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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벨직 신앙 고백서

하나님아들 2015. 3. 23. 23:21

벨직 신앙 고백서

 

 

 

한국 개혁교회의 첫 번째 교리 표준 문서는 신앙 고백서이다. 이것을 흔히 벨직 신앙 고백서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고백서가 벨기에(Belgium)라고 알려진 남 네덜란드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이 고백서의 저자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설교자인 귀도 드 브레(Guido de Bres)인데, 그는 1567년에 순교했다. 16세기 내내 이 나라의 교회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 통치 아래 아주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다. 드 브레는 이 무자비한 탄압에 저항하기 위하여, 그리고 개혁 신앙을 따르는 자들이 박해자들이 고소한 것처럼 반란을 일으키는 폭도가 아니라, 다만 성경 말씀에 따라 참된 기독교 교리를 고백하며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들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1561년에 이 고백서를 준비했다. 그 다음 해에 고백서 사본이 필립 2세에게 보내졌다. 그 사본에는 탄원자들이 합법적인 모든 일에서는 정부에 기꺼이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 고백서에 표현된 진리를 부인하느니 차라리“자신들의 등을 채찍으로 치고, 혀를 칼로 자르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온 몸을 불에 태우도록 내어주는 편이 더 낫다.라고 공언한 제언이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비록 박해로부터의 안전한 자유라는 직접적인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드 브레 그 자신도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믿음에 도장을 찍었던 수천 명 중 하나로 죽었지만, 그가 저작한 고백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한 오는 여러 세대에 남을 것이다. 이 고백서의 구성에 있어서 드 브레는 주로 칼빈에 의해 쓰여져 2년 일찍 출판되었던 프랑스 개혁교회의 고백서를 어느 정도 참고로 활용했다. 하지만 드 브레의 저작은 칼빈 저작의 단순한 개정판이 아니라, 독립적인 저술이다. 네덜란드에서 이 고백서는 교회들에 의해 곧바로, 기꺼이 받아들여졌고, 총회들(the National Synods)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16세기 말 30년 동안 처음 그대로 고수되었다. 고백서의 본문(text)은 아니지만 몇몇 부분(contents)이 조심스럽게 개정된 후에, 1618-19년 이 고백서를 개혁교회들의 교리 표준문서들 중의 하나로 채택했고,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에게 이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고백서의 탁월성은 개혁교회의 가장 훌륭한 대표적인 문서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한국 개혁교회는 2005년 5월 22일에 이 벨직 신앙 고백서를 교리 표준 문서들 중의 하나로 채택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교리와 사람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교리의 요약을 포함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고백

 

 

 

1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

 

우리 모두는 단일하고 영적이신[1]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2]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3] 그분은 영원하시고,[4] 불가해(不可解)하시며,[5] 보이지 않으시고,[6] 불변하시며,[7] 무한하시고,[8] 전능하시며,[9] 완전히 지혜로우시고,[10] 공의로우시며,[11] 선하시고,[12]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십니다.[13]

 

 

[1] 요4:24.

 

[2] 신6:4; 고전8:4,6; 딤전2:5.

 

[3] 롬10:10.

 

[4] 시90:2.

 

[5] 롬11:33.

 

[6] 골1:15; 딤전6:16.

 

[7] 약1:17.

 

[8] 왕상8:27; 렘23:24.

 

[9] 창17:1; 마19:26; 계1:8.

 

[10] 롬16:27.

 

[11] 롬3:25,26; 롬9:14; 계16:5,7.

 

[12] 마19:17.

 

[13] 약1:17.

 

 

 

2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식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우주는 매우 아름다운 책과 같이 우리의 눈앞에 있습니다.[1] 사도 바울이 로마서1:20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우주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들, 말하자면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지각(知覺)하도록 인도하는 수많은 글자들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유죄를 입증하고, 죄를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에 충분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을 통해 이 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그 이상으로 아주 분명하고 충분하게 그분 자신을 알려 주십니다.[2]

 

 

 

[1] 시19:1-4.

 

[2] 시19:7,8; 고전1:18-21.

 

 

 

3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전하는 것처럼(벧후1:21)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충동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말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특별한 돌보심 가운데 그분의 종들, 곧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계시된 말씀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고,[1] 그분께서도 친히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기록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기록들을 거룩하고 신적인 경전이라고 부릅니다.[3]

 

 

[1] 출34:27; 시102:18; 계1:11,19.

 

[2] 출31:18.

 

[3] 딤후3:16.

 

 

 

4

 

정경(正經)들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들이 정경이며, 그 사실에 반대되는 어떤 주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그리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입니다.

 

신약은 사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사도행전, 그리고 사도 바울의 열 세 서신인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그리고 히브리서, 그리고 다른 일곱 서신서인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 2, 3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입니다.

 

 

 

5

 

성경의 권위

 

우리는 이 모든 책들을,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의 규칙과 기초와 확증을 위한 거룩한 정경으로[1] 받아들입니다.[2] 우리는 이 책들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것들을 정경으로 받고 승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히 성령께서 이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증거하시고,[3] 또한 이 책들 자체가 그런 증거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문맹인이라고 해도 이 책들 안에 미리 말씀하신 일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습니다.[4]

 

 

 

[1] 딤후3:16,17.

 

[2] 살전2:13.

 

[3] 고전12:3; 요4:6; 요5:7.

 

[4] 신18:21,22; 왕상22:28; 렘28:9; 겔33:33.

 

 

 

6

 

정경과 외경의 구별

 

우리는 이 정경들을 외경들, 즉 에스델 3,4서,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에스더서 부록, 아자리야의 기도와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 마카오베 1,2서와 구별합니다. 교회는 외경이 정경에 일치하는 한에서 외경을 읽고 교훈을 취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경들은 그 증거로부터 믿음이나 기독교 신앙의 요점을 확증할만한 어떤 효력이나 권위를 전혀 가지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 외경들은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에 결코 사용될 수 없습니다.

 

 

 

7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이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성경이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모든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라도, 심지어 사도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불법입니다.[2] 그것은 사도 바울이 증언하는 것처럼 심지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갈1:8).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것을 가감(加減)하는 것을 금하므로(신12:32),[3] 성경의 교리가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며 완벽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4]

 

우리는 아무리 거룩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사람의 글을 하나님의 성경과 동등한 가치에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관습이나 일반성이나 고전이나 전통과 연륜이나 교회 회의들이나 선언들이나 법령들의 가치를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는 모든 것 위에 있고,[5] 모든 사람은 스스로 거짓되며 입김보다 더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우리는영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는지 시험하라.(요일4:1)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1:10)라고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대로, 이 무오한 법칙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전심으로 거부해야 합니다.[6]

 

 

 

[1] 딤후3:16,17; 벧전1:10-12.

