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 신앙고백(The Canons of Dort A.D. 1619)
타락 후 전택설 |
타락 후 선택설 |
1. 창조 전에 창조될(타락될) 온 인류 중 몇몇 사람을 구원하고, 그 나머지 사람을 영원히 심판하심으로써 드러내실 것을 예정.
2. 온 인류(택자와 유기자)를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에 타당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작정, 곧 타락 안에 있게 하려는 작정.
3. 택자들을 위해 중보자를 제공, 그에게 신앙과 견인의 은사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유기된 자들에게는 죄가운데 버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려는 작정 |
1. 창조 전에 사람을 창조하고 타락의 허용하시려는 작정(허용적 작정).
2. 어떤 이들은 이 부패한 무리로부터 영생에로 선택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있는 그 상태대로 내어 버려 두시는 예정. 따라서 선택과 유기 모두가 타락한 인간성을 전제로 한다.
3. 택자들을 위해 중보자를 제공, 그에게 신앙과 견인의 은사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유기된 자들에게는 죄 가운데 버려두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보이시려는 작정 |
- 이들 양 주장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타락후 선택설'의 강점은 이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게 되었지만, 그 중에, 선택이라는 '은혜'와 나머지는 아담 안에서 그 죄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른다는 '공의'가 타락전 선택설보다 더 강하게 논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칼빈주의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무 계획 없이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리고는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신 다음에야 선택과 유기를 하셨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지와 죄에 대한 허용의 작정은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예정의 대상에 대하여 타락의 작정에 선행하는 더 깊은 신적 작정이 있는 것이다. 이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는 것은 타락전 예정론이다.
- 타락전 예정론의 강점은 타락후 예정론의 "은혜와 공의"에 비하여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있다. 전자와 후자가 모두, 모든 유기자는 자기 자신의 죄가 그의 저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하나(인간론), '타락전 선택설'론자는 유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타락에 선행하는 '은밀한 신적 작정'(신론)에 있다고 하는 점에 강하게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신학자들이(쯔빙글리, 칼빈, 베자, 피스카토르, 퍼킨스, 호민스(Hommins), 보게르만(Bogerman) 등 때때로 강력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최종 목적은 '타락후 선택론의 은혜와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택자에 대한 은혜와 죄인에 대한 공의'는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 후의 대부분의 교회가 신조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은혜'와 '공의'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타락후 선택설'이 선호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이 희미하게 그 선을 따라가고 있다.
- ③ 조직신학에 있어서의 예정론의 위치
- 종교개혁은 바울과 어거스틴에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고백에서 로마카톨릭의 펠라기우스주의에 대립하는 입장을 제시할 능력을 얻었다. 처음에 루터는 쯔빙글리나 칼빈과 같이 예정론을 옹호했다. 비록 재세례파에 반하여 후에는 말씀과 성례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크게 강조했지만, 그는 결코 예정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 처음에는 멜랑히톤도 철저히 루터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1527년 이후로 그는 점차 예정론에서 떠나, 결국에는 공개적으로 '신인협동설'(synergism)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루터 역시 점점 더 사변적 예정론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 숨기우신 하나님보다는 은혜를 부여하는 말씀과 성례의 시행에 집중하였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바리심(이를 그의 표현된 뜻이라고 했다)을 전면에 내세웠다.
- 그래서 예정론에 대한 멜랑히톤의 견해가 점차 변해 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으며,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교리를 변증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였다. 예정은 독자적, 신학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그저 이차적인 중요성만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리에 대한 종합적 접근방법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명하고, 하나님에 관한 교리로부터 보다는 사람의 잃어진 상태로부터 예정을 이끌어내는 분석적 접근을 애호하였다.
- 이렇듯 점차적으로 루터의 초기 입장과 전체 종교개혁의 입장을 희생시켜 나간데 비해서, 개혁파의 입장은 종교개혁의 원리에 충실한 것이었다. 쯔빙글리는 그의 논의를 단순히 인간학적 근거에만이 아니라, 특히 신론적 근거에 두면서, 즉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그 논의를 이끌어내면서 예정론과 관련하여 논의하였다. 이점에서 그들은 로마서 9-11장에서 죄론과 은총론에서 시작하여 선택론에로 나아가고, 에베소서1:3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을 그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도 바울의 예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후에 바울이 선택을 언급하면서 선험적으로 구원의 모든 축복을 선택으로부터 이끌어내었던 것과 같이(롬9:29이하, 엡1:4이하), 개혁신학자들 중에서도 종합적 접근방법이 점차 분석적 접근방법을 대신하게 되었다.
