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초기 기독교의 주일 예배 제도의 진행

하나님아들 2012. 9. 6. 23:35

안식 후 첫날 이야기

사도들의 생존 당시

(고전1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행20:6-7)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계1:9-1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롬14:5-6)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사도 후 시대부터 니케아 종교회의까지


1.사도 요한의 제자요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2세기 초의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편지들 중에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 편지에 기록된 구절에는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았고 주일을 준수하는 새 희망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 주일에 우리들의 생명도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용솟음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2.제 2세기 초엽의 기록된 기독교 예배의 지침서인 디다케에 기록되었으되 "그러나 매주 주일마다 모여서 떡을 떼고 너희의 제사가 순결하게 되도록 너희의 범죄를  고백한 후에 감사를 드리도록 하라"라고 기록 되어 있다.


3.제 2세기 초엽의 위경적인 기록으로 분류된 프슈도 바나바의 서신에는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신 날인 제 8일을 기쁨으로 지킨다."


4. 주후 112년 경 본도와 비두니아 지방의 총독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하기를, " 그들은 지정된 날에 동이 트기 전에 만나서 교송으로 신과 그리스도께 맹서함으로써 결속하는 관습을 행하였습니다. 이 맹세는 어떠한 범죄를 위한 맹세가 아니라 강도질, 간음, 신앙의 위반을 금하고 기탁물이 요구될 때 그것을 거절하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라고 보고서를 내었다.


5.순교자 유스티누스는 3세기 중엽에 {일요일이라는 날}에 모이는 기독교 집회의 예배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 그 순서는 성경봉독, 설교, 기도, 주의 만찬 의식과 봉헌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다시 기독교인들이 주일에 모이게 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시작한 날이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구약의 할례를 받는 날이 제 8일이었다고 강조하고 참된 할례를 받는 날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육적 몸 전체를 벗어버리는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6.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는 주후 170년에 남긴 기록에서 "오늘 우리는 주의 거룩한 날을 지켰습니다. 이날에 우리는 당신의 서신을 읽었습니다. "


7.리용의 감독 이레니우스는 주후 178년에 로마의 주교에게 부활절이 일요일에 축하되어야 하는지의 여부에 관한 논쟁적인 문제에 관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주님의 부활의 신비는 주일 이외의 어떤 다른 날에도 축하되어서는 안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8.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세기 말, 3세기 초엽에 일요일의 준수를 지지하는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의 주일이 유대교의 안식일과 모종의 유비가 있다고 주장한다.

9.터툴리안은 3세기 초엽의 위대한 변증가로서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되, 우리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이나 기타 유대교의 축일들과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축일과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터툴리안은 기독교인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 뿐만 아니라 일체의 근심이나 걱정을 하지 말도록 경계해햐하며 심지어 우리가 악마에게 어떠한 자리도 내어주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사업까지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툴리안은 주일에 노동을 중지하라고 주장한 최초의 기독교 저자였다.


10.오리게네스(알렉산리아 학파의 클레멘스의 제자)는 제 3세기 전반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만약 우리가 특정한 날들 즉 주일과 같은 날들을 준수한다는 문제 때문에 반대를 받는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날이 다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1.제 3세기 후반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사도 교훈집 (Didascalia Apostolorum)에서는 주일이 사도들에 의하여 기독교의 예배일로 지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도들은 다음을 지정했다고 선언했다. " 매주 첫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며, 성경을 읽고 저녁 소제 봉헌을 올려야 한다. 왜냐하면 한 주의 첫날에 우리의 주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 나셨고 한 주의 첫날에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한 주의 첫날에 그는 마침내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쫓아 강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2.카르타고의 주교인 키프리아누스는 주후 253년에 카르타고 제 3 차 교회회의에서 나온 교회 서한에서 난지 8일만에 행하는 유대교의 할례관습을 기독교의 주일 준수를 예시해 주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제 8일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던 날이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할례를 주신 날이다. .... 제 8 일 즉 주일은 전에부터 이미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3.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페트로스는 4세기 초에 기록하기를, "우리들은 주일을 기쁨의 날로 지킨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날에 살아나셨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4.안식교인들이 종종 기독교의 주일을 부정하게 여겨서 말하기를 이는 콘스탄틴 황제가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공포하여 이를 지키는 기독교의 예배일은 잘 못된 날이라고 주장한다.