 

[2] 고전15:2; 딤전1:3.

 

[3] 신4:2; 잠30:6; 행26:22; 고전4:6; 계22:18,19.

 

[4] 시19:7; 요15:15; 행18:28; 행20:27; 롬15:4.

 

[5] 막7:7-9; 행4:19; 골2:8; 요일2:19.

 

[6] 신4:5,6; 사8:20; 고전3:11; 엡4:4-6; 살후2:2; 딤후3:14,15.

 

 

 

8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지만, 삼위로 구별되신다.

 

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1] 그분은 단 하나의 본질이시며, 그 한 본질 안에는 삼위의 비공유적인 속성에 따라 진정, 진실로, 영원히 구별되는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십니다.[2]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며, 원천이시며, 시작이십니다.[3] 성자는 말씀과 지혜이시며, 성부의 형상이십니다.[4]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능력과 권능이십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해 셋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각각 위격적 존재성을 가지며, 각각의 속성에 의해 구별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이 삼위께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도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나 성자가 아니심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되는 이 삼위는 나누어지거나 혼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셨지만, 오직 성자만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결코 그분의 성자[6]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삼위는 모두 공동의 영원이시며, 공동의 본질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는 먼저 계시거나 나중에 계신 것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삼위는 모두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1] 고전8:4-6.

 

[2] 마3:16,17; 마28:19.

 

[3] 엡3:14,15.

 

[4] 잠8:22-31; 요1:14; 요5:17-26; 고전1:24; 골1:15-20; 히1:3; 계19:13.

 

[5] 요15:26.

 

[6] 미5:2; 요1:1,2.

 

 

 

9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성경의 증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증거와[1] 삼위 각각의 사역에서 알 수 있으며, 특별히 우리 자신 안에서 그것들을 인식합니다. 이 성삼위일체를 믿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성경의 증거들이 구약 성경의 많은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증거 구절을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다만 신중하게 몇 구절을 선택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6,27) 또한“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창3:22)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 이상의 신적 위격들이 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리고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한 하나님만 계시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위격들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구약에서는 어느 정도 불분명하게 보이던 것이 신약에서 아주 분명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마3:17) 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으며, 성자께서는 물 가운데 보이셨고, 성령은 비둘기 같은 육적인 형체로 성자 위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2]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세례에 대하여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라.(마28:19)는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라고 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13:13) 이 모든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 세 위격이 계시다는 사실을 충분히 배웁니다.

 

비록 이 교리가 모든 인간의 이해를 훨씬 넘어 선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애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서 이 교리를 믿으며,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장차 하늘에서 즐기게 될 것을 고대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이 삼위의 구별된 직무와 사역을 주시(注視)해야 합니다. 성부는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의 창조주로 불리시며, 성자는 그분의 피로 인해 우리의 구주와 구속주로 불리시며,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거하심으로 인해 우리의 성화주(聖化主)로 불리십니다. 성삼위일체의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항하여, 그리고 정통 교부들에 의해 공정하게 정죄된 말시온, 마니교,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은 거짓 기독교인들과 이단들에 대항하여 참 교회에서 항상 유지되며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 안에서 우리는 세 신경, 즉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와 같이 그 신조들과 일치하여 초기 교부들에 의해 합의된 것을 받아들입니다.

 

 

 

[1] 요14:16; 요15:26; 행2:32,33; 롬8:9; 갈4:6; 딛3:4-6; 벧전1:2; 요일4:13,14;

 

요일5:1-12; 유20,21장; 계1:4,5.

 

[2] 마3:16.

 

10

 

예수 그리스도,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적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시며,[1] 영원으로부터 독생하셨고,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으셨으며,(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분은 피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부와 동일 본질에 속하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시고, 하나님의 본성의 참된 속성을 지니셨으며,(히1:3) 모든 면에서 성부와 동등하십니다.[2]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후에만 아니라 영원부터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3] 다음 성경의 각 증거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증거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하고,[4] 사도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말씀에 의해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5] 히브리서는“하나님이 그분의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을 만드셨다.라고 하며,[6]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셨다.라고 말합니다.[7] 그러므로 하나님, 그 말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시는 그분은 만물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던 그때에 이미 존재하셨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고,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고 기도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간구하고 예배하며 섬기는 전능자,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마17:5; 요1:14,18; 요3:16; 요14:1-14; 요20:17,31; 롬1:4; 갈4:4; 히1:2;

 

요일5:5,9-12.

 

[2] 요5:18,23; 요10:30; 요14:9; 요20:28; 롬9:5; 빌2:6; 골1:15; 딛2:13; 히1:3; 계5:13.

 

[3] 요8:58; 요17;5; 히13:8.

 

[4] 창1:1.

 

[5] 요1:1-3.

 

[6] 히1:2.

 

[7] 고전8:6; 골1:16.

 

 

 

 

 

 

 

11

 

성령,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들어지셨거나, 창조되셨거나, 독생하지 않으셨으며,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1] 순서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성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 하나이시고, 동일한 본질, 위엄, 영광에 속하시며,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입니다.[2]

 

 

 

[1] 요14:15-26; 요15:26; 롬8:9.

 

[2] 창1:2; 마28:19; 행5:3,4; 고전2:10; 고전3:16; 고전6:11; 요일5:7.

 

 

 

12

 

만물, 특별히 천사들을 창조하심

 

우리는 성부께서 말씀, 곧 그분의 아들로 말미암아 무(無)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을 좋게 여기셨으며,[1] 각각의 피조물에게 그 피조물만의 존재와 모양과 형태를 주셨고, 각 피조물에게 자기의 창조주를 섬기도록 그만의 특유(特有)한 과업과 기능을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부께서 그분의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그리고 무한하신 능력으로 사람을 섬기도록 피조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결국 사람이 자기의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분의 사자(使者)가 되고, 그분의 택자들을 섬기도록 천사들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2] 이 천사들 중 일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실 때 주신 그 고귀한 지위에서 영원한 파멸로 떨어졌지만,[3] 나머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의 지위에 확고하게 남았고, 그들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귀들과 악령들은 아주 타락하여 하나님과 선한 모든 존재들의 원수가 되었습니다.[4] 그들은 그들의 모든 힘을 사용하여 악한 권계로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파멸시키고,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하여 암살자처럼 숨어 있습니다.[5]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사악함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선고 받고, 날마다 그들이 당할 끔직한 고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6]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영이나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두개인의 오류나,[7] 마귀들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부패된 적이 없이 그 자신들의 고유한 본성으로 악하다고 말하는 마니교의 오류를 혐오하며 거부합니다.