- 곧 신앙의 생활은 참으로 선택론을 고백케 하는 조건이 되나, 선택의 사실은 모든 영적 은사의 원천이요, 모든 축복의 원천과 첫 원인인 것이다. 이것은 칼빈만이 아니라 , 멜랑히톤, 해밍(Hamming), 부쳐, 올레비아누스 등의 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정이 신론의 한 부분인가(선험적 순서), 아니면 구원론의 시작과 중간에서 다루어져야 하는가(후험적 순서) 하는 것이 꼭 원칙상 본질적 차이를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개혁신학자들은 선험적 순서를 따랐고, 루터파와 알미니안, 그리고 로마카톨릭과 대부분의 근대 교희학자들은, 점차 후험적 순서를 취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 차이는 개혁파가 사변적인 방식으로 예정을 선험적이고, 철학적이며, 결정론적 신개념에서 이끌어내고, 다른 이들은 성경에 제시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에 충실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열렬한 칼빈주의자도 신론과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칠 때마다 성경의 교리 외에는 아무 것도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차이의 참된 원인은 칼빈주의에게 있어서는 예정론이 단지 인간론적이고 구원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특히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개혁파에게 있어서는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예정의 주된 목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따라서 조직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주관적 의식보다는 성경의 계시에 더욱 충실하여 우선 순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주관적인 의식을 우선한다면, 신론이든, 삼위일체든, 인간론이든 모든 교의가 구원론 이후에 자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교의학을 다룰 때에, 진리를 신자들의 의식에 주관적으로 들어온 것인양 다루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계시한 것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바빙크는 이러한 방법만이 종교적 관심으로서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타당한 것이라고 하였다.
- 4) 도르트신조 이후 '예정론'의 흐름.
- 1618년 이후 화란 개혁교회는 개신교 국가임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화란 당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과 특혜를 누리게 되었다. 교회회의 조차도 개최와 진행에 따른 제반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였다. 또한 국가의 허락과 지원에 의해 원어성경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성경번역사업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이런 성경번역사업에서 나온 성경은 "국가성경"으로 명명되었다. 참된 개혁신앙에 대한 치안관의 관심이 이 유명한 번역성경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관심도 얼마되지 않아 변질되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는 국가는 교회의 행정적 조직적 업무에만 간섭하였다. 그러나 교리에 대해 관용적인 성격으로 변하면서, 국가는 도르트신조가 허보름대 케르프(Hervormde Kerp)의 신조의 하나로서 인정되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미 도르트신조가 선언된 직후 얼마되지 않아 알미니안은 정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세계의 모든 교회들과 모든 나라들에게 번져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 17세기와 18세기 동안에 성장해 나간 모든 소종파들과 종교운동들은 거의 모두가 그 성격상 알미니안적이었다. 이는 자연신론(deism), 퀘이커 사상(Quakersim), 감리교 사상(methodism) 등에 다 적용된다. 몇몇 신학자들만이 굳건히 개혁주의의 본래 입장을 취하였으니, 화란의 콤리(Comrie), 홀티우스(Holtius), 브라헤(Brahe), 스크틀랜드의 보스톤(Thomas Boston, 1617-1732)과 얼스킨(Erskines, -1870) 그리고 미국의 요나단 에드워드(1703-1758)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바빙크가 언급하듯이 전통적인 '예정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세기가 되어버렸다. 그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 "교회의 예정론을 결정론적 의미 즉, 무의식적 운명, 맹목적 자연, 비논리적인 이해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폰 하르트만의 진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각 사람이 악에로 성향지어졌을뿐만 아니라, 그리로 결정되었음이 분명한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선에로(미리) 성향지어졌을뿐만 아니라 그것에로 결정지어졌다. …절대적으로 유기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분명하듯이 절대적으로 선택된 이들도 하나도 없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가장 버림받은 개인들조차도 그 자신 안에 일정한 양의 은혜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은혜 받은 개인도 실제적인 악에서 완전히 면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이러한 생각은 슬라이허마허의 입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비록 그의 출발점이 교회론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에 집착한다고 해도, 그는 선택과 유기를 오직 시간관 관련해서만 구별하기 때문이다. 결국, 엄격히 말해서 (그에게는) 유기된 이들이 없다. 아직 변개치 못한 이들은 좋지 못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아직 변개치 않은 이도 후에는 변개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 바빙크가 지적한 이러한 정식 뿌리는 이전 알미니안 사상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알미니우스와 그의 후계자들의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의 바르트의 신학의 등장은 "자유주의자들이 놀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다.",혹은 '신정통주의다'라는 평가를 하지만, 그의 신학은 전통신학을 통하여 다시 재평가해야 될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은 칼빈과 17세기의 신학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정론에 있어서, 그는 선택이 창조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온 인류가 선택되었다고 진술하면서, 역사선상에 나타난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속죄되었다고한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대신한 유기의 대상이면서, 선택의 대상이요, 선택의 주체라고 언급한다.