코슨탄틴이란 사람이 주님의 날의 의미를 잘 알고 그날에 휴업하게 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본래 일요일이란 말은 그 근원이 바벨론에서 비롯되어 해와 달과 5 개의 별의 이름을 따서 요일을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성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콘스탄틴이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그 문구를 볼 때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주후 321년 3월 3일에 그가 공포한 말에,"가장 존엄한 태양의 날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의 휴업령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313년 밀라노 칙령이 있은 후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본격적으로 논의 되면서 교회가 분열될 조짐이 보이자 325년 그 유명한 니케아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마도 제국의 분열을 더 우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요일은 당시 동방밀교의 태양신의 축제일이면서 또한 상당히 약진하고 있는 기독교도들이 예배하는 날이기도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나라가 하나의 질서에 의하여 통제 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로마에는 일찍부터 동방 밀교가 독버섯 처럼 번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주기(週期)와 기독교의 주기가 꼭 같이 7일이었고 공교롭게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동방 밀교의 태양신을 기념하는 날이 일치가 되었던 것뿐이다. 이러한 요일의 형식이 로마까지 언제부터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온 세계가 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식교도인들이 밝히 알아 둘 것은 콘스탄틴의 휴업령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태양신을 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태양신을 섬기든 사람들의 의식에서 마침내 태양신은 완전히 퇴색하였고 오히려 그들이 심취했던 태양신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오히려 주님의 날로 변화되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 중에 아무도 일요일에 태양신을 섬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온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을 주님의 날 곧 主日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인들은 콘스탄틴 이전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황제가 태양신을 섬기는 날에 휴업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결국은 기독교가 제 7일 안식일을 잊어버리고 제 8일 혹은 주중 첫날을 지키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안식교도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은 이들이 전혀 신학적인 유산을 갖지 못하고 집에서 혼자 교리를 만들어 내었다가 오류를 범하고 수정을 거듭하면서 끝내 정상적인 신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지켜진 역사적 사료를 전혀 접해보지 못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 본대로 사도들의 시대부터 이미 유대교의 율법이나 할라카에서 자유하게 되었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미 할례까지 폐한 것과 안식일 같은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으며 요긴한 몇가지를 지키면서 스스로 삼가면 잘 될 것이라는 성령과 사도들의 결정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것이 안식교도들이다.

안식일 규례는 영원한 규례인가

(출31: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안식교도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언약이 대대로 영원한 언약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을 잘 모르는 성도들은 이러한 구절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안식교인들이 불쑥 이 구절을 찾아서 제시하면 크게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대대로 영원하게 지키라로 말씀하신 말씀들 중에서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과 상관이 없는 구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있다.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에게는 대대로 영원히 주어진 규례라하여 제사장 직분과 거기 따르는 응식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에게 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또 그러한 제사장 직분은 오늘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외에도 대대로 영원한 규례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 폐하진 규례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월삭이나 무교절, 초막절 등의 절기도 다 대대로 영원한 규례로 명하셨으나 그것은 그 법의 시효가 만료 되기까지 계속되어야 할 규례라는 뜻이지 참으로 다함이 없이 문자적으로 영원한 규례는 아니었던 것이다. 대대로 영원히 지키라는 말씀은 일회적인 규레가 아니고 자손들 대대로, 혹은 한 두해만 아니고 오랫동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율법과 규례의 시효가 만료되고 나면 그 후시대에 사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방인들 중에서 주님께로 돌아 온 사람들에게는 율법의 멍에를 두어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이었다.(행15:19-2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자유가 주어졌는지를 모르는 안식일 교인들은 다시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아야 할 일이다. 교리를 만들어 가르치는 사람들이 읽으라는 곳만 읽을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자세하게 읽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옳게 들리는 진리의 소리에 귀를 막지 말고 진지하게 성경을 읽게 되면 어렵지 않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안식교가 안식일을 주장하게 된 것은 주님 재림에 대한 예언이 빗나가게 되자 자신들의 조직관리를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고안해 낸 하늘 지성소 조사 심판설과 안식일 교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함께 상당한 억지가 그들의 교리 속에 혼합되어 있지만 그 조직 속에서 굳어진 사람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사와 교리사와 신조사 그리고 지금까지 내려온 조직신학적인 소양도 전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논리와 부분적으로 잘라 낸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조직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아무런 준비가 없던 기성교회 성도들은 이들의 이론에 한 번 흔들리게 되면 신앙적인 자긍심을 상실하고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된다.


한편 우리가 안식교인들에게 배워야 할 부분도 있다. 그들의 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지조라든지 절제 운동과 식품 규례의 상당한 부분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인 면에서 은둔과 도피의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개인들이 도덕적으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세는 역시 기성 교회 성도들이 본 받아야 할 점이다.

 

출처: 에스라하우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호두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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