는 데 있다. 이 지옥은 각 사람이 자기 속에 가지고 있다. 지옥은 중세 사람들이 생각하던 땅 아래의 장소가 아니고, 시간 중에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절망하는 고통이다19)
결국 루터에게 있어서 지옥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거기 따르는 인간의 절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죽은 영혼의 축복된 상태, 하나님과의 사귐의 계속을 강조하였다. 영혼이 아브라함의 품에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평화롭게 쉰다는 것이다. 칼빈은 영혼의 중간 상태에 대하여 사변하는 것을 금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연옥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연옥설은 악마의 고안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하게 하며, 우리의 신앙을 해체시키며 뿌리를 뽑아버린다. 그러므로 연옥설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두려운 모독이며 불신앙의 근원이다20)
이와 같이 칼빈은 장소로서 지옥이나, 타인이 받는 시련에 의하여 어떤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주장,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대가 따위를 철저하게 거부하였다.21) 인간의 사후 중간단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비성경적 주장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강한 거부는, 잘못된 교리인 ‘연옥설’을 타파하는 데는 기여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너무 강한 반발로 인하여 사후의 중간단계 자체를 부정하면서 그에 대한 논의까지도 막아버린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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