 

 

 

[1] 창1:1; 창2:3; 사40:26; 렘32:17; 골1:15,16; 딤전4:3; 히11:3; 계4:11.

 

[2] 시103:20,21; 마4:11; 히1:14.

 

[3] 요8:44; 벧후2:4; 유6.

 

[4] 창3:1-5; 벧전5:8.

 

[5] 엡6:12; 계12:4,13-17; 계20:7-9.

 

[6] 마8:29; 마25:41; 계20:10.

 

[7] 행23:8.

 

 

 

13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방치하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1] 그분의 거룩한 뜻에 따라 이 세계 속에서 그분의 감독하심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2]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들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할 이유도 없으십니다.[3]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선은 매우 위대하고 지각에 뛰어나, 심지어 마귀와 악인들이 불의하게 행할 때도 가장 탁월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그분의 사역을 정하시고 실행하시기 때문입니다.[4] 그리고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허용된 자격을 넘어 호기심으로 파고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큰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공정하신 판단을 칭송해야 하며,[5]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들만을 배워야 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에 자족해야 합니다.[6]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줍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로 우리는 어떤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으며, 오직 모든 일이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권능 아래 만물을 지켜 주시는 아버지의 손길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그 수까지도 세시는), 그리고 참새 한 마리조차도 땅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교리를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단과 우리의 모든 적들을 장악하셔서, 그분의 허용이나 뜻이 없이는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들을 우연에 방치하신다고 말하는 에피큐리안의 가증스러운 오류를 거부합니다.

 

 

 

[1] 요5:17; 히1:3.

 

[2] 시115:3; 잠16:1,9,33; 잠21:1; 엡1:11,12; 약4:13-15.

 

[3] 약1:13; 요일2:16.

 

[4] 욥1:21; 사10:5; 사45:7; 암3:6; 행2:23; 행4:27,28.

 

[5] 왕상22:19-23; 롬1:28; 살후2:11.

 

[6] 신29:29; 고전4:6.

 

[7] 창45:8; 창50:20; 삼하16:10; 롬8:28,38,39.

 

 

 

14

 

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참된 선행에 대한 사람의 무능력함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땅의 흙으로 창조하셨고,[1] 사람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시고 조성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2] 그래서 사람의 의지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고귀한 지위에 있을 때에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탁월함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을 고의로 죄에 복종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죽음과 저주에 예속되었습니다.[3] 왜냐하면 사람이 그가 받았던 생명의 계명을 범했고, 그의 죄로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했으며, 자신의 본성 전체를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으로 사람은 그 자신을 육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4]

 

사람은 악하고 비뚤어졌으며, 모든 면에서 부패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모든 탁월한 은총의 선물들을 잃게 되었습니다.[5] 다만 사람이 변명할 수 없을 정도의 약간의 작은 흔적만 남았을 뿐입니다.[6]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빛이 모두 어두움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7]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인류를 어두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반대되는 사람의 자유 의지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사람은 죄의 종이며,(요8:34)“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8:27)“이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데, 감히 누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8:7)는 사실을 아는데, 누가 자기 의지를 자랑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아니 한다.(고전2:14)라고 말씀하시는데, 누가 자기 지식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간단히 말해서,“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3:5)는 말씀을 깨닫는다면 누가 감히 다른 무엇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빌2:13)라고 하신 사도의 말씀이 당연히 확실하고 굳건하게 마음에 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처럼 만약 그분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지식과 뜻에 일치하는 어떤 지식과 뜻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창2:7; 창3:19; 전12:7.

 

[2] 창1:26,27; 엡4:24; 골3;10.

 

[3] 창3:16-19; 롬5:12.

 

[4] 창2:17; 엡2:1; 엡4:18.

 

[5] 시94:11; 롬3:10; 롬8:6.

 

[6] 롬1:20,21.

 

[7] 엡5:8.

 

 

 

15

 

원죄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원죄가 전 인류에게 확산됐음을 믿습니다.[1] 원죄는 인간의 전(全) 본성(本性)의 부패이며,[2] 유아조차도 모태에서 오염되는 유전적인 악입니다.[3] 원죄는 뿌리와 같아서 온갖 종류의 죄를 사람 안에 생산합니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워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합니다.[4] 원죄는 없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세례로도 근절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죄는 이 비참한 원천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5]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정죄를 위해 전가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용서됩니다.[6] 이 말은 믿는 자들이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도 평화롭게 잠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반대로 이 부패에 대한 자각이 종종 그들로 하여금 이 죽음의 몸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다리도록 열망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 관하여 우리는 죄는 단지 모방의 문제라고 말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거부합니다.

 

 

 

[1] 롬5:12-14,19.

 

[2] 롬3:10.

 

[3] 욥14:4; 시51:5; 요3:6.

 

[4] 엡2:3.

 

[5] 롬7:18,19.

 

[6] 엡2:4,5.

 

 

 

16

 

하나님의 선택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그의 모든 후손이 멸망과 파멸에 빠졌을 때,[1] 하나님께서 그분의 속성대로, 곧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대로 그분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경륜 안에서[2] 사람의 행위를 고려하지 않으시고[3] 그분의 순수한 선에 의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4] 선택하신[5] 아담의 후손들을 멸망으로부터 건지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을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6]

 

 

 

[1] 롬3:12.

 

[2] 요6:37,44; 요10:29; 요17:2,9,12; 요18:9.

 

[3] 말1:2,3; 롬9:11-13; 딤후1:9; 딛3;4,5.

 

[4] 요15:16,19; 롬8:29; 엡1:4,5.

 

[5] 삼상12:22; 시65:4; 행13:48; 롬9:16; 롬11:5; 딛1:1.

 

[6] 롬9:19-22; 벧전2:8.

 

 

 

17

 

타락한 사람의 구원

 

우리는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스스로 육적, 영적 죽음에 빠져 그 자신을 완전히 비참하게 만든 것을 보셨을 때,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선으로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며, 사람을 복되게 하시기 위해 여자에게서 나실 그분의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심으로 사람을 위로하셨습니다.[2]

 

 

 

[1] 창3:9.

 

[2] 창22:18; 사7:14; 요1:14; 요5:46; 요7:42; 행13:32,33; 롬1:2,3; 갈3:16; 딤후2:8;

 

7:14.