- 오토 베버가 요약한 『칼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이란 저서를 보면, Barth는 칼빈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분리시켜 놓았다는 비판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은 없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택받은 인간'이며 인간에게는 첫 번 것 즉 선택과 축복과 생명을 허락하셨고, 자신에게는 둘째 것 즉, 저버림과 형벌과 죽음을 돌리시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본시 택함받은 자와 저버림 받은 자 사이에는 구별이 없고 不敬한 자와 믿는 자 사이에 구별이 있다"라고 언급한다.
-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선택(만인구원설) 받은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질문 가능성에 대하여 그는 "그것은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쉽게 답한다. 당대의 같은 학자인 에밀 부룬너는 '유기'는 성경에서 표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기'를 삭제해 버렸다. 이 두 학자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삭제해 버린 것이다.
- 사실 바르트의 주장은 이미 과거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 속에서 발견되어, 17세기 학자들에 의해서 정죄되었던 것이고, 바빙크에 의해서 확인된 내용이다.
- 이미 칼빈은 그의 자필로 된 짧고 명료한 예정에 대한 고백조항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을 지라도, 순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것들로 결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는 일보다 앞선다"고 언급하였다.
- 그리고 도로트회의 참여자 중 화란의 신학교수 대표단이었던 Sibrandus Lubbertus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택의 마땅한 원인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고마루스(F. Gomarus) 역시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이 선택의 추진하거나 움직이는 원인은 유일하고 전적으로 자유로운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그리스도의 공로"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이런 선택의 추진하거나 움직이는 원인은 오직 전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기뻐하심이요,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요 하나님밖에 어떤 것도 아니다. 특별히 더구나 그리스도를 선물하신 것은 위의 세 번 째 대조에서와 같이 구원을 인간의 선택아래 정해진 어떤 수단이다. 그 때문에 이것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선택의 후속적인 역사이다." 헷센의 신학자들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따라서 Dort회의에 바르트가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이다. 바빙크 역시 17세기 전통 신학자의 글을 확증해준다.
- 선택이 그 안에서 그를 통해서 실현되는 한, 그가 선택의 원인과 근거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또한 선택의 목적인 구원의 공적적 원인이며, 또한 택자들의 중보자와 머리이시다. 그리고 선택의 경륜이 성자와 관련하여, 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선택작정의 '실현적, 공적적 원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로마카톨릭 신학자들과, 알미니안, 루터라, 그리고 많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리스도가 그런 의미에서의 선택의 원인이라고 불리었음은 사실이다.
- 그러나 개혁신학자들은 항상 이런 견해에 대립하여 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예정의 대상이시며, 따라서 그가 동시에 원인이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성자의 파송에 앞서 있는 성부의 사랑에서 나온 은사이시다(요3:16; 롬5:8; 8:29; 딤후1:9; 요일4:9). 성자가 아버지로 사랑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시는 사랑의 아버지 자신의 자발성이란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칼빈, 고마루스, 마르크(Marck), 그리고 드 무어(De Moor) 등은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예정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자들의 선택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미리 정하신 것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 곧 그리스도안에서와 통해서이지 그리스도 때문에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선택의 주체로서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전통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용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르트의 아래와 같은 글은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이 펠라기우스의 얼굴에 가면을 쓴 것처럼, 자유주의의 얼굴에 가면을 쓴 것으로 판단된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부활과 그 분의 기도를 주목하고 마음에 두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선택받은 것이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그 분 안에서' 신적인 은혜의 선택의 대상이다.
