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스룹바벨은 누구인가?

하나님아들 2017. 12. 28. 21:22

 스룹바벨은 누구인가? 

 

 

 

 


 

 

스룹바벨은 다윗의 혈통을 지닌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는 유대백성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 기적처럼 내려진 포로해방 칙령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백성을 1차 귀환 시킨 지도자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은 BC539년 10월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이듬해인 BC 537년에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케 하였는데, 그때에 스룹바벨은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약4,5만 명을 인도했던 지도자이다. 스룹바벨 아버지는 브다야이며 브다야의 아버지는 다윗가문의 마지막 유대왕인 여고니야이며 포로 이후 시드기야가 마지막 왕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요시야 왕의 셋째아들이고 여호야김의 형제로 여고니야 삼촌이기도 하다.

즉 시드기야가 유대의 마지막 왕이지만 선대임으로 여고니야를 다윗 가문의 마지막 왕이라 칭하고 이 여고니야 손자가 바로 스룹바벨이며 바벨론 이름으로는 세스바살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 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라고 밝히고 있다. 스룹바벨은 페르시야 제국 고레스의 명령을 따라 유대지역의 난민들을 통솔하여 성전재건의 지대를 놓았지만 사마리아 총독의 방해로 중지되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위의 내용으로 볼 때 스룹바벨이나 사마리아 총독은 성전 재건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는 말단 총독임이 분명하며 유대 총독이던 사마리아 총독이던 페르시아 제왕의 권세 아래 복종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스룹바벨 총독이 유대 왕이 아니라 페르시아 총독이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바사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면서 성전 재건을 돕기 위해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때 탈취해 온 성전 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주어 BC 538년에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게 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세스바살은 누구인가? 그는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인가?그렇지 않으면 별개의 인물인가? 세스바살은 성전 기명을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을 뿐 아니라 성전의 기초를 놓아야 하는 책임도 있었다(스 5:14-17). 그는 바벨론 포로 후에 첫 유대의 총독이었으며 왕과 스스로 결정권이 없는 시대에 새로운 지도력의 형식을 안내하였다.그러나 그밖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그의 이름, 신분, 역할 활동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에스라 1장에 그를 칠십인 역에서 세스바살로 나오는 사나바살(Sanabassar)로 보며 조세프스는 세스바살을 에스라 5:6에 나오는 스달보스네로 보았다.따라서 그를 외국인으로 페르시아 관리로 생각하였다.

근래 학자들은 가끔 세스바살을 한 편으로는 역대상 3:18의 세낫살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 스룹바벨과 동일시한다.그것은 세낫살은 여고니야의 아들로 이름과 세스바살의 직위의 유사성에 근거한 이론이다.유다의 왕자나 총독이라는 직위는 다윗의 상속자처럼 아주 중요한 인물을 가리킨다.그런데 세낫살은 다윗의 후손이다.또 다른 견해는 세스바살을 스룹바벨과 동일시하는 이론인데 이 이론은 성전의 기초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것으로 학개와 스가랴는 스룹바벨이 총독이요 주전 520년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고 강조해서 단언한다.

따라서 세스바살이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면 같은 사람을 가리켰을 것이다.이렇게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이 같은 인물에 대한 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포로 후기에 가끔 한 사람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게다가 스룹바벨도 고레스에 의한 성전 기명을 가져온 사람이요 학개, 스가냐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에 따르면 역시 유다의 왕자로 기초를 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다윗의 후손으로 그는 그런 역할에 적임자였다. 다니엘의 궁정 이름은 벨드사살 이었다.(단 1:7) 따라서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궁궐 이름이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그 이름을 정말 세스바살의 궁정 이름으로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른 이론은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양아버지 스알디엘의 궁정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스알디엘/세스바살이 바벨론 총독에 의해 이 직위에 임명되었으며 이 직위는 스알디엘/세스바살이 죽은 후에 스룹바벨에게 전가되었다고 한다.에스라 5:16은 하나님의 전의 기초를 놓은 자는 세스바살 이었다고 언급한다.에스라 3장은 이 기초를 놓는데 참여한 세스바살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스알디엘/세스바살 그리고 스룹바벨이 아버지/아들 팀으로 함께 이 공사에 참여했으며 세스바살은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 이 설의 약점은 예루살렘의 동사 총독으로 두 사람이 활동했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또 세스바살이란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에스라 2장의 긴 명단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할 수 있다.만일 세스바살이 스알디엘과 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기초를 놓은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 만일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한 사람이었다면 그 궁정 이름은 단순히 떨어지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 스룹바벨이 보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인 에스라서 6:18에서는 성전 기명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두 사람에게 맡겨졌다고 하였다.만일 이 설을 지지한다면; 세스바살은 그의 조카 스룹바벨보다 앞섰을 것이다.세스바살은 고레스에 의해 임명되었다(스 1:8; 15:14)그러나 주전 537년 돌아온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아마도 세스바살의 조카 스룹바벨이(대상 3:17-19)그의 삼촌에 의해 빈 그 자리에 등용되었을 것이며 총독이라는 직위를 받았을 것이다(학 1:1, 14; 2:2,21)이 견해는 두 사람이 주전 536년 성전 기초를 놓는데 협력한 사실로 지원 받는다(스 5:16; 슥 4:9)다만 스룹바벨이 20년 후에 그 공사를 완성하였다(학1:1, 12; 슥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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