 

 

18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1] 종의 형상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신,(빌2:7) 그분의 독생하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을 때 그분이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2]을 성취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진실로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가진 참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지만,[3] 죄는 없으셨습니다.[4] 왜냐하면 그분은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사람의 행위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5] 그분은 참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 육체에 관한 인간의 본성뿐만 아니라 참 인간의 영혼 또한 입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타락했으므로, 그 둘 다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께서 영혼과 육체 모두를 입으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모친으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재세례파의 이단설을 반대하며,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몸과 피에 참여하셨음(히2:14)을 고백합니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시며,(행2:30) 육신에 따라 다윗의 씨로 나셨고,(롬1:3)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가 되셨으며,(눅1:42) 여자에게서 나셨고,(갈4:4) 다윗의 가지시며,(렘33:15) 이새의 줄기로부터 난 싹이시며,(사11:1)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히7:14) 육신에 따라서 유대인의 자손이셨으며,(롬9:5) 아브라함의 씨이십니다.[6] 왜냐하면 그 아들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관계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지만 죄는 없으셔야 했습니다.(히2:16,17;4:15)

 

이렇게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마1:23)

 

 

 

[1] 갈4:4.

 

[2] 창26:4; 삼하7:12-16; 시132:11; 눅1:55; 행13:23.

 

[3] 딤전2:5; 딤전3:16; 히2:14.

 

[4] 고후5:21; 히7:26; 벧전2:22.

 

[5] 마1:18; 눅1:35.

 

[6] 갈3:16.

 

 

 

19

 

그리스도의 하나의 위격 속에 있는 두 본성

 

우리는 이 수태로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이 인성과 분리될 수 없이 연합되고 연결되었기 때문에[1] 하나님의 두 아들이 계시거나 두 위격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두 본성이 단 하나의 위격 속에 연합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각 본성은 그 자체만의 독특한 속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신성은 항상 생명의 시작이나 끝이 없이 피조되지 않은 채로 있으며, 하늘과 땅에 충만합니다.[2] 그분의 인성도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을 잃지 않습니다. 즉 인성은 시작의 날이 있으며, 창조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인성은 유한하며, 참 육신의 모든 속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3]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부활로 인성에 불멸성을 부여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성의 실재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4]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또한 그분의 몸의 실재에 의존해 있기 때문입니다.[5]

 

하지만 이 두 본성은 한 위격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 그분의 죽음으로도 나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그분의 아버지의 손에 위탁하신 것은 육신에서 분리된 참된 인간의 영이었습니다.[6] 한편 그분의 신성은 무덤에 누워계실 때조차도 항상 그분의 인성과 연합된 채로 있었습니다.[7] 그리고 그 신성은 얼마동안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던 유아시기에도, 그분 안에 있었던 그대로, 항상 그분 안에 유지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고백합니다. 즉 그분의 능력으로 죽음을 정복하시기 위한 참 하나님이시며, 육신의 연약함에 따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한 참 사람이십니다.

 

 

 

[1] 요1:14; 요10:30; 롬9:5; 빌2:6,7.

 

[2] 마28:20.

 

[3] 딤전2:5.

 

[4] 마26:11; 눅24:39; 요20:25; 행1:3,11; 행3:21; 히2:9.

 

[5] 고전15:21; 빌3:21.

 

[6] 마27:50.

 

[7] 롬1:4.

 

 

 

20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우리는 완전히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범한 사람의 본성을 취하시고,[1] 그 본성 안에서 속죄를 이루시며, 가장 모진 고난과 죽음으로 죄의 형벌을 감당하시도록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의 아들 위에 두셨을 때에 그분의 아들에 대한 그분의 공의를 나타내셨고,[3] 죄를 범하여 저주 받아 마땅한 우리 위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그분의 아들을 통해 우리가 죽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우리의 의(義)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부활하게 하셨습니다.[4]

 

 

 

[1] 롬8:3.

 

[2] 히2:14.

 

[3] 롬3:25,26; 롬8:32.

 

[4] 롬4:25.

 

 

21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맹세로 확증되셨음을 믿습니다.[1]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바와 같이[2]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완전한 속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며,[3] 그분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셔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씻어버리시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4]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의 아버지께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 …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같이 …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53:5,7,12)[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무죄 선언을 받으셨지만, 결국 범죄자로 정죄되었습니다.[7]그분은 훔치지 아니하신 것을 물어 주셨습니다.(시편69:4) 그분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벧전3:18)[8]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몸과 영혼에 끔찍한 형벌을 당하시는 고통을 받으셨고,[9]그분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셨습니다.(눅22:44)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하여 인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사도 바울과 같이“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전2:2)라고 말합니다. 우리는“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빌3:8) 우리는 그분의 상처에서 위로를 발견하며, 믿는 자들을 영원히 완전케 하시는,(히10:14) 단번에 드려진 이 유일한 제사 외에 하나님과 화목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10]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을 ‘예수, 곧 ‘구주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그분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11]

 

 

 

[1] 시110:4; 히7:15-17.

 

[2] 눅24:25-27; 롬3:21; 고전5:3.

 

[3] 롬4:25; 롬5:8,9; 롬8:32; 갈3:13; 골2:14; 히2:9,17; 히9:11-15.

 

[4] 행2:23; 빌2:8; 딤전1:15; 히9:22; 벧1:18,19; 요일1:7; 계7:14.

 

[5] 벧전2:24.

 

[6] 막15:28.

 

[7] 요18:38.

 

[8] 롬5:6.

 

[9]] 시22:15.

 

[10] 히7:26-28; 히9:24-28.

 

[11] 눅1:31; 행4:12.

 

 

 

2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우리의 칭의

 

우리는 이 큰 신비에 대한 참 지식을 얻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참 믿음의 불을 붙이신다는 것을 믿습니다.[1]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공로를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의 소유로 삼으며, 그분 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습니다.[2]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든지, 아니면 그것이 그분 안에 모두 있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소유하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3]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신성 모독죄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절반만 구주가 되신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롬3:28)[4]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5] 왜냐하면 믿음은 단지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방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공로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돌리십니다.[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義)이시며,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은덕 안에서 그분과 교통하는 방편입니다. 그 은덕들이 우리 소유가 되었을 때,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면죄하기에 충분합니다.

 

 

[1] 요16:14; 고전2:12; 엡1:17,18.

 

[2] 요14:6; 행4:12; 갈2:21.

 

[3] 시32:1; 마1:21; 눅1:77; 행13:38,39; 롬8:1.

 

[4] 롬3:19-4:8; 롬10:4-11; 갈2:16; 빌3:9; 딛3:5.

 

[5] 고전4:7.

 

[6] 렘23:6; 마20:28; 롬8:33; 고전1:30,31; 고후5:21; 요일4:10.

 

 

 

23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는 죄 용서에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 또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1] 다윗과 바울은 하나님께서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롬4:6; 시32:1)에 대하여 선언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또한 우리가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3:24)고 말합니다.[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견고한 기초를 항상 붙잡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3] 그분 앞에 스스로를 낮추며,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시인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공로에 대하여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으며,[4]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합니다.[5] 그분의 복종은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 우리 소유가 됩니다.[6]

 

그리스도의 복종은 우리의 모든 불법을 가리기에 충분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확신과 두려움, 공포, 불안에 대해 우리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시조 아담이 떨며 숨으려 했고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그 전례를 따르지 않습니다.[7] 진정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면 (우리에게 화 있을 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8]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윗과 같이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1] 요일2:1.

