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설교사 -
저자 : 정성구 교수
"설교 없이 구원 없다"
개혁주의 교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강단에서 외쳐지는 설교는 인류의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그 열매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설교는 사건을 낳고, 사건은 설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설교가 인간의 삶의 여러 방면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습관과 도덕에 대해, 예술과 학문에서,
철학과 자연과학, 언어, 문학, 교육 등 인간의 삶 전 영역에 관계되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이다.
한국교회 설교사의 첫 연구부분은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설교를 살펴보아야 한다.
설교에 훈련이 안된 20대 젊은 선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들어 왔다.
신학적 정립의 미흡함뿐만 아니라실제 경험도 부족하였다.
제목 설교의 유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원론적인 요소와 율법주의적 요소도 많았다.
권선징악적 설교내용과 알레고리칼한 설교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단순하고 순수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해주었고, 그 정열은 뜨거웠다.
선교사들의 기본사상은 미국을 건설했던 그들의 조상인 청교도적인 색채가 강했다.
제목설교와 예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로 설교에 있어서 성경신학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고, 조직신학적 접근이 있었다.
또한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나 청교도적 열심속에서 신학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포삼열 박사는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고, 그가 세운 학교가 800 여개나 되고,
그의 제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였다.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는 민족의 구원과 자각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민족의 가장 선두에 서서 대중들을 이끌어가는 선각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유교사상에 찌든 민족을 기독교적으로 설교하였고, 일제시대에 식민지 정책에 항거 또는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민족의 개화사상을 강조하는 설교가 많았다.
또한 순수한 복음전파 설교라는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목사나 기독교 교사는 언제나 시대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시대를 향한 소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사들과 한국인 신도들이 함께 모여 드려진 사경회를 통하여
대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이 사건을 통해 당시의 종교와 정치의 혼합적 요소가 많았던 것들을 정리하고,
신앙의 내적 성숙을 꾀하는 기회로 삼았다.
1919년 삼일운동과 신사참배 문제들을 겪으면서 그 상황에 적합한 설교가 나와서 한국교회 강단을 세워 나갔다.
한국교회 설교사의 거목으로 길선주 목사가 있다.
길선주 목사(1869-1935)는 한국교회 오순절이라 할 수 있는 1907년 대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다.
그의 훌륭한 설교는 매일 한 시간 이상의 기도와 매주 사흘씩 금식기도와 매년 일주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준비했고,
성경연구와 집필을 위해 1일 3시간, 독서로 하루 2시간을 사용했다.
그는 설교의 목적을 죄의 더러움과 마귀의 권세 가운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로 인도함이라 정의했다.
설교의 실제를 논하면서 본문선택, 설교의 본론, 결론 등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설교를 관통하는 사상은 말세론이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받아들였다.
그의 성경 무오설과 말세론은 한국 보수주의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김익두 목사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 부활, 천국등이었고 회개의 설교를 외쳤다.
메시지는 내세 지향적이었고 따라서 이원론적인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이성봉 목사는 성결교 출신으로서 다분히 알미니안적 색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의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율법주의적인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유명한 설교가이며 부흥사였지만 한국교회에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는데, 죄를 지적할 때 듣기 민망할 정도로 욕설을 사용했다.
부흥사들의 욕설은 이천석 목사를 비롯하여 최근에까지 남아 있어서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1920년대를 열광케 했던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적 부흥회 역시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에게 경고의 발언을 하고 있다.
3.1 운동 이후 한국 기독교회는 투쟁적 모습에서 사회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교회로 변해가고 있었다.
초기의 개인구원 또는 영혼구원의 신앙에서 사회참여 또는 사회구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도 목사는 폐병 3기의 절망적인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한 후 성공한 부흥사로 인정 받았다.
그의 설교를 보면 전혀 형식이나 어떤 틀을 고집하지 않았고, 세밀한 준비는 거의 없었다.
설교중에 나타난 신앙은 현실교회에 대한 비판과 당시 교회가 살과 피가 없는 형식적인 종교로 정죄했고, 은연중에 자기를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처럼 암시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융합해서 그의 아픔이 바로 나의 아픔이 되어서 환희의 감격의 체험을 갖는 것이다.
신비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서 합일이 되고 그 속에 들어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예수에게 미쳐서 예수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신비주의는 슐라이엘마허에서 보는 것 같은 감정주의 또는 체험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십자가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으로 시종했고,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주님되심과 계시가 고백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기독론이 없었고 한국교회가 받을 수 있는 성경적인 기독교, 성경적인 설교가 아니었다.
이용도는 속죄론적인 요소의 결핍과 부활이 없었고 프로테스탄트의 기본교리인 오직 성경으로가 결여된 그리스도의 고난과
아픔에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가지고 함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 교회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고 따라서 교역자의 메시지가 부족하였으며 뜨거운 열정도 사라져 갔었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비전이 없는 시대였다.
교회는 한국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며, 공산주의라는 세력에 의해 큰 도전을 받게 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과 보수주의 박형룡 박사와의 논쟁이 계속되었다.