- 이렇듯 순서적으로 전통신학과 유사하지만, 성격상, 기독론으로 출발하는 그의 신학은 전혀 전통신학(계시신학, 개혁신학)을 받쳐 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알미니안의 정신을 계승하여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신학이 단순히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교파도 아니고 장로교에서 '개혁신학(?)'으로 판단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 5) 다른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예정론'에 대한 관심과 '예정론'에 대한 교회교육의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
- 본 장에서는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칠 목적으로 형성된 도르트 신조 외에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통하여 '예정론'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고, 다음에 '예정론' 교육의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를 기술하기로 한다.
- ① 다른 교회회의와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예정론'에 대한 관심.
- 초대교회에서 예정론은 그리 많이 발전되지 않았으니, 이교의 운명론과 영지주의적 자연주의에 반하여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펠라기우스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초대교회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나, 그의 합리주의와 고행적 도덕주의는 그로 하여금 이전에 모든 사람에 인정되고 받아들여지던 "원죄교리"를 약화시키도록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에베소 공의회(431)에서 정죄 되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은 크리소스톰로, 그리고 헬라교부들의 글로 둘러싸여서 진술되었다. 이렇게 완화된 입장에 대해서 중세기에 '유사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란 이름이 붙여졌다.
- 카시아누스에 의하면, 인간성은 참으로 죄에 의하여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죄에 의하여 손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병든 것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치 스스로는 치유하지 못하나 약을 복용하고, 오랜 후에는 회복될 수 있는 병든 사람과 닮았다는 것이다.
- 또한 우물에 빠져서 스스로는 구조할 수 없으나 그를 구원하기 위해 던져진 줄은 잡을 수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을 따르는 이들과 유사 펠라기우스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계속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후에야 이 논쟁은 그쳐져서 오렌지 공의회(529년)에서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이 실패의 결과로 유사 펠라기안주의가 기에르시 공의회(The Synod of Chiersym, 853)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로마카톨릭의 트렌트공의회는 절대적 예정교리를 거부함으로써 진리에서 완전히 덜어져 나갔다.
- 이것은 결국 뒤따르는 교리인 불가항력적 은혜와 견인의 교리까지도 반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항상 진지들을 고수하고 그 진리를 위해 역사 속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예정론'에 대한 진술이 뚜렷하게 드러난 교회회의, 신조, 신앙고백, 요리문답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신조가 '예정론'을 제외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으로부터 구원에 관한 교리를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 '믿음'의 성격을 자유의지로 되었다는 펠리기우스주의자들이나, 성령의 도움으로 의지가 회복되어 믿었다는 유사펠라기우스(알미니안)주의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전적으로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을 언급하기 때문에 '예정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강조하면서, 그 은혜의 성격이 위로부터 곧, '신의 작정과 예정'에서 인식되지 않는다면, 구원의 확신에 대한 고백은 항상 유동적인 될 가능성이 많다.
- '예정론'에 대한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관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루터교회의 기본신조인 『아우구스신앙고백, 1530년』은 의식(儀式)행위를 강조하는 카톨릭교회를 의식(意識)한 고백서인 성격을 띠고 있어 '이신칭의'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다(제4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브로스의 글의 인용은 그 믿음의 원인을 하나님의 작정에 두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구원될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셨으며 그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우리의 신앙만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제6조).
- 칼빈의 『네바 요리문답, 1542년』과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가 작성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563년』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선택'을 잠시 언급하는데, 전자는 제 93문, 후자는 54문에서이다. 그리고 『제1스위스 신앙고백, 1536년』에는 '예정론'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다만 하나님의 유일한 긍휼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강조되어 있다. 즉 "모든 설교에서 역설하여 사람의 심중에 새겨져야 할 것은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유일한 긍휼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주시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복음적 교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중요한 주요 신조가 되어야 한다"(제12장)고 기술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 신조(39개조), 1563』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영생에로의 선택만을 인정하고 있다(제17조). 곧 유기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 그러나 '예정교리'의 유익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볼링거가 작성한 『제2 스위스 고백서』(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년) 역시 '선택'에 관하여만 언급되어 있는데, 특별히 살펴지는 것은 '선택'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문장이다. 즉, "그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잘못된다는 사실이 틀림없이 믿어질 경우, 우리는 택함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제10조) 그리고 존 낙스가 작성한 『제1 스코틀랜드 고백서』(The First Scotch Confession, 1506년 제8조)는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제 8 조, 교회와 관련하여 16조에 '선택'에 관한 언급이 기술되어 있다.