 

[2] 고후5:18,19; 엡2:8; 딤전2:6.

 

[3] 시115:1; 계7:10-12.

 

[4] 고전4:4; 약2:10.

 

[5] 행4:12; 히10:20.

 

[6] 롬4:23-25.

 

[7] 창3:7; 습3:11;4:16; 요일4:17-19.

 

[8] 눅16:15; 빌3:4-9.

 

 

 

24

 

사람의 성화와 선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으로 사람 안에 일으켜지는 이 참된 믿음이[1] 사람을 중생하게 하며, 새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2] 그 참된 믿음은 그에게 새 삶을 살게 하며, 그를 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합니다.[3] 그러므로 이런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이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에 무관심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4] 정반대로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어떤 일도 행할 수 없고,[5] 단지 자기 사랑이나 저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어떤 일을 행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헛된 믿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5:6)이라고 말하는 그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일들에 전념하게 합니다. 믿음의 선한 뿌리로부터 나오는 이 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선행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성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행들은 우리의 의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우리가 어떤 선행을 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6] 달리 말하면 나무 자체가 좋지 않다면 나무의 열매도 좋을 수 없는 것처럼 더더욱 우리의 어떤 선행도 선(善)이 될 수는 없습니다.[7]

 

따라서 우리가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공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공로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이 있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빚이 있습니다.[8] 우리가 행하는 선행은“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2:13) 다음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행을 보상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물들을 우리에게 하사(下賜)하시는 것은 그분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비록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 행위들이 우리의 구원에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징벌 받지 않을만한 단 한 가지 일도 할 수 없습니다.[10] 비록 우리가 한 가지 선행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지은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은 하나님께서 그 선을 무시하시기에 충분합니다.[11] 만약 그 선행들이 우리 구주의 죽음과 고난의 공로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항상 어떠한 확신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회의(懷疑) 가운데 있을 것이며, 우리의 빈약한 양심은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입니다.[12]

 

 

[1] 행16:14; 롬10:17; 고전12:3.

 

[2] 겔36:26,27; 요1:12,13; 요3:5; 엡2:4-6; 딛3:5; 벧전1:23.

 

[3] 요5:24; 요8:36; 롬6:4-6; 요3:9.

 

[4] 갈5:22; 딛2:12.

 

[5] 요15:5; 롬14:23; 딤전1:5; 히11:4,6.

 

[6] 롬4:5.

 

[7] 마7:17

 

[8] 고전1:30,31; 고전4:7; 엡2:10.

 

[9] 롬2:6,7; 고전3:14; 요이8; 계2:23.

 

[10] 롬7:21.

 

[11] 약2:10.

 

[12] 합2:4; 마11:28; 롬10:11.

 

 

 

25

 

그리스도, 율법의 성취

 

우리는 율법의 예식과 상징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종결되었으며, 모든 그림자들이 성취되었으므로,[1] 그것들의 용도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예식과 상징들의 진리와 본질은 그것들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위해 남아 있습니다.[2]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에 따라 복음의 교리 안에서 우리를 굳건하게 하며, 모든 영예 가운데 우리의 삶을 질서 있게 하기 위하여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로부터 받은 증언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3]

 

 

 

[1] 마27:51; 롬10:4; 히9:9,10.

 

[2] 마5:17; 갈3:24; 골2:17.

 

[3] 롬13:8-10; 롬15:4; 벧후1:19; 벧후3:2.

 

 

 

26

 

그리스도의 중보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며[1]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2]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이 함께 연합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인 우리가 신적 엄위로부터 쫓겨나지 않고 거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3] 하지만 성부께서 그분 자신과 우리 사이에 세우신 이 중보자는 그분의 크심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으셔야 했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환상에 따라서 다른 중보자를 찾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이나 땅 위에 있는 어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지 않습니다.[4]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그분 자신을 비우시어 우리를 위해 종의 형체, 곧 사람의 모양을 취하셨고,(빌2:6,7) 또 모든 면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히2:17)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가 그분의 원수였을 때조차도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이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롬5:8,10) 만약 우리가 권세와 능력을 가진 이를 찾아야 한다면, 그 누가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5]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 이상이겠습니까?(마28:18) 더구나 누가 하나님께서 깊이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우리의 기도를 더 기꺼이 들으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6]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자를 찾는 것은 성인(聖人)들을 명예롭게 하기보다는 불명예스럽게 했던 악습을 받아들이는 순전한 믿음의 결핍이며, 그런 행위는 성인들이 결코 그들 스스로 행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인들이 쓴 기록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성인들은 자신들의 본분에 따라 그런 영광을 끊임없이 거부했습니다.[7]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가치함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리는 문제는 우리 자신의 가치에 근거를 두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가치에 근거를 두기 때문입니다.[8]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우리의 소유가 됩니다.[9]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이 어리석은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신앙을 제거하기 위하여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2:17,18)라고 말한 것은 당연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그분에게 나아가도록 우리를 더 격려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5).[10] 그리고 같은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 또한“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4,25)[11]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께서는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다른 대언자를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언자로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대언자 때문에 그분을 떠나지도 말고, 결코 찾을 수 없는 다른 대언자를 찾지도 맙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주셨을 때, 그 아들은 이미 우리가 죄인들인 것을 아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배운 대로[12]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릅니다.[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한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요16:23)[14]

 

 

 

[1] 딤전2:5.

 

[2] 요일2:1.

 

[3] 엡3:12.

 

[4] 마11:28; 요15:13; 엡3:19; 요일4:10.

 

[5] 히1:3; 히8:1.

 

[6] 마3:17; 요11:42; 엡1:6.

 

[7] 행10:26; 행14:15.

 

[8] 렘17:5,7; 행4:12.

 

[9] 고전1:30.

 

[10] 요10:9; 엡2:18; 히9:24.

 

[11] 롬8:34.

 

[12] 마6:9-13; 눅11:2-4.

 

[13] 히13:15.

 

[14] 요14:13.

