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신론에서 양태론적 설명은 오류일까?
삼위일체 신관은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이후,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인정하는 기본교리로써 확립된 교리가 되었는데, 이는 과거 니케아회의이후 채택된 아타나시우스의 주장대로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확정된 이래, 현재까지 다수 기독교회의 보편적 정통신앙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삼위일체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양태론적 입장을 차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선 목회자들이 성경적 교리에서 정통하지 못하였거나, 일반신자들의 성경적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것이다.
(1)양태론이란 무엇인가?
양태론이란, 단일신론의 한 갈래이며, 한 분 하나님께서 세가지 양태(모습)로서 세상에 자기를 나타내셨으며 사역하신다는 주장이다. 즉 구약에서는 성부로, 신약에서는 성자로, 오순절이후 현재까지는 성령으로 사역하신다는 주장인데, `한 분 하나님에 대하여, 마치 한 나무에 세 가지 형태로 사역하셨다는 비유에서 보이듯이, 하나님은 본체가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2:6-11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셨으니, 분명히 양태론적 설명을 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표현대신에,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시지 않으셨다 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는 말씀에서 보이듯이, 사도바울의 신관은 양태론이라 할 수 없다.
양태론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벨리우스(AD 250 - 260)는 주후 261년경, 감독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는데, 사벨리우스 이외에도 프락세아스, 노예투스라를 비롯해서, 캘빈과 토론을 벌였던 세르베투스도 종교개혁시대에 양태론자로 분류되었고, 스웨덴보그와 지방교회의 워치만 니, 그리고 그의 제자 위트니스 리도 양태론자로 알려졌다.
한국교회에서 자주 접하는 대표적인 양태론자들은 여호와의 증인, 워치만니 계열의 위트니스 리와, 귀신론을 전하는 김기동계열이 양태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신사도운동가들중, 소위 “직통계시파”를 비롯해서, 뉴에이즈 계열의 `신적자아개발설`과 더 나아가서 `신인합일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양태론과 유사양태론에서 파생하는 여러갈래 변형된 신론이 한국교회의 신관을 다양하게 유통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
참고로,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요한복음 10:30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본문에서, “are”가 인격의 복수임을 들어, 사벨리우스의 단일신론에 반론을 제기하였으며, 역시 같은 본문에서 “one”은 하나님 안에서 본성의 일치되심을 증거한다 말하였다. 이는 아리스우스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였던 오류를 반박한 것이다. 더욱이 삼위의 하나님께서 사역하심은 에베소서 2:18에서 명확히, 그 전치사 형태로써 구별되어짐을 증거하였다.
*에베소서 2:18,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성령님에 의해서 아버지께 나아가느니라” )
(2)양태론적 신관의 문제점
양태론적인 신관은 비유로써, “한 사람이 여러가지 사역을 하더라도 여전히 한 인격의 사람이듯이”, 그리고 “물이 얼음도 되고 수증기도 되듯이” 하나님의 변신, 즉 양태적/모양의 다양성에 대하여 당연시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이고, 교회에서는 목사도 되듯이, 양태론적 설명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면 인격적으로는 오직 단일신을 주장하는 설명이 되므로, 위격구별이 불가능해지는 오류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물이 양태에 따라 수증기와 얼음으로 그 모습이 바꾸어지더라도 동일한 물의 본질이나 본성에서 바뀌지 않음과 같다는 주장이다.
사벨리우스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유일성을 구속사 가운데 계시하는 세 얼굴 또는 세가지 역할로 표현했다. 마치 인간이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듯, 신의 본질이 가지는 세가지 면에서 동일하다 말하였다. 또, 태양과 열과 광선은 신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사벨리우스가 주창한 양태론의 핵심은 “성부수난설”이다. 이는 일찌기 터툴리안이 주장한 이론이며, 한 분이신 하나님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여졌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결국 하나님 자신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지도 않으시고 모양도 형체도 없으시다.(딤전6:16, 약1:17)
양태론적 오류를 방지하려면 다음 성경귀절을 상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인격이 동일하여 구별이 없으시다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통곡하시면서 눈물로써 기도드렸다는 성경의 기록은, 결국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된다. 더욱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아버지여 내 영혼(spirit)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하신 말씀은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구별됨을 나타낸다. 또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칭하셨으니,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하라는 말은 모순되다 할 것이다. 특히 겟세마네에서 예수께서 통곡하시면서 드린 눈물의 기도는 단일신을 지지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요한17:1, 히5:7)
둘째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위격이 동일하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 바치셨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터툴리안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주장하므로써,”성부 수난설”을 주창하였는데,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6:16에는 "오직 그(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라고 기록되었으니, `영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부수난설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셋째로, 마태22:43에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시편110:1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되...."라는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는데, 다윗은 하나님과 메시야를 인격적으로 구별했으며, 즉 하나님과 예수님은 시간적으로 공존하셨음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로고스)는 하나님의 본체라고 기록되었다
넷째로, 성자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강림하셨는데,성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뿐만아니라, 변화산에서도 하늘소리가 들려왔으며,(마가9:7) 또 요한복음 12:28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격이 서로 구별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섯째, 사람과 한 분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계시다 하셨으니(딤전2:5),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하신 분임을 나타내셨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거하였으니(행7:56), 하나님의 보좌곁에 서 계신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시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사도는 역시, 하늘보좌곁에 서신 어린 양, 예수님을 증거하시었다.(계5:7,22:16)
여섯째,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셨으니,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동일체가 아니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10:37-38에서,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며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7-38)
일곱째,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 약속하셨으니, “다른 보혜사”란 동일한 자기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는 표현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 말씀하시면서 “그”라는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셨으니(요한14:26), 이로써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단일신이라 말할 수 없다.
