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오크베(Filioque) 논쟁 그 쟁점과 해결방안의 모색
본고는 지난달 8일 한국개혁신학회 제101차 정기학술발표회에서 이동영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가 발제한 원고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 것이다. <편집자 주>
성령은 일치의 영이시며, 교통의 영이시다. 성령은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가져오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교회의 역사 속에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를 비극적인 분열로 몰고 간 사건이 성령의 “발출”(εκπορευσι?; processio [spiratio])에 대한 양 교회의 견해차로 발생했다는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방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령은 오직 성부로부터만 발출하는가, 아니면 서방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부로부터 발출하며, 동시에 성자로부터도(Filioque) 발출하는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성령의 발출문제를 둘러싼 이 기나긴 논쟁, 즉 교회사학자들이 필리오크베 논쟁(Filioque-Streit)이라고 부르는 이 논쟁은 결국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이라는 불행한 비극을 초래했으며,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교회 일치적 친교를 방해하고 있다. 현대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자 블라디미르 로스키(Vladimir Lossky)에 따르면 필리오크베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분열시킨 결정적 이유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교리이다.
필리오크베 논쟁의 발단은 원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신조(Symbolum Constantinopolitanum, 381)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들로부터도”, 즉 “필리오크베”라는 라틴어 문구를 서방교회가 동방교회와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원문에 삽입(Filioque-Zusatz)한 것으로부터 점화되었다:
“나는(우리는) 믿나이다. [...] 주님 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을,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로부터도] 발출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경배와 동일한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포티우스(Photius von Konstantinopel)는 신경의 원문에 “오직”(μονυ)을 삽입하여, 성령이 “오직 아버지로부터만” 발출한다고 진술함으로써, 서방의 필리오크베 삽입에 대항하여 응전했다. 비록 오늘날 삼위일체신학의 토론에 있어서 필리오크베의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를 위하여 이 문제를 다루어보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실재로 필리오크베의 문제는 삼위일체 안에서 하나의 중대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 문구를 삽입하느냐, 삭제하느냐에 따라서 삼위일체는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필리오크베에 대한 개신교 진영의 이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성령의 발출문제를 둘러싼 이 기나긴 논쟁, 즉 교회사학자들이 필리오크베 논쟁(Filioque-Streit)이라고 부르는 이 논쟁은 결국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이라는 불행한 비극을 초래했으며,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교회 일치적 친교를 방해하고 있다. 현대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자 블라디미르 로스키(Vladimir Lossky)에 따르면 필리오크베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분열시킨 결정적 이유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교리이다.
필리오크베 논쟁의 발단은 원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신조(Symbolum Constantinopolitanum, 381)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들로부터도”, 즉 “필리오크베”라는 라틴어 문구를 서방교회가 동방교회와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원문에 삽입(Filioque-Zusatz)한 것으로부터 점화되었다:
“나는(우리는) 믿나이다. [...] 주님 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을,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로부터도] 발출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경배와 동일한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포티우스(Photius von Konstantinopel)는 신경의 원문에 “오직”(μονυ)을 삽입하여, 성령이 “오직 아버지로부터만” 발출한다고 진술함으로써, 서방의 필리오크베 삽입에 대항하여 응전했다. 비록 오늘날 삼위일체신학의 토론에 있어서 필리오크베의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를 위하여 이 문제를 다루어보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실재로 필리오크베의 문제는 삼위일체 안에서 하나의 중대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 문구를 삽입하느냐, 삭제하느냐에 따라서 삼위일체는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필리오크베에 대한 개신교 진영의 이해