 

 

 

27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

 

우리는 한 보편적, 또는 우주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1] 이 교회는 거룩한 총회이며,[2] 참된 기독신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기대하며,[3]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고, 성령으로 성결하게 되며, 인침을 받습니다.[4]

 

이 교회는 세상 처음부터 있었고, 종말까지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백성들이 없을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5] 이 거룩한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 매우 작게 보여서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6] 온 세상의 격렬한 핍박을 막으시는 하나님에 의해 보존됩니다.[7] 아합의 학정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친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7000명을 보존하셨습니다.[8]

 

또한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한 지역이나 어떤 사람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확장되며 퍼져나가고 있습니다.[9] 하지만 교회는 믿음의 능력으로 한 분 동일한 성령 안에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됩니다.[10]

 

 

 

[1] 창22:18; 사49:6; 엡2:17-19.

 

[2] 시111:1; 요10:14,16; 엡4:3-6; 히12:22,23.

 

[3] 욜12:32; 행2:21.

 

[4] 엡1:13; 엡4:30.

 

[5] 삼하7:16; 시89:36; 시110:4; 마28:18,20; 눅1:32.

 

[6] 사1:9; 벧전3:20; 계11:7.

 

[7] 시46:5; 마16:18.

 

[8] 왕상19:18; 롬11:4.

 

[9]] 마23:8; 요4:21-23; 롬10:12,13.

 

[10] 시119:63; 행4:32; 엡4:4.

 

 

 

28

 

교회에 연합해야 할 각 사람의 의무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총회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1] 어떤 지위와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교회에서 떠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각각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함으로[2]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신들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며,[3] 그 목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고,[4] 하나님께서 같은 몸의 지체인 그들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5] 형제와 자매를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6]

 

이것에 더욱 효과적으로 복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과 분리하는 것과[7]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곳이 어디이든지 그 모임에 가입하는 것은[8] 모든 신자들의 의무입니다. 신자들은 통치자나 군주의 칙령이 교회를 반대하며, 죽음과 육체적 형벌이 뒤따른다고 할지라도 이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9]

 

그러므로 교회에서 떠나거나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법령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1] 마16:18,19; 행2:47; 갈4:26; 엡5:25-27; 히2:11,12; 히12:23.

 

[2] 대하30:8; 요17:21; 골3:15.

 

[3] 히13:17.

 

[4] 마11:28-30.

 

[5] 고전12:7,27; 엡4:16.

 

[6] 엡4:12.

 

[7] 민16:23-26; 사52:11,12; 행2:40; 롬16:17; 계18:4.

 

[8] 시122:1; 사2:3; 히10:25.

 

[9] 행4:19,20.

 

 

 

29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들

 

우리는 부지런히,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무엇이 참 교회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에 있는 모든 분파주의자들이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 우리는 비록 외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선한 사람과 함께 섞여 있으면서 교회의 지체는 아닌 위선자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2] 우리는 그들 스스로 교회라고 부르는 모든 분파들로부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는 참 교회의 몸과 교통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다음의 표지들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복음의 순수한 설교를 실행합니다.[3] 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시행을 유지합니다.[4] 참 교회는 죄를 교정하고 징계하기 위해 교회의 권징을 집행합니다.[5] 요약하면 참 교회는 그 자신을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리며,[6]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7]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니다.[8] 이렇게 그 참된 교회는 확실히 알려질 수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참된 교회로부터 분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9] 죄를 피하며, 의로움을 추구하고,[10]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11] 그 육신과 육신의 일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12] 비록 큰 연약함이 그들 안에 남아 있다 해도,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일평생 동안 성령으로 그 연약함에 대항하여 싸웁니다.[13] 그들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14]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교회 자체나 교회의 법령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합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멍에에 자신을 복종시키기를 원치 않습니다.[15]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에서 명하신 대로 성례를 집행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로 성례에 무엇을 더하거나 뺍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보다 사람들 위에 자신의 기초를 둡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고 거짓 교회의 범죄와 탐욕과 우상 숭배에 대하여 책망하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16]

 

참 교회와 거짓 교회는 쉽게 식별되며, 서로 구별됩니다.

 

 

 

[1] 계2:9.

 

[2] 롬9:6.

 

[3] 갈1:8; 딤전3:15.

 

[4] 행19:3-5; 고전11:20-29.

 

[5] 마18:15-17; 고전5:4,5,13; 살후3:6,14; 딛3:10.

 

[6] 요8:47; 요17:20; 행17:11; 엡2:20; 골1:23; 딤전6:3.

 

[7] 살전5:21; 딤전6:20; 계2:6.

 

[8] 요10:14; 엡5:23; 골1:18.

 

[9]] 요1:12; 요일4:2.

 

[10] 롬6:2; 빌3:12.

 

[11] 요일4:19-21.

 

[12] 갈5:24.

 

[13] 롬7:15; 갈5:17.

 

[14] 롬7:24,25; 요일1:7-9.

 

[15] 행4:17,18; 딤후4:3,4; 요이9.

 

[16] 요16:2.

 

 

 

30

 

교회의 정부

 

우리는 이 참 교회가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가르치신 영적인 질서에 따라 치리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1]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말씀 봉사자 또는 목사들이 있어야 하며,[2] 또한 목사와 함께 그 교회의 회의를 구성하는[3] 장로들과[4] 집사들이 있어야 합니다.[5] 말씀과 성례와 권징과 같은 방편들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참 신앙을 보존합니다. 즉 교회의 직분자들은 참된 교리가 그 방침(方針)대로 받아들여지는지, 악한 사람들이 영적인 방법으로 권징을 받으며 제지되는지, 그리고 또한 가난한 사람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는지를 살핍니다.[6] 신실한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여 준 규칙[7]에 따라 선출될 때 이러한 방편들로 모든 일이 적당하고 선한 질서 속에서 실행될 것입니다.[8]

 

 

 

[1] 행20:28; 엡4:11,12; 딤전3:15; 히13:20,21.

 

[2] 눅1:2; 눅10:16; 요20:23; 롬10:14; 고전4:1; 고후5:19,20; 딤후4:2.

 

[3] 빌1:1; 딤전4:14.

 

[4] 행14:23; 딛1:5.

 

[5] 딤전3:8-10.

 

[6] 행6:1-4; 딛1:7-9.

 

[7] 딤전3장.

 

[8] 고전4:2.

 

 

 

31

 

교회의 직분자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선한 질서 가운데 기도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그들의 직분에 선출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1] 그러므로 부적절한 방식에 의해 간섭받지 않도록 모두가 주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자신의 소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2] 말씀의 사역자들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동등한 권력과 권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일한 우주적인 감독이시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3]의 종들[4]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거룩한 법령이 어지럽혀지거나 거부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이 말씀의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봉사 때문에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5] 할 수만 있다면 불평이나 다툼 없이 그들과 화목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 행1:23,24; 행6:2,3.

 

[2] 행13:2; 고전12:28; 딤전4:14; 딤전5:22; 히5:4.

 

[3] 마23:8,10; 엡1:22; 엡5:23.