- 그러나 제네바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처럼, 사도신경의 순서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 데 브레이(Guy De Bres)가 작성하고 1561년 엠덴(Emden)개혁교회노회에서 채택한 『벨직신앙고백서, 1561년』16조에서 타락후 선택론을 따르는 '선택과 유기'를 둘 다 언급하나, 도르트신조나 웨스트신앙고백처럼 다른 교리와 유기적인 관련이 없다.
- 즉, 도르트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선택'을 택자로 제한된 속죄, 선택으로 말미암은 믿음, 칭의, 성화, 견인과 관련하여 언급하지만(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적 경륜), 벨직 신앙고백서는 '우리'라는 대상에 대하여 경륜적으로 역사하는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즉, 선택은 성부 하나님에 근거하고, 우리의 속죄, 칭의는 그리스도, 믿음, 성화는 성령에 근거하여 기술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선택이 속죄와 믿음과 칭의와 성화와 유기적인 관련 없이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칼빈주의적이고, 명백하게 진술된 신조와 고백은 도르트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리고 스위스 공통신조이다. 『도르트신조, 1619』는 위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예정론을 다룸에 있어서, '선택과 유기'를 둘 다 다룬 것은 물론이요, 벨직신앙고백서에서 결여된 '선택과 다른 교리와의 유기적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도르트 신조의 영향을 받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7』역시 도르트 신조와 같이, 다른 교리와의 유기적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니 오히려 조직적인 면에서 더 잘 설명해 주고 있다(3장 6항(선택과 구원의 서정의 유기적 관계의 서론격 8장 6항(속죄), 10장 1항(소명), 11장 4항(칭의), 14장 1항(신앙), 17장 1항(견인)). 그리고 『스위스공통신조, 1675』가 있는데, 이 신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신조보다는 '변증서'에 가까운 것이다.
- 이 신조는 쮸리히의 존 헨 하이데거(J.H. Heidegger)가 스위스 국회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스위스공통신조, 1675』인데, 이것은 당시의 수정주의적 칼빈주의 신학이 점점 강성하여 갔을 때 그곳의 보수파는 점점 더 엄격한 보수 신학을 제창하게 되었는데, 이 때에 작성된 것이다.
-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축자영감설에 대한 강한 주장(2,3항)과 아울러 도르트신조의 선택과 서정의 유기적 관계를 더 강하게 드러냈고, 도르트신조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 즉, 그리스도는 선택의 대상이지만 원인은 아니라는 점을 더 강하게 변증하여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였다(5항, 6항). 그런데 이 스위스 일치신조는 스위스에서 약 반 세기동안 사용되다가 그 후로는 점점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 이런 흐름 속에서 이 신조 이후 어떤 교회회의나 신조나 요리문답이나 신앙고백도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반면에 스콜라적인 이성이나 알미니안의 사상이 신앙고백과 신조와 교회회의에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1829년의 『컴버랜드 신앙고백』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하고 알미니우스적인 요소를 내포하였고, 한국의 장로교 12신조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를 기본문서로 받아들이면서도 '유기'에 대한 내용을 포기하였다. 칼 바르트가 기초한 『바르멘 신학선언, 1934』에서도, 미국 연합장로회의 『1967년 신앙고백』에서도 찾을 수가 없으며, 저 세계적인 모임인 W.C.C.(세계교회협의회)는 온통 알미니안으로 채색된 대표적인 모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미래의 교회회의, 신조, 신앙고백은 '구원관'에 대한 아무런 교육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 어떤 이가 "예수믿고 구원받느냐?"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성격과 원인'을 묻는다면, 17세기의 화란의 국민처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시대의 교회는 과거의 논의(도르트신조, Wm)는 역사적 산물로 이미 지나간 것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것으로 논쟁하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으며,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겠다는 것으로 구원에 관한 모든 논의를 마치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곧, 세계적으로 교회교육의 관심은 '구원론'을 제외한 선교와 봉사와 세계평화와 세계복음화와 교회일치와 행복추구의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때문에, 앞으로 21세기의 교회에 대해서 선교와 봉사와 평화와 복음화의 교회일치와 행복추구는 더한 낙관을 예상할 수 있으나, 구원에 대해 깊은 은혜를 느끼면서, 순교적인 신앙관과 구원관을 확신할 수 있는 인물을 낳는 교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낙관할 수가 없다.