(3)정통파의 삼위일체 신론에 비추어 양태론은 어떤 오류가 지적되는가?
성경적 삼위일체신관이란,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시나, 그 위격에서는 셋이라는 주장이다.” 즉 “하나님의 본성은 하나시나 성품과 사역에서 셋으로 그 성품을 나타내셨으나 상호 교류하시고 본성에서 유일신으로 일치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성부시며, 성자시며, 성령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자가 아니시다” 라는 주장이다. 영어로는 “TRINITY GOD”을 말하며, 한자어로 `삼위일체`(三位一體)라 표기함으로써, 몸이 하나이나 위격에서 셋인 삼신(三神)하나님으로 오해를 유발하였다.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는 삼위일체신앙의 근거가 되는 성경귀절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꼐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1서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마태복음4:16-17,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보건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성령님은 비둘기같이 강림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요단강에 계셨으니, 분리된 사역을 나타내셨을 뿐,, 하나님의 동일한 성품이 형태만 달리 나타내셨다 할 수 없다..
또, *창세기 1:1에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되었다. 창세기 1:26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되었으며, 창1:27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라고 기록되었다. 영문으로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표현은 영적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며, 실재하시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으시며,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1:17) 그러므로,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예수로 짐짓 자기를 나타내셨다가,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셨다가, 이제는 성령으로 사람속에 들어와 내주하시는 하나님”으로 가르치므로써,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안에 들어오신 것이라 주장한다면 결국 양태론적 설명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 말씀하셨다. 그 다른 보혜사 역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것이라는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에 계시고, 성령님은 내 마음에 은혜로써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 전능자가 사람안에 들어와서, 사람을 신의 성품으로 변화시킨다는 믿음은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으로서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다.
*로마서 8:26에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주께 기도하신다 기록되었으니, 이땅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은 하늘에 여전히 계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는 어린양이 하나님의 보좌앞에 서계시는 모습이 소개되었다.하나님은 은혜로써 성령을 자녀의 마음속에 한량없이 부어주시는데, 그 은혜에는 부족함이 없으시고 다함도 없으시다. 마치 하늘 저수지에 가득한 생명수는 이 땅에 폭우를 내리고도 전혀 하늘 저수지에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화란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저의 비유처럼, 너무나도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역을 찬양드린다.
최근, 뉴에이지는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으니 내가 하나님이 된다”는 소위 `각성주의`를 가르치고 있으므로 문제성이 제기되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근거에서 사람안에 신성이 내재하였음을 스스로 믿으라고 한다. 그러한 각성주의는 자기개발의 명분과 동기를 촉발시킬 수는 있으나, 지나쳐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으니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며, 소위 “대언기도”를 하므로써 신을 가장하였으니, 이는 명백한 종교사기이며 신종이단이 아닌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서는 그러한 영매들을 ‘돌로 쳐 죽여 이스라엘에서 끊쳐내라” 명하실 정도로 엄히 경계하셨다.
또 히브리서 1:1-3에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로 말씀하셨다” 기록되었으니, 교회안에 신종이단들의 발호를 막고 영적혼란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교회마다 성경적 신관정립이 긴요하다 할 것이나, 그럼에도 광대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다양함과 신비로움을 깨달을수록 두려움이 더하는 것은 우리는 계시된 부분만 알게되는 연고이다.
성경에서 사람을 신격화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성경적 귀절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0:35에서, 구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시편82:6 율법으로 인정하심)
*베드로후서1:4,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4) 양태론적 기독론의 오류 증거사례들
*위트리스 리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이다. 사탄의 거짓말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에 간다'는 말로서, 이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이다. …” (위트니스 리,왕국론 p.315)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지만 여러분이 생각한 대로는 아닐 것이다. 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부터 오실 것이다. 여러분은 그분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분이 여러분으로부터 오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위트니스리, 왕국론 p.329)
베레아파 김기동, 성령을 알자, p.76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은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과거 선지자들도 성령을 힘입었고 요한도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으나 그들은 성령의 권위로 외투를 입고 있듯 힘입었던 것이지 내주하여 임하신 것은 아닙니다.”
베레아파 김기동, 성령을 알자,p.74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이시며, 이 분이 나타났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 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나 영들이 많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는 성령이십니다.”
*구원파 권신찬계열” - 천국은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와 천국과 하늘 나라가 다르다. 하나님 나라(교회), 낙원, 천국(지상천국, 천년왕국)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님 나라는 거듭난 자들 즉 영생을 얻은 자들이 성령과 함께 하는 교회이다. (“천년왕국과 천국과 교회”, #143홈페이지 질의와 응답),
*인터콥 최바울의 양태론적 설교: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세계영적도해,p.35) 하나님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셨고, 사단도 육체(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 존재, 즉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단이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가히 ‘신들의 전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왕의 나라, 21쪽)
네비게이토 성경공부교재의 양태론적 설명 (그리스도인의 생활연구 제5권 2과)-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삼위의 세 인격은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아들되시는 하나님과 성령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사람이 아버지이면서 아들이기도 하고 또한 남편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의 각각의 책임과 의무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그 각각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같은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즉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성령으로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첨부-:사람은 시간과 공간에서 한가지 사역밖에 못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시며 동시 다양한 사역이 가능하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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