 

[4] 고후5:20; 벧전5:1-4.

 

[5] 살전5:12,13; 딤전5:17; 히13:17.

 

 

 

 

 

 

 

32

 

교회의 질서와 권징

 

비록 교회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특정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을 위하여 유익하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1]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예배에 끌어들여진 모든 인간적인 고안들과 계율들을 거부해야 합니다.[2] 우리는 화합과 일치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지키기에 적합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3]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과 출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시행되어야 합니다.[4]

 

 

 

[1] 딤전3:15.

 

[2] 사29:13; 마15:9; 갈5:1.

 

[3] 고전14:33.

 

[4] 마16:19; 마18:15-18; 롬16:17; 고전5장; 딤전1:20.

 

 

 

33

 

성례들

 

우리는 우리의 우둔함과 연약함을 배려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약속을 인치시고, 우리를 향하신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하시기 위해 성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확증하시려고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시는 것과 우리 마음에 내적으로 행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의 외적인 감각에까지 더 잘 표현하시기 위해 복음의 말씀에 이 성례들을 더하셨습니다.[2] 이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확증하십니다. 성례들은 내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印)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방편들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3] 그러므로 그 표들은 우리를 속이는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례들의 실재(實在)이시며, 그리스도를 떠난 성례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하신 두 성례, 즉 세례[4]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5]에 만족합니다.

 

 

 

[1] 창17:9-14; 출12장; 롬4:11.

 

[2] 마28:19; 엡5:26.

 

[3] 롬2:28,29; 골2:11,12.

 

[4] 마28:19.

 

[5] 마26:26-28; 고전11:23-26.

 

 

 

34

 

세례의 성례

 

우리는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보상이나 속죄로서 행해져야 하거나 행해져야 했을 다른 모든 피 흘림을 그분의 흘리신 피로 종식시키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피 흘림을 수반했던 할례를 폐하셨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1] 우리는 세례로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거짓된 종교로부터 분리되는데, 이는 우리가 지닌 그리스도의 표지와 인을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기기 위해서입니다.[2] 이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영원히 은혜로운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이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28:19) 순수한 물로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이 우리에게 부어졌을 때에 몸의 오물을 씻어내고 물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뿌려졌을 때에 그의 몸에 물이 보이듯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에 의해 그 영혼에 내적으로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을 이 세례로 우리에게 표시하십니다.[3] 세례는 죄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씻어내어 정결하게 하고,[4]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5] 이것은 물 그 자체가 아니라[6]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 뿌림으로 일어납니다.[7] 그것은 우리가 바로의 학정, 말하자면 마귀의 학정을 벗어나기 위해 통과하여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우리의 홍해입니다.[8]

 

따라서 목사들이 그들의 직무에서 성례와 보이는 것을 우리에게 주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성례로 표시되는 것,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은사들과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은 모든 불결과 불의에서 우리의 영혼을 씻으시며, 깨끗하게 하시며, 정결하게 하셔서,[9]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마음을 모든 위로로 채우시며,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를 새 사람으로 입히시며, 옛 사람과 그 모든 일들을 제거하십니다.[10]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 얻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오직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11] 세례는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세례는 그 물이 우리 위에 있을 때와 우리가 뿌림 받을 때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재세례파의 오류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단 한 번만 받는 세례에 만족하지 않으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 대한 세례 또한 정죄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유아들이 지금 우리의 자녀에게 주시는 동일한 약속의 기초 위에서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이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 언약의 표로 인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12]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인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그분의 피를 흘리신 것과 같이 신자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습니다.[13] 그러므로 주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린 양을 드릴 것을 율법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대한 표와 상징을 받아야 합니다.[14]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가졌던 것과 동일한 의미를 세례가 우리 자녀들에 대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부릅니다.(골2:11)

 

 

 

[1] 골2:11.

 

[2] 출12:48; 벧전2:9.

 

[3] 마3:11; 고전12:13.

 

[4] 행22:16; 히9:14; 요일1:7; 계1:5b.

 

[5] 딛3:5.

 

[6] 벧전3:21.

 

[7] 롬6:3; 벧전1:2; 벧전2:24.

 

[8] 고전10:1-4.

 

[9] 고전6:11; 엡5:26.

 

[10] 롬6:4; 갈3:27.

 

[11] 마28:19; 엡4:5.

 

[12] 창17:10-12; 마19:14; 행2:39.

 

[13] 고전7:14.

 

[14] 레12:6.

 

 

 

35

 

주의 만찬의 성례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케 하셔서 그분의 교회, 곧 그분의 가족으로 연합케 하신 사람들을 먹이시고 보전하시기 위하여 성만찬의 성례를 제정하셨음을[1] 믿고 고백합니다.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생명의 양면성을 가집니다.[2] 한 면은 육체적이고 현세적인 것인데, 그들은 첫 번째 출생 때에 그것을 받았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다른 한 면은 영적이며 천상적인 것인데, 중생 할 때에 그들에게 주어지며,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에서 복음의 말씀으로[3] 발휘됩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택자에게만 있습니다.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유지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상적이며 물질적인 떡을 먹도록 정하셨습니다. 이 떡은 생명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소유한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신(요6:51)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믿는 자들이 먹을 때에, 곧 믿음으로 영적으로 취하고 받을 때[5] 그들의 영적인 생명을 기르시고 유지시키십니다.[6]

 

영적이며 천상적인 떡을 표시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몸의 성례로 지상적이며 보이는 떡을 제정하셨고, 그분의 피의 성례로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7] 그리스도께서는 확실히 우리가 성례의 떡과 포도주를 우리 손으로 받아서 들고, 우리 입으로 먹고 마시며, 그것으로 우리의 육적인 생명이 유지되는 것같이, 그렇게 확실히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하여 영혼의 손과 입과도 같은 믿음으로 우리 영혼에 받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십니다.[8]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례들을 우리에게 헛되이 명령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이 거룩한 표들로 우리에게 표시하신 모든 것을 우리 안에 일어나게 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숨겨진 활동을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이 일이 일어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짜 본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떡과 잔을 먹는 방식은 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10]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분 자신과 교통하게 하시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이 잔치는 영적인 식탁인데, 이 식탁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모든 은덕들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그분과 그분의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공로를 즐거워하는 은혜를 주십니다.[11]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살을 먹게 하심으로 우리의 가난하고 피폐한 영혼을 기르시며, 강건하게 하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회복시키십니다.