- ② '예정론'에 대한 교회 교육이 필요성과 실제적 효과.
- 이 교회가 성경의 내용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며, 교육적으로 가르쳐야할 당위성을 가지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는 몇 가지 목적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로서 줄곧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교리를 교회에 소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오해하여 '예정론'을 악행의 동기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사실 칼빈의 언급처럼, 사람들이 이 교리를 이상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이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성경을 대한다면 이 진리는 뵈트너(Loraine Boettner)의 표현대로, 바다의 고기처럼, 숲의 나무처럼 풍성하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아름다운 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엡1:4~6).
- 따라서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침묵'하는 것에 항상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곧 예정교리를 인정하기는 하지마, 그 교리가 이야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을 묻어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공통된 입장인 것이다. Calvin은 그러한 자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그러한 자들은 선지자, 사도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의 입을 통하여 그 교리를 가르쳐 주신 성령을 통제하는 사람이다. …이 교리를 침묵케 하기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앞에 무한한 자비의 보화를 펼쳐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보화를 발밑으로 던져버린다면, 그것이 과연 제정신이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아울러 칼빈은 '예정론'을 가르침에 대한 두 가지 교육적 효과를 드러냈는데, 오직 겸손하게 됨과 구원의 확신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저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 이처럼 예정론이 우리의 신앙에 주는 유익은 큰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예정론'이 주는 실질적인 유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기술하기로 한다.
- ⓐ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만 되는 이유를 깨닫는다(1조 13항).
- Calvin은 이 교리이외에는 우리에게 올바른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만 하시고 부름에 응답하고 선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를 무색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이 단순히 선택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서정에 가지 유기적 관계로서 우리에게 설명되어진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믿음으로, 내가 선을 행함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교만함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구원'에 관계해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제네바요리문답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문 121. 하나님은 한 번 우리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답.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자유롭게 받으시기 때문이며 그러한 행위에 속한 고유한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다.
- 문 122. 어떻게 해서 그런가? 그러한 행위는 성령에서 생겨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가치가 없는 것인가?
- 답. 없는 것이다. 그 행위 안에는 언제나 우리의 육의 취약성이 얼마만큼 있기 때문입니다.
- 문 123. 그러면 그러한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답. 만일 그것들이 신앙 안에서 행하여진다면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그의 양심 가운데서 다음의 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즉 하나님은 그 행위를 아주 엄격하게 평가하시지 않고, 완전하다고 여겨주신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모든 불완전한 것들과 오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가지고 덮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렇듯 인간은 '구원'에 이르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무력하다.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예정과 그 예정으로 말미암은 선행과 믿음과 칭의와 견인과 성화와 영화는 즉, 구원은 우리 힘의 협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 삼위하나님의 통일성 있는 역사가 그 원인이라고 설명될 때에,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성(전적타락)을 깨닫고 겸손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구원에 대한 확신에 도움을 준다.
- ㉮ 예정교리는 신자들이 위험한 자리에 있게 될 때에 안전감을 주며 언제나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 안전한 길인 것을 알게 되며 비록 박해를 받는 경우에도 꾸준히 덕행을 지켜 나아가게 한다. 설령, 순교의 자리에 있어서도, 그들은 사단과 악인들이 악한 뜻을 이룰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룰 뿐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 ㉯ 예정론은 우리에게 '유기되었다'는 공포에 떨게 하기보다는 구원의 확신을 준다(도르트신조, 1조 16항). 바빙크는 이렇게 진술했다. "첫째, 그 누구도 자신이 유기된 자라고 믿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진실로 부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를 믿을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그 누구도 자신이 유기되었다고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삶과 그의 행위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럴 수 있는 이미 지옥에 있는 자인데, 그러려면 그가 이 땅에 있어야 한다."
- 따라서 도르트신조 1조, 16조는 이렇게 진술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사망의 몸에서 해방되기를 열심히 바라면서 아직 그들이 바라는 만큼 거룩과 신앙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저버림의 교리 때문에 위협을 받을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 선교에 확신을 갖게 한다.