1930년 설교의 특색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말기에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설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0년대 한국의 스펄젼이라는 김화식 목사의 설교는 오늘날 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그의 설교 특징은 성경적이며, 논리적이며, 조직적이며, 시적이면서 전원적이었다.
그가 설교를 잘 할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사랑했고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는 성경을 읽기 위해 다시 자그마한 농촌교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에서 그의 설교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설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사이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창조론에 비중을 두었으면 진정한 용기는 신앙에서 나오고, 그러한 신앙만이 죄와 세상과 마귀를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말한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소망이며, 구체적인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주의 보혈 아래서만
모든 죄가 용서받고, 회개하는 심령을 하나님은 사랑한다는 것이 설교의 주요 사상이다.
주기철 목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설교준비에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설교는 하나님중심 사상이었고 오직 은혜로만 인간은 의로워질수 있다고 고백했는데 개혁주의적인 신학과 '
신앙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그의 설교 속에는 진리를 향한 순교의 열정이 나타난다.
뱍형룡 목사는 설교학적인 의미에서 신학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교리적 설교뿐만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교리적 또는 포괄적으로 설교하였다.
그의 제목설교 영향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 강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설교의 특징은 시적이며 문학성이 풍부하였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을 강조했다.
믿음을 지킨다는 의미는 참된 신학과 신앙을 보수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가진 신학과 신앙은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고등비평, 신신학, 신비열광주의 운동에 비판을 가하며, 이단과 비진리를 막아야 한다는 설교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역경의 시기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피난처 되심을 전했다.
가장 비참하고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교였다.
한상동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선지자적 용기와 기상을 가졌고,
논리적이거나 해석학적인 방법이 아닌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설교는 기도를 통하여 나왔고 그의 생활 전부는 기도로 일관하고 있다.
설교의 중심내용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말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고난과 고독을 강조한다.
일제 36년의 탄압 기간을 통해 한국교회 강단의 무력화가 나타났고 강단은 생명력을 잃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보다는 시국강연식의 웅변술이 발달했고, 정치사상 강연회로 전락해갔다.
세속적인 우스개 소리로서 설교의 의의를 침몰시켜 버렸다.
해방 후 이러한 비판들이 나타났다.
설교가 얼마나 허망하고 무질서했는가에 대한 자각과 교회의 부흥은 강단의 설교가 얼마나 설교답게 되는가에
달려있다고 주장했고,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선포만이 교회를 참 교회되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의 촉구가 있었으며, 6.25 사변 이후 김응조 목사는 다시 한 번 부흥으로 한국교회를 살리고자
하였다. 불안한 사회와 민족의 종교적 욕구와의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부흥사와 그들이 이끄는 부흥회 운동으로
끊임없는 부흥회가 성행했고, 민중의 종교적 요청에 응답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신학적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교회성장을 초래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와 6.25 이후 이 시대의 교회정황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차 있었다.
먼저는 출옥 성도들이 제기한 교회의 순결문제인데, 신사참배했던 목사들과 출옥 성도간의 갈등은 심각하였다.
또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신학적 논쟁과 신학교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또 무능한 교회와 불안한 민중의 종교적 욕구 사이에서 부흥회 운동과 문선명, 박태선과 같은 이단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이같은 요인들은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국교회 강단은 어떻게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를 고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기복적, 비성경적, 비복음적
방법이 동원되어 교회성장에만 모든 초점이 모아졌고, 목적이 수단이나 방법을 정당시하게 되었다.
느낀 점
한국교회 설교사를 통해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1. 설교의 대가들은 한편의 설교를 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연구하고 또 기도하는데 드렸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쉽게, 어려움 없이 하려 했던 안일한 생각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한편의 설교를 위해 60 시간을 드렸고, 주기철 목사님 역시 그러했습니다.
칼빈주의 설교학자였던 안드레아스 겔하르트가 말한 설교준비 단계로서 첫째 성경본문을 읽고 깊이 연구할 것,
둘째 설교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로 준비할 것, 셋째 확신있게 강론하는 것을 철저하게 준수할 필요가 있음을
공감했습니다.
2. 설교의 내용이 올바른 성경관과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비주의적 설교는 결코 온전히 뿌리 내릴 수 없고 복음의 변질됨을 볼 수 있었고, 신신학으로는 생명력이 결여되어
온전한 설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올바른 신학의 뒷받침이 없이는 교회성장과 지속성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틸리케의 말처럼 현대신학의 문제점은 신학과 설교의 분리 즉 이원성으로는 생명이 없기 반드시 신학과 설교의 일치가
요구됨도 보았습니다.
3. 설교자의 삶이 투명(거룩)하지 않으면 설교가 아무리 오래 준비되었고 복음적이라 할지라도 청중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함으로 완전하라, 정직함으로 완전하라, 태연함으로 완전하라'는 외침과
손양원 목사의 아들을 순교시킨 사형수를 데려다 자신의 아들로 삼은 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일치되는 삶으로서
신앙과 설교의 일치되는 삶을 통해 동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의 전통을 따라가며, 개혁주의 중심적인 그리스도 구속의 설교를 통해 진리가 왜곡되고 변질된 한국교회를
다시 한 번 회생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거의 20년 전에 읽고 정리한 것이지만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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