종교개혁의 전통에 속한 교회들도 로마교회로부터 그들의 분립 이후 아우구스틴(Augustin)의 노선을 따라 필리오크베를 계속해서 고수했다. 개혁교회의 교부들이었던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마틴 부처(Martin Bucer), 요한 칼빈(Johannes Calvin)에게 있어서 필리오크베는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토의하거나 씨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안이었다. 당시 개혁파 신학자들은 필리오크베를 거듭 주장했다. 여기에 대항하여 동방 정교회의 신학자들은 포티우스와 그의 사상의 완성적 대변자였던 그레고아 팔라마스(Gregor von Palmas)의 입장을 따라 삼위의 신성의 유일한 근원은 오직 성부이며,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generatio)하시고,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spiratio; processio)하시기에, 서로서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비르템베르크(Wuertemmberg)의 루터파 신학자들은 동방교회에 대항하여 필리오크베를 옹호하기를, 만약 필리오크베가 없다면 1)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본질성(Wesenseinheit)과 2) 아들과 성령 사이의 위격적 결합이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리오크베를 둘러싼 이러한 개혁파와 루터파의 견해는 종교개혁사건이 동 서방을 포괄하는 개혁운동이 아니고, 단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의 분열을 전재한 서방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교개혁시대 이후 전개된 개신교정통주의신학도 필리오크베를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요한네스 콕체이우스(Johannes Coccejus), 다비드 홀라츠(David Hollaz) 그리고 요한 게르하르트(Johann Gerhard)가 바로 그들이다. 개신교정통주의신학은 동방교회의 필리오크베에 대한 반대가 이단적 입장으로서 정죄될 수는 없으나, 서방교회의 필리오크베가 성령의 발출에 대한 더 바람직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서방의 필리오크베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 3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2. “필리오크베”에 대한 서방의 의도
“필리오크베” 공식을 통한 서방교회의 의도는 삼위 내부에 두 개의 신성의 근원내지는 원리를 설정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실재로 이 공식이 사용된 이래로 서방교회의 어떤 신학자도 이 공식과 함께 신성의 이중적 근원을 주장하지 않았다. 서방 또한 성령의 발출은 두 가지 근원 내지는 두 가지 원리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원리(ex uno principio)에 의한 것이며, 그러므로 오직 한 가지 발출만이 존재한다고 명백하게 고백했다. 필리오크베 공식이 의도하고자 했던 원래의 의도는 삼위일체 내부의 세 위격의 구성과 관련하여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성부와 성령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는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보충하여 성자와 성령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필리오크베와 더불어 성부의 단일 군주적 종속론을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콘스탄티노플공의회가 성부와 성자 및 성부와 성령의 관계뿐만 아니라 성자와 성령의 관계도 규정하고, 신경에서 명시적으로 그 관계를 진술하고 고백했더라면, 향후 필리오크베를 둘러싼 동방과 서방의 기나긴 투쟁과 비극적인 분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오직 성부로부터만”에 대한 동방의 의도
동방교회가 오직 성부만이 신성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가르친 것도 종속론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동방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상호간의 동일본질을 가르치고 고백한다. 그리고 동방교회 또한 (구원경륜의 역사 속에서) 성자가 성령을 파송(Sendung)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러기에 성령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발출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은 서방의 필리오크베는 과도하고 유해한 공식이라고 말한다. 비록 서방이 필리오크베 공식과 더불어 신성의 두 가지 원천(원리)를 주장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실상 이 공식은 신성의 두 가지 원천을 상정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의 길을 열어놓으며, 그러기에 삼위내적인 통일성을 훼손한다고 동방은 생각한다. 그리고 필리오크베는 서방이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서방 안에서 성령을 성자 아래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실재로 필리오크베의 고백 이후 서방 안에서는 독자적 성령론이 형성되지 못했고, 성령론은 언제나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례전론, 성경영감론 속에서 부록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4. 교회 일치를 위한 제언
1) 성자를 통한 성령의 발출에 대한 서방의 전통
성령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발출한다는 입장은 서방 안에서도 명백한 전통이 있으니, 그것은 서방신학의 아버지 터툴리안에게서 발견된다.
“나는 성령이 다름 아닌 성자를 통하여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2) 성자를 통한 성령의 발출에 대한 동방의 전통
세 명의 갑파도키아 교부들, 즉 바실리우스, 니싸의 그레고어와 나찌안츠의 그레고어는 성자가 성부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처럼, 성령도 성자에 대해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쳤다.
세 명의 갑파도키아 교부들, 즉 바실리우스, 니싸의 그레고어와 나찌안츠의 그레고어는 성자가 성부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처럼, 성령도 성자에 대해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쳤다.
3)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발출한다.
우리는 서방의 공식 필리오크베, 즉 “아들로부터도”를 “아들을 통하여”라고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필리오크베를 둘러싼 동방과 서방 사이의 뿌리 깊은 논쟁과 대립과 갈등과 불신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 된다. 왜냐하면 “아들을 통하여”는 적어도 아우구스틴 이전까지 성령의 발출하심에 대한 동. 서방의 공동의 이해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한 성령의 발출하심”은 성령을 성자에게 일방적으로 종속시키지 않으면서도, 성령과 성자의 유기적인 관계와 결속을 확립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성령의 독자적 사역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와 관계하여 논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http://ecumenicalpress.co.kr/n_news/news/view.html?no=32032
출처 : 예수 코리아
글쓴이 : 예수코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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