- 예정론에 대하여 확실한 가르침을 받은 선교사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선교지에 땀흘리며 전도한다고 하자. 만일 그 선교사에게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영접하게 하지 못한다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기쁨이 여전히 있을 수 있다. 예정론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정론'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지닌 선교사는 아마도 자기나 자기의 뒤를 이을 사람이 단 한 영혼도 그 선교지에서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되도록 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 그는 결코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거나 자신을 복음전도자로 쓰시지 않았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바울도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했지만, '예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서 항상 열심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6) 도르트신조의 가치
- 알미니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위텐보게르트는 '항의서'가 기초되던 1610년에 이 운동의 영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교회를 신학자들의 학교로 만드는 데 반대하였다. 알미니우스와 함께 그는 종교의 신앙적 중요성만을 강조하였다. 성서만이 권위로 인정되어야 하며 신조나 교리문답은 구속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의 후계자들도 모든 신조에 대항하여 싸워 왔다. 그런데 이 항위자들이 에피스코피우스의 '신앙고백(1622)'를 통해 신앙의 표준에 관한 그들의 소신을 밝힐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 신조는 그들이 정죄를 받고 화란에서 추방을 당하고 난 후에 출판되었다. 모든 신조에 거절하고 대항하여 싸워 왔던 그들이(항론파)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 출판하게 되었다. 그들의 진술에 의하면 "교회에는 신앙고백적 진술을 필요로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믿어야 되는가를 결정하는 명령이 되어서는 안되며 또 진리와 오류를 판단하는 신앙의 규범이나 표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신앙고백적 진술의 목적은 단지 종교에 관한 그 진술자의 소신의 표현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것이 성서에 일치되지 않는다고 양심으로 확신하게 되면 그 신조의 입장에 얽매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소신이다.
- 그러나 그들의 단점은 이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각양각색의 성경관과 신앙의 색깔로 믿는 자들이 누가 신앙의 동지이며 누가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데 곧,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며, 교회의 순수성은 인간 각 개 개인의 이성에 따라 파괴된다는 데 있다. 이미 17세기에 개혁교회의 신조에 있어서 전제가 되는 '예정론'에 대한 배척은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곧 예정론을 배척한 알미니우스주의가 인간 이성을 절대시하는 17, 18세기 합리주의 낳은 것이다.
- 교회도 이러한 사상적 조류에 편승하여 복음을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으로 채색해 놓았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목소리는 '복음'은 인간의 이성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되며,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대로 받되, 통일성 있는 신조나 고백을 확립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정론'은 '복음'의 핵심이며, 그 뿌리이다. 로레인 뵈트너는 복음은 '예정'교리에 기초한 것이므로 희소식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칼빈 역시 그의 『에베소서강해』에서 "이 교리를 침묵케하기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편이 나올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였듯이, '예정론'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 신앙과 교회 신조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 따라서 '예정론'에 대한 도르트회의의 결정은 단순히 알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하기 위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바빙크가 언급한 것처럼, '예정론'은 개혁교회만의 고백이 아니라, 또한 어거스틴과 칼빈의 의견이기만 한 것이 아닐, 모든 기독교권의 교리(all of Christendom)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알리려는 선지자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손을 거쳐 기록된 성경의 기록이며,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 회의의 결정은 모든 교회의 축복이며, 우리는 그 계시 (예정론-도르트회의의 결정)를 먹고 마시는 주의 백성이다.
- 그런데 이제 20세기가 넘어가는 이 시점에선 대부분의 교회가 '예정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칼 바르트의 '예정론'에 대하여 논의없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르트가 '독일 기독교당'이 히틀러와 그의 획일화된 정책을 하나님보다 숭배하는 것에 반대하여 '바르멘 선언'을 작성한 것은 그 역사 속에서 높이 평가받을 일인지 모르겠으나, 진리를 보수하는 그의 신학에 있어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후속역사는 그를 바르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1967년 신앙고백이 그 예이다. 그 안에는 복음이 없고 바르트의 얼굴과 그의 신학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열려져 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빙크가 몇몇 사람을 진술했듯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 정신을 이어가는 몇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 몇 사람은 지금 '복음(예정론)'을 확립하고 변증하여 성경이 살아 있음을, 신앙이 살아 있음을, 구원의 감격이 살아 있음을 소개해야 될 책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네덜란드에 꽃이 피었듯이, 우리의 땅에도 그 꽃은 피어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에 의해 정통과 비정통이 분리되는 분위기를 우리는 도르트 신조를 통해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쿠른헤르트가 절대예정론을 반대하는 내용의 저서를 내게 되고, 거기다가 유니우스의 계승자로 라이덴 대학의 교수인 아르미니우스가 그의 사상에 찬동하며 나섰을 때, 이 도시는 절대예정론과 예지예정론의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은 이런 정신에 입각해 볼 때 당연한 일임을 알 수 있다.