 

비록 성례가 그것으로 상징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성례에 의해 상징되는 것이 모두에 의해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12] 악한 자는 그 성례를 자신의 정죄로 확실히 취하지만, 그 성례의 실재는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모두 성례를 받았지만, 그 성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는 받지 못했습니다.[13] 그리스도는 오직 신자들과만 유일하게 교통하십니다.[14]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사함으로 함께 기념하고,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같이[15] 겸손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회중 안에서 이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16] 그러므로 아무도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심으로 자신 위에 떨어질 수 있는 심판을 먹고 마시지 않도록 신중한 자기 성찰 없이 이 식탁에 나아오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11:28,29) 요컨대 이 거룩한 성례의 사용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기 위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성례에 뒤섞어 넣은 부가적인 모든 것과 가증한 모든 고안들을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가 가르치신 성찬 예식에 만족해야 하며, 그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성찬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 마26:26-28; 막 14:22-24; 눅 22:19,20; 고전 11:23-26.

 

[2] 요3:5,6.

 

[3] 요5:25.

 

[4] 요6:48-51.

 

[5] 요6:40,47.

 

[6] 요6:63; 요10:10b.

 

[7] 요6:55; 고전10:16.

 

[8] 엡3:17.

 

[9] 요3:8.

 

[10] 막16:19; 행3:21.

 

[11] 롬8:32; 고전10:3,4.

 

[12] 고전2:14.

 

[13] 눅22:21,22; 행8:13,21.

 

[14] 요3:36.

 

[15] 행2:46; 고전11:26.

 

[16] 행2:42; 행20:7.

 

 

 

36

 

시민 정부

 

우리는 인류의 부패 때문에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왕과 군주와 공직자들을 세우셨다는 것을 믿습니다.[1] 그분은 사람의 방종이 억제되고 모든 일들이 선한 질서 가운데 처리되게 하시기 위하여[2] 세계가 법과 정책으로 통치되기를 원하십니다.[3] 그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정부의 손에 칼을 두셨습니다.(롬13:4) 제지하고 유지하는 그들의 직무는 공공의 질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교회의 사역을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요구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래하며, 복음의 말씀이 각지에서 전파되며,[4]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과 예배를 받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회적 지위나 조건이나 신분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공직자에게 복종해야하며, 세금을 내야하며, 그들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5] 모든 일에서 그들을 따라야 합니다.[6] 하나님께서 공직자들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감독하시며,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고 모든 면에서 경건하고 정중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우리는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재세례파와 다른 반역자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권위자들이나 국가 관리들을 거부하며, 법적 정의를 뒤엎고,[7] 재산의 공동소유를 전래(傳來)시키며, 하나님께서 사람들 사이에 세우신 예의를 혼란하게 하는 모든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여기에 들어가야 할 다음의 문장은 1905년 네덜란드 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총회에 의해서 삭제되었다.“모든 우상과 거짓 예배는 제거하고 막아야 되며, 적그리스도의 왕국은 파괴되어야 한다.

 

 

 

[1] 잠8:15; 단2:21; 요19:11; 롬13:1.

 

[2] 신1:16; 신16:19; 삿21:25; 시82편; 렘21:12; 렘22:3; 벧전2:13,14.

 

[3] 출18:20.

 

[4] 시2편; 롬13:4a; 딤전2:1-4.

 

[5] 행4:19; 행5:29.

 

[6] 마17:27; 마22:21; 롬13:7; 딛3:1; 벧전2:17.

 

[7] 벧후2:10; 유8.

 

 

 

37

 

최후의 심판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피조물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님에 의해 정해진 시간이 되고[1] 택자의 수가 찰 때에,[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대로(행1:11) 큰 영광과 위엄을 가지시고[3] 몸으로, 그리고 보이도록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을 믿습니다.[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로 선언하실 것이며,[5] 이 옛 세상을 소멸하기 위하여 불로 태우실 것입니다.[6] 그때 창조로부터 종말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 곧 성인과 아이들이 다 이 큰 재판관 앞에 몸소 출두해야 할 것입니다.[7] 그들은“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소환될 것입니다.(살전4:16)

 

그 시간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이 전에 살았던 자신의 몸과 다시 연합하여 흙에서 일어날 것입니다.[8] 그때까지 살아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을 것이며, 눈 깜빡할 사이에 필멸의 존재에서 불멸의 존재로 변화될 것입니다.[9] 그때 그 책들이 펼쳐질 것이며, 죽은 자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선악 간에(고후5:10) 심판 받을 것입니다.(계20:12)[10] 진정 모든 사람들은 세상이 단순한 농담이나 재미라고 여길만한“모든 경솔한 말에 대해서도 심문을 받게 될 것(마12:36)입니다. 그때에는 사람의 비밀과 위선이 모든 사람의 눈앞에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 심판의 교리는 불의하고 악한 자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것이지만,[11] 의인과 택자에게는 큰 기쁨과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의인들의 충만한 구속이 완성되고, 그들이 겪었던 수고와 고난에 대한 열매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2] 의인들의 무죄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의인들은 이 세상에서 의인들을 핍박하고 억압하고 괴롭힌 악한 사람들 위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무서운 보응을 보게 될 것입니다.[13]

 

악인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의 증언에 의해 정죄를 받고, 영영 죽지도 못하고 오직“마귀와 그의 악한 영들을 위해 준비된[14] 영원한 불(마10:32)에서 고통 받을 것입니다.[15] 반면에 신실하고 택함 받은 자들은 영광과 영예로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는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마10:32)과 하나님의 택하신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인정하실 것입니다.[16]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계21:4)[17] 현세에서 많은 재판관과 공적 권위자들에 의해 이단과 악인으로 정죄된 의인들의 송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송사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러한 영광을 은혜로운 상(賞)으로 의인들에게 소유하게 하실 것입니다.[1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충만하게 누리려는 위대한 열망을 가지고 저 위대한 날을 바라봅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계22:20)

 

 

 

[1] 마24:36; 마25:13; 살전5:1,2.

 

[2] 히11:39,40; 계6:11.

 

[3] 마24:30; 마25:31.

 

[4] 계1:7.

 

[5] 마25:31-46; 딤후4:1; 벧전4:5.

 

[6] 벧후3:10-13.

 

[7] 신7:9-11; 계20:12,13.

 

[8] 단12:2; 요5:28,29.

 

[9] 고전15:51,52; 빌3:20,21.

 

[10] 히9:27; 계22:12.

 

[11] 마11:22; 마23:33; 롬2:5,6; 히10:27; 벧후2:9; 유15; 계14:7a.

 

[12] 눅14:14; 살후1:3-10; 요일4:17.

 

[13] 계15:4; 계18:20.

 

[14] 계20:10.

 

[15] 마13:41,42; 막9:48; 눅16:22-28; 계21:8.

 

[16] 계3:5.

 

[17] 사25:8; 계7:17.

 

[18] 단12:3; 마5:12; 마13:43; 고전2:9; 계21:9-22:5.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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