- 여기서 아르미니우스가 자신의 학적 사상(學的 思想)을 신학교수로써 주장한다는 것은 좋게 평가될 일이나 역사적 개혁주의 대학교에서 개혁주의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 기본적인 주체와 근거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버린 문제는, 그의 학위논문뿐만 아니라 그의 성경적 신앙에도 역시 회의적 평가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만이 홀로 존재의 근거이시며, 또한 존재의 궁극적 목적(롬11:36)이라는 神論(삼위일체론)의 신앙․신학적 정립인데, 알미니우스는 이 근본 원리를 포기하였음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도 그에게 있어서는 재해석된 것이다.
- 결국 알미니우스는 로마 카톨릭(보편구원설)으로부터 교리적 조정을 받은 것에 불과하며, 로마카톨릭의 미신적 구원론에 교리적 체계를 세워, 다시 로마카톨릭으로 인도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사상은 예지로 출발하여 자신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의 자신의 믿음의 과정(연속적인 명)을 보고 예지(됨)를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 알미니안주의의 교리는 결국 인간의 성향을 만족시켜 주기에 최적의 약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인간의 성향은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함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없다. 오히려 불안함만을 더해줄 뿐이기에,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긴장 속에서 마치 의심스러운 부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각고의 노력의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당위성에 순종한 행위에 의한 만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은혜가 아니라, 오직 은혜의 통로는 나 자신의 노력이라는 것을 명료히 한다. 결국 이와 같은 교리적 투쟁은 관점의 투쟁이고, 관점의 투쟁은 하나님 중심사상과 인본주의사상의 투쟁이다. 결코 인간의 사상에는 중립이 없다.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드러나는 입장이 각기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적 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리와 사회의 양분되어진 현상은, 비(非)진리에 대한 칼빈주의자들 입장의 당위였으므로 초래된 결과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 왜냐하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명히 알며 따르기 때문에(요10:27) 비진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도르트 규정이 성립된 후 사후 정비에 있어서 정치적 관렴문제는 그 당시의 세계관을 따른 듯하다. 앞서 서술했듯이 당시의 세계관은 하나님의 교리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었으므로, 도르트회의 후의 각종의 결정들은 역시 그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겠다.
- 실로 도르트총회의 칼빈주의 5대교리 성립은 화란 역사에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칼빈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서, 영광스런 하나님께서 칼빈주의자들을 통해 승리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성경의 내용(敎理)을 인간중심으로 돌리려는 무수한 부류들에 대하여,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성경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서로 작성함으로 우리는 이 내용을 믿는다(creed)하여 끝까지 싸워온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진리를 지키려는 싸움에서 표면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여진 때도 있었으나, 개혁주의자들 이 진리의 내용을 지킴으로 잠시의 안전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품으로 속히 가는 길을 택하여 왔던 것이다. 사실, 아직도 도르트 신조의 진리에 대한 논쟁은 종결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지금 21세기가 시작하는 시기에까지 과제로 전달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요구는 위와 같지 않고, 성경 전체를 기록론으로 통하여 구원의 근거를 인간 편에 두는 사상적 체계와, 종교의 일치(WCC, ICCC)를 향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 우리에게 남겨 주신 과제는 명확한 것이다. 전통적인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계승한 도르트 총회의 후손으로 우리는 얼마나 그 규정에 충실해 있는가를 살펴봄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비(非)성경적이고 비(非)개혁주의적인 것을 단호히 배격하고, 성경적인 참된 교회로 되돌려야 하겠다. 많은 사람과 화합하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이때에 차라리 하나님 편에서 고립됨으로 각오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에서의 성경에 의한 만족만을 가지고, 계속적인 진리 제시의 투쟁을 해 나가야 하겠다. 왜냐하